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447
그들은 방공호 안의 사람을 죄다 도깨비 보따리에 넣어 데려왔다. 방공호 바깥에 나간 순간부터 영역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방공호가 제 아무리 무르시엘이 만든 방공호였고, 라스가 도깨비 보따리에 사람을 삼켜 넣었다고 한들, 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꿈의 그물이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악몽이 몰려들고, 가까운 도시에서 키메라가 달려왔다. 그리고 첸은 그 중 그럭저럭 사이가 가까웠던 장군 시리즈의 영혼 일부를 떼어 왔다. 그렇다기보다 납치해 왔다.
“이 소년의 이름은 이그니. 모델은 윌 오 더 위스프. 평소에는 잭 오 랜턴의 모습을 하고 다닙니다. 유령계열 키메라죠.”
「첸 이 자식아! 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윌 오 더 위스프. 할로윈 때 흔히 보는 호박 악마다.
“악령의 집합체라 실체는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트라베리아에 적잖은 적의를 가지고 있는 키메라 입니다. 겁이 많은 게 흠이지요. 안전만 보장한다면 저희 편에 붙을 거라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꼬마인지라 되도록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익! 누가 꼬마야! 나이는 내가 더 많거든?」
“라스의 비상식량으로 써도 되고요.”
「야!」
첸이 이그니의 일부를 보며 다정히 웃었다.
“농담입니다. 저와 라스는 이그니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그니는 이래 봬도 치료 마법사입니다. 키메라 전문 의사긴 하지만요.”
“얏호! 이그니! 오랜만이야!”
「라이라? 왜 네가 거기서 나와? 뭐가 그렇게 당당해? 너 잠입한 거 아니였어?」
내 뒤에서 튀어나온 라이라를 보고 이그니의 일부가 경악했다. 악령이 모델이라 그런지 영혼 일부로도 느낄 건 다 느끼나 보다.
“준비가 끝나면 본체와 마을 몽땅 합쳐서 끌고 올 생각이니 그렇게 알아 두시길.”
「야! 누가 따라 간대?」
“하하하하.”
「말을 하면 좀 들어 처먹어!」
머리에 호박을 쓴 요정 같이 작은 분신이 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요?”
인성이가 걱정스럽게 말을 걸었다. 확실히 성급하고 무모하다.
무르시엘 일행은 다들 중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꿈의 그물에서 사람을 데리고 나오며 키메라와 악몽에게 공격받았다. 유클라프가 몽마를 보냈고, 시나가 그물을 통해 공간을 뒤집어엎었다.
그러나 무르시엘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우리에게 받은 무기와 고유 능력을 사용하여 공간을 헤치고, 영혼을 헤치고, 마지막에는 숨었다. 우리처럼 그들도 숨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기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라스의 도깨비감투와, 레녹의 확률마법, 첸의 여우불, 하무라의 특수 무기까지.
“무모하지 않은 방법도 있습니까? 어차피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것을.”
“그건……그렇죠.”
“거기다 저희는 리더님 일행처럼 꿈의 그물을 다양하게 이용할 만한 기술은 없습니다. 거울과 영혼을 써도 리더님의 기술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요. 하물며 들키지 않고 사람들을 구출할 방법은 찾지 못하겠더군요. 어차피 꿈의 그물은 바로 강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장치가 아닙니다. 위협은 늘어날 수 있지만, 감시하는 힘이 지금보다 더 정교해지기 힘들겠지요. 그리고 저희가 날뛰는 편이 더 넓고 위험한 북아메리카에서 움직이는데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수긍했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으나 어차피 이 탈출 작전에 정답은 없었다. 우리도 마지막에는 들킬 것을 각오하고 구출해야 할 것이다.
“마음대로 하세요.”
“허락 감사드립니다.”
첸이 눈을 접으며 요사스럽게 미소 지었다.
무르시엘은 앞으로 닷새 후 다시 중동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도 다음에 잠입할 날을 정하며 시간을 들여 고심했다.
란 리나에게는 이미 우리와 라이라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그에 관련된 기억이나 생각은 내 꿈마법으로 은밀하게 보호하고 있다.
리나 일행은 우리와 접촉하기 전부터 주기적으로 바깥에 나가 사람을 구해 오고 있었다. 더 수월하게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우리는 리나의 그림자에 몇 개의 이야기를 적어 줬다.
