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57
하멜이 휘두르는 빗자루가 바닷물을 갉아먹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거센 바람을 뿌린다. 유은하는 무시무시한 마력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이를 악물었다. 역시 지금의 그들로서는 이길 수 없는가 보다. 하멜은 아직 혈족마법조차 쓰지 않고 있다.
‘아니야. 이렇게 멀 리 없어. 쓰러뜨릴 거야. 지금, 쓰러뜨린다.’
[좀 더 자세히…….]“지금 대화할 시간이 없어! 빨리 마무리해!”
유은하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통신을 끊었다. 유은하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이 할 일을 끝내면 문이가 적당히 설명할 것이다.
그들이 할 일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정보 탈취, 두 번째는 마을 보호.
그다음은 유은하와 강인하의 몫이다. 하멜을 쓰러뜨린다. 어떻게든 소니아의 마법을 피해 하멜의 정신세계에 직접 들어가 정보를 빼 온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훈련해 왔어. 단시간에 따라잡기에 벨라 트리저는 너무 벅차니까. 죽이기 전에 세계가 멸망할 테니까!’
하멜이 빗자루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단순히 마력만 담겨 있다. 휘둘러진 마력이 바닷물을 거세게 일으킨다. 바닷물이 하멜의 마력이나 빗자루, 망토 등을 녹이려 들었다. 결국 녹진 않았지만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뭐야? 염산 바다야?”
강인하의 빛이 쉴 새 없이 날아가고, 바다에서 바닷물이 쉴 새 없이 솟아오른다. 눈꽃이 얼어붙으며 바다를 뾰족뾰족하게 얼린다. 그 얼음이 나뭇가지처럼 뻗어 하멜을 찌른다. 그러나 하멜은 빗자루에 올라탄 채로 그 모든 공격을 피했다.
“아하하하!”
‘내 세계라고. 어떻게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유은하가 속삭였다.
“문이, 마법 증폭. 내 눈을 레이한테 링크해. 레이, 마력을 잘 봐.”
가면에도 시야공유마법이 걸려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이번에 ‘보려 하는’ 것은…….
「예스, 마스터.」
“알았어, 팬텀.”
‘아직 힘들지만…….’
유은하는 새롭게 시야를 떴다. 마력, 세계, 영혼을 보던 눈에 조금 다른 무언가가 겹쳤다. ‘생명’이다.
이성진의 죽음을 보는 눈과는 달리 유은하의 생명을 보는 눈은 완벽하지 않다. 지속 시간도 30분을 채 못 넘긴다.
이건 말하자면 보다 근원을 보는 눈이다. 모든 것에는 마력이, 더불어 ‘생명’이 깃들어 있다. 마법의 핵심이, 어디를 공격하면 더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지가 좀 더 선명하고 다양하게 보인다. 마치 팔이나 다리, 심장이 보이는 것처럼.
유은하는 눈을 깜빡였다. ‘생명’이 눈 안에서 깜빡깜빡 점멸한다. 평소에도 봐 왔던 힘인데 하멜의 것은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무언가 더……맥동 치는 듯한……. 유은하는 숨을 삼켰다.
‘뭐지? 이 느낌은.’
시야를 공유하면 동료들도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통해 마법 궤도를 조금 예측할 수 있다. 유은하처럼 감각까지는 따라오지 않지만, 익숙해지면 굉장히 유용하다.
“파이어 월!”
하멜이 있던 자리에서 불꽃이 일며 폭발했다. 하멜의 마력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던 유은하가 정신을 차렸다. 하멜의 빗자루가 불꽃을 싸그리 집어삼켰다. 하멜의 몸을 태우고 있는 빗자루의 싸리 부분이 똑바로 두 사람을 향했다. 유은하는 하멜의 빗자루에 시선을 집중했다.
‘하멜의 메인마법은 정령마법일 터. ‘리디언’이니까 틀림없어. 그런데 저 마법은 뭐지? 저 빗자루, 마법 무구……아니, 저 빗자루 자체가 마법인가?’
