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15
하늘 경기는 나와 성진이에게도 유리한 점이 있을지도 모르나, 다른 시합에서는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이 있는 청 팀이 훨씬 유리했다. 뭣보다 나와 성진이는 활동파가 아니다. 경기도 한두 개밖에 안 나간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나 유정 언니, 인호 오빠는 번갈아 나가니, 그야 불리한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다른 선배들이 하늘 경기만은 하라고 밀었던 건, 하늘 경기가 제일 점수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우리 홍 팀도 실속 있게 점수를 챙겼다. 허나 청 팀과 100점 이상 점수 차가 났다. 하늘 경기 1등 점수가 분명 200점이었던가? 흐음, 만회가 가능하려나…….
‘인하도 높은 점수를 받을 테니까,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늘 경기만 남겨 두었을 무렵에는 백 팀 150, 홍 팀 180, 청 팀 290 정도로 차이가 났다. 허얼? 그런데 문제는 청 팀의 2번 주자가 최인성이라는 것이다.
하늘 경기는 6명의 주자들 중에 3명에게 점수를 준다. 인성이도 만만치 않게 빠르다. 주자가 직접 라이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바깥에 있는 마법사들이 방해를 해야 하는데…….
‘차라리 회장님한테 방해꾼으로 나서겠다고 할걸. 그게 편한데.’
나는 무슨 마법을 쓸지 속으로 고민했다. 인하 마법을 복사해서 써 봤자 인하보다는 느릴 테고, 텔레포트는 쓰면 안 되고, 체질 변화 덕분에 달리기는 제법 빠른 편이지만…….
‘남은 건 시공간마법……. 시공간마법은 밝힌 적 없는데.’
대외적으로 밝히고 있는 마법은 문자마법과 시공간마법의 일부인 결계마법이 전부다. 그걸 알고 있는 것도 대개 같은 학교 사람들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 마법을 거의 모른다. 그래도 이미 실력이 밝혀졌고, 상대는 인하와 성진, 인성이니…….
‘일단 애들 하는 거 보고.’
스피드가 중요한 경기니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최선은 다하겠지만 어떨까 싶다. 이런 건 내 특기가 아니라고.
“은하 님, 어때요.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피드는 특기가 아니라…….”
“윽, 역시?”
“방해꾼이 더 가능성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은하 님을 안 내보내는 건 손해예요, 손해! 열심히 하세요!”
“네에.”
학생회장과 같은 홍 팀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운동장 위, 출발선으로 날아올랐다. 학생들이 방해를 위해 학교 어딘가로 흩어졌다. 하늘에 선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는 그리움에 젖었다. 작년만 해도 저 안에 속해 있었는데 싶어서.
“긴장된다.”
인성이가 심호흡을 했다. 성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인선 미스 아냐? 방해도 실력 차가 적당히 나야 해 볼 만하지. 방해가 소용없으면 이건 그냥 스피드 승부잖아.”
“왜? 학교엔 우리 외에도 C랭크 마법사가 제법 있잖아.”
시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으나 인성이는 성진이의 말에 긍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네. 특히 은하랑 이 녀석은…….”
“은하가 왜?”
“은하는 디스펠이 특기니까…….”
인하도 긍정했다.
“전부 튕겨 내겠지. 소용없어.”
성진이가 혀를 찼다.
“너희들은 아닐 줄 아냐? 실력 차가 너무 나서 소용없다고.”
“차라리 서로 방해할 수 있었다면…….”
그래. 차라리 서로 방해할 수 있었다면 조금쯤 볼만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래도 또 승부가 정해져 버린다. 가장 강한 이성진이 우리를 다 쓰러뜨리고 가면 그만이니까.
대화를 나누는 동안 경기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났다. 하늘에 6명이 설 길이 그려지며, 심판이 우리 곁으로 올라왔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여러분! 기다리셨습니다! 곧 하늘 경주가 시작됩니다!]“으악, 시작이다.”
새삼스럽게 긴장되었다. 나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짧게 심호흡을 반복했다.
“공지?”
우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만 적용되는 특별 규칙이라고?
