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53
「우리를 실험체로 바치려는 거구나.」
「그 아이, 최대한 빨리 떠나라고 경고했었거든. 결국 이렇게 됐네.」
나는 주위에 슬쩍 환각마법을 뿌렸다.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계속 커플다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내 환각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내 원래 표정을 드러냈다. 인성이의 귀걸이가 작게 진동했다. 내가 만든 환각 아이템은 환각마법에 반응한다. 인성이도 평소의 표정을 드러냈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여기서 잡혀서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아. 작전 시행일까지 사흘, 아니, 사흘째 새벽으로 예정했으니까 따지고 보면 고작 이틀밖에 안 남은 거네. 탈출하는 건 사실 어렵지 않아. 그네들이 환각마법을 눈치채더라도 완벽하게 간파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응.”
그래, 내 환각마법은 만만치 않다. 같은 정신 계열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완벽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설령 마력 제어 구속구를 단다고 해도……은하 네 힘이면 그 정도는 가볍게 부술 수 있잖아. 그게 아니면 환각마법으로 잡힌 척해도 되고.”
“응.”
“하지만 위험하지.”
“…….”
“차라리 마을 밖으로 나가 미행을 따돌린 다음 환각마법으로 마을에 숨어 들어와 저택 옆에서 문이의 분신 혹은 내 전기파로 신호를 잡아서 해킹해 보는 건 어때? 전기 신호로 내부 구조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니까.”
“그것도 어제 문이랑 함께 확인해 봤을 때는 힘들었잖아.”
“건물 바로 옆에서라면 직접 내부 서버에 접속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확신할 수는 없는 거지?”
“어.”
“그럼…….”
나는 무심히 뒤를 돌아봤다.
“그럼 잡히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잖아? 바깥에서 흘러드는 것보다는 안에서 해킹하는 게 더 쉽고, 일단 안에 들어가면 문이가 전체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
인성이는 어쩐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동료들은 항상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본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위험 같은 건 지금 와서야.”
피바다 속에 걸어 들어간 적이 있다. 절망하고 절망했던 기억의 단편.
아직도 원하는 힘에 닿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워 전쟁 속에 끼어들었다가 팔다리 한쪽 정도는 날아가 봤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커븐 로드의 마법을 눈앞에서 봤다. 두려움에 떨었던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심장을 짓누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피를 흘리고 그것을 눌러 참았다. 그러다가 목숨의 위험이 클수록 내 마법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알았다.
필사적이 될수록 강해질 수 있다면.
심장을 꿰뚫려 본 적이 있다. 그럼에도 바로 죽지 않고 살아난 적이 있다. 내장을 꿰뚫렸으나 자체 치유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을, 마법으로 찔러 봤다.
흉터는 남지 않았다.
자신을 찌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가진 가장 위험한 마법을 나에게 실험했었다.
위험 같은 건 언제나 감수해 왔다. 위험하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순간 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내 시선과 마주하던 인성이가 쓰게 웃었다.
“그런가.”
“환각마법으로 잡힌 척할게. 그게 편하니까.”
“그래.”
환각마법을 사용해 몰래 잠입하는 것과, 우리를 붙잡으려는 자가 있고 그들을 환각으로 속여 잡힌 척하고 안에 들어가는 것은 천지 차이다. 우리를 붙잡은 자와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자는 자연히 우리에게 방심하게 된다. 게다가 원래 방범이라는 건 외부와 내부 사이의 ‘경계’를 가장 경계하는 법이다.
탈출은 어떻게 할까. 환각마법을 남겨 두고 탈출해서 다시 침입할까, 그게 아니면 잡힌 채로 작전을 시작할까.
“…….”
귀찮은 함정이나 감시 카메라에는 폭탄을 설치할 예정이고, 일부러 다시 밖에 나가서 침입할 필요는 없겠지. 안에서 바깥을 뚫는 것과 바깥에서 안을 뚫는 것, 당연히 후자가 훨씬 어렵다.
대원한테 잡혀 들어가는 거니 방범 장치의 인식도 쉽게 속일 수 있을 거고, 다른 정신계열마법의 여부도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문이로 연락을 하거나, 그게 안 되겠다 싶으면 꿈속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된다. 이 주변에는 데랜서가 없으니 멀리까지 정신을 날릴 수 있다.
