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389
인성이가 멋쩍게 웃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우리는 바로 움직였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로 두 가지다. 카인의 정신 조종 및 트라던트와 플로라 간의 연결을 끊는 것. 그렇게 하면 트라던트와 마법사 간의 링크도 끊긴다.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 정신세계를 건너뛰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힘이 가라앉고 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트라던트 LV2 디트리는 영혼을 억지로 모아 아주 끔찍하고 더럽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았듯이 LV3 디포르는 매우 가라앉아 있고, 안정되어 있다. 악의도 사기도 전부 녹아 힘으로 변환되었다는 느낌이다.
겉은 악의와 혼돈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짙게 하나의 힘으로 뭉쳐 있다.
“이런…….”
이윽고 도착한 수호마법과 트라던트의 경계에서 나는 숨을 삼켰다. 트라던트와 플로라의 힘이 반쯤 섞여 있다. 두 힘을 연결하고 있는 카인의 실이 그 안으로 녹아들고 있다. 이미 실과 세계가 거의 융합되어 있다.
‘이래서야.’
나는 침음을 삼켰다. 카인의 실을 끊는 것으로 해결될 단계는 지났다. 마법석과 트라던트를 연결하는 저 힘은 가디언의 것인가. 인성이가 심각한 얼굴로 트라던트가 만든 어둠에 손을 짚었다. 나는 인성이를 말렸다.
“그만둬. 트라던트를 흡수하는 건 나라도 위험해.”
“어떻게 할 거야?”
“좀 무리를 해서라도…….”
나는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이 세계를 바꿔 버려야지.”
나는 환각으로 트라던트와 수호마법을 면밀하게 속이며 손을 뻗었다.
『특수 기술─은하의 지팡이』
“『아멜다의 핵』.”
작게 언령을 읊조리며 지팡이 안에 정화의 마력을 응축했다. 이 세계를 조정할 거다. 이 세계를 전부 바꿀 거고, 플로라의 힘을 분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커다란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힘을 응축하기도 전에 세계가 일렁거렸다. 생각보다 빠르게 플로라의 힘과 트라던트가 결합을 시작했다.
‘윽!’
아직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문이가 나를 도우며 주위에 엷게 환각을 펼쳤다. 아직, 플로라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 실체에 서서히 환각을 덧씌운다. 존재했던 진실을 착각으로, 가짜로 만든다.
출렁!
“이런!”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듯 트라던트의 힘이 격렬하게 휘몰아쳤다. 문이가 만든 환각이 트라던트에게 잡아먹힐 듯 흔들렸다.
「마스터, 이대로는 잡아먹힙니다! 차라리 지금 마법을 펼쳐서…….」
그때, 위험하단 것을 눈치챘는지 인성이가 진득하게 휘몰아치는 트라던트의 어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그림자가 꿀렁꿀렁 트라던트의 안에 녹아든다.
“인성아!”
「인성 님!」
나는 창백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트라던트의 힘은 결국 ‘악의’의 힘. 어찌 보면 인성이의 지배하에 두기 쉬운 힘이지만, 반대로 그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힘이다. 트라던트가 움직이며 인성이를 죄기 시작했다. 인성이가 다급히 말했다.
“괜찮아. 힘을 모으는 데 집중해. 그동안……내가 최대한 막아 볼게. 시간이 없어! 계속, 영혼이, 힘이 더해지고 있는 거, 알잖아!”
그래, 바깥에서 계속 힘이 들어오고 있다. 사람이 계속 죽고 있는 거다.
“……!”
──인성이의 몸이 트라던트에 반쯤 녹아들었다. 술렁이던 트라던트의 힘이 아주 조금 더뎌졌다.
「마스터! 집중해 주세요. 인성 님이라면 한동안 버틸 겁니다. 마스터의 힘으로 인성 님까지 전부 정화하는 게 빠릅니다!」
“그래…!”
나는 지팡이를 꽉 쥐고 온 힘을 다해 『아멜다의 핵』에 힘을 충전했다. 충전하면서 계속 플로라의 마법석에 말을 걸었다. 플로라. 이대로라면 당신이 만든 플로리아가 완전히 멸망해 버려요. 그래도 괜찮나요? 당신이 지키고 싶어 했던 당신의 후손이 죽을 거예요. 이미 한 명은 죽었어요. 정말 그래도 괜찮나요?
