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31
“에휴, 정말.”
어찌 되었거나 멤버는 정해졌다. 불안하고 귀찮다는 생각을 하며 회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멤버 명단을 보내니 회장에게서 OK 사인이 왔다. 조금 불만스럽긴 하지만 인하라면 괜찮을 것 같다나.
“아, 왜 하필이면 우리야.”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민희가 풋 웃었다.
“그거 알고 하는 말이지.”
“알고는 있지만…….”
휴우. 나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한소이 사건도 끝났고, 학생회도 정해졌으니 남은 골칫덩어리는 역시 멘토링이다.
멘토링은 일주일에 최소 세 시간 이상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두 번째로 만난 후배들은 피곤해 보였다. 시간이 안 맞아서 방과 후에 약속을 잡아야 했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안경을 쓴 소년……김준영만은 우리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들!”
“안녕.”
객관적으로 보면 귀여운 후배다. 문제는 우리 중에 후배를 귀여워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지. 성진이랑 인하는 논외, 나는 소심하다.
“오늘도 대련하나요? 저번 대련 엄청 즐거웠는데.”
그게 즐거웠다니, 참 놀랍다. 이번 수업 내용도 인하가 설명했다.
“이번에는 공략법을 찾는 대련을 할 거야. 우리는 몇 가지 기술만 사용할 거야. 그 기술을 공략할 방법을 생각해 봐.”
“네? 하지만 선배들은 엄청 강하잖아요.”
“강하다고 해서 공략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잖아? 이기라는 게 아니라 좀 더 잘 상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거야.”
인하는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이번에도 환각으로 제비뽑기를 만들었다. 이번엔 제비가 세 개뿐이었다. 우리는 각자 제비를 뽑았다.
“앗, 내가 1번이야.”
“2번.”
“3번.”
나 성진 인하 순이다. 또 첫 번째야? 조금 쑥스럽다. 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후배들의 앞으로 나섰다.
“그럼 나부터네…….”
“은하 선배, 저희 순서는 안 정하나요?”
“응? 응. 5 대 1이야.”
그러자 후배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승산이 있을지도 몰라!”
“은하 선배를 이기면 다음은 성진 선배 차례인가요?”
나는 미소 지었다.
“응. 제한 시간은 30분인데, 괜찮겠니?”
“넵!”
내가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인하랑 성진이가 가상 장치를 켰다. 랜덤으로 한 장소가 뽑혔다. 특이한 장소였다. 나는 한 발 뒤로 움직였다. 흙바닥과는 달리 가벼운 소리가 났다. 바닥은 흙이 아니라 불투명한 유리였다.
그뿐만 아니라 검은 허무 같은 풍경 속에도 거울 같은 유리가 몇 개 떠올라 있었다. 김준영이 당황했다.
“헐, 나 이런 장소는 불리한데.”
“뭐?”
“하늘은 텅 비었고 유리는 투명해. 쓸 수 있는 색이 없잖아.”
“됐고, 하자고!”
하진주가 기합을 넣으며 주먹을 쥐었다. 시작하기 전에, 나는 우선 기술 시범을 보였다.
“내가 쓸 기술은 두 개야.”
“두 개요?”
“두 개긴 한데 여러 버전이 있으니까 생각보단 많게 느껴질지도 몰라.”
기술 역시 친구들과 의논해 미리 정하고 왔다. 나는 평소보다 범위가 넓은 구체 방어 막을 쳤다.
“하나는 이거.”
강도는 그들이 전력으로 힘을 모아야 아슬아슬하게 깰 수 있을 정도……로 예상하고 있지만 눈대중이라 아무래도 확실하지는 않다.
“이걸로 너희 공격을 막을 거야. 아, 승패 조건부터 말해야지. 너희들의 공격이 한 번이라도 내게 맞으면 너희 승리야.”
“겨우 한 번요?”
“응. 그리고 두 번째 기술은…….”
나는 환각으로 꽃을 만들었다. 검정, 보라, 녹색, 세 가지 색이었다.
