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12
“하긴…….”
보통 20세 이하 고등학생 대회에 A랭크 마법사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 대부분 D랭크일 텐데 거기에 C랭크랑 B랭크가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칙 같다. ……어라, 이거 인하를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잠시 인하를 응시했다. 많이 즐거워 보인다.
‘에이, 뭐 어때. 저렇게 좋아하는데.’
잠시 후 수업 종이 쳤다. 나는 교과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시간이야. 이따가 봐.”
“응. 이따 봐.”
나는 인하와 성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교실을 나섰다. 연기 수업은 조금씩 진도가 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표정 연기를 배웠고, 지금은 행동 연기를 배우고 있다. 나는 목소리 연기는 제법 괜찮지만 그 외에는 미숙하다.
연기 수업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좋아, 열심히 하자!
사실 나는 블로그를 두 개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독자님과 교류하기 위한 블로그로, 주로 출간 일정을 알리는 데 쓰인다. 가끔 일상 이야기를 적는데, 그럴 때마다 호응해 주는 게 무척 기쁘다.
또 하나는 장인용 블로그다. 처음 블로그를 개설할 때 나는 홍보도 겸할 겸 교류용 블로그에 장인용 블로그 개설을 이웃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초아’가 아마추어 장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근에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었다. 예전부터 고안하던 ‘스토리 북’이다. 책 속에 들어가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 되어 이야기를 진행하거나 진행을 돕는다. 안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가상 현실 게임과 조금 비슷했다. ‘책갈피’라고 하면 이야기를 어디까지 진행했는지 표시할 수 있고, ‘그만 읽기’라고 하면 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예전에 써 두고 출판하거나 연재하지 않았던 단편 소설을 새로 산 책 만들기 전용 인쇄기로 인쇄했다. 표지와 삽화는 환각마법을 사용해 내가 직접 만들었다.
300권 정도를 인쇄해 공방의 아공간에 넣어 판매했다. 그때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상 현실 게임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인기를 끌 거라는 기대는 접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기분이 좋았다. 스토리 북은 처음 환각마법을 고안했을 때 떠올린 환각마법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내가 환각마법을 떠올렸을 때 뭐라고 생각했던가. 내가 상상하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보여 주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환각마법을 만들지 않았던가.
10년이 더 지나 나는 결국 꿈을 현실로 이루어 냈다.
하나, 둘, 스토리 북 재고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나는 추억에 젖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A랭크 마법사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했는데. 그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마법은 이미 다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닿았다.
스토리 북 300권은 두 달 만에 매진되었고, 나는 다시 300권을 업로드했다. 이번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매진되었다.
‘어라……?’
스토리 북은 예상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람쥐 공방의 베스트 상품으로 꼽힐 정도였다.
『아미님의 아이템 항상 애용하고 있습니다. 물량 좀 더 늘려주셨으면 하지만 전부 수제라니 힘드시겠네요ㅠㅠ』
『리뷰보고 사봅니다.』
『동화 같은 분위기가 아이들한테 딱이에요!』
심지어는 이런 메일도 왔다.
『K〇C 뉴스 기사 담당자입니다. 아미 님의 ‘스토리 북’을 기사로 기재할 수 없을까 해서 메일을 드립니다.』
뉴스? 기사~? 나는 잠시 당황하다가 웹에 들어가 검색창에 『아미 스토리 북』이라고 쳤다. 엔터를 누르자 많은 관련 글이 떴다. 블로그와 카페에 생각보다 많은 리뷰가 올라와 있었다. 동화 같은 분위기에 흠뻑 빠져든다. 그 유명한 작가 초아 님이 쓴 단편 소설이다. 초아 님은 예전부터 장인 일을 겸업했다. 아직 학생이라 많은 물량이 올라오진 않지만 도토리 공방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 장인이다. 도토리 공방에서 굉장히 유명한 대장장이 장인인 시스를 아나? 아미 님의 동업자이다. 둘이서 콤비를 맺고 있다.
