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285
“과거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인하가 소란스러운 도시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입구에서 보았던 삭막한 모습에선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예슬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희도 처음 왔을 땐 놀랐어요.”
“엄청나네.”
“웬만한 대도시보다도 커요.”
“그래 보여.”
처음에는 그리운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거리를 감싸고 있는 마법이 시야에 인상 깊게 박혔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나는 인상을 살풋 찌푸렸다.
‘역시 좀……레일리의 마법과 닮았네.’
위험한 마법은 무조건 감지하며 배제하고, 정신마법은 경우에 따라 배제하며, 위험한 특수능력도 막을 것 같다.
‘레일리의 마법이랑 닮아서 그런가, 생각보다 더 꼼꼼하고 성가셔.’
바깥에서 볼 때는 마법의 모습이 안개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보니 다르다. 전체에 얇고 가늘고 복잡한 회로가 잔뜩 깔려 있는 느낌이다. 수만 개의 조건에 맞춰 침입자를 배제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영역을 만든다.
‘하지만 전에 봤을 때보단 정신마법에 대한 경계가 덜한걸.’
머릿속에 미영 할머니가 말했던 남자가 떠올랐다.
‘레일리의 마법보다는 덜 섬세하지만, 위력은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 스테이라고 했나? 복사마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이건 리카르트의 마법을 베껴서 만든 건가? 정말 성가시네.’
좀 더 자세히 보려다가 멈칫했다. 성진이 한번 감지에 걸려 쫓겨났던 것을 떠올렸다.
‘일정 이상 관찰하는 건 금지하고 있다고 했던가. 정확한 조건을 알 수가 있어야지.’
아직까진 방범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적당히, 적당히 봐야 한다. 시선을 내리자마자 예슬이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여기는 몇 가지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요. 호텔이나 음식점, 카페 등 여가 시설이 있는 번화한 일반 상가 구역. 좀 더 앞으로 가면 일반인들이 무기를 사고팔거나 감정받는 무기 상가 구역이 있고……마침 저기 지도가 있네요.”
둥근 섬 안을 빙 둘러 가며 구역이 구성되어 있다. 무기가 생산되는 공장 지역과 공방 지역. 도시 주민들이 사는 주거 구역. 중간중간 있는 접근 금지 구역과 실험을 위한 출입 금지 숲.
공식적인 모델명이 있는 총이나 컴퓨터 등 대량 생산 제품은 공장 지역에서, 장인이 고심해서 하나하나 수제로 만드는 맞춤형 무기는 공방 지역에서 생산하는 모양이다.
여러 무기와 시스템을 시험하기 위해서 만든 무기 실용 구역이 있고, 대규모 직거래를 하기 위한 항구가 따로 있으며, 무기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 구역도 있었다. 또한 구역마다 그 구역을 관리하기 위한 작은 사무소가 있다.
예슬이의 말에 의하면 중심으로 갈수록 뭐든지 질이 좋단다. 대망의 섬 중앙에는 무기 상인 조합 본사가 있다. 그 근처에는 VVIP급이 묵는 호텔이 있으며 최상급 무기를 모아 경매하는 경매장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우선 호텔부터 잡기로 했다. 물물 거래도 된다고 하기에 이럴 때 쓰기 위해 만들어 두던 마정석을 주머니에서 꺼내 내밀었다. 내가 만든 마정석을 살펴보던 예슬이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너무 상등품이라 안 되겠어요. 눈에 띌 거예요.”
“그럼 이 정도면?”
이번엔 조금 싼 C랭크 마정석이다. 시하가 아공간에서 어떤 기계를 꺼내 마정석을 조사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상등품이야. 마력은 C랭크일지 몰라도 순도가 너무 높아.”
“흠.”
순도가 문제라면 내가 직접 만들지 않은 마정석을 낼 수밖에. 값싼 물건을 살 때 썼던 비교적 품질이 낮은 마정석이 담긴 유리병을 꺼내기 위해 아공간을 열려고 하는데, 예슬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항상 이런 걸 냈던 건 아니죠?”
