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435
김준영이 이번엔 성진의 힘을 증폭했다. 벨라의 마력과 성진의 마력이 부딪쳤다. 그 사이로 나는 꿈을 퍼트렸다.
‘한 번 더.’
파지직!
나는 그물을 내 꿈으로 덮어씌웠다. 몽마의 힘이 덮어씌워진 그물 일부는 내 힘에 반항했지만, 일부는 내 힘을 받아들였다.
꿈의 마력이 그물을 역행한다. 유클라프와 에리카, 베로니카가 다급히 꿈의 파장을 막으려 들었다.
“상황을 알아보기 쉽도록 보여 줄게요.”
나는 벨라가 벤 그물에서 실 몇 개를 끌어왔다. 모습을 보이고, 그물을 붙잡고, 몽마와 대결하면서도 그물에 계속 내 꿈을 밀어 넣었다.
수많은 그물에 내 마력이 덮어씌워지며 보통 마법사에게는 보이지 않는 꿈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의 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몽마가 분노에 차 외쳤다.
「유은하!」
손이 별빛을 뿌리며 그물과 동화되어 있다. ‘길’이 소니아의 유해가 있는 곳까지 연결되었다. 남색 우주와 별바다로 이루어진 내 은하의 길이.
몽마가 움직였지만 소용없었다. 이건 단순한 ‘힘’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문제였다. 저 꿈에 삼켜진 모든 꿈과 정신력을 합해도 내 꿈의 힘이 더 견고하다는 것이 우스울 뿐이다. 이대로 모든 꿈의 그물을 내 은하로 덮어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또 마력과 정신력이 모자랐다. 아주 좁은 범위만 가능하다.
동시에 김준영의 증폭과 성진의 염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벨라의 검격을 겨우 떨쳐 낸 성진이 그물을 잡은 내 손을 감싸 쥐고 염력을 흘려보냈다.
성진의 힘은 정신에도 통한다. 소니아의 유체에 연결된 힘이 더 견고해졌다. 내질러진 벨라의 낫을 다시 한번 성진이 막았다. 쩡! 결국 성진의 검과 마법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러나 성진은 팔을 들어 이어진 벨라의 검격을 전부 막아 냈다. 살갗이 긁혔으나 뼈까지는 취하지 못했다. 벨라가 낫을 뽑아 들며 물었다.
“환상이니?”
“지금은요.”
차가운 대답에 벨라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꺄하하하! 재미있게 싸우잖아! 더럽고 치사하고, 나한테 아주 딱 맞아!”
“상대에 맞춰 싸우게 되는 법 아니겠어요.”
숨 쉬듯이 나온 도발에도 벨라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 정도에 반응하기엔 벨라는 욕을 너무 많이 들었다.
벨라는 낫을 내리며 잠시 고민했다. 릴리는 꿈 전문 마법사가 아니다. 연주로는 내 은하의 길을 무너뜨릴 수 없다. 유클라프와 몽마는 지금도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지금의 유클라프 다음으로 꿈을 잘 보는 건 포츈이지만, 포츈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루카를 상대하고 있다.
타닥.
조용한 가운데 베로니카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무슨 메시지를 받았는지 벨라가 웃었다.
“좋아. 원하는 대로 베지 않으마. 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벨라를 보았다. 저 칼날 같은 힘 때문에 벨라가 한 말의 진의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언어의 힘을 통해 느껴도 광기뿐이니.
“그렇다면…….”
“……! 유은하!”
“……!”
순식간이었다.
“악……!”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가까스로 벨라가 낫 손잡이 끄트머리로 내 배를 가격했음을 알았다.
그 일격으로 나는 어느새 꿈의 그물에서 멀리도 떨어지고 말았다.
벨라가 이번엔 주먹을 들어 내 가슴을 가격했다. 심장과 갈비뼈를 부술 기세였으나, 육체가 튼튼한 덕분에 어디가 망가지지는 않았다.
“쿨럭!”
낫을 휘두르는 모양을 보며 눈치는 챘지만 벨라는 몸으로 싸우는 격투파다. 그것도 아마 나나 성진이랑 힘으로 겨룰 수 있을 정도의 격투파다. 벨라가 낫 끄트머리로 내 배를 눌러 자신의 어둠 위에 처박았다. 그러더니 숨을 삼키는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자신과 얼굴을 마주 보게 한다.
“이야, 생각보다 튼튼한걸? 아무 데도 안 망가진 모양이야?”
요사스럽게 웃은 벨라가 내 귓가에 입술을 바짝 가져와 속삭였다.
“분위기는 제대로 파악해야지, 아가야.”
