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352
“큭!”
시몬이 덩굴을 베며 혀를 찼다. 나뭇가지도 덩굴도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러나 베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시몬이 검을 날카롭게 휘둘렀다. 그러나 잘린 덩굴도, 나뭇가지도 빠르게 재생하며 증식했다. 어느새 베기 전보다 훨씬 숫자가 많아졌다.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드라이어드를 향해 총공격을 가했다. 강인하의 손에서 빛과 번개 덩어리가 날아가고, 김형일은 흑조와 힘을 합쳐 집속 포를 쏘았으며, 김미영은 줄기를 따라 힘을 얼렸고, 이소영도 바람을 내질렀다.
그러나 최인성은 무언가 어그러진 듯한 감각에 공격도 못 하고 드라이어드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뭐지? 뭐가 어그러진 걸까?
다른 마법사들도 제각기 공격한다. 곧 그들도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래, 거리감이 이상하다. 드라이어드의 크기는 기껏해야 3층에서 5층짜리 건물 정도다. 그런데 막상 드라이어드의 몸에 닿은 마법은 드라이어드의 손바닥조차 못 채울 만큼 작았다.
“시공간을 일그러뜨린 거다. 마력 흡수에, 저런 것까지……!”
그것에 대답을 준 건 윌리엄이었다. 드라이어드를 중심으로 다시 숲이 뻗어져 나왔다. 가호를 받으며 총을 쏘던 윌리엄은 어느 순간 자신의 마법이 제대로 먹히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큭! 이런!”
시야가 좁아졌던가? 아니면 이 나무가 시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매개체이기 때문인가. 주위가 나무로 빽빽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같이 싸우던 일행의 모습도 나무 그림자 속에 휩쓸려 사라졌다.
일행과 멀어졌다.
싸우던 마법사들의 상황은 다 똑같았다. 바닥도, 하늘도, 옆도 앞뒤도 온통 나무와 풀로 가득 메워졌다. 어딘지도 모르겠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가호도……멀어졌다.
그래, 가호가 멀어졌다. 마력이 약하거나 특수성이 없는 사람부터 속절없이 쓰러져 내렸다. 슐란, 레베카, 알반.
캘리의 마법사들은 무사했다. 그들이 가진 가호는 그들의 ‘존재’에 내려진 것이니까.
이소영과 최인성의 몸은 포식 아이템이 보호해 줬다. 이소영은 나올 때 윤시하가 가지고 있던 유리 장식을 건네받았다. 최인성의 유이와, 이소영이 가진 물고기 포식 아이템.
함선 캘리번에 타고 있는 자들은 멀쩡했다. 가호가 작용하고 있으니. 덩굴이며 나무가 캘리번을 노렸지만, 캘리번은 금색 빛을 뿜으며 그 힘을 거부했다.
절체절명이었다. 드라이어드가 만들어 유지하고 있던 숲과 드라이어드가 직접 펼치는 나무는 담긴 힘과 의지가 천지 차이였다.
마력을 빼앗기는 속도로 생명력을 빼앗긴다. 여기에서 거의 멀쩡하게 몸을 유지하고 있는 건 기껏해야 캘리의 단원들과 강인하, 로일이 전부였다. 그 가호의 힘도 조금씩 약해져 캘리도 슬슬 힘을 뺏기기 시작한다. 이로써 한동안 빼앗기기만 했던 드라이어드의 힘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호도 그대로 받고 있고, 그 스스로의 힘도 드라이어드에 쉽사리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특수한 마법사가 한 명 있다. 바로 강인하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마법은 드라이어드에 닿기도 전에 전부 흡수당했다. 그런데 강인하의 마법은 시공간이 일그러짐으로 인해 마법이 작아져도 드라이어드에게 적게나마 타격을 준다.
“그렇다면……작아져도 상관없을 만큼 대규모마법을 쓰는 수밖에!”
강인하의 손 위로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모였다. 빛이 열기와 함께 압축되며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주위로 휘몰아치는 불꽃, 무시무시한 에너지, 그건 작은 태양과 다름없다. 아니, 그 자체로 이미 태양이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다섯 개나 되는 태양이 연속적으로 만들어진다.
