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475
마력 반응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또 한 번 꿈을 뛰어 넘었다. 꿈 조각보다는 작품 속이 훨씬 안전하다.
클라인 남매는 작품에서 작품 고유만의 음악을 찾는다. 그처럼 누군가가 혼신을 다해 만든 작품은 하나의 세계, 즉 꿈이다.
우리는 녹색으로 우거진 그림 속에 들어왔다. 풍경 그림의 꿈속은 그림이나 꿈속이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 녹음 짙은 여름의 숲, 여름의 열기. 클라인 남매의 음악이 스며들고 있지만, 그림 자체가 작가에 의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바깥보다는 음악의 영향을 덜 받았다. 예리가 축복의 서를 펼쳤다.
『딱 관찰하기 좋네요!』
『다들 여기서 조금 둘러보고 가요.』
나는 다음 길을 가늠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깥에서 볼 때 클라인 남매의 음악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요새를 만들고 주위에 힘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안에서 보니 그 형태가 조금 더 적나라하다.
둘러보며 나는 예전, 클라인 남매의 초대를 받아 청와대 안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모든 물건이 하나하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수히 존재하는 현이 청와대의 중앙, 연주회관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래, 힘의 중심은 여전히 연주회관이다. 그러나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나는 음악과 꿈 조각에서 감정과 이야기를 읽었다. 곳곳에 힘의 원천……‘악보’가 있다. 현이 모여 선을 만들고, 그어진 선이 결계를 만든다. 모든 영역이 클라인 남매가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음악을 증폭하고 있다.
『연주는 하나의 악기나 한 사람의 노래로는 완성되지 않지. 클라인 남매가 즐기는 음악은 오케스트라, 합주곡이야. 그중에서도 현악기 합주곡을 좋아하고. 소리와 소리를 합쳐 합주곡으로 만든다, 그런 느낌이네.』
로카의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더군다나 클라인 남매에게 시간은 힘이다. 연습하고, 악보를 수정하고, 다시 연주하고, 그러면서 음악은 점점 견고해진다. 그리고 그 흐름이 세계의 당연한 법칙으로 변한다. 지금의 청와대와 한국은 시간이 만든 결과다.
‘이 모든 현이 클라인 남매의 의지를 담고 발동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무섭네, 정말.’
시간을 확인하며 나는 가장 관찰하기 편한 곳에 있는 목표를 향해 다가갔다. 바로 서재에 있는 반이었다. 우리는 서재에 걸린 명화 안에 서서 반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반은 혼자였다.
‘완벽하지 않은 자아……라.’
장군 시리즈, 좀비 반과는 이전에 세 번 만났다. 아직 학생일 때 트라베리아의 실험장에서 한 번, 캐티아에서 한 번, 전에 한국에 잠입했을 때 한 번. 아니, 한국에서는 두 번 만났으니 네 번이라고 해야겠다.
첫 번째에는 지금처럼 깊게 보지 못했고, 두 번째에는 흘깃 보고 넘겼다. 아니, 사실 클라인 남매를 옆에 두고 장군 시리즈를 그렇게까지 깊게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거기다 키메라와 장군 시리즈들 중에는 사실 정상적인 존재가 별로 없었다. 영혼, 육체, 정신, 하나같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그렇다 보니 저 헤진 정신세계조차 일종의 특징처럼 보였다. 애초에 우리는 장군 시리즈에게 완벽함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은 만들어진 생명이니까.
만들어진 생명이 완벽할리 없지 않은가. 어딘가 한군데는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기왕 왔으니 정신세계에 한 번 들어가 볼까 했는데, 작품속보다 제한이 많은 데다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해서 안 되겠다. 대신 잘 봐 두기라도 하자.’
하지만 이렇게 보면 확실히 반은 다른 장군 시리즈와 비교해도 유독 자아가 불완전하다. 자아와 영혼을 따라 핵도 불완전하다. 그런데 그 불완전함이 특징으로 느껴질 정도로 잘 유지되고 있다.
‘핵에……있네.’
