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372
“이제 사람은 믿을 수 없어.”
“그래. 마녀가 아니고서야.”
인간들은 마녀를 배척하고, 속이고, 죽였다. 입을 열지 않고 죽은 인간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 수 없었다. 비탄에 젖은 자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교회를, 사람을 향한 증오에 물들어 갈 때, 아멜리아는 울며 여동생을 끌어안던 세실을 떠올렸다.
“아니야. 사람이 아냐…!”
“멜리…?”
“우리가 증오해야 할 건 교회야! 세실은, 여동생이, 실라가 잡혀 있었어. 부모는 살해당하고, 실라를 인질로 잡혀서,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 아이가, 가엾은 그 아이가 죽었을 거야. 교회가 가족과 친구를 맞바꾸라고 한 거야! 난 세실을 원망할 수 없어!”
“멜리…….”
“그런데 교회는 세실의 눈앞에서 실라를 죽였어! 세실은 죽어 가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그래, 대부분은 자신을 위해 배신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모를 뿐 그중엔 목숨이 위험해서, 가족이 위험해서 배신한 사람이 있었을지 몰라. 우리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고 죽은 사람도 있었을지 몰라.”
오시언이 울먹이며 아멜리아의 소매를 붙잡았다.
“잊으면 안 돼.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용서해선 안 되는 건, 교회야.”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증오로 불타올랐다. 그녀의 몸 주위로 자홍색 마력이 형상화됐다.
“복수하자. 설령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교회에게 알려야 해. 우리는!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적어도 그래야, 그래야만…….”
“…….”
“우리가 살아갈 수 있어.”
적어도 그때 불씨를 붙인 것은 아멜리아였다.
아멜리아는 그것을 후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들이 다른 인간 친구들에 대한 소식을 찾기도 전에 교회가 급습해 왔다. 자연의 가호를 받고 숨어 있는 그들을 교회가 어떻게 찾았느냐면, 이번에도 끔찍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신성함의 기준에 못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선천 마법사와 마녀를 전부 죽이지는 않았다. 반항이 심해 본보기로 처형할 자들을 제외하고는 노예나 죄인으로 데리고 있었다.
마녀 일족과 접촉한 적이 없는 선천 마법사는 금세 교회의 권위에 복종했다. 그들은 힘을 가진 것 외에는 일반인과 다름이 없었다.
교회는 그들을 이용해 첫 습격 날 사실은 죽지 않았던 바다 일족 마법사를 조종했다. 마녀를 사탄의 아이라며 학살한 그들이 사탄의 아이를 이용하는 꼴이라니.
그 안에 우연히도 ‘리디언’의 혈족마법을 지닌 자가 있었다. 교회는 그자의 기억을 바꾸고 종으로 만들어 바다 일족을 찾아내게 했다.
두 번째 전투가 일어났다. 바다 일족은 그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교회는 전보다 더 단단히 대비하고 왔다. 프라베리히의 축복이 새겨진 무기, 공격에만 집중한 선천마법.
반면 바다 일족에서 힘을 공격에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은 소수였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게 벨라와 아멜리아였다.
바다 일족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교회가 조종하고 있는 리디언은 시카보다 강한 정령 마법사였다. 시카가 부른 가호가 금방 흐트러졌다. 도망치던 일족의 모습이 드러났다.
일부가 남아 싸우고 약한 자들은 대피시키는, 일족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이 이어졌다. 싸움 속에서 마녀들은 성장했다. 엘리시아는 죽은 자를 조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시카는 자연의 힘으로 사람을 죽였다. 유클라프는 공간을 구부려 적의 신체를 부쉈고, 소니아는 상대의 정신을 깨뜨려 죽였다. 죽이지 않고서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니아의 힘으로도 시카의 사촌 유젤 리디언에게는 다가갈 수 없었다. 또 다른 정신 계열 마법사가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한 번 많은 희생을 딛고 간신히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아멜리아는 도망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분해 눈물을 흘렸다.
무사히, 전보다 훨씬 더 견고한 자연 속에 숨은 후에야 시카는 울음을 터트렸다.
