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321
“그랬지, 참.”
우리는 대문을 나설 때쯤엔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쟁을 피해 플로리아로 이사 온 돈 많은 고위 마법사 가족이다. 미영 할머니는 할머니, 형일 아저씨는 아빠, 예리는 전속 의사, 성진과 인하는 보디가드, 예슬이와 시하는 쌍둥이 조카, 나와 인성이, 소영이는 남매다.
인성이가 첫째고 내가 둘째, 소영이가 셋째다. 그러나 나름 서민적인 부자라는 설정이다. 애초에 인하와 나는 원래 그런 부자였다.
플로리아는 친근한 마을이라 막 이사 온 우리에게도 친절했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누구든 한 명 정도는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날씨가 좋죠?”
“네. 화창하고 좋은 날씨네요.”
이 마을은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평화롭다. 바깥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런 거리를 태평하게 걷고 있다 보면 나마저 평화에 젖어 나른해질 것 같다.
우리는 소영이가 말한 대로 비프스튜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으로 향했다. 이 풍요로운 도시에는 당연히 다양한 시장이 있다. 예전이었다면 인터넷으로 시켰겠지만 지금은 배달이나 배송이 힘들다. 애초에 식량도 부족하고. PE의 노력 덕분에 식량 사정이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더 많다.
플로리아는 예전에 들었듯이 물가가 무척 비싸다. 하지만 이런 날을 대비해 예전부터 돈을 어느 정도 인출해서 보관하고 있었다. 현금만이 아니라 보석, 마정석 등 하여간 거래를 할 만한 건 많다.
폐쇄된 도시에서 돈을 사용할 때는 내가 만든 마정석을 쓰면 안 된다. 내가 만든 마정석은 매우 질이 좋은 데다, 심지어 전문가는 내가 만든 마정석을 구분해 낸다. 그래서 잡힐 뻔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
내 마정석을 돈 대신 내는 건 정착하지 않을 먼 도시에서 물건을 살 때 정도다. 여기선 미리 사 두었던 현물과 현금만 쓴다. 혹은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한 원석을 가공해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현물보다는 현금을 더 많이 쓴다. 그래서 일부러 같은 돈을 쓰는 다른 나라에 가서 마력석을 돈으로 바꿔 오기도 했다.
현금을 자주 바깥에서 바꿔야 하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아직까진 돈이 부족해서 불편할 일은 없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사야 할 것을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비프스튜라고 했으니 우선은 소고기가 필요할 테고, 토마토도 필요할 테고…….
“안에 요리 재료 하나도 없나?”
“야채는 다 떨어졌고, 고기도 없으니까, 필요한 건 다 사 가면 될걸?”
“와인은?”
“아, 그건 조금 남아 있었어.”
“밀가루랑 버터는?”
“밀가루는 남았고……버터는 떨어졌어.”
“아, 버터 비싼데.”
보디가드는 시종이 아니지만 그래도 고용인임은 틀림없기에, 짐은 성진이 들었다.
“어라? 이 고기 엄청 신선해 보이네요. 웬일이에요?”
“키우는 방법이 좋았는지 나무에서 신선한 놈이 열렸지 뭐야. 살래?”
“으음……조금 비싸긴 비싸네요. 오랜만에 신선한 고기를 먹고 싶긴 한데, 예산을 초과할 것 같아서. 아아, 어떡하지.”
나는 평소와는 달리 밝은 여자를 연기했다. 그때 옆에서 고운 손이 고기를 휙 채 갔다.
“흥, 그럼 내가 산다?”
나는 흘끔 옆을 돌아보았다. 시장에 올 때 입기엔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는 진녹색 머리 여자다. 그녀의 옆에는 오가며 안면을 익힌 그녀의 보디가드도 함께였다. 여자가 나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 살 돈도 없어?”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아끼고 싶은 거예요. 그 고기 사실 건가요?”
“살 건데 불만이라도? 말해 두지만 나도 사고 싶었는데 네가 답답하게 머뭇거리니까…….”
“잘됐네요. 고민됐는데. 이걸로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고기를 사면 되겠어요.”
