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28
인하가 당황했다.
“뭐…?”
나는 속으로 몰래 웃었다. 정말 어리기는 어렸다. 우리도 중학생 때 저랬던가? 좀 더 어른스러웠던 것 같은데…….
‘으음, 이성진이랑 싸운 기억밖에 없어서 모르겠네.’
성진이 건방진 소리 하지 말라며 김준영의 머리를 내려치고는 그를 끌고 갔다. 우리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대련을 계속했다.
막 중학교로 올라온 후배들의 실력은 제법이었다. 어설프지만 제 나름대로 공격하고 방어한다.
주위만 보고 있어서 몰랐다. 우리 아래 세대도 제대로 크고 있었구나.
대련을 마친 우리는 다음 일정을 정했다. 한순간 모레에 할 내기가 생각나 우울해졌지만, 눈을 감고 삼켰다.
멘토링 수업은 한 달간 진행된다. 일주일에 세 번, 최소 한 시간씩 훈련을 도와줘야 한다. 실습, 훈련, 공부, 일, 우리도 할 일이 많다. 중학생들 수준별 수업에 맞춰 모든 수업을 뺄 수는 없다. 아마 방과 후에 하게 되겠지.
어떻게 담당할지도 문제였다.
“전 인하 선배랑 하고 싶어요!”
“돌아가면서 할 거야.”
“어, 맡아서 하는 거 아니었어요?”
“짝이 안 맞잖아. 팀으로 돌아가면서 할 거야.”
“그렇구나…….”
김준영은 실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성진에게 장렬하게 깨졌으면서 용케 저런다 싶었다. 한수♡인하는 우리 학교에서 최고로 유명한 공식 커플인데.
그래도 무사히 첫 멘토링 수업을 마쳤다. 다행히 일찍 끝났다. 시뮬레이션 가상훈련을 세 번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집에 돌아가기 전에 친구들과 잠깐 모였다. 멘토링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친구들도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우리가 맡은 아이들보다는 실력이 낮았고, 특이한 마법을 가진 후배가 있단다.
“다행히 잘 끝났어. 너희는?”
“평범했어.”
인하만이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인하는 결국 세 번이나 실수를 했고, 네 번째 결과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원래 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바로 잘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인하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실수를 이야기했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 잘 조절했었던 모양이다. 친구들은 인하의 말에 놀라면서도, 인하의 스타일을 떠올리고는 납득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오빠도 그랬잖아.”
“제현 오빠?”
“세세한 제어를 못해서 어둠속성에 내성이 없는 아이랑은 싸울 수 없다면서, 은하랑만 싸웠거든.”
“은하의 멘토링 선배는 제현 선배였어?”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조금 뒤늦게 대답했다.
“……응.”
그러자 친구들의 표정이 걱정으로 가라앉았다.
“역시 걱정돼?”
“걱정……되지. 동등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긴 해. 그중엔 나한테 엄청 소중한 물건도 있거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래도……최악이라도 목숨은 걸지 않고 끝날 테니까…….”
그래서 혹시나 싶어 학교에 있는 컴퓨터에 내 정신을 ‘백업’해 두었다. 그것을 제의한 것은 문이다. 정말 유용한 아이다.
“힘내. 절대 지면 안 돼.”
“그야……당연하지.”
A랭크 마법사와의 첫 정면 대결. 사실을 들은 스승님이나 백한 선생님, 민 선생님, 준휘 선생님도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 …조금 뒤늦게 혹시나 싶어 부모님께도 그 사실을 알렸다. 선생님들께는 훈련을 하기 위해 알린 것이기에, 부모님한테까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 말했다. 마법사라면 한 번쯤은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에 부모님이나 인하네 부모님도 무척 걱정하며 나를 응원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그런 말을 되뇌며 친구들을 향해 웃었다.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게.”
“반드시야!”
“응.”
가슴이 꾹 죄여 왔다. 그래도 이겨 내야 한다.