“평소엔 돈으로 냈어. 마을에서도 비싼 걸 살 일은 없으니까 가장 품질이 낮은 마정석만 썼고. 이런 건 무기를 살 때나 냈어. 여기는 물가가 비쌀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비싸긴 한데요, 그래도 지나쳐요.”
그런가. 대답하고 아공간을 열려던 나는 멈칫했다. 아공간을 열기 위해 마력을 쓰는 순간 주위의 무언가가 반응했다.
“…….”
“미나 씨?”
“미나야?”
“응? 아니야.”
감지의 제한이란 어느 정도일까? 나는 방범 시스템을 최대한 흐리게, 스치듯 보듯 노력하며 그렇게 보인 것을 나름대로 해석하려 노력했다. 환각마법을 쓰기에는 아직 관찰이 부족해 쓰지 않았다.
‘제대로 볼 수 있다면 해석하는 건 일도 아닌데. 고작 아공간에 반응하면 문이는 어떻게 불러? 문이만 있으면 스치듯이 봐도 해석할 수 있는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레일리, 혹은 리카르트의 마법은 내 마법과 닮은 점이 있다. 바로 ‘언령’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것이 리카르트의 마법을 모태로 삼았다면 해석할 수 있다.
평소라면 문이를 이용해 마법을 문자로 해석하지만, 마법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도처에 깔린 방범 시스템에 걸릴 것이다. 나는 천천히 마력을 움직여 아공간을 열기 직전에서 멈췄다. 익숙한 마법과 닮은 마법이기 때문인지, 스치듯이 보는데도 마법의 의도가 문자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내 마력의 순도가 너무 높아서 경계하는 거구나. 평소엔 환각마법 하나면 다 숨길 수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마법은 처음 보는걸.’
그렇다면. 나는 환각 실체화로 마력의 순도를 억눌러 덧씌웠다. 신분증에 명시된 내 랭크는 B다.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나는 아공간에서 마정석이 가득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이거라면 어때?”
시하가 병 안에서 마정석을 몇 개 꺼내 아이템에 검사했다. 최저 E에서 최대 A까지 다양했다. 우리는 그중에서 몇 개를 엄선해 호텔을 잡았다.
호텔 같은 개인적인 공간은 그나마 경계가 덜했다. 그래도 역시 위험한 마법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호텔도 잡았으니 바로…….”
“조금만 더 구경하다 가자. 이렇게 좋은 방은 오랜만이야.”
“그럴까?”
시하가 눈치껏 수긍했다. 그나마 경계가 덜하다는 건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문이를 불렀다. 문이는 눈치껏 적은 마력으로 나타났다.
‘변장 아이템에 마법 순도를 낮게 보이게 환각을 지금 덧씌울 수 있겠어?’
「아직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저부터 실험해 보겠습니다, 마스터.」
나는 세 사람에게 눈짓했다. 세 사람은 냉장고와 침대, 화장실 등을 살폈다. 나는 침대를 둘러보는 척 고개를 움직이다가 창가에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호텔 중에서도 좋은 방으로 잡은 보람이 있다. 높은 곳에서 보다 멀리 바라본다. 마법에 걸리지 않았을 때의 감각에 유의하며 마법을 살폈다. 눈을 깜빡였다 뜬다. 문이는 우선 자신의 위에 환각을 덧씌웠다. 적은 마력으로 나타났으나 그래도 문이의 순도는 높다. 그것을 더 낮췄다. B랭크 수준으로 보이게 했다.
「시스템의 반응은 정상,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마스터.」
레일리의 마법은 ‘통신’에 민감하다. 마찬가지로 캐티아도 ‘통신’에 민감하다고 한다. 정말로 경계가 심할 때는 마법에 걸리는 전파까지 잡아서 내용을 알아낸다고. 문이는 문자마법이지만 컴퓨터 시스템을 기본으로 한다.
「마스터의 눈에 보이는 마력을 문자로 변환합니다. ……성공했습니다.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정말? 그 녀석은 바로 쫓겨났는데?’
