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403
그동안 아르델은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마법 소환에 관리자까지, 듣지 못한 기술이 많았지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마법사는 누구나 조금씩 비장의 기술을 숨기고 있다.
아르델은 하무라의 팔을 휘감은 인장에 정신을 집중했다. 인장의 마법이 아주 조금 억제되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아주 조금, 저 정도라면 불꽃을 약간 주입하는 것으로 깨뜨릴 수 있다.
“「불꽃이여, 공명해라. 나의 일부를 지닌 자가 저곳에 있다.」”
거칠게 공격하던 불꽃이 이번엔 고요히 타올랐다. 그사이 윌터는 불꽃을 강화했다. 만들어 둔 화염 분사기를 강화하고, 새로 조립하고, 주위에서 재료를 더하고, 마법으로 재료를 소환하고, 또 조립했다. 불꽃도 마찬가지다. 불꽃을 더하고, 나누고, 더하고, 나누는 것으로 아까보다 훨씬 더 뛰어난 불꽃을 만들었다.
무기 소환에 집중하고 있던 하무라가 인장이 뜨거워졌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땐 늦었다. 아르델의 언령에 맞춰 불꽃이 하무라의 몸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르델의 몸을 매개로 인장에 직접 불꽃을 불어넣은 것이다.
인장이 불꽃을 뿌리며 빛났다. 머리가 생겨나고, 몸통이 생겨나고, 꼬리가 생겨났다. 그 위로 깃털과 불꽃으로 된 것 같은 문양이 연속적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아르델 일행 역시 조금 늦었다.
하무라의 새로운 무기가 소환되었다.
우우웅….
“힉!”
아르델은 섬뜩한 느낌에 양팔을 교차해 팔뚝을 쓸었다. 소름이 돋아 있다.
불꽃이 잿빛 안개를 중심으로 잡아먹혔다. 시커먼 불꽃……불꽃일까? 안개인지 불꽃인지 모를 것이 주위를 삼킨 불꽃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파괴했다. 검은 안개와 불꽃이 닿은 부분이 시커멓게 죽어 재처럼 흩날린다.
키이익!
비명을 지르는 듯한 울음소리. 그 사이로 빨간 날을 지닌 언월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빨간 날을 지닌 언월도가 허공을 갈랐다.
“공주님, 피해!”
윌터가 외치며 총을 소환했다. 그러나 윌터가 총을 쏘는 것보다 무시무시한 날이 아르델을 덮치는 게 더 빨랐다.
“윽……!”
후욱─.
코앞까지 다가온 검은 안개에서 검은 힘이 사라졌다. 전투복이 지닌 ‘정화’의 힘이다. 아르델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충격파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르델은 충격파에 얻어맞고 뒤로 날아갔다. 팔을 들어 막은 정도로는 그 충격을 거의 상쇄할 수 없었다.
“윽!”
너덜너덜해진 팔 위로 얇게 상처가 났다. 아르델이 헉헉 숨을 고르며 주위로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하무라를 노려보았다.
‘정화될 정도로 사악한 기운이라.’
하무라가 입고 있던 옷, 갑옷, 보조 아이템까지 바뀌었다. 허공을 나는 나비는 영롱한 초록색이 아니라 커다랗고 검붉은 날개를 펼치고 있다.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그 전투복 상당히 괜찮은데? 그 정도면 이 무기를 써도 죽진 않겠어.”
“그런 무기도, 있구나? 분위기가 섬뜩한 게, 저주받은 무기 같네?”
“그래. 저주받은 무기, 아흐드다.”
말을 잇는 하무라의 안색이 조금 창백했다. 윌터가 허공에 펼친 스크린에서 새로 총을 조립해 꺼냈다. 총신 끝에 검이 매달려 있다.
“그 검, 주인도 먹는군.”
“그래……. 내 마력도, 주위 마력도, 전부 먹어 치우는 검이다. 네 인장의 힘도 상당히 약해지지 않았나?”
“흠.”
아르델은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그녀는 과거의 감각을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소망’과 ‘저주’는 상극으로 보이지만 사실 아주 가까운 힘이다.
소망은 바라고 염원하는 것. 소망에 악의가 담기면 저주로 변한다.
