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22
한소이가 웃으며 퍼즐에 손을 가져갔다. 고위 마법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망칠 수 있다.
‘나는 절대 그런 짓은 안 할 거야.’
나는 한소이의 정신세계를 한번 둘러보았다. 점점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 한소이의 정신세계를 살피고 남아 있는 조각을 살핀 다음 다른 조각을 찾으러 가는 게 꿈에서의 일과다.
“그럼 전 갔다 올게요. 아직 못 찾은 조각이 있을 것 같거든요.”
“네. 저는 퍼즐을 맞추고 있을게요.”
우리는 해맑게 웃는 한소이를 향해 인사하고 다시 한소이의 방을 나섰다. 기억 찾기, 다시 시작이다.
별로 못 잔 탓인지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나는 아침을 잔뜩 먹은 다음 다시 심사 위원으로서 시합장으로 향했다.
심사 위원 대기실로 가는 복도에서 장유하를 만났다. 장유하는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잠시 바깥으로 나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네? 네….”
시간은 제법 남아 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기엔 조금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장유하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유하는 나를 옥상 공원에 데리고 갔다.
“어제 사건, 기억 수집가의 짓으로 밝혀졌습니다. 유은하 씨에겐 말해 둬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어…….”
결과가 너무 빨리 나온 것에도 놀랐지만, 장유하가 저런 말을 하는 것에서 두 번 놀랐다. 어제 사건을 알고 있었던 건가? 장유하는 내 놀람을 눈치챘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경남 지부 책임자가 접니다. 특히 고위 마법사 안건은 반드시 저를 거칩니다. 마침 어제는 사건이 조금 있어 늦게까지 수사를 하고 있었거든요.”
“아……그럼 많이 피곤하시겠네요.”
“밤을 새우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아, 네…….”
장유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외부에는 숨기고 있는 이야기라 부득이하게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눠야 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아뇨, 저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경찰의 고위 간부, 그렇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3년 전 있었던 사항로 거리 단체 기억 상실 사건, 알고 계신가요?”
“…….”
장유하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군요. 알고 계신다면 어쩔 수 없죠. 네, 그 사건의 범인도 기억 수집가입니다.”
“그 전투에서 상관없는 민간인이…….”
“죽거나, 기억을 잃었다는 것도 압니다.”
“…….”
“변명처럼 여겨지겠지만, 저희도 나름의 노력을 했습니다. 경찰 내부에서 치료 마법사를 동원해 기억을 치료하려 했고, 저를 포함하여 동료 몇 명이 그 남자와 개인적으로 거래를 하러 갔습니다. 정말 이가 갈리는 게…….”
장유하는 진심으로 화난다는 얼굴로 이를 갈았다.
“그 사람들의 기억을 되찾길 원한다면 자신과 내기를 하라는 겁니다. 한 번 이길 때마다 한 사람의 감정을 돌려주겠다고 하더군요. 대신 지면 저희 감정 몇 개를 가져가겠다는 갑니다. 들어 보니 그때는 기억을 가져간 것도 아니었답니다. 그냥 막무가내로 아무 데다 흩어놨으니,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나요? 그걸 전부 주워서 돌려주는 고생을 해야 하는데 내기에 대가가 걸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런 말도 지껄이더군요.”
“……그래서, 했나요?”
“네. 저를 포함해서 총 20명이 도전하고, 전부 패했습니다.”
“…….”
“저도 나름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래도 더 강한 마법사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이 세계는 그래요. 정말이지……울화통이 나서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더군요. 3번이나 도전했는데, 세 번 전부 감정을 뺏겼으니까요.”
“뺏긴 감정은…….”
“다행히 저는 회복됐습니다. 동료 중엔 회복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지만 다행히 중요한 기억은 잃지 않았다는 듯합니다. 다른 피해자분들은 회복되거나, 회복되지 않거나. 그런데도 범인이 고위 마법사라 밝히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죠.”
“…….”
“심지어 가장 심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 몇 명은 아예 혼이 빠져나간 상태입니다. 지금도요. 경찰청 소속 의사의 힘으로는 회복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긴, 정신 회복은 보통 치료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알다시피, 그 계열의 치료 마법사는 무척 적습니다.”
“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군요…….”
