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69
그렇다고 예지몽에 대해 말하기는 힘들다. 잘못 언급했다가 추궁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내가 예지몽을 꾼다는 건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니까.
“그래, 그럼……조심해야 해.”
“물론이야.”
자신만만하게 웃는 시하를 보며 나는 답답해졌다. 부담감 위에 부담감이 얹혔다.
‘역시 꿈속에서 나왔던 두 사람은, 예슬이와 시하일까?’
이렇게 된 이상 이번 사건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사건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 설령 사건이 터지더라도 두 사람만은 지켜야 한다.
나는 다시 두 사람과 헤어졌다. 당분간 자주 도쿄에 기분 전환을 하러 올 거라고 하니 두 사람은 기뻐했다.
그날은 일본 전체를 둘러보았으나 딱히 나와 대등할 정도로 강한 자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일도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혹시라도 타이밍이 어긋났을 때를 대비해 마을 곳곳에 조건 발동형 마법을 걸고 왔다. 좀비화가 시작되면 정화하거나, 정화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문자마법으로 어떻게든 상태를 무마하도록. 성배의 열화판도 깔고 왔다.
그날도 결국 아무 일도 없었고, 나는 무사히 기지로 돌아왔다. 다행히 동료들은 오늘도 내 기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성진이 한 번 날카로운 눈치를 발휘했다.
“너 피곤해 보이는데 잠은 제대로 잔 거냐?”
“잤어.”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인성이가 캐티아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는 걸 도왔다. 얼마 후면 캐티아 안에 들어가 조사하고 와야 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럼에도 중간중간 예지몽에 관한 것을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한텐 정말 신경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일이니까.
예슬이와 시하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하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다. 유미는 유란에 속해 있어 어디 있는지도 무사한지도 언제든지 알 수 있지만, 여행을 다니는 시하와 예슬이는 한번 헤어지고 나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차라리 빨리 이 사건의 감시자를 찾아 처리하고 싶다. 그럼 사건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데.
정말로 전부 죽여서 좀비로 만든 거면 어떻게 하지? 아니,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무슨 메리트가 있지?
물론 트라베리아가 세계를 파괴하는 건 메리트가 있어서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험을 할 때 몇 가지 룰을 따른다. 마법으로 폭격을 내리는 건 마법의 위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고, 독을 강에 푸는 것도 독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다. 키메라를 만드는 건 전력을 만들기 위해서고, S랭크 이하 키메라는 뱀 둥지가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을 대거 좀비로 만든다면 그것 역시 무언가 확인해 보고 싶어서 하는 걸 거다. 그렇다면 말이다, 한꺼번에 죽여서 좀비로 만들어 쓸데없이 부하의 숫자만 늘리는 것보다는 감염으로 좀비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는 게 그들이 선호할 만한 방식이라는 거다.
아니, 미친 소리지. 어차피 그들에게 이론이나 이치 따위는 통하지 않거늘. 뭘 파악해 보겠다고. 내가 미쳤지.
문이의 예상이 맞아서 정화마법이 통하지 않을 때의 방법도 좀 더 생각해 두지 않으면. 내 치료마법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고……결계로 몸의 시간을 멈출까? 아니면 문자마법이나 결계마법을 사용해서, 어떻게든 진행을 멈추고…….
‘몸의 시간을 멈추는 것뿐이라면, 결계로 아슬아슬하게 가능할지도. 시간마법은 내 힘으로도 버거운 마법이지만,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지.’
단서는 예지몽뿐. 내가 다쳤다는 결과가 보였을 뿐이라 실제로 나와 비슷한 실력자가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혹은 나보다 더 강한 실력자한테서 겨우겨우 도망친 것일지도 모른다.
내 몫의 일은 새벽 늦게 끝났다. 다른 때와 다르게 시간이 지나자 꼬박꼬박 잠을 취하러 가는 나를 모두가 장한 눈으로 봤다. 덕분에 인성이는 최근 강제 셧다운을 당하고 있다.