나는 명예 훼손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사를 허가했다. 며칠 후 기사 전문에 대한 허락 메일이 왔다. 기사 내용에 대해 미리 점검하고, 이대로 기사를 올려도 되겠는지 허락을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기사를 보고 나는 의외의 사실을 알았다.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사랑을 담백하고 로맨틱하게 그려 낸 이 소설은,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와 그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놀랍게도 아미의 스토리 북 는 어린아이의 기초 마법 단련에 매우 효과가 좋다. 인터넷으로 설문 조사를 해 본 결과 설문 조사에 참가한 1000명 중 922명이 스토리 북 안에서 평소보다 마법을 훨씬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 효과는 스토리 북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영향을 끼쳐, 어린 마법사의 성장에 큰 발판이 되어 주고 있다.』
그거야 환각 세계니까. 상상하는 만큼 이루어지는 세계니까…….
나는 눈가를 찌푸리며 생각을 이어 가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어라, 진짜……?
며칠 지나지 않아 그 글은 뉴스 기사로 올라왔다. 흥미진진한 내용, 남녀노소에게 인기, 아이들 마법 교육에 도움이 되며. 친구들이 기사를 읽으며 신기해했다.
“조기 교육용 책으로 선정된대. 헐헐, 그야 재미있기는 했는데…….”
“아냐. 나도 느꼈어. 이 안에선 마법을 쓰는 게 평소보다 훨씬 편하더라고.”
그렇게 되자 여기저기에서 기사 허락 신청이 쇄도했다. 나는 명예 훼손만 하지 않으면 허락하겠다고 전했다.
‘아미’란 이름이 확 부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덜 유치한 닉네임으로 할 걸 그랬다고 후회할 정도였다. 그와 함께 ‘초아’라는 필명도 함께 부상했다. 원래 인기 작가였지만 이번 일로 이름이 확 드높아졌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심지어 출판사에서도 메일이 왔다.
『초아 작가님ㅠㅠ 독자님들이 다른 책들도 처럼 스토리 북 시리즈로 만들어 줄 수 없냐고 자꾸 문의가 들어오네요ㅠ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스토리 북 는 고위 마법입니다. 저희의 능력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아이템이에요. 그러니 작가님께서 이에 관해 공지를 올려주셨으면 해요.』
여태까지 썼던 소설을 전부 스토리 북으로 바꾼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그러나 제법 성가신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 나는 문이를 통하지 않고 그냥 타자로 쓴 글로도 거의 완벽하게 문자마법을 재현할 수 있다. 하지만 문이보다 효과가 떨어지고 마력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거기에 인쇄라는 건 본디 컴퓨터에 쓴 글을 잉크로 비슷하게 찍어 내는 행위다. 그러니 인쇄를 하면 마법 효과가 많이 떨어진다. 원래 위력의 3분의 1 정도?
그래서 나는 스토리 북을 인쇄할 때 문이를 통해서 했다.
출판사나 인쇄소에 원고를 넘겨 스토리 북을 대량 생산하는 건 분명 가능하다. 그게 지난 시절 쓴 글이라도 분명 가능하다. 다시 마음을 불어넣으면 되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건 출판사가 출판한 책일까, 내가 만든 책일까. 나는 내가 만든 아이템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을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 더욱이 친하지도 않은 타인에게 내 마법을 자세히 보여 줄 생각 역시 요만큼도 없다.
또한 스토리 북은 독자가 책 안에 들어가 이야기를 바꾸는 마법이다. 단편일수록 쉽고, 장편일수록 일그러지는 게 많아 어렵다.
실제로 스토리 북은 고위마법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타자로 쓰는 글로는 괜찮은 아이템을 만들기 힘들 정도로 마법 효과가 떨어졌다. 독자를 환각 세계로 이끌고, 행동에 따라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걸 위해 캐릭터에게 자율성을 준다. 성격에 맞춰 스토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다만 추행이나 성행위 등은 금지되어 있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이 모여 있다. 당연히 나로서도 상당한 힘을 담은 마법이다.
그런 만큼 다시 마음을 불어넣는 작업은 무척 성가시다. 이미 지나 버린 설정을 다시 생생하게 떠올릴 필요가 있다. 주인공 및 등장인물의 성격, 심리 등. 그렇게 마법을 걸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알아?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신경 쓸 것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이미 출판사에 넘긴 책이고, 실력을 들킬 가능성도 있으니까.’
