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304
스카이에게 나타난 환상은 그가 강인하와 이소영을 인질로 잡는 환상. 즉 그의 염원이나 생각이 실체화된 환상이었다. 그것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강인하의 안에서 깨어난 강렬한 고대얼음마법의 힘 덕분이었다. 소름이 끼치는 충격에 정신이 든 것이다. 안드로이드인 주제에 말이다.
“큭……문이!”
“도망치게 두지 않는다.”
이소영이 다급히 문이를 불렀다. 스카이가 검을 휘둘렀다. 소문대로 궤도에서 폭발이 일었다. 이소영이 공격을 바람으로 흘리려고 했으나, 스카이의 검격은 이소영의 바람을 아주 가볍게 파훼했다. 이소영이 당황하는 순간,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지킨 것은 바로 유은하의 ‘책’이었다. 동결에서 회복되지 못한 책이 마법을 불러와 스카이의 공격을 막았다.
파앗!
“이 틈이야!”
이소영은 강인하를 짊어진 채 힘껏 앞으로 달렸다. 그러나 ‘책’이 차마 막지 못한 구름이 두 사람의 앞길을 번번이 가로막았다.
“문이! 빨리 공간 이동을…!”
「죄송합니다. 지금은 공간 이동을 할 수 없습니다.」
“뭐?! 어째서…….”
“날……내려놔. 내가, 달리면…….”
“바보야! 넌 지금 혼자선 설 수도 없어!”
“윽….”
강인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역시 강인하는 이제 싸울 수 없다.
퍼버버벙!
겨우겨우 스카이의 위협을 막아서고 있던 책이 산산이 부서졌다. 다급히 강인하에게 소리치며 다시 한번 문이를 부르려던 이소영의 주위로 별꽃 같은 얼음이 생겨났다.
“뭐지?!”
펑! 퍼펑!
“으윽!”
날카로운 무언가가 이소영을 찔렀다. 따끔하는 느낌과 함께 몸이 덜덜 떨린다. 이소영은 다시 한번 문이를 불렀다.
“문이! 왜, 공간 이동이 안 되는 거야?”
「스카이의 마력이 이미 주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
다급히 주위를 둘러본 이소영은 자신이 우문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위로 몽실몽실 구름이 생겨난다. 구름 가까이에 별사탕을 닮았으나 그보다 훨씬 뾰족한 작은 덩어리가 돌아다닌다. 틀림없다. 저것이 공간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영역을 펼치고 있다.
빠르게 증식한 구름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위를 빙 둘러쌌다. 그 너머로 스카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공포심을 부각하듯이 천천히, 한 발자국씩 걸어와 두 사람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구원 요청을 했습니다. 곧 스카디 님이 오실 겁니다.」
“그때까지 버티라는 거네.”
이소영이 이를 악물었다. 강인하가 이소영의 어깨에 박힌 가시를 이빨로 부쉈다.
“얼음…….”
“얼음?”
“저 사람의 폭발은 불을 이용한 폭발이 아니야. 냉기를 이용한 폭발이야…. 저 구름도 아르델의 안개와는 달리 정말로 수분……아마 저 사람은 물속성 마법사야….”
“그럼 폭발은?”
“냉기를 이용한 폭발. 매체는 얼음…….”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물론 스카이도 들었다. 허공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터졌다. 이소영은 몸 주위에 바람을 둘러 날아오르는 얼음덩이를 쳐 냈다.
‘내 바람은 어둠속성이라 기본적으로 차갑지만, 이렇게 된 이상 온도를 올리자.’
펑! 퍼퍼퍼퍼퍼펑!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공기가 터졌다. 이소영의 뒤에서 강인하가 빛마법을 사용했다. 공기도 몸도 차갑게 얼어붙어 간다. 얼음의 힘이 강해진다…….
‘웃기지 마! 내 빛은 고대얼음마법도 녹였어!’
혈족마법이 녹아든 빛마법이 본래보다 강한 힘을 펼쳤다. 다시 한번 강하게 상상했다. 모든 얼음이 녹으며 자신의 힘이 되기를.
‘심장의 얼음이여.’
냉기를 가진 구름이 두 사람의 몸을 아프게 억죄었다. 거센 폭풍에도 미동 하나 없었다. 당연하다. S랭크 마법사의 마법이니까.
‘빛에 녹아들어라.’
하늘에 생겨난 둥근 원반에서 차가운 빛이 떨어졌다. 이소영이 가까스로 바람을 둘러 빛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바닥이 얼며 박살 났다. 이소영과 강인하가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구름이 두 사람을 따라왔다.