유리아는 운이 좋아 전쟁 통에 바로 플로리아로 도망쳐 온 부잣집 아가씨다. 어느 정도 실력 있는 마법사인 데다, 실습 경험이 있어 완전히 세상 물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자신의 지위와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성진의 변장용 모습에 한눈에 반해 스카우트했다가 차인 이후로 나나 소영이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확실히 성진의 플로리아용 모습은 꽤나 준수한 편이니까.
그래도 딱히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 오지는 않는다. 귀여운 투정 수준이랄까?
“흥, 머릿속이 너무 화창해도 탈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아까워.”
성진은 여자를 흘끔 보고는 무시했다. 인성이가 킥킥 웃었다. 곤란해하는 가게 아저씨를 돕기 위해 빨리 소고기를 샀다. 10명이나 먹어야 하니 잔뜩 사도록 하자.
“이거 2kg 되나요?”
“물론이지. 항상 고맙다!”
“저야말로 항상 맛있는 고기 감사합니다.”
내가 고기를 손에 들기 전에 성진이 고기를 들어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유리아가 부루퉁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어리긴 어리다. 실제로 겨우 성년을 넘긴 아가씨다.
“내가 해도 되는데.”
“보디가드니까.”
“그래, 넌 보디가드지 시종이 아냐.”
“주인님이 강해서 지킬 일이 별로 없으니까 돈 값 하려면 이런 일도 해야지.”
유리아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실망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가 부끄러워했다가 다시 가슴을 편다. 참 표정이 다양한 아이다.
유리아는 꽤나 고집이 많고 끈질긴 타입이라 이번에도 시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계속 쫓아다녔다. 캐릭터 설정에 맞춰 친한 척을 하려는데 그 전에 성진이 유리아를 마법으로 멈춰 세웠다. 성진과 유리아의 보디가드 사이에 신경전이 오갔다.
“아가씨께 무슨 짓입니까?”
“그쪽은 왜 우리 아가씨와 도련님을 졸졸 따라오는 거지? 스토커 퇴치도 내 일이라서.”
“이, 이익! 스토커라니! 가는 길이 우연히 같은 것뿐이야! 야채를 사러 가는 길이라고!”
성진은 유리아를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와 인성이는 성진이가 생각보다 제법 진심으로 그녀를 귀찮아한다는 걸 느끼고 긴장했다.
예전이라면 고백했다는 것만으로 그냥 사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나는 성진의 팔을 끌어안았다.
“왜 그래? 유리아는 여기서 사귄 친구잖아. 그렇게 심술궂은 말 하지 마.”
“그래, 그래. …성가신 건 알겠지만.”
인성이가 유리아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숨죽여 웃었다.
“누가 친구라는 거야!”
“아이 참,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부, 부, 부끄럽기는 무슨! 어이없어서 하는 말이거든?”
성진의 팔을 끌어안고 있던 나는 문득 성진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왠지 생소한 눈으로 자신의 팔을 바라보더니, 내가 손을 풀고 똑바로 서려 하자 아쉬운 것처럼 내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이것도 유리아에게 보여 주기 위한 연기인가? 아니면……. 가슴이 지끈거렸다. 분노에 잠식되어도 잃지 않고 있던 마음은 아직 되살아나지 말아야 할 때도 가슴속에서 솟아 나온다.
“왜 그래?”
“오랜만인 것 같아서.”
“뭐가?”
“네가 손잡아 주는 거.”
인성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거기에서 나는 진심을 읽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굳었던 손에서 힘을 뺐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도 나는 성진에게만은 직접 스킨십을 하는 걸 피했다. 그래서 스킨십을 하는 건 보통 성진이었다. 끌어안거나, 손을 잡는 스킨십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복수를 위해 달리기 시작한 후로는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줄어들었다. 일정 기점 이후로는 일부러 피했다. 나는 성진이 복수에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여 싫었고, 그럼에도 그렇게 빠르게 강해지는 것에 질투가 났다. 그를 피했으며 계속 말없이 화를 냈다. 우리가 화해한 건 기껏해야 몇 달 전 일이다.