“이 세 가지 색 전부 합해서 같은 기술로 칠 거야.”
“색마다 효과가 다른가요?”
“응. 그건 직접 확인하도록 해.”
“네!”
“그럼 시작……아니, 시작하기 전에……혹시 질문할 거 있어?”
“아뇨.”
“저요! 있죠, 은하 선배는, 어떤 성향이에요?”
질문을 한 것은 김준영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성향? 어떤?”
“공격형, 방어형, 이런 거 있잖아요.”
“아……. 방어형이야.”
“그렇구나…….”
개인적인 질문이었는지 대련을 위한 질문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는 대련을 시작했다.
나는 한자리에 서서 방벽을 발동했다. 자리에 선 채 10초 정도 있었다. 그사이 그들은 시험하듯 마법으로 방벽을 때렸다. 나는 방어벽을 열고 검은 꽃을 날렸다. 환각마법으로 만든 것이다. 허공에 생성된 한 개의 검은 꽃이 수십 개나 되는 꽃잎을 펼쳤다. 방어 막이 열린 것을 보고 후배들이 나를 공격한 순간, 꽃잎이 수백 개로 늘어나 내 주위에 휘몰아치며 나를 감쌌다. 꽃잎이 그들 사이를 파고들며 폭발했다.
“꺄악!”
이 꽃의 약점은 속도일까. 마법이 완성되고 꽃잎이 열리며 발동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발동되면 빠른 속도로 증식해 주위를 덮는다.
후배들 전원이 마법에 휘말리는 사이, 유일하게 냉정한 눈으로 마법을 관찰하는 사람이 있었다. 김준영은 날카로운 눈으로 앞을 보며 마법을 사용했다. 마력 색이 검정으로 변했다. 김준영과 닿은 꽃잎이 폭발하지 않았다. 그는 꽃잎을 통과하며 내게 달려왔다.
환각마법이므로 통과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공격을 막는 건 ‘검정’이 아니다. 꽃잎 색이 녹색으로 변했다. 아직 색에 동조하지 못한 김준영을 향해 꽃잎을 연다. 열린 꽃 사이 꽃술에 마력이 충전된다. 집속 포가 쏘아져 나갔다.
“으악!”
남은 검은 꽃과 부딪친 집속 포가 더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후배들은 모두 마법을 사용하며 공격을 막거나 뒤로 피했다. 이정아가 바람으로 공격을 막아 냈다. 바람이 거칠게 흐트러졌다. 아무래도 방어에는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공격만 연습했나 보네.
이번엔 꽃 색깔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보라색 꽃잎이 모습을 드러내자 검은색 꽃잎이 모습을 감췄다. 꽃은 한 번에 두 종류까지. 세 종류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경우는 내가 어느 정도 몰렸을 때다.
꽃술에서 떨어진 보라색 꽃잎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바람을 쓰는 후배를 공격했다.
탕! 카각! 꽃잎 하나가 바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초록색 꽃잎이 떨어지더니 그 꽃잎이 집속 포가 되었다. 다섯 명에게 집속 포와 칼날 공격이 날아갔다.
꽃잎이 떨어졌을 때 다시 방벽을 만들었다. 다섯 명이 헉헉거렸다. 김준영이 소리쳤다.
“방어형이란 거 거짓말이죠? 거짓말이 틀림없어요!”
“어…….”
내가 당황하고 있자니 하진주가 김준영의 머리를 후려쳤다.
“방어형이라고 공격을 못 하겠냐! 저 선배는 A랭크 마법사잖아!”
“그리고 저 꽃은 기술은 다양해도 하나하나 위력이 굉장하진 않아.”
송정민도 조곤조곤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건 좋지만 대련은 아직 속행 중인데. 방벽이 사라지며 이번엔 초록색 꽃이 6송이 나왔다.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꽃은 총 7송이로 정했다. 집속 포가 다각도로 쏘아졌다.