「은하 선배!」
머릿속에 내 안에 있는 자들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모습을 드러낸 게 실수란다. 넌 소니아의 유해를 부술 수 있었다면 인질로 잡기 전에 부쉈을 놈이야. 어차피 부술 걸 인질로 잡는 놈이 아니라고. 넌 네 생각보다 공정하거든. 그걸 너보다도 널 상대한 녀석들이 더 잘 아는구나.”
“은하야!”
달려오던 인하가 공단벽과 에리카의 방패에 막혔다. 성진이 힘을 쓰려고 한 순간 벨라의 칼날 방패가 나와 벨라의 주위를 넓게 둘러쌌다.
“못 부수지? 저 꿈의 탑.”
나는 머리카락을 잡힌 채로 벨라를 노려봤다. 광기에 젖은 날카로운 눈매가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네 힘으로는 못 부수는 거야. 아직, 아하하하! 아직은 말이야! 일부 망가뜨릴 수는 있겠지! 완성되는 시간을 늦출 수는 있겠지! 하지만 당장 힘으로는 못 무너뜨리는 거야. 너도, 누구도, 그 누구도! 아니라고 할 수 없을걸!”
“큭!”
“무슨 장치를 해 놨겠지! 틀림없어! 하지만 그걸 터트려도 아직은 못 무너뜨리는 거지? 하하, 아하하.”
째지게 울려 퍼지던 목소리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벨라가 다시 내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했다.
“유은하, 사실 우린 여기서 널 죽일 생각이 없어. 네 꿈을 제물로 바치면 참 좋겠지만 그 순간은 지금이 아니야. 너희가 그대로 도망갔어도 우리는 쫓지 않았을 거야.”
“……!”
나는 눈을 부릅떴다.
“사실 난 지금 당장 이 지구를 전멸시킬 수 있어. 그건 너희도 잘 알고 있지? 나랑, 엘리시아, 시카가 힘을 합치면 너희 따윈 한순간에 부서트릴 수 있어. 아!”
벨라가 눈을 곱게 휘었다. 소름이 끼쳤다.
“어쩌면 너희라면 그 학살 속에서도 무사히 도망쳐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다른 놈들은 아니지. 다 죽겠지. 그렇지 않니?”
귓가로 흘러들어 오는 목소리가 너무도 달콤하고, 다정하고, 광기에 넘쳤기에.
“그런데 왜 우리가 다 안 죽이는 줄 알아? 부족하기 때문이야.”
“…….”
“힘이.”
멍하니 벌려진 입이 숨조차 쉽게 내뱉지 못했다. 요사스레 휘어 있는 새까만 눈동자만이 시야에 가득 찼다.
“시간이.”
“시간…….”
“그래, 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되살리기 위한 시간과 힘이 부족해! 공간을 붙잡고, 우주를 다 긁어모아, 세상의 모든 것을 베고, 가르고, 얼리고, 흡수해도, 그래도 부족해! 그래서 너희가 나타나 우리는 싫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했단다.”
벨라가 손가락을 들어 검지로 내 가슴을 찔렀다. 움직이지 않은 것은 벨라의 말이 진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정말로 지금 당장 나를 죽일 생각이 없다. 더군다나 그들이 꺼내는 이야기는……이 세상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그들의 ‘진심’이며 ‘사실’이다.
“특히 너와 이성진, 강인하는 영혼이 아주 거대해! 너를, 새벽별무리를 쓰면, 채워질지도 몰라! 하하……꺄하하하! 그걸 위해 너를, 인간을 살려 두고 있는 거야. 특히 너는!”
나는 이를 악물었다.
“우리 동료의 시간을 앗아 간 그 목숨들, 아주 소중히 써야 하지 않겠어?”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트라베리아는 미쳤다.
미쳐도 아주 제대로 미쳤다. 이런, 이런 놈한테……!
“그래서 샐레나와 안토니오를 일찍 죽였어.”
“……!”
나는 숨을 삼켰다. 부릅뜬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벨라가 오른손으로 내 뺨을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희가 있으니까 일찍 죽여도 되겠더라고. 정말정말 고마워!”
“이……!”
“아, 마음에 담아 두진 말고.”
머리카락을 쥔 손에서 힘이 풀렸다 싶은 순간, 벨라가 발로 나를 걷어찼다.
“윽…!”
날려 가다 말고 가까스로 멈춰 설 수 있었던 건 몇 번 얻어맞아 공격 속도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벨라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차피 때가 되면 죽였을 테니까! 꺄하하하하하!”
“미친…….”