한동안 추격전이 계속됐다. 조금 쉴 만하면 추적자가 붙었다. 그것은 시카가 단시간에 유젤보다 강한 정령을 불러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계속됐다. 리디언 중에 시카와 유젤보다 강한 힘을 가진 마법사는 없다. 그들만큼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마법사 역시 없다.
그제야 그들은 다른 곳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 그사이 민심은 더욱 흉악해졌다.
가장 큰 변화가 일었던 건 숲의 일족이었다. 바다 일족은 뒤늦게 숲의 일족도 비슷한 타이밍으로 공격을 받았으며, 그 전투 속에서 많은 친구들이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안에는 ‘유펠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펠라는 마지막 힘을 다해 숲의 일족을 수호하기로 했다. 그녀는 보호한 마녀들을 데리고 그들이 함께했던 대지나 필요한 섬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라시아와 앰버가 남긴 서간을 읽고 바다 일족은 많이 슬퍼했으며, 한편으로는 안도했고, 한편으로는 결심을 견고히 했다.
이 싸움은 교회를 어떻게 하기 전까진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이번 일로 확실해졌다.
숲의 일족은 싸움터를 피했다. 목숨을 건 마법은 가볍지 않다. 유펠라의 마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숲의 일족을 지킬 것이며 보호할 것이다.
그러나 바다 일족은 싸우기로 했다. 남은,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마녀들을 보호하며 교회를 쓰러뜨리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그러기 위해 몸을 웅크려야 할 때다.
바다 일족은 대륙을 넘어 북아메리카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는 전쟁을 모르는 평화로운 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잡혀간 마녀들을 되찾아 보호하며 정보를 수색하는 한편 싸우기 위한 힘을 길렀다.
자연에 거부당할 줄 알면서도 저주의 힘을 습득하고, 자연과 조화하기 위해 쓰던 힘을 누군가를 죽이는 힘으로 개발했다. 평화롭게 자연과 소통하던 전과는 달랐다. 바다 일족은 필사적으로 마력을 모으고, 더 큰 힘을 얻으려 했다.
당시 바다 일족에는 뛰어난 재능과 힘을 지닌 마법사가 많이 있었다. 장로인 루그나 마법 선생인 포츈, 선천 마법사인 벨라와 엘리시아, 안즈, 혈족마법 계승자인 시카와 유클라프, 벨라 다음으로 살상용 공격을 몸에 익힌 아멜리아, 정신을 부수는 소니아, 그 밖에도 다양히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마법을 훈련했다. 그것을 모두 싸우기 위한 힘으로 바꾼 마법사들의 저력은 대단했다. 몇십 년 사이 바깥에서 들어온 마법사들과 어려서 싸울 힘이 없던 마법사들이 성장해 새로이 전투 진영에 합류했다. 음악의 악마 클라인 남매, 인형을 다루는 카인, 혈족마법 계승자가 된 셰린, 쉽게 겁을 먹지만 싸울 땐 가차 없는 히스.
그 무렵 교회의 힘은 유럽 대륙 바깥까지 미쳤다. 대륙 너머에 있는 마녀 일족에도 손을 뻗기 시작한 것이다. 동양 쪽은 아직 교회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강대한 술사들도 많다.
힘을 기르기를 30년, 준비가 되었다 생각한 그들은 교회에 전쟁을 선포했다.
일주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움이 이어졌다. 적과 아군의 피가 흐르는 싸움이었다.
아멜리아가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에는 피, 시체, 피, 시체뿐이었다. 제 손으로 죽인 적, 그 옆의 공격을 맞고 스러진 동료.
왜 이렇게 되었지?
아멜리아는 지친 얼굴로 생각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어 간 자들을 위해 시작한 싸움이었다.
그들은 충분히 복수를 준비했다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니었다. 상대도 그만큼 준비하고 있었다. 선천 마법사를 모으고, 그들의 마법을 시험하며, 강해졌다.