‘괜찮지 않잖아요!’
악의를 조종하며 정신이 오염되고 있을 인성이를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온 힘을 다했다. 그의 머리를 침식하는 오염 역시 이 기술로 전부 날려 버리리라.
‘플로라, 알겠어요? 당신의 힘으로 트라던트를 뿌리치는 거예요.’
나는 지팡이에 마정석을 마구 쑤셔 넣었다. 트라던트의 힘이 느릿느릿 인성이를 집어삼킨다. 이미 그의 제어력으로는 버겁다. 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건 본래부터 그의 안에 존재했던 악의와 자아가 자라나 생긴 ‘영’과 나에게서 떨어져 나와 인성이의 일부가 된 ‘유이’ 덕분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쥔 채 달려가 인성이의 손을 붙잡았다.
“『아멜다의 기둥─일곱 별의 수호!!!』”
쿵! 쿠구구구구궁!
외침과 동시에 별을 품은 7개의 기둥이 주위를 둘러쌌다. 떨어진 기둥이 인성이를 트라던트에서 잘라 냈다. 나는 인성이를 트라던트에서 잡아 빼며 지팡이 끝으로 중앙에 있는 플로라의 마법석을 내리쳤다.
쨍─!
“『정신 차려!!!』”
언령과 함께 우리를 둘러싼 기둥이 눈부시게 빛을 뿌리며 확장했다. 보석 기둥 주위로 별의 힘이 흩뿌려졌다. 몰아치던 트라던트의 힘이 정화되며 오히려 별의 힘으로 바뀐다.
“당신이 죽으면서까지 바란 소망은 이런 게 아닐 거예요! 플로라 어젠드!!!”
나는 플로라를 모른다.
그러나 죽으면서까지 플로리아를 지켰던 자다. 그녀가 이룬 도시에, 그녀가 남긴 마법석에, 그녀의 의지가 남아 있을 터였다. 주위로 별이 폭발하며 휘몰아쳤다. 나는 정신세계를 바꾸었다. 마법석 안에 깃든 의지가, 영혼이 주위로 퍼지며 형상을 만들어 낸다.
플로라와 트라던트를 이으며 동화되었던 카인의 실이 하나씩 끊어졌다. 붉었을 뿐 텅 비었던, 아니, 부서져 있던 세계가 복원됐다. 주위에 익숙한 풍경이 채워졌다. 원래 이 마법석이 놓여 있던 건물 안, 사방으로 가지런히 쌓인 벽돌 벽이 세워진다. 잿빛과 붉은색, 바닥에 그려진 진, 그림을 그리듯이 서서히 채워지는….
「……! 위에!」
채앵!
쩌저적….
“……!”
그때 공간이 갈라지며 무엇인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저 거품 같은 꼬리는…….
‘몽마!’
“찾─.”
깨진 풍경 사이로 익숙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았다~.”
주위가 몽실몽실한 연두색 구름으로 채워졌다. 그와 동시에, 내 주위로 은푸른색 실이 빼곡히 뻗어졌다.
“큭!”
정신세계 안에서라면, 정신체만이라면 소니아보다 내가 더 강하다. 하지만 거기에 카인의 힘, 더불어 트라던트의 힘까지 더해진다면?
그래도 나는 전부 무시하고 애써 플로라의 의지를 깨우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의 내 힘으로는 꿈속에서조차 소니아와 카인 두 사람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쿨럭! 우읍!”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내 조정하는 정화의 힘에 의하여 트라던트와 마법석 간의 균형이 무너졌다. 소니아의 몽마와 카인의 실에 휘둘리고, 종내에는 트라던트에 삼켜지면서도 겨우겨우 기절한 인성이를 붙잡은 채 트라던트에서 빠져나와 본 광경은, 힘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가디언과 아까보다 더욱 폭발적이고 기괴하게 크기를 키우고 있는 트라던트였다.
화르륵!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인하와 이청우가 플로라의 링크를 덧씌워 어떻게든 연결된 사람을 보호하고 있었다. 또 소영이가 성진의 힘을 불러와 링크를 하나둘 끊어 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죽는 사람의 숫자는 하나, 둘, 늘어났다. 나는 지팡이의 마지막 힘까지 쏟아부으며 외쳤다.
“『봉쇄!!』”
지팡이 안에 든 열쇠의 힘. 그것으로 연결과 연결 사이에 자물쇠를 달았다.