어차피 이제 피할 수 없으니까.
눈앞에 있는 연두색 문 앞으로 걸어가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제멋대로인 세계가 나를 맞았다. 우주를 닮은 방은 유리 장과 선반, 책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에는 신기한 장난감이나 반짝이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은 다른 누군가의 감정이었다.
꽉
나는 주먹을 쥐고 내 정면에서 책상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갈색 코트를 입은 연두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신비롭게 웃는다.
“나의 방에 어서 와. 어딘가에 걸었던 마법이 변한 걸 눈치챈 순간부터 누나가 언젠가 나를 찾아와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너무 안 와서 결국 참지 못하고 내가 초대해 버렸네.”
“…….”
“당연히 내기를 할 거지?”
남자의 눈동자가 일순 차갑게 빛났다. 나는 앞에 여러 개의 물건을 꺼냈다.
“네.”
물건들이 빛났다. 이번에도 해답을 준 것은 성진이었다. 목숨만큼이나, 기억만큼이나 소중한 것.
‘시간. 그 녀석이 원하는 감정이 담겨 있는, 아주 뜻깊은 시간이 새겨진 물건은 어때?”
‘물건이라고?’
‘물건에는 사람의 감정이 스며들지. 네 물건도 그렇잖아.’
그것과 함께 여러 가지를 모았다. 꿈속의 힘을 결정으로 만든 꿈 결정 10개, 나나 아는 사람들의 감정을 모아 만든 희로애락 감정석,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시간석, 독특하며 뛰어난 사람들의 영혼에서 가져온 영혼석 4개, 당연히 주인에겐 영향이 없다. 마지막으로 그가 원하는 내 정신의 일부를 떼어 만든 정신석.
그러나 그가 말한 정신의 중심과 대등한,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건 그게 아니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쓴 소설. 루크알의 마법사 이전에 적었던 짧은 단편을 모아 만든 개인지 책 두 권.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전문 그림 작가에게 의뢰를 해 표지를 만들었고, 인쇄소에 부탁해 책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어릴 적의 내 시간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기억만큼이나 소중한 추억과 기억, 가장 소중한 감정의 결정체가, 바로 이 소설책이다.
누구에게도 보여 준 적 없는 나 혼자만의 책이다.
“이게 졌을 때 당신에게 낼 대가입니다.”
소중하기 그지없는 단 하나뿐인 것을 얼핏 보기엔 대단하게 반짝이는 물건 안에 숨겼다. 남자가 물건들을 보고는 뺨을 붉히며 기뻐했다.
“우와, 세상에! 다 대단한 것들뿐이잖아! 어디서 샀어? 아니다, 직접 만든 거구나? 세상에!”
남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중 원하는 것을 하나 고르세요. 그게 이번 내기의 대가입니다.”
“고작 하나? 으음, 하긴, 다 대단하니까 어쩔 수 없네. 으으, 이 감정석 너무 예쁘잖아! 힘도 강해 보이고. 이건 누나의 정신을 떼어 낸 거지? 역시 누나의 정신은 너무너무 예쁘네. 이거랑 이건 별개야?”
“네. 그쪽은 사람의 특정한 감정을 보석으로 만든 거고, 이건 제 정신의 일부예요.”
“헤에~. 이거랑 이건 감정의 결정체는 아니네? 무슨 물건이야?”
나는 별 조각처럼 빛나는 결정, 다이아 모양의 시간석, 검은색, 노란색, 노을색, 별하늘색의 영혼석을 차례로 가리켰다.
“이건 정신세계의 결정입니다.”
“정신세계의 결정?”
“한 사람의 정신을 조각으로 만든 게 아니라……정신세계만의 순수한 기운을 모아 온 거예요. ‘꿈 결정’이라고 불러요.”
“응응, 그리고?”
“이건 소중한 추억을 담은 시간석입니다. 누군가의 추억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호오….”
“이건 영혼석이에요. 영혼을 결정으로 만든 거죠.”