“선라이트!”
무시무시하게 커다랗고 거대한 힘을 지닌 태양 다섯 개가 강인하의 앞으로 날아갔다. 태양은 눈앞에 있는 수풀을 당장에 태워 살랐다. 퍽! 화르륵! 불꽃이 드라이어드의 영지를 살라 간다. 그 모습을, 그 금빛을 누구나가 보았다.
그럼에도 움직일 수 없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기에 손을 뻗는 자가 있다. 새벽별무리는 손을 뻗었다.
슐란은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정신을 잃었다. 스테이의 관찰안은 마법을 파악한다. 그렇기에 그는 눈치챘다. 마법이 멀어진 그 현상이, 단지 시공간이 일그러졌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보라색 괴물은 최인성의 영향을 받아도 참 많이 받았다. 이곳의 나무는 그림자 하나하나마저 만만치 않은 힘을 지니고 있다. 마법이 작아졌던 그것은 시공간마법이면서 정신마법이기도 했다. 환상을 사용해 심리적으로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으며, 마법을 직접 흡수하는 게 통하지 않을 땐 그림자를 흡수해 마법을 분해했다.
지금도 그렇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식물들은 마법사들의 정신을 꽉 붙잡고 있다. 서로 멀어진 것처럼 보여도 식물들 때문에 그렇지 않게 느껴질 뿐 사실은 바로 곁에 있다. 멀어진 건 하나뿐이다. 가호를 새기고 있는 함선.
최인성은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꽉 붙잡았다.
‘그렇다면 이따위 그림자, 반대로 내가 전부 흡수해 주지!’
「돕겠다옹!」
마법의 압력에 휩쓸리고 있던 최인성은 흠칫 놀랐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건 다 이 아이 덕분이었다.
“돕겠다고?”
「내가 인성이의 그림자가 되겠다옹!」
“사역수가……되겠다는 거야?”
「그렇다옹!」
유이가 방긋 웃었다.
「너는 내게 이름을 주었다옹. 그걸로 인성이와 내가 연결되었다옹. 내가 너의 그림자와 융합해 힘이 되겠다옹. 왜냐면 너는 나에게 이름을 붙여 준, 나를 정의한 나의 아빠니까.」
유이가 최인성의 그림자에 손을 짚은 순간 검은색이 옮겨 붙으며 유이의 모습이 변했다. 분홍색 고양이에서, 검녹색 표범으로.
「나를 만들어 준 어머니가 말했지. 이름을 붙여 준 자야말로 나의 진짜 가족이며 부모. 도구일 뿐이었던 나는 네게 이름을 받음으로써 ‘유이’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너의 괴물이 되마.」
새까만 형체가 최인성의 그림자 안에 녹아들었다. 시야를 부릅뜬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최인성은 그 직후, 그림자에서부터 밀려드는 농밀한 마력에 숨을 삼켰다.
유이는 처음에 마력을 포식하기 위해 만든 아이템일 뿐이었다. 하지만 진화석을 먹음으로써 새로운 존재로 진화했다.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힘으로 적을 공격하고, 적의 마력을 흡수하는 사역마.
“아……으윽……으아아아아악!!!”
마력이 넘실거리며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 마법 레벨이 억지로 끌어올려진다. 마력이 진정되지 않고 폭주하듯 흘러넘친다. 최인성의 그림자 밑에 있었던 그의 어두운 의지마저, 그림자의 의지마저 위로 부상한다.
흘러넘치는 그림자가 주위의 나무를, 덩굴을, 이파리를, 그 안에 깃든 그림자를 무작위로 흡수하며 더 강대해져 갔다. 최인성은 이윽고 비명을 삼켰다. 흘러넘치던 마력이 다시 최인성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림자가 전투복과 그의 머리카락, 몸에 스며들며 갑옷이 된다. 얼굴에 검은 문양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조금 길어진다. 원래도 새카맸던 전투복이 빛조차 반사하지 않는 칠흑으로 물든다.
“─아.”