그날 새벽,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다시 일본에 갔다. 그때 나는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도쿄의 분위기가 왠지 어제나 그제와는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의 분위기는 똑같다. 무언가 소동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주위를 잘 둘러보던 나는 어떠한 사실을 깨달았다. 도쿄의 마력 농도가 어제보다 훨씬 짙어져 있다.
‘데랜서가 계속 주위 마력을 흡수하고 새로운 마력을 방출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 쳐도 농도가 너무 진한 거 아닌가?’
나는 문이를 통해 내가 처음 일본에 왔던 그제부터의 마력 분포도를 알아보았다. 어제와 그제에 비해 차이 나게 마력 농도가 짙어져 있다.
‘시작되는 건가?’
트라베리아가 설치한 데랜서는 매일매일 조금씩 상태가 다르다. 그래서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테지만, 예지몽을 꾼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데랜서의 변화가 꿈에서 본 그 사건과 무언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제보다 시차가 더 차이 났다. 기지는 새벽 2시, 하지만 여기는 오전 10시다. 나는 고민하다가 시하와 예슬이를 찾았다.
“은하 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왔네.”
“다른 나라로 이동했거든. 새벽에 몰래 나오는 거라서.”
“아, 시차 때문이구나.”
그런 거다. 이내 나는 심각한 얼굴로 시하의 어깨를 짚었다.
“너희가 말한 그 물건은 언제쯤 받을 수 있어?”
“왜?”
“오늘 분위기가 이상해.”
예슬이와 시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뭐가?”
“기분 탓이면 좋겠지만……마력의 농도가 너무 진해. 데랜서가 방출하는 마력량이 심상치 않아.”
트라베리아의 데랜서에 대해선 아직 밝혀진 게 많지 않다. 다만 트라베리아에 유리한 영역을 만드는 것만은 확실하다.
“오늘 오후에 물건을 받으러 갈 예정이었어. 아마 물건은 이미 완성되지 않았을까?”
“그럼 빨리 가지고 떠나는 게 좋겠어.”
“으음, 상황을 보고 떠나려고요.”
“뭐?”
예슬이가 굳은 눈으로 주먹을 쥐었다.
“데랜서에 이상이 생겼다는 건 즉 트라베리아가 무슨 짓을 하려 한다는 거잖아요. 데랜서의 비밀을 밝힐 찬스예요.”
“너희…….”
“은하야. 너한테 한 가지 더 거짓말을 했어. 사실 우리는 발 닿는 대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아냐.”
시하의 눈빛이 어제보다 짙고 견고한 빛을 담고 나에게로 향했다.
“우리에겐 목적이 있어.”
“목적이라고?”
“그래.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일이 있어.”
온 마음을 다하는 굳은 눈동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예슬이가 이 장소에서도 보이는 커다란 데랜서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건 트라베리아와 관련이 있어요. 트라베리아의 마법사가 직접 나타난다면 죽을 순 없으니 도망치겠어요. 하지만 데랜서에서 무언가가 시작된다면, 확인하고 싶어요.”
“…….”
“은하 님도 그걸 보기 위해 여기 남아 있는 거죠?”
예슬이가 생긋 웃었다. 결국 하나는 막을 수 없는 건가. 이런 결심을 억지로 막아 뿌리치고 싶지 않다. 그 심정을, 아니까. 나는 시선을 잠시 내렸다가, 이번엔 흔들리는 눈으로 그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정말 많이 강해졌구나.”
“정말요? 저희 많이 강해졌나요?”
예슬이가 옛날처럼 수줍게 웃었다. 나는 쓴 감정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는 착각할 뻔했다. 실제로 시야를 뜨고 있었는데도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에게 그 정도의 힘을 줬을까. 두 사람은 이미 준A랭크 실력자였다. 벽 하나만 넘으면 A랭크에 진입하겠지.