“몰랐는데 너 생각보다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다?”
“주인님들한테만이야.”
성진이 웃으며 반대쪽 손을 뻗어 인성이의 손을 잡았다. 인성이가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 뭐 하는 거야. 이 나이가 되어서 애인도 아닌 사람이랑 손을 잡고 걸어야겠어?”
어느새 유리아는 뒷전이 되어 있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유리아는 퉁퉁거리면서도 부러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변장용 얼굴을 준수하게 설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원래 모습에 비해선 많이 떨어지는데, 그래도 이렇게 여자한테 인기가 많다니. …역시 분위기 때문인가?’
외모만 가지고 그렇게 남녀에게 인기가 많을 수는 없다. 역시 분위기 때문일까? 그래서 잘난 건 외모뿐인데도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푹 빠지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성진의 마력이나 존재감은 정말 특별하니까. 아니, 그래도 마력 때문은 아니려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죽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는 없을 거다.
결국 우리는 유리아를 꼬리에 단 채 양파, 당근, 감자, 파슬리, 버터 등의 재료를 샀다. 유리아는 우연이라는 억지를 붙여 우리 주위를 대놓고 맴돌면서 우리와 비슷한 야채를 샀다. 저 집도 오늘은 스튜겠군.
나는 마지막까지 유리아를 살갑게 대했다. 이제 이 정도 연기는 쉽다. 좋은 기분으로 돌아갔으나 우리를 맞은 것은 불벼락이었다.
“한 시간 있다가 돌아오랬지!”
소영이가 장바구니를 휙 뺏으며 우리를 혼냈다. 인성이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뺨을 긁적였다.
“그게, 유리아를 만나서…….”
“아, 걔? 그럼 어쩔 수 없네.”
인성이가 소영이한테 혼나는 동안 나는 소리를 죽이고 작업실로 향했다. 그러나 곧 예리한테 어깨를 붙잡혔다. 예리는 건강을 위해서라면 내 환각도 꿰뚫어 본다.
“어디서 돌아오자마자 일하러 가요? 오늘 하루는 잠이나 자요! 의사 말 들어요!”
“으음, 어쩔 수 없네.”
우리는 때때로 예리로 인해 강제 휴식에 처하면 열심히 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사와 준비를 했다.
예리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 중에는 무리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과제도 있었다. 그때만은 예리도 별말을 못 했다.
변장 아이템과 도주용 아이템 외에도 만일을 위해 만들 비장의 무기가 차례차례 결정됐다. 만약의 경우 클라인 남매를 상대하기 위한 아이템, 시간을 듬뿍 들이기에 만들 수 있는 나 자신보다 강대한 무기, 도망치기 위한 아이템, 만일의 경우 소니아의 정신 간섭을 회피하기 위한 아이템.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완벽하게 지금 우리의 경지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를 쥐어짜 내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의논을 거치고 온갖 마법을 곁들였다. 그 방법 중에는 보다 빨리 유펠르시아의 봉인을 풀기 위한 방책으로 거론됐던 방법도 있었다.
질릴 정도로 짙은 마력을 쥐어 짜내거나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를 철저하게 조사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에 비해 플로리아는 너무 평화로웠다. 트라던트의 영향도 없고, 강한 수호마법으로 지켜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미소 띠며 여유롭게 거리를 산책한다. 너무 평화로워서 오히려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변장용 아이템 같은 경우엔 관찰로 알아낸 한국의 위험성을 입력하고 설정을 주입하여 환경에 맞게 우리를 보조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강화했다. 마법을 집어넣고, 고치고, 집어넣고, 고쳤다. 그렇게 해서 겨우겨우 한국에 들어갈 준비가 끝났다.
이윽고 예정했던 날이 찾아왔다.
한국을 조사할 때는 당연히 엄밀히 주의했다.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거나, 가까이 다가갈 때도 문자마법으로 철저히 모습을 숨겼다. 환각이 아니라 문자마법을 사용한 것은 소니아 때문이다. 결계에 소니아의 마력이 섞여 있었으니 환각마법으로는 위험하다. 그래서 문자마법으로 철저하게 원하는 마법을 구현했다. 실체화가 아니라 구현이다. 환각은 철저히 멀리했다.