「성진 님의 특수능력과 마스터의 특수능력을 비교하면 안 되지요. 성진 님의 특수능력은 종말, 보는 것 역시 종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주 조금만 쓰더라도 특수능력 감지 시스템에는 짙게 드러날 겁니다.」
‘음, 그건……그런가.’
성진과 눈을 마주 보고 있다 보면 나 역시 오싹해질 때가 있다. 역시 특수능력의 성질은 별것 아니어 보이는 것에서도 묻어나는가 보다.
「마스터는 성진 님과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진하게 써도 원래 힘보다는 옅게 드러납니다.」
어쨌든 반응하지 않았다면 나야 좋다. 비로소 나는 캐티아에 깔린 마법을 제대로 확인했다. 혹시 모르니 한곳에 오래 시선을 두지 않도록 조심했다.
『가벼운 정신 접촉은 허용하나, 기준 이상으로 정신에 접촉하는 건 금지한다. 특히 캐티아 내부 사람을 향한 정신 접촉은 경고한다.』 『적의를 가진 마법을 사용하면 사이렌을 울린다.』 『시스템과 마법에 간섭하거나 파괴했을 경우 사이렌을 울리고 상대를 스캔한다.』
『싸움을 금지한다.』 『변장에는 눈을 감되, 드러낸 마력과 숨긴 마력의 차이가 너무 난다면 탐지한다.』 『내부에 설치된 마법을 일정 속도로 스캔한다.』
『그 어떤 힘으로도 이곳을 깊게 파악하려 들지 마라.』 『읽지 말고, 듣지 마라.』
‘……어?’
나는 흠칫해서 눈가를 가렸다. 주위가 조금 점멸했다. 읽지 말고 듣지 마라?
‘미안, 그런 게 아니야. 신기해서 조금 둘러봤을 뿐이야. 나는 아무것도 안 봤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마력이 다시 선명히 보인다. 환각은 원하는 속내나 감정을 드러내기에 편하다. 마법마저 설득시킬 수 있으니. 나는 애써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 이상은 안 되는구나. 특수능력에 반응하는 건 확실하군.
『듣지 마라.』
『듣지 마라.』
『듣지 마라.』
『듣지마라듣지마라듣지마라듣지마라
듣지마라듣지마라듣지마라듣지마라듣지마라듣지마라
듣지마라듣지마라듣지마라듣지마라』
『꿈의 주인은 이곳에서 힘을 쓰지 마라.』 『일정 이상의 적의나 탐색은 탐지한다.』
『‘명부’에 등록된 사람은 언제나 탐지한다.』
‘어라……?’
어쩐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이곳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 마법을 일일이 제한할 수는 없다. 회원증과 주인이 일치한다면야 변장은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다. 캐티아 내부를 향한 위협에는 반응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특수능력에 신경 쓰는 것 같다. 듣지 말라고?
‘클라인 남매 때문인가. 거래가 얼마 남지 않아서 경계하는 건가? 섬 안에서 거래를 하진 않을 테지만, 멀리서도 혹시 무언가를 들을지 모르니까?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경계하는군. 원해서 뱀이 된 게 아닌 건 알지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묘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
“높은 곳에 방을 잡길 잘했어. 아래가 훤히 보이네.”
“정말.”
나는 또 한 번 환각을 실체화해 봤다. 작은 눈사람이 하늘로 떠오르다 사라진다. 캐티아의 방범에는 반응이 없다.
적의가 있거나 캐티아 내부를 깊게 탐색할 의도가 있지 않은 한 간섭하지 않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마법 위를 환각 실체화로 코팅해 약한 마법인 척 꾸민다. 마법에서 무언가 이상한 기색을 느낀다. 그래도 자신을 탐색하거나 위협을 끼치는 게 아니라면 간섭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는 느슨하고, 어떤 의미로는 철저한 방범이네.’
경계가 삼엄한 곳은 내 눈에도 제대로 안 보인다. 두 번째 팀, 과연 괜찮을까. 어차피 보이지 않게 환각으로 덮어씌울 생각이었지만.