지키기 위해서 시작한 싸움인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지? 그 지키려고 했던 동료가 무더기로 죽었다.
복수를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복수가 일방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던 걸까? 일방적으로 우리가 우위에 서 있는 행위라고? 자신들이 습격해 왔던 그들을 죽였던 것처럼, 그들도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데.
첫 번째 마녀 대전은 안즈의 죽음을 건 저주로 마무리되었다. 바티칸은 어찌 보면 간교하게, 어찌 보면 현명하게 싸웠다. 부하들을 소모품으로 내바치고 그사이에 강한 기사들을 준비해 바다 일족의 힘을 소모시킨 뒤 간부들과 함께 안에서 진을 쳐 진짜 공격을 준비했다. 안즈가 아니었으면 그곳에 갔던 바다 일족은 전멸했으리라.
죽음을 걸고 저주를 내린 안즈가 바란 것은 단 하나. 가족과 친구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는 것.
안즈가 내린 저주는 그 땅과 저주의 범위에 있던 모든 생명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죽은 생명과 연결된 ‘교회’ 자체에 저주를 내렸다.
그들의 눈을 가리는 저주, 마녀와 싸우면 불행해지는 저주. 그것은 저주인 동시에 마녀들에게는 동료들을 지키는 방어 막이었다.
그러나 그 전투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마녀’의 사악함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시작한 복수. 죽은 자들이 맡긴 염원.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긴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바다 일족과 교회는 위치를 달리하며 반복해서 싸웠다. 그들은 그날 처음 교황 프라베리히 2세와 그 아래에 있는 10명의 선천 마법사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과 싸울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기르기 전까지는 방침을 바꾸기로 했다.
세력을 죽이기로 했다.
교회의 지부를 무너뜨리며 돈이나 정보를 가로챘다. 그 정보를 토대로 다른 마녀들을 구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희생이 생기는 큰 싸움도 벌어졌다.
교회에도 뛰어난 선천 마법사가 많았지만 바다 일족에도 실력과 재능을 겸비한 마녀가 많았다. 몇 명이 죽고, 몇 명을 죽였다. 그러는 동안 서로의 세력은 약해졌고, 그 대신 한 명 한 명이 가진 힘은 더 강해져만 갔다.
그리고 첫 트라베리아의 난으로부터 100년 후, 교회와 바다 일족은 다시 한번 정면으로 부딪쳤다. 마녀들은 강해져 있었고, 교황과 간부들은 더 강해져 있었다. 그들은 또다시 희생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되자 서로 지쳐 갔다. 아니, 지친 것은 어쩌면 바다 일족뿐인지도 모르지.
적어도 아멜리아를 비롯한 마녀들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죽고 죽이는 싸움, 이것이 언제까지 반복되는 거지? 싸움을 거듭할수록 누군가가 희생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멈출 수 없다.
프라베리히 2세만 죽일 수 있으면 되는데.
팔라딘은 또 어떻고? 그자의 손에 얼마나 많은 마녀들이 죽었던가. 그자만 죽인다면.
그 두 명만 죽일 수 있다면, 복수를 그만할 수도 있건만.
100년이 넘게 지속된 마녀사냥, 그리고 성마 전쟁. 그 싸움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오랫동안 잊혀 있던 마녀 일족, ‘유펠르시아’였다.
숲의 일족이 ‘유펠르시아’라 이름 바꿔 나라를 만들고 인간 나라와 손을 잡았다. 그것도 강대국인 영국과. 영국은 오랫동안 마녀 일족들을 추적했던 나라였다.
단순히 손을 잡은 게 아니다. 마법을 공식적인 학문으로 삼아 퍼트리겠다고 한다. 유펠르시아가! 라시아가! 그 라시아가 교회의 개나 다름없었던 영국과 손을 잡고!
그들이 처음에 느낀 것은 배신감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무시하고 있던 유펠르시아의 연락을 받았다. 라시아가 직접 찾아와 그 사실이 맞다고 대답했을 때 배신감은 배가 되었다. 더군다나 라시아는 그들에게도 협력해 주기를 바랐다.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현 영국의 공주는 선천 마법사다. 하늘을 날다가 라시아와 만나 친해졌다.
