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23
이거야 원 심사 위원의 역할이 크다. 나는 결승전 규칙을 새삼스럽게 되새겼다.
“시합 규칙은 이상입니다. 질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저도 없어요!”
형일 아저씨가 페이지를 넘겼다.
“결승전에서 승리하신 분은 3개의 우승 상품 중 2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상금 200만 원, B랭크 마법 전도 증폭기, 최연소 A랭크 마법사인 이성진과의 전투 권리.”
마법 전도 증폭기, 마법 무구의 일종으로 마법을 증폭해 주는 물건이다. 심플한 무기지만 B랭크가 사용할 만한 위력이면 값도 상당하겠지. 어째서인지 아르델이 잠시 표정을 찌푸렸다.
“혹시 이해가 안 가는 점이나 질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어요.”
“그럼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결승전 시합 시작 신호는 제가 올리기로 했습니다.”
나란히 서 있던 두 사람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장난스럽게 웃는 아르델을 인하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두 사람 다 준비가 된 것 같군요. 그럼, 시작합니다.”
형일 아저씨의 손에 석궁이 생겨났다. 퓻, 활시위가 당겨진다. 인하와 아르델은 긴장한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하늘로 쏘아 올라간 화살이 어느 순간 녹색 불꽃을 피우며 터졌다.
펑! 퍼펑!
“……!”
“시작됐다!”
두 사람의 성향은 비슷하다. 두 사람은 곧바로 손에 마법을 피워 서로를 향해 날렸다. 탐색전, 빛과 불꽃이 부딪치며 터진다. 주황빛이 섞인 금색 불꽃을 보며 인하가 잠시 눈을 크게 떴다.
“이 느낌…….”
“인하 너도 참 이상하다니까. 구경할 때는 몰랐으면서 부딪치니까 바로 알아채?”
아르델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인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언령마법, 새로 만든 거야?”
“언령마법이 아냐. 그게 우리 혈족마법이야. 가족들 말론 ‘소망’이라고 하더라고. 마음을 덮어씌워서 ‘절대적’인 상황을 만드는 거래. 언령마법과 비슷하긴 하지? 마음의 무게만큼 힘이 커지는 거야.”
“마법 원리랑 비슷하네?”
“그렇지? 그래서 가족들은 근원적인 마법이라 표현하더라고.”
인하의 몸이 서서히 빛에 둘러싸였다. 아르델이 양손에 불꽃을 모았다. 금색에 가까운 주황색 불꽃이 그녀의 손 주위에서 너울거렸다.
“이렇게 싸우는 건 참 오랜만이네.”
“그래. 그러니까 우리 진짜로 해 보자! 그리고 이긴 사람이 이성진한테 철퇴를 내리는 거야!”
인하가 드물게도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러자.”
인하가 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에겐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길게 이어지는 빛줄기가 그녀의 진로를 어렴풋이 표시했다.
“흥! 「보이거든!」”
아르델이 양손을 펼치며 불꽃 회오리를 만들었다. 불꽃이 공기를 태우고, 연기가 안개를 만들어 낸다. 인하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었다.
“라이트닝.”
인하가 하늘로 번개와 빛을 응축한 공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번개 공에서 엄청난 압력을 지닌 번개가 수십 갈래나 쏟아져 내렸다. 그것이 안개와 불꽃의 폭발을 삼켰다.
“여전히 무시무시하다니까!”
“너도.”
아르델이 불꽃을 허공에 펼쳤다. 아르델의 의지에 따라 불꽃이 꼬리를 남기며 하늘을 쏘다닌다. 불꽃은 어느새 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언령, 소망을 새기고 있어. 말로 하지 않아도 가능한 건가?’
분명 피했음에도 불꽃은 어째서인지 인하에게 적중했다. 잠시 고통스러워하던 인하가 눈을 부릅떴다. 인하를 둘러싼 불꽃의 색이 곧 연한 레몬색으로 변했다. 헉, 아르델이 숨을 삼키며 자리를 피한 순간 금색 불꽃이 레몬색 폭염이 되어 아르델의 주위에서 폭발했다.
인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연달아 공격했다. 에너지 공이 아르델의 주위를 둘러싸고, 빛이 기둥이 되어 그녀를 삼켰다. 에너지 공 주위로 번개가 파직 파지직 요동친다. 그때 빛 사이에서 흘러나온 안개가 빛과 번개를 둘러싸며 녹였다. 빛 가운데에 구멍이 뚫렸다. 그 사이로 아르델이 달려 나왔다.
“으악, 뜨거워, 뜨거워! 화상 입겠네!”