거울 성에 거울 조각을 심고 온 것도 잘 됐다. 라이라의 거울끼리 연결이 짙어졌다. 못해도 이틀에 30분 이상은 교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일이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아무리 특수한 능력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깊게 연결됐는데……정말로 티가 나지 않을까?
트라베리아는 우리가 이미 그물 안쪽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만 하는 것과 우리가 어디에 눈을 두고 있는지 특정되는 것은 난이도가 전혀 다르다. 거기다…….
나는 아멜리아와 오시언도 모르던, 최근 100년 사이에 생긴 소니아의 특수능력을 하나 알고 있었다. 소니아는 ‘인연의 끈’을 보았다. 그게 소니아가 타인의 꿈을 더 잘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원동력이다. 과연 죽음의 각인을 받은 유클라프와 시나는 그 특수능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거울성 안이 라이라의 사념으로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으음.’
소니아가 보던 ‘인연의 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된 끈이다. 무수히 얽혀 있는 끈을 붙잡아 누구의 인연인지를 확인한다.
특수능력은 마법이 아니므로 마법사의 의지로 계승하거나 계승받을 수 없다. 같은 혈족마법 계승자끼리도 특수능력이 다른 일은 빈번하다. 그래도 상대가 소니아의 꿈에 오랫동안 녹아들어 있던 시나인지라 신경 쓰였다.
‘하긴, 들켰어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전부 알아내지는 못해. 결국 마지막 순간엔 들킬 테니, 들키더라도 확실하게 구출해 낼 수 있도록 궁리하는 수밖에.’
그렇게 여러 요소를 생각하며 다음 탐색을 어떻게 할지 정했다. 이번에는 조금 드러내 놓고 다녀 볼까?
이번 탐색은 처음보다 기간을 짧게 잡았다. 탐색 목표는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엔 ‘시선’에 예민한 성진과 함께 갈 것이다.
다양하게 행동하여 꿈의 그물과 유클라프의 반응을 살펴볼 생각이다. 그리고 탐색 기간 동안 안전 구역으로 흘러들어 가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을 안전 구역에 던져 놓거나, 만약 안전 구역 외의 장소에서 마을을 이루고 있는 무리가 있다면 데리고 나와 볼까 한다.
위험한 만큼 이번에는 나와 성진 단 둘이서만 가기로 했다. 최강의 안전 카드는 이럴 때 써야하지 않겠나.
“잘 부탁해, 성진아.”
든든한 기분으로 손을 내미니 성진이 내 손을 마주 쥐고는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왜?”
“아니. 역시 같이 가는 편이 안심되는구나 싶어서.”
“아, 그건 나도 그래. 다들 그렇겠지.”
위험한 곳에 쳐들어갈 때 성진만큼 안심되는 동료는 없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다. 저번에는 남동쪽으로 들어갔으니 이번에는 남서쪽에서 진입해보자. 우리는 바다와 육지를 번갈아 거닐었다. 모습을 숨긴 채 움직이다가 서서히, 아주 서서히 환각의 세밀함을 몸에서 덜었다.
‘이만하면 유클라프가 눈치챌 때도 되었는데.’
그러나 악몽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시선은 잠깐 스쳤다 사라졌다. 하긴, 아직 ‘우리’라는 특징이 드러날 정도로 기척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꿈의 그물은 영역을 이루고 있고, 유클라프는 꿈의 그물을 관리하고 있지만, 릴리처럼 하나하나 확인하는 방식은 아니니까.
하지만 계속 희미한 상태로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란 것을 몰라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우리는 그 상태로 움직였다.
꿰뚫어 보는 힘은 나보다 이성진이 더 강하다. 하지만 벨라의 기척이 보는 것만으로 아프듯, 이성진의 눈도 상당히 사념을 드러내는 편이다. 성진은 사념이 꿈의 그물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능력을 조절하며 보았고, 꿈의 그물에 익숙해진 나와 인성이보다는 느리지만 조금씩 길을 찾았다.
북아메리카에 들어선 지 하루가 지났을 때 시선이 붙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다녔다. 어차피 우리가 여기에 오는 목적이 사람들의 구출과 꿈의 그물을 파악해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사실쯤은 유클라프와 시나도 알고 있을 터.