같은 이유로 대량 생산도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자재도 많이 든다.
나는 그에 대해 블로그와 공방, 출판사에도 자세한 공지를 올렸다. 납득하는 사람도 있었고 납득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스토리 북을 통해 마법 레벨과 랭크를 추리해 내는 사람을 보고 또 기겁했다. 그들의 추론 속에서 나는 B랭크 마법사였다.
‘헐. 무섭다.’
스토리 북은 엄청나게 인기를 끌어 금방 품절되었다.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다음 달에는 몇 권을 만들지? 저 인쇄기는 성능이 좋아서 사실 자재만 충분하면 하루에 500권도 만들 수 있다.
나는 고민하다가 아무리 잘 팔리더라도 만 권까지만 만들기로 했다. 판매를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돼서 3000권이 팔린 만큼 그 정도는 수량에 여유를 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 스토리 북이니만큼 우선 팔리는 속도에 맞춰 재고를 올리기로 하자. 그러다 보면 한 달 적정 수량을 알 수 있겠지.
스토리 북이 부상하자 내 다른 아이템도 더 불티나게 팔렸다.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값을 전부 20000원 이상으로 올렸는데도 계속 팔렸다. 진짜 적당히 해라……. 여긴 대량 구매를 하는 장소가 아니라고요.
나는 당장 공방 설정에 들어가 연속 구매 금지란에 한 달을 체크했다. 인기 장인은 이런 일이 꽤 있다. 광팬이 샀던 물건 또 사고 또 사고를 반복하는 거지. 그런 행위를 금지시키기 위한 설정이었다.
아무래도 일이 좀 커진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스토리 북을 낸 건 겨울 방학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한 달이 지난 4월, 내 장인으로서의 닉네임이 확 부상했다. 나만이 아니었다. 나와 동업을 하고 있는 이성진의 ‘시스’라는 이름도 더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름값이 뛰어올라서 수요가 많아졌다고 우리 장인들이 더 바쁘게 많은 물건을 만들어야 할까? 고객들은 재촉하고 또 재촉하지만…….
“아니, 암만 항의해도 무리인 건 무리잖아.”
“어. 무리지.”
“너도 제련 속도 못 올리잖아.”
“무리지. 네 결계 안에서 해도 최소한 일주일은 걸려. 그렇다고 매일매일 검만 제련할 수도 없잖아.”
“학생의 비애……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그렇지.”
결국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아이템을 만들고, 올렸다. 많이 팔리는 건 좋은 거지.
기어코 TV 뉴스 요청 메일까지 왔다. 나는 긴장하며 승낙했다. 갑자기 유명세를 타니 좀 불안하기도 했다. 이러다가 정말 훅 갈 것 같다.
“팬클럽 카페 회원도 많이 늘었네…….”
요즘 ‘초아’의 팬 카페가 ‘초아’와 ‘아미’의 팬 카페로 변해 가고 있다. 카페 매니저님도 그것을 느꼈는지 카페를 리모델링해서 ‘초아’란과 ‘아미’란을 따로 만들었다. 항상 카페를 관리하고 내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랑을 주시는 매니저님들과 독자님들, 혹은 팬들께는 감사하고 있다. 카페에서만 이벤트를 해서 한정 아이템 혹은 외전 개인지를 증정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팬 카페를 둘러보다가 새로 온 메일이 눈에 띄어 메일을 확인했다. 메일 제목보다 먼저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는 물론이고 블루버드 사이트, 블로그까지 들어와 댓글을 다는 독자님의 닉네임이었다.
닉네임을 따라 제목을 읽었다. ‘인터뷰 취재 허락을 받고 싶습니다’.
“…….”
인터뷰 취재라고? 나는 놀라며 메일을 클릭했다. 메일 내용은 제목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인사로 시작된 메일은 독자이자 기자로서의 심정을 담고 있었다. 자신은 예술 관련 잡지 기자이며, 평소부터 소설을 즐겨 보았다. 내 소설을 보고 한눈에 반해 작품은 물론 블로그까지 쫓아다녔다. 카페가 설립되자 냉큼 가입했다.