아르델이 손으로 빛을 털어 내며 인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인하는 팔로 주먹을 막으며 미간을 좁혔다. 주먹에도 ‘소망’이 들어가 있다.
빛마법의 열기 때문에 아르델에게 걸렸던 마법이 녹고 있었다. 검은색이었던 머리카락이 금색으로 돌아가고, 옅은 갈색 눈동자가 선명한 녹색이 되어 간다.
인하가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야, 아르델.”
“이제 와서?!”
아르델은 뒤로 물러나다가 변장마법이 풀린 것을 깨닫고 투덜댔다.
“헉, 마법 풀렸잖아? 으악, 난 돌아가면 죽었다. 오빠한테 친구 집에 놀러 가겠다고 하고 왔는데!”
“미안. 하지만 대충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
“끄응…….”
아르델은 자신의 금색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곤란해했다. 결승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자, 잠깐……저 얼굴은……?!]심사 위원 동료들도 깜짝 놀랐다.
“저건…….”
“아르델 공주 아냐? 유펠르시아의 천재 공주!”
“왕녀 아르델이 B랭크라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당황하는 동안 아르델은 반으로 묶었던 머리카락을 휙 풀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다시 묶었다.
“좋아. 이제 정말 진짜로 한다.”
금색 마력이 번쩍 빛났다. 두 사람의 마력이 너울지며 경기장 안에 휘몰아쳤다. 모습을 쫓기 힘든 싸움이었다. 안개와 불꽃, 강렬한 빛, 웬만한 마법사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스피드. 불꽃과 빛의 잔흔이 부딪치며 더 강렬한 빛이 터졌다. 화려한 싸움이다.
“무시무시한데? 하긴, S랭크의 피가 어딜 가겠어.”
“유서 깊은 가문의 싸움이군요. 강인하 양은 고대얼음마법의 계승자 가문의 돌연변이, 메로나 양……아니, 아르델 양은 유펠르시아 왕가의 여식. 어느 쪽이든 피가 낳은 천재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두 사람은 입장이 비슷하다. 아르델은 공주고, 인하는 유서 깊은 마법사 가문의 자식이다. 어느 쪽이든 부모가 A랭크 이상 마법사다. 하지만 피로 따지면 아르델이 좀 더 진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공주님은 대현에 다녔던가? 어쩐지, 저 두 사람 친해 보이더니.”
“아가씨도 아는 사이야?”
“네.”
형일 아저씨가 궁금한 듯 물었다. 나는 수긍했다. 친했어? 조금요. 우리는 다시 두 사람의 시합에 시선을 고정했다.
두 사람의 힘은 대등했다. 마법 레벨은 혈족마법을 계승한 아르델이 좀 더 우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속성은 빛속성의 하위 속성이다. 마법은 대등, 마력은 인하가 더 많다. 하지만 전투에는 아르델이 더 능숙하다. 심지어 두 사람은 전투 타입도 비슷하다.
너무 대등하다 보니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정말 특이하네. 어둠속성 얼음마법의 계승자 밑에 빛마법을 사용하는 돌연변이가 나오다니. 저 일족은 주로 여자가 힘을 계승하잖아. 혈족마법을 이기는 상성이라…….”
“하지만 재능은 전혀 뒤지지 않죠.”
“뭐 어때. 강하면 장땡이지. 가끔 있는 일이고.”
“그 말이 맞습니다.”
동료들의 말이 귓가에 녹아들었다.
[보이지 않는 속도로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은 자리에는 불꽃과 빛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부딪치고 있군요.] [이런 상황인데 결계는 미동도 하지 않는군요. 같은 나이라도 A랭크 마법사는 과연 다른 것 같습니다. 아, 시합에 관계없는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진짜 관계없는 이야기잖아. 그런 건 좀 하지 말라고!
“블라스트!”
“라이트닝 월.”
번개와 불꽃이 폭발하며 부딪친다. 그 광경을 보고 있다 보니 갑자기 나도 상황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건 바로 저 두 사람이 정말 여주인공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한 명은 유서 깊은 마법사 일족의 외동딸이며, 한 명은 실종되었던 유펠르시아의 공주님이다.
인하는 눈을 의심할 정도의 미소녀다. 발군의 재능을 지니고 있고, 현재 어릴 적부터 자주 싸우던 친구와 사귀고 있다.
아르델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현에 구출되어 겨우 친구를 사귀고 평범한 생활을 하던 도중 공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친구들과 헤어져 가족의 곁으로 돌아간다. 처음엔 가족과 마찰을 빚었지만 천천히 가족과 화해하며 공주로 자리 잡았다. 그녀를 정말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인 소녀와, 불운을 겪었지만 실은 공주였던 소녀. 정말이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타입 아닌가?
