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5
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지진이 멈췄다.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진동이 멈춘 걸 느끼고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정말로 멈춰 있었다. 방금 전까지 출렁이던 철의 움직임이 멈췄다. 주변에 철로 된 창, 벽 등이 아무렇게나 생겨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가만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대체……?”
그제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했다. 일단,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었던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줄줄이 이어진 철로 된 창, 기이하게 꺾어진 바닥과 벽, 그것이 눈앞에 있는 전부였다. 심지어 내가 있는 곳 주변은 마치 덮치기 직전의 파도처럼 철로 둘러싸여 있었다.
조금 더 늦게 멈췄다면 저 철에 덮쳐졌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오싹해졌다.
그 탓에 가까운 곳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더 둘러보기 위해 공동(空洞)에서 벗어났다. 철의 파도 너머로 철 기둥이 삐죽삐죽하게 솟은 삭막한 모습이 드러났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이윽고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땅도, 온통 금속성을 띠는 은색뿐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나는 부들거리는 주먹에 천천히 힘을 줬다. 사실 원래 있던 구조물이나 식물은 그대로 그 구조만 바뀌었을 뿐 남아 있었다. 다만 바닥에서 튀어나온 창 등이 삭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멍하니 손을 바라보았다. 선생님과 이어져 있었던 마력의 선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이 새겨 두지 않아도 마력의 색까지 보이게 되고 만 나에게는 선명히 보이던 것이었는데.
게다가 방금 전까지 이 손으로 쥐고 있던 그 따스한 온기도…….
“유미……?”
멍하니 중얼거리던 나는 이윽고 깨달았다. 이 살벌한 방에, 나는 지금 혼자였다.
그럴 수가……! 나는 초조한 얼굴로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역시 출구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철로 된 조형물과 식물들만이 어지러이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예쁘게만 보였던 식물원의 식물들마저 지금의 나에게는 신기함보다는 살벌, 두려움, 무서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아무도, 아무도 없어요……?”
내뱉은 목소리는 대답 없이 메아리치듯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창백한 표정으로 주먹 쥔 손을 가슴께로 올렸다. 정말로 혼자? 혼자인 건가?
이런 곳에서 혼자라니 장난이 아니다. 나는 두려움과 초조감이 가슴을 압박하는 것을 느끼며 좀 더 걸음을 빨리했다. 머릿속에 어지럽게 흩어진 생각을 정리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그냥 순식간에 일어났던 일이었던 것 같다. 홀린 것처럼 꽃 안에 있던 묘한 구슬을 향해 손을 뻗는데 주변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그랬지. 그래, 꽃 사이에 박혀 있던 그 구슬을 나는 분명 잡았었다.
당황해서 손안에 무언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나는 쥐고 있던 왼손을 펼쳐 보았다. 그러자 제법 강렬한 마력을 품고 있는 구슬이 내 손안에서 또르르 굴렀다.
역시 묘한 마력이었다. 이것 역시 식물의 일부여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한데 왠지 방금 전까지 보았던 식물들과는 마력의 느낌이 사뭇 달라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유심히 그 구슬을 살펴보던 나는 이내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 구슬은 그 꽃의 일부였다. 구슬이라곤 해도 꽃의 가운데에 있었던 걸 보면 아마도 꽃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꽃술만 혼자 내 손안에 덩그러니…….
‘……아니, 잠깐. 이거 그 꽃의 일부야? 나 여기 식물 허락 없이 망가트린 거고?’
말도 안 돼!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 아니, 진짜, 이건 무의식적인 일이라……. 으아아아아아…….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건 이 상황과는 하등 상관없는 거였다. 혼란에 머리를 쥐던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할 수 있는 건……혹시 마력의 폭주? 하지만 왜 갑자기 마력의 폭주가 일어난 거지?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다면 유리 식물원이 이렇게 인기 있을 리 없다.
그러다가 나는 떨리는 시선으로 다시 손에 쥔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이 보석과 관련이 있을까? 그도 그럴 게 묘한 마력을 품고 있고…….
‘실은 식물들의 배치에 이유가 있었는데 내가 이 구슬을 잡아뗀 덕분에 그 균형이 무너졌다든가…….’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무의식적이라고는 해도 나마저도 그랬는데, 나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한두 사람 정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랬다면 식물원은 진작에 폐쇄되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식물에 손을 뻗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상황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이 구슬을 손에 쥐었고, 바닥에서 온통 빛이 일었다. 마치 바닥에 이미 그려져 있는 선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번지던 빛의 형상이 기억났다. 그냥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구슬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어떡하지…….”
나는 초조하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남들보다 빨리 마법을 배웠다곤 해도 나는 이제 겨우 5살이었다. 겨우 5살인 것이다. 이런 데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마법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다. 투시도 최근에야 겨우 할 수 있게 된 거고, 텔레포트 같은 건 아직 절대 무리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손바닥만 한 환상을 떠오르게 하거나 문장으로 아주 짧은 설정을 만드는 것 정도였다.
애초에 마력 미달이다, 마력 미달.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계마법은 아직 가장 쉬운 몸을 감싸는 결계밖에 못 쓰고, 그것조차 팔만 겨우 다 감쌀 수 있는 수준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걸로 대체 무얼 한다고……진짜 미치겠네.