키이잉. 빗자루에서 엄청난 마력이 느껴졌다. 빗자루 주위가 붉게 물든다. 유은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이탈했다. 유은하가 있던 자리에 어둠 계열 불속성 마력 포가 지나갔다. 거대하게 집약된 마력 포는 바닷물을 증발시키고 하늘에 도달해서 폭발했다. 유은하가 만든 영역에 구멍이 뚫렸다.
검은 하늘이 붉게 물든다. 불꽃이 하늘을 태우며 좀먹는다. 바닷물이 말라붙고, 주위 광경이 일그러진다. 분명 피했다. 하지만 뜨거웠다. 마력의 여파로 온몸이 찌릿찌릿 달아오른다.
‘인하의 마법을 흡수, 강화해서 쏜 건가? 아니면…….’
“제피로스와 비슷한 마법인가?”
“어쩌면.”
유은하가 이를 악물었다. 두 사람이 느끼는 건 ‘경이’에 가까웠다. 그러나 하멜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평소보다 위력이 약한걸?”
‘저게 영역 때문에 약해진 위력이라니!’
유은하는 이를 악물며 마법을 지정했다. 문이가 빠르게 환각 세계를 복구한다. 소리 없이 또 한 번 어둠이 터졌다. 바다 위에 어둠 기둥이 솟아났다. 지정한 장소가 하멜의 ‘몸’이었기 때문에, 또한 이 세계가 유은하의 세계였기 때문에, 반드시 하멜의 몸을 휘감고 터진다는 법칙에 따라 하멜의 몸은 피할 여지도 없이 어둠에 갇혔다.
“까다로운 마법을 쓰네?”
그러나 하멜은 어둠을 빗자루로 가볍게 털어 냈다. 강인하의 주위로 십자 모양의 커다란 검이 수십 개 생겨났다. 빠른 속도로 하멜을 향해 쏟아진다. 날아가던 검 몇 개가 합쳐져 번개를 뿌리며 증폭했다. 접근전이 특기인 강인하가 일부러 원거리마법만 사용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하멜을 상대하면……먹히고 말 테니까!
하멜은 빗자루로 빛의 검을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바다가 솟아오르며 그것을 막았다.
“방해야.”
바닷물이 하멜의 빗자루에 흡수됐다. 공격을 막을 찬스를 놓친 하멜에게 빛의 검이 쏟아져 내렸다.
“흥!”
빠른 속도였지만 하멜이 간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멜은 뒤로 물러나 몇 개는 피하고 나머지는 빗자루로 쳐 내려고 했다.
그러나 빛의 검 위로 갑자기 어둠의 검이 나타나 함께 하멜을 노렸다. 어둠의 검과 빛의 검이 합쳐졌다. 빛과 어둠의 속성 융합, 위력이 무시무시하게 증폭한다. 그 힘이 영역의 힘을 받아 더 증폭했다.
하멜이 빗자루에 더 큰 마력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빗자루가 흡수한 바닷물이 빗자루 안에서 반발을 일으켰다.
‘윽…!’
하멜은 혀를 차며 억지로 마법을 썼다. 콰앙! 촤아아악! 마법에 의해 터지며 솟아오른 바닷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멜은 물론이고 유은하와 강인하까지 바닷물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그 바닷물은 하멜의 힘은 빼앗을지언정 강인하와 유은하의 마력은 오히려 더해 준다. 하멜은 불쾌한 눈으로 바닷물에 푹 젖어 무거워진 제 옷과 빗자루를 보았다. 하멜은 빗자루가 삼켰던 바닷물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바닷물이 저항하며 빗자루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쭈, 이것 봐라?”
어느새 눈꽃을 막던 갑옷의 힘도 사라졌다. 눈꽃이 바로 하멜의 피부에 스며들었다. 하멜은 빗자루를 꼭 쥐고 다시 유은하 일행을 겨누었다.