‘이걸 미리 봤어야 했는데. 정말 타이밍 안 좋게 그런 일이 터져서는. 도쿄 사건, 얻은 건 많지만…….’
총장이나 비서가 잘 본다는 건 들었다. 하지만 총장은 C랭크 마법사라 들었고, 비서인 스테이의 보는 힘도 보조마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환각마법으로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환각도 실체화하면 ‘진짜’나 다름없다. 미영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스테이의 보는 힘은 마법을 파악하는 힘이라기보다는 전체를 파악하는 힘에 가깝다. 멀리, 넓게 보는 눈. 어디에 무엇이 있고, 누가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마법을 파악하는 힘도 있다. 그게 복사마법의 원동력이 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뻔하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안 된다면 뭐, 도망쳐야지 어쩌겠어.
이번에는 미영 할머니도 참가하니까.
그걸 확인하기 위한 시험도 준비해 왔다. 내가 그 힘을 지니고 있기에 안다. 마법사의 간파력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밖에 나가 하나하나씩 다 확인해 봐야지.
「그럼 은하 님과 인하 님의 마법 순도를 코팅하겠습니다.」
‘부탁해.’
나는 장난치듯이 주위로 마법을 뿌렸다. 그렇게 뿌린 마법이 핵이 되어 환각 실체화하며 문이의 행동을 가렸다. 곧 팔찌 위로 문이의 마법이 섞여 들어왔다. 마법 순도가 자연스럽게 가려졌다. 나는 곧 마법을 없앴다.
“그럼 이제 구경하러 가자!”
“그래.”
“네, 미나 씨!”
조금 거추장스럽지만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갔다. 관광하는 척하며 캐티아를 쭉 둘러볼 생각이다. 나는 호텔을 나오며 자연스럽게 연기할 때 쓰는 통신기를 켜 연락을 했다.
전화 상대는 최인성이다.
“나야, 미나야. 도착했어.”
[그래? 나도 가고 싶었는데 아쉽네.]“반드시 딱 맞는 무기를 찾을 거야.”
[예쁜 걸 찾길 빌게.]“예쁜 걸 찾아서 뭐 하게? 무기는 실용적인 거야. 쓰기 쉽고 위력 좋은 게 최고지.”
[그래그래.]“조만간 트라베리아랑 큰 거래가 있다는 소문 진짜일까?”
[진짜면 위험하겠다. 조심해야 돼. 평소처럼 사고 치지 말고.]“내가 언제 사고를 쳤다 그래.”
평범한 친구 혹은 커플 같은 대화를 이어 갔다. 흘끔 주위를 돌아다니는 캐티아의 순찰 로봇을 곁눈질했다. 철저히 연기하자. 이런 때를 위해 연기 실력을 갈고닦은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 들은 것보다 훨씬 커. 도시는 엄청 번화하고. 구역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 보여.”
[사진 찍어서 보내 줘.]“알았어.”
[조심해서 갔다 와.]“응. 그럼 이만 끊을게.”
오고 간 대화는 도착했다는 보고와 지금부터 조사한다는 암시와 걱정이 담긴 격려. 인하도 어느새 옆에서 소영이랑 전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통화를 하고 끊었다.
“자, 그럼 가 볼까?”
우리는 관광 팸플릿을 하나 얻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광하는 속도로 하루 안에 도시를 전부 조사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밖에 있는 동료들을 안에 잠입시킬 수 있을 만한 장소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 물론 잠입할 수 있을지 여부도 제대로 확인해야지.
‘그나마 스테이의 능력이 눈이라 다행이라고 봐야지. 감각이었으면 일찌감치 포기했을지도. 환각에 가장 쉽게 걸리게 하는 방법은 환상을 눈으로 보여 주는 거니까.’
우리가, 혹은 동료들이 환각마법을 사용해 잠입할 수 있을지, 스테이의 눈을 피해 잠입해서 조사할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환각마법을 겹쳐서 실체화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마법 사용 여부도 돌아다니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 아까 슥 본 바로는 특정 장소에서만 경계하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키지 않고 보는 방법’을 찾아냈다. 아무래도 캐티아가 특수능력을 감지하는 방법은 ‘사념 감지’인 것 같다. 확실히 그 방법이면 특수능력 사용 여부를 알 수 있다.