안과 바깥에서 동시에 공략하는 것. 누구나 원하는 포지션 아닌가.
“그럼 시작하자.”
나는 몸을 돌렸다. 이들은 눈앞에서 보고도 환각을 눈치채지 못했다. 적어도 환각마법에 면역이 없다. 일부러 연기할 필요 없이 계속 환각을 틀었다.
뒤돌아본 내가 조금 불안한 얼굴로 왜 따라오는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남자들이 달려들어 우리 몸을 쓰러뜨렸다.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주위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싼다. 남자가 우리에게 마력 구속구를 씌울 때, 나는 구속구 위에 결계를 덧씌워 그 힘을 무효로 했다.
‘힘으로 뜯어낼 수 있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나와 인성이는 시선을 맞춘 후, 저항하지 않고 뒷골목으로 질질 끌려갔다.
남자들은 중간에 우리에게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들려고 했다. 환각으로 약을 먹은 척하고 눈을 감자, 그들은 우리를 수레에 넣어 옮겼다. 어느 집에 지하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지하로 들어가면서 나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환각을 조금 자제하고 제대로 누워 연기를 했다. 환각마법으로 변장한 사실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어차피 어느 길이든 변장은 했을 것이다. 환각마법으로 잘 조정해 보는 수밖에.
‘환각마법은 결국 정신마법이지만, 같은 정신마법이라도 몽현마법은 구현마법이나 실체화마법에 가까워. 내부인의 허락이 있으면 웬만한 방범 장치는 경계가 느슨해질 터.’
지하 길 끝 입구에는 문지기가 서 있었다.
“음? 새로운 실험체냐?”
“네. 이 시기에 겁도 없이 태평하게 여행하는 놈들이 있더군요.”
“큭. 바보 같은 놈들이군. 흐음, 여자는 제법 귀여운데?”
“그럼, 전해 드렸습니다. 이걸로 저희 아들은…….”
“그래, 알았다. 위에 이야기하지.”
“가, 감사합니다!”
리어카에 끌려가며 눈꺼풀 너머로 마력을 투시했다. 문을 통과했으나, 정규 루트로 들어왔기 때문인지 방범 장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후에 연구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손에 거쳐 검사를 받았다. 마력 검사와 속성 검사, 신분증 검사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어차피 ‘유미나’와 ‘최주한’은 평범한 일반인 마법사로 등록되어 있지만.
나는 환각마법으로 결과를 바꿨다. 역시, 바깥에서는 힘들어도 내부에서는 쉽게 간섭할 수 있다. 원래 어느 곳이든 그런 법이다. 내부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는 걸 일일이 규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도 감시하는 눈이 있어 사실 본래는 안에서도 하기 힘들겠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나는 검사 결과를 실체화해 그 기록이 그대로 남게 만들었다.
“C랭크 중위, 생각보다는 하는군. 하지만 이 시국에 태평하게 여행이라니, 멍청한 거 아냐?”
“그런 놈들이 가끔 있잖아. 우리야 뭐 다양한 샘플이 손에 들어오면 좋으니까.”
‘전혀 눈치를 못 채는군. 허무할 정도야.’
그 뒤 바로 옆방에 갇혔다. 우리 외에도 사람이 세 명 갇혀 있었다. 한 명은 어린아이였고, 한 명은 중년 남자였고, 한 명은 3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힉! 또 사람이…….”
“오늘 하루, 얌전히 있으라고.”
쳇.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웬만하면 사람이 없는 곳이 좋은데. 그게 더 활동하기 편하다.
들어가기 전에 상황에 맞춰 몸 주위의 환각을 견고히 했다. 마력 봉인 수갑의 효과에 맞춰 나와 인성이의 마력을 단단히 굳혔다.
쾅! 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우선 이 방 안에 설치된 마법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울음소리가 들렸다.
“흑……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린 남자아이였다. 기껏해야 10살 정도일까? 기분이 조금 착잡했다.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고 있을 수는 없기에, 감정을 억눌렀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을 리가 없잖아. 괜한 희망 심어 주지 말라고.”
“당신, 아이 앞에서 무서운 소리 하지 말아요!”