“영혼? 대단한걸?”
남자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다들 누나를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무시하는데, 이걸 보면 전혀 아니란 걸 알겠어. 누나는 정말 뛰어난 마법사야.”
“…….”
“이건?”
반짝이는 물건 속에 섞어 있었기 때문에 그도 제법 뒤늦게 알아챘다.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두 권의 책을 매만지며 앞, 뒤로 훑어보더니 활짝 웃었다.
“이걸로 할래!”
“…….”
“이거 누나의 아주 소중한 물건이지? 소중한 기억을 거는 내기니 이렇게 나와야지. 그게 아니면 수지가 안 맞잖아?”
나는 괴로운 눈으로 두 권의 책을 바라보았다. ……역시 이렇게 됐구나.
“그리고 여기 있는 건 내기 끝나고 죄다 내가 살래! 괜찮지?”
“제가 이긴다면요.”
“와, 치사하게 나오네.”
“지면 당신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들 것 같거든요.”
사실 지금도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들다. 기억을 걸게 한 시점에서 최악이다. 들고 있는 책도 당장 뺏어 오고 싶다. 남의 기억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산산조각 내고. 기억을 빼앗긴 사람과 그 가족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데. 한소이도…….
이길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고마워, 누나.”
“……?”
“치사한 방법 쓰지 않고 공평하게 중요한 걸 걸어 줬잖아. 재미있는 내기가 될 것 같아.”
그와 동시에 풍경이 바뀌었다. 나는 어느샌가 어떤 건물의 입구 앞에 서 있었다.
“그럼 이제 내기를 시작해 볼까? 규칙은 간단해. 미로 안에 들어가서 현실 시간으로 12시간 안에 나오기만 하면 돼. 다만 출구에는 엄청나게 강한 마수가 기다리고 있어. 그 마수를 쓰러뜨리거나, 어떻게든 피해서 나와야겠지?”
“12시간.”
“응. 하지만 목숨 대신 이 책을 건 거니까, 위험하면 무작위로 미로의 어딘가로 이동시켜 줄게. 하지만 12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항복은 할 수 없어. 물론 이 책은 졌을 때를 대비해 나한테 준 담보니까, 누나가 이기면 돌려줄 거야.”
‘『문자마법 레벨 2』.’
나는 속으로 문이를 불렀다. 문이가 남자가 한 말을 토대로 서약서를 작성했다.
“여기에 사인해 주세요.”
“난 한 말은 제대로 지키는데. 흠……상당한 힘이 느껴지는 물건이네. 어기면 나라도 잘못하면 죽겠는걸?”
『약속을 어길 시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대가를 받아 간다.』
남자는 흔쾌히 웃으며 서약서에 사인했다. 마찬가지로 나도 서약서 위에 사인했다. 서약서는 세 장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문 바깥에, 하나는 남자에게, 하나는 나에게.
“그럼 시작할까.”
“…….”
나는 말없이 입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곧 각오를 다지고 문을 열었다.
미로라고 했지만 벽과 복잡한 길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미로는 아니었다. 뒤죽박죽인 꿈처럼 여기도 뒤죽박죽이다. 바닥은 꼬여 있고, 하늘에는 이상한 게 날아다니고 있고, 길 이외의 장소로는 갈 수도 없다. 참으로 출구를 찾기 힘들어 보이는 미로다.
하늘에 모래시계가 떠 있다. 시계 속 모래가 모두 떨어지는 순간 시간이 끝나겠지.
‘우선 걷자.’
어떻게 미로를 탈출할까? 나는 걸음을 옮기며 시야를 떴다. 걷다 보니 터널이 다가왔다. 안에서 마법의 기척이 느껴졌기에 건물을 피해 가려 했다. 길을 벗어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길옆으로 가 보니 무언가에 막혀 있었다. 즉, 길 이외로는 지나갈 수 없다는 뜻일까?
좀 더 확인해 보니 지붕에도 올라설 수 없었다.
