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34
민희가 입을 벌리며 항의했다. 하지만 제현 오빠는 냉정했다. 와……저 지옥도를 봤을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정말 힘든 훈련이 될 것 같다.
“힘들겠다.”
“흐음.”
“마력을 잘 조절해야겠네.”
강정현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식량이랑 물을 든든히 챙겨 오라고 했던 말 잊지 않았지? 보충은 해 주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알아서 잘 분배해 먹어야 한다.”
“네.”
“마력석 보충은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한다. 오염 구역 안에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입에 대지 말도록. 이 안은 다른 곳보다 마력을 사용하기 굉장히 힘들다. 상황을 보며 실전 형식 훈련을 시킬 생각이다.”
어떡해. 잘할 수 있을까? 예슬이가 자신 없는 얼굴로 몸을 떨었다. 괜찮을 거야. 그렇게 달래는 시하의 얼굴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특수한 체질을 지닌 사람은 저주가 안 통하기도 한다더군.”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와 그 옆에 있던 성진에게 향했다. 혹시? 혹시. 역시?
글쎄. 보기만 해서는 잘 모르겠다. 웬만한 저주는 마력이 알아서 정화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있으니까.
“지금부터 들어간다. 몸 주위에 마력을 둘러라. 일렬로 따라오도록.”
강정현 선생님은 최소한의 주의 사항을 전한 후 앞서 걸어갔다. 제현 오빠도 그 뒤를 따랐다.
나는 맨 마지막에 섰다. 앞서가는 성진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오염된 땅이 가까워진다. 나는 꺼림칙한 기분을 참으며 새까만 호수 위에 발을 올렸다.
마력을 조절하여 호수 위에 섰다. 검은 호수 위에 작은 파문이 퍼진다. 나는 오싹한 느낌으로 파문을 응시하다가 다시 고개를 든다. 앞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악!”
‘어라?’
고개를 들자 처음 보인 건 성진의 등이었다. ……이성진 이 녀석은 마력을 안 돌리고 있네.
‘맞다. 저주는 소용없댔지.’
절대 비명횡사는 하지 않을 놈이다.
당연하지만 비명을 지른 건 이 녀석이 아니다. 좀 더 앞을 보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몸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이 방출하던 마력이 하늘로 분산하며 흩어졌다. 마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릎까지 오는 물에 다리가 빠졌다. 첨벙! 물소리가 들렸다.
“마력이…….”
“뭐, 뭐야?”
“꺄악?!”
친구들을 도우러 달려가려 했으나 제현 오빠가 손을 들어 나를 막았다. 제현 오빠가 엄하게 소리쳤다.
“도와주지 마! 이 정도도 못 하면 도저히 여기서 일주일을 버틸 수 없어. 너희들, 알아서 빠져나와라. 1분 준다.”
“윽…….”
“집중해. 마력을 자기 주위로 모아!”
“강한 마음이 필요하다. 너희들의 의지로 다스려라.”
내 마력은 멀쩡하다. 나는 시야를 떴다. 주위를 감싼 검은 안개,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구불구불 위로 올라간다. 아지랑이의 힘에 의해 주위 사람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마력이 흐트러지기를 반복한다. 내 마력이 흐트러지지 않은 건 아마 내 제어력이 뛰어나서인 것 같다.
“마, 마력이 진정이 안 돼…….”
“훈련이야. 정신 차리고 해.”
마력이 강할수록 금방 다스렸다. 인하가, 인성이가, 그다음으로 민희가.
‘민희는 무속성 특성이 도움이 됐나 보다. 그래서 좀 더 빨리 제어한 것 같네.’
한수가, 소영이가, 현호가, 시하가, 예슬이가, 차례대로 마력을 다스렸다. 모두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며, 다시 호수 위로 떠올랐다. 떠오르고 보니 강물에 빠진 모두의 다리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 이거 어떻게 해?”
“마력 독이다. 아마 한동안 따끔할 거다. 병약한 사람은 죽을 수도 있는 독이지만, 너희라면 문제없겠지.”
“으…….”
“알았지? 이제는 정신 똑바로 차려라.”
초장부터 이렇게 될 줄이야.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정현 선생님과 제현 오빠가 다시 앞장섰다. 과연, 오염 구역이라는 이름만큼이나 무서운 장소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검은 안개가 점점 짙어졌다. 주위 광경은 기이했다. 나는 시야를 개방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폐하고 검은 땅과, 삐쩍 마른 나무,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했다. 눈앞에서 일렁거리는 검은 안개를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참혹한 모습이지만 겨우 그 정도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을 상황을 겪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기분이 이상해져 입술을 깨문 순간, 귓가에 어떠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 마.」
눈앞이 일그러졌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일그러진 시야에 무언가 형상이 생겨났다. 유령 같은 형체, 누군가의 가슴을 긴 창으로 찌르는 남자. 웃고 있어?