사실 이전 세계도 아예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게 어떤 힘이든지 힘이 있는 사람은 살아남고, 약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입게 된다. 법이 아무리 약자를 보호하려고 해도 강자를 이길 수가 없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기억은 되찾겠지만, 그와 정면 대결을 하고 싶지는 않다. 기억을 잃고 싶지도 않고, 다치고 싶지도 않다. 다들 그렇겠지. 그렇게 포기한 거겠지.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속이 안 좋아졌다. 우리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신한아가 시간이 되었다며 우리를 찾으러 와서야 몸을 돌렸다.
‘정말……짜증 나는 놈. 하지만 어디든지 그런 사람은 있겠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준결승전이 코앞인데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다. 그러나 곧 앞서가던 두 사람이 놀라는 것도 상관 않고 양 뺨을 짝짝 쳤다.
“어라? 왜 그래…?”
“아니요. 오늘은 친구의 시합이니까요.”
그래, 오늘은 친구들의 시합이다. 제대로 봐 두자.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대회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시작됐다.
첫 번째 시합은 인하와 유미의 대결이었다. B랭크와 C랭크의 대결, 뻔하다면 뻔했다. 유미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었다.
“설마 여기까지 올라올 거라곤 생각도 못 해서 좀 무섭네……. 하여간 잘 부탁해.”
“응, 나도.”
인하는 상대가 유미여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유미를 향해 곧바로 빛이 내리꽂힌다. 그러나 빛이 유미의 몸에 닿은 순간, 정확히는 유미의 마법 위로 닿은 순간, 스파크가 튀며 별꽃이 생겼다. 유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빛에 손을 가져가더니 그것을 결정으로 만들었다. 빛이 별꽃이 된 것이다.
유미가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별꽃이 바람을 타고 주위에 흩뿌려졌다. 숫자만 수십 개다.
“터져라!”
팡! 팡! 별꽃이 스파크가 튀며 터진다. 번개가, 빛이, 열기가 폭발한다. 보기에는 예쁘지만 직접 당하면 무시무시한 마법이다.
“윽…….”
잠시 당황하던 인하의 몸 주위로 번개가 번쩍였다. 파지직, 파지직, 전류가 흐르며 별꽃들을 한곳에 끌어모았다. 유미가 당황했다.
“헉……!”
“빛속성에, 번개속성…….”
“으…….”
유미가 쓰는 마법은 기본적으로 빛속성, 번개속성이다. 그것을 눈치채고 번개로 연결함으로써 자석처럼 끌어모았다. 인하가 하늘로 번개를 쏘아 보냈다.
“꺅!!”
쿵! 하늘에서 모아진 번개가 엄청난 압력으로 떨어져 내린다. 유미의 몸을 완전히 가리고, 시합장을 완전히 박살 낼 기세였다.
잠시 후 번개가 사라졌다. 별꽃이 주위에 몇 개 흐트러지더니 사라졌다. 유미가 비틀비틀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아……항복…….”
형일 아저씨가 마이크를 켰다.
“강인하 학생의 승리입니다.”
어쩌면 오후가 되기 전에 결승전까지 끝나는 게 아닐까? 이틀을 기다린 것치고는 싱겁게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음 경기는 소영이랑 아르델이네. 소영이가 과연 아르델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을까?’
그것도 신경 쓰였다. 눈치챌 수도 있고,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소영이와 아르델은 비록 그리 친하지 않지만 수준별 수업에서 몇 번이나 실력을 겨뤘던 사이다. 하지만 이미 그때로부터 2년 이상 지났다. 아르델의 마법도 소영이의 마법도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근원은 같다.
[역시 B랭크와 C랭크의 차이는 쉽게 메울 수 없겠죠. 비슷한 나이니 경험으로도 메우기 힘들 테고요.] [다음 시합도 기대되는데요? 곧 준결승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됩니다! 이번 시합도 C랭크 대 B랭크네요!]곧 소영이의 이름과 아르델의 가명이 호명되었다. 이소영 대 메로나! 진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지는 이름이다.
왼쪽에서 뻗친 단발을 핀으로 고정시킨 소영이가 굳은 얼굴로 걸어왔고, 오른쪽에서는 평소와 달리 검은색으로 물들인 긴 머리카락을 반만 묶은 아르델이 걸어왔다.
“C랭크랑 B랭크의 차이는 엄청나지만……저 아이의 랭크는 B랭크 진입 직전이었죠? 그럼 아까보단 좀 더 확률이 있겠네요.”
“보기엔 둘 다 전투 마법사 같습니다.”