‘정신세계니까 내가 힘을 사용하면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고민하다가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미로를 부숴도 되나요?』
『안 돼. 내가 만든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아 줘.』
역시 안 되나 보다. 아마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도 아웃이겠지.
나는 긴장하며 터널에 들어갔다. 그러자마자 어디로 이동된 것이 느껴졌다. 나는 빠르게 달려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직전 몸이 또 어딘가로 이동되었다.
아까 들어갔던 곳은 분명 터널인데 뒤를 돌아보니 지붕과 벽으로만 된 단순한 집이 있다. 전혀 본 적도 없는 장소다.
‘이래서 미로.’
단순히 ‘한 손으로 벽을 짚고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 출구가 나온다.’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략법을 찾지 않는 이상 자칫하면 평생 나갈 수 없으리라. 대체 어디까지 이동한 건지.
상당히 넓은 장소인 건지 마력 색만으론 출구를 특정할 수 없다. 나는 길 한가운데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저건 또 무슨 마법이지?’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마력의 기척만으로는 어떤 마법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걸 증명하듯 미로 전체에 깔려 있는 마력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터널의 마력도, 허공의 마력도, 길의 마력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밟고 넘어서자 뒤에 새로운 벽이 생겨났다. 가시 벽이 나를 향해 밀려온다. 나는 앞에 있는 터널로 텔레포트 했다.
텔레포트와 동시에 내 몸이 어딘가로 이동된다. 또 모르는 장소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그때 오싹한 마력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설마……저게……?’
저 마력만 다른 마력과 패턴이 달랐고, 차원도 달랐다. 주위를 태워 버리는 것만 같은 강대한 마력. 숨이 막혔다. 뭐야, 저건. 저걸 따돌리고 출구로 나가라고…? 저건, 저건, 저건……괴물이잖아…….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몸이 비틀거리며 그 기세로 몇 걸음 앞으로 나갔다. 내 몸은 터널에 들이밀어졌고, 다시 이동했다.
「마스터.」
“문이…….”
「괜찮습니다, 마스터. 반드시 싸워야 하는 게 아니니까요.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아마 저 강한 괴물이 출구를 지키는 마수겠지요. 저기까지 가기 위한 지도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움직여 주세요.」
“……그래.”
마법인 주제에, 참으로 믿음직스럽지 않나. 오히려 주인보다 믿음직스럽다.
“잘 부탁해, 문이.”
「예스, 마스터.」
그 후엔 모르는 마력을 찾아 떠났다. 무조건 보다 새로운, 보다 특별해 보이는 마력에 다가섰다. 최종 보스는 어쩌면 트라베리아의 세계에서 만났던 드래곤보다 강할지도.
‘할 수 있어. 그때도, 그때도 이겼잖아.’
나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나는 승리를 위한 조건이 ‘터널’, 혹은 ‘집’이라 여겼다. 랜덤으로 연결되는 위치가 바뀌는 밀폐된 건물, 여기를 통하다 보면 언젠가 출구와 가까운 장소로 향하게 되지 않을까?
때로 건물이 보이지 않는 복잡한 길이 나오고, 천장을 걷고 있고, 입구 근처로 되돌아가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건물을 찾았다.
텔레포트도 사용해 봤지만 아무래도 눈으로 보이는 장소로밖에 이동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 ‘규칙’인 거겠지.
떨어지는 바닥이나 작은 몬스터 등 여러 함정을 상대하며 30개가 넘는 건물들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러다가 나는 명백히 이질적으로 보이는 건물을 발견했다.
“여긴……좀 세 보이는데?”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마스터.」
“들어가야 할까, 아니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게 좋을까.”
「들어가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봐 온 미로의 성향이나 그 남자의 성격상 특이한 건물에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가.”