더욱이 이번 변장은 단순한 변장이 아니라 변신에 가까운 수준이다. 동료들과 상담해서 소설 속 캐릭터를 만들 때처럼 변장용 인물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정을 짰다. 아이템을 사용함으로써 원래 몸 위에 문자마법으로 만든 새로운 인물의 허물을 입는다. 마법도, 마력도, 모습도, 정신세계도, 영혼도 덧씌운다. 말 그대로 타인이 되는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변신이지만 단점은 있다. 본래 마법을 전력으로 사용하면 마법부터 위장이 조금씩 벗겨진다. 소영이까진 전력을 사용해도 버틸 수 있지만 그 위로는 아무래도 아이템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바로 벗겨지지는 않겠지.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이 시간이 흐르면 변신 상태는 알아서 다시 회복한다. 하지만 강한 마력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변신이 점점 풀린다. 한번 변신이 완전히 벗겨지면 다시 씌우기까지 쿨타임이 필요하다.
모습만이 아니라 전투복도 덧씌워진다. 마력과 마법이 덧씌워진다는 건 실력도 덧씌워진다는 뜻. 미영 할머니는 A랭크, 형일 아저씨와 나, 인하, 예리는 B랭크, 나머지는 C랭크다.
성진도 C랭크로 맞췄다. 이 녀석은 이번에도 문제아다. 얼마나 뛰어난 변신을 덮어씌우든 그가 한 번만 제대로 마법을 써도 내 마법 따윈 풀릴 것이다. 역시 마력속성이 문제다. 그래서 일부러 실력을 제한시켰다.
새로 설정한 마법은 대개 고유마법의 다운그레이드판이다. 완전히 상이하면 덮어씌운 게 약간만 벗겨져도 바로 들킬 테니 그렇게 설정했다.
이름도 새로 맞췄다. 가명이 많아져서 큰일이다. 나부터 시작해서 각기 유동아(유은하), 강희란(강인하), 이해인(이성진), 이하늘(이소영), 최영인(최인성), 사라 윈터(김미영), 채송화(강예슬), 윤수로(윤시하), 김성하(정예리), 김현구(김형일)이다.
우리는 플로리아를 나서며 아이템을 가슴 안에 집어넣었다. 심장 근처에 심어진 아이템은 우리가 변신한 모습으로 있는 동안 마력의 핵심을 자처한다. 실제 마력의 핵심을 덮어씌우고 온몸을 돌며 모든 것을 새롭게 덧씌운다. 우리는 모습이 완전히 변한 걸 확인하고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향하는 길은 어디든 위험천만하다. 중국 대륙을 따라서 들어가든, 바다를 따라서 들어가든, 한국 주위는 위험으로 넘치고 있다.
우리가 구태여 제일 위험한 길인 중국 대륙을 타고 한국으로 들어가려 한 것은 이 길이 비교적 서울과 가깝기 때문이다. 클라인 남매가 있으며, 커다란 디트리가 있으며, 죽음이 새겨진 도시. 현재 위험한 세력이 집중된 도시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장소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 보고 싶다.
……사실 기회가 된다면 우리 집이 있던 장소에도 가 보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하겠지. 우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크하고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가고 싶은 장소는 많지만……과연 얼마나 무사히 남아 있을까. 학교 기숙사는 학살이 일어났던 날 부서졌다. 내 결계를 종잇장처럼 부수고 그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을 부쉈다.
대현이 기숙사에 있던 내 물건을 건져 돌려주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회생 불가능했다. 내 것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물건도 거의 회생 불가능했다.
집도 이제는 부서졌을지 모른다. 남아 있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자. 한국을 떠난 지 이제 4년째다.
거기뿐일까. 친구들의 집도, 함께 놀러 갔던 번화가도,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장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현의 정보를 보면 한국은 사람이 모여 있는 중심 도시 열 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정글로 변했다고 한다. 건물도 리모델링을 많이 했다. 하늘 섬은 거의 폐쇄되어 사라졌다.