구름이 닿으면 몸이 얼고 힘이 빠진다. 구름에서 눈이 생겨났다. 눈 회오리가 두 사람의 몸을 덮쳤다.
한순간 강인하의 세계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계속 심장의 빛을 끌어냈다.
얼음이, 빛에, 녹아들며…….
…….
강인하의 몸에서 갑자기 빛이 터졌다. 뜨거운 황금빛이 단단한 구름에 휘감겼다. 냉기 구름이 한순간이나마 빛에 의해 튕겨 나갔다. 강인하가 이소영을 끌어안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이소영이 몸을 벌벌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윽…!”
이소영의 팔에는 길쭉한 얼음 바늘이 박혀 있었다.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얼음 바늘이 이소영의 마력과 정신을 어지럽힌다.
강인하가 이소영의 가슴 안에 열을 집어넣었다. 이소영의 몸에 박혀 있던 얼음 가시가 서서히 녹았다.
“……!”
강인하를 향해 하얀 구름이 날아왔다. 빛으로 녹이기 위해 힘을 끌어올렸으나, 그보다 구름이 강인하의 팔다리를 날카롭게 찌르는 게 더 빨랐다. 겉보기엔 그냥 구름처럼 보이나 그 안에는 얼음과 바람과 냉기가 날카롭게 회오리치고 있다. 그 순간 구름에서 번개가 일었다. 강인하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그냥 번개가 아니야. 차가운 번개? 온몸을…….’
전기가 온몸을 타고 전해진다. 이 번개는 온몸의 신호를 마비시킨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차갑게 굳으며 마비된다. 이소영이 불러일으킨 바람이 구름에 흡수됐다. 강인하의 시야가 가물가물 멀어져 갔다.
“레이!”
이소영이 구름을 향해 바람을 날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강인하의 앞으로 커다랗고 하얀 방패가 내려앉았다.
쾅!
방패가 잠깐이나마 구름을 밀어냈다. 어디에서 나온 방패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소영은 일단 비틀거리는 강인하에게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헉, 헉…….”
[늦어서 죄송해요! 스카이의 마법 때문에 영역의 기능이 거의 먹통이 되어서……! 마법 전송 기능도 먹통이 됐지만, 다행히 제가 있는 곳에서는 마법을 전송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레이, 제피, 너희 괜찮지?]“응…….”
이소영이 얼핏 웃었다.
“괜찮아, 하이드….”
쿠웅!
그와 거의 동시에 눈앞에 거대한 마력이 내려앉았다. 이소영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슬금슬금 움직이던 냉기 구름이 어느새 죄다 얼어붙어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인영이 반쯤 구름으로 변한 스카이를 발로 차 날려 버렸다.
“할……! 스카디!!”
“늦어서 미안하다.”
은색 가면을 쓴 김미영이 구름을 얼려 깨트렸다.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강인하와 이소영을 돌아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벽에 부딪친 스카이가 무기질적인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너는 또 누구지?”
“하이드에게 가 있거라. 금방 끝난다.”
“금방 끝난다고?”
스카이가 인상을 쓰며 검 주위에 얼음 별꽃과 구름을 둘렀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내부 기관이 얼었음을 깨달았다. 안드로이드가 삐걱삐걱 고개를 들었다.
“그래, 원한다면 다시 한번 말해 주마.”
시각 기관마저도 얼어붙어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서 유독 눈부시게 빛나는 색이 있었다.
“금방 끝난다.”
시야를 사로잡는 차가운 은빛, 그것이 스카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마스터가 책상 위를 두 주먹으로 쾅 소리 나게 쳤다.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스카이가 졌다. 자신이 만든 최강의 기사가, 단 한 명의 마법사에 의해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얼음을 쓰는 안드로이드 스카이가 말이다!
그와 거의 동시에 또 하나의 싸움이 끝났다. 제2기사 루카가 패배했다.
“젠장! 빌어먹을! 대체 저 녀석들은 뭐야?”
쿵!
그때 갑자기 어딘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스터가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정예리를 영역에 넣은 후 나를 향한 그녀의 목소리를 차단했다. 집중하고 있었음에도 어느새 루카를 놓쳤다. 그의 마력과 영혼이 흐려지며 주위로 녹아들었다. 마력이 공간에 넓게 녹아들어 실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판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디 있지?’
뒤에서 날카로운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피하면서 그곳에 공간마법을 섞은 검은 기둥을 꽂았다.