“『별들의 잔치!!』 『단절의 검!』”
내 몸을 중심으로 남색과 은색 입자가 퍼져 나갔다. 허공에 무수히 많은 단검이 생겨났다. 그것이 플로리아에 연결된 실을 향해 떨어졌다.
채재재쟁!
그러나 깨진 것은 오히려 내 검이었다. 문이가 신음을 삼켰다.
「마스터. 마력이……너무 차이가 납니다…….」
이를 악문 순간 허공에 수천이 넘는 푸른 번개가 생겨났다. 이청우가 만든 번개다. 순간 어떤 기술을 써야 할지 알았다. 나는 언령을 외쳤다.
“『실체화!!』”
링크된 마력 선이 실제로 존재하는 실로 실체화되었다. 그 위로 푸르른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우우우웅!
떨어진 번개는 연결을 완전히 끊지 못했다. 끊어진 건 고작해야 수십 개. 그것조차 곧바로 수복되려고 한다. 나는 심호흡했다.
‘다시 한번, 정화의 힘을…….’
나보다 먼저 소영이가 성진의 힘을 소환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귀찮게 하는군.”
그그그그극!
─카인! 눈으로 보기보다 먼저 감각으로 위험을 눈치챘다. 몸이 본능적으로 앞으로 향했다.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지팡이를 세워 공격을 막았다.
『관리자의 방패!』
찰나에 마법을 쓴 것은 문이였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별들의 잔치를 통해 주위의 마력을 밀도 높게 끌어왔다. 그러나 카인이 만든 은색 마력파는 너무도 간단히 내 마법을 잡아먹었다.
‘크윽!’
하지만 나는 버티고 서며 더 넓게 마력을 퍼트렸다. 내 뒤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은 그럭저럭 견딜 수 있더라도, 연맹의 사람들은, 예슬이와 시하는 아니다!
막아서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길 것처럼 꿰뚫렸다. 나는 숨을 삼키고 외쳤다.
「마스터! 안 됩니다! 부작용이……!」
“『란스의 성배!』 『멘─』.”
촤아악!
내가 지닌 마법 중에서도 부작용이 제일 큰 마법 두 개. 그러나 내가 『멘델의 초침』을 외치려고 한 그 순간, 노을빛 마력이 은푸른 마법을 거칠게 갈랐다.
“하여간 눈을 뗄 수가 없다니까.”
익숙하고 믿음직스러운 뒷모습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은푸른색 마력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지팡이를 꽉 쥔 채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했다. 팔을 유지하고 있는 환각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성진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검 주위로 염력을 듬뿍 응축해 휘둘렀다.
콰과과과과!
보이지 않는 강제력이 죽음을 이끄는 바람으로 변해 영역에 내리쳐졌다. 성진의 ‘종말’이 플로라의 링크와 주위에 펼쳐진 카인의 실을 끊어 낸다.
“시나, 크리스털 장막.”
“파멸의 음표!”
“몽환의 절규!”
실이 몇 개 끊겼다 싶은 순간, 허공에 거대한 마법이 내려섰다. 은색 머리칼의 커다란 인형과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벽, 허공을 가득히 메우는 검은 음표, 연두색 몽마가 내지르는 정신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을 삼켰다.
‘커븐 로드가 세 명이나!’
이어 이청우와 루카가 마법을 내질렀다.
“용의 번개!”
“순백의 창!”
허공에서 하얀 기둥과 푸른 번개가 연속해서 떨어졌다. 허공에 심해로 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그것은 크리스털이나 음파, 정신파에 막히면서도 계속해서 플로리아와 사람 간에 연결된 링크를 끊었다. 성진이 검을 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늦어서 미안.”
“됐어. 슈리아는?”
“죽이고 왔어.”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성진이다. 이것으로 그가 커븐 로드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증명됐다.
여력이 많이 남아 있는 인하도 에펠로나를 불러 공격을 개시했다. 숨을 삼키는 내게 셰린이 다가왔다.
“자, 이번엔 얌전히 치료받으세요.”
“잠시……만요.”
나는 기절해 있는 인성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트라던트에 동화되었던 탓에 몸이며 정신이며 그림자며 영혼이며 온통 혼란스럽다. 내 손이 막 인성이의 머리에 닿았을 때, 인성이가 정신을 차렸다.