그그극,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하멜이 눈치챘을 땐 세계가 회전해 있었다. 아니, 회전한 건 바다뿐인가. 발아래에 있던 바다가 어느새 사선으로 위에 쏠려 있었다. 사선이 된 바다와 멀쩡한 하늘, 바다가 다시 평행이 되기 위해 아래로 쏟아졌다. 하멜은 빗자루를 붙잡고 주위에 방어 막을 쳤다.
빗자루가 하멜의 힘에 저항하며 요동친다. 하멜은 빗자루에 더 마력을 부어 넣었다. 일렁이던 방어 막이 평소보다 조금 불안정하게 형태를 갖추며 굳어졌다.
거센 파도 너머로 하멜은 상대의 마법을 탐색했다. 위기감은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위험한 상대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방어 막에 감싸인 하멜의 몸이 바다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어둠에서 나타난 상어 무리가 하멜을 공격한다. 평범하게 빗자루로 방어하지만, 빗자루가 물어뜯긴다.
‘이상한데? 이 정도 마법에 내 빗자루에 상처가 난다고?’
객관적으로 보면 유은하와 강인하는 강하다. 허나 그게 S랭크 상위 마법사에게 통할 정도냐고 묻는다면, 부족하다. 부족하기 그지없다.
S랭크 하위 사이에서의 실력 차와 상위 사이에서의 실력 차는 전혀 다르다. 50위 차이마다 벽이 있다고 보면 된다. S랭크와 A랭크를 가르는 것보다 큰 벽이 단계별로 있다. 특히 50위 안쪽부터는 압도적이다.
그러니 하멜에게 있어 유은하의 마력은 ‘고작’.
고작 이 정도 마력에 자신의 무기에 상처가 난다고? 하멜은 자신을 물어뜯은 상어 무리를 바라보았다. 아프다. 하지만 이 감각은 뭐지? 현실 같지 않은, 꿈에서나 느낄 법한 몽롱한 감각.
하멜은 입가를 씩 끌어 올렸다.
“재미있잖아?”
하멜은 킬킬 웃으며 빗자루를 쥐었다. 저항하던 빗자루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빗자루에서 빛이 일더니 모습이 변했다. 이윽고 하멜의 손에 쥐어진 것은 지팡이였다. 지팡이라고는 해도 땅을 짚기 위해 사용하는 그런 지팡이가 아니라 마법사가 사용하는 지팡이다. 막대는 검고, 막대 꼭대기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광석이 달려 있었으며, 그 주위로 은줄과 링, 보석 장식이 흩어져 있었다.
하멜이 지팡이를 움직이는 순간 바다가 갈라졌다. 심해의 압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다가 갈라지며 하늘이 열렸다.
하멜이 하늘 위로 나오고 보니 바다 위에는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커다란 마법진과 어마어마한 어둠마법, 빛마법이 그 눈보라에 휘감긴 채 대기하고 있었다. 어둠을 뿌리며 서로 동조하는 어둠의 공, 그것과 똑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 빛의 공, 마법진의 힘으로 그게 수십 개로 불어나 있다.
“가라.”
강인하의 읊조림과 함께 어둠과 빛이 빠른 속도로 하멜을 향해 달려갔다.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마법을 뒤따랐다. 어둠과 빛을 더 강하게 만들려는 양.
저런 마법에 맞으면 웬만한 마법사는 온몸이 가루가 되어 부스러지고 만다. 고작 사람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산은 어떨까? 웬만한 산도 다 부서지고 밑동마저 날아가겠지. 지각은 물론이고 맨틀까지 뚫고 말 거다. 하지만 하멜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마법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것조차 하멜에겐 그럭저럭한 마법일 뿐이다.
눈보라가 하멜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눈보라는 거칠고 따가웠다. 눈보라에 닿을 때마다 주위로 퍼트린 마력이 눈보라에 흡수되는 게 이제는 하멜에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하멜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팡이에 마력을 응축했다. 하멜에게 달라붙던 눈보라조차 걷어 버릴 만큼 강렬한 마력이 지팡이에 모인다.