최인성이 무어라 말하려 한 순간 그가 흡수함에 따라 사라졌던 나무와 덩굴이 다시 무서운 기세로 밀려들었다. 최인성은 마법 안에 있는 그림자를 무작위로 흡수해 갔다. 그림자가 사라지면 마법 역시 자연스럽게 존재성을 잃으며 부스러져 내린다. 게다가 유이를 흡수한 이상 최인성이 흡수하는 것은 그림자로 그치지 않는다. 마력마저 짓씹어 흡수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순조롭게 흡수했던 마력이 점차 부담이 되어 밀려들어 왔다. 최인성이 전부 흡수해 없애기에 드라이어드는 너무 강했고, 그 마법에 속한 그림자는 짙고 버거웠다.
“악, 큭…!”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최인성은 가까이에 있는 그림자를 느꼈다. 모두의 힘이 흡수당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근원을 상처 입는다. ──죽을지도 몰라. 최인성은 이를 악물고 그림자를 흡수하던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나무와 덩굴이 밀려들어 오는 속도가 더, 훨씬 더 빨랐다.
‘빌어먹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하늘에서 익숙한 남청색 마력이 내리꽂혔다.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져 내렸다. 리피트가 세웠던 결계가 대단치도 않은 공격에 일순 균형을 잃었다. 무작정 힘으로 파괴한 것이 아니라, 마법의 빈틈을 정확히 찔러 공격했기 때문이다.
“저건…….”
멀지 않은 장소에서 리피트와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실비아가 이를 드러냈다. 리피트가 생글 웃었다.
“들어가려는 건가? 그렇다면 열어 줘야지.”
리피트가 결계의 구멍을 열었다. 상대는 조금 머뭇거리다 결계 안으로 들어섰다. 그 직후, 숲의 중심으로 거대한 검이 내리꽂히며 새벽빛 기둥이 생겨났다.
‘그림자마법’은 유은하의 정화마법과 상극이다. 정화마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정신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게 신기한 점이지만, 원래 마법사마다 가진 특성이 천차만별인 법이다.
유은하는 거침없이 일행을 뒤덮고 있던 덩굴과 나무를 ‘서광의 검’으로 걷어 냈다. 자잘하게 남은 힘은 별의 고래가 뿌린 별의 힘이 집어삼켰다.
“누구?”
거인이라기에는 조금 작으나 보통 인간보다는 훨씬 거대한 드라이어드, 하미아가 불쾌한 눈으로 하늘에 서 있는 유은하를 노려보았다.
“당신의 힘, 기분 나빠.”
한편 유은하 역시 하미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키메라다. 그런데 힘이 낯설지 않다.
“헐, 미쳤네. 느껴지는 기세가 아주 무시무시한데? 이 정도면 못해도 S랭크…….”
“상위예요.”
유은하의 뒤에 서 있던 한재일이 하미아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유은하가 한재일을 째릿 노려보았다.
“그래서 방해된다고 한 겁니다.”
“어……그러게. 이건 진짜 방해되겠네.”
“은하야!”
유은하가 하미아를 노려보던 차 아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은하는 별의 고래로 하미아의 공격을 막으며 아직 덜 물러난 숲을 확인했다. 그림자의 힘은 물론이고 나뭇가지와 줄기마저 전부 뜯겨 나간 자리에 처음으로 진짜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로 연속적으로 유성우가 떨어진다.
“인하야, 인성아! 괜찮아?”
“나는 괜찮지만…….”
강인하가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연히도 숲이 사라진 장소에 있었던 강인하, 최인성, 스테이가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고개를 든다. 유은하의 눈이 최인성을 보고 잠시 이채를 발했다.
‘그사이 강해졌네.’
강인하가 소리쳤다.
“아직 숲에 사람이 있어! 위험해! 예리랑 예슬이, 시하가 있는 함선도 보이지 않아!”
“인하야, 저 드라이어드는 은하한테 맡기고 우리는 사람들을 구하자.”
“그래!”
유은하를 따라 아래를 내려다본 한재일은 토벌대의 네 사람 사이에서 마찬가지로 엉망인 모습으로 고개를 드는 동료……에이온과 비앙카를 확인하곤 숨을 삼켰다.