나는 반의 핵에 새겨진 측근의 표식을 살폈다. 키메라의 특성이나 마법사의 성향에 따라 살갗에 새기기도 하지만, 트라베리아의 마법사 대부분은 장군 시리즈에게 표식을 내릴 때 핵과 표식을 합친다.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표식과 표식이 합쳐지면 더 강력한 강제력이 발휘된다.
클라인 남매의 표식은 그들답게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반의 핵 속에 아주 감쪽같이 스며들어 있다. 그런 만큼 제거하는 것도 다른 표식보다는 성가실 것 같다.
꿈을 따라 반의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느릿느릿 머릿속을 지나다니는 문장은……읽고 있는 책의 문장이다. 생각이 느린 만큼 책을 읽는 속도도 느린가보다.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문장을 따라 책표지를 보았다가 심정이 복잡해졌다. , 전에 한국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내가 들려줬던 이야기의 원본 시리즈다.
나, 첸, 예리가 반을 관찰하는 사이 로카와 소영이는 주위를 관찰했다. 소영이는 소리에 집중했고, 로카는 서재의 책을 전부 외웠다. 잠시 후엔 나와 예리도 서재를 살폈다.
시간이 별로 없기에 어느 정도 살핀 후 우리는 바로 다음 목표를 향해 날았다. 최상헌과 데미안은 여기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다.
꿈 하나, 둘, 세 번째를 건너뛰려다 말고 나는 멈칫했다.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한 세 번째 꿈 조각은 힘을 내뿜는 악보와 많이 가까웠는데, 기척이 다른 꿈 조각과는 달랐다.
클라인 남매의 음악에서 떨어진 꿈 조각이니 클라인 남매의 마력을 띠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저 꿈만 시간이 다르다. 로카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시간? 무슨 뜻이야?』
『시간이 상당히 압축되어 있어요. 마법에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알고 있겠지만, 클라인 남매의 특기는 시간마법이잖아요.』
나는 혀를 찼다.
『저 꿈을 거치면 시간이 어긋날 거예요. 조금 돌아갈게요.』
돌아가도 데미안과 쟈넷이 최상헌보다 더 가깝다. 우리는 금방 데미안과 쟈넷이 있는 분수대에 도착했다.
이번에 우리가 안착한 장소는 분수대 안 보석이었다. 데미안이 나른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있고, 소형화한 쟈넷이 데미안의 무릎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다.
『귀여워!』
소영이가 호들갑을 떨며 내 어깨를 흔들었다.
『귀여워! 사진으로 볼 땐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진짜 귀엽다!』
확실히 꼬리 위에 턱을 올린 작은 여우 쟈넷은 무척 귀여웠다. 로카가 진지한 얼굴로 동의했다.
『정말, 귀엽네. 폭신한 털도 그렇고 몽실몽실한 꼬리도 그렇고 쫑긋 거리는 귀도 그렇고 전부 너무 귀여워.』
……그러고 보니 로카는 소영이랑 취향이 잘 맞는 편이었다. 귀여운 소품이나 동물을 좋아하고, 시간이 나면 자주 PE가 관리하는 동물 사육소나 우리 본부에 찾아와 동물과 라라를 보고 간다.
『확실히 쟈넷이 겉모습은 좀 귀여운 편입니다. 몇몇 상대를 제외하고는 경계를 별로 드러내지 않고요. 털도 부드럽고……. 하긴, 여러분은 이를 드러내 봤자 가소로울 뿐이겠죠.』
첸이 코웃음을 치는가 싶더니 평소처럼 미소 지었다. 음……하지만 저 감정은……자기 자식이 칭찬받아 기쁜 부모 같다. 첸은 웬만해선 솔직한 편인데 꼭 쟈넷에 관한 일에만 감정을 숨기고 아닌 척한다. 쌓인 세월과 관계가 저런 태도를 만든 것이겠지. 아닌 척하지만 쟈넷이 비교적 평화롭고 동료가 있는 한국에서 클라인 남매의 측근이 된 것에 내심 안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예리에겐 귀여운 겉모습보다 살벌한 마력과 영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긴……진화 내력이 그 모양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리가 안타까움으로 물든 눈빛을 고개를 움직여 애써 숨겼다.