투명한 크리스털에서 뻗어져 나간 일직선의 빛이 모든 것을 갈랐다. 공격 범위에 있는 모든 마법을 소멸시키며 나아간다. 세계를 이루는 마력의 집합체가 폭발하여 산화되고, 눈보라는 증발되어 사라지고, 바닷물이 말라붙고, 영역으로 만든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열렸다.
‘이것도 평소보다 위력이 약하네. 아무래도 이 영역 탓인가 봐.’
회심의 마법이 파훼됐으니 분할 만도 할 텐데 유은하와 강인하는 쉬지 않고 다음 공격을 날린다. 하나하나 강력했다. 어둠과 빛이 절묘하게 합쳐져 엄청난 위력을 발한다. 그것을 조절하는 건 저 은갈색 눈동자의 여자다. 하멜은 다시금 모든 마법을 갈라 버렸다.
이번 마법은 틀림없이 직격타였다. 하멜의 마법 바로 옆에 어둠의 검이 생성되어 꽂혔다. 그것만으로 마법의 궤도가 변한다.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이어 갔다.
“아하핫! 과연, 나한테 싸움을 걸 만하네!”
검은 치마에 검은 망토를 입은 마녀의 손에 끝이 뾰족한 검은 모자가 생겨났다. 반으로 접힌 고깔모자, 일명 마녀 모자다. 검은 모자 위로 얇은 리본과 은사 장식이 흐트러진다. 마녀는 모자를 썼다.
하멜은 텔레포트 했다. 여태까지 갉아먹은 어둠마법과 빛마법을 죄다 돌려줄 생각이었다. 지팡이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응축되며 그 영향으로 하멜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였다. 강인하와 유은하가 흠칫하며 피했지만 여전히 사정거리 안이었다.
“하아아앗!”
하멜이 휘두른 지팡이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튀어나왔다. 어둠, 빛, 불꽃, 각각 튀어나온 힘이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을 지니고 유은하와 강인하에게 달려간다.
‘자, 어떻게 대처할 거니?’
마법을 피하면 이번에야말로 이따위 영역은 전부 무너진다. 유은하가 강인하의 손을 붙잡고 텔레포트 했다. 그래 봤자 사정거리 안이었다. 유은하가 똑바로 마법을 노려보았다. 세계가 움직였다. 세계에서 환원된 유은하의 마력이 하멜의 마력을 기이하게 감싸고 돈다. 하멜의 마법이 유은하의 마력을 튕겨 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뭐야?”
아무리 하멜에게 흡수되어 재조합되었을지언정 저 마법의 근본은 유은하와 강인하에게서 나왔다. 마법이 유은하의 마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유은하와 강인하에게 직격타였을 마법이 갑자기 두 사람을 피해 양쪽으로 갈라졌다. 쏘아지던 주포의 반이 쩌저적 굳으며 결정으로 변한다. 그 결정이 남은 마법을 막아 내며, 이윽고 산산이 부서졌다.
“하아…하아…….”
유은하는 고개를 숙이며 숨을 골랐다. 하멜은 한순간 아연해졌다. 그러나 곧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소리 높여 웃었다.
“아하하하! 정말…재밌는데? 킥킥……!”
싸움 속에서 하멜은 서서히 유은하의 마법에 다가가고 있었다. 하멜은 다시금 텔레포트 해 유은하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유은하가 양손을 내뻗어 지팡이의 마력을 막았다. 단순이 방벽을 치는 게 아니라 지팡이를 둥근 결계에 가뒀다. 결계에 갇힌 지팡이의 수정에서 빛이 점멸했다. 파직파직, 아니, 빠지직? 수정에 금이 간다.
‘재밌어. 정말 재밌어.’
하멜은 지팡이 전체에 마력을 넣어 결계를 깨부쉈다. 그 반동으로 유은하가 뒤로 날아갔으나, 이내 제동을 걸고 멈춰 섰다. 새까만 코트가 조금 찢어졌다.