[아시다시피 이번 경주 참가자가 너무 뛰어나잖아요? 그래서 방해하기 힘들 것 같아 대신 특별 구간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장애물 구간’입니다.]“장애물 구간…….”
[그중 제일 많은 게 마법 금지 구간입니다! 마법 금지 구간은 세 군데 있습니다. 바깥에서 방해하기 위해 마법을 쓰는 건 가능하지만, 경기를 하는 주자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법 금지 구간은 가장 짧은 구간이 100m, 가장 긴 구간이 300m입니다!]“100, 200, 300?”
“그럴지도.”
세 구간이면 아마 그렇게 나뉘겠지. 내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순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함정 구간이 몇 곳 존재합니다! 함정 구간에서는 공격마법 사용이 제한됩니다! 마법으로 부수거나 깨뜨리는 건 안 됩니다! 오직 막거나 피하는 것만 허용됩니다!]“마법 사용 금지 구간 자체를 깨부수는 건……역시 안 되겠지.”
[안 됩니다!]아, 듣고 있었나 보다. 사회자가 성진의 말에 기겁하며 반응했다.
“그런 거라면 제법……안 하는 것보다는 재밌겠는데?”
“그러게.”
“응.”
시하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특수능력은 사용해도 되나요?”
[됩니다!]과연. 우리는 납득하고 각자 출발선 앞에 섰다. 인하와 인성이, 나와 예슬이, 성진이와 시하, 전부 익숙한 얼굴이었다. 전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라는 게 조금 걸린다. 학교 대표인데 상급생이 아니어도 되나. 학교 전체에서 보면 상급생이더라도, 고등학교 내에서만 보면 우리는 하급생이다. 랭크만 봐도 시하랑 예슬이보다 뛰어난 선배들도 있는데.
‘하여간 그놈의 서열. 덕분에 난 학교 서열 2위라고 불리고 있고…….’
떠올리기만 해도 오글거린다. 나는 상념을 지우며 앞을 보고 집중했다. 사용할 마법을 정했다. 공간 이동이 불가능하다면, ‘공간 접기’를 사용하자.
[그럼 준비하시고…….]아래에서 누군가가 불꽃을 쏘아 올렸다. 휘이이이잉…….
펑!
불꽃이 화려하게 핀 순간, 우리는 출발했다. 각자 마법을 사용해서 앞으로 달려간다. 인하는 빛이고, 나는…….
언젠가 보았던 축지와 비슷한 기술이다. 내 앞에 있는 공간을 접는다. 그럼 먼 장소가 눈앞에 붙어 온다. 공간 이동이 금지되는 건 라인을 달려야 하는 경기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공간 접기는 한 자리에서 먼 지점으로 휙 도약하는 것과 비슷한 기술이니 반칙은 아니다. 공간에 영향이 많이 가 자주 쓰는 기술은 아니지만, 가끔은 괜찮겠지.
하는 이상 최선을 다하자. 나는 휙휙 말을 움직였다.
[우와! 강인하 선수는 아예 모습이 안 보이는데요? 유은하 선수는 중간중간 멈추는 것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공간 이동은 아닐 겁니다! 공간 이동이면 라인이 반응하니까요!]공간을 구부려 더 앞으로 나갔다. 공간 접기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다. 거기다 ‘접는’ 거라 커브 길에 쓰기에는 불편하다. 잘못 접으면 라인을 벗어나게 될 테니까. 함정 구간에선 때에 따라 마법을 쓰면 안 되니 조절해서 접자.
[강인하 선수의 마법은 빛이었죠? 역시 빠릅니다! 저 속도면 여태까지 경기와는 달리 30분 안에 결판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그 옆을 이성진 선수가 바짝 따라붙고 있습니다!]인하는 벌써 저 앞으로 나섰다. 진짜 빛보단 속도가 느리지만, 무지막지하게 빠른 것만은 확실하다. 근데 이성진 쟨 그걸 또 따라잡아? 하여간 말도 안 되는 놈이라니까.