“알고 있잖아. 잡힌 이상 뻔하지. 인신매매든, 장기 매매든, 하여간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흐으윽…….”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와 인성이는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감시 카메라, 마력 감지 센서, 체온 감지 센서, 별게 다 있네.
‘마법 반응 없음. 다행히 잠입에는 성공했군. 의심조차 사지 않은 것 같지?’
여기에 설치된 마법들 전부 환각마법으로 속일 수 있는 수준이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문을 잠가 놓은 마법도 쉽게 풀 수 있다. 푼 다음 신호가 가지 않도록 속일 수도 있다. 혹은 느끼지 못하게 아예 마법을 통과해서 문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납치한 사람을 모아 두는 곳인데, 생각보다 경계가 강하지 않네. 아니면 강한 마법사를 가두는 곳이 따로 있는 걸까.’
그럴 가능성은 높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C랭크 수준도 되지 않는다. 들어오기 전에 검사를 거치기도 했고.
이 정도면 순조로운 잠입이다.
‘문제는 마법사의 기감인데.’
인성이는 기계에 전기 신호를 날려 해킹한다. 산델벤의 마법사 중에 기계에 민감한 마법을 지닌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이곳을 총괄하는 베일 프라이먼. 이 기지가 그의 영역일 가능성은…….
‘흠, 없는 것 같네. 그런 종류의 영역은 들어서자마자 바로 느낌이 오니까. 주위에 깔린 전선이 사람과 연결된 느낌은 안 들고.’
그렇다고 여기가 산델벤의 영역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역시 허락 없이 들어오는 침입자를 가장 경계하는 모양이다.
나는 나와 인성이 주위로 은밀하게 환각마법을 퍼트렸다. 혹시라도 우리가 하는 행동을 주위의 장치가 눈치채지 않도록. 눈동자를 굴려 바깥에서 탐지했던 가장 강한 마력을 확인했다. 주위 마력이 눈꺼풀 안으로 투시되어 뛰어든다. 정신방어마법의 여부를 확인했다. 꽤 여러 개 있다. 하지만 내 힘을 막을 정도의 마법은 없다.
소니아의 마법이 없는 건 틀림없다. 코앞에서 보았던 그 마법을 설마 내가 못 알아볼까.
나는 인성이와 한 번 마주 보고, 눈을 감았다. 이 행동만으로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챌 거라 믿는다.
나는 곧바로 꿈속 세계에 빠져들었다.
꿈은 의식의 통로, 혹은 영혼의 통로다. 꿈속에서 현실을 둘러보는 것은 바로 내 영혼이며 정신체다. 꿈을 통해 현실을 보는 것은 내 마법임과 동시에 특수능력, 특수능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적다.
내 정신체를 알아보는 사람도 일부 있다. 예를 들어 나처럼 영혼을 보는 사람. 그들은 내 기척을 명확하게는 아니더라도 느낀다. 미영 할머니의 친구인 해림 할머니가 그런 부류였다. 또 트라베리아의 마법사도 그렇다. 그들은 영혼의 존재를 알고 있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지어 영혼을 이용하고 있다.
혹은 민감한 사람도 느낀다. 예를 들어 혼자 있을 때 어딘가에서 시선을 느끼고 돌아볼 경우. 민감해서 귀신의 시선을 어렴풋이 느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느끼되 확신은 하지 못한다.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맨 먼저 가장 강한 마법사에게, 베일에게 날아갔다. 그가 나를 느끼거나 볼 수 있는지 꼼꼼히 점검했다.
느끼지 못한다는 걸 확인한 후 베일 프라이먼의 정신세계에 들어갔다. 정신세계에 들어간 이상 상대의 머릿속은 이미 내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허무하게 처리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지. 현실에서 싸워도 싱겁게 끝날 테니, 이 남자는 내 상대가 아니다.
나는 정신세계에 물음을 던졌다.
“당신의 마법은?”
『메인마법: 연기마법
서브마법: 경화마법, 조합마법
보조마법: 전파마법』
베일 프라이먼의 상대는, 아마 인성이일까. 나는 다른 A랭크 마법사의 마법도 차례차례 확인했다. 베일 프라이먼의 머릿속에 전부 있었다.
그 후 키메라의 마법도 확인했다. 얼음마법을 쓰는 키메라와, 몸에서 바위를 생성해 날리는 키메라. S랭크 두 마리.