‘표식은 반과 마찬가지로 핵에 새겨져 있고. 데미안은 기억을 봉인……했다고 했지. 와아. 바깥에선 내 눈에도 안 보이네.’
나는 쟈넷을 쓰다듬는 데미안을 보며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동물을 쓰다듬을 줄도 아는 놈이었구나. 전투에 미친 걸 제외하더라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 본 그는 무심한 편이라서 저런 스킨십은 잘 하지 않을 줄 알았다.
나는 데미안과 쟈넷의 주위를 쭉 훑다가 꿈 조각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음악에 휩쓸려 막 사라지려고 하는 조각이었다. 똑같이 만든 꿈 조각을 자리에 두고 집어 든 꿈 조각을 회생시켜 문이의 안에 보관했다.
그때 쟈넷이 눈을 떴다. 쟈넷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영롱한 검붉은 색이었다.
“끼웅.”
『헉! 목소리도 귀여워!』
『…표정이 안 좋군요. 왜 풀이 죽었을까.』
첸이 아닌 척 걱정스러운 눈으로 쟈넷을 응시했다. 데미안도 첸과 비슷한 것을 느꼈는지 쟈넷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재수 없는 꿈을 꿨어.”
쟈넷이 처음으로 말을 했다. 성별이 확실하지 않은, 변성기가 시작되기 전의 어린 목소리였다.
쟈넷은 데미안의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려 걸음을 옮겼다. 잠시 쟈넷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데미안이 벤치에서 일어나 쟈넷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의 모습이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나는 주위를 살피던 것을 멈추고 다시 최상헌의 기척을 찾았다.
최상헌의 그림자는 예전 한국에서 보았을 때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예전보다 인성이와 마력이 닮아 보인다. 같은 그림자를 다루는 마법이라 할지라도 혈족마법이 아닌 한 고유 마력이 유전될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 거기다 지금 인성이의 마법에는 본래는 인성이의 것이 아닌 게 잔뜩 섞여 있다.
‘최상헌의 그림자는 어둠. 어둠 중에서도 죽음의 기운을 많이 가지고 있어. 하지만 인성이나 성진이랑은 다르게 아주 온화한……자연스러운 죽음이야. 죽음의 기운과 그림자, 닮게 느껴질 만도 한가.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아주 다르지만.’
인성이의 그림자는 거칠며 차갑고 최상헌의 그림자는 온화하며 따뜻하다. 클라인 남매의 음악과 아주 닮았다. 물론 클라인 남매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변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최상헌의 마법 강화는 어쩌면 트라던트에 의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트라베리아는 키메라와 인간을 강화할 때 트라던트를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더 닮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트라던트의 기운도 제각각이니까 섞이고 섞이면 나중에는 티가 안 난단 말이지. 완전히 융화되었을 경우에만 그런 거지만. 커븐 로드도……금기를 통해 힘을 얻은 것치고는 무척 안정되어 있고 고유의 힘이 짙으니.’
금기란 즉 사람의 목숨을 사용해 강해지는 것. 지금도 트라베리아가 저지르고 있는 짓이다. 커븐 로드 중에 금기를 저지르지 않은 마법사는, 즉 몸소 살인으로 제 힘을 강화하지 않은 마법사는 시카밖에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봐라. 클라인 남매는 금기를 제 안에 녹여 이토록 완벽하게 평화를 만들고 있다.
『움직…….』
다음 목표를 확인하고 움직이려 했던 나는 흠칫했다. 최상헌을 향해 마법이 전송되었다. 마법을 손에 쥔 최상헌의 몸이 휙 이동되었다. ……클라인 남매의 곁으로.
나와 동시에 그 사실을 눈치챈 예리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앗.』
『왜 그래?』
『상헌 씨가 클라인 남매 곁으로 이동했어요.』
『헉!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나는 최상헌이 이동한 장소를 확인하며 눈을 굴렸다.
‘최상헌의 공방은 연습실과 조금 가까웠지. 연습실 옆에 악기 보관고가 있고…….’