그동안 숲의 일족은 속세와 거의 인연을 끊고 하늘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전투 당시 큰 부상을 입은, 죽기 직전에 유펠라가 수명을 이어 봉인한 자들을 치료하는 데 긴 시간이 소모됐기 때문이고, 그 이후 몇 번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갔다가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잃은 것에 대한 회의도 커서 그 이후로는 폐쇄된 생활을 지속했다.
세상과 연결된 통로는 바다 일족에게 쓰는 서간뿐이었다. 바다 일족은 언제나 아직 위험하다며, 땅에 내려오지 않는 게 좋다며, 생각보다 교회의 힘이 너무 강하다며 숲의 일족을 걱정하는 답장을 줬다.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면서.
뒤늦게 성마 전쟁을 알게 되었을 때는 충격이 컸다. 그러나 막상 바다 일족을 찾으려 해도 라시아의 힘으론 찾을 수 없었다. 그사이 바다 일족은 많이도 강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리디언이 가진 가호의 힘은 유펠르시아로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바다 일족이 해 온 일을 알고 숲의 일족은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숲의 일족이 잃었다는 허탈함에 등을 돌린 사이 바다 일족은 상황을 바꾸기 위해 온갖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게 비록, 피로 피를 씻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숲의 일족이 아래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바다 일족과의 서간이 끊겼다. 리디언의 가호가 무척 강력한 탓에 숲의 일족으로서는 그들을 찾을 방도가 없었다.
비로소 땅에 발을 디디며 라시아는 고민했다. 전쟁은 길어지기만 하고 있다. 차라리 자신들도 바다 일족을 도와 교회를 치면 어떨까.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방법은 아닌 듯했다. 이미 인간들은 마녀를 ‘악마’로 여기고 있다.
희생을 줄이며 보다 평화적으로 마녀의 처우를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라시아는 유펠라의 유언을 떠올렸다.
‘부디……마녀들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에 너희가 살 수 있기를.’
고민하던 와중 영국의 공주 아일라와 친해졌다.
아일라 역시 라시아와 만나기 전까지 마녀는 전부 악마인 줄 알았다. 두 사람은 머리를 모으고 마녀들이 악마라는 인식을 없앨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게 바로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 모든 사람에게 마법을 알리는 방법이었다.
“인간에게 마법을? 미쳤어?”
“그렇게 하면 교회를 견제할 수도 있어. 다른 나라가 교회를 따르는 건 ‘힘’과 ‘명목’ 때문이야. 마법이 사람들에게 퍼지면 마녀는 수천수만 명으로 늘어나. 모든 사람이 힘을 가지게 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그렇게 되면 적어도 마녀가 있을 곳이 만들어져. 우리만 흙탕물을 뒤집어쓸 일은 없어.”
“웃기지 마! 난 인간들도 용서 못 해! 그 녀석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마녀들을, 핍박했는지 알아? 여기에 그것 때문에 상처 입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렇, 겠지. 하지만……이 일이 잘 진행된다면 우리 후세대들에게는 평화로운 삶을 물려줄 수 있어.”
“…….”
“벨라, 엘리. 부디 심사숙고해 줬으면 좋겠어. 사실 누구보다 평화로운 삶을 좋아했던 건 너희잖아.”
“웃기지 마! 어차피 인간은 우리를 못 받아들여!”
대부분의 마녀들은 화를 냈다. 그러나 전쟁과 복수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아멜리아를 비롯한 몇 마법사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동안 교회의 세력은 많이 약해졌다. 여기에서 다른 마녀 일족이나 왕국과 손을 잡는다면 교회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연달아 전쟁을 하는 동안 인간들과 완전히 척을 졌다. 인간이 과연 그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들이 과연 인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시 전쟁은 소강상태였다. 바다 일족도 교회도 소모가 너무 컸고, 무엇보다 서로 힘이 너무 대등했다. 거기에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에 대한 소문까지 퍼지니 당연히 그 기세가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아의 생각도 사실 벨라와 비슷했다. 인간들이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영국과 유펠르시아가 시작했던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쉽게, 생각보다 빨리 퍼졌다. 교회의 밑에 엎드려 있던 나라들이 힘을 얻기 위해 게걸스럽게 달려들었다.