꽃잎의 공격을 피하며 후배들은 각자 공략을 시작했다. 이정아가 바람으로 폭발하는 검은 꽃잎을 걷어 냈다. 김기성이 번개로 꽃 본체를 공격했다. 검은 꽃잎은 더 큰 폭발을 일으켰고, 보라색 꽃잎은 번개를 전도하며 파직파직 튀었다. 번개 공격이 가장 유효한 것은 초록색 꽃이었다.
김기성이 그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내가 초록색 꽃을 맡을게.”
“그럼 난 리본으로 날카로운 꽃잎을 막을래.”
“난 흩어진 꽃잎을 흐리게 해서 폭발의 위력을 죽일게. 검은 꽃잎은 내가 맡을게.”
“그럼 내가 선배를 직접 공격할래.”
“김준영 네가? 그래, 좋아. 난 너희들이 공격을 막으면 바람마법을 사용해서 결계를 깰 거야! 그땐 김기성 너도 번개마법 써서 도와!”
생각보다 호흡이 잘 맞는다. 하긴, 멘토링을 하기 전에도 한 달 정도 같은 수준별 반에서 수업을 했을 테니까.
나는 몇 번이나 비슷한 패턴으로 마법을 조종했다. 후배들은 몇 번이나 실패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목소리를 높였고, 그러다가 또다시 공격에 당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내 공격 패턴을 눈치챘다.
녹색 꽃잎이 나오면 김준영이 빠르게 본체를 부숴 태워 버리고, 보라색 꽃잎의 칼날 공격은 하진주가 리본으로 막아 내거나, 송정민이 위력을 죽인다. 검은색 폭발 꽃잎은 송정민이 흐려 위력을 죽이고, 김준영이 통과한다. 그 외의 꽃잎은 이정아가 바람으로 날려 버리거나 부숴 버린다.
꽃이 한순간 전부 사라졌다. 내 주위로 방벽이 펼쳐졌다.
“김기성!”
“알아!”
“내가 먼저 흐릴게!”
송정민이 내 방벽을 흐렸다. 그 사이를 바람의 칼날과 번개가 파고들었다.
“아직도 부족해!”
“에잇!”
하진주가 다급하게 리본으로 그 사이를 꿰뚫었다. 그녀가 리본을 직접 공격에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빠지직, 방벽에 약간 금이 갔다. 김준영이 금 사이를 주먹으로 때렸다. 쨍그랑! 방벽이 조각조각 깨져 사라졌다. 김준영이 나에게 달려왔다. 그의 주먹 앞에 마력이 모였다.
나는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초록색, 보라색, 검정색, 세 가지 색의 꽃잎이 합쳐졌다. 커다란 꽃이 꽃술에서 기관총처럼 포탄을 쏜다. 포탄은 폭발한다. 꽃잎이 길쭉한 칼날이 되어 김준영을 덮친다.
김준영의 마력이 검정색으로 변했지만 이번에는 공격을 통과할 수 없었다. 이번 꽃잎은 검정색에 가깝지만 중간중간 초록색과 보라색을 띠고 있다. 색이 섞여 있는 것이다.
“헉! 공격기는 세 개라면서요!”
“합동기잖아. 이게 마지막 기술이야.”
“우씨!”
김준영 주위를 리본이 둘러쌌다. 하진주가 공격을 막아 냈다. 공격에 의해 튕겨 나간 송정민이 공중을 날고 있던 유리에 부딪혔다. 정신없이 몰두하고 있던 송정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송정민을 향해 포탄이 하나 더 날아갔다. 모두 공격을 피하고 꽃을 공략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송정민이 고개를 숙인 순간, 유리에 부딪힌 포탄이 반사되어 다른 각도로 튕겼다.
“어……?!”
나와 유리를 번갈아 보던 송정민의 표정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그와 거의 동시에 타임아웃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삐익──!
나는 마법을 휙 없앴다. 공격하던 기세로 쓰러지는 김준영의 팔을 붙잡아 넘어지지 않게 부축했다. 다음 차례는 성진이었지?