“은하 님은 어쩔 거예요? 돌아갈 건가요?”
“아니, 나도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여기 있을 거야.”
“그럴 줄 알았어요.”
나는 시야를 뜨며 앞을 보았다. 평소에는 조금 넉넉하게 돌아가는 편이다. 귀신보다 눈치가 빠른 놈이 있으니까.
‘아슬아슬해도 기다려 보자. 죽이려고 들든, 감염당하든, 일어났을 때 바로 막는 게 중요해.’
나는 만일을 위해 드론만이 아니라 문이로 감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 주위로 몇십 개를 날렸다. 내부에 정화마법이나 문자마법도 삽입해 두었다. 그것을 보더니 예슬이도 비슷한 마법을 만들어 주위에 날렸다.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 줄 거다.
그리고 하나는 일본 외부로 날려 보내기로 했다. 예지몽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위험할 걸 알면서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왔다.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할 생각으로.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후 수습하기 위해서는 연맹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일이 벌어지면 연맹이 바로 파악할 테지만, 그래도 빨리 움직일수록 좋겠지. 나는 드론 하나를 일본 외부로 날아가게끔 마법을 걸었다. 마지막 드론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런 후 혹시 몰라 미리 책을 꺼내고 『란스의 성배』 페이지에 미리 마력을 축적해 뒀다. 축적해 두더라도 몸의 부담은 막을 수 없지만 그래도 마력의 부담은 덜 수 있다.
‘정화석은 잔뜩 챙겨 왔어. 시간 마법석은 힘이 너무 눈에 띄어서 차마 못 만들었고. 문자마법석은 다발로 분산해서 가져왔고.’
무엇부터 할까. 이번에야말로 일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나와 대등한 실력자를 찾을까? 아니, 그러기에는 이미 징조가 시작됐다. 예지몽이 시작된 땅인 도쿄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지 않다. 아니면 시간 마법석을 만들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한 번 좀비를 본 적이 있었지.’
트라베리아가 만든 세계에 갇혔던 일을 떠올렸다. 물어뜯기는 것으로 감염되는지는 물어뜯긴 적이 없어서 모른다. 다만 거기에는 이성이 있는 좀비가 있었다. 힘이 엄청 강했고 말을 느릿느릿하게 했다.
‘이성이 있는 놈이었으니 지금쯤 장군 시리즈로 진화했을지도. 그냥 거기서 죽여 버렸어야 했나…….’
생각에 잠겨 있다 말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세요?”
“주위를 좀 살펴보려고.”
“그럼 데랜서 근처에 가 보면 어때요? 터져도 데랜서에서 터질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예지몽을 본 나에게는 데랜서의 이상 반응보다도 사건의 전조가 더 중요했다.
“전체적으로 둘러볼 거야. 데랜서 근처에도 갈 거고.”
“그래요? 그럼 우린 그거 받아 오자.”
“완성……됐겠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받아 오자. 있으면 든든하잖아. 은하 님! 저희는 물건 챙겨 가지고 올게요. 나중에 다시 만나요!”
고개를 끄덕이자 시하가 예슬이의 어깨를 쥐며 텔레포트 했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돌리고 하늘로 휙 날아올랐다. 도쿄에 있는 데랜서는 크다. 산보다 높이 우뚝 솟아 있는 데랜서는 웬만한 힘으로는 결코 부술 수 없다. 지금 내가 전력을 다해도 부수기 힘들 정도다.
데랜서가 마치 힘을 충전하듯이 점멸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평온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저건, 이제 금방이라도 마력을 터트릴 것 같은데. 차라리 지금 모두를 부를까? 아니면 SR의 사이트에…….’
고민하다 문이를 부르려 할 때였다. 예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적중했다. 데랜서의 마력이 순식간에 팽창하며 응축됐다.
“……!”
마찰하며 번개를 뿌리던 마력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꺄악!”
“뭐야!”