“은하 아가씨는 역시 친구를 응원하려나?”
“음……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메로나…가 더 유리하겠죠?”
메로나. 풉, 나는 웃음을 참았다. 진짜 왜 저런 가명 같은 가명을 쓴 거야. 일부러일까? 완벽하게 숨길 생각은 없어 보였으니까.
“안개마법과 바람마법, 이 두 개면 바람마법이 유리하려나요?”
“아냐. 저 안개, 안개의 특성을 거의 따르지 않던데?”
맞다. 실제로 아르델의 안개는 바람에도 쉽사리 날려 가지 않는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가연물로 변화한다. 아르델의 마법은 정말로 무섭다. 연계는 인하보다 더 대단하다.
‘결승전은 아무래도 인하와 아르델이려나? 두 사람의 승률은 5:5니까……볼만하겠는걸?’
반면 아르델과 인성이의 승률은 4:6이다. 인하와 아르델은 상성도 스타일도 정면으로 딱 부딪친다. 하지만 아르델과 인성이의 대결은 조금 다르다. 인성이가 겉에서부터 잡아먹어 간다는 느낌이다.
아르델은 전투에 능숙하다. 하지만 랭크는 B+, 인하보다는 한 단계 떨어진다.
‘보니까 아르델네 오빠도 이번에 B랭크에 진입했던 것 같던데.’
내가 이것저것 가늠하는 동안 시합이 시작되었다.
소영이의 마법은 아직 바람뿐이다. 서브마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소영이의 기술은 무궁무진하다.
날카로운 바람이 아르델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아르델은 공격을 대부분 피하고 막아 냈다.
아르델이 소영이를 향해 달려갔다. 안개를 휘두르며 주먹을 내질렀지만, 소영이는 당연히 그 공격을 피했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이 아르델을 향해 날아갔다. 바람은 눈으로 인지하기 힘들다. 회오리바람이 보이는 건 바람에 먼지나 구름 안개 등이 휘말리기 때문이다.
맘만 먹으면 소영이는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아르델은 공기의 흐름이나 마력의 낌새로 공격을 눈치채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용돌이가 하늘로 따라 올라갔다.
아르델은 소리 없이 안개를 내뿜었다. 새하얀 안개가 경기장 전체를 덮었다. 소영이의 손에서 시작된 바람이 경기장 전체를 잠식했지만, 안개는 간단히 사라지지 않았다. 안개가 바람에 빨려 들어가며 회오리가 있는 장소를 알려 줬다.
“윽!”
소영이는 바람에 빨려 든 안개를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안개에서 불이 붙으며 폭발이 일었다. 소영이가 바람 옷을 벗으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불꽃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번졌다. 소영이의 손에서 아까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바람이 일어났다. 그것이 불꽃과 안개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윽, 무거워……!”
뒤에서 발차기가 날아왔다. 소영이는 바람을 하늘로 날려 보내며 한 손으로 발차기를 막았다. 아르델은 바로 반대 발로 머리를 올려 찼다. 소영이는 바람을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콰앙!
시합장에 금이 갔다.
“이야, 무시무시한걸?”
“이번 세대는 진짜 미쳤네.”
“다만 이상합니다. 메로나에 대한 정보가 없어요. 저 나이에 B랭크라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알려졌을 텐데.”
“가명 아냐?”
장유하의 물음에 신한아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공선영도 동의했다.
“저 여자 외국인이죠? 외국인 중엔 가끔 가명을 써서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습니까?”
그때 이소영이 아르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안개……불꽃……너 설마……!”
아르델이 씨익 웃었다.
“눈치챘어?”
목소리가 익숙했다. 아무래도 아르델이 시합 내내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건, 목소리에 마법을 걸지 않았기 때문인가 보다.
아르델이 손가락을 검지부터 한 개씩 펼쳤다.
“「바람은 흩어지고, 안개가 강을 이루며, 사람은 그에 휩쓸린다.」”
아르델의 말이 끝나자 상황이 일변했다. 소영이의 몸을 보호하던 바람이 사라지고, 안개가 폭포처럼 밀려들었다. 끝없이 끝없이 밀려들어 소영이의 몸을 덮었다. 아르델은 손가락을 마찰시켜 불꽃을 일으켰다.