‘이곳이 꿈이고, 부수고 싶지 않은 영역이라면, 내가 더 유리해.’
더군다나 유클라프는 아직까지 우리가 트라던트에 몰래 숨겨 놓은 ‘가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양하게 시험했다. 몸과 눈이 빠르게 이 공간에 익숙해진다. 최근 익숙해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건 인성이와 몇 번이고 감각을 공유한 덕분이다. 공간과 트라던트를 감지하는 다른 시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일단 안전 도시 근처에서 헤매던 사람들을 안전 구역에 던져 놓았다. SR이 만들어 둔 작은 방공호에 200여명의 사람이 숨어 살고 있었다. 대놓고 구출하여 아공간에 넣었으나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나 주시하는 시선은 계속 느껴졌다.
데리고 탈출하려 할 때 간섭할 생각인가? 아니면…….
‘200명 정도는 손해가 아니라는 건가.’
다른 방공호를 수색하고, 또 안전 구역에 사람을 던져 넣고, 작은 데랜서를 쓰러뜨렸다. 지나다니는 중간중간 유클라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꿈의 그림자에 꿈 조각을 심어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데랜서를 쓰러뜨렸음에도 유클라프와 몽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주시하기만 했다.
하긴, 합리적인 판단이다. 나와 그들이 부딪쳤을 때 꿈의 그물에 생겨날 상흔을 생각하면 이 정도 손해에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손해다.
연맹이 만들어 두었던 방공호를 전부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사흘째가 되던 날 우리는 안전 구역을 건드려 보기로 했다. 유클라프와 몽마가 움직이지 않는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움직였다. 악몽이 휘몰아치며 안전 지역 주위로 유클라프의 힘과 몽마의 힘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몰려든 힘은 공격 준비라기보다는 ‘경고’에 가까웠다. 정말 이 타이밍에서 싸우고 싶으냐고, 그렇게 묻는 듯이 유클라프와 시나는 공간에 힘을 부여했다.
우리는 공격을 그만두고 다시 안전 구역과 안전 구역 사이를 뒤졌다. 그러다가 환상으로 이루어진 숲에서 마법으로 이루어진 울타리와 건물을 발견했다. 안전 지역이나 방공호가 아님에도 건물 안에는 10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우리가 구출한 것은 그 사람들까지였다. 그러나 구출하는 인원이 2000명 가까이 되어도 유클라프와 몽마는 우리를 방관했다.
나는 새블레로 돌아가며 실감했다. 우리는 이제 정말 커븐 로드와 대등해졌구나. 내 꿈마법의 레벨은 소니아와 몽마의 것보다 높고, 유클라프와 몽마의 마력이 제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 한 꺼풀 너머의 간극은 쉽게 메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메웠을 때쯤 나는 더 위에 있는 계단을 밟고 있겠지.
다음 탐색 때는 본래 멤버(나, 인성이, 오시언)에 라이라만 새블레에 남겨 두었다. 시험해 볼 게 생겼기 때문이다.
정신세계 속에서 란 리나와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라이라가 일러 준 거울 방으로 향했다.
우리가 라이라의 거울로 시험해 보고자 하는 것은 새블레와 꿈의 그물 안에서 서로의 의지로 교신을 나눌 수 없는가 하는 것이다. 라이라와 거울이 교신하는 힘은 꿈의 그물을 파고들 정도로 대단하다. 그러나 연결되는 횟수는 늘었을지언정 원하는 때에 연결되지는 않았다. 우연히 연결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걸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라이라는 한동안 복사할 수 없는 마법사들의 꿈을 열심히 비추며 살폈다. 특히 열심히 살핀 것은 나와 성진, 예리다. 내 특수성과 꿈의 힘이 있다면 라이라는 원할 때 서로에게 연결해 그물 바깥과 안쪽 정보를 나눌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라이라는 시험용으로 연락 전용 거울 조각을 만들어 냈다. 그 거울 조각은 우리를 비춘 그림자를 통해 토해 낸 것으로, 우리와 라이라의 일부다.
단, 라이라가 수신기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라이라는 꿈의 그물 바깥에 있는 게 좋다.
그리고 거울 성과의 교신을 새롭게 강화하기 위한 거울 조각도 따로 받았다. 이건 거울 방의 거울에 심을 것이다.