하멜의 지팡이가 변했다. 투명했던 광석이 진홍색으로 바뀌고, 광석 주위를 검은 금속이 둘러싸며, 그 아래로 고리에 걸린 보석이 짤랑짤랑 흔들렸다.
광석 주위로 다시금 강대한 마력이 모이며 주위로 먹구름이 흐트러졌다. 바다고 하늘이고 죄다 일그러진다. 유은하가 경악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디멘션 박스!”
「특수 기술 발동.」
『디멘션 박스─24중 결계』
하멜의 주위에 거뭇하면서 반투명한 다각형의 공간이 겹겹이 결계로서 형태를 갖춘다. 서로 다른 각도로 쳐진 결계는 멀리서 보면 마치 블랙 다이아몬드 같았다. 결계 안으로 검은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곳곳에 게이트 구멍이 뚫렸다.
쿠궁! 쿠구궁! 분명 결계 안에 가뒀음에도 불구하고 유은하의 세계 전체가 흔들린다. 하멜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천지마법. 프로켈라 오브 어비스(심연의 폭풍)!”
유은하와 강인하는 다급하게 게이트 안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어떤 저항도 허무하게, 녹색 폭풍 앞에 모든 것이 부서져 갔다. 구름이 세계를 녹이고, 폭풍은 천지를 부쉈다. 바다가 전부 휘말리고, 산산이 쪼개지고, 세계가 부서져 내렸다. 이번에야말로 유은하의 영역은 산산조각 났다.
“아악!”
유은하와 강인하도 폭풍에 휘말렸다. 휘말리기 직전 유은하는 가까스로 산산이 부서져 가는 영역의 단편에 강인하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폭풍에 휘말린 끝에 유은하와 강인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영역이 부서지자 마법은 이번엔 현실의 풍경을 부쉈다. 건물 벽은 대부분 날아갔고, 땅은 새까맣게 파헤쳐졌다. 유은하와 강인하의 가면은 반쯤 부서져 있었다. 전투복도 꽤나 엉망이다. 유은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었다.
하멜은 두 사람으로부터 제법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하멜이 유은하와 강인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너희 정말 재미있구나? 내가 느낀 마법 위력은 7인데 실제로 맞아 보면 9가 돼. 내 마법도 마찬가지야. 내가 너희에게 날린 마법은 9인데 막상 너희한테 다가가는 마법은 7이거든? 정말 열심히 노력한 모양이구나.”
하멜이 킥킥 웃었다.
“하지만 알고 있지? 그 모든 걸 무시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제법 노력한 건 알겠지만, 그 정도 실력으론……나조차 못 이겨.”
으득, 유은하가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하멜의 마법에 엉망진창으로 당했고, 그 위력을 버티기 위해 상당한 마력이 소비됐지만 그래도 아직 싸울 힘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녀를 이길 수 있는 기술은 없다.
유은하에게는 많은 기술이 있다. 아직 최대 공격 기술이 세 개나 남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멜이 방금 썼던 마법에는 비하지 못한다.
‘환각 결계도 부서졌다. 이미 바깥에서도 눈치챘겠지.’
강인하의 손에서 마법이 펼쳐졌다. 눈부신 금빛 기둥이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하멜은 그것을 고스란히 지팡이로 흡수해 강인하와 유은하에게 되돌렸다. 유은하가 다시금 하멜에게 되돌렸지만, 하멜은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침으로써 모든 것을 뿌리쳤다. 쿠구구, 언덕이 부서져 내렸다.
“하아……하아…….”
유은하는 난도질당한 소매와 함께 부상을 입은 팔을 꾹 붙잡았다. 유은하의 회복력은 웬만한 S랭크 저리 가라다. 하지만 그런 유은하조차 바로 회복하지 못하는 상처가 있다. 그건 바로 유은하가 정화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마력이 담긴 힘에 당한 상처다.
게다가 영역에서 상대해 보고 안 것이지만 하멜의 마법은 ‘정화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눈동자에 담기는 마법은 언제나 생기 있게 맥동 친다. 벨라의 마법과도, 엘리시아의 마법과도 다르다. 생명에 가까운 ‘순수한’ 마법이다.