“「안개의 강은 불꽃의 강으로 변하고, 불꽃은 화신이 되어 사람을 짓누른다.」”
주황빛이었던 불꽃이 어느새 금색으로 변했다. 아르델의 머리 색과 꼭 닮은 색이었다.
“「태워라.」”
불꽃의 강이 몸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크기를 더했다. 그 순간, 주위의 흐름이 한순간 멈췄다.
‘바람이…….’
바람이 주위에서 물러간다. 산소가 사라진다. 공기의 밀도가 옅어지고, 바닥이 부스러지며, 몸이…….
아르델의 눈동자가 차가워졌다.
“「바람이 아니라 공간을 태워라.」”
한순간 사그라드는가 싶던 불꽃이 이내 더 거세게 타올랐다. 화르륵! 금빛이 주위로 뜨겁게 퍼졌다.
강렬한 빛을 내뿜던 불꽃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는 헉헉 숨을 고르는 소영이가 남았다. 소영이가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팔로 지탱하며 천천히 일으켰다.
“아……정말, 반칙 같잖아…….”
“너도. 공기를 없애다니.”
“안 보는 사이에 엄청 강해졌네.”
아르델은 생긋 웃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바람이 다시 한번 날아갔다. 아르델이 읊조렸다.
“「내 이 몸은 모든 것을 통과한다.」”
이어서 바람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갔다. 바람이 아르델의 몸을 통과했다.
“헉……!”
소영이가 당황하는 순간, 아르델은 불꽃을 두른 발로 소영이를 걷어찼다. 바람의 힘으로 버텼지만, 남은 안개가 바람을 갉아먹었다. 소영이는 결국 지면에 떨어졌다.
“졌다…….”
소영이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승패는 명백했다. 더군다나 장외 패다.
“이번 시합의 승자는 메로나 학생입니다.”
말을 하고 나서 형일 아저씨가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실수로 학생이라고 해 버렸는데 괜찮겠지? 괜찮을걸요.
와아아아아! 함성을 들으며 나는 한숨을 삼켰다. 드디어 결승전이다.
“결승전도 은하 아가씨가 결계를 따로 칠 거지?”
“네.”
“저 두 사람이 대결하면 엄청날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시합 전에 잠깐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사이 나는 팀장님과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고 결계를 설치했다. 인하와 아르델의 대결이니만큼 좀 더 신경 썼다. 두꺼운 결계를 치고 그 위에 얇은 결계를 하나 더 덮어 코팅했다.
“결계 쳤어?”
“치고 있어요.”
“어째 안 보인다.”
“보이면 신경 쓰이잖아요.”
시합장은 링과 장외 구역을 포함한다. 선수는 하늘로도 그 장소를 벗어나면 안 된다.
“좋아, 완료.”
공선영이 시합장을 의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이네. 잠깐 시험해 봐도 돼?”
“상관없지만……밖에서 시험해도 소용없어요. 이 결계는 안에서 일어나는 마법만 차단하니까요.”
“흐음.”
나는 결계 상태를 확인하고 팀장님께 연락을 했다. 곧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결승전에 앞서 결계를 다시 설치했습니다. 이번에도 심사 위원이신 유은하 님께서 협조해 주셨습니다.]나는 나른한 눈으로 앞을 봤다. 아……배고프다. 결승전 전에 잠깐 쉬는 시간이 있다. 힐링 타임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냈다.
“그거 무슨 맛?”
신한아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어 깜짝 놀랐다.
“레몬 맛이에요…….”
“포도 맛은 없어?”
“있어요. 드릴까요?”
“응.”
나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신한아에게 주었다.
“고마워.”
신한아가 밝게 웃었다. 참, 인상과는 다르게 거리낌 없는 사람이다. 내친김에 다른 모두에게도 사탕을 하나씩 돌렸다.
그때 타이밍 좋게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자! 이제 결승전을 시작해야죠!] [결승전은 B랭크 두 사람이 싸우게 되었네요.] [이런 일은 대회가 시작되고 처음 아닌가요?] [그렇죠. 고등학생 때 B랭크로 진입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건 7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니까요.]그건 그렇고, 방금 시합에서 아르델은 불꽃마법을 드러냈다. 인하는 과연 아르델의 정체를 눈치챘을까? 적어도 친구들 중 몇 명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싶은데.