이 녀석들을 내가 맡고, 소영이와 인하, 인성이가 A랭크 마법사를 한 명씩, 성진이가 A랭크 마법사를 두 명 맡으면 딱 좋지 않을까?
‘그 녀석이라면 반대하겠지.’
성진이 우리를, 나를 걱정하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달갑지 않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몸을 돌볼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고통을 차단할 수 있고, 금방 치유되는 몸으로, 몇 번이고 무모한 싸움과 훈련을 했다. 그때부터, 계속, 필사적으로, 그렇게 강해졌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성진, 너는 왜…….
나는 신경 쓰이는 부근을 체크했다. 연구실, 다른 사람들이 갇혀 있는 장소, 키메라가 있는 장소. S랭크 키메라 외에도 키메라가 많다. 폭탄은 쓸 데가 많으니, 키메라는 전부 내가 맡을까? 돌아다니며 함정이 있는 장소도 어느 정도 알아냈다.
인공 마법사는 그 두 A랭크를 제외하고도 제법 있었다. 이지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고, 성격이 변한 사람도 있고, 아예 멀쩡한 사람도 있다. 실력 역시 다양했다. C랭크, B랭크. 나는 그들이 있는 장소도 체크했다.
‘내 마법을 막을 수 있는 곳은 키메라 우리, 훈련실, 실험실, 통신실 정도. 다른 곳은 조금만 힘을 가하면 무너지겠군. 싸움터를 신경 써야겠네. 무슨 일이 생긴 게 바깥에 들키면 성가신 손님이 올 수도 있으니까.’
나는 하멜 리디언을 떠올리며 생각을 이어 갔다.
혹시 모르니 하멜 리디언과 어떻게 교류를 하는지도 확인했다. 기본적으로는 석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실험 정보를 교환한다. 다만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하멜이 예고 없이 찾아올 때도 있다고 한다.
‘하멜과 마지막으로 교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어.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고서야 설마 하멜과 마주치는 일은 없겠지.’
베일을 통해 그 이상 하멜의 정보를 캐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소니아의 마수는 정신세계를 돌아다니며, 트라베리아에 대해 정신세계에서 추적하려는 자를 경계한다. 처음엔 자신들의 정보를 아는 자가 별로 없는 데다 어차피 중요한 정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나’와 마주친 이후에 그렇게 변했다. 그녀는 아직 나를 쫓고 있다.
하물며 베일은 트라베리아 휘하에 붙은 뱀. 정신세계에서의 접촉은 언제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아무리 소니아라도 타인이 직접 보고 들은 내용까지 추적해 벌할 수 있는 힘은 없다. 그 증거로 딱 한 번 보았던 나를 추적하지 못했다. 깨끗하게 흔적을 없애는 내 정화마법의 효력이기도 할 거다. 어찌 되었든 소니아의 꿈속은 아마 나만큼 범위가 넓고 광범위하지는 않은 거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하멜의 이름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불안한 건 사실이지만 확률에 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기지에 갔다. 기지의 통신실은 인성이가 장악하고 있지만 그 토대는 문이다. 우리의 ‘영역’. 정말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당연하게 연락을 취할 수 있다. 문이를 이용해 기지에 염사 사진을 남겼다. 동료들이 자료실에 돌아오면 바로 볼 수 있도록 메시지도 띄웠다.
『안에 잠입했음. 예정대로 이틀 후 침입 개시. 우리는 안에서부터 공략하겠음. 곧 작전안과 필요한 정보를 보낼 테니 대기.』
뒤져 보니 인성이가 미리 짜 두었던 작전안도 있다. 정보가 불완전했다면 사용했을 미완성 작전안이다. 그것도 띄우고 다시 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신음하며 눈을 떴다.
“으음…….”
“일어났어?”
눈을 뜨자 이미 일어난 척했는지 일어나 있는 인성이와 그런 우리를 침울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 사람이 보였다.
“미나 너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지?”
인성이가 내 가명을 부르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훑었다. 그러나 눈은 전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주위에 어렴풋이 뿌렸던 마력을 형태로 만들어 센서를 속였다. 내 어깨에 올린 인성이의 손을 잡으며 기억을 전하자 인성이의 오른쪽 눈에서 기이한 빛이 일었다. 그의 컴퓨터마법이다.