유은하의 주위로 생겨난 별 조각이 유성이 되어 하멜을 향해 날아갔다.
“『란스의 성배!』 『유성우!』”
유은하의 앞에 금색 성배가 내려섰다. 유은하가 화려한 성배를 양손으로 붙잡자 술잔 안의 감로수가 은하수처럼 흩뿌려졌다. 하멜은 아까보다 한층 강력해진 마력에 한순간 흠칫했다.
『
일정 시간 동안 마력x5
특수 기술x10
공격력x6
방어력x10
모든 마법x7
적에게x12의 데미지.』
란스의 성배 역시 유은하가 예전 썼던 소설에서 따온 기술이었다. 축복을 받은 자의 힘을 한계까지 증폭시키는 서포트마법. 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에 하루에 쓸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은하수에서 별이 떨어져 내린다. 유성우가 하멜을 노렸다. 피했다고 생각했던 유성우가 하멜을 집요하게 쫓았다. 하멜이 지팡이로 유성우를 하나하나 쳐 냈다.
유은하는 유성우 사이를 날아 하멜에게 다가섰다. 성배를 검을 쥐는 자세로 잡아 들자, 금색 성배가 금색 검으로 변했다. 물방울 같은 마력이 흘러넘친다. 유은하는 양손으로 검을 붙잡아 온 힘을 다해 하멜에게 내질렀다.
쿠아아아아!
빠직, 빠직, 하멜의 지팡이가 겨우 형체만 남았다. 반면 유은하의 검은 산산조각 났다. 유은하는 숨을 몰아쉬었다. 유은하를 지켜 주던 금빛 광채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하멜은 반쯤 부서진 지팡이를 보고 입가를 씩 끌어 올렸다.
유은하의 코앞에 빛 가루가 떨어진다. …나비 날개? 정신을 차렸을 때 유은하는 얼굴에 충격을 받고 저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쿠당탕!
잔해에 처박혀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어느새 하멜의 주위로 검녹색 나비 두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멜의 지팡이에서 새롭게 빛이 일었다. 빛이 사라졌을 때 하멜은 새로운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녹색 보석에서 아까보다 더 강대한 마력이 느껴진다.
“하아, 하아…….”
‘저 나비는…….’
아까의 충격으로 생명을 보는 눈이 닫혔다. 시야를 다시 떠 보려 했으나 눈앞이 살짝 점멸할 뿐 변화가 없다. 한동안 사용할 수 없을 모양이다.
유은하는 숨을 몰아쉬며 나비를 노려보았다.
‘설마, 정령?’
애써 주위에서 마력을 불러들여 회복하려는 유은하를 보고 하멜이 씩 웃었다.
“너 정말 재미있구나? 인정하는 의미로 특별히 내 메인마법의 이름을 알려 줄게. 다만 이 이름을 들으면 돌이킬 수 없다? 내 ‘표적’이 되었다는 뜻이니까.”
“메인……마법?”
애써 서 있던 유은하와 ‘심연의 폭풍’의 영향으로 아직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던 강인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리디언’이니까, 정령마법, 인 게…….”
“아, 확실히 물려받긴 했는데, 그렇다고 꼭 메인마법으로 삼을 필요는 없잖아? 정령도 재미있지만, 내가 마법을 인식했을 당시에는 이미 시카 님이 후계자로 계셨고……. 그래서 나는 다른 마법을 메인마법으로 삼았지.”
“하아……하아…….”
“내 마법은 말이지.”
하멜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마녀의 아이템’, 이라고 해.”
“마녀의……아이템?”
유은하가 천천히 마법 이름을 읊조렸다. 쿠웅! 그와 거의 동시에 하멜의 지팡이 안에 마력이 가득 찼다.
하멜은 지팡이를 똑바로 유은하에게 겨눴다. 유은하가 눈을 부릅떴다.
“다크니스 블라스트! 더블 링!”