그런 흐름 속에 이상하게도 교회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판단하고 두고 보는 것일까? 그 탐욕스러운 교회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라시아, 포츈과 함께 그들을 가르쳤던 앰버, 라시아의 친구 아일라는 자주 찾아와 바다 일족에 협력을 구했다. 동서양 사이에 걸쳐 있으며 강대한 혈계마법을 많이 계승한 얼음 일족 폴리젠과 동양의 주술사 일족 용의(龍義)에도 협력을 구하고 있다면서. 마법을 퍼트린다면 최대한 널리 퍼트리는 게 좋으니까.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법학에 지원한 자들 중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자가 생겼다. 자연을 느끼는 건 재능이 있더라도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 그래서 마력과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마법을 간소화했다. 그러한 마법은 바다 일족도 아주 쉽게 쓸 수 있었다.
마법이 퍼질수록 그들이 느끼는 것은 우습게도 ‘희망’이었다.
이제 인간과는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멜리아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미워해야 할 것은 ‘교회’.
모든 인간이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마녀를 사랑하고 인간을 증오한다고 해도, 모든 인간에게 복수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들도 결국에는 인간, 이니까. 무엇보다 라시아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다.
“우리가 졌다, 라시아.”
그 무렵 바다 일족의 장은 포츈이었다. 전대 장은 팔라딘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너희의 말이 맞다. 언제까지 싸우기만 할 수는 없다. 이제 있을 곳을 찾아야겠지.”
“하지만 기억해 둬. 우린 절대 교회를 용서 안 해. 이 일이 끝나면 교회를 전부 없애 버릴 거야.”
“그래. 그때는 나도 도우마. 너희만 싸우게 둘 수는 없지. 나 역시 교회는 용서하지 못한다.”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에는 많은 나라와 마법사가 협력했다. 연구자들이 달라붙어 마법이라는 학문을 연구한 결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기존에 마녀들이 사용하던 힘은 ‘힘’을 추구하는 방면에선 비효율적이었다. 재능이 있는 자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있지만 충분 이상의 힘을 쌓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재능이 부족한 자는 아주 미미한 힘밖에 쓸 수 없다.
마법을 정형화시켰다. 마력을 모으는 방법, 마력을 움직이는 훈련, 그것을 마법으로 바꾸는 원리, 아주 세세한 것까지, 하나하나.
영국, 독일, 프랑스를 시작으로 지원자에게 마법이 전해지고, 그들이 마력을 모아 마법을 발현하기까지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마법사들은 변함없이 협력하고 다양한 마법을 펼쳐 보였다. 그러며 정형화된 기술도 몸에 익혔다. 확실히 이 마법은 아주 효율적이었다. 특히 마법에 재능이 있는 자가 단기간에 강해지기에는.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몇 년 뒤늦게 합류한 바다 일족이 협력하고 1년, 2년, 3년……. 고유마법 구현에 성공한 자가 생겨났다. 자연의 힘은 적고 고유의 힘이 강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다. 그것 역시 마법사가 도와 성장이 빨라진 점이 있으나…….
협력하는 마녀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들은 여러 장소에 파견되어 마법을 가르치거나, 마법 실험을 도왔다.
맨 처음 위화감을 느낀 것은 엘리시아였다. 엘리시아, 벨라, 시카, 아멜리아 등 특별히 강한 마법사는 첫 공동 연구소에서 마법 실험에 협력하고 있었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는 마녀도 많다.
멀리 파견 나간 마녀들 중 몇 명이 돌아오지 않는다. 편지는 오는데 마녀용 서간은 보내오지 않고, 얼굴도 비추지 않는다.