[앗! 장애물 구간이 나타났습니다!]장애물 구간에 들어간 순간 인하와 성진의 몸이 붕 떠올랐다. 나도 한 발 만에 장애물 구간 바로 앞에 섰다. 한 발 들어서자마자 몸이 반사적으로 붕 떠오른다. 중력마법으로 체중을 조절하고 아래에 내려가 구간이 끝날 때까지 힘껏 뛰었다.
우리가 그렇게 달리는 동안 학생들은 당연히 우리를 막기 위해 무수히 마법을 쏘았다. 하지만 정말로 소용없었다. 인하는 온몸을 마법으로 둘러싼 채 달리고 있고, 성진이와 나는 마법이 닿기 전에 무력화된다.
성진은 특수능력 때문이고, 내 경우엔, 좀 다른 원리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특수능력 때문이다. 정화속성에 닿으면 녹는 마력이 있다. 하나 더, 내 마력 지배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몸 주위에 다가오면 마법이 강제로 해제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결계 때문이다. 내 결계를 깰 정도로 강한 마법은 없었다. 이러니까 속도만으로 승부가 결정될 거라 말했던 거다.
[두 번째 장애물 구간입니다!]두 번째 장애물 구간은 물과 소용돌이 구간이었다. ‘물’이 성진에게 통할 리가 없다. 인하에게는 잘 통했다. 물 안에서는 빛이 굴절된다. 나는 그 중간, 손을 휘두르며 공간을 구부려 물길을 열었다.
[세 번째 장애물 구간이자, 첫 번째 마법 금지 구간이 나타났습니다!]으아아아……. 나는 구간 안에 들어서자마자 허전한 기분에 숨을 삼켰다. 마법을 쓰면 안 된다면, 마력은 쓸 수 있나? 아까 진작 물어볼 걸 그랬다. 혹시 모르니 마력도 쓰지 말자. 힘껏 달리는 나를 향해 온갖 마법이 날아왔다.
‘특수능력은 써도 된다고 했던가.’
나는 시야를 부릅떴다. 보인다. 마법의 궤도가 다 보인다. 피하는 건 내 전매특허지! 얼마나 연습했는데! 하지만 라인을 벗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걸음을 번번이 멈춰야 했다. 아이고, 위로 날아오를 수도 없고!
짜증이 나서 중간부턴 힘으로 마법을 튕겨 냈다. 마법 반탄력 덕분에 이 정도 마법에는 상처 하나 안 난다. 게다가 내 몸이 얼마나 튼튼해졌는데. 사기다! 누가 소리쳤지만, 마법 안 썼는데 뭐 어때! 나보다는 성진이 녀석의 특수능력이 더 사기잖아!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마법이 녹는다고! 줄줄 흘러내리고 있잖아!
[마법 금지 구간……애먹을 줄 알았는데 과연 A랭크 마법사라는 건가요! 이성진 선수와 유은하 선수! 간단하게 뿌리칩니다! 특수능력인가요? 아니면 마법 반탄력인가요!]거기에서 나와 성진이는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갔다. 우리는 순식간에 마법 금지 구간을 벗어났다. 사회를 들어 보니 다른 친구들은 제법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 마법 금지 구간은 100m……. 이 틈에 두 사람을 따돌려야겠다.’
그러면서도 나는 점점 멀어지는 성진의 모습을 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저 녀석은 무슨 마법을 쓰고 있는 거지? 인하보다 빠르다니. 설마 순수한 육체능력이란 말은 안 하겠지. 마력이 잘 안 보이는 만큼 무슨 마법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번 공간을 접는 사이 다음 함정 구간이 나타났다. 이번 함정은 공간이 휘어져 있어서, 한 발 움직이면 다른 장소로 이동되었다. 그러나 나와 성진이에게는 전혀 소용없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공간, 혹은 시간을 ‘볼 수’ 있으니까.
단숨에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성진과 나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다.
‘우씨. 이렇게 차이 나면 좀 짜증 나잖아!’
저 초인! 먼치킨! 인간도 아닌 놈!
‘인하가 아무리 빨라도, 이럼 힘들겠네. 여기에서도 거리가 벌어질 것 같고.’
함정 구간을 지난 후, 바로 마법 사용 금지 구간이 나왔다.