“킥! 대단한데? 바로 눈치채다니.”
다시 허공에 녹아드는 마력을 보면서 나는 상황에 맞지 않게 ‘그리움’이란 감정을 느꼈다.
마법을 없앤다. 자신의 존재마저 없앤다.
색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 아이와 같은 ‘무속성 마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무속성마법’을 사용한다. 재능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고나 할까.
‘민희랑은 딴판이네.’
그렇게 다른데도 한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렸다. 나는 상대에게 불리한 영역을 가져오기보다 내게 유리한 영역을 가져왔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사는 성──가시나무 숲
숲 지하에 있는 어둠나무의 숲.
어둠속성 마법사의 마력이 증폭됩니다. (아군 한∑덥석.
그런데 갑자기 루카의 머리카락에서 튀어나온 하얀 고래 같은 게 허공에 떠오른 글자를 덥석 먹어 치웠다. 그 괴물은 입을 벌리며 책까지 먹어 치우려 했다. 나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 아깝다. 전부 먹어 버려.”
머리카락에서 다른 은색 고래가 튀어나왔다. 입을 떡 벌리더니 방을 잡아먹는다. 뭐? 이 가시나무 숲을?
정확히는 영역이다. 영역이 먹힌 만큼 군데군데 커다랗게 구멍이 팬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순간 멍해졌다.
‘저 기술은, 내가 만든 별의 고래와 너무 비슷하잖아?’
「마스터!」
‘……알아.’
정신을 놓는 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짓이다. 내 그림자에서 어둠이 솟아났다.
『라크루리온』
솟아난 어둠이 드래곤으로 변해 고래를 향해 덮쳐들었다. 별의 고래는 물리적인 마법을 주로 먹고 방어용이나, 라크루리온은 정신적인 요소를 주로 먹으며 공격용이다. 드래곤이 입을 벌리며 브레스를 쏘았다.
고래와 라크루리온의 힘은 호각이었다. 서로 먹고 먹히는 싸움이 일어났다. 나는 주위로 어둠을 뻗었다. 어둠이 파도치며 고래의 마력을 흡수했다.
“호오?”
루카가 단검을 휘둘러 브레스를 무효화시키더니 반쯤 흐려져 라크루리온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라크루리온의 가슴이 뻥 뚫렸다. 나는 섬찟함을 느끼고 자리에서 뒤로 피했다. 뻥 뚫린 장소에서 마력이 팽창하며 ‘허무’가 생겨났다.
나도 라크루리온도 재빨리 피했으나 결국 루카의 마력은 라크루리온을 반 이상 잡아먹었다. 라크루리온을 먹고 커진 허무가 이내 작은 구슬로 변했다. 루카가 구슬을 입 안에 넣어 꿀꺽 삼켰다.
“이야~. 네 마력 진짜 맛있는걸? 이렇게 맛있는 걸 보니 강하긴 엄청 강한가 보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놀라운 건 무속성 마력만이 아니었다. 저 남자의 싸움 방법, 나와 많이 비슷하다!
무속성마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흐리고 숨는다. 마법을 무효화한다. 그 무속성마법으로 남의 마법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흡수해서 삼킨다. 마력을 먹어 자신의 마력을 회복한다.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의문이 찾아왔다.
“왜….”
“응?”
“왜 성에 펼쳐진 영역은 안 먹었죠?”
나도 ‘먹는’ 타입이기에 알 수 있다. 나라면 영역을 부수기보다는 먹을 것이다. 그러자 루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 그거? 안 먹은 게 아니라 못 먹은 거야. 먹을 시간도 없었고.”
“뭐라고요?”
“게다가 저렇게 밀도가 강하고 넓은 영역을 소화하긴 쉽지 않아. 조금 먹는 정도로는 바로 회복되겠던데? 그래서 제법 기대하고 있었어. 이 영역을 만든 놈의 마력은 제법 맛있겠구나.”
“…….”
“그런데 정말이네? 엄청나게 맛있어.”
“…….”
“네 마력…….”
루카의 몸이 갑자기 확 퍼졌다. 퍼진 마력 안에서 수십 개의 허무가 자라났다.
“나한테 줘.”
루카의 허무가 주위를 휩쓸던 어둠과 라크루리온, 그리고 나를 덮쳤다.
나는 곤란해하며 마법의 양상을 살폈다.
‘숫자가 너무 많아. 반쪽짜리 라크루리온만으로는 무리야.’