“헐, 벌써 끝났어요?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었는데……!”
“글쎄다.”
성진이 그들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그때 송정민이 아까 전 본 것을 이야기했다.
“야, 공중에 떠 있는 유리, 공격을 막고 반사하더라……. 몇 개 없어서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앗!”
“맞다. 그 방법이 있었는데!”
주위 지형은 아랑곳도 안 하기에 나는 뭐 하나 싶었지. 일부러 유리를 피해서 공격하기는 했다. 공중에 뜬 유리는 내 주위에서 꽤 떨어져 있었고, 몇 개 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용하면 좀 더 수월했을 텐데.
“반성은 이따가 하고, 다음 대련 시작하자. 은하야, 이리 와.”
“응.”
나는 인하 곁으로 물러났다. 성진은 불친절하게 사용할 기술을 설명했다. 물을 이용한 방벽, 방벽 형태는 나와 비슷하다. 바닥 위에서 몸 주위를 반구 형태로 감싸는 방어벽이다. 공격은 세 가지, 하나는 평소에 자주 쓰는 주위를 채우는 네모난 물 상자, 또 하나는 물의 소용돌이, 마지막 하나는 물대포다. 물 상자와 소용돌이는 최대 15초로 제한했고, 물대포는 커다란 건 7개, 작은 건 30개로 제한했다. 물론 위력도 제한했다. 맞아도 전처럼 살을 꿰뚫을 정도는 아니다.
‘이젠 끔찍한 느낌도 안 드네.’
나는 손가락을 두어 번 까딱까딱 움직이다 다시 손에 힘을 풀었다.
성진은 의외로 제어를 잘한다. 큰 기술은 세세한 제어를 못하지만 위력을 낮추고 기술 크기를 낮추면 제법 세세하게 제어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 중에 세세한 제어를 제일 못하는 건 인하다.
그리고 이성진 쟨 그 제어 기술로 상대의 힘에 맞춰서 상대를 가지고 논단 말이지……. 나는 무심코 왼손을 감쌌다. 왼손을 꿰뚫었던 끔찍했던 감각, 이제는 그것조차 별것 아니게 느껴지니 나도 참 많이 변했다.
곧 랜덤으로 공간이 갖춰졌다. 이번 영역은 초원과 숲이었다. 서로서로 나쁘지 않은 여건이다.
성진은 차가운 눈으로 후배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그의 제어 실력은 아무래도 나만큼 세세하고 정확하지는 않다. 후배들은 나와 싸웠을 때보다 더 힘들어했다.
‘그나마 파도를 제한해서 다행이지.’
물의 소용돌이가 후배들과 함께 나무까지 우두둑 부쉈다. 한수가 보면 기함을 토할 광경이다. 성진의 공격에 맞아 꺾인 나무는 생명력이 다한 것처럼 순식간에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가 썩어 비틀어졌다. 특수능력 ‘종말’, 언제 봐도 무시무시하다.
“헉! 저게 뭐야!”
“우, 우린 아무렇지도 않은데…….”
성진이 혀를 찼다. 아무래도 제어에 실패했던 모양이다.
빛과 물은 보통 식물이 자라는데 꼭 필요한 것들인데, 저놈의 물은 식물을 썩혀 버리니.
성진이 꽤 애를 써서 제어했지만 후배들은 성진에게 한 번도 제대로 공격을 먹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의미한 대련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정아는 방어가 안정되었고, 하진주는 공격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마지막은 나네.”
나는 성진과 교대하며 앞으로 나가는 인하를 응원했다.
“인하야, 제어 잘해. 어느 정도인지 알지?”
“알아. 어제 가르쳐 줬으니까.”
“거기에서 딱 자른다는 느낌으로 해. 반사적으로 힘을 더 늘리지 말고.”
“음……노력할게.”
인하한테는 멘토링 수업이 오히려 훈련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 힘을 제어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
“시간이 좀 늦었네. 나는 제어가 능숙하지 못하니까, 20분만 하고 끝낼까?”