특수능력은 마법이 아니지만,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힘을 ‘의지’, 즉 정신력으로 사용하고 조절한다.
사념 여부를 따라 특수능력을 확인하고 감지 정도를 느낀다. 성진이 바로 걸린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녀석의 사념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짙고 무섭다.
특수능력을 감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나 나에겐 소용없는 방법이다. 내 마력과 특수능력에는 정화속성이 스며들어 있는 데다, 나는 환각마법으로 감정이나 사념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확인할 장소를 좁혔다. 무기 창고는 회원이라도 접근 금지다. 공장이나 공방은 접근해도 되는 데가 있고 안 되는 데가 있다. 접근 금지 구역은 멀리서 보며 방범을 확인해 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갈 곳은 무기 상가다. 여러 기성품과 수제 무기를 구경하고 무기의 평균 수준을 알아볼 것이다.
다음으로 갈 곳은 공방 거리. 개인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흥미가 있다.
거리에서 거리를 지나며 외곽을 유심히 살펴보자. 걸으며 여러 가지 가공을 한 환각 실체화 마법을 놔둬 실험해 본다. 당연히 소동은 최대한 자제할 생각이다. 또한 ‘벽’을 살피며 해가 지기 전까지 동료들이 잠입할 만한 길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쭉 날며 무기 상가와는 반대편에 있는 무기 실용 거리에 갔다가 갔을 때와는 반대편으로 날아서 상가에 돌아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도시 전체의 마력을 관찰할 수 있다.
하늘을 나는 건 옛날부터 마법사들의 보편적인 교통수단이다. 도시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실컷 날아도 된다.
환각 실체화 실험이 성공하면 문이를 탐색대로 보낼 생각이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는 환각마법을 이용하여 아주 유용하게 공간을 탐색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대로, 문이는 문이대로 탐색한 뒤 후에 침입할 동료들에게 조사한 정보를 전달해야겠다.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어두웠던 하늘은 어느새 밝아지고, 주위를 메웠던 안개도 많이 옅어져 있었다.
우리는 한 손에는 팸플릿을 들고 도시 외곽에 난 길을 따라 걸어갔다. 환각 실체화 마법 실험은 다섯 번 정도 하면 충분하겠지. 어디다 마법을 설치할지 고민하는 동안 바다가 나왔다. 우리는 난간이 있는 절벽 산책로에서 잠깐 멈춰 섰다.
“여기는 허공에 발을 디디면 보이지 않는 디딤대가 생기는 마법이 걸려 있어요.”
예슬이가 난간을 뛰어넘었다. 그러자마자 예슬이의 발아래로 무언가가 생겨났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얀 마력으로 구성된 디딤돌이다. 예슬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것이 이어졌다.
‘여기로 침입하는 건 귀찮겠네. 환각마법을 쓰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힘들 거야. 벽도 두꺼운 편이고.’
벽도 두껍고, 마법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한번 실험해 볼까.
나는 마법으로 조약돌을 만들었다. 조약돌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환각으로 코팅했을 뿐 안에는 꽤 강력한 마력이 응축되어 있다. 바깥층은 마력을 차단하는 조약돌 환각, 내부에는 꽤나 공격성 있는 어둠마법. 나는 조약돌을 바다 위로 던졌다. 물 위로 통통 튀게 하려고 했으나 조약돌은 한 번 크게 튀어 올랐다가 그대로 가라앉았다.
“…….”
“다, 다시 한번.”
유미나의 얼굴로 민망한 척하며 돌을 몇 번 더 던졌다. 실패한 건 맞지만 사실 딱히 민망하지는 않다. 다시 돌을 만들자 인하가 내 손에서 돌을 가져간다. 인하가 던진 돌은 바다 위를 꽤나 오랫동안 퉁기더니……벽을 넘어갔다.