[거리가 상당히 벌어졌습니다! 이성진 선수! 200m나 되는 마법 사용 금지 구간을 순식간에 빠져나갑니다! 유은하 선수가 지금 두 번째 마법 금지 구간에 도착! 다른 선수와는 차이를 벌리고 있습니다!]저 녀석은 진짜 그냥 달리면 되니까 그렇지! 나는 이번엔 아까보다 더 빠르게 그 장소를 주파했다. 전력으로 달리며, 마법은 몸으로 다 튕겨 낸다. 맨손으로 튕겨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성가셨던 구속 계열 마법도 힘으로 부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유은하 선수도 순식간에 돌파!]20Km라고 했는데 얼마나 남았으려나. 반이 넘은 건 확실하다. 이렇게 달렸는데 전혀 숨이 차지 않는다. 나는 약간 감상에 젖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12Km를 주파했는데도 이성진 선수, 유은하 선수, 전혀 속도가 느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성진 선수가 좀 더 빠른 듯,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벌어집니다…….]바깥에서 응원하는 목소리도, 지금 이 순간에는 다 잊었다. 숨이 차오르기를 바라며 속도를 좀 더 높였다. 다음 함정 구간도 중력마법을 응용한 구간이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몸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간을 접었다. 힘으로 버텨 낼 수 있을 정도였고, 결계로 떨쳐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다음 구간은 바닥이 없고 공중에 발판이 떠 있었다. 부유마법을 쓰지 않고 발판을 밟고 넘어가야 한다. 어릴 적이라면 고소 공포증 때문에 벌벌 떨었을 곳이군. 그러나 나는 여유롭게 도약했다. 몇 개는 함정이고, 몇 개는 진짜다. 나는 마력 패턴으로 진짜를 구분해 다음 구간으로 넘어갔다.
‘거참 함정에 공을 엄청 들이셨네! 심지어 그걸 경기 직전에 말해 주질 않나!’
이제 뒤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인하조차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공간 함정과 마법 금지 구간에서 애를 먹어 차이가 많이 벌어진 모양이다. 두 번째 중력 구간에서도 애를 먹으려나?
다음 구간은 환상 구간. 나에게는 정말로 무의미했다. 이 정도 환상이 환각마법으로 단련된 나한테 먹힐 리가 없다. 또 한 번 공간을 접었다.
[이럴 수가……이성진 선수! 골인입니다! 빠릅니다! 압도적입니다!]나는 순간 넘어질 뻔했다. 우씨……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에라이, 난 아직 골이 보이지도 않는데. 마지막 마법 금지 구간도 지나지 않았다고!
이를 가는 순간 마지막 마법 금지 구간이 나왔다.
[역대 가장 빨랐던 기록이 26분 32초였는데……갱신했습니다! 13분 40초입니다!]어라?
나는 의외의 사실에 깜짝 놀랐다. 시간이 그것밖에 안 지났어?
마지막 마법 금지 구간, 학생들의 총공격이 날아왔다. 개중에는 친구들의 공격도 있었다. 한수의 나무줄기, 현호의 물줄기와 언령, 소영이의 바람, 민희의 탄환.
팔다리를 구속하고,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힘으로 깨부수거나 궤도를 읽어 옆으로 피하면서 나는 조금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이제 친구들의 마법조차 크게 힘들이지 않고 깰 수 있구나. 가슴 한편이 아련했다. 게다가 주파 시간도 마음에 걸렸다.
‘13분……. 나도 조금 있으면 골인데…….’
마법 금지 구간이 끝나자 바로 골이 보였다. 힘껏 달려 골 안에 들어섰다.
와아아아!!!
함성 소리를 들으며, 전력으로 달린 만큼 체력이 소비된 것에 숨을 고르며, 시간을 확인했다. 15분? 진짜야?
나는 성진을 돌아보았다. 그는 나를 향해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열이 올라 잠시 생각했다. 이 녀석이 골인했을 때 내가 어딜 달리고 있었더라……. 1Km 이상 차이 났던 거잖아!
나는 성큼성큼 성진에게 다가가 정강이를 찼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기 때문에 성진은 피하지 못했다.
“윽……뭐야?”