“켁! 쿨럭!”
“괜찮아?”
“음……괜찮지는 않은걸.”
셰린이 인성이를 보며 당황했다.
“이건……제 힘으로는 치료하기 힘들 것 같아요. 영혼과 몸은 어떻게든 할 수 있는데, 정신은…….”
“괜찮아요. 제가 하면 돼요. 몸만 치료해 주세요.”
주위로 온갖 위험한 마법이 쏟아지는 가운데, 우리는 셰린에게 조금이나마 치료받았다. 인성이가 콜록콜록 기침했다. 그때 위로 아까보다 위협적인 마력이 쏟아졌다. 성진이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 냈다.
“큭!”
지금, 커븐 로드의 공격을 대부분 막고 있는 건 루카와 이청우다. 두 사람의 실력은 카인과 대등하니까. 문제는 트라던트, 그 힘 때문에 성진이 힘을 더해도 이쪽이 열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소니아가 생긋 웃었다.
…거기다 결국 소니아에게 트라던트의 정신세계를 공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켰다. 그 세계는 아마 유펠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소니아는 몰랐던 세계일 텐데. 나는 이를 아득 악물었다.
“예슬아! 사람들 데리고 캘리번에 돌아가!”
“너희도야.”
루카와 이청우 외에 연맹에서 온 사람은 저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때 성진이 팔을 벌려 나와 인성이를 가로막았다.
“돌아가서 마력부터 회복해. 인성이의 정화도 부탁한다.”
나는 새삼스럽게 내 몸과 인성이를 보았다. 인성이가 제일 심각하다. 이대로 두면 정신이 붕괴되거나 죽을 것이다.
“…알았어. 빨리 돌아올게. 소니아의 힘, 막을 수 있겠어?”
“웬만해선 내 머리에 정신 간섭은 못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의 마법과 적의 마법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성진, 인하, 아르델, 소영, 테온을 제외한 사람을 데리고 함선으로 돌아왔다. 바로 동료들이 달려왔다.
“리더!”
“괜찮아?”
“나는 괜찮아! 인성이가 위험해!”
나는 곧바로 인성이의 가슴 위에 양손을 올렸다. 그러나 미묘한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트라던트의 마력 때문에 마스터의 마력이 채 흡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효율이 안 좋습니다. 위험합니다.」
나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인성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많이 고통스러울 거다. 특히 정신. 제정신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울 거고, 자꾸 이상한 충동이 마음을 분탕질할 것이다. 그런 상태일 텐데도 인성이가 내 손목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그림……자는 내버려 둬…….”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신……영혼이 몇 개……몇십 개……밀려 들어온 것 같거든……. 그건……해방시켜 줘…….”
인성이의 그 마음은 누구보다 우리가 제일 잘 안다. 그렇기에 나는 인성이의 어깨에 손을 뻗어 그를 꽉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알았어.”
“……!”
인성이가 한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상태로 정화의 마력을 방출했다.
쿵…쿵…….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나는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눈을 감았다. 내 정화의 마력은 그의 몸부터 정신, 영혼, 그림자,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그림자를 배제하고 영혼을 정화하며 일그러진 정신을 복구했다.
당황하던 인성이가 이내 내 등에 팔을 둘렀다. 깊게 정화하기 위해 끌어안았음을 안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몸에 있는 마력을 다 쥐어짜 냈다. 트라던트의 힘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 써도 모자랄 정도다.
두근, 두근…….
내 영혼이 퍼져 가며 인성이의 영혼을 둘러쌌다. 그 때문인지 가장 먼저 정화된 것은 영혼이었다. 인성이의 몸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던 찌꺼기 영혼이 정화되어 사라졌다. 이어 나는 몸을 더럽히는 어두운 마력을 정화했다. 인성이의 고동이 조금씩 빨라졌다. 인성이가 기침을 토해 냈다.
“콜록, 콜록!”
냄새로 피가 섞인 것을 알겠다.
「아직 흡수율이 안 좋습니다.」
‘흡수율을 좋게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알고 있으시겠지만, 인공호흡입니다.」
이 목소리를 인성이 역시 듣고 있었다. 문이의 목소리는 보통 나와 루시드의 멤버, 그러니까 친구들에게만 들린다.
“아니……거기까지는 좀…….”
“지금 네 몸 상태, 심각한 거 알지? 내가 바로 정화하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야.”