“무슨 일이야?”
하늘로 쏘아지는 거대한 마력은 아직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애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고 농밀했다. 하늘로 쏘아진 마력이 검은 구름을 만든다. 주위의 마력이 일그러진다. 일본 전역에는 10개가 넘는 데랜서가 세워져 있다. 빛은 하나가 아니었다. 일본 전역에 있는 데랜서에서 힘이 솟아오르고 있다.
“으악!”
“대체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데랜서의 마력을 느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시작됐어! 이건 꿈에서 본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흔들리던 바닥에 하얀 선이 그려졌다. 마정석의 힘을 타고 흐르는 검은 진, 틀림없다. 결계 술식 진이다. 범위는 아마 일본 땅 전체!
“아차!『문자마법 레벨 2!』”
「시퀀스를 시작합니다. 치직……마력이……불안합……치직…니다. 문자마법 레벨 2를 재가동합니다. 주위의 마법을 해석합니다. 공간마법 차단. 핵을 사용하는 결계는 사용 가능하나 완전 차단 결계는 사용 불가. 텔레포트 불가. 게이트 연결 불가.」
“역시……!”
한발 늦었다. 나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저건 감옥이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감옥인가? 아니, 아니다.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경계선이다. 적어도 나가는 걸 차단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간 이동은 할 수 없다. 텔레포트로는 움직일 수 없다.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나는 진정했다. 어차피 혼자서 어떻게든 할 생각이었다. 차라리 연맹의 힘을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은 원래부터 그리 많지 않았다.
혼자서, 이 얼마나 오만한 말인가. 동료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건만. 그럼에도 할 생각이다. 나 자신의 이기심을 지켜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만은 피할 거다. 그렇게 하고야 말 거다.
“바깥으로 보낸 드론은 무사히 나갔어?”
「확인……할 수……없습니다…….」
바깥으로 보낸 드론에 있는 정보는 기껏해야 데랜서가 이상하다는 것뿐. 일어나지도 않은 좀비에 대한 이야기는 적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사건은 터졌다. 이 상황은 곧 연맹을 거쳐 동료들에게도 전해지겠지. 그러나 당장은 아니다. 아직 시간이 있다. 빨리 좀비화를 멈추고, 원흉을 없애고, 동료들에게 잠깐 나갔다 온 것뿐인 양 돌아가고 싶다.
아니, 사건은 벌어졌으니 이렇게 된 이상 일본의 데랜서에 이상이 생긴 걸 발견했다며 동료들을 데리고 올까. 그렇게 할까…….
「위로 갈수록 기류가 불완전……합니다. 높이 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마스터,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어제오늘 하루 사이에 도쿄 내 인구가 40명이 줄었……습니다.」
초조해하며 엄지손톱을 깨물던 나는 그 말에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뭐?”
「계속 줄어 가고 있습니다.」
나는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데랜서 때문인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눈에는 별다른 점이 안 보이는데……. 내가 날린 마법도 안 돌아오고 있고, 어제 설치했던 마법도 발동하지 않았고, 드론도 안 돌아오고 있고. 멀리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그것도 있지만……마스터가 설치한 마법이 몇 개 사라졌습니다.」
나는 흠칫했다.
“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눈치챘어? 아님 데랜서 때문인가? 드론은?”
「데랜서의 힘 때문에 잘 감지되지 않지만, 몇 개는 없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마법을 없앴을 정도로 강한 자의 기척은 도쿄에선……느껴지지 않습니다….」
“젠장….”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위치는 도쿄에서도 외곽으로 마스터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변이가 독특하기에 확실히 확인하려면 영혼을 보아야 합니다.」
“영혼을?”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텔레포트는 쓸 수 없다.
“위치를 알려 줘!”
「알……겠…….」
“그곳의 상황을 내게 보여 줘.”
「예스.」
마력은 서서히 안정됐다. 지진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눈앞에 지도가 떠오르며 이상이 발생한 장소가 표시됐다. 표시 위로 영상이 떴다.