나는 표정을 냉랭하게 가라앉혔다.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마력을 관찰하자. 나는 무속성마법을 상대해 본 적이 있다. 물론 민희의 무속성마법은 이 남자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그때 민희는 C랭크 마법사였다.
디멘션 박스를 사용할까? 어둠으로 삼켜? 아니, 그보다는 저 남자가 마법을 해체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정화!’
내 정화마법은 그 후로 무척 사용하기 버거워졌다. 그래서 여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정화마법을 내 고유마법으로 삼은 이후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쓸 때마다 영혼이 아주 조금씩 녹아 나오고 있었다.
아마 걱정할 정도의 양은 아닐 거다.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은 조금 손상을 입어도 금방 회복된다. 게다가 내 영혼은 무척 짙고 커다랗다. 나는 스스로 내 영혼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잘 정리하며 다니고 있다. 정리되지 않았을 때는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며, 지금은 내 몸 주위를 안개처럼 짙게 채우고 있다.
어둠마법 라크루리온이 정화의 갑옷을 입었다. 라크루리온의 색이 은백색으로 물들었다. 원래 모습으로 회복한 라크루리온이 주위로 마력을 방출한 순간 허무가 속절없이 녹았다. 동시에 몸에 엄청난 부하가 걸렸다.
루카가 당황하며 뒤로 몇 미터나 물러났다. 나는 부하를 견디기 위해 내 팔목을 꽉 쥐었다. 이 마법은 아직도 제어가 제대로 안 된다. 조금만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내면 어느새 파도 같은 크기가 되어 나에게 부담을 준다. 그나마 내 마력에 정화속성이 녹아 있어 다행이다. 고유 마력만으로 웬만한 것은 정화할 수 있으니까.
“방금, 뭐였어?”
루카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하지만 이번엔 마력 안에 옅게 스며든 정화의 힘만으로는 무리였나 보다. 허무가 마치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옅어지며 사라졌다.
“헉……윽…….”
사용할 영역을 정했다. 나는 새벽을 불러왔다.
“『책 속의 세계』.”
『새벽 눈꽃과 바다 들판.』
이 영역은 내 정화마법 레벨이 올라가면서 함께 난이도가 올라갔다.
아래로 바다가 펼쳐졌다. 어두운 하늘에는 길고 두꺼운 구름이 불규칙적으로 끼어 있다. 구름 사이로 하늘의 빛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하늘에는 샛별만이 떠 있다. 우리는 새벽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당황하며 나를 보던 루카가 고통을 호소하더니 다급히 무언가를 불러왔다. 허무의 공간이다. 허무의 공간이 무언가를 뱉어 냈다. 내 마력에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루카가 그것을 보더니 이를 갈았다.
“씨발. 맛있다고 생각했더니 달콤한 독이었잖아? 성의 영역을 안 먹길 잘했네. 하얀 놈으론 안 되겠군.”
나는 루카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라크루리온에게 검을 쥐여 줬다. 특수한 무기를 구현하는 특수 기술 『칼과 방패』 시리즈. 이것은 스승님의 마법을 기초로 삼은 기술이다. 즉 이를 통해 소환한 무기는 장소를 지배하는 관리자의 절대적인 권한을 특수성으로 가진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이 검은 마력을 분쇄하거나 흡수한다.
내 마력을 ‘먹겠다’고 했나? 평소 내가 했던 짓을 남에게 당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렇다면, 똑같이 해 주마.
루카는 고래를 불러내는 대신 허무 자체를 불러냈다. 제대로 형상이 갖춰지지 않은 번개 같은 마력이 내게로 쏟아졌다. 그러나 라크루리온의 칼이 그의 마력을 뚝 잘라 냈다.
“……?!”
루카가 깜짝 놀라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잘려 나온 마력을 손으로 똘똘 뭉쳐 입 안에 넣었다. 냠. 입 안에서 우물우물 씹어 목 안으로 꿀꺽 삼켰다.
“세상에……넌 진짜 먹냐?”
“…….”
“치사하게!”
이렇게 먹으면 상대의 마력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제법 맛있는 마력이다. 포도 맛과 조금 비슷한가? 옅으면서 시원한 맛이다.
몸을 흐리게 만든 루카가 라크루리온과 나에게 공격을 날렸다. 어떤 검격은 주위의 마력을 흐리고, 어떤 마력은 날카롭게 마력을 절단한다. 기습적으로 뒤에서 나타난 공격을 나는 결계로 막았다. 결계에 ‘정화’를 쓰자 루카의 모습이 일그러지듯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큭! 뭐야?”