‘흐음. 벽에는 마법을 스캔하는 기능이 당연히 걸려 있을 텐데,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이지?’
원하는 실력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이미 나는 무척 뛰어난 마법사다. 이제 내 실력은 S랭크 중상위에 접어들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통하는구나. 저 뛰어난 감지 시스템을 속일 수 있구나.
“여기는 높아서 그래. 좀 더 낮은 곳으로 가자.”
“후후, 그래.”
절벽 산책로를 쭉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파는 로봇을 만났다. 나는 지폐 구멍과 동전 구멍에다가 지폐와 동전을 집어넣고 아이스크림을 네 개 샀다.
이른 아침이지만 사람이 많았다. 다들 노련한 마법사 같다. 여러모로 신중을 기해야겠군.
날아서 조금 빠르게 산책로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해변이 나왔다. 이른 아침치고는 꽤나 많은 사람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태평도 하지.’
나는 해수욕장을 쭉 훑어보았다. 감시용 건물이나 로봇이 있는 것 같지만 크게 성가신 마법은 걸려 있지 않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노는 장소라면 경계의 눈도 잘 닿지 않을 것 같다.
미영 할머니는 내 환각마법이면 충분히 스테이 레기우스를 속일 수 있을 거라 말했다. 본래 마법을 깊숙이 꿰뚫어 보는 성질은 아니라면서.
‘흐음.’
그럼 여기에서도 한번 실험해 볼까.
환각 실체화를 사용해 주위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한 다음 손에 마법을 응축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유리구슬이나 내부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위협적인 마법이 들어 있다.
해수욕장을 거닐며 그것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우리는 한동안 태평하게 해수욕장을 거닐었다. 방범마법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럼 다음은.’
파도가 얕게 철썩이며 모래사장을 간질였다. 나는 이번엔 철썩이는 파도 사이로 환각마법을 구현했다. 그것을 파도와 섞는다. 너는 파도다, 그렇게 말하듯이. 이번에도 도처에 깔린 마법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가능하네. 이게 방범이 단단한 곳에서도 가능할지가 문젠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하나 더 실험했다. 파도가 다시 밀려가며 물고기가 되어 가라앉았다. 환각 물고기가 내 의지를 따라 움직인다. 물고기는 곧 ‘벽’을 넘어갔다. 여전히 반응은 없다.
‘좋았어.’
실험을 끝내고 해수욕장을 벗어나자 머지않아 무기 상가 거리가 나타났다. 넓은 도로를 사이에 끼고 쇼윈도 너머로 다양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무기로 보이지 않는 것부터 암만 봐도 위협적인 무기로 보이는 것까지 다양했다.
“여전히 화려하네요!”
나는 가이드북으로 입을 가린 채 쇼윈도를 구경하며 눈을 반짝이면서도 내심 날카롭게 아이템을 하나하나 감정했다. 물론 감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무기 조합이라는 말에 걸맞게 질이 높은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반면 관광 상품용의 값싸고 아기자기한 무기를 파는 상점도 제법 있다. 예슬이와 시하가 유명한 가게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는 마법 약 상점이에요. 온갖 독특한 마법 약, 혹은 마법 약으로 만든 무기를 판매해요.”
마법 약 전문 가게. 무기 연합의 인맥을 끌어들여 온갖 제조사에게서 마법 약을 모은다. 기성품도 있고, 장인이 만든 하나뿐인 약도 있다. 유명한 장인의 약은 카테고리를 만들어 따로 전시해 놨다.
“그럼 치료 약이나 살까?”
“어서 오세요. 좋은 치료 약이 많이 있답니다.”
우리를 맞은 것은 질 좋은 마력을 내장한 여자 안드로이드였다.
“치료 약은 이쪽입니다.”
넓은 가게의 계단식 선반에 치료용 마법 약이 잔뜩 늘어서 있다. 상흔부터 골절, 근육 치료, 병의 완화, 해독까지 다양한 약이 있다. 피를 보충하는 약이나 시력 향상 약도 있다. 나는 시력 향상 약을 하나 들었다. 인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에서 눈이 더 좋아지려고?”