“단장! 어떻게 된 거야? 왜 단장이랑 비앙카 대장이 여기 있어?”
“한재일?”
그 목소리에 에이온과 비앙카 역시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상처투성이인 채 유은하의 옆에 서 있는 한재일. 강인하는 그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상대를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다. 비앙카가 도끼를 내려놓으며 이를 갈았다.
“야! 이 자식아! 너 당장 내려와! 말도 안 하고 나가선 어딜 싸돌아다녔던 거야!”
“아하하, 그게…….”
그제야 한재일은 자신이 가출 중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찔끔했다.
“은하야, 위험해!”
“한재일!”
그러나 한재일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드라이어드가 유은하와 한재일을 덮쳤다. 마력을 흡수하는 암녹색 나무에 유은하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평소와 달리 타인의 마력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나뭇가지가 날카롭게 유은하를 찔렀다. 유은하는 힘으로 나뭇가지를 쳐부수며 피했다. 유은하의 주위로 아까 떨어졌던 것에 비해선 작은 유성이 흩어지며 드라이어드를 향해 날아갔다. 유은하는 드라이어드의 공격을 피하며 한재일의 팔을 잡아끌었다.
“으악, 윽.”
공격을 피하며 눈살을 찌푸리던 유은하가 휙 아래를 보았다. 한재일을 제법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캘리의 멤버들이 보인다. 유은하는 또 한 번 공격을 피하며 이번엔 한재일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방해돼요.”
“억? 으아아악!”
유은하가 팔을 휘둘러 한재일을 휙 에이온을 향해 던졌다. 에이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기보다 덩치가 큰 한재일을 끌어안았다. 하미아의 주위로 나비 정령이 팔랑팔랑 나타났다. 유은하의 안에서 나타난 라크루리온과 정령이 부딪치며 주위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쿠과과과과과과!
하늘이 번뜩이며 천지가 진동했다. 빠직, 빠직, 몸 안에서 어딘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가 유은하의 의지에 대답했다.
「탐지…성공했습니다, 만……마법사 개개인의 기척이 상당이 희미합니다. 함선은 비교적 멀쩡합니다.」
“별의 고래 모드 변환!”
유은하는 하미아를 튕겨 내며 뒤로 물러났다. 아래에서 숲을 야금야금 먹어 가던 다섯 마리 고래들의 형태가 일그러지더니 작은 공으로 뭉쳤다.
“『별들의 성찬!』”
목소리와 함께 남색의 공이 블랙홀이 되었다. 블랙홀이 주위의 나무를 흡수하며 빨아들인다. 하미아가 이를 갈았다.
“내 숲을……망치지 마!”
하미아의 팔이 길어지며 커다란 나무로 변한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지닌 나무가 유은하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위로 9개의 대검이 생겨났다.
“『9속성 검!』”
9개의 검이 하미아의 몸을 푹 찌른다. 9속성의 마력이 하미아의 안에서 폭발했다.
“흐으으읍….”
하미아의 주위로 퍼진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유은하의 마력을 분해했다. 하미아는 콜록콜록 기침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숲이 사라지고 함선이 다시 대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숲에 갇혔던 사람도 하나둘 모습이 드러났다. 유은하가 하미아를 노려보며 어둠으로 공격하려고 한 순간, 밑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레베카!”
“슐란 님!”
“알반!”
유은하는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하미아가 공격하여 차마 뒤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함선에서 붉은 머리 여자가 뛰쳐나온다. 유은하는 아직 남아 있는 릴리의 마력 때문에 욱신거리는 팔을 마력으로 보호하며 이를 콱 악물었다.
유은하가 하미아와 싸우고 있을 때, 아래에서는 구호 작업이 한창이었다. 강인하는 빛으로 숲을 태우며, 최인성은 그림자를 흡수하며 전진했다. 스테이도 숲을 저격하며 두 사람을 조금이나마 보조했다. 그러나 결국 함선과 사람을 붙잡고 있던 숲을 들어낸 것은 유은하였다. 최인성이 순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은하를 돌아봤다.
‘그림자가 평소와는 달라.’