“여긴……어디야? 우리, 분명…….”
“방심한 것 같아. 납치됐어.”
“납치라고?”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 그래……. 나, 분명히……우린 분명히…….”
이내 나는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메라가 하나, 둘, 셋, 세 개나 있네. 하지만 충분히 환각으로 속일 수 있다.
“여, 여기 어디야? 우리 정말 납치된 거야?”
“괜찮아. 괜찮아, 미나야. 분명히 나갈 수 있을 거야. 우린 C랭크 마법사잖아.”
“마, 맞아. 우선 여기가 어딘지부터…….”
“글쎄다.”
우리와 같이 이 방에 갇혀 있던 남자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너희가 아직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긴 뱀 둥지야.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배, 뱀 둥지? 저희가 지금 트라베리아의 휘하 조직에 납치당했다는 건가요?!”
“그래.”
“그런……!”
나는 연기를 하며 인성이를 꽉 끌어안았다.
“어, 어떡해. 우리 어떡해!”
“진정해, 미나야.”
“어떻게 진정하라는 거야?”
“미나야…….”
“흑……흑…….”
나는 울먹이는 눈으로 고개를 숙이며 환각마법을 사용했다. 우리와 똑같은 또 다른 인영이 우리 앞에 생성되었다. 끼고 있던 마력 구속구도 환각에 그대로 옮겨 갔다. 나는 표정을 싹 바꿨다.
“자, 그럼 2차 탐색 부탁할게.”
“오케이.”
우리는 미련 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손을 놓았다. 저들의 눈이나 카메라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며 울고 있는 것으로 보이리라. 내가 환각마법으로 기계를 속이는 동안 인성이는 그림자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감시 카메라의 위치도 전했으니 나머지는 인성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인성이도 나와 마찬가지로 잠입이 특기다. 거기에 평소에는 주로 변장용으로 사용하는 환각 아이템과 문이를 통해 다운받은 ‘환각 프로그램’도 있으니까. 내 마법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다.
그사이 나는 문이를 불렀다.
“『문자마법 레벨 2』.”
「시퀀스를 시작합니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환각마법은 기계 감지조차 속인다. 메인 프로그램에 정신마법 방어 기능이 없었다면 바깥에서 충분히 해킹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안에서라면 다르지. 없는 것처럼 방어벽을 속이며 흘러 흘러 비밀 정보를 보는 것도 가능하고, 다른 아이피인 척하는 것도 가능하다.
환각마법으로 만든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계속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마법을 쓰려 하자, 마력 구속구에서 번개가 일어나며 ‘나’를 덮쳤다. 아무래도 환각에다 마력 구속구를 옮기길 잘한 것 같다. 꺄아악! 환각마법으로 만든 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인성이의 환각이 내 환각을 부축했다.
나는 환각마법이 멋대로 움직이게 놔두며 아래에 깔린 전기선을 통해 문이를 가까이에 있는 컴퓨터에 침입시켰다. 문이는 환각마법이 특기다. 정확히는 내가 쓸 수 있는 기술은 다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프로그램 속에서의 환각이 특기다. 해킹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해킹,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렇게 해킹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해킹 실력만 보면 인성이보다 문이가 뛰어나다. 깊게 숨겨져 있는 중요한 정보는 나중에 보도록 하고, 우선 관내에 설치된 기계를 통제하는 제어실을 살펴볼까.
문이는 순식간에 정보를 한곳에 정리했다. 평소보다 신중한 것이, 확실히 여기 보안이 뛰어나긴 뛰어난가 보다.
그사이 환각 인형이 움직이며 방에 설치된 함정을 계속 알려 줬다. 출구를 찾는 듯한 행동을 보이자 이번엔 바닥에서 번개가 일어났다. 흐음, 아무래도 저 구속 장치는 추적기만 붙어 있지 컴퓨터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는 아닌가 보다.
인성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찾은 정보가 내게 전송됐다. 우리 마법을 견딜 수 있는 장소, 위험한 함정이 있는 곳, 중요 감시 카메라, 건물 지도가 점점 넓어졌다. 폭탄을 설치한 장소는 붉은 빛이 점멸한다.