아르델은 한때 저주의 힘을 사용했다. 불꽃의 힘과 소망의 힘은 어릴 적부터 줄곧 아르델의 안에 있었다. 아르델이 살기 위해 적을 죽이려 했을 때, 살고 싶은 강한 마음이 적을 저주하고 죽이는 힘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아르델은 공교롭게도 저런 저주에는 아주 익숙했다. 아르델이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래 봤자 시간 벌기일 뿐이야!”
아르델이 불꽃을 날개처럼 두르며 하무라에게 달려갔다. 하무라의 언월도가 크게 울었다. 아르델의 불꽃과 언월도의 사기(邪氣)가 부딪쳤다.
쿠과과과!
확실히 이 언월도는 하무라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악독하다. 뿐만 아니라 위력도 엄청났다. 비기로 인해 반억지로 개화한 아르델이 상처 입고 튼튼한 방어복이 한 번에 찢겨질 정도였다.
“저주라면 리더의 마법이 제일 잘 듣지!”
윌터가 정화의 힘이 담긴 탄환을 쐈다. 언월도 주위로 검은 안개와 붉은 마력이 뭉쳤다. 날아간 마법이 윌터와 아르델을 덮쳤다.
“「소망과 저주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이번에야말로 크게 한 방 먹었다. 아르델이 고통을 참으며 언령을 읊조렸다. 소망을 퍼트리고 가슴 안에 있는 힘을 자각할수록 온몸이 고조된다. 몸 안으로 마력이 불꽃으로 변해 연결되고, 그 불꽃이 다시금 연결된 상대에게 보내진다. 하무라의 안에서 불꽃의 힘이 커졌다.
가슴이 점점 뜨거워졌다. 아르델은 통증을 참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큭…아란! 봉인을 해제한다!”
그렇게 말하며 하무라는 팔찌에 둘러져 있던 붉은 끈을 풀었다. 동시에 허공에 검보라색 구슬이 떠올랐다. 구슬이 분열하며 하무라의 주위를 빙빙 돌더니 이내 번뜩이며 하무라의 안에 스며들었다.
파지지직!
“악!”
아르델이 가슴을 쥐었다. 하무라의 안에서 마력이 넘치도록 흘러 들어왔다.
“아란! 인장을 제어하라! 티타! 무기고를 열어라!”
화르륵!
불꽃과 함께 무기고가 열렸다. 하무라도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본디 어둠속성인 그의 안으로 빛의 마력이 대량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천공의 인장은 이제 그의 팔을 거의 다 덮었다.
촤르르륵
허공에 다양한 병기들이 늘어섰다. 아란이 또 한 번 구슬을 뱉어 냈다. 이번엔 그 구슬이 병기들 안에 스며들었다. 파직파직, 힘이 팽창하며 스파크가 튄다.
“…….”
아르델은 말없이 하무라를 노려보았다. 새벽별무리의 S랭크 마법사 중에서는 실력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닌 아르델이 윌터와 함께 하무라를 맡은 것은 바로 그녀가 지닌 특수성 덕분이었다. 유펠르시아에서 가져온 ‘언령’과 마법의 근원 안에 함께 있는 ‘정수’.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군. 튼튼한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마음 놓고 찔러 주마.”
병기 하나하나에 무시무시한 힘이 깃들었다. 윌터가 총을 쥔 채 긴장했다.
“…무시무시하군. 내 힘으론 도저히 안 되겠어.”
“그래서 우린 둘이서 여기 온 거잖아.”
아르델이 손을 뻗었다.
“……불꽃의 힘을 채우기 위해 정수를 불러낼 거야. 시간을 벌어 줘. 그리고……뒷일을 부탁해.”
“이보셔, 공주님.”
윌터가 아르델에게 곤란한 눈빛을 보냈다. 아르델이 굳은 얼굴로 몇 발짝 앞으로 나섰다. 라시아에게 배운 비기는 아직 꽤 있다. 하지만 이미 그중에서 특수한 비기를 썼다. 그리고 하무라에게서 느껴지는 저 강력한 힘, 웬만한 비기로는 공격을 막는 게 다다. 그렇다면 그녀도 가장 강력한 공격을 펼칠 수밖에. 이기기 위해서!