처음엔 대수롭잖은 일이라 생각했다. 대수롭잖게 셈해 봤다. 반년 이상 얼굴을 보지 못한 동료가 약 10명. 그러나 자신들 역시 무척 바빴고, 무엇보다 즐거웠다. 돌아오지 않는 건 그 탓이라 생각했다. 자신들끼리만 쓰던 서간을 보내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런데 서간으로는 답장이 돌아오지 않았다. 편지를 써야만 답장이 돌아왔다.
어느 날 릴리가 엘리시아 일행을 찾아왔다. 릴리는 동료들의 편지 중 몇 개를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걔네가 쓴 거 아냐.”
함께 돌아온 오시언도 말했다.
“이거 다른 사람이 쓴 거예요.”
어쩐 일인지 포츈도 찾아왔다.
“렌, 쟌, 마르크, 헤르만……파견 나가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이 걱정되어 점쳐 봤다만, 점이 쳐지질 않거나, 안 좋은 결과만 나오는구나. 뒤늦게 추적해 봤는데 추적도 안 된다. 혹시 소식을 모르니?”
시카가 정령을 풀었다. 그런데 발견되지 않았다. 그 뜻은……누군가가 그들을 고의적으로 숨겼거나, 아니면 스스로 숨었다는 소리다. 그것도 특별한 ‘자연의 힘’으로.
가장 먼저 의심한 건 당연히 이 프로젝트 자체였다. 동료가 10명이나 실종되었다. 혹은 특별한 방법으로 숨어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니?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동료들을 찾았다. 시카와 포츈, 오시언이 전력을 다하면 찾을 수 없는 것 따위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정작 가장 먼저 사라진 동료의 소재지를 찾은 것은, 엘리시아였다. 엘리시아의 망령 소환에 동료가 반응했다.
“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렌이 한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렌 역시 처음에는 평범하게 연구를 도왔다. 매일매일 필요한 마력을 방출해 보냈다. 만들어진 마법 아이템을 확인하고 실험했다. 다양한 마법을 몸소 사용하고 보고서를 썼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그는 알 수 없는 장소에 갇혀 있었다. 심지어 갇혀 있는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마녀들. 만난 적도 없는 모르는 마녀들과, 자신의 일족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일족까지 그 장소에 있었다.
그들을 두고 벌어진 것은……인체 실험.
지원해서 위험하지 않은 선까지 하는 평범한 인체 실험이 아니라 마녀의 한계까지 쥐어짜 내는 비인도적인 인체 실험이었다. 마법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마녀의 몸에 직접 실험하고, 마녀의 몸에 마법을 직접 주입한다.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병기다. 보다 빨리 탐욕스럽게 힘을 얻는 방법이다.
사람은 보다 빨리 강해지기 위해 원래 있던 마녀의 희생을 선택했다. 학자들이 마법을 빠르게 정립시킨 뒷배경에는 이런 어둠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있는 건 마녀사냥의 희생자와 죽은 줄 알았던 바다 일족 마녀들이었다. 개중에는 이미 100년 가까이 착취되었던 자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실험에 마녀들을 보낸 것은 바로……교회였다.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나라가 뒤로는 교회와 손을 잡고 있었다. 교회는 그들에게 실험 소재를 보내고, 나라는 그들에게 풍부한 마력과 연구 결과를 제공한다.
그리고 또 하나.
바다 일족 마녀들을 제물로 바친다.
인간이 힘을 얻기 위해 지금껏 교회와 대립해 왔던 바다 일족을, 전멸시킨다.
“이게 뭐야…?”
그들은 망령의 안내를 따라 ‘실험장’에 달려갔다.
그곳에서 보게 된 것은 끔찍하게 죽은 마녀들의 시체, 영혼, 원념들. 많은 마녀가 팔다리가 사슬에 묶인 채, 혹은 몸의 일부를 잃은 채 고통스러운 실험을 받고 있었다.
끔찍하고 구역질 나는 장면을 앞에 두고 그들은 이성을 잃었다. 벨라의 마력이 그 자리에서 폭발하며 검은 마력이 휘몰아쳤다.