녹색 보석 주위로 새까만 날개가 솟아올랐다. 자신의 마법으로는 막기 힘들다는 걸 느낀 유은하가 다급히 환각마법으로 하멜의 지팡이를 구현했다.
“다크니스 블라스트! 화이트 윙!”
“어라라.”
하멜이 겨누고 있는 지팡이와 유은하가 쥐고 있는 지팡이가 정면으로 대비된다. 하멜의 지팡이 주위로 두 쌍의 검은 날개가 생기며 마정석 위로 검은 링이 덧씌워진다. 그 앞으로 검은 마력이 사납게 응축된다. 그와 거의 동시에 유은하가 환각으로 구현한 지팡이 앞에도 검은 링이 생겨났다. 그 주위를 새하얀 날개가 감싸고 있었다.
어둠과 어둠, 빛과 어둠, 두 마력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유은하는 마법의 흐름을 똑바로 노려보며 암시를 새겼다.
「너는 이 마법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진다.」
마법이 맞부딪쳤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위로 폭풍이 몰아쳤다.
강인하는 그 옆에서 겨우 날아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S랭크 마법사 두 사람의 싸움이다. 그녀는 발을 들이기 힘든 영역. 아까는 유은하의 영역 안이었기에 어떻게든 버텼지만 지금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마법이 부딪친 곳에서 검은 기둥이 생겨나며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다. 어두운 구름이 죄다 물러나고, 바람조차 접근하지 못했다.
마법에 걸린 암시가 효과를 발휘했다. 하멜의 마법이 일그러지며 분산됐다.
환각이란 마법은 보는 자의 마음을 잡아먹고 성장하기에, 하멜이 유은하의 마법을 ‘자신과 같은 마법’으로 인지한 순간부터 무승부는 거의 결정 나 있었다. 거기에 암시를 더했으니 하멜의 마법이 패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유은하의 마법이 하멜의 마법을 잡아 삼켰다. 검은 마력이 하멜을 향해 뻗어 나갔다. 하멜은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쥔 채 웃으며 왼손을 펼쳤다. 왼손에 검은색 수정을 지닌 새로운 지팡이가 생겼다.
“아이언 플라워.”
하멜이 마법에서 지팡이를 떼고 두 지팡이를 교차했다. 하멜의 앞에 금속빛을 띤 가시나무가 솟아났다. 엄청난 속도로 자란 가시나무가 유은하를 향해 날아갔다. 가시가 달린 강철의 꽃은 어둠과 빛을 전부 먹어 치웠고, 마법을 먹은 숫자만큼 새로운 꽃을 만들어 냈다.
“샷!”
하멜이 또 한 번 지팡이를 휘둘렀다. 꽃술에 마력 포가 맺혔다. 강철 꽃에 얻어맞은 유은하가 몸을 가눌 새도 없이 그녀의 위로 엄청난 위력의 마력 포가 쏟아졌다.
‘공간 안으로 피해도 막을 수 없어.’
주위 공간도 함께 파괴하는 강력한 마법. 갑자기 유은하의 손에 호스 분무기가 나타났다. 뭐야? 아득한 광경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물건에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던 실비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유은하는 결국 마력 포를 피하지 못했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겹겹이 쳤던 결계는 찰나를 버티다 부서졌다. 아주 약간 도망칠 시간이 늘어났지만, 결국 완전히 피하지 못해 다리가 망가졌다.
“아윽!”
오른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휘었다. 유은하가 강철 꽃을 향해 분무기를 던졌다. 빛나는 물에 맞자마자 강철 꽃이 시들었다.
“저런.”
그러나 하멜은 빙긋 웃으며 바로 다음 마법을 썼다.
두 개의 지팡이가 유은하를 겨눈 순간, 사방에 검은 공들이 생겨났다. 한순간 정지했던 거대한 공은 이내 서로 부딪치며 위력을 더했고, 주변의 모든 것을 잡아 삼키려 했다. 공간마저 잡아먹히고 있다. 이번에도 텔레포트로는 피할 수 없다!
“젠장!”