우리가 꿈의 그물을 탐색할 때 인원을 최대한 제한하는 것은 그동안 새블레에 무슨 일이 생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라베리아는 언제든지 쳐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물 안에서 새블레와 연락할 방도가 생기면 그런 제한을 조금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거울끼리 교신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면 꿈의 그물을 구멍 내고 사람들을 구출하는 일도 편해진다.
그래. 결국 기껏해야 구멍을 낼 수 있을 뿐이다. 꿈의 그물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질 듯하다. 꿈의 그물이 퍼지고, 차원의 경계가 무너지며, 융합된다. 꿈의 그물이 존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원 간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그것을 조정하는 데는 막대한 마력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가진 마력의 수백 배는 필요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물은 스스로를 수복한다. 꿈을 방해하고, 꿈을 먹어치우고, 공간을 조정하고, 부딪치고, 다시 부딪치고……. 차라리 커븐 로드를 쓰러뜨리는 게 더 쉬울 지경이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커븐 로드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지만.’
꿈의 그물에 구멍을 내면 차원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와 성진이라고 해도 꿈으로 빼곡히 메워져 있는 차원이 어떻게 누덕누덕 기워졌는지는 전부 파악할 수 없다.
교신 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라이라의 애착 거울들에 내 꿈 조각을 집어넣어 곳곳에 옮길 예정이다. 그럼 라이라의 거울은 비춘 것의 모습으로 변해 가만히 그 자리에 존재하겠지. 그리고 그 거울은 나와 라이라, 인성이가 그물 바깥과 안쪽에서 동시에 힘을 쓴 순간 꿈의 그물을 구멍 내는 ‘통로’로 변할 것이다.
라이라와 우리의 실험은 성공했다. 또한 우리는 거울 실험을 동반한 탐색에서 북아메리카 곳곳에 있는 안전 구역을 전부 확인했다. 그리고 그 장소에 몰래 거울을 심는 것에도 성공했다. 이로써 꿈의 그물에 안전하게 구멍을 뚫기 위한 필요 최저한의 조건은 전부 갖춰진 셈이다.
돌아온 우리는 인하의 소속마법과 라이라의 거울, 내 꿈 조각, 인성이의 그림자 파편을 연결해 작은 손거울을 만들었다. 연결된 소속마법의 중심은 나와 라이라다. 우리가 거울이 있는 장소를 보다 잘 느끼고 그 감각을 통해 대규모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밑밥이다. 현재 북 아메리카에 존재하는 안전 구역은 27곳, 안전 구역에 있는 사람은 총 2만 명이다.
‘2만 명이라.’
이제 안전 구역 외에서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북아메리카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마 2만 명이 전부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북아메리카에 있는 사람이 사는 구역이 안전 구역뿐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꿈의 그물에 얽힌 것은 꿈의 그물과 ‘차원’이다. 유클라프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보고 느끼듯이 유클라프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낀다. 유클라프의 공간마법은 우리가 감히 따라잡을 수 있을 만한 게 아니다.
유클라프가 작정하고 공간마법으로 무언가를 은폐하면 어쩌면 우리의 눈으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거기에 자연의 가호도 있다. 꿈을 통해서라면 자연의 가호를 넘나들 수 있지만, 확실하게 ‘자각’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연맹에서 그게 가능한 건 김준영뿐이다.
‘그걸 위해서도 거울은 중요해. 거울을 통해 감각이 연결되면 김준영이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생존자를 구출할 준비가 서서히 끝나갈 즈음이었다. 중동으로 향했던 무르시엘 일행이 크게 다쳐서 돌아왔다.
이번에 중동으로 떠난 것도 4명이었다. 첸, 라스, 레녹, 하무라. 상태가 제일 심각한 것은 라스와 하무라였다. 항상 싱글벙글했던 라이라에게서 표정이 사라졌을 정도였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었군요.”
“…….”
“카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참 곤란하게도, 카인은 저희의 위장을 뚫고 알아보더군요. 꿈으로 잘 숨겼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첸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카인은 영혼을 다룹니다. 그리고 카인이 데리고 있는 인형 중에 소니아가 만든 게 있었습니다. 거기에 꿈의 그물이 연결되어 있더군요. 저도 라스도 카인과는 상성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덕분에 겨우 도망쳤습니다.”