거리와 현으로 이루어진 결계, 마법의 흐름을 살펴보던 나는 이내 시간을 확인했다. 디나가 말한 시간까지 세 시간 남았다.
‘어떻게 할까.’
시간도 별로 없고, 이번은 모험을 할 때가 아니다. 대현의 목숨이 클라인 남매에게 저당 잡혀 있다면 더 그렇다.
『리더 님.』
그때 첸이 내 앞에 주구를 들이밀었다. 금색 영혼석 두 개가 영롱하게 빛났다. 릴리와 래넌의 기분이 변했다.
그와 동시에 주위의 흐름이 바뀌었다. 현을 통해 내보내던 곡을 바꾼 것이다. 곡의 교체는 두 남매의 감정을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꿈 조각 몇 개가 음악에 휩쓸려 사라졌다.
‘으음, 꿈 조각을 따라 움직이는 것엔 이런 단점이 있다니까. 여긴 작품 안이라서 괜찮지만.’
꿈 조각, 꿈길은 수시로 바뀐다. 한국의 꿈길은 클라인 남매의 기분 위주로 바뀐다.
『길도 사라지고, 주구도 반응하고,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어때요, 은하 언니?』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눈치챈 건 아니야.』
『그래도 악기를 연주하는 것치고는 어쩐지 기분이 나쁜 모양입니다.』
『네. 뭔가를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네요. 슬럼프인가?』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계속 같은 마력을 보고 있기 때문인가. 이제 음악이 무수히 많은 문장으로 보인다. 귀가 아니라 눈으로 점점 클라인 남매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
『작전 변경. 좋은 기회예요. 클라인 남매의 연주를 감상하고 오죠. 조금만 더 흐름을 파악하면 다음에 왔을 때 지금보다 훨씬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클라인 남매의 듣는 능력은 나는 모르는 능력이다. 모르는 감각은 실감할 수 없다.
그래도 예측할 수는 있다. 그리고 예측하는데 필요한 것은 경험이다. 클라인 남매의 마법을 아주 많이 보고, 소리가 마력으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일일이 확인해 본다.
로카라면 무수히 많은 마법 패턴을 전부 외워 행동하겠지. 하지만 나한테 그런 방식은 맞지 않는다. 나한테 맞는 방법은 많이 경험하고, ‘음악’이라는 마력에 익숙해져, 그들의 감각을 내 방식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음악은 이야기. 감정은 색. 감각은 시각.
그렇게 하는 것으로 마법을 복사하고, 이해하고, 꿈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다만 시간이 어긋난 조각이 많아서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예정대로 2시간이 되기 전에 나갈 겁니다.』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두 번째 곡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악장이 바뀌었을 뿐 같은 곡인지도 모른다.
나는 불완전한 꿈 조각을 디딤대로 삼아 곧바로 건너뛰었다. 흩어지는 꿈 조각 사이로 황금색 줄기가 규칙을 따라 빠르게 흘러갔다.
하나의 곡이 빠르게 흐르고 또 분위기가 바뀌었다. 몇 개의 곡이 어긋난 시간과 함께 빠르게 쏘아지고는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최상헌과 클라인 남매의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예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축복의 서를 넘기는 것을 보며 소영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더 안 가?』
『본격적으로 시간을 다루고 있어. 딱히 시간을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하고 있는 건 아닌데, 빨아 당기고 있달까……. 이 이상 앞으로 가면 타임 오버야. 차라리 여기에서 관찰하는 게 나아.』
『으아, 이 거리에서 자세히 관찰할 수 있으려나. 윽, 역시 감정은 안 되네요.』
로카가 기억마법을 열며 물었다.
『길은 아직 못 내겠어?』
『꿈길을 만들어도 똑같아요.』
나는 내 몸을 중심으로 환각을 펼쳤다. 클라인 남매가 만든 시간을 시각화했다.
무수히 많은 파편이 현을 따라 주위에 조각을 맞추고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이지만, 음악으로 조율하고 있기에 다른 곳과 같은 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성진에게 맞먹을 정도로 대단한 시간 제어력이었다.