멀어서 그런지 약간 지지직거리는 영상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냥 창백해 보이는 사람이다. 나는 시야를 확장시켜 순식간에 ‘생명’까지 보았다.
그자의 마력은 멀쩡하다. 멀쩡……한가? 여러 사람이 걸어간다. 온몸에 상처가 있다. 피가 뚝뚝 흐른다.
[어이, 왜 그래? 다쳤잖아?] [뭐야, 이 상처는? 물어뜯긴 상처인가?]다가가는 순간 사람을 물어뜯는다. 꿈속에서는 피부색이 퍼렇고 피가 흘러 척 보기에도 좀비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피가 뚝뚝 흐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마력은 보통 사람과 다르게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풍기지만,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까진 아니다. 그렇다면 영혼은…….
영혼은 다르다. 새까만 어둠이 덮여 가는 영혼, 심지어 완전한 영혼이 아니다. 무언가가 날아가고, 찌꺼기 같은 막만 남아 있다. 나는 이 현상을 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생명은 더 이상하다. 나는 죽음을 보지 못한다. 죽음을 보는 건 성진이다. 그럼에도 알겠다. 죽음과 생명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이게 뭐야.”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생명이 하나 죽고, 그 위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었다. 저 생명은 인간의 빛이 아니다. 짐승…도 아니고, 사람에 가깝기는 한데, 그래, 인간형 키메라의 빛과 제일 가깝다.
인공적인 생명. 우리처럼 실제로 살아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마법 생명체에 가까운 기운이다.
“윽.”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했지만, 그래도 감염 좀비인 것 같아서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이의 예상이 옳았다. 생각한 것처럼 오염되었거나 더러운 마력이 아니다. 인공적이긴 하나 ‘마법’의 낌새다. 인공적인 생명도 생명이라, ‘정화’할 수 없다.
물린 사람이 고통스러워한다. 인간이 아닌 자의 독특한 마력이 흘러들어 간다. 감염이라기보다 물드는 것 같다. 한 방울의 물방울에 한 방울의 피가 섞여 붉어지는 것과 닮았다. 그러나 그것에 물든 자는 착실하게 인간으로서의 생명을 잃고 새로운 생명체로 변한다.
영상을 본 순간부터 나는 빠르게 날고 있었다. 텔레포트를 못 쓰니 이게 제일 빠르다.
나는 동안 다 부서졌나 걱정했던 드론이나 마법이 반응했다. 나는 신호를 열어 드론과 마법을 불러 모았다. 신호는 보냈으나 돌아오는 속도가 느리다. 소동의 중심에 도착한 후에야 올 것 같다.
가슴이 초조하고 아팠다. 점멸하는 시야를 잠시 감았다.
나는 금방 소동의 중심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몸에 상처를 입은 채 날뛰는 좀비들을 마법으로 묶은 채 옮기고 있었다.
“어이, 왜 그래? 그렇게 아파? 악! 물지 마.”
“뭐 이상한 거라도 먹은 거 아냐? 왜 이렇게 날뛰는 거지?”
“떨어지세요!”
나는 좀비가 된 남자에게 물리고 있는 남자를 마법으로 떨어뜨렸다. 둘 다 힘이 대단했지만 내 괴력을 이길 정도는 아니다. 좀비로 변한 남자가 바닥을 우당탕 굴렀다.
“어이! 그렇게 난폭하게 굴지 마. 아는 사람이야! 갑자기 이상해진 거라고!”
“으……아아악……!”
그때 몇 사람이 연달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남자가 당황하며 제 친구에게 달려갔다.
“이봐, 왜 그래? 물린 상처가 그렇게 아파? 야! 야!”
“악……끅……끄으윽…….”
그들이 입가에 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는다. 마법을 사용하려고 한 순간, 문이가 나를 말렸다.