“몰라! 너 짜증 나! 진짜 재수 없어!”
“너도 기록 깨 놓고 무슨!”
“흥이다! 흥!”
나는 유치하게 메롱까지 했다. 그러자마자 어디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은하 님 너무 귀여워!”
“저거 친구들한테만 보여 주는 모습이래!”
“귀여워!”
미친. 나는 정색했다. 성진도 어이없는 얼굴로 관객석을 보는가 싶더니 이내 풉 웃음을 눌러 참았다.
“큭……미친……!”
“웃지 마! 아오, 웃지 말라고!”
10분 후에 인하가 도착했다. 함정에 애를 먹었는지 머리카락이 엉망이었다. 그로부터 15분 정도가 지나자 인성이가 도착했다. 예슬이와 시하는 그로부터 20분 후에야 도착했다. 다들 함정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먼저 1등을 한 백 팀에 200점 들어갑니다! 2등 홍 팀, 100점, 3등 청 팀에 50점입니다!]결과 점수는 이렇게 되었다. 홍 팀, 280점. 백 팀, 350점. 청 팀, 340점. 인하가 3등이라서 만회는 무리였다. 결국 백 팀은 1위를 차지했다. 최대한 힘냈지만……역시 이전 경기에서 점수를 따 뒀어야 했어요. 진짜 이기고 싶거들랑 나를 방해로 돌려야 됐다니까.
[총점 결과는……백 팀 350점, 청 팀 340점, 홍 팀 280점……10점 차이로 백 팀이 역전입니다!!!]와아아아아!!
또 한 번 함성이 운동장을 강타했다. 성진은 이긴 주제에 시끄럽단 이유로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분함을 참으며 주먹을 쥐었다. 아깝지는 않다. 뒤집을 수 없는 차이였다. 그래도 좀 분하다. 저 녀석의 마법 실력이 너무 대단해서. 속도, 방어, 공격, 어째 빠지는 게 없냐고.
랭크 시험 때 응용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나오긴 했지만, 그건 저 녀석이 응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 졌다. 역시 방해꾼을 해야 했어.”
“은하가 방해한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무서운데?”
인성이가 곤란한 얼굴로 나를 만류했다. 우리는 이내 웃으며 서로를 향해 하이 파이브를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었다. 자습 시간, 나를 포함한 고등학교 수준별 상급반 일동(멤버는 중학교 때와 다르지 않다. 선생님만 바뀌었다.)은 교직원실로 불려 갔다. 우릴 부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오늘 부른 건 멘토링 때문이야.”
“멘토링요?”
불길한 예감에 나는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래. 중학생 때 다들 한 번씩 경험했을 거야. 중학생이랑 고등학생이 스터디를 짜서 선배가 후배의 마법 공부를 도와주는 거야. 마법을 가르치거나, 대련을 하는 것으로.”
“…….”
나는 제법 오래된 기억을 추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나와 인하, 한수, 현호, 민희는 특이 케이스였기 때문에, 우리가 멘토링 수업을 받은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소영이와 성진이, 인성이, 시하, 예슬이는 중학생 때 멘토링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고등학생보다 중학생이 더 많기 때문에, 고등학생은 예외 없이 전부 이 멘토링 수업에 참가해야 돼. 너희들이 전원 중학생 때 멘토링 수업을 받았듯이.”
“헉…….”
“으악…….”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쨌거나 골치 아픈 일이다. 우리는 한숨을 삼켰다.
“지금 당장 하라는 건 아니야. 멘토링 수업은 2학기 때, 한 달간만 하니까. 수업 이외 과외니까 10월부터 너희들이 시간을 정해서 멘티에게 도움을 주면 돼.”
소심한 나에게는 참 힘든 이야기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멘토링 수업으로 인해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안 할 수도 없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얼굴을 쓸었다.
“2학기 때부터…….”
이번만큼은 민희도 곤혹스러운 듯했다.
“역시……으으……힘들겠죠?”
“처음 하는 거니까 힘들기는 할 거야.”
그러나 선생님은 밝게 웃었다.