「……이지 마.」
「친구들만은……지켜야 돼.」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지?」
「살인마! 살인마살인마살인마살인마!」
「신의 사도라고? 웃기지 마!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우리 가족을 다 죽였어!」
「엄마가 죽었어요! 아빠도, 동생도, 친구도, 이웃도, 다 죽었잖아요! 그런데도 우리가 참아야 하나요?! 왜요!」
「영겁 동안 저주하리라. 절대 편하게 죽게 하지 않을 거야. 죽어 버려. 죽어버려죽어버려죽어버려죽어버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저주할 거야」
「피, 가,」
「아악──!」
「식어 가고 있어,」
「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
피피피피 血血血血 피피 血血
血血血血血血血血血血 血 피」
「죽여 버리겠어.」
「칼, 로」
「저,」
「눈알부터,」
「모든 피부를, 헤치고,」
「주,」
「사각, 사각 서걱 스걱 슥
슥슥슥슥슥슥슥스거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
「咀呪저……呪血血血血血血血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
咀呪咀呪咀呪저주저주저주하겠……
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
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咀呪」
「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
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
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
「철퍽!」
“아…….”
머릿속에 원망의 문자가 끝없이 이어졌다. 목소리,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환상. 뜨겁게 튀는 피, 분수처럼 흐르고, 뺨에 튀기고, 웃고, 웃고, 울고, 원망하고…….
“으아아아아악!!”
“뭐야?”
“은하야?!”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속이 울렁거렸다. 뭐야, 그러니까……뭐지?
‘사념?’
웬만한 저주는 견딜 수 있다. 정화 마력이 자연스럽게 정화하니까. 그러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이 자리에 남은 모든 원념이었다. 나는 감정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적당히 방심한 게 죄라면 죄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꺼져!’
몸에서 방출하는 마력의 크기가 커졌다. 그 마력이 주위를 좀먹어 갔다.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이 바닥에 파문을 만들었다.
“은하야, 괜찮아?”
“손대지 마라. 알아서 헤어 나오게 해.”
“하지만……!”
“……그래도 반응이 이상하군. 왜 강한 아이가 사기에 저렇게 빨리 당했지?”
나는 입술을 악물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비명 소리를 따라 마력이 팽창했다. 몸 주위를 둘러싼 마력이 바람처럼 퍼진 순간, 주위 광경이 변했다.
변한 범위는 아주 좁았다. 내 발아래를 중심으로 약 반경 50cm.
발아래로 질척이던 검은 호수의 색이 변했다. 투명한 물로 돌아왔다. 새까만 안개가 일순 사라졌다.
‘기분 나빠! 소름 끼쳐! 울렁거려…….’
잠깐 본 그것은 매우 끔찍했다. 아마 이미 지난 과거의 일, 아주 예전에 남은 복수심과 증오심.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나는 구역질을 삼키며 내 주위로 몰려드는 사념을 털어 냈다.
“……정화됐잖아?”
제현 오빠가 깜짝 놀라 내 발아래의 물을 매만졌다. 검은 호수와 투명한 호수의 색이 섞이니 검은색이 연해졌다.
“기, 기분 나빠…….”
“괜찮아? 은하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이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제대로 방어 안 하니까 그렇지.”
“으으…….”
조금 자만했나?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방심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 남은 사념은 마력을 이길 정도로 거셌다. 나는 철저하게 방어하기 위해 몸 주위에 결계를 둘렀다. 이런 사념에 다시 접촉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본 것처럼 정신에도 안 좋아서 쉽게 악몽을 꾸거나 환상을 보기도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신 차리고 걸어라.”
“앗, 네!”
“네!”
“네에…….”
나는 감정과 영혼을 보는 시야를 철저히 닫고서 대열을 뒤따랐다. 친구들이 방출하는 마력량이 늘었다. 맨 앞에서 걸어가는 강정현 선생님과 제현 오빠가 멈출 때까지, 친구들은 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길을 잃은 것처럼 주위를 맴돌다 다른 사람과 부딪치거나, 신음을 흘리며 넘어지거나, 자리에 멈춰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웬만해서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극악하다…….’
우리 학교도 제대로 결심을 하고 우리를 데려온 것 같다. 인솔자가 제현 오빠와 강정현 선생님, 대현의 A랭크 마법사인 것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방출하는 마력량은 점점 늘어 갔다. 정신적인 부담감도 컸다. 얼마나 걸었을까. 제현 오빠와 강정현 선생님이 멈춰 섰다.
“여기를 베이스캠프로 삼을 거다.”