염사 사진을 보아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겠다.
우리는 중국 대륙을 건너 한국으로 가면서 방랑자 흉내를 냈다. 전쟁이 있으면 그 싸움을 도와 돈을 버는 자유 용병이자 방랑자.
한국에 가는 사람은 여러 부류로 나뉜다. 조사를 위해 침입하려는 사람, 트라베리아의 밑에 붙으려는 사람, 한국에선 전쟁이 없다는 말을 듣고 가난이나 폭력을 견디지 못해 매달리는 심정으로 찾아가는 사람, 추억이 그리워 가는 사람.
어디에 감시의 눈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결계를 다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만도 없다. 그러니 최대한 그럴듯한 모습을 연출해 내려는 거다.
우리가 한국에 가려는 이유는 이미 설정해 뒀다. 전쟁에 지쳤으며, 한국이 그리우며, 한국에서 죽은 친구의 무덤을 찾고 싶다.
실력에 자신이 있어 들어갔다 빠져나올 생각으로 한국으로 향하는 일행이다. 한국 사람이나 트라베리아에 반감이 있는 건 당연하다. 웬만하지 않고서야 다들 트라베리아를 원망한다.
시야를 떠 키메라의 기척이 적고 유클라프나 소니아와는 전혀 관계없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긴장하며 총을 꽉 쥐었다.
우리 마법을 각기 고유마법의 다운그레이드판으로 설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메인마법을 그대로 고유마법으로 설정한 건 아니다. 내 환각마법이나 공간마법은 너무 눈에 띈다. 미영 할머니와 성진이의 마법도 마찬가지다.
혹시 몰라 미영 할머니, 나, 성진은 아이템으로 각자 마법을 덧씌울 뿐만이 아니라 마법의 레벨을 다운시키는 마법을 따로 몸에 각인했다. 우리의 마법은 너무 특수하다. 특수해서 다운시키는 것에 꽤나 애를 먹었지만 어떻게든 되었다.
내가 쓸 마법은 금속마법과 문자마법이다. 성진은 염력마법을 쓸 거고, 미영 할머니는 바람마법을, 인하도 번개마법을 쓸 거다. 나머지는 다 그대로 쓰는 대신 서브마법을 제한한다. 형일 아저씨는 화살을 창처럼 휘둘러서 쓸 거다.
머지않아 우리는 한국 국경에 다다랐다. 결계가 시작된다. 두께가 두껍고 안으로 갈수록 촘촘해지는 결계의 모습에 나는 순간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여기서부터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나는 시야를 반쯤 닫았다.
우리는 고글을 썼다. 마력을 잘 보게 해 주는 이 고글은 원래부터 있던 기성품이다. 거기에 내 마법을 조금 더했다. 맨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훨씬 마법이 잘 보인다.
형일 아저씨가 선두에 섰고, 미영 할머니가 맨 뒤에 섰다.
형일 아저씨는 적의 진영에서 감지능력 없이 함정을 발견하거나 적을 피하는 것이 특기다. 고글이 있으니 더 잘 파악하겠지.
우리는 기척을 죽이고 진형을 맞추며 조금씩 걸어갔다. 결계의 경계선을 넘는다고 바로 무언가가 바뀌지는 않는다. 아까와 다름없는 빽빽한 숲이 보일 따름이다. 완전히 한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키메라를 비롯한 경비 지역과 관문을 넘어야 한다. 지금 경비 지역이 시작됐다.
처음엔 순조로웠다. 키메라를 피하며 형일 아저씨가 차례로 함정을 발견하고, 성진도 금방 시선을 느끼고 감시 카메라를 발견해 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트라베리아가 만든 키메라다. 변신 상태인 우리에게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내 지금 실력은 B랭크, 평소 같은 환각은 쓸 수 없다. 키메라는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 존재를 눈치챘다. 냄새로, 혹은 귀로, 우리를 예민하게 포착해 냈다.