거기에 미인이고, 당당하고, 정말 빠지는 게 하나도 없다.
“쉽게 끝나지 않겠는걸.”
“네, 길어지겠군요.”
근접전으로 가는가 싶으면 조금 떨어져 공격을 감행한다. 빛의 창과 불새가 부딪치며 또다시 폭발을 일으켰다.
“강인하! 힘내라!”
“공주님, 힘내세요!”
“오오오오!”
“꺄아악!!”
수십 번의 함성이 지나가고, 아르델과 인하가 다시 링에 내려섰다. 두 사람은 만신창이였다. 필살기를 아끼며 상대의 빈틈을 만들기 위해 계속 공격을 감행한 결과였다.
“멋지군요. 어쩌면 제 힘으론 막아 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응. 나도 중간중간 안 보여.”
장유하와 신한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들도 B랭크다. 인하의 속도는 그 안에서도 특별하다. 같은 B랭크라도 안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걸 위해 우리 A랭크 마법사가 여기 있는 거다.
“시간이 이제 얼마 안 남았어. 20분 남았군.”
두 사람의 체력과 마력은 아직 비등하다. 서로 빈틈을 보여 주지 않으려 한다. 빈틈이 생겨 공격하더라도 결정타를 맞기 전에 피하거나 막는다. 나와 형일 아저씨는 슬슬 두 사람의 공격이 먹힌 횟수를 계산했다. 동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큰 기술이 나와야 확실하게 승패를 가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둘 다 급소는 공격하지 않고 있고.”
“마력도 비등해요.”
“결과에 따라서 시합을 연장해야 할 수도 있겠는걸?”
“연장 규칙 같은 게 있었어요?”
“하라면 하겠지, 뭐.”
나는 인하에게 들어간 공격을, 형일 아저씨는 아르델에게 들어간 공격을 집계했다. 서로 비슷하게 맞고 비슷하게 공격했다. 조금 초조해졌다.
“시간, 얼마 안 남았네.”
“이렇게 길어진 건 처음 아냐?”
“길어지면 꼭 내가 지던데.”
아르델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승률은 넓게 보면 5:5지만, 사실 인하의 승률이 조금 더 높았다. 그게 이렇게 대등해진 건……아르델이 진정한 혈족마법을 되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그냥 이대로 필살기 쓸래? 이제 마력도 별로 안 남았고.”
“좋아. 그럼 피하지 말고 공격하기야.”
“오케이!”
두 사람도 초조했는지 합의를 했다. 두 사람은 링 끝에서 끝으로 떨어져 각자 힘을 모았다.
“「불꽃의 열기여 모든 것을 태워라. 일어나라, 불의 거신이여.」”
“에너지 라이트…….”
아르델의 앞에 펼쳐진 불꽃이 금색으로 변하며 거대한 형체가 만들어졌다. 인하의 앞에 7개의 에너지 공이 만들어졌다. 빛과 열기로 이루어진 에너지 공에 힘이 압축되며 크기를 더해 간다. 파직, 공끼리 번개로 길이 연결되었다. 힘이 연동하며 증폭된다.
“마지막…….”
승패를 확신할 수 없는 대결에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나는 두근거림보다 두 사람의 승패에 조금 더 신경을 집중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기술이 완성됐다. 공격이 시합장 한가운데에서 부딪쳤다. 불꽃 거신이 인하를 덮치려 들고, 에너지 공이 서로와 부딪쳐 마찰하며 점점 커다란 열기를 뿜어냈다.
크기는 불꽃 거신이 훨씬 컸다. 과연 거신이라 할 만한 크기의 불꽃이 인하의 에너지 공을 누르려 했다. 그 순간──.
빛의 공이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불꽃과 빛이 무시무시하게 빛을 발했다.
쿠아아아아아!!!
두 사람의 힘이 이윽고 폭발했다. 결계 안은 물론 바깥의 관객석까지 전부 눈부신 빛으로 물든다. 나와 형일 아저씨는 그 빛 속에서 마법의 양상을 확실하게 관찰했다. 커다란 충격에 의해 마력이 거의 남지 않은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결계 너머로 밀려나 털썩 쓰러졌다. 마법은 아직도 커져 간다.
미동도 하지 않는 결계 속에서 빛과 불꽃은 한계까지 커졌다가 더 강한 빛을 내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빛이 가라앉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
나와 형일 아저씨는 동시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시선이 마주친 순간 서로 같은 생각을 했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완전히 사그라진 뒤, 장외 구역에 쓰러져 있던 인하와 아르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누가 이겼는지 몰라 당황하는 관객에게 형일 아저씨가 판결을 내렸다.