“아니요. 30분 할래요.”
“맞아요. 여태까지 우리 한 번도 못 이겼어요.”
후배들이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인하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30분으로 하자.”
인하의 기술은 세 개. 전부 공격이다. 수십 개의 빛 무리, 번개 줄기, 마지막으로 무술. 정확히는 빛을 몸에 두르고 빠르게 움직여 공격하는 거다.
‘무술 대련도 필요하지. 무술을 쓰면 인하도 좀 더 제어하기 쉬울 테고.’
적어도 나나 성진이랑 무술 대련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곧 랜덤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이번 대련 장소는 미스터리 서클이었다. 시멘트 바닥 위, 마법진이 아닌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그란 시멘트 바닥 주위로 물길이 흐르고, 그 옆으로 초원이 펼쳐져 있다.
“그럼, 간다.”
가상 공간이 생성되자마자 인하는 바로 움직였다. 우선 공격력이 제일 강한 김기성을 공격했다. 김기성이 번개로 공격을 막았다. 원래의 인하라면 그 정도 번개는 가볍게 뚫었을 테지만, 오늘만은 전부 뚫지 않고 물러섰다. 나는 작게 박수를 쳤다.
“좋아, 잘한다.”
“쟤가 애냐?”
성진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 얘는 사사건건 트집이라니까.
주먹이 적당히 바람의 방벽을 꿰뚫는다. 이정아가 필사적으로 바람을 굳혔다. 인하의 마법은 전부 노란색, 김준영의 색이 노란색으로 변했다. 인하의 마법이 김준영의 몸을 통과했다.
“……!”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마법을 붙잡아 인하에게 되돌려 보냈다. 인하에게는 성가신 타입의 마법사다. 자신보다 강한 자의 마법에 동화하고, 제어하고, 되돌린다. 잘만 사용하면 자기보다 강한 사람한테서 얼마든지 승기를 뺏어 올 수 있는 마법이었다.
“저 애의 마법, 대단하단 말이야.”
“인하 녀석한텐 안 맞겠지.”
“어차피 힘으로 밀어붙이면 깨질 테지만…….”
하지만 인하는 지금 힘을 제어해야 한다. 딱 한 번 공격에 성공하면 후배들의 승리다. 인하는 위로 높게 뛰어올라 공격했다. 인하의 마법 기술, 체인 라이트닝. 인하가 곧잘 사용하는 기술로 한 개의 빛 덩이에서 몇 갈래의 번개 줄기가 떨어진다. 평소에 비해 위력이 반감된 번개가 다섯 사람 사이에 작렬했다.
하지만 단 한 명, 김준영은 이번에도 인하의 마법을 흡수해 되돌렸다. 인하는 마법을 받더니, 다시 더 강한 공격으로 되돌렸다. 반복되면 위험하겠다 싶었는지 김준영이 이번에는 받아치지 않고 피했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미스터리 서클에 인하의 번개가 작렬했다. 그러자 미스터리 서클──마법진이 빛나며 힘을 발휘했다. 서클을 따라 번개가 이어졌다. 이정아가 다급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모두, 위로!”
바람이 모두의 몸을 위로 띄웠다. 인하가 그들에게 물었다.
“하늘을 밟을 줄은 알지?”
“네, 네……?”
인하의 주위로 수십 개의 빛 덩이가 만들어졌다. 그것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그들 모두 당황하며 마법을 썼다. 바람으로 막고, 색마법으로 통과하고, 번개로 상쇄하고, 리본으로 막아 내고, 흐림마법으로 효과를 완전히 지웠다. 나는 그것을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잘 막게 됐네.”
김기성과 이정아는 특히 방어가 미숙했다. 하지만 대련을 계속하다 보니 두 사람 다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멘토링은 보람이 있다.
인하는 한동안 후배들과 싸웠다.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단 세 개, 모든 마법은 다운그레이드, 움직이는 속도도 평소보다 몇 배나 느리다. 30분이 되기 직전, 하진주가 딱 한 번 인하를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헉…!”