『꿈의 세계는 현실에 겹쳐진,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이 모여 이뤄진 길이에요. 그러니 현실의 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아요.』
『꿈속의 시간도 달라지는 거구나.』
『네. 이미 이곳의 시간도……. 이 장소가 그나마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에요.』
소영이가 축복의 서를 흘끗 보며 물었다.
『예리 너 공간마법은 어느 정도 파악해 내던데……시간 마법도 잘 알아?』
『아뇨. 시간마법은 공간마법보다 훨씬 감정이 안 돼요. 그래도 생명력이랑 축복의 서를 통해 어느 정도 볼 순 있는데……. 흠, 한국의 시간은 다른 곳보단 잘 보이네요. 이곳의 시간은 생명력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생명이란 사람의 ‘남은 시간’, 즉 ‘수명’이잖아요. 클라인 남매가 한국을 다루는 방식은 그런 맥락이라서…….』
『아, 짜증나.』
『맞아요. 진짜 재수 없어요! 누구 목숨을 맘대로 다루고 난리야!』
소영이와 예리가 이를 갈았다. 무수히 많은 시간이 현을 따라 바깥으로 흘러나갔다. 나는 바뀌고 또 바뀌는 곡을 가만히 관찰했다. 경쾌하고 빠른 곡들, 평소와는 다른 답답한 감정. 옆에서 래넌이 악보를 넘기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 뭔가 부족해! 약하고, 적고? 좀 더 고쳐야겠다.”
“끄응. 영감을 주는 소재가 줄어서 그런가. 뭐, 됐다. 이거 현 조금만 더 죄여 줘. 그게 더 쓰기 편해.”
“알겠습니다.”
“그럭저럭 많이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지금의 연맹을 상대하려면 부족하네. 새벽별무리의 변수가 너무 커.”
우리는 흠칫했다. 슬럼프는 맞는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저것들은 전부 우리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였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음악, 악보, 악기, 전부 클라인 남매의 무기다. 그들이 전투 때 사용하는 음악과 악기, 악보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미리미리 준비한 것이다. 릴리가 래넌을 다독였다.
“투정 부리지 말고 좋게 생각해. 어차피 우리한테는 그만 한 목숨이 필요했어.”
“그건 그렇지……. 그래도 우리는 덜 바쁜 편이지…….”
나는 대화를 마음 한편에 두며 잠시 주위를 훑어봤다. 직접적인 연주는 멈췄지만 현은 여전히 다른 음악을 연주하며 주위의 마력을 증폭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나가면 2시간보다 약간 부족하게 남았겠네요. 돌아가죠.』
그래도 멀리서나마 최상헌과 클라인 남매를 확인했다. 조금 더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욕심을 말하자면 최상헌의 마음도 엿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주위의 모든 이야기와 마력의 흐름을 눈으로 각인하며 여전히 흘러 다니는 시간을 피해 우리가 지나갈 꿈길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흐름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이제는 있는 변화도 클라인 남매의 귀에 닿기 전에 내가 만든 꿈길이 덮어씌울 것이다.
나와 문이는 이제 한국의 꿈길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약간의 망설임을 뒤에 두고 돌아섰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전 11시 30분, 약속 시간보다 약간 일찍 피에타가 보이는 골목에 자리 잡았다. 가게 ‘피에타’가 있는 거리는 사람이 많이 오가는 편이었다.
그때 생각지도 않게 릴리의 기척이 가까이에 나타났다. 소영이가 억울함을 토했다.
『악! 나올 거면 차라리 아까 나오지! 그럼 릴리의 꿈을 직접 조사할 수 있잖아!』
『아니, 아무리 나라도 한국에서 릴리의 정신세계를 넘진 못해.』
『하지만 일찍 나오지 그랬냐는 말에는 공감. 제 아무리 트라베리아 몰래 한국에 숨어 사는 실력자라고 해도 릴리의 코앞에서 문을 열까?』
『아, 어떡해요.』
『힘들겠지요.』
예리가 신음하고, 첸이 혀를 찼다. 잠깐 거리를 산책하는가 싶던 릴리는 기분 따라 길거리 연주회를 시작했다. 한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심지어 옆에는 데미안과 슈카를 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