중동으로 향한 멤버는 그럭저럭 커븐 로드와 대면할 정도는 된다. 이들의 힘은 하나같이 강력하며 특수하다. 그러나 카인의 마법은 무기에 영혼을 넣어 조작하는 마법. 직접 공격계인 라스도, 영혼을 나누고 생기를 흡수하나 카인보다는 힘이 약한 첸도 카인과는 상성이 좋지 않다. 하무라는 카인과 비슷하게 무기를 조종하지만, 하무라 혼자 힘으로는 카인을 경계할 수 없다. 더구나 거기에는 카인만이 아니라 카인의 측근이자 같은 트라베리아의 마법사인 라리마도 있었다고 한다. 라리마는 또 하무라와 상성이 좋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레녹의 확률마법 덕분인 모양이었다.
이번엔 레녹이 말을 이었다.
“카인을 만난 것은 운이 안 좋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지.”
“무슨 뜻이죠?”
“안전 구역 중 한 곳을 카인이 맡았더군.”
“네?”
이 사실은 라이라도 몰랐던 모양이다. 라이라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시선을 움직여 표정 없이 예리의 치료를 받아들이고 있는 라스를 보았다. 라스의 몸은 뼈와 살, 피부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보다. 상처가 난 몸은 깨어진 그릇 같았고, 그 안에서 어두운 마력과 안개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첸이 내게 기억이 담긴 구슬을 넘겨주었다. 나는 첸의 시야로 카인이 지배하는 안전 구역을 확인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인형의 집’이다. 안에 들어선 모든 사람이 성 안에서 생활한다. 성 안에 밭이 있고, 건물이 있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넓고 길이 많으나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워프홀이 있는 데다, 지도도 있고, 길 안내 인형도 따로 있다. 또한 카인이 지배하는 구역에 복합적인 결계는 없고, 그가 만든 안전 구역은 누구든 오갈 수 있다.
중동은 카인, 북아메리카는 유클라프. 그렇다면 빼앗긴 다른 대륙에도 각기 커븐 로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지, 꼭 커븐 로드라는 보장은 없지. 커븐 로드 외에도 트라베리아는 강한 마법사가 많다. 그중 가장 강한 자가 바로 리피트다.
그건 그렇고 일이 꽤 귀찮아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난리칠 수 있겠어요?”
“준비가 끝나셨나 보군요.”
“네. 곧 움직일 거예요.”
무르시엘 일행은 이번엔 3주나 중동에 있었다. 그들의 힘은 특수하지만 우리만큼 꿈에 최적화되어 있지는 않다. 탐색하는 데도, 구출하는 데도, 우리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무엇보다 이 일행은 카인과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다른 실력자도 별로 없다.
‘무르시엘 안에서 하무라, 레녹과 함께 카인과 라리마를 견제할 수 있는 건……라쿤 정도? 무르시엘 외에서는……으음. 특수한 힘은 부족하지만 형일 아저씨도 괜찮겠고. 인하나 성진이를 보내는 건 전력이 너무 줄어서 안 되겠고.’
레일리와 루카는 내가 없는 동안에 결계를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형일 아저씨를 넣는다고 카인을 피하거나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듀크는 좀 약하고, 페르카니의 마법은 눈에 띄어. 라쿤은……괜찮을 지도.’
굳이 전력을 추가한다면 라쿤이나 형일 아저씨겠지만, 판단은 무르시엘 일행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 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갈 겁니다. 적어도 이그니는 데려오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같이 갔던 호박 귀신 이그니의 분신이 사라졌다.
“서로 성대하게 날뛰어 보지요.”
“그러기 위해 치료가 끝나면 대화를 나눴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정기 좀 충전해 주시겠습니까?”
첸이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평소 정기를 주는 레녹과 하무라가 누워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첸은 비교적 상처가 적은 편이었다. 라스가 저렇게 다친 것은 동료를 지키기 위해 맨 앞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기만큼은 예리도 잘 충전하지 못한다.
나는 첸을 5분 정도 끌어안고 떨어졌다. 첸은 무언가를 견디듯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렸다가, 이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처음 정기를 주었을 때와 똑같다. 내 힘이 너무 맑고 강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다.
“그리고 영혼을 다 썼으니 충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별무리님들 것 전부요.”