윌터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긍했다.
“어쩔 수 없지. 나한텐 공주님 같은 폭발력은 없으니까, 여기는 공주님께 맡길게.”
아르델과 달리 윌터의 실력은 매우 안정적이다. 생각하고 궁리하여 유용하게 싸울 수는 있지만 자신보다 일정 레벨 강한 자를 혼자서 이기기는 어려우며, 실력 이상의 큰 힘을 발휘할 가능성도 적다. 대신 뒤를 받쳐 주는 역할이라면 굳건히 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윌터와 아르델이 짝이 됐다.
아르델은 주머니에서 유리병을 꺼내 안에 든 약을 재빨리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윌터가 흠칫했다. 아르델의 안에 있는 정수는 어쨌거나 아르델의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면 무리 없이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저 병에 든 물약은 그 정수에서 조금씩 힘을 빼내 비축해 둔 것이다. 여차할 때 비장의 힘을 내기 위해서.
“후으…….”
아르델의 마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그것을 느꼈는지 하무라가 흠칫했다. 그가 곧바로 아르델을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쨍!
“젠장….”
그 앞을 가로막으며 윌터가 혀를 찼다. 이곳에 오기 전 몇 번이나 조립해서 강화한 뒤 정화의 마력을 집어넣은 다용도 무기다. 하지만 원념은 정화할 수 있어도 마법의 위력만은 죽지 않는다. 무기로 만든 방벽이 단숨에 깨졌다.
“사출!”
검인지 총인지 도형인지 알 수 없는 철 무기에 달린 동그란 구멍 안에 무시무시한 마력이 모였다. 빛마법과 정화마법을 접속한 마력 포다. 그러나 하무라는 칼을 휘둘러 무기를 간단히 부숴 버렸다. 뒤이어 하무라의 뒤에 있던 무기가 빠른 속도로 윌터를 향해 날아간다. 윌터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겉옷에 무기를 조합해 겨우 하무라의 공격을 막았다. 막았을 뿐, 하무라의 무기는 아직 살아 있다. 윌터는 온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큭!”
그사이 아르델은 언령을 외우고 있었다.
“「불꽃 속에 잠들어 있는 근원 속의 근원이여, 나를 이루는 불꽃의 정수여, 천공을 나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자여.」”
아르델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불꽃이 무섭게 요동쳤다. 아르델 스스로조차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그대의 그릇을 자처하는 자. 천공을 가로지르는 불꽃의 계승자이니.」”
아르델은 입술을 꾹 눌렀다 벌렸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몸 위로 긴장이 타고 흐른다.
“「나는, 나는 아직 미숙한 계승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너의 힘이 필요해!」”
비전으로 받은 언령 중 가장 강한 언령은 정수 본체를 보다 안정되게, 보다 강하게 이끌어 내는 기술이다. 몸의 부담은 커지겠지만, 이미 부담이 큰 비전을 썼다. 어찌 되었건 아르델은 싸움이 끝난 후 쓰러질 것이다.
비전이라고 해도 근본은 결국 ‘소망’, 자신의 근원에게 하는 부탁이다. 소망의 힘은 순수하고 간절할수록 부풀어 오른다.
“「그러니 힘을 빌려줘! 내가, 이 싸움에서──이길 수 있도록!!!」”
언령을 외우며 아르델은 소망의 근원을 떠올렸다.
그녀가 이기고 싶은 이유, 강해지고 싶은 이유.
처음부터 함께였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봉인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친구들과 계속 함께 싸울 수 있었더라면, 그렇다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강해졌을 텐데.
소망의 힘이 가장 무섭게 폭발했던 때를 떠올렸다. 아주 어릴 적,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유펠르시아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소망의 진실한 힘을 깨웠을 때.
──그리고 처음으로 트라베리아와 싸웠을 때.
그녀가 대현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 무슨 마음으로 마법을 썼던가. 어떻게 소망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려, 어떻게 정수를 깨워 냈던가.
그녀가 지금 이곳에서 싸우는 이유는 뭐지?
‘강해져야 돼. 그리고 나는 강해질 수 있어.’