힘으로 상쇄하기에는 너무 강대한 마법이다. 역시 부족하단 말인가? 아직도? 아직도…….
하지만 아무리 강한 마법이라도 약점은 있다. 그 약점조차 지금의 힘으로는 건드리기 힘든 게 문제지만. 유은하는 똑바로 마법을 노려보며 손안에 공 형태의 검은 게이트를 만들어 냈다.
‘마법 속에, 길을.’
그렇다고 한들 폭풍 속에서 그나마 덜 거센 길을 선택해 걷는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폭풍의 날개보다 핵이 더 안전한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유은하는 게이트를 따라 마법 안을 돌파했다.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바로 하멜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멜의 주위에는 아까 소환한 나비가 아직도 그녀를 지키듯 맴돌고 있었다.
정말 짓궂기도 하지. 이토록 강대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멜이 쓴 마법보다 그녀를 지키는 저 나비들이 더 강하다.
‘할 수 있을까? 지금 마력으로 충분할까?’
남은 마력이 아슬아슬한 것을 느끼고 있음에도 유은하는 그녀가 지닌 최대 기술을 날렸다. 빛과 어둠을 융합한 최대 기술.
“──『아멜다의 기둥!!!』”
유은하가 처음으로 썼던 장편 소설, 에 나오는 세계를 떠받치는 기둥에서 따온 마법.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마력을 내질렀다.
유은하는 부족한 마력을 필사적으로 주위에서 끌어모았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마력이, 하멜의 중심으로 높게 솟아올랐어야 하는 기둥이, 정령의 공명 하나로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아…….”
유은하는 눈을 크게 떴다. 유은하의 몸이 점점 추락한다. 하멜의 미소가 가까워졌다.
“……! 아악…!”
하멜이 지팡이 끝으로 유은하의 어깨를 찔렀다. 유은하는 이를 악물었다. 지팡이를 타고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이게 끝이니?”
“안─!!”
하멜의 지팡이에 다시금 강대한 마력이 모였다. 그때 강인하가 유은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멈출 수 있었던 건, 싸움터에 찾아온 몇 사람 덕분이었다. 뚝, 뚝, 피가 흐른다. 진홍빛 머리카락의 여자가 분노한 눈으로 하멜의 이름을 속삭였다. 그 옆에는 이유미와 한성후, 김주연, 라듀 칼데린, 로일 리트너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한성후를 김주연과 이유미가 붙잡고 있다.
“하멜 리디언.”
“어라라. 리카르트 아가씨 아냐?”
“그렇군. 당신이 배후였군요.”
유은하는 어깨를 꿰뚫린 채 숨을 골랐다. 이를 악물며 고통을 완화했다. 손으로 하멜의 지팡이를 쥐려고 한 순간,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기지 건물이 폭발해 산산조각이 났다.
“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기지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유은하의 몸은 어느새 하멜에게서 벗어나 익숙한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시곗바늘 문양이 새겨진 나무 가면, 이성진이다. 유은하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이성진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미안. 늦었다.”
유은하는 억눌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놔…!”
“어딜 얌체같이!”
하멜이 분노하며 이성진에게 마법을 날렸다. 그러나 이성진은 염력만으로 그 마법을 배가하여 하멜에게 되돌렸다. 하멜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나비 두 마리가 하멜의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 결과 정령 한 마리가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실력자의 등장에 이번에야말로 하멜은 당황했다. 하멜의 위로 무시무시한 진동이 내려앉았다. 공간, 바닥, 어느 것 할 것 없이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부서져 내렸다. 흐으윽! 하멜도 그 힘에서 무사하지는 못했다. 남아 있던 정령 한 마리도 가루가 되어 부스러졌다.
염력의 압력은 하멜을 벗어나, 산델벤이 있던 장소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주위가 부스러지고, 죽음의 기운이 덮이고, 이윽고는 완전히 사라진다. ‘죽음’으로 마법의 흔적을 전부 지워 버린 것이다.
유은하는 그 장면을 억눌린 눈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목적은 완료했어. 자리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