첸이 나와 성진, 인하에게 구슬을 던졌다. 인성이 몫은 성진이, 소영이 몫은 인하가 챙겼다.
일주일 후, 적당히 휴식을 취한 무르시엘 일행은 라이라가 준 연락용 거울을 챙기고 다시 중동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하루 후, 유은하, 최인성, 오시언이 북아메리카로 출발했다.
라이라는 일행이 떠난 후 제 몸을 통해 일행들의 위치를 확인할 뿐 평소처럼 즐겁게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위험을 감지한 즉시 움직이기 위해 라이라의 곁에는 항상 정예 부대가 교대로 함께했다.
‘위험한 일’은 반드시 생긴다. 유은하와 최인성, 오시언은 마지막 준비가 끝나면 라이라의 거울성에 도착해 꿈의 그물을 뚫고 길을 열 것이다. 유클라프와의 전투는 피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3강을 막아 내야 할지도 모른다.
정예 부대는 공격 마법사, 자연의 가호를 지닌 자, 결계를 구축하는 자, 치료 마법사 등, 필요한 역할에 맞춰 구성됐다.
그러면서 이소영은 일시적으로 테온과 파트너가 아니게 됐다. 이소영은 첫 날 같은 팀의 정예리, 대현의 김준영, 라비언트의 용기사 이청우, 방위부의 2인자 레이시와 팀을 맺었으나, 이틀째가 되자 시간이 비었다. 그 길로 이소영은 테온, 이유미와 함께 대현에 찾아갔다.
이소영은 요즘 아멜리아나 셰린에게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같이 배우는 멤버는 주로 테온, 김준영, 이유미다. 이소영은 예전부터 혼자 훈련하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훈련하는 것을 선호했다. 꼭 대련을 하는 게 아니더라도, 옆에서 누군가와 함께 훈련하다 보면 쉽게 자극을 받는다. 그 상대가 자신보다 뛰어날수록 좋다.
캘리 멤버도 자연의 가호를 쓸 줄은 알았으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들은 내용으로 몸소 체감하고 터득한 탓에 누군가를 가르치기에는 부족했다. 자연의 화신인 이안은 자연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정령과 인간은 다르다. 이안은 인간의 방식을 모른다.
이소영은 정령을 다룬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자연의 힘에 대해 좀 더 잘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이소영은 자연과의 교감에 자질이 있었다. 셰린에게 정령이 없었더라도 잘 배우기만 한다면 1년 안에 자연의 흐름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유미와 테온도 자연과의 교감에 제법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새벽별무리에 파견된 동안 자연의 가호에 관한 공부를 전혀 하지 못했던 이유미도, 자연 친화적인 환경마법을 지닌 덕에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테온도, 보다 강해지기 위해 열심히 자연과의 교감을 훈련했다.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공부하며 이소영은 한편으로는 김준영과 함께 ‘꿈마법’에 관해 조사했다. 김준영도 이소영도 감지능력에 한해서는 배움이 부족하다. 이소영의 요정 ‘솜(꿈)’을 위해서도 이 공부는 꼭 필요하다. 주인의 배움이 늘수록 요정도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소영이 유펠라에게서 물려받은 요정들은 이안과 함께하며 반쯤 정령화 되었다. 7명의 요정이 튀어나와 이소영의 주위를 맴돌며 함께 책을 읽었다.
오늘로 그들은 사 왔던 책을 전부 읽었다.
“역시 꿈에 대해 공부하는 데는 가 최고인 것 같아.”
“성장물이라 더 좋아요. 초보자 시점부터 차근차근 나오니까요. 하지만 전투 위주라 보다 넓은 세계관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워요.”
“그건 그래.”
책을 다 읽은 다음 날 이소영, 테온, 김준영, 셰린은 함께 리브리의 서점으로 향했다. 이유미는 다른 약속이 있다며 빠졌다.
사실 정말 중요한 책은 리브리 도서관 안에 있지만, 그 정도로 중요한 책은 위험하기 때문에 대여가 불가능했다. 거기다 몇 번 읽어 보긴 했는데 자연의 가호 외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연과의 가호나 꿈마법에 있어 초보인 그들은 기초부터 쌓을 생각으로 서점을 애용하고 있었다. 셰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준영의 등을 두드렸다.