“아……아아……!”
──배신당했다. 처음부터 그 녀석들은 마녀와 협력할 생각 따윈 없었다. 이용할 생각뿐이었다.
이용했다 할지라도 이런 식이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용납했으리라. 그런데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간들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자신들을 같은 ‘인간’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털썩
아멜리아는 울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람을 믿어 보려고 했다.
평화로운 미래를 꿈꿨다. 그것이 그토록 과분한 꿈이었던가?
“이런 놈들을 믿으려고 했다니!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아무것도 모르고 평화니 뭐니 했던 나를 때려죽이고 싶어! 동료를 희생으로 얻는 평화? 평화? 이게? 좆같은 소리!”
“그래. 우리의 적은 교회가 아니었어. 인간이었어.”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 웃기지 마.”
“용서할 수 없어.”
아멜리아가 울며 말했다.
“이 실험에 관여한 모든 인간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콰광!
기억을 뒤엎고 정령으로 자연의 기운을 흐트러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실험과 관련된 모든 장소를 찾아냈다. 흩어져 모든 것을 부쉈다.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를 시행하던 연구소, 마녀가 한때 있었던 감옥, 그리고…….
실험의 주도자들. 영국, 독일,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
그날 많은 인간이 바다 일족의 손에 죽었다. 실험만이 아니라 평준화 프로젝트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던 인간은 예외 없이 분노한 벨라나 엘리시아의 손에 썰려 나갔다.
이윽고 영국의 여왕에까지 손이 뻗쳤을 때, 마녀가 나섰다. 폴리젠의 마법사와 용의 일족의 마법사, 유펠르시아, 심지어는 교회까지.
“이럴 줄 알았지, 더러운 마녀들!”
“닥쳐! 더러운 건 너희야! 내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마!”
아일라가 떨리는 눈으로 앞에 나섰다.
“여러분,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신 거죠? 여러분이 이유도 없이 이런 짓을 저지를 리 없어요! 언제나 동료를 위해 힘써 오신 걸 알아요. 저희와 똑같은 꿈을 꾸며 힘낸 것도 알고요.”
바다 일족도 알고 있었다. 아일라는, 저 공주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무지 역시 죄였다.
“같은 꿈을 꿔? 힘써 와?”
“네!”
“과연 네 뒤에 있는 왕도 그렇게 생각할까?”
벨라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아일라를 향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섬뜩한 기운과는 달리 눈가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그 기이한 모습에 모두가 흠칫했다.
“…아, 보인다.”
“시카…?”
“눈이 멀었어……. 대체 언제 우리와 비슷한 가호를 손에 넣었지? 아니, 알고 있었어. 그 녀석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강했지. 그리고 프라베리히 2세와 팔라딘은 우리가 아직 온 힘을 다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 그 힘은 가히 신이라고 할 만하지. 이게 내 눈도, 포츈 할머니의 예지도, 오시언의 예지도 전부 막고 있었구나.”
“시카?”
“하하, 들려.”
“클라인.”
릴리는 엘리시아의 보호를 받고 바다 일족에 들어왔다. 라시아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듣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들리네? 아, 싫다. 이런 거 듣고 싶지 않았는데. 구역질 나는 목소리가 다 들려. 그래, 너희에게 마녀는 우리뿐? 우리를 아예 지성체라고도 생각을 안 했구나? 좋아, 좋다고. ──너희가 얼마나 연약한지, 똑똑히 알려 줄게.”
“클라인!”
릴리가 라시아와 공주를 보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너희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구나.’ 여기에 선 폴리젠도, 용의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여기에서 선언할게.”
릴리의 뒤로 보라색을 띤 섬뜩한 은색 오라가 가득 찼다. 비록 교회에 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100년을 교회와 싸워 왔던 전사들이다.
“마법 평준화 프로젝트에 가담했던 놈들은 전부 죽일 거야.”
“엘리! 어째서!”