“승자는 강인하 선수입니다.”
승자를 발표했음에도 한동안 어수선했다. 뭐? 누가 이겼다고? 강인하라고? 강인하래!
와아아아아─!!!!
뒤이어 우레와 같은 함성이 경기장 전체를 뒤덮었다. 그러나 의아해하는 사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같은 심사 위원인 공선영과 장유하, 신한아도 의아한 눈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함성이 조금 잦아진 후, 서로를 보며 얼떨떨해하고 있는 강인하와 아르델을 향해 형일 아저씨가 왜 강인하가 승자인지를 설명했다.
“판결을 이해하지 못한 분들께 승패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두 분이 받은 공격은 거의 동일합니다. 서로 급소를 노리지 않았고, 급소에 맞지도 않았습니다.”
형일 아저씨가 한순간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장외로 떨어진 건 동시였습니다. 장외도 판결 이유가 아닙니다. 승패를 가른 것은 두 사람이 마지막에 사용한 기술입니다.”
보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결과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은 거다.
“아마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B랭크 상위 실력자라면 보았을 겁니다. 강인하 선수의 기술은 메로나 선수의 불꽃을 밀어냈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불꽃을 집어삼켰습니다. 대등한 싸움이었음은 변함없지만, 마지막 싸움에서 미세한 차이로 강인하 선수의 기술이 메로나 선수의 기술을 이겼습니다.”
형일 아저씨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잠깐 잦아들었던 웅성거림이 다시 커졌다.
“그러므로 이 대회의 승자는 강인하 선수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커다란 함성이 대회장을 강타했다. 아르델이 엉망이 된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틀거리면서도 똑바로 인하를 향해 나아간다. 인하가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겼다.”
“또 못 이겼어.”
아르델은 웃으며 인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축하해.”
“그래.”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았다. 함성이 조금 더 커졌다.
때마침 우리의 정면에 있는 출입구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이 대회의 책임자인 이승한 팀장님과 시합 상품인 이성진이었다.
“강인하 선수,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대회에서 우승하신 강인하 선수는 3개의 상품 중 2개를 고를 수 있습니다. 상품 3개는 각기 상금 200만 원, B랭크 마법 전도 증폭 아이템, 최연소 A랭크 마법사인 이성진과의 대결 기회입니다.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인하가 다시금 시합장 위로 올라서며 팀장님과 이성진에게 다가갔다. 팀장님 앞에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상금, 아이템, 그리고 그의 옆에는 이성진이 있다.
인하는 망설이지 않고 가운데에 있는 아이템에 손을 뻗었다.
“장갑이네요? 이걸로 할래요.”
인하가 입체 영상에 손을 가져가자 물건이 실체화됐다. 인하의 손에 검은 장갑이 잡혔다. 인하는 끼고 있던 장갑을 빼고 새 장갑을 꼈다. 저번에 선생님이 선물해 준 기성품도 나쁘지 않지만 전투 마법사에게 전도 증폭기는 무척 도움이 되는 물건이다.
인하는 장갑을 끼고 똑바로 성진을 노려보았다.
“두 번째 상품으론 대결 권리를 고를게요.”
의외라면 의외였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성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필요하냐? 나랑 대결할 기회.”
“필요해. 공식 대회잖아. 난 언제나 널 꺾고 싶거든.”
자칫 잘못하면 고백이라 오해받을 정도로 정열적이었다. 인하야, 너 그러다가 한수가 질투한다.
“상품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럼 대결은 언제 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막 시합이 끝난 참이니 마력을 회복한 후에…….”
“지금.”
인하는 단호하게 말하며 이성진을 노려보았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성진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당장 하지 않으면 재미없잖아요? 그러니까, 올라와.”
헐, 언니 멋있어. 나는 비명을 삼키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커다란 함성이 주위를 다시 한번 강타했다.
“꺄아아악!!”
“누님 최곱니다!”
“멋있어요!”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재미있지!”
공선영과 형일 아저씨도 흥분하며 주먹을 쥐었다. 관객석도 난리였다. 멋있다느니, 최고라느니. 아르델도 시합장 아래에서 주먹을 들며 소리를 질렀다.
“강인하, 파이팅! 그 콧대 높은 놈을 눌러 버려! 거기 아저씨!”
“네? 아저씨……?”
팀장님이 당황하며 자신을 가리켰다.
“저는 구경할 자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보게 해 줘요! 네?”
“아, 네……. 상관없습니다만, 장외 구역은 벗어나 주십시오.”
“딴 애들도 불러도 되죠? 본선에 나온 친구들요.”