관문에 다가가기도 전에 난전이 벌어졌다. 총구에서 녹황색으로 위장된 마법이 쏘아진다. 사격과 녹황색. 그래, 내게 덧씌워진 것은 민희의 마력이 모티프다. 또한 민희는 공간마법에도, 환각마법에도 자질이 있었다. 위장하기엔 딱 좋은 마력이다.
키메라의 실력은 가면 갈수록 강해졌다. 얼마 후 나는 미영 할머니와 진형을 바꿨다. 미영 할머니가 바람으로 키메라 한 마리를 없었다.
그래도 이쪽 지역은 노린 대로 강한 키메라가 별로 없다. 도망치며, 싸우며, 우리는 무사히 경비 구역을 넘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위 분위기가 바뀌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검은색이었던 마력이 은푸른색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관문’에 들어섰음을 느꼈다.
“무슨 관문이려나…….”
“글쎄.”
“고개를 숙여라.”
미영 할머니의 지시에 우리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작은 동물이 지나갔다. 동물…? 아니다. 저건 인형이다.
“저건 설마…….”
“카인의 인형술이군.”
“으음…….”
커븐 로드 카인. 이명은 인형술사이며 사용하는 마법은 이명 그대로다. 카인이 만든 인형은 완성도가 높을수록 똑똑하며 강하다고 한다.
“엄청 귀엽지만……카인의 인형이니 무척 강하겠죠?”
예슬이가 바짝 긴장하며 고글을 건드렸다. 저렇게 귀여운데 안에 숨기고 있는 마력은 상당하다.
“그렇겠지. 하지만 동물형, 그것도 천으로 된 인형이라. 아마 우리 힘으로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관문’이란 느낌이 풀풀 나는군.”
“보통은 이 정도만 되어도 포기하겠지만요.”
미영 할머니는 불만스럽게 인상을 찌푸렸고, 소영이는 맘에 안 든다는 기색으로 삐뚤어진 미소를 지었다. 강한 건 틀림없다. 그러나 저 인형의 실력은 B랭크 중위. 지금의 우리로도 뿌리칠 수 있는 수준이다.
“조심해서 가자.”
우리는 만일을 위해 또 한 번 대형을 바꿨다. 형일 아저씨가 맨 앞을, 미영 할머니는 중간에서, 나와 인하는 맨 뒤에서 경계했다. 우리는 아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앞으로 향했다.
“멈춰. 아래에 실이 있어.”
인형술사 카인은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고 존재하는 것에 실을 연결해 꼭두각시로 만든다. 저 실이 꼭두각시에 연결된 실인지 아니면 붙잡힌 자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실에 닿았을 때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은 틀림없다.
형일 아저씨 바로 뒤를 따라가던 소영이가 실을 피해 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기려 했다. 그걸 인성이가 급히 제지했다.
“잠시만.”
“왜?”
소영이의 발이 허공에서 뚝 멈췄다. 인성이가 고글의 버튼을 누르며 몇 번 조정했다.
“역시, 거기에도 실이 있어.”
“헉.”
소영이가 숨을 삼켰다. 뒤늦게 실을 발견한 형일 아저씨도 혀를 찼다.
“이런, 정말이네.”
“거기 실보다 더 얇고 눈에 안 띄고 강하네요. 방심을 유도한 함정인가 봐요.”
“생각보다 공들였네.”
나는 잘 보여서 관찰력이 좋은 거지만, 인성이는 순수하게 관찰력이 좋다. 그건 그렇다 쳐도 참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이상하게 머리를 써서 공들였네.”
“그러게나 말이야.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싶거들랑 사실 그냥 강하고 뛰어난 인형을 배치해 두면 끝나는 일이잖아.”
다른 동료의 의견도 나나 인성이랑 비슷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주의하며 걸었다. 일정 거리를 가면 한 번 멈춰서 고글로 다음에 걸을 장소에 펼쳐진 실과 인형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그것을 반복하며 나아갔다.
나아갈수록 인형과 실의 규칙 비스무리한 걸 알게 되었다. 실에는 7가지 종류가 있다. 개중에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위험한 실도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인형은 실이 달린 꼭두각시 인형으로, 자신의 실을 따라 움직인다. 인형은 눈에 띄지 않는 실이 붙어 있을수록 강했다.