사실은 전부터 계속 인터뷰를 신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이라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참기로 했다. 생각보다 어리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하지만 초아라는 이름과 아미라는 이름이 함께 부상한 지금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 많은 생각 끝에 요청한다. 기자로서만이 아니라 팬으로서 작가님의 좋은 점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 부디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나는 메일을 다시 읽어 보았다. 반복해서 내용을 곱씹으며 한동안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민했다.
독자님, 그러니까 블루버드, 카페, 블로그에서 ‘페니틴’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이분을 만난 지는 꽤 되었다. 아마 3년 전이었을 거다. 중학교에 입학해 내가 글을 쓰기 힘들어진 3년 전부터 블루버드에 들어와 내 작품, 블로그에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 주던 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많은 성의를 받았다.
아주 많이 고민했다. 인터뷰를 하든 취재를 하든 보통 얼굴을 마주 보고 한다. 인터넷으로 취재를 하면 나로서는 편할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글로만 심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과연 상대방에게 성의를 다하는 일일까?
그분이 독자로서 내게 보여 준 인상은, 깔끔했다. 가끔 찌르는 듯한 댓글을 달 때가 있기는 했지만 항상 정중했다. 말투도 ‘납득할 수 없다’가 아니라 ‘이해하기 힘드니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식이었다. 오타 지적도 몇 번 받았다. 여러 의미로 날카로운 분이었다.
작품에는 항상 애정을 쏟아 주었다. 연재 작품을 몇 번이나 정주행하고, 책을 샀다며 후기도 썼다.
‘오프라인 만남은 피하고 싶은데. 독자님이라면 더더욱…….’
뭣보다 나는 이미 다른 이유로 얼굴이 알려져 있다. 밖에 나갈 때는 항상 A랭크 마법사용 마력 제어 아이템과 얼굴 인식 방해 아이템을 사용한다.
‘인터뷰, 인터뷰라.’
나는 처음으로 인터뷰를 받아들일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만약 A랭크 마법사인 유은하를 향한 인터뷰였다면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민하는 것은, 소설가이자 장인, 즉 예술가인 나에게 온 인터뷰였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신청한 상대는 평소에 정중하게 애정을 쏟아 주셨던 독자님,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으음…….’
고민한 끝에, 나는 인터뷰를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곧바로 약속이 잡혔다. 인터뷰 장소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개인실이 있는 카페였다.
약속을 잡고 인터뷰가 확정된 후에야 나는 그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 이번 주말에 인터뷰하기로 했어.”
“뭐?”
깜짝 놀라거나 기겁하는 친구들을 향해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냐. 랭크 때문이 아니라……소설가이자 장인으로서 하는 인터뷰야. 전부터 알던 사람이 인터뷰를 신청해 왔거든. 알아보니까 그 잡지 평판이 좋더라고. 직접 읽어 봤는데 온화하고 소소한 느낌이더라.”
아하. 그제야 친구들이 이해했다. 인하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괜찮겠어? 얼굴, 알려졌는데…….”
“괜찮아, 괜찮아. 일단 인식 방해 아이템은 끼고 갈 거고…….”
친구들도 나 못지않게 고생하고 있다. 편지가 오는 것만이 아니라 밖에 실습을 나갈 때마다 여러 사람에게 주목과 관심을 갖는다. 흥미성 질문에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제현 오빠도 이랬을까. 알고 보니 제현 오빠는 팬클럽이 있더라. 나처럼 학교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전국 규모다.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겠지. 고등학생 때 B랭크, 졸업하고 A랭크 달성. 외모도 실력도 뛰어난데 여자든 남자든 달라붙지 않을 리가. 보지 않아도 우리만큼 고생했을 게 뻔하다.
“야. 넌 네 직업을 밝힐 거냐?”
묵묵히 듣고 있던 성진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몸을 돌려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뭐가?”
“남의 시선을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미 네가 A랭크 마법사라는 건 퍼졌잖아. 그럼 네가 소설가고 장인이라는 걸 밝히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적어도 전투 마법사가 아니라는 건 받아들여질 테고, 유명세를 타고 이름도 높아질 테니까.”
엑. 그런 의미였던 건가. 나는 팍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별로야. 으음, 싫어. 지금도 충분히 잘나가고 있는걸.”