“그런데 그렇다고 원수를 그냥 보낼 수야 없는 거 아니겠어?”
동시에 벨라의 낫이 움직였다.
벨라는 낫을 가볍게 휘저었다. 반사적으로 만들어 낸 방패가 아무런 저항 없이 잘렸다. 방패와 함께, 내 왼쪽 손목 아래도 소리 없이 잘렸다.
“아아악…!”
분명 통각을 없앴는데 손목에서 무시무시한 통증이 일어났다. 벨라가 나를 비웃었다.
“우리 소중하디소중한 제물의 실력,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응~? 나랑 재미있게 놀자…? 꺄하하하하!”
“큭!”
“아, 아픈 게 신기해? 알다시피 내가 자르는 건 단순히 육체만이 아니잖아. 거기에 걸린 마법도, 생명력도, 영혼도? 의식하지 않으면 가리지 않고 전부 잘라 버린다고. 제한하지 않으면 정말 다 잘라 버린다니까. 그래서 베인 것만으로 죽는 놈도 많잖아. 너는 그렇게 안 약해서 다행이야!”
몸에 존재하는 마법, 생명, 영혼. 인식하지 않아도? 보지 못해도? 전부? …무의식중에?
“몰라, 그딴 거…….”
나는 이를 악물며 벨라를 노려봤다.
“당신과 직접 싸워 살아남은 사람이 있기나 해요?”
고민하듯 고개를 기울인 벨라가 킥킥 웃었다.
“그러네. 모를 만하네. 너는 내가 봐줘서 살아남은 거고!”
어느새 주위는 벨라의 시꺼먼 마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잘리고 있는 건가? 칼날 폭풍의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벨라가 마음먹고 친 결계는 성진 역시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런 얼굴 말고 즐겨 봐! 고통, 피, 상처! 전부 살아 있다는 증거잖아!”
벨라가 또 한 번 낫을 휘둘렀다. 이번엔 처음부터 방어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 막고, 피했다. 그러나 디멘션 박스 30개 중 28개가 잘렸다. 29, 30번째도 위쪽은 잘렸다.
벨라의 마법은 반드시 ‘벤다’는 결과를 낸다. 그러므로 벨라의 공격을 막으려면 벨라의 그 법칙을 틀어 버릴 정도로 강해지거나, 그에 걸맞은 특수한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막기 위해선 그 짧은 시간에 수십 겹 이상의 방어벽을 펼쳐야만 한다.
「은하 선배!」
「방어는 제가 맡겠습니다. 마스터는 공격하세요!」
“팔다리 하나씩, 여기서 내놓고 가. 어디 힘껏 저항해 보라고!”
벨라가 소리 높여 웃었다. 그야말로 악귀처럼. 벨라가 또 한 팔을 휘둘렀다. 나는 가까스로 공격을 피하고는 이를 으득 갈며 벨라를 노려봤다.
‘아직이야.’
아직이다. 아직 벨라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참아야 해?’
상념 속에서 시간이 느려졌다. 그러나 그 느려진 시간조차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벨라의 검격이다. 또 한 번 왼팔이 베였다. 이번에는 정화의 마력과 꿈의 힘, 무엇보다 김준영이 힘을 증폭해 준 덕분에 어깨뼈가 약간 갈라지는 데서 멈췄다.
여전히 단면은 부스러기조차 없다. 닿은 곳은 베인다. 예외는 없다.
그 상대가 나라고 해도, 성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벨라의 검은 그토록 날카롭다.
『별의 물고기 무리.』
문이가 방어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별의 물고기 무리였다. 공격을 대신 받고, 주인과 위치를 바꾸며, 무엇보다 무수히 많다. 벨라의 공격을 막기에는 딱 알맞은 특수 기술이다.
또다시 휘둘러진 칼날.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칠 칼날에 물고기들이 재빨리 내 앞을 막거나 내 위치를 바꿨다. 공격 한 번에 물고기가 반이나 베여 나갔다. 벨라에게 잘린 물고기는 회복하기 어렵다. ‘꿈’으로도 마찬가지다. 벨라의 칼날은 꿈에도 괴멸적인 피해를 주고, 칼날이 지나간 장소에는 지독한 악의가 남는다.
“꺄하하하! 이건 제법 베는 맛이 있는걸?”
거기다 벨라의 낫도 힘을 흡수한다. 칼날에 베인 모든 힘을 흡수한다. 마력, 영혼, 가장 맛있어 하는 것은 피다.
“하지만 역시 제일 맛있는 건 네 피야. 네 피, 소름 끼치게 맛있어…!”