유은하가 왔음을 알았을 때는 반가웠다. 무사히 돌아온 것이 기뻤다. 드라이어드의 특수한 힘에 아랑곳 않고 대처하는 걸 보니 역시라는 생각도 든다. 유은하에겐 드라이어드가 아까 그들에게 걸었던 시공간마법도, 마력을 흡수하는 힘도, 하물며 정신마법도 통하지 않는다. 숲을 걷어 내는 걸 끝내고 유은하가 영역을 펼치기 시작하면 그 사실은 더욱 굳건해진다.
그러나 유은하의 마력이 어딘지 이상하다. 출력이 조금 불안정하다. 정화의 힘도 평소보다 약하다.
‘어딘가에 손상을 입었어. 싸울 일이 있었나? 설마…….’
게다가 이성진은 어디다 두고 혼자 왔단 말인가.
그 옆에서 한재일은 비앙카와 에이온에게 격하게 혼나고 있었다. 블랙홀의 힘에 의해 사람들이 하나둘 숲에서 해방된다. 숲은 유은하에게 깃든 정화의 힘을 이겨 내지 못했다.
땅으로 조금 가라앉은 듯했던 캘리번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강인하가 달려가 쓰러진 사람을 살폈다.
캘리 일행과 로일, 시몬, 김형일, 김미영, 이소영은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 김미영이 가지고 있던 성물이 김미영을 보호해 줬다. 김형일의 몸은 흑조가 보호했다. 로일은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드라이어드의 힘에 견뎠고, 시몬은 겨우 정신만 차리고 있었다.
제일 많이 밀려났으며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이 일행 중에서 약한 축에 드는 레베카와 슐란, 알반이었다. 세 사람은 완전히 의식이 없었다. 가장 먼저 상황을 인식한 것은 로일이었다. 로일은 정신을 잃은 레베카에게로 달려갔다.
“레베카, 정신 차려! 후……정신을 잃을 만도 하지.”
로일이 한숨을 내쉬며 레베카의 몸을 손을 뻗었다. 손이 이마에 닿는 순간, 로일은 이변을 깨달았다. 몸이……차갑다. 단순히 체온이 낮은 게 아니다. 차갑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레베카?”
그 장면을 함선에 있던 레일리와 아르피나도 보고 있었다. 로일과 달리 레일리는 보는 것만으로 레베카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레일리가 창백한 얼굴로 함선에서 빠져나갔다.
그다음으로 상황을 눈치챈 건 최인성이었다. 레베카만이 아니다. 슐란과 알반도 상태가 이상했다.
“슐란 님!”
“알반!”
동료들의 옆에서 그 목소리를 들은 레비가 달려왔다. 레비는 생기 없는 얼굴로 축 늘어져 있는 레베카와 알반, 슐란을 차례대로 살폈다.
“뭐야, 왜 그래요?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이소영이 당황하며 물었다. 로일이 동요한 눈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레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흔들어 봤자 소용없어요.”
“이봐, 빨리 치료를…….”
“죽었으니까요.”
“……!”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비는 묵묵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말했다.
“세 사람 다 마법의 근원이 조각났고, 몸 안의 마력이란 마력은 다 빠져나갔어요. 생명력과 함께요. 몸이 차가운 건 그래서입니다. 온기도, 마력도, 몸을 움직이는 미지의 에너지도, 전부 저 드라이어드가 뺏어 갔습니다.”
너무 담담해서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들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레베카!”
레일리가 날아왔다. 한걸음에 날아와 레베카의 몸을 붙잡는다.
무어라 소리 지르려 했던 레일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아……윽……흐윽…….”
“레일리.”
“윽…….”
“레일리!”
로일이 거세게 레일리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레일리는 레베카를 끌어안을 뿐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못했다. 이소영이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을 삼켰다. 시몬은 멍하니 슐란의 몸을 끌어안았다.
‘지키지 못했다.’
으득, 이가 갈렸다.
‘일족의 공주를 지키는 게 기사의 소임. 지키지 못하면 명예로운 호칭에 무슨 소용이 있나!’