“그래.”
성진은 정말로 궁금했던 것뿐이었는지 딱히 마음에 두지 않는 태도였다. 약간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그럴 생각이라면 조심해. 보통 인식 방해 아이템은 사진을 찍으면 소용이 없거든.”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사진은 안 찍겠다고 미리 말을 해 두었다.
인터뷰 날은 금세 다가왔다. 인터뷰 당일, 나는 최대한 단정하게 꾸미고 밖을 나섰다. 반팔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셔츠 위에는 스웨터 카디건을 걸쳤다. 화장은 고민 끝에 비비까지만 발랐다.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본격적인 화장을 하기는 조금 어색했다.
지갑이나 웬만한 물건은 아공간에 넣어 두었다. 나는 그냥 몸만 가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를 향하는 동안 가벼웠던 마음이 점점 긴장으로 무거워졌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독자님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괜찮아. 괜찮아.’
그 잡지는 예전에 루비캣 커뮤니티를 취재해 인터뷰를 낸 적이 있다. 스승님도 괜찮은 잡지라고 평가했다. 출판사를 통해 평판을 알아보니 제법 괜찮은 곳이라 한다. 예의를 확실히 지키는 곳이라나.
출판사 담당자님은 약간 분해했다. 자신도 얼굴을 대면하고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데 인터뷰 기자가 먼저 작가님과 얼굴을 대면하다니! 그러면서 다음번 모임에는 꼭 나오라고 하더라.
긴장으로 꽉꽉 차오른 가슴을 몇 번이고 달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카페 앞에서 연락을 하니 이미 도착해 카페 안에 있다는 답장이 왔다. 나는 개인실 호수를 알아낸 뒤 카페로 들어가 개인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문을 여니 바로 목소리가 나를 맞았다.
“네! 초아 님 맞으시죠?”
개인실 내부는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갈색 탁자, 하얀 화병, 벽에 걸린 유채화 그림. 베이지색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몸을 일으키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인식 방해 아이템을 만지작거리며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초아라고 합니다.”
“헉……! 세상에……!”
그녀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을 삼켰다. 네일 아트를 한 손톱이 도드라졌다. 부러울 정도로 손이 예뻤다.
잠시 그녀의 손에 시선을 뺏긴 채 있자니, 여자가 흥분한 얼굴로 발을 굴렀다.
“세상에, 어떡해. 저 초아 님이 강한 마법사일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거든요? 어려도, 엄청 재능 있는 사람일 거라고……. 제가, 아이템도 작가님 광팬이잖아요. 액세서리도 마정석도 만만한 게 없어서……. 스토리 북도, 그거 엄청 고위마법이잖아요! 그래서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어지는 말에 표정을 굳혔다. 여자가 하고 있는 말을 쫓아가다 보면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충 예상할 수 있다.
“설마……절 알아보시겠어요?”
“아…! 죄송해요. 오늘은 그것 때문에 온 게 아닌데. 네, 사진을 찍는 게 왜 별로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하겠어요. 제가 팬이라서 자부심에 괜한 이야기를 했네요. 시간 내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크로아티의 강희진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기소개를 하며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명함을 받았다. 여자가 활짝 웃었다.
“자아! 작가님, 여기 앉으세요.”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삼키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설마 바로 눈치챌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떨떠름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여자가 손을 내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인식 방해 아이템에는 문제가 없어요. 실은 제 특수능력이 ‘진실의 눈’이거든요. 감정마법을 사용해서 그런지 환각이나 정신 계열 마법이 별로 통하지 않아서……정말 실례했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특수능력이라는데 어쩔 수 없죠…….”
그랬던 건가. 나는 귓가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인식 방해 아이템은 인터넷에서 예쁘다고 생각해 샀던 아이템이다. 하지만 걸린 마법 수준은 평범했다.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내가 직접 마법을 걸어야겠다. 환각마법까지 섞어서 확실하게 시선을 통제해야겠다. 나는 그녀의 태도에 고마움을 느끼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시작하기 전에 마실 걸 시킬까요? 어떤 걸로 하실래요?”
“으음……그럼 전……레모네이드요.”