아르델은 유은하 일행과 다를 것이 없다. 그녀도 대현의 일원이고, 대현에는 소중한 사람이 아주 많았다. 유펠르시아에 간 후에도 연락을 나눴던 진나리와 강현제, 주민희, 계속 동경하고 있던 유은하, 어쩌면 첫사랑이었던 박한수…….
아르델은 유펠르시아로 가서 새롭게 변했지만, 그녀의 소중하고 소중한 마음은 분명 대현에도 잔뜩 남아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계속 추억하며 그리워하던 행복이 어느 날 갑자기 손에 닿지 않는 곳에서 산산조각 나 버렸다.
다시는 잃을 수 없다.
다시는, 다시는…….
아르델은 그때보다 강해진 소망과 함께 손을 뻗었다.
쿠구구구구…!
윌터가 하무라의 무기에 부상을 입고 물러난 순간, 그 앞으로 뜨거운 불꽃이 몰려들었다. 아르델의 초록색 눈동자마저 홍금색으로 물들었다. 아르델의 위를 덮고 있던 새가 완연한 형태를 갖추고 아르델의 어깨 위를 감쌌다. 새가 입에서 불을 뿜었다.
화르르르륵!
금색 불꽃이 주위를 불태웠다.
“큭.”
하무라가 언월도를 쥔 채 몸을 떨었다. 언월도의 저주는 강력하다. 몸의 기력과 마력을 타고 흐르며 기력과 마력을 깎고 주인에게마저 저주를 내리는 무기, 아흐드. 그런 아흐드의 마력을 타고 불꽃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아르델의 인장이 어깨를 덮었다. 그 인장의 힘은, 저 새가 나타나면서 더더욱 강해졌다.
뜨겁다. 몸도, 마력마저 타오르는 듯하다.
하무라는 언월도를 꽉 쥔 채 아르델을 노려보았다. 처음엔 어느 정도 싸우다가 적당히 제압하여 힘으로 입을 열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기엔 너무 강한 상대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건 나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위험해.’
금색 불꽃과 검은 안개의 힘이 점점 거세졌다.
“쿨럭, 쿨럭!”
부상을 입은 몸을 가누며 윌터가 다시 한번 무기를 조합했다. 망가진 무기와 건물 잔해가 모이더니 이내 불덩어리가 되어 아래로 떨어졌다.
쾅! 콰과과광!
불을 다루는 마법사에게 불꽃은 자신의 일부일 뿐이다. 윌터는 가지고 있는 빛속성마법 무기와 불속성마법 무기를 다 내놓았다. 그것을 허공이든 바닥이든 아무 곳에나 쏘아, 무리하고 있을 아르델의 힘을 더 증폭시켰다.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해 보자고, 공주님.’
아르델의 어깨 위로 날개를 퍼덕이던 새가 형태를 바꿔 아르델의 양어깨에 휘감겼다. 아르델의 양팔에 하무라에게 새겨진 것과 비슷한 문양이 생겨났다.
아르델과 하무라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과과!
주먹과 검이 맞부딪쳤다. 불꽃과 안개가 휘몰아치며 연쇄적으로 폭발하고, 파직파직 번개가 쳤다. 아르델의 주위로 넘실거리던 불꽃이 힘의 흐름을 따라 주먹으로 모여 날개를 펼쳤다. 불꽃이 하무라를 향해 흘러 들어갔다.
“망할!”
아흐드에서 붉고 검은 안개가 휘몰아쳤다. 저주의 힘이 하무라의 몸과 함께 아르델의 불꽃마저 헤쳤다.
그러나 아르델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꽃을 움직였다. 아르델 주위로 뭉친 불꽃이 대포가 되어 하무라를 향해 날아간다.
두 사람의 기술이 연속해서 부딪쳤다. 불꽃이 하무라의 인장을 노리고, 언월도가, 혹은 하무라의 뒤에 있는 무기들이 아르델을 향해 날아갔다. 날카로운 검들이 불꽃을 베고, 탄환이 마법을 터트린다. 불꽃은 얼음에도 얼지 않고 힘을 더했다.