“특히 영국, 독일, 프랑스,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학자, 빠짐없이 죽이겠어. 이런 짓을 벌일 줄 알았다고? 사악한 마녀? 그렇다면, 그 생각대로 해 주지.”
엘리시아가 빙그레 웃었다. 섬뜩한 미소였다.
“고작 몇 년을 익힌 마법으론 우리에겐 상대도 안 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 줄게.”
며칠 후, 그들은 죽은 동료의 이름을 따 일족의 이름을 ‘트라베리아’라 바꾸고 전쟁을 선포했다.
1차 마법 대전의 시작이었다.
당시 트라베리아는 유펠르시아에도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속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트라베리아가 스스로 동료를 사지에 보낸 원인에는, 신뢰에는 그들의 존재가 컸다.
한편 라시아와 아일라, 앰버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트라베리아가 아무런 이유 없이 저런 일을 벌일 리가 없다.
트라베리아가 움직였다. 전쟁의 범위는 커지고, 막 마법을 배운 사람의 손으로는 막아 낼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마법이 떨어져 내렸다. 유펠르시아의 마법사들은 피해 범위가 커지지 않도록 막는 것에만 힘썼다. 물론 그 보호 범위에 교회는 제외된다.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트라베리아는 정도를 지켰다. 그들의 마법이 공격하는 것은 평준화 프로젝트의 중책을 맡고 있는 자들뿐이었다.
라시아 일행은 트라베리아를 설득하려 드는 한편 트라베리아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필사적으로 파헤쳤다. 다른 마녀들도 트라베리아를 막기 위해 찾아왔다. 그중 대표적인 자가 폴리젠 출신이면서 ‘성녀’라 불리는 마녀, 아르바티우스였다.
아르바티우스는 뛰어난 마녀로 언제나 한곳에 머무는 일 없이 방랑하는 마녀다. 치료가 특기이며 병자를 치료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그 무렵 트라베리아는 불신에 가득 차 있었고, 다른 마을 출신 마녀들의 이야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적으로 지정하고 이용하고 실험체로 사용한 것은 오로지 바다 일족 ‘트라베리아’의 마녀뿐이니까.
그런 트라베리아를 아르바티우스가 계속 설득했다. 마법과 병기로 황폐해진 세계를 돌아다니며 구조 활동을 하던 아르바티우스는 우연히 독일의 실험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까무러쳤다.
아직도 실험장이 남아 있다는 걸 안 트라베리아는 아르바티우스와 함께 그곳에 있던 모든 마녀를 구했다.
“이런……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이 프로젝트는, 다시 생각해야 해요! 여러분, 이건 다른 모든 마녀에게 알려야 해요.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는 세계를 바꿀 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다 같이 협력하면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마법을 퍼트릴 수 있어요. 마녀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분명 찾아올 거예요.”
그들은 어느새 아르바티우스에게 설득당하고 있었다. 긴긴 싸움에 지쳐 있었던 만큼이나.
엘리시아와 벨라, 아멜리아, 포츈, 시카 등 트라베리아의 중요 전투 마법사들은 아르바티우스와 함께 그녀의 고향 폴리젠으로 향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당대 폴리젠의 장, 아이리스 엘피로에게 불려 갔다.
아르바티우스는 그녀가 본 상황에 대해 상세히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몹시도 의외고 충격적이었다.
“그런 것쯤, 이미 알고 있었다.”
릴리는 전쟁을 선포하던 때 폴리젠에서 온 마법사의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폴리젠도 용의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알고 있었다고? 아르바티우스가 눈을 크게 떴다. 말을 자아내는 입가가 애처롭게 떨렸다.
“알고……있었다고요?”
“그래. 허나 우리에게 피해가 오는 일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당신들에게는 미안하게 됐소. 그러나 대를 위한 희생일지니, 당신들도 미래를 생각해 부하 몇 명의 희생 정도는 경건히 넘기면 좋았을 것을.”
“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아이리스 님! 그 말, 진심으로 하시는 건가요?”
벨라가 마력을 일으키기 전에 아르바티우스가 항변했다. 그러나 아이리스의 차가운 얼굴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