“네.”
그녀는 전자 메뉴판을 열고 꾹꾹 눌러 음료를 선택했다. 주문 완료 표시가 뜨며 메뉴 창이 모습을 감췄다. 그녀는 노트와 펜을 옆에 두고 노트북을 열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최대한 작가님의 의사를 존중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혹시 인터뷰를 하다가 불편한 게 있으면 꼭 말씀해 주세요. 지면에 내고 싶지 않은 질문이 있을 경우에도 꼭 말씀해 주시고요.”
“네…….”
“그리고 초아 님과 아미 님이 동일 인물이라는 건 블로그 구독자분들 중에서도 소수밖에 모르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인터뷰를 나누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눈다고요?”
“초아 님의 인터뷰 따로, 아미 님의 인터뷰 따로 두 편을 인터뷰하면 어떨까요? 소설가 겸 장인이라는 걸로 인터뷰를 합치는 것과, 초아 님의 인터뷰와 아미 님의 인터뷰로 나누는 것 중, 작가님은 어느 게 편하신가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합치거나, 따로 하거나. 그러네. 소설가와 장인은 전혀 다른 직업이잖아. 심지어 예명도 다르다.
“따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후 잠시 가벼운 잡담을 나누었고, 그사이 주문한 음료가 도착했다.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녹음기를 켰다.
“장인과 소설가, 두 일을 병행하고 있어서 어떤 질문을 드릴지 많이 고민했는데요……먼저 소설가인 초아 님께 질문을 드릴게요.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엄……그냥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책을 엄청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쓰고 싶어진 거군요?”
“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에 찼다.
“초아 님은 학생 때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모험 혹은 판타지 소설가로서 꽤 이름을 높이고 있는데요, 혹시 여태까지 적었던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혹은 대표 작품이다. 그런 작품이 있나요?”
“음……쓰면서 제일 재미있던 작품은 ‘요정과 춤을’이라는 작품이에요.”
“앗! 그거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특히 에필로그가 너무 좋더라고요~. 제목 그대로 춤을 추는 장면이 너무 여운이 남아서…….”
“아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대표 작품이라. 대표 작품이라 하면 첫 번째로 썼던 장편이 아닐까? 우리 세계에서 보통 실력을 가진 마법사가 세계관이 전혀 다른 이세계로 뚝 떨어진 이야기다. 우리 세계에선 보통밖에 안 되는 힘이 그 세계에서는 무척 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세계는 마법을 ‘루테’라고 부른다. 허나 그 ‘루테’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다. 피로 이어지거나, 혹은 아주 드물게 능력으로서 발현한다.
그러한 세계에, ‘마력’이라는 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누구든 마법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마법사가 등장한다.
우리 세계와는 달리 이세계(異世界)의 마력은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다. 루테를 지닌 사람이 루테 능력을 중심으로 비효율적인 마법을 사용한다. 세계는 전쟁으로 인해 황폐하고, 구조도 특이하다.
거기에 나타난 여자 마법사, ‘루테’를 키우는 마법사. 당연히 섣불리 마법을 사용한 소녀는 여러 진영에 휘말리게 된다. 그 세계에선 강자에 속하는 덕분에 다행히 대부분 극복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것도 생기게 되는 법.
약간 시리어스한 분위기에 스케일이 큰 소설이었다.
“대표 소설은 ‘루크알의 마법사’가 아닐까 생각해요. 첫 작품이기도 하고, 첫 번째 장편이니까요.”
“루크알의 마법사! 저도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환상을 가지게 만드는 작품이죠. 나도 다른 세계에 가면 강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오만을 순식간에 꺾어 버리죠. 그 후에 여주가 너무 불쌍했지만, 곧 오만을 뉘우치고 그 세계에서는 특이한 힘으로 한 명씩 자기편을 만들어 가니까……으으, 너무 재미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이 사람은 정말로 내 골수팬이구나. 그런 생각에 기분이 미묘해졌다.
“첫 작품이자 대표 작품인 루크알의 마법사. 확실히 대표 작품이라고 할 만큼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출간한 지 지금 3년이 됐나요? 작가님은 어느 장면을 쓸 때가 제일 즐거웠나요?”