「늦었습니다, 마스터.」
“…….”
「저 사람들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보여.”
그들의 몸이 변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줄어들며, 그에 대비되듯 좀비로서의 새로운 생명이 피어오른다. 두근, 두근, 생명이 몸 전체로 고루 퍼져 맥동한다. 쓰러진 사람을 흔들던 사람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이봐요, 괜찮으세요?”
“이봐, 일어나!”
“야! 왜 그러는 거야?”
“힉!”
“뭐야? 왜 그래?”
“이 녀석……죽었어…….”
“뭐?”
한 사람의 외침에 사람들이 저마다 쓰러진 사람들의 맥박을 잰다. 죽었어! 진짜로 죽었어! 뭐? 죽었다고?
근원 없이 몸 전체에 고루 퍼진 마법. 저렇게 특이한 마력은 처음이다. 생명마저 마력과 함께 분해되고 분산되어 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이 이윽고 멍한 눈으로 일어섰다.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 당황한다. 혹은 기뻐한다.
“다, 다시 살아난 건가?”
“뭐야. 꿈이라도 꾼 건가?”
울먹이며 그들을 끌어안으려던 사람들을, 나는 어둠마법을 사용해 가로막았다. 새까만 철창이 여기에 있던 좀비를 모두 가둔다. 사람들이 당황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왜 저 사람들을 가둔 거죠?”
쿵! 그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둠 감옥에 몸을 박았다. 하나, 둘, 계속해서 몸을 박았다.
“지, 진정해요!”
“헉…!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이 사람들을 병원에 옮기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어디가 아픈 모양이야.”
“이렇게 날뛰니 마법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겠지.”
“물린 사람들!”
나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뭐?”
“방금 날뛰던 사람들한테 물린 사람들, 이리로 와 주세요! 아니, 제가 갈게요!”
처음에는 알기 힘들다. 하지만 집중해서 보려고 하다 보면 보인다. 물린 사람들의 마력이 천천히 좀비의 그것으로 변이되고 있다.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생명을 보던 시야는 닫았다. 이걸 오래 유지하면 마력마저 보기 힘들게 된다.
영혼을 보면서 알게 된 것. 영혼은 육체의 생명에 물든다. 나는 이 이상 변이가 진행되기 전에 혹시나 싶어 정화마법을 던졌다. 빠른 속도에 사람들이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어라…?”
“걱정 마. 공격마법이 아냐. 하지만 대체 왜…….”
‘역시 안 통하나.’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정화마법이 통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했을 텐데. 적어도 이 상황을 빠르게 제압할 수 있었을 거다.
게다가 공간마법도 쓸 수 없다. 공간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건 아공간도 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마스터, 역시 시간마법도 쓸 수 없습니다. 공간마법과 시간마법에는 차이가 있으니 그 틈새를 공략하면 쓸 수 있습니다만, 성진 님이라면 모를까 마스터의 능력으로는 마력이 너무 소모됩니다.」
‘알아.’
그렇다면 역시 남은 방법은──. 나는 빠르게 책 속에서 『란스의 성배』를 소환했다.
『책 속의 세계─란스의 성배
소형화, 열화판.』
성배는 평소와 달리 은색이었다. 은색 성배에서 넘치는 은색 물을 상처 입은 자들에게 뿌린다.
“윽……으아악!!”
정화마법에 이어 은색 성수까지 얻어맞아 벙벙해 있던 세 사람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수에 언령을 집어넣었다.
“『좀비화여 멈춰라!』 『이자들이 인간으로 있을 수 있도록 축복하라!』”
은색이었던 성배가 순식간에 금색으로 차올랐다.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빠져나가는 마력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뭐? 좀비화…?”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발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당황하다 말고 뒤로 물러난다. 누군가가 감옥에 갇혀 있는 좀비에게로 다가간다.
“야, 이 녀석들……맥이 안 뛰어…!”
“설마, 진짜 좀비가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