‘원래대로 돌아와? 루카가 원해서 돌아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일말의 위화감을 느꼈다. 루카가 혀를 찼다.
“이건 또 무슨 기술이야? 거기다 넌 어째 내가 숨어도 귀신같이 눈치채냐?”
라크루리온에게 입힌 정화 갑옷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머지않아 라크루리온이 허물어졌다. 그와 동시에 루카의 검격이 변했다.
루카의 칼이 하얗게 빛났다. 검로를 따라 하얀 장막이 생기며 주위 영역이 허물어지고 일그러진다. 공간도, 시간도, 주위의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간다.
“윽…!”
나는 순식간에 공간을 잠식한 허무의 마력을 그만 뒤집어쓰고야 말았다. 몸에 덧씌웠던 결계가 무너지며 허무가 내 피부를 침범했다. 정화 마력 덕분에 보통 사람보단 허무의 영향을 덜 받겠지만, 온몸이 저릿해지며 기침이 나왔다. 피가 섞인 기침이다.
“아, 윽…….”
목소리도 이상해졌다. 하지만 금방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영역이 흩어지며 어느새 원래 영역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사는 성’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웬만한 기술은 죄다 무효화당해서 눈꽃 영역의 힘이 제대로 먹혔는지도 의문이다.
『
모든 마법을 방어합니다.』
황금 방패를 사용해 겨우 허무의 힘을 막으며 나는 이를 갈았다. 루카가 작게 속삭였다.
“검은 고래.”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는 숨을 삼켰다. ‘모든’ 마법을 방어해야 할 방패가 아까보다 훨씬 짙은 허무의 마력에 깨부숴졌다. 고래가 나타난 건 내 바로 아래. 위로 도약하며 급한 대로 어둠마법을 쏘았으나 그것 역시 먹혔다.
‘아까까지는 먹지 않으려 하더니?’
그런데 커다란 고래의 몸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둥글게 변했다. 둥근 공이 순식간에 압축되며 순식간에 커진다.
‘큰일이다!’
나는 숨을 삼키며 마법을 썼다. 공간이 막혀 있어 텔레포트는 불가능, 큰 기술을 사용할 시간은 없다. 그나마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게 디멘션 박스와 별의 고래 열화판인 별의 물고기였다.
별의 물고기는 별의 고래만큼은 아니지만 마력을 먹거나 내 데미지를 대신 받아 준다. 또한 마력을 분해하는 기능도 있다.
코앞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루카의 마력이 우리가 있던 층을 거의 집어삼켰다. 수십 겹의 디멘션 박스 안에서 나는 겨우겨우 견뎠다. 물고기가 먹은 마력이 내 안으로 꿀렁꿀렁 흘러 들어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블랙 박스는 대체 얼마나 단단한 거야? 저 마력에도 금 하나 가지 않다니!’
“이건 어때? 블랙홀.”
허공에 생겨난 검고 하얀 소용돌이가 주위의 모든 것을 강렬하게 빨아들였다. 아무래도 저건 꿀꺽 삼키는 용도가 아니라 산산이 분쇄하는 용도 같다. 검은 고래도 그럴 것이다. 삼키지 않고 ‘씹어 없애기’ 때문에 내 마력을 삼켜도 괜찮은 거다.
하지만 저런 마법을 없애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검신의 칼』.’
나는 제대로 조준하고 내가 아는 한 가장 잘 잘리는 무기를 구현해 블랙홀의 중심을 찔렀다. 마법이 해체됨과 동시에 그 여파로 주위에 무시무시한 마력이 뿌려졌다. 나는 마지막 남은 물고기로 여파를 잘 막아 냈다.
흩어지는 마력 길을 따라 모습을 흐렸던 루카가 갑자기 내 코앞에 나타났다. 나는 날아온 발차기를 팔을 교차해 막았다. 그런데 공격을 막은 팔이 한순간 흐려졌다.
‘이런!’
“헐! 제대로 맞고도 안 없어졌어? 미친 거 아냐? 너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지? 맞지? 아니고서야 멀쩡할 리 없잖아!”
나는 흐려진 내 손을 환각을 사용해 원래대로 선명하게 만들었다. 루카가 당황한 사이 온 힘을 다해 루카를 후려쳤다.
“윽!”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격이 제일 잘 먹힌 공격이었다.
좀 더 루카한테 잘 들어 먹을 만한 영역이 없을까? 최대 기술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힘을 제대로 깎지 못했다. 그나마 『아멜다의 기둥』과 『라크루리온』이 먹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