윌터는 불꽃을 늘리면서도 아르델의 상태를 신경 썼다. 차갑게 빛나는 아르델의 눈동자에는 마치 눈앞의 적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아르델은 무리하게 힘을 이끌어 내고 있다. 고통 속에서, 몸 안에서 휘몰아치는 불꽃 속에서, 오로지 적을 노려보는 것으로 이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용케도 윌터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고 있다. 아르델은 물론 아르델의 마법이 적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겠지. 불꽃과 안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흐트러졌다. 아르델은 불꽃으로 아흐드를 뿌리치며 가슴의 열기와 고통 속에서 다시 한번 언령을 외쳤다.
“「이 몸을 타고 도는 불꽃이여! 페일린의 이름 아래 다시 한번 힘을 부여한다! ──날개를 펼쳐라!」
아르델의 손 위에서 정수가 다시 한번 모습을 갖췄다. 아르델이 고통을 눌러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맞은편에서 하무라가 아르델에 맞춰 마지막 힘을 끌어올렸다. 하무라가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하무라의 뒤에 선 무수한 무기가 힘을 증폭하며 아르델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한다. 아르델이 아흐드를 보며 무심코 읊조렸다.
“「…마지막 원념 한 방울마저 나의 진실된 소망일지니.」”
불꽃과 무기, 그렇게 두 사람의 힘이 부딪쳤다.
쿠과과과과!
“이런.”
눈앞으로 팽창하기 시작하는 마력을 보고 윌터가 다급히 무기를 조합했다.
“…위험한걸.”
윌터는 다급히 도주용 무기를 잡고 스위치를 켰다. 무기가 가속하며 날아갔다.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윌터가 도주한 순간 윌터의 뒤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었다.
한재일이 한숨을 내쉬며 한성후를 업었다.
“아이고, 못 살겠다. 알 만하신 분이 왜 이렇게 무모하실까? 무모해도 될 때와 아닐 때를 구분 좀 하자, 응?”
“……미안하다.”
“그래, 알면 됐어.”
한재일과 한성후, 세필리오의 임무는 전투원들의 보조와 탐색이다. 방해되는 함정을 해체하고, 일정 레벨 이하의 전투원들을 캘리번의 힘을 끌어와 쓰러뜨린다. 동시에 무르시엘의 동향을 조사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보 수색이다. 무르시엘이 새벽별무리 쪽으로 돌아설 마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적의 호의로 정보를 얻고 싶지는 않다. 완벽하게 무르시엘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들은 정보 수색 팀으로서 나섰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들의 실력은 A랭크, 이 안에서는 가장 뒤떨어진다. 그러나 함선에는 마력 보충을 위해 S랭크 마법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한다. 마침 한재일의 마법은 유은하와 같은 계열이라 유은하의 환각과 연결하기 좋고, 세필리오의 마법과 가문에서 가져온 성물 역시 정찰과 은신에 좋다. 세필리오의 바람은 부드럽고 세심해 사람의 인기척마저 감싸 지운다. 한성후는 자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임무에 나섰다. 그들도 실력 향상, 혹은 취향과 목적을 이유로 들어 꽤나 열심히 적을 쓰러뜨렸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성후는 이상할 정도로 무모했다. 한번 전투가 시작되면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세필리오와 한재일이 억지로 막아섰지만, 결국 큰 부상을 입었다.
그들은 한동안 몸을 숨긴 채 걸었다. 이제 무르시엘의 전력도 꽤나 줄었다. 별빛이 많아질수록 무르시엘의 영지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적어도 무르시엘에 있던 지도를 통해 장소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거기에는 세필리오의 도움도 있었다. 세필리오의 바람은 알고 보니 감지계라는 모양이다. 그의 바람은 ‘소리’를 모은다.
곧 세필리오가 어느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방 내부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 제법 달랐다.
“이상하네요. 렉스 씨, 정보 보관실이 여기 맞나요?”
세필리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통신기로부터 렉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컴퓨터에 기록된 대로라면 거기가 맞습니다.]“여기라고?”
한재일이 안을 들여다보며 갸웃했다.
꽤나 일찍이 향했던 메인 컴퓨터실에는 컴퓨터만이 아니라 문서로 여러 정보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컴퓨터로 작성하고 인쇄한 후 삭제한 것도 있었고, 아예 필사만 한 것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정보 보관실 지도를 얻어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막상 열어 보니 평범한 휴게실이다.