“하지만 너희 선배들도 다 거친 길이니까. 가르침을 받는 멘티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입장인 멘토한테도 이 수업은 많이 도움이 돼.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발견을 하는 사람도 많아.”
‘가르친다’는 행위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모르는 사람과 얼굴을 대면하는 일이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가르치는 ‘선배’로서 후배와 마주해야 한다니.
“꼭 다 같이 모여서 가르칠 필요는 없어. 개인으로 갈라져서 몇 명을 맡아도 돼. 다음에 너희가 가르칠 만한 후배의 프로필을 모아서 줄게.”
“엥? 그래도 돼요? 아직 미성년자잖아요.”
“물론 마법에 대한 정보는 멋대로 알려 줄 수 없어. 프로필 서류에 있는 건 필기시험 성적이랑 이름과 성격에 대한 정보뿐이야. 마법 실력은 너희들이 재량껏 알아내야지. 멘티의 실력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겠지? 중*고, 혹은 초*중*고 전부를 이 대현에서 보내고 있는 너희라면.”
“그야 당연히 알죠~.”
민희가 에헴, 헛기침을 흘리며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10년 가까이 대현을 다니며 비밀 준수 교칙에는 완전히 익숙해졌다. 모를 리가 있나. 반사적, 습관적으로 입을 다물 정도로 몸에 익었는데.
“이번 학기말 고사 성적에 따라 1학년 학생들의 수준별 반이 정해질 거야.”
“앗차, 수업을 받는 거 1학년이었죠?”
“응.”
잠시 고민하던 민희가 현호를 돌아보았다.
“현호 네 동생도 올해 여기 중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나?”
아하, 그 아이? 현호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이름은 김현우, 현호를 잘 따르는 동생이다. 그 아이도 대현에 다니고 있다.
“응. 맞아.”
“잘하면 형제끼리 멘토링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이 곧바로 대답을 주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된단다. 하지만 동생 외에도 최소 한 명은 더 맡아야 돼.”
“음…….”
현호가 고민에 빠졌다. 현호 동생 현우는 상급반에 들 실력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도 중위권이었고, 중학교에서도 비슷하리라 본다. 잘난 형에 비하면 평범한 동생, 질투할 법도 하지만 너무 대단하다는 이유에서 현우는 현호를 굉장히 좋아하며 따랐다. 사춘기가 되면 또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는 그렇다. 심지어 내 팬클럽 멤버다……미친!
만날 때마다 강아지같이 구는 게 귀엽긴 하더라. 그래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럼 수준별 반 나뉘고 난 뒤에……10월부터인 거죠?”
“그래.”
소영이가 손을 들며 물었다.
“그 멘토링……수업 외 과외라고 하셨잖아요. 규칙 같은 거 있어요?”
“있지. 일주일에 세 시간은 함께할 것, 일정한 양의 과제를 내고 체크할 것, 최소 5번 이상 대련을 도와줄 것.”
헉, 나는 그 말에 당황해서 이성진을 흘끔 돌아보고는 물었다.
“저어……엄청 강하고 마력이 위험하고 세세한 제어를 못 할 경우엔요? 대련 꼭 해야 되나요?”
당연히 성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성진에게 돌아갔다. 위험성을 인식한 모두의 표정이 단박에 굳었다.
사실 성진이 마법을 조절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해낸다. 하지만 이 녀석의 마법은 독성이 짙다. 위험은 차고 넘친다.
선생님도 난감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아니……그럴 때는 예외지.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고…….”
헤에, 그랬구나.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몇 명 떠올렸다. 스승님……은 제어를 잘하니까 아닐 테고, 민 선생님이나 제현 오빠 정도가 아닐까? 아니다, 중학생이면 C랭크의 마법에도 독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확 늘어난다.
잠시 누굴지 고민해 보다가 꼭 알아낼 필요는 없는 일이기에 다시 난감한 화제에 집중했다. 하여간 몇 달 후에 멘토링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중학생 상급반, 뭘 가르쳐야 하지? 마법 특성도 다르고, 실력도 굉장히 차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배들은 잘도 우리를 가르쳤구나 싶다.
“근데 왜 저희만 따로 부르셨어요? 멘토링 수업은 학년 전체가 다 진행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선생님은 손을 저었다.