“궁금해서.”
그 외에도 상처와 골절, 근육, 마법 상해 치료 약도 샀다. 기왕 사는 김에 최고급품으로 골랐다. 조만간 ‘유미나’의 신분을 A랭크로 올려 버릴까? 조금 고민되는걸.
아니, 어차피 이제 랭크 시험은 유명무실하다. 그러니 이전의 기록에 등록되지 않은 누군가가 생각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엄청 놀랄 일은 아니다.
값은 마정석으로 치렀다. 최고급이고 양이 양인지라 제법 값이 나가기에 B랭크 마정석을 하나 건넸다. 거스름돈을 받았다.
조금 둘러보니 별게 다 있었다. 가전제품을 보고는 조금 뜨끔했다. 뭐든 빨아들이는 청소기에 모든 걸 갈아 버리는 믹서기라. 어디서 본 듯한 무기로군.
‘가게 안에도 환각을 하나 설치해 볼까? 그럼 회수하기 힘들 것 같은데. 하긴, 그냥 회수하지 않으면 끝나는 일이지만.’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방범 레벨이 높다. 무기를 파는 상가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슬쩍 환각마법을 썼다. 실체화된 공기가 진짜 바람에 녹아들었다. 위험한 마법이 바람과 함께 빠르게 멀어져 간다. 온 섬 안을 날아다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나는 멀어지는 마법을 확인하며 문이를 불렀다. 실험은 충분히 했다.
‘문이, 괜찮을 것 같아. 조심해서 다녀.’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래도 혹시 모르니 통신이 아닌 편지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알았어.’
캐티아는 전파에 민감하니 그게 낫겠지. 환각으로 가려진 모니터 안에서 그녀의 분신, 종이학이 빠져나간다. 그녀의 본체는 컴퓨터인 동시에 ‘문자’다. 문자를 담은 종이학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한동안 또 주위 마력에 집중하며 걷다 보니 가게처럼은 보이지 않는 건물이 나왔다. 창문 너머로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무기 상가 사무소예요. 찾고 싶은 무기가 있으면 저곳에서 물어보면 돼요. 아니면 필요한 무기를 의뢰서로 신청할 수도 있어요. 랭크가 높은 무기는 본사에 가서 신청을 해야 하지만요.”
간판에는 『무기 상가 관리소』라고 적혀 있다. 슥 보고 지나치려 하는데 안에서 여자가 달려 나왔다.
“잠시만요! 아까 치료 약 사 가신 강예슬 님 일행 맞으시죠?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여자는 예슬이 앞에 멈춰 섰다. 우리는 의아해하며 시선을 교환했다.
“갑자기 멈춰 세워서 죄송합니다. 저는 무기 상가 관리소 직원인 헤이라고 합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신가요?”
“실은 여러분이 대금으로 낸 마정석 때문인데요.”
“마정석요?”
“네. 예슬 님과 시하 님께서 대금으로 낸 마정석 말입니다만, 확인해 보니 무척 순도가 높은 상급의 마정석이더라고요. 마력 수치는 D랭크 남짓인데 무척 질이 좋고 순도가 뛰어나요.”
“아, 그런가요?”
“두 분의 물건 맞으시죠?”
예슬이가 곤란한 듯 나를 흘끔 곁눈질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앞으로 나섰다.
“아뇨. 그건 제가 가져온 물건이에요.”
“당신은…….”
“강예슬의 동행으로 들어왔어요.”
“아, 그렇군요.”
여자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나를 향했다.
“혹시 어디서 얻은 마정석인지 알 수 있을까요? 캐티아에서 다루는 웬만한 상급 마정석보다도 품질이 뛰어나더라고요.”
“음……그게 저도 지금은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서요. 4년인가 5년 전쯤에 장인 사이트에서 구매한 물건인데, 쓸 일이 없어서 우연히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을 뿐이에요.”
“장인 사이트라고요? 어떤 사이트인가요?”
“한국의 도토리 공방이란 사이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