“준영이 너 요즘 계속 피곤해 보여. 잠은 잘 자고 있지?”
“잤어요. 낮잠도 잤고요.”
이소영이 킥킥 웃으며 김준영을 옹호했다.
“맞아. 내가 옆에서 봤어. 책보다가 피곤하다며 드러눕더라. 어젠 하루 종일 얘랑 같이 있었거든.”
“그런 것 치고는 안색이 나쁜 것 같습니다. 혹시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일행은 하나같이 김준영을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준영은 현재 실력이나 경험, 육체에 비해 부담스러운 일을 맡고 있었다. 아무리 자연과 교감하는 재능이 뛰어나도 김준영은 B랭크 마법사였다. 그런데 한 나라를 책임지는 임무를 맡고 있으니…….
김준영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건 아녜요.”
“정말?”
“괜찮아요. 이유는 알겠는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저도 원해서 하는 일인걸요.”
이소영과 셰린, 테온이 김준영을 향해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김준영은 사실 중압감으로 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항상 피곤한 얼굴에, 때때로 구역질을 한다고 들었다.
네 사람은 곧 나란히 리브리 소속 서점에 들어섰다.
“에취!”
몇 걸음 걷다 말고 김준영이 기침을 했다. 일행의 시선에 안쓰러움이 더해졌다. 김준영이 그것을 느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상대적 약자일 뿐이지 그는 따지고 보면 B랭크 마법사로 육체 능력도 체력도 평균 마법사보다 뛰어나다. 초월자 같은 괴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튼튼하단 말이다.
‘그래도 확실히 요즘 괜히 피곤하긴 해. 자연과 교감하면 더 건강해져야 하는 건데……. 진짜 내가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아, 오늘도 책을 사러 오셨군요!”
그 목소리에 김준영은 무심코 흠칫했다. 이소영이 밝게 웃으며 상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파샤.”
“오랜만이에요, 소영 님! 오늘도 악수해도 되나요?”
“넌 정말 변함이 없구나.”
이소영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준영이 파샤를 흘끔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데도, 김준영은 어쩐지 파샤가 불편했다.
“에, 에, 에, 에취!”
김준영이 또 한 번 기침을 했다. 이소영이 파샤와 악수하려다 말고 김준영을 돌아보았다.
“혹시 감기 아냐? 감기가 그런 증상이라고 들었는데.”
“은하 선배가 결계를 펴고 있는 곳에서, 감기요? 그것도 B랭크 마법사인 제가요?”
“음, 아닌가.”
감기는 어린아이나 걸리는 병이었다. 마법으로 변이시킨 바이러스 병이라면 모를까 웬만해서는 목이 좀 아프다가 만다. 파샤는 그사이에도 이소영의 손을 꼭 잡은 후 손을 내렸다.
“먼지 때문이면 슬프네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청소하는데.”
“아니면 혹시 알레르기가 있는 걸까요?”
“아니, 둘 다 어린아이만 걸리는 사항이잖아요. 절 너무 어린애 취급하는 거 아니에요? 재채기 정도야 할 수도 있지.”
“그건 그렇지만.”
“아,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세요. 파샤 씨, 혹시 새로 들어온 책 있나요?”
불편한 것과 별개로 김준영은 손님이고 파샤는 사서이다. 파샤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번 주에는 새로 들어온 책이 없어요.”
“그럼 정신마법이나 전승마법에 관련된 책꽂이로 안내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전 책을 정리해야 해서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흑흑, 소영 님. 다음에 만나요.”
“바이~.”
일행은 안내 프로그램을 따라 하늘을 날았다.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던 파샤가 곧 책장 사이로 사라졌다.
일행은 먼저 정신마법에 관한 책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살펴보았으나 특별한 내용이 담긴 책은 찾을 수 없었다. 연기, 호소, 정신 조작, 기억 조각, 세뇌, 매혹, 유도, 정신 공격, 정신 방어, 꿈. 정신마법은 다른 마법에 비해 어렵고, 상성이 있는 사람도 적고, 활용도도 낮은 편이다. 그러나 위험도는 무섭도록 높다.
일행은 한 번 더 이동했다. 전승마법에 관한 책은 종류가 아주 적다. ‘전승’이란 본디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달되며 전승한 사람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마법이다.