이 정신세계는 현실과 시간이 맞춰져 있는 듯, 지금까지 겨우 1시간 30분이 지났다. 단순히 지붕과 벽만 있는 집이나 긴 터널이 아니라, 주택.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장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음산했다. 전등 스위치가 있어 한 번 눌러 보았으나 켜지지 않는다. 딱히 빛이 없어도 상관없었으므로 나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평범한 집……같네.”
게다가 정신세계 안에 있는 집치고는 참 고급스럽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현관 옆에는 신발장, 바닥은……나무처럼 보이는 장판이다.
예의상 신발을 벗었다. 애초에 신발도 내 상상이었으니 없어지라고만 생각하면 사라진다. 거실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다. 그 옆으로 주방이 있다. 부엌 옆에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대체 무얼 원하는 걸까? 혹시나 싶어 현관문을 열어 보았더니 잘만 열렸다. 창문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긴장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현관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방문을 열어 보았다. 첫 번째 방문은, 열리지 않는다. 잠금해제마법을 사용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차서 무너뜨려 보려고 했더니 경고 표시가 뜬다.
『억지로 부수기 없기!;;;;』
나는 무시하고 다음 방으로 향했다.
두 번째 방문도 열리지 않았다. 세 번째 방문은 열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봤다. 어린아이의 방인가 보다. 낮은 책꽂이에는 동화책이 꽂혀 있고, 침대 옆에는 귀여운 인형이 있다.
무심코 책꽂이에 있는 책을 당겨 보려 했는데 뽑히지 않았다. 검지를 책등에 대고 옆으로 주르륵 긋는데 갑자기 책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책을 들어 살펴보았다.
『꿈을 먹는 용』
“동화책……?”
이걸 읽어야 하나? 주인의 악취미를 그대로 드러낸 제목이군. 나는 책을 넘겼다.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된 동화책이었다.
『옛날 옛날 아주 못된 마녀가 있었습니다.
그 마녀는 사람의 꿈을 잡아먹는 마녀였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말합니다. “그 마녀는 우리의 좋은 꿈을 먹고서 우리가 악몽을 꾸게 한단다.”
어떤 남자가 연인에게 말합니다. “마녀가 준 악몽은 현실이 된대.”
마녀는 사람의 행복한 꿈을 잡아먹고 대신 악몽을 꾸게 하는 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또한 사람의 꿈을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마녀는 좀 더 많은 꿈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먹는 용을 만들었습니다.
마녀는 용에게 명령했습니다. “사람의 꿈을 잡아먹고 오렴.”
용도 마녀와 마찬가지로 꿈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꿈을 잡아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이윽고 사람들은 악몽만 꾸게 되었습니다.』
동화책은 찝찝하게 끝이 났다. 그 이상 뽑히는 책은 없었다.
나는 옆에 있던 인형을 무심코 쓰다듬었다. 그러자 인형의 목에서 갑자기 열쇠가 떨어졌다.
‘……열쇠?’
이거 왠지……RPG 게임 같지 않아?
열쇠라고는 해도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 같은 열쇠였다. 나는 장롱과 침대 아래를 들춰 보았다. 침대 아래에서 공주풍 상자가 나왔다. 어떻게 봐도 어린아이 인형 세트처럼 보이는 상자였다.
플라스틱 열쇠가 꼭 들어맞았다. 안에서는 작은 플라스틱 하트 장식품이 나왔다.
‘이거……정신 조각이잖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눈앞에 갑자기 창이 떴다.
『플라스틱 하트를 손에 넣으셨습니다!
아이템 설명: 꿈이 담겨 있는 물건이다.』
아이템? 보상?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당신한텐 이게 장난이겠지.
나는 이를 갈며 거실이나 신발장, 부엌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부엌 찬장 안에서 열쇠 두 개가 나왔다. 열쇠를 얻은 것 정도로는 설명 창이 뜨지 않았다.
나는 1층에 있는 방 여기저기에 열쇠를 대 보았다. 현관 바로 오른쪽에 있는 방이 열렸다. 여기서도 나는 동화책을 읽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