“보통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이 맡아.”
“네?”
그러고 보니 우리 때도……. 우리는 당황해서 선생님을 보았다.
“이번 중학교 1학년에 제법 가능성이 있는 학생이 올라왔거든. 그래서 너희들에게 맡기기로 한 거야. 학생들의 실력은 비밀이지만, 조건을 넘기면 수준별 반 담당 선생님이 멘토링 신청을 해 오거든. 유망한 후배는 유망한 선배가 맡아야지.”
“으엑…….”
민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멘토링 수업은 보통 수준별 반 그룹으로 행동하니까, 그 김에 상급반 두 반을 맡기는 게 어떻겠냐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거야. 그래서 너희들만 따로 부른 거고.”
그렇게 된 거였군.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해야 하는 거구나, 멘토링.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럼 10월부터…….”
“한 달간, 일주일 동안 최소 3시간씩은 수업을 해야 하니까 수고해 줘. 그 시기에는 실습도 적당히 잡고.”
민희와 현호, 소영이는 의욕이 생겼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인하와 한수, 성진은 표정을 약간 찌푸렸으며, 인성이와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네!”
“네에.”
그렇게 된 듯하다.
아직 환각마법용 한계 돌파 기술은 생각나지 않는다. 우선 나는 고위 마법사용 스토리 북을 만들고 있다. 내게는 여전히 많은 양의 의뢰서가 도착한다. 여태까지 받은 의뢰가 소문이 나서인지 생태 조사나 마력 장 조사 같은 조사 의뢰가 많아졌다. 특히 행성 조사 의뢰가 많이 온다. A랭크니까 거리낄 필요가 없어서겠지.
소설과 장인 일 때문에 충분히 바쁘므로, 의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받는다. 그리고 해결할 때마다 엄청난 금액을 보수로 받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투자’다. A랭크 마법사, 그것도 예비 S랭크 마법사라고 불리는 자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을 테니까.
평범하게 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수준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부담감을 끌어안고 삼킬 수밖에.
‘솔직히 조금 혹하기도 하고.’
의뢰 한 번에 최소 몇십만 원에서 몇 억이다. 독립을 원하는 나로서는 쏠쏠한 이야기였다. 너무 대단해서 선아 아줌마한테 상담했더니 선아 아줌마는 뜯을 수 있을 만큼 뜯어내라 하더라. 원한다면 바칠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면서. 받기만 하고 무시해도 아무도 뭐라고 못 한단다. 그 정도의 실력이 있으니까.
금전 감각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건……미친 것 같아.
이성진은 나보다 심했다. 그는 벌써 세계 랭킹 500위 안에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알아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주려고 한다. 다만 그는 외부로 나가는 의뢰는 잘 받지 않았다. 여태까지 총 세 번을 갔었는데, 한 번은 인성이를 따라간 거였고, 두 번은 나를 따라간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생태 조사에는 관심이 있다며. 덕분에 내 대접은 가면 갈수록 극진해지고 있다.
이미 나와 이성진을 파트너 취급 하는 사람도 있다. 아냐! 그런 거 아니라고! 여태까지 다섯 번 정도 의뢰를 했지만, 그 녀석과는 두 번밖에 동행하지 않았잖아!
……다섯 번밖에 의뢰를 안 받았는데 최소 몇십만에서 최대 몇 억을 받아 본 게 더 신기한 것 같다.
친구들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인하나 인성이는 한 달에 200만 원은 거뜬히 벌었다. 두어 번 부상을 입고 돌아온 적이 있었지만 심한 상처는 아니었다.
슥슥, 오늘도 속독 안경을 쓰고 의뢰서를 훑어보던 도중에 마음에 걸리는 의뢰를 발견했다. 그건 드물게도 생태 조사 의뢰가 아니었다. 아니, 훨씬 특이했다. 왜냐면 의뢰인이 내 마법이 ‘정신마법’ 계열이라는 사실을 파고들어 왔으니까.
문자마법을 쓰는 나에게는 글에 담긴 마음이 보였다. 사심 없이 간절함만이 담긴 의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