시몬이 슐란의 몸을 으스러뜨리려는 듯이 끌어안았다. 차가운 온기가 온몸에 와 닿았다.
화악─.
그때였다.
슐란의 가슴에서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 슐란의 가슴에서 솟아난 황금빛은 바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신물, 천칭이었다.
쩌적, 쩌적─
황금색으로 빛나던 천칭에 금이 갔다. 쨍! 천칭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졌다. 황금색 조각이 슐란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헉! 콜록! 쿨럭!”
“슐란 님!”
숨이 멎었던 슐란의 몸에 온기가 돌아왔다.
“슐란 씨!”
“헉, 흐읍!”
몇 번 숨을 내뱉던 슐란은 금방 다시 정신을 잃었다. 레비가 재빨리 슐란의 상태를 살폈다.
“신물의 가호 덕분에 살았네요. 하지만 그뿐이에요. 천칭은 부서졌고, 이분은 앞으로 마법을 쓰지 못할 겁니다.”
“……!”
잔혹한 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시몬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간절한 얼굴로 슐란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기적은 그것뿐, 레베카와 알반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착잡한 눈으로 죽음을 맞이한 두 사람을 바라보던 강인하는 이내 몇 걸음 앞으로 나서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마법을 꽃피우는 드라이어드와 어둠마법으로 드라이어드를 공격하는 유은하.
“이상해. 왜 당신 마력은 먹을 수가 없지…?”
“……?”
“‘나’는……마력을 먹고 자라. 세상의 모든 것이 나의 양식일 텐데.”
“세상의 모든 것이라.”
“그런데, 내가 뿌린 씨앗조차, 당신 몸을 파고들려는 순간 없어져 버려.”
‘씨앗’? 그런 수단도 있던가. 강인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그렇고 유은하의 기세가 조금 이상하다. 처음에 몇 번 기술을 쓴 이후로는 계속 어둠으로만 상대를 상대하고 있다. ‘아멜다의 기둥’도, ‘프리즈마 헥사그램’도 사용하지 않는다. 라크루리온도 기껏해야 어둠의 일부로 녹여 사용할 뿐이다.
“그리고 당신의 팔, 다리, 몸…….”
유은하에 비해 몇 배나 거대한 하미아가 나무를 펼쳐 유은하의 몸을 끌어안았다. 정령의 힘과 함께 나무가 내리꽂힌다. 나무 주위는 강력한 마력으로 일그러지고, 마법사의 마력마저 어그러뜨린다. 그러나 유은하는 멀쩡한 얼굴로 나무를 피했다.
“그건 뭐지? 무시무시한 게 있어. 나는 건드리지 못할 무시무시한 마력.”
‘팔? 다리?’
그것은 유은하의 동료들조차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강인하는 가면 속에서 유은하를 노려보았다. 가면에 걸린 시야공유마법이 보지 못하는 게 세 가지 있다. 하나는 이성진의 힘, 또 하나는 유은하의 힘, 마지막으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힘을 지닌 마법사의 힘.
어느새 드라이어드의 주위로 덩굴과 꽃이 퍼져 나간다. 그렇다고 저 나무가 유은하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유은하는 드라이어드가 만든 식물 때문에 쉽사리 영역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드라이어드의 힘은 기본적으로는 유은하가 정화하지 못하는 부류의 마법이다. 어그러뜨리는 힘을 정화하려면 조정이라는 고위의 힘을 써야 한다.
유은하의 마법이 어그러지거나 흡수당하지 않는 것은 정화의 힘도 힘이지만 그녀의 마법 제어력이 무섭도록 뛰어나기 때문이 크다. 반대로 유은하도 어둠으로는 쉽사리 드라이어드의 마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의 마력이 가진 인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음이, 릴리의 얼음이 유은하의 마력을 어그러뜨리고 있다. 이성진의 가호로도 아직 완벽히 물리치지 못한 거다.
드라이어드의 나무는 주위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빨아들인다. 그 어그러짐은 유은하가 대규모마법을 평소대로 완벽히 통제해 펼치는 것을 방해한다. 그 결과 영역을 펼치기 힘든 상태다.