“시합만 방해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그렇게 되자 시합에 참가했던 친구들이 속속히 앞으로 모였다. 민희가 아르델의 멱살을 잡았다.
“아르델 너!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이런 대회에 나오고!”
“그래서 내가 특등석 잡아 줬잖아.”
“잘했어.”
민희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인하는 그사이 마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마력석을 몇 개 깨물었다. 민희가 소리쳤다.
“인하야! 내가 회복마법 써 줘?”
“괜찮아. 마력석 몇 개면 충분히 싸울 수 있어.”
“좋아. 그럼 이번 신호도 내가 하지.”
형일 아저씨가 마이크를 켜며 끼어들었다. 나는 결계를 흘끔 보며 불안함을 삼켰다. 저 녀석, 생각이 있으면 적당히 하겠지?
“그럼 준비!”
형일 아저씨가 소환한 석궁을 하늘을 향해 쏘았다. 화살이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시작.”
인하가 곧바로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빛의 기둥이 동시에 몇 개나 솟아오른다. 아래, 위, 옆에서 솟아오른 빛의 기둥을 성진은 간단히 피하거나, 혹은 손을 휘둘러 뿌리쳤다.
“윽……라이트 체인!”
인하의 손에서 날아간 빛 사슬이 성진의 근처에 다가간 순간 폭발한다. 인하는 기술을 시험한다는 느낌으로 하나씩 마법을 피로했다. 인하 주위로 금색 공이 커지며 또 한 번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성진은 특수능력으로 그것을 간단히 녹여 버렸다.
‘인하도 질 걸 알고 있으니까 지금 하겠다고 한 거겠지. 어차피 만전 상태에서도 질 거라면, 흥분이 남았을 때 몰아붙이려고.’
빛의 공이, 폭발하는 번개 창이, 모든 것이 이성진에게는 소용없다. 저 녀석을 상대하다 보면 내가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A랭크라는 사실에 실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 나도…….”
시작됐다! 이성진의 목소리에 나는 바짝 긴장했다. 그래도 생각은 있는지 작은 기술부터 사용한다. 압축된 물기둥이 인하의 빛을 전부 쏘아 없앴다.
기술이 통하지 않자 인하는 속도전으로 전술을 바꿨다. 몸에 빛을 두르더니 빠르게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소용없다. ‘시간’을 보는 저 녀석에게는…….
성진은 인하의 공격을 가볍게 막았다. 오히려 인하를 웃도는 속도로 ‘빛’이란 속도에 이상을 주었다. 빛에서 삐걱삐걱 일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윽…!”
기이한 소리와 함께 빛이 균열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다. 인하는 제 빛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쳇!”
인하가 혀를 차며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성진의 공격이 좀 더 강해졌다. 날카로운 빛이 물에 닿으니 굴절되며 힘을 잃었다. 번개를 사용했지만 번개는 물을 타고 흐르며 성진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폭발을 사용해도 물이 그 폭발을 완화한다.
“난 네 마법이 진짜 싫어!”
“그러시겠지.”
인하가 성진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성진은 그것을 가볍게 막으며 물로 인하를 공격했다. 쾅! 물이 결계에 거세게 부딪쳤다.
옆에 있던 형일 아저씨가 팔을 쓸었다.
“오싹한데……. 이상하게 위압감이 느껴지는걸? 설마 살기는 아니겠지?”
“그냥 저 녀석의 마력 특성이에요, 마력 특성.”
나는 시큰둥하게 중얼거리면서도 초조해했다. 경기장 앞에서 친구들이 인하를 응원했다.
“인하야, 힘내!!”
“우씨, 나도 하고 싶어. 내가 이겼으면, 아니, 인하랑 같이 싸울 수 있었으면……. 아아악! 분해!”
아르델이 양손으로 머리를 쥐었다. 그러자 성진이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인하의 공격을 막으면서 아르델한테 손가락을 까딱였다.
“난 딱히 상관없는데.”
“야! 넌 상품이거든?! 우승자한테 주어지는 상품!”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아르델은 굉장히 고뇌하는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제 성진과 싸울 수 있는 일은 자주 없을 테니까.
그때 인하가 아르델을 돌아보며 말했다.
“같이 할래?”
고민하고 있던 아르델은 그 말에 결심을 굳혔다.
“좋─다고! 날 도발한 걸 후회하게 해 주겠어!”
“아르델, 힘내!”
“꺄악! 공주님!”
이것들이, 규칙을 다 깨부수고 있잖아. 팀장님도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흥분한 참가자들과 관객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심지어 심사 위원들마저 무시하고 있으니.
그보다 이성진, 너 작작해라. 나는 불안한 눈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 불안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