“아니, 나도 심각한데.”
인성이가 내 몸을 밀어 나를 살짝 떨어뜨리고는 천천히 내 양 뺨을 감싸 쥐었다.
“네가 이런 거에 무감각한 건 알고 있었지만……. 예전에 내가 널 좋아했던 거 잊었어?”
“…….”
순간 한 방 먹은 기분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밀려든 그림자에 혼란스러워서 무심코 흘러나온 말일까. 평소의 인성이는 이런 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무척 순수하고 다정한 눈으로 그가 멋쩍게 웃었다.
“요즘도 가끔씩 두근거려서 참 곤란해.”
“……문이.”
망설이던 나는 어떠한 것을 생각해 내고 문이를 불렀다.
「네, 마스터.」
문이가 내 의지에 화답하며 마력을 움직였다. 나는 인성이의 양 뺨을 딱 붙잡으며 말했다.
“입 벌려.”
“응…? 어? 응? 아니, 설마……지, 진짜로 하려고?”
드디어 정신이 돌아온 듯 인성이가 당황했다. 나는 인성이가 입을 벌린 틈을 타 숨을 훅 불어 넣었다.
“읍…….”
후, 입바람을 불자 입 안에서 나온 나비 모양으로 응고된 마력이 인성이의 몸 안으로 녹아들었다. 치료를 하거나 마력을 회복시킬 때 인공호흡이 제일 좋은 이유는 숨 구멍을 통해 마력을 직통으로 몸 안에 녹아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이 방법보다는 인공호흡이 낫다. 하지만 뭐, 내게야 인공호흡이 인공호흡일 뿐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으니까. 물론 지금보다 더 급했다면 그냥 입을 맞췄을 것이다.
입 안 가득 들어간 나비며 별사탕이 인성이의 몸 안에서 사르륵 녹았다. 점차 몸 안의 마력이 맑게 돌아왔다. 인성이가 얼굴을 붉힌 채 눈을 굴렸다.
“자, 원하는 대로 해 줬어.”
“……미안해. 방금 반쯤 제정신이 아니라서.”
“응, 알아.”
“알아줘서 고마워…….”
급하게 어느 정도 정화된 걸 확인하고서 바로 몸을 꽉 끌어안아 좀 더 마력을 전달했다. 인성이는 어느 시점에서 나를 멈춰 세웠다.
“이제 됐어. 나머지는 내가 할 수 있어.”
나는 인성이의 몸을 놓고 셰린을 돌아보았다.
“그럼 셰린 씨, 치료 부탁드릴게요.”
“네, 후후.”
셰린이 왠지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
“아, 죄송해요. 뭐랄까, 조금 안심이 되어서요.”
“……?”
흠! 그때 누군가가 헛기침을 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리앙이다.
“인성 님과 리더가 그런 사이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레비가 인성이의 옆에 주저앉으며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는~리더는 성진 님이랑 썸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를레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그래서 인성 님은 소영 님이랑 잘돼 가고 있는 줄 알았지.”
삑. 허공에서 윌터의 모습도 나왔다.
[소영 님이라면 테온이랑 좀 있어 보이던데?]별말이 다 나온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코앞에서 한재일이 부루퉁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래서, 어느 쪽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한재일의 얼굴을 밀어냈다.
“어느 쪽도 아니에요.”
인성이가 생긋 웃었다.
“그런 말을 할 여유가 있나 보군요.”
장난스럽게 다가오던 일행이 창백하게 굳으며 후다닥 물러났다. 나는 예리가 만들어 두었던 마법 약을 소환해 마셨다.
“몇 개 더 드릴까요?”
“한 병만 더 주세요.”
나는 리앙에게서 마법 약을 한 병 더 받아 마셨다.
인성이의 몸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몽롱했던 정신 상태가 나아지자 인성이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나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팔 위에 또 한 번 환각을 실체화했다. 그런 다음 텔레포트 해 윌터가 있는 조종실로 향했다. 윌터와 비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더.”
“서포트하러 왔어요.”
“오케이. 이걸 쓰세요.”
윌터가 내 머리에 헤드 컨트롤러를 씌웠다. 백한 선생님이랑 캘리의 개발자가 함께 개발해 정밀도를 높인 물건이다. 나는 윌터가 헤드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것을 확인하며 몸에 마력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