[자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이번 대회의 상품!]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아마 모두가 가장 원하는 상품은 이거겠죠? 화제의 신인이자 최연소 A랭크 마법사, 이성진 씨와의 대결 찬스!] [고등학교 대회에 A랭크 마법사가 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한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다행히 두 분 다 관계자로 참가했습니다.]사설이 지나가고, 드디어 참가자를 소개할 차례가 되었다.
[그럼 대망의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양 선수 입장해 주세요.]관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크게 울렸다. 박수를 치지 못하는 손이 근질거렸다.
[대현 고등학교 재학생인 강인하 선수! 솔직히 저는 이 선수를 보고 처음엔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너무…….] [맞습니다. 미인입니다.] [외국에서 참가하신 메로나 씨도 뒤지지 않죠. 외국 참가자가 여기까지 올라온 건 오랜만이네요. 외국인 참가 가능이라 해도 보통은 참가를 잘 안 하니까요.] [참가한 사람도 대부분 예선전에서 걸러지니까요.]그럼그럼, 우리 인하가 얼마나 예쁜데. 아르델은 변장을 했지만 얼굴을 많이 바꾼 게 아니라서 미인인 건 그대로다.
사회자들이 해설을 하는 사이 형일 아저씨는 팀장님께 전해 받은 종이를 넘겼다. 결승전이니만큼 인사치레가 조금 있다. 시합 시작 전에 심사 위원 대표가 결승전 시합 규칙을 말하고, 승패 조건을 다시 확실하게 말하고, 상품에 대해서 설명한다. 시합 시작을 외치는 것도 형일 아저씨의 역할이다. 그래, 우리 대표인 형일 아저씨의 역할. 덕분에 우린 편하지 뭐야. 나는 이번엔 초코칩쿠키를 꺼내 바삭바삭 씹었다. 이젠 거의 무의식이다.
신한아가 호소하는 눈으로 나를 보기 전에 형일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나도 주라.”
“으음, 과자는 말할 때 목 막히지 않을까요? 차라리 이걸 드세요. 커피예요.”
“입 대도 되나?”
“상관없어요.”
“은하 아가씨는 진짜 연애 방면에는 둔하구나.”
“……? 눈치는 빠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니, 그 눈치가 그 눈치가 아냐.”
“……?”
형일 아저씨는 이상한 말을 하더니 텀블러 뚜껑을 열고 입을 안 대고 마셨다. 설마 입 대면 간접 키스……라는 건가. 이 아저씨가 40도 넘게 먹어선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나는, 줘.”
“아, 네. ……어라? 죄송해요. 이거 하나밖에 없었나 봐요. 대신 사탕 하나 더 드릴게요.”
“응.”
초코칩쿠키 대신 사탕을 꺼내자 신한아가 실망한 얼굴로 사탕을 받았다. 괜히 죄책감이 드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앞을 보았다. 인하와 아르델이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왔다. 서로를 마주 보고 선 인하와 아르델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랜만이야, 인하야.”
이제 아르델은 숨길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아르델이 생글 웃으며 인사하자 인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랜만?”
“헐, 설마 아직 눈치 못 챘어? 준결승 봤으면 눈치채야지.”
“무슨 소리?”
“우씨. 좋아, 좋다고. 싸우면 너도 알겠지.”
어라라, 조금 예상외네. 설마 인하가 눈치채지 못했을 줄이야. 저건 진짜 모를 때 보이는 반응이다. 시합을 앞에 두고 인사를 나누는 두 선수를 바라보며 형일 아저씨가 마이크를 켰다.
“결승전까지 올라오신 두 선수께 우선 축하 말씀 드립니다.”
형일 아저씨가 말을 시작하자 두 사람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인하와 아르델이 예쁘게 웃었다. 긴 머리카락을 넘기는 아르델의 손목에서 낯설지 않은 물건이 짤랑거렸다.
‘앗, 저건 내가 이별 선물로 줬던 팔찌잖아.’
“결승전을 시작하기 전에 규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결승전 시합 시간은 총 2시간입니다. 한 사람이 장외로 떨어지거나, 항복을 하거나, 우리가 시합 불가라고 판단할 경우에 승패가 정해집니다. 살상용 기술은 불가하며, 살기가 느껴지면 저희 심사 위원의 판단으로 시합을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살기를 낸 사람이 패배하게 됩니다.”
주위가 잠시 조용해졌다.
“2시간이 지나도 승패가 확정되지 않을 경우엔 저희 판단으로 승패가 정해집니다. 보다 많이 공격을 받은 사람이 패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