우리는 실과 인형의 감지를 피하기 위해 바짝 주의를 기울여 움직였다. 그러나 인형의 수는 많았고, 어떻게 해도 싸워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곳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6개의 인형을 차례로 멈춰야 한다.
인형들은 일정 범위를 빙글빙글 돌며 우리가 지나갈 길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갔다간 다른 관문에 발을 들이밀게 된다.
돌아가며 한 개체, 혹은 두 개체씩 인형을 멈추기로 했다. 우리는 현재 실력과 상성에 맞추어 네 팀으로 나뉘었다.
1팀, 미영 할머니. 2팀, 형일 아저씨, 시하, 예슬이. 3팀, 소영이, 인성이, 나. 4팀, 성진이, 예리, 인하.
첫 번째 구역의 인형을 상대한 것은 3팀, 즉 우리였다. 우리가 상대할 인형은 목각 인형이다. 우리 세 사람은 인형의 감지 범위라 생각되는 거리 바깥으로 멀찍이 물러났다. 나와 인성이가 동시에 총을 겨누었다. 인성이는 그림자를, 나는 속성마법으로 만든 금속 조각을 날렸다.
퓩! 퓩!
소음기를 단 총구에서 마법이 날아간다. 탄환이 소영이의 바람을 먹고 가속했다. 그러나 목각 인형은 자신의 범위에 공격이 다가오자 기민하게 눈치채 피했다.
정해진 범위만 돌아다니던 인형이니만큼 카인의 인형치곤 강하지 않다. 자아도 없고, 감정도 없다. 정해진 기술을 정해진 범위에서만 쓸 뿐이다. 그래, 변신한 우리의 힘으로도 잘하면 이길 수 있을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려면 힘이 꽤 든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발을 묶고 도망가는 것, 괜히 힘을 빼지 말자.
목각 인형의 팔이 뱀처럼 늘어났다. 늘어난 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우리를 공격한다. 훨씬 더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느리기 그지없는 공격이었으나, 지금은 몸이 그것을 따라 주지 않는다. 나와 소영이는 인형의 공격을 피하며 인형에게 다가갔다. 소영이가 바람으로 목각 인형을 느리게 만든 사이 나는 총구 앞에 금속을 ‘조형’했다. 삐죽삐죽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철 가시 공을 쐈다.
퓩!
금속이 커지며 목각 인형 사이로 파고들었다. 카각, 카각, 목각 인형의 움직임이 둔해진 사이 인성이가 그림자를 조종했다. 철 가시에 이어 그림자까지 목각 인형 사이를 꽉꽉 파고들자 목각 인형은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멈췄나 싶었던 순간 눈에 불을 켜며 우리에게 날아든다. 목각 인형의 손목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나타났다. 칼날이 닿았으나, 베인 것은 문자마법으로 만든 피부뿐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온갖 수단을 사용해 인형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다른 팀이 앞으로 날아갔다. 목각 인형의 공격을 꼼꼼히 막아 내는 사이 다른 팀은 두 번째 구역으로 갔다. 그때서야 우리도 다음 구역으로 달렸다. 목각 인형은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자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하아……하아….”
생각보다 힘겹다. 이게 B랭크의 힘. 내가 B랭크였던 것은 중학생 무렵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오래전 일도 아닌데 나에게는 너무도 머나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미 S랭크의 힘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던 모양이다. 당연하지. 그게 지금의 내 실력이니까.
우리는 다음 범위로 가며 상황을 확인했다. 앞서간 두 팀이 인형 두 개를 막아 내고 있다. 우리는 그 장소를 지나쳐 앞으로 뛰었다.
그것을 반복하며 6개의 인형이 틈 없이 지키고 있는 구역을 비교적 안전하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단체로 일일이 상대하며 전원이 발을 묶이는 건 비효율적이다. 다운그레이드된 지금 상태로 인형을 부술 수 있는 건 미영 할머니뿐이다. 특히 그중 두 개는 A랭크의 힘으로도 빠듯했다.