나는 보안 때문에 인성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의 보안을 조심조심 풀며 컴퓨터에다 환각마법을 걸어 로그인했다. 알고 보니 그 방은 마약 창고였다.
『마력 증강제 A-ptr30』
“…….”
아직까진 용케 들키지 않았다. 멈칫멈칫하며 조사를 계속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메일 함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 문이다.
그때 갑자기 모니터에 메일 수신 표시가 떠올랐다.
‘깜짝이야. ……어라?’
심지어 발신인이 ‘하멜(Hamel)’이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문이가 읽은 기록이 남지 않도록 메일의 미리보기 기능을 클릭했다.
『내 제자 실비가 너희가 이번에 만든 약에 관심이 있다네.
주말쯤에 같이 찾아갈 테니까 준비해 둬
재미있는 자료 기대할게』
그 메일을 보고 나는 얼어붙었다. 지금 온 메일. 오늘은 목요일이다. 주말은……이틀 남았다.
‘제기랄.’
이틀이면 하필 우리가 작전을 시행하기로 한 날 아닌가. 무슨 이런 엿 같은 상황이 다 있지? 어쩜 운이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을 수 있는지. 그나마 이 사실을 미리 알아서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걸까.
하멜은 커븐 로드는 아니지만 엘리시아 루미드의 부하이자 웬만한 실험의 관리자로서, 실력은 S랭크 상위다. 50위 전후라고 하던가? 말하자면 미영 할머니와 엇비슷한 실력자.
‘이 여자가 오면…….’
이 여자가 오면 이번 계획은 실패한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이 여자가 오기 전에 여기를 무너뜨리고 튄다. 둘째, 여기에서 탈출하고 이곳을 무너뜨리는 걸 뒤로 미룬다. 셋째, 마약 정보를 세계 수호 연맹에 넘겨 그들을 전면에서 싸우게 하고 정보만 가지고 튄다. 넷째, 싸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트라베리아의 마법사. 저절로 이가 갈린다.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실력으론 벨라 트리저를 죽일 수 없다. 엘리시아 루미드를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이 여자는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몰라. 적어도 커븐 로드보다는 가능성이 있다.
‘맹세했잖아? 내가 처음으로 죽이는 자는, 벨라 트리저다.’
하지만 이르다. 하멜을 쓰러뜨리면 우리는 정체를 들키지 않고도 트라베리아의 추적을 받는다. 주목을 받는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우리 힘으로는 아직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옅게 남은 흔적을 토대로 그들은 우리를 잡아낼 수 있을까? 싸우고 싶다. 쓰러뜨리고 싶다. 마력을 삼키고 싶어. 그녀의 마력을 삼키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겠지?
본능을 눌러라. 증오심을 억눌러. 철저하게 이성을 되찾아야만 싸울 수 있다. 나는 투쟁심을 앞세워 싸우는 타입이 아니다. 냉정을 철저하게 갈고닦아야만 최고의 상태로 싸울 수 있다.
“으득.”
이를 가는 소리조차 환각마법에 묻혔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인성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인성이는 저녁이 된 후에야 돌아왔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나는 차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문제가 생겼어, 인성아.”
“뭐? 문제라니?”
“이틀, 혹은 사흘 후, 강철의 마녀가 찾아와. 트라베리아의, 하멜 리디언이.”
“……!”
“어떻게 할래?”
인성이의 긴장에 가득 찬 시선과 내 분노를 숨긴 차가운 눈동자가 맞았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침묵을 유지했다.
##02. 산델벤
이성진과 강인하, 이소영이 돌아왔을 때 그들을 맞은 것은 김미영과 김미영의 다리 옆에 서 있는 라라였다. 그녀는 세 사람을 통신실로 불렀다.
“은하랑 인성이는 아직 안 왔나요?”
“바깥 조사만으론 확실하지 않은 참에 우연히 실험체로 납치되어 잠입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작전 시행일에는 변경이 없고, 시일이 되면 너희들은 밖에서, 그 녀석들은 안에서 무너뜨린다.”
“잠입이라…….”
이소영의 낯빛이 잠시 걱정으로 물들었으나, 곧 풀렸다.
“뭐, 괜찮겠지. 혼자라면 좀 걱정됐겠지만, 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