그것도 저 여자의 진짜 무서운 점이다.
내 피도, 성진의 피도 맛있게 먹는다.
그녀의 칼날은 모든 힘을 예외 없이 먹어 치운다. 정화의 힘을 가진 내 피라도, 죽음의 힘을 가진 성진의 피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특성을 베어 갈기고, 모든 특성을 잡아 삼키는 저 여자를 대체 어떤 방법으로 상대하면 좋은가. 벨라는 미지의 상대다. 그녀와 검을 나눈 자는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절명했다. 어떤 공격이 제일 잘 먹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심지어 지금 그녀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가 아닐까? 그 증거로 근원에 뭉친 마력이 전혀 한계를 보여 주지 않고 있다.
‘지금 내 가장 강한 공격은 별과 우주의 영역이지만.’
──하지만.
‘벨라한테 광범위 공격은 안 먹혀.’
내 특기는 영역, 그리고 영역은 내가 실력보다 더 강한 힘을 내기 위해 구축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벨라에게는 그것이 먹히지 않는다. 범위가 넓은 공격은 베일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촤악─!
나는 흠칫했다. 이번에는 전혀 보지 못했다. 닿기 직전 가까스로 느낀 게 전부였다. 별의 물고기가 지닌 데미지를 대신 받는 힘도 벨라의 낫에 베인 순간 소용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내가 이번에 손가락만 잘리고 끝난 것은 아주 운이 좋아서였다.
“……!”
새로운 고통이 밀려왔으나 극심한 고통에 극심한 고통이 합쳐져 봐야 똑같은 고통일 뿐이다. 이를 악물며 참았다. 내 몸에 묻은 벨라의 마력이 평소보다 아주 느리게 정화된다.
그래, 우리는 벨라를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단편적인 것뿐이다.
그래도 나는 나보다 강한 사람을 이기기 위해 아주 많이 궁리했다.
영역을 만들고, 특수한 기술을 만들었다. 남의 힘을 깎고, 자연을 불러내며, 내 힘을 증폭했다.
그러면서 지나온 시간만큼 살의를 벼렸다.
상대는 나를 가지고 놀고 있고, 죽일 생각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가만히 버티기만 할 생각인가?
“『별의 고래여.』”
언령을 내뱉은 순간 나를 막아서던 물고기 중 일부가 꿈과 함께 휘몰아치며 고래가 되었다. 벨라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법과, 벨라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나는 상상을 이어 갔다.
“『제물을 받고 적에게 대가를 부여하라.』”
별의 고래는 우주를 먹고 사는 고래다. 내 데미지를 대신 먹기도 하며, 삼킨 마법을 토해 내기도 한다.
요는 별의 고래가 대상이나 대가를 바꾸거나 변환하는 마법이란 거다. 나는 지금까지 별의 고래가 먹어 치운 마법을 걸었다. 별의 고래가 먹은 마법은 배 속(꿈의 이공간)에 계속 쌓여 책 속에 기록된다. 그렇게 진화시켰다.
“『제물은 나의 피와 별이다! 나의 피를 걸고 ‘벨라 트리저’에게 내 감정의 대가를 부여한다!』”
벨라는 공간을, 꿈을 벨 수 있다.
그러나 이 힘은 나의 영혼과 시간을 바친 힘이다. 나는 꿈에서 더 강하다. 벨라를 죽이기 위해 수천수만 번 궁리했다.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 지난 시간들이 쓸모없을 리 없다.
언령을 외치자 별의 고래가 제물을 받기 위해 내 절단면을 향해 다가왔다. 피가 떨어지며 내 모든 마력에 붉은빛이 덧씌워진다. 다음 순간에는 나를 감싼 공간도 붉게 덧씌워졌다. 별의 고래가 제물을 통해 소환한 힘과 『은하의 지팡이』가 합쳐졌다.
쩡!
내가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피가 그물처럼 뻗어졌다.
‘피’가 사슬처럼 변해 세계에 파고들었다. 벨라가 낫을 휘두른 순간 피로 된 사슬이 베였다. 그러나 피로 이루어진 사슬은 베이면 끝나는 무력한 마법이 아니다. 절단 나 벨라에게 먹힌 만큼 벨라의 힘을 제한한다.
그 순간 힘을 제한한 벨라의 낫이 베어 낸 사슬은 고작 한 가닥.
이건 저주다.
『책 속의 세계─별의 대가.』
이건 내 살의다.
또한 부작용을 극도로 억제하여 ‘피’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피와 별의 고래를 삼킨 지팡이에서 어두운 힘이 뿜어지며 꿈을 퍼트린다.