“여주인공, 이윤이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남주한테 뒤통수를 맞는 장면일까요? 남주의 고백 장면과, 그 뒤에 이어진 이윤의 거절 세례를 쓰면서 막 웃었어요.”
“그거 정말 통쾌했죠! 처음엔 사이가 별로 안 좋았잖아요. 여주는 남주한테 첫눈에 반했었는데, 남주가 여주를 너무 사무적으로 대해서 운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마지막엔 결국 반전! 이윤이 사랑 대신 우정을 받아들였을 때, 남주는 비로소 여주에 대한 사랑을 싹틔웠죠.”
“그거 쓰면서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저 혼자 방에서 침대 두드리고…….”
“그 장면은 정말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잡담에 가까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단순히 흥미로 시작하셨을 텐데, 소설을 처음 쓸 때 가장 어렵게 느꼈던 점은 무엇인가요?”
“음……중간에 연중을 잠깐 했었잖아요.”
“그랬었나요?”
“네, 그때 힘든 일이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독자님들께 죄송했어요. 제가 그때 입원을 몇 번 했었거든요.”
“이런……그런 건 어쩔 수 없죠.”
4학년 때 일이다. 연재를 시작한 건 4학년에 올라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까. 테러 사건으로 한 번, 스토커 사건으로 한 번, 특수능력 때문에 또 한 번, 긴 휴재 기간을 가졌다. 그 이후에는 별 탈 없이 완결까지 연재를 이어 갔지만.
“음……이 답변은 초반에 내기에는 좀 우울하네요. 그 외에 힘든 일은 없었나요?”
“딱히……없었던 것 같아요.”
그 후로도 초아를 향한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은 몇십 개나 되었고, 그중 고르고 골라서 인터뷰를 쓰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아미 님께 질문을 드릴게요.”
“네.”
그녀는 연극을 하는 어조로 노트북을 바라보며 지문을 읽었다.
“먼저 이번에 아이템에서 큰 성과를 거두신 걸 축하드립니다. 스토리 북으로 히트하게 된 점은 과연 소설가를 겸업하고 있는 장인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 소개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소설가 겸업’이라는 소개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살짝 넣는 건 괜찮으신가요?”
“네. 어차피 아는 독자님들은 알고 계시니까…….”
“다행이네요. 그럼 질문할게요. 아미 님은 액세서리 아이템을 중심으로 장인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실제로 어떤 기술을 익히고 있나요?”
“액세서리 만드는 법은 전반적으로 계속 공부하고 있고, 기술이라고 할 만한 건 유리 공예 정도예요.”
“그렇군요. 마법 부여도 직접 하시죠?”
“네.”
“스토리 북으로 이름이 뜨기 전부터 아미 님의 이름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잖아요. 액세서리 디자인은 평범하다는 의견이 높았지만, 중심 소재인 마정석의 질이 무척 좋았고, 아이템에 걸린 마법도 고위마법이라, 연구자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아……그건 처음 알았어요.”
“특히 결계 아이템이 인기를 끌었죠. 독특하고 튼튼하다고.”
“마법과 관련 있어요. 제 마법 중에 결계와 관련된 게 있거든요.”
“귀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그녀가 밝은 얼굴로 감탄했다.
“다른 장인들──마법 부여를 하는 장인들 사이에서 아미 님의 마정석은 특히 인기가 많아요. 양질이라 마법을 새기면 생각보다 뛰어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질이 좋은 만큼 판매하는 마정석의 숫자는 적지만요.”
“네. 장인 일만 하는 게 아니고, 액세서리도 전부 직접 만드는 거라서, 아무래도 시간이 걸려요.”
“하긴. 소재부터 상품이 되기까지 전부 직접 만드는 장인분들은 아무래도 많은 물품을 만들어 내기 어렵겠죠. 매겨지는 상품 랭크에 비해서 값이 싼 편이죠?”
“액세서리를 만드는 기술이 모자라니까요.”
“마법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비싼 값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로도 수십 개나 되는 문답이 이어졌다. 스토리 북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같은 팀인 시스(이성진)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중간중간 잡담도 하다 보니 점심 직후부터 시작되었던 문답은 6시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