이어 일행은 이번엔 결계와 방어마법을 살폈다. 결계와 방어마법은 사용하는 사람도 많고 무척 다양하기에 관련 책이 다섯 자리 숫자를 가볍게 넘어섰다. 일행은 랭크가 높은 책 위주로 훑었다. 검색 도구로 키워드를 검색하여 목차와 미리 보기를 읽던 이소영이 즐거워하며 웃었다.
“다 아는 거네. 이야, 슬슬 모르는 걸 찾기가 어려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나 보다.”
“그것도 있겠지만, 소영 선배는 전투 경험이 많잖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안 것도 많지 않을까요? 전 아직 모르는 게 더 많아요.”
책에 집중하고 있던 탓에 김준영이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옛 전승마법은 아직 모르는 게 더 많지만 꿈마법은 유은하를 통해, 결계마법은 아주 다양한 마법사를 통해 보았다.
‘. 흐음, 응용 수단은 많을수록 좋지.’
이소영은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뿐 기본적으로 결계마법을 익혔다. 유은하나 이성진을 보며 고급 응용까지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소영은 자신의 상성에 맞으면서 아직 펼칠 줄 모르는 결계를 살폈다. 이소영의 주위로 바람으로 된 날개와 갈은색의 동그란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지식에 고픈 것은 이소영이나 경험이 적은 김준영만이 아니었다. 지난 몇백 년간 바깥과 교류를 끊었으며 봉인되기까지 했던 셰린, 기억나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노예였으며 노예가 아니게 된 후에도 싸움밖에 하지 못했던 테온 역시 보다 많은 지식을 원했다.
일행은 금방 책에 빠져들었다. 몇 권은 그 자리에서 바로 사서 읽기도 했다. 연맹의 대표 조직들에게 돈을 받으려는 가게는 별로 많지 않으나, 연맹의 대표 조직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돈을 풀려고 했다. 이소영은 팁까지 얹었다. 새벽별무리는 마정석과 아이템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만큼 부유하다.
일행은 몇 시간 동안 책에 푹 빠졌다. 김준영의 뒤로 요정의 빛이 반짝반짝 새어 나왔다. 이소영의 바람은 기본적으로 차가웠다. 요정들의 힘이 강해지자 김준영은 무심코 몸을 한 번 떨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또 한 번 재채기를 했다.
“푸엣취!”
이소영이 깜짝 놀란 눈으로 김준영을 보았다. 김준영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진짜 감기 아니니까요. 걱정하는 눈으로 보는 거 그만두시고요. 그보다 바람을 좀 가라앉혀 주세요. 자연과 교감하면서 웬만큼 강한 마력은 흘려 보낼 수 있게 되었다지만 S랭크의 마력이 교감하지도 않고 몸에 부딪치면 좀, 아니, 많이 부담스러워요.”
“아, 그런가. 미안.”
요정의 빛이 금방 가라앉았다. 부드럽게 퍼져가던 날갯짓이 잦아들었다.
「죄송합니다. 집중하다가 그만.」
이소영의 등 뒤에서 생긴 작은 바람이 새의 형태를 그리며 김준영의 어깨에 내려섰다.
「인간의 지식이 너무 재미있더군요. 저희는 몇백 년이나 세상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덩어리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김준영은 반쯤 정령화된 요정들을 향해 의식을 기울였다. 원래는 주인인 이소영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지만, 공명하면 김준영에게도 들린다.
「미안.」
「조심할게.」
「어라? 혹시 지금 우리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와아, 기분 좋아!」
김준영은 조금 놀라 눈을 깜빡였다. 이소영과 일대 일로 교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김준영이 일대일로 교감을 한 S랭크 마법사는 레일리, 루카, 유은하, 이성진, 최인성 같이 결계의 핵심 역할을 맡은 마법사들이거나, 김준영에게 교감을 가르친 구 트라베리아의 마법사, 김준영의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교감한 의사 몇 명이었다.
마법사와 하는 일대일 교감은 김준영에게 부담이 많이 간다. 자연이 직접적인 부담을 거의 떠맡긴 하지만, 실력 차이에서 오는 압박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김준영은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랑만 교감했고, 다른 누구보다 많이, 충분히 쉬었다. 그래서 김준영은 아직 생각보다 다양한 마법사와 교감해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