두 사람이 멈춘 곳은 동굴 앞이었다. 바람이 불자 음침한 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저주의 영향이 적은 장소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지만.”
강정현 선생님이 동굴 벽에 무언가를 박아 넣었다. 아마 발신기일 것이다. 어딜 가든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게끔.
“우선 여길 좀 치울까? 마법으로.”
“앗, 네.”
친구들이 지친 얼굴로 동굴 안에 들어섰다. 나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시야를 개방했다. 왜 여기가 A랭크 오염 구역인지 알겠다. 이곳의 저주는 모든 것을 일그러뜨린다. 감정을, 영혼을, ──마력을.
이 구역의 마력은 명백히 이상했다.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구불구불 휘어진다. 삐쩍 마른 땅도, 삐쩍 마른 나무도, 생명력이 빠져나간 것만 같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의 마력은 방해받았다. 마력은 원래 사용자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지배력이 강해진다. 그런데 몸 주위를 돌고 있던, 피부와 접촉해 있던 마력조차 흩어 버릴 지경이다.
마법을 써서 치우라 한 것은 아마 시험해 보라는 소리겠지. 무슨 마법을 먼저 쓸까 고민하는데 옆에서 마력이 치솟았다. 먼저 마법을 쓴 것은 성진이였다.
“염력.”
바닥에 쌓여 있던 먼지와 돌이 염력으로 인해 둥둥 떠올랐다. 저주의 영향을 정말로 전혀 안 받는지 마력이 움직이는 모양이 자연스러웠다.
‘아니, 오히려.’
저주가 이 녀석을 피하고 있다. 성진이 마력을 쓰자 주위의 검은 아지랑이가 성진이의 마력을 피했다. 이럴 수도 있나?
“좋아! 그다음엔 내가 할래! 물로……으악!”
이어서 동굴을 씻으려 했던 현호였지만, 마력이 ‘펑!’ 터졌다. 물 덩이가 펑펑 터지며 동굴 안에 비를 내렸다. 덕분에 피하거나 막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 흠뻑 젖었다.
“현호 너…….”
“윽, 미안…….”
“역시 마법을 쓰기 힘든가 보네.”
“라이트.”
인하가 동굴 전체를 살피기 위해 빛을 뭉쳤다. 하지만 인하가 만든 빛은 파직파직 점멸하며 모양조차 공이 아니라 안개처럼 일그러졌다.
“헐…….”
그다음에는 한수가 마법을 썼다.
“정화하는 나무.”
한수가 가리킨 장소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날카로운……새싹……이 평소와 다르게 검었다. 곧 삐쩍 마른 기괴한 모양의 나무가 나타났다.
“와…….”
한수가 분한 표정으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좋아. 바람으로…….”
소영이가 손을 모으며 제 주위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런데 바람의 궤도가 휘며 날카로워졌다. 바람이 살기를 띠며 내게 날아왔다.
“꺄악!”
“은하야!”
나는 방어 막을 펼쳤다. 바람이 내 방어 막과 부딪치며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항은 크지만, 저렇게 마법이 흐트러질 정도는 아니다. A랭크와 C랭크의 차이인가?
“현재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이성진 군과 유은하 양뿐이군.”
“당연하죠. 저 둘은 A랭크 마법사니까요. 아무리 경험이 적다 한들 그 정도도 못 하면 곤란합니다.”
제현 오빠의 눈이 평소와는 다르게 냉정하게 나를 관찰했다. 나는 주춤하다가 조심조심 몸을 옮겼다. 성진의 뒤에 숨었다. 제현 오빠의 표정이 당황으로 허물어졌다.
“왜 숨어?!”
“아니, 그……숨은 거 아니에요.”
“숨었잖아.”
성진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우씨, 그치만 제현 오빠의 차가운 얼굴은 왠지 무섭단 말이다. 가끔 저럴 때마다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제현 오빠의 얼굴이 아까와는 다르게 생생한 표정으로 물들었다. 그는 뚱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다시 표정을 수습했다.
하여간 친구들은 몇 번이나 마법을 실패해 가면서 어떻게든 동굴 청소를 끝냈다. 제현 오빠가 땅을 파고 보온 돌을 뒀다. 보온 돌은 수정 구슬 안에 불꽃이 일렁거리는 모양으로, 맹수를 쫓고 주변 온도를 올리는 역할을 한다.
“오늘은 첫날이니까……이 구역을 둘러보도록 한다. 또한 너희들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구역도 알려 주마.”
“들어가서는 안 되는 구역요?”
“그래. 웬만큼 강한 마법사도 견딜 수 없는, 저주의 ‘근원’이 있는 곳. 혹은 저주를 건 자가 강하게 생각한 장소. 너희들로는 절대 견딜 수 없는 장소가 있다.”
“이것보다 더 힘들다고요?”