유은하는 손을 뻗어 드라이어드의 나무를 부러뜨렸다. 웬만한 마법 금속보다 훨씬 더 단단한 나뭇가지를 가볍게, 부러뜨린다. 그리고 그걸 입에 넣고 우악스럽게 씹어 먹었다.
“……?!”
저 숲은 드라이어드의 마법이자 드라이어드의 일부. 나뭇가지를 씹어 먹던 유은하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다. 그런데 더럽게 취향이 아니다.
취향이 아닌 마법, 즉 상성이 안 맞는 마법이다. 그도 당연하다. 드라이어드의 마법은 ‘식물속성’이니까.
“내 마법, 흡수했어.”
먹는 것을 당신만의 전매특허라 생각하지 마라. 유은하는 그런 눈으로 드라이어드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드라이어드의 표정이 한층 차가워졌다. 강력한 힘을 지닌 나무줄기와 이파리가 유은하를 감싸며 파고들었다.
“『아멜다의──.』”
“어서 와, 우리의 정원에.”
“……!”
“너까지 있으면 완벽하네.”
유은하와 드라이어드가 대치하고 있는 바로 옆, 허공에서 안개같이 뿌연 실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은하는 다급히 주먹을 쥐었다.
“『─기둥!!』”
그 순간, 유은하를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마력이 솟아올랐다.
실비아가 불쾌한 얼굴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주위로 분홍색을 띠는 보라색 방벽이 펼쳐져 있다. 방금 내가 쓴 기둥은 정화속성을 듬뿍 담은 어둠과 빛의 속성 융합이다. 파괴력도 끝내준다.
나와 키메라의 거리가 멀어졌다. 그건 그렇고 저건 뭐가 모델이지? 몸이 나무와 꽃, 덩굴로 이루어져 있다. 숲의 요정인가?
그보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저 키메라의 ‘핵’이다.
정령의 힘이니 본래는 조정하는 고위 정화의 힘으로도 쉽사리 정화할 수 없어야 옳았다. 어째서 정령의 힘을 지니고 있는지, 어째서 상대의 마력을 흡수하는 형태로 존재하는 건지, 아주 잘 알겠다.
누가 키메라 아니랄까 봐 다른 놈들보다 더 누덕누덕 기웠다.
저 핵은 하멜의 ‘심장’을 복원시킨 것이다. 한번 죽음을 맞이했던 심장을 ‘네크로맨서’의 힘으로 복원했다. 그곳에 본래 주인이 가졌던 힘을 넣었다.
가끔 저런 식으로 만든 키메라가 있다. 죽은 자를 사용해 만든 키메라가.
그러나 어차피 깨진 그릇. 심지어는 내 마법으로 한번 정화시켰던 자의 그릇이다. 흘러가는 생명력과 마력을 붙잡기 위해서 핵을 흡수하고, 마력을 흡수하고, 생명력을 흡수한다.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장군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하지만, 동시에 제일 이질적인 생명체다.
키메라는 본래 인위적으로 만든 생명체. 그럼에도 생명체로서 제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저 장군 시리즈는 막 죽음에서 되돌아온 인위적인 생명체라, 정화하려면 지금이 기회다. 키메라의 몸이 쪼그라들며 나무가 검게 변식되어 부스러졌다.
“커헉!”
“하미아!”
부서진 팔다리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어딘가로 날아간다. 마력, 깨진 핵과 생명력. 많이도 가져가셨군. 그중 대부분은 저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마력이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아간다. 되돌아갈 수 없는 마력은 세계에 환원된다.
마력과 생명력이 슐란에게, 레베카에게, 알반에게 되돌아갔다. 그러나 슐란의 깨진 그릇은 마력을 채 받아들이지 못했고, 죽은 자의 마력은 몸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죽은 자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돌려받더라도, 늦었다.
팔과 다리가 찌릿찌릿 아파 왔다. 예리의 도움 없이는 쉽게 낫지 않을 것 같다. 내 옆으로 익숙한 기척이 다가왔다.
저……‘하미아’라고 했던가? 이름도 하멜의 짝퉁이로군. 얼굴도 하멜과 닮았고, 마력도 하멜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