“혹시 무언가 장치가 되어 있는 거 아닐까요?”
[여기서 보기엔 그런 장치는 없습니다만.]“리오, 네가 보기엔 어때?”
한재일은 팀을 맺었을 때부터 그랬듯이 능청스럽게 세필리오의 애칭을 불렀다. 세필리오가 방 안으로 바람을 뿌렸다. 주위로 흐르는 별빛 덕에 레녹이 설치한 마법은 거의 해체되어, 그의 성가신 확률마법에 걸리는 횟수도 꽤나 줄어든 상태다.
세필리오는 눈을 감으며 바람을 통해 방 안에 남은 소리와 정보를 모았다. 바람이 움직이는 동안 세필리오의 가슴에 꽂힌 브로치가 반짝거리며 빛을 냈다. 곧 세필리오가 눈을 뜨며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점은 없어요.”
“흠, 딱히 환각마법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지만……이곳에는 우리보다 강한 고위 마법사가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있으니까 말이지.”
한재일이 검지로 손목에 걸린 팔찌를 두드렸다.
“문이 님, 부탁합니다~.”
유은하의 마법, 문이는 여러 상황을 대비해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두고 있다. 한재일의 아이템에 옮겨 간 문이도 많지 않은 분신 중 하나다.
팔찌의 색이 변하며 위로 작은 스크린 창이 떠올랐다. 스크린이 선명해졌다 흐려졌다를 반복했다.
잠시 후 스크린 위로 정보가 떠올랐다.
『소니아의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이 장소는 소니아의 마법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뭐?”
“…헉.”
한재일의 등에 업혀 있던 한성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재일은 미소 지은 채 굳었으며, 세필리오는 숨을 삼켰다.
『소니아의 마법을 지우겠습니다. 하나, 둘……셋.』
문이의 목소리와 함께 세계가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평범했던 방이 균열투성이로 변했다.
균열……이라기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세계가 유리로 변해 조각조각 깨져 버린 것 같다. 깨진 부분은 타 버린 것처럼 새카맣고, 경계선은 뾰족뾰족하다. 경계선에서 떨어진 조각이 땅에 닿기 전에 가루로 흩날려 소멸했다.
“아…….”
세필리오가 한숨에 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전부 소니아의 짓이지?”
『네. 소니아의 마법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군요.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온 거니 이 정도는 하겠네요.”
한재일이 한숨을 내쉬며 세필리오를 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지. 다음 가자, 다음.”
“네. 아직 확인할 건 많으니까요. 렉스 씨, 문이 님,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엔 제2제어실로 안내하겠습니다.]“OK.”
세필리오가 한재일을 따라 발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는 곧 익숙한 마법의 기척을 느끼고 잠시 멈춰 섰다. 세필리오의 시선이 아무것도 없는 복도 끝을 향했다.
그러자 한성후를 업은 채 움직이던 한재일도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누구나 눈치챌 정도로 강렬하고,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특히 세필리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마력이었다.
“릴…….”
이어 한재일이 숨을 삼켰다.
“우와, 진짜냐? 역시 계승자는 다르구나. 설마 저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다니.”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라고는 해도, A랭크인 나로서는 등급을 측정하긴 어렵네.”
A랭크 마법사에게 S랭크의 힘은 대개 차원이 다를 정도로 뛰어난 힘이라고밖에는 인식되지 않는다. 실력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감지형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등위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현재 아르델 님의 마력은 불안정해 최저와 최고의 폭이 크긴 하지만 종합적으로 S랭크 상위와 동등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헐, 그렇게 마력이 올라갔을 정도면…….”
“네. 아마 정수를 불러냈겠죠.”
세필리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에 비견되는 언령도 두 개는 썼겠네요. 릴은 좀 많이 무모하거든요.”
“거기다 그러지 않고선 이길 수 없는 상대……니까.”
세필리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재일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세필리오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정 위험하면 윌터 대장이 빼 오겠지. 윌터 대장님이 도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거든.”
“음……그거 괜찮은 건가요?”
“그럼. 서포트에 윌터만큼 든든한 사람도 또 없지. 네 릴은 무사할 테니 걱정 마.”
세필리오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