“그래.”
친구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친구들이라도 여기 환경은 녹록지 않나 보다. 평소라면 모험심으로 한번 가 봐야겠다며 의기양양해할 얼굴이 창백해지는 걸 보면.
“주제현, 이번엔 네가 앞장서라.”
“네? 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제현 오빠가 마른땅을 밟았다. 쩍 갈라진 땅 사이로 검고 짧은 수풀이 나 있었다. 흔들린다……? 아니, 촉수처럼 움직이며 발목을 잡아챘다.
“헉…?!”
마력을 살짝 방출하니 풀이 반쯤 바스라졌다. 앞서가던 친구들도 움직이는 풀에 당황하고 있었다. 인하가 짜증을 참지 못하고 풀을 죄다 태워 버렸다. 제현 오빠는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강정현 선생님이 맨 뒤에 섰다. 그가 이제는 제법 안정적으로 걷는 나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아까 일부나마 이곳의 저주를 없앴었지.”
“네?”
“혹시 이곳의 저주를 없앨 수 있겠니?”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곳을 정화한다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힘들어요. 사념이 너무, 진하게 남아 있어요.”
“사념이라…….”
강정현 선생님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400년 전, 한 마법사가 목숨으로써 이곳에 저주를 내렸지.”
“…….”
“400년이 지나 힘은 조금 옅어졌을지언정 저주의 힘은 계속되고 있다. 구역 경계에 설치되어 있던 바리케이드와 결계를 보았지?”
“네…….”
“결계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저주 영역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땅을 파고들며, 식물을 좀먹어 가며, 조금씩. 1년에 10cm씩.”
1년에 10cm, 언뜻 생각하기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세월이 쌓이면 엄청난 크기가 된다. 이곳에 남은 증오는 아직 끝을 모르고 있다.
“조금이라도 축소시킬 수 있다면 훈련이 끝난 다음 도와줬으면 좋겠다.”
잠시 고민했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해 볼게요.”
할 수 있다면 해야지. 주먹을 꽉 쥐는 나를 보며 강정현 선생님이 얼핏 미소 지었다.
“그래.”
“아……대신 축소돼도 제가 했다는 건 비밀로 해 주세요……. 특수속성이거든요…….”
“그렇게 하마. 목격자가 없도록 사람을 물리겠다.”
조심스럽게 말하자 강정현 선생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정화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아까 한번 동조한 뒤로 진저리를 쳤던 감정을 다시 돌아볼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관찰해야, 제대로 정화할 수 있을 테니까.
“윽……!”
이런, 또 시작인가. 나는 걱정스럽게 앞을 보았다. 현호는 신음 소리에 그치지 않고 앞을 보다가 주저앉았다. 마력이 제어를 잃고 거세게 휘날렸다.
“이건…….”
“오, 오빠. 내버려 둬야 돼?”
“상황 보고.”
현호의 뺨에 검은 흉터가 생겨났다. 나는 당황하며 시야를 떴다. 일렁이던 검은 마력이 현호에게 모여들고 있었다. 사념에 휩쓸린다!
“오빠 저거 위험한 것 같은데요?!”
“그렇군.”
제현 오빠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주에 걸린 것 같아.”
“저주요?!”
“그래. 몸이 새까맣게 물들고, 이성을 잃고 흉포해지지. 시간이 지나 이성이 돌아와도, 검은 부분이 점점 커지고, 검게 변한 부위에서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게 돼. 이윽고 기력을 뺏겨 죽는다.”
“그런……!”
“형! 훈련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
“맞아. 우리가 생각해도 극악한 조치야.”
하지만, 제현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곳의 저주는 세월에 따라 많이 약해졌어. 지금이라면 너희들 힘으로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너희를 데려온 거야. 저주 같은 건 마력으로 밀어내.”
저주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해주마법을 사용하거나, 마력으로 밀어내거나, 나처럼 특수속성 마력을 사용하거나.
“진짜 너무……흑……?! 으윽…….”
“아파……!”
설상가상으로 옆에 있던 예슬이와 민희, 소영이까지 휘말렸다. 강정현 선생님이 냉정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저주에 휘말린 저 세 사람을 기절시키고, 저주를 밀어내는 거다.”
“와…….”
상황이 너무, 정말, 참. 실전 같은 훈련이라고 듣긴 했지만 암만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천만한 거 아닌가?
“은하랑 이성진 넌 이번엔 나서지 마.”
“저주를 풀 때도요?”
“그래.”
한숨을 삼키고 있자니 인하가 곧바로 달려 나갔다. 현호는 평소 물을 조형하는 것처럼 섬세하게 사용한다. 성격과는 다르게 예쁘고 유려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섬세한 맛을 잃고 거칠게 물을 휘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