그 후로도 몇 번 인형과 부딪쳤다. 인형의 숫자가 많거나, 혹은 감지 범위가 생각보다 넓을 때 전투가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동안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밤이 깊을 때까지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새벽 두 시쯤에 자리를 잡고 잠에 들었다.
자던 도중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깨어났다. 형일 아저씨와 성진, 시하는 이미 일어나 살피고 있었고, 다른 동료들도 동시다발적으로 깨어났다. 예리만 깨어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시하가 신중한 눈으로 전투가 일어난 방향을 응시했다.
“뭐지?”
“뭐긴. 우리랑 똑같이 관문에 들어온 놈들이 소란을 벌이고 있는 거겠지.”
형일 아저씨가 말한 대로였다. 아기만 한 크기의 마네킹 인형 두 명과 세 명의 마법사가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인형은 양손에 삼각 칼을 들고 덤벼들었고, 마법사들은 그걸 막는 것만도 벅차 보였다.
“위험하겠는데. 어떡할까. 도울까?”
“도와? 우리 실력으로?”
소영이가 망설이며 꺼낸 말에 성진은 실로 냉정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트라베리아를 속이기 위해 철저하게 위장했다. 저 인형들의 실력은 준A랭크다. 싸우면 우리에게도 피해가 올 것이다.
“도와주면 싸워야 돼. 살펴보니 저 인형들은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것 같군. 싸우는 방법에 같은 패턴이 적어. 우리한테 그렇게 여유가 있나?”
너무 냉정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옳은 말이다. 여기에 오는 사람은 모두 한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죽으면 그건 자기 책임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지금의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을 일일이 도와줄 입장이 아니다. 복수를 맹세하며 구하지 못했던 목숨이 몇만이며, 방치했던 목숨은 또 얼마나 되나.
“그래도 눈앞에서 죽는 걸 보면 기분이 안 좋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관문도 남아 있고, 인형과의 싸움에는 익숙해져야지.”
게다가 이 몸과 마력, 마법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싸워야 할 일이 많을지 적을지는 모르겠지만, 싸움은 능숙할수록 좋다.
“역시 그렇지?”
소영이와 인하가 웃으며 나를 따라 일어났다.
“인형의 움직임을 막은 후 저 세 사람을 데리고 인형의 범위 너머로 도망치면 되겠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는 모자라.”
“왜?”
혹시 몰라 일부러 시야를 여는 걸 제한하고 있는 참이지만, 그래도 보일 건 다 보인다. 나는 고글을 쓰며 인형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인형들은 준A랭크고, 그들은 C랭크 두 명과 B랭크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은 아이템을 사용하며 용케 버티고 있지만 금방 한계가 올 거다.
“저 세 사람한테 실이 잔뜩 달라붙어 있어.”
나는 고글 속에서 몰래 시야를 떴다.
결국 저 실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를 지나다니는 동안 그게 제일 궁금했다.
저자들의 몸에 매달려 있는 실은 실 중에서도 가장 얇다. 처음 봤을 때도 생각했지만 날카롭지는 않다. 즉 직접적인 공격성은 없다.
너프 역할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건 주위에 있는 인형을 끌어 들이는 용도 같다.
실을 자르면 카인이 눈치챌까? 하지만 이 관문에 깔린 실 중 반은 보통 사람의 눈에도 보인다. 보이게 했다는 건 본 사람은 누구든지 자를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걸 일일이 신경 쓸까? 아니면 자르는 것으로 함정이 발동하도록 해 놨나?
‘그런 느낌은 안 드는데.’
다른 마법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안 든다. ‘이곳의 실은 인형을 부른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 같다.
“여기 쳐진 실들 말이야, 인형을 부르는 역할이 아닐까 싶어. 지금 저 사람들한테 달라붙어 있는 실, 튼튼한 실 사이에 숨겨서 달라붙도록 유도하던 그 가장 얇고 강하면서 부드러운 실인데.”
“닿는다고 다치지는 않는구나. 그럼 은하 말이 맞을 것 같네.”
“그보다 저 실, 전혀 안 끊기네.”
인성이가 고글을 쓴 채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