“해냈어!”
“우와아아!!”
딱 한 번 공격에 성공한 것을 가지고 후배들은 들떠서 환호성을 질렀다. 서로 손을 잡고 방방 뛰거나, 김준영은 사심을 담아 인하한테 달려들었으나, 인하가 휙 피했기 때문에 어쩌다가 나한테 넘어졌다. ……는 성진이 한 팔로 받아 튕겨 냈다.
“우왁!”
김준영은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나는 당황했다.
“그냥 받아 주면 될 걸 왜 일부러 넘어뜨려?”
“괘씸해서.”
그 말에 김준영을 제외한 후배들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김준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일어나. 그리고 인하는 남자 친구가 있어.”
“알아요. 한수 선배 엄청 멋있잖아요.”
김준영은 조금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뭐야, 알고 있었어? 하긴 알고 있었겠지.
“그래도 한 번만……한 번쯤은…….”
그런 거였나. 그러나 나는 생긋 웃으며 거부했다.
“안 돼.”
“윽…….”
후배들이 또 한 번 소리 내어 웃었다.
인하가 손에 꼈던 장갑을 빼며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벌써 8시야. 돌아가자.”
“으악, 벌써? 오늘은 결국 하나도 못 만들었어.”
“아이템요?”
어리광부리듯이 인하에게 투덜거리고 있는데 김준영이 불쑥 물었다.
“아이템 말하는 거 맞죠? 은하 선배 장인이라고 들었는데…….”
“응, 맞아.”
내가 장인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훈련실을 정리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우리 뒤를 김준영을 비롯한 후배들이 졸졸졸 쫓아왔다.
“장인으로 취업한 거예요?”
“응. 인터넷에서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어.”
“닉네임이 뭔데요?”
왠지 호기심이 많네. 하지만 질문을 한 김준영만이 아니라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기에 나는 잠시 후배들을 상대했다.
“닉네임은 비밀. 난 아직 초보 장인이니까.”
에이~. 후배들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김준영의 표정은 특히 가라앉았다.
“은하 선배는 그렇게 강한데, 왜 하필이면 장인이에요? 인하 선배는 전투 마법사고, 성진 선배는 그래도 프리랜서 겸 장인이랬는데, 은하 선배는…….”
“장인도 전문 직업이야. 어려워.”
“하지만 선배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엄청 많잖아요. 왜 장인을 선택했는지 궁금해서요.”
으음, 나는 고민했지만, 이내 가볍게 대답했다.
“그냥, 해 보고 싶어서.”
“……그것뿐이에요?”
이유를 붙이자면 많다. 전투와는 맞지 않으니까 전투와 거리가 먼 마법사 전용 직업을 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가지는 직업을 보면 싸우지 않는 직업은 거의 없다. 의사도, 박사도, 불가피하게 전투에 끼어들 때가 있다. 현호는 전쟁터 후방에서 치료를 하러 돌아다녀야 할 수도 있고, 한수는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위험한 장소에 가게 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싸우지 않는 직업은 거의 없다. 다만 나는 혼자서 집중할 수 있는 직업이 좋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게 아니다. 그냥 흥미가 생겼으니까, 결국 그뿐이다.
“응.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야.”
나를 바라보던 소년의 눈동자가 무언가 안타까운 빛을 띠며 가라앉았다. 곧 실습실의 불이 꺼졌다.
“유은하, 가자.”
“그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나 기숙사 부지는 같다. 나는 검은 게이트를 열었다.
“너희들도 기숙사로 돌아갈 거지?”
“네!”
“그럼 가자.”
우리는 다 함께 통로를 넘었다.
그날 이후, 그러니까 한소이 의뢰 이후 꿈이 훨씬 선명해졌다. 역시 새로운 시도를 해서 그럴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 남자와의 대면은 나를 더욱 성장하게 했다. 이제 꿈속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새삼스럽고 생생한 감각으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