피를, 영혼을, 내 살의를 삼키고.
『이면 기술
새벽의 저주』
비로소 꿈이 이곳에 강림했다.
신비롭고 정적이던 새벽이 깨지며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살의가 모습을 드러낸다. 온화했던 새벽이 조각나고 폭풍과 살의가 휘몰아쳤다. 섬뜩한 증오를 담은 별이 내 지팡이로 모여든다. 그 모습을 벨라는 볼 수 없다.
지금 그녀가 볼 수 있는 건 피와 새벽뿐이다.
“꺄하하하! 이건 뭘까~? 아주, 맛있어 보이는걸?”
서걱!
“……!”
검은 칼날이 휘몰아치며 피의 사슬이 또 하나 끊어졌다. 정신세계가 베이는 고통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효과가 있다. 수십 번 반복해서 씹어 온 감정은 벨라의 참격에도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아하!”
보통 때라면 꿈이 상대에게 보이는 게 낫다. 그렇게 하면 상대의 상상력이 더해져 위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살의는 한순간을 노려 숨통을 끊기 위한 살의.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편이 좋다. 벨라는 지금처럼 방심하고 있어야 한다.
거기다 아직 대가 소환은 끝나지 않았다.
벨라를 죽이는 것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중심으로 저주를 구축했다. 몸 위에, 그림자 위에 살의가 덧씌워졌다. 별이 암울한 빛을 뿜어내며 나를 따랐다.
『저주의 별 조각.』
쥐고 있던 지팡이가 길고 날카로운 창으로 변했다.
내가 노리는 것은 벨라의 심장.
이 증오를, 이 살의를 전부 끌어모아 당신의 심장을 꿰뚫어 버리겠다.
온몸이 난도질당해 내가 간직해 온 모든 꿈을 피로 물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죽여 버릴 거야……!』”
벨라와 나는 서로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꿈속에 있고, 벨라는 현실에 있다.
살의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꿈속에서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주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나간 시간은 고작 10초나 될까.
창이 섬뜩한 빛을 발했다. 피와 지금까지 삼킨 마법을 바쳐, 증오와 살의로 벼려 낸 하나의 칼날. 아름다운 꿈속에 꿈틀거리고 있던 ‘악몽’.
오직 단 하나를 위해 벼려진 무기는 실력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힘을 발한다. 벨라의 낫처럼!
『악몽의 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속이 아니고서야 이만한 살의를 가지고도 벨라를 직접 노릴 수가 없다. 거기다 사실 나는 무기를 잘 다루지 못한다. 그러나 살의는, 감정은, 내게 직접 무기를 들게 한다.
‘──하지만, 알아.’
나는 소니아를 뛰어넘었고, 이 창날은 내가 가진 모든 방어 기술을 꿰뚫을 것이며, 어쩌면 성진마저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론 아직 벨라를 죽일 수 없을 거야. 아직, 아직도….’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살의를 모으고 또 모아도 벨라를 쓰러뜨릴 수 없다. 특히 현실에서 벨라를 향해 덤벼드는 짓은 팔, 다리, 심장이고 뭐고 몸뚱어리 전부 산산조각 나는 위험 행위다.
그러니 벨라를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해도 꿈에서가 아니면 안 된다. 현재고 미래고 나에게는 이곳밖에 없다.
“『부서져라!!!』”
창 위로 살의의 그림자가 무수히 생겨났다. 내가 벨라를 향해 창을 내리꽂음과 동시에 새벽을 두른 창이 피의 힘을 휘감으며 벨라를 향해 떨어졌다.
‘죽이고 싶다.’
나는 벨라를 보며 이를 으득 갈았다.
‘죽이고 싶어.’
흘러넘치는 살의를 온 마음으로 드러냈다. 창 위에 어두운 감정이 쌓이고 또 쌓인다. 시야에 벨라만이 들어찬다. 벨라가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상처 하나라도, 단 하나라도 그 몸에 남는다면…….’
비로소 나의……나의 저주가……시작…….
서걱
그러나 벨라에 한해서 내 기대는 언제나 배신당한다.
“……!!”
꿈, 그리고 먼 현실.
벨라의 칼날이 모든 것을 베어 갈랐다.
그녀가 만든 칼날만을 제외하고, 하늘, 공간, 꿈, 감정, 어느 하나 예외 없이 날카롭게 반으로 갈라졌다.
“멋져!”
내가 만든 피의 힘도, 악몽도, 살의도, 정말 어느 것 하나 예외 따윈 없었다.
“아하! 꺄하하하하하!”
서걱
또 한 번 베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