나는 자리에 선 채 안절부절못했다. 게다가 아까부터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이런 곳에 갇힌 것에서 오는 강박 관념인지도 모르겠는데, 왠지 아까부터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정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나는 일단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울퉁불퉁한 바닥을 걸어갔다. 철로 된 기둥을 지나고 철로 된 살아 있는 꽃을 넘었다. 또 갑자기 움직이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어 반드시 철로 된 창이나 벽 등을 붙잡은 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예상은 적중했다.
화악─.
“무슨……!”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보석, 거기에서 금속성을 띤 빛이 터지더니 그 마력이 주변으로 옮겨 갔다. 아까 내가 보았던 광경 그대로, 이 보석을 중심으로 마력이 선 모양을 이루며 주변으로 흐르듯이 퍼진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옆에 있던 철 기둥을 매달리다시피 꼭 잡았다. 그 순간 다시 지진이 시작되었다.
철이 출렁이며 파도를 그려 냈다. 그 파도가 격렬하게 주변을 덮치기 시작했다. 다시금 철 기둥이 솟아오르고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격렬한 파도를 기둥 하나에 의지한 채 버텼다. 달리는 체력과 힘을 마력으로 보강해 어떻게든 버텼다.
다시금 진동이 사라졌다. 진동이 멈춘 후, 나는 차오른 숨을 헉헉대며 풀썩 주저앉았다.
“힘들어…….”
당연했다. 난 어린애다. 5살짜리 어린애가 마력이 많아 봤자지! 막 마법을 만들어 낸 미숙하기 그지없는 초짜 마법사! 애초에 마력을 담는 그릇이 눈곱만할 테니까!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못 이기고 손에 들고 있던 구슬을 바닥으로 내던져 버렸다.
“이거였어……! 이것 때문에……!”
나는 구슬을 마력으로 강화한 발로 쾅쾅 밟았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왜 이게 원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모든 일은 이 보석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괴감도 일었다. 내가, 왜, 이걸 손에 쥐었을까! 손에 쥐지만 않았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을. 신경 쓰지도 않고 지나쳤다면, 최소한 손을 뻗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그럴까?’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이윽고 구슬을 쾅쾅 밟던 행위를 멈췄다. 내 온갖 분노를 가득 담은 발길질에도 보석은 깨지긴커녕 부스러기 하나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분노와 자괴감으로 차오른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정신 차려야 해.’
나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래. 잊고 있었지만 이럴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머릿속을 차갑게 가라앉히고 주변을 봐야 한다. 탈출하기 위해 온갖 주의를 기울여야 할 상황에 나를 잊어서 어쩌잔 말인가.
애초에 나는 이 구슬이 정확히 어떤 용도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마법의 매개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런 것을 아무런 대책 없이 깨트렸다간 또 어떻게 될 것 같나. 이번엔 그야말로 이 정도론 끝나지 않으리라. 나는 정신을 애써 차갑게 만들며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출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출구 같은 틈새는 여태까지 계속 둘러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출구가 보이지 않을 경우 이상한 공간에서 나갈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일단, 출구를 만든다. 어떤 식이라도 상관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벽을 부숴 뚫어 버리는 거다.
나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근데 이거 강철이잖아.”
무리였다. 내 마법으론 벽돌도 제대로 못 깨부순다. 절망감이 차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정신 차리자. 괜찮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분명 밖에서도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을 테니까. 어쩌면 이미 부모님께 연락이 갔을지도 모른다. 그럼 분명……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낙관적으로 흐르는 마음을 향해 다시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방금 같은 폭주가 한 번만 더 일어나도 위험하다.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 막막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을 애써 참았다. 누군가가 구해 줄 것이다. 그래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분명 괜찮을 거라고.’
울음을 막으며 그렇게 속으로 되뇐 나는 이곳을 탈출할 다음 방법을 모색했다.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을 차례대로 떠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그런 건……아직 텔레포트 같은 건 무리야. 환영은 기껏해야 누구나 환영이라 눈치챌 만한 반투명한 것밖엔 못 만들어. 결계는 절망적이고…….’
나는 생각 끝에 중얼거렸다.
“일단 출구라도 다시 찾아볼까.”
그러나 이 넓고 복잡한 방을 언제 다 둘러보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가방에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그리고 수첩에 글을 적어 마법을 발동시켰다.
『출구(바깥) 혹은 출구(바깥)와 가장 가까운 벽까지 안내해 주는 빛』
어때? 되나? 내 마력으로 할 수 있는 마법인가?
곧이어 문자가 일그러지며 동그랗게 모이더니 종이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작은 빛 덩이는 내 마력의 색인 은빛을 띤 남색이었다. 빛 덩이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마법이 성공했다는 확신을 느끼며 그 빛 덩이를 따라갔다. 그것은 이윽고 어딘가의 철벽 앞에서 멈추더니, 그 철벽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아.”
나는 또다시 약간의 절망감을 느꼈다. 마법은 성공했다. 그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안내된 곳은 구멍 하나 없는 철벽 앞……즉 현재 이 방에 뚫려 있는 출구는 없다는 소리다.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철벽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분명 마법은 성공했다. 즉, 이 벽은 아마 이 철의 방에서 가장 바깥과 가까운 벽일 것이다. 아마 다른 곳보다 두께가 얇은 장소란 거겠지.
나는 벽을 노려보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지금은 방 안이 마구 변형된 상태라서 한 번 흘끗 보는 것으론 이것이 제대로 밖과 연결된 벽인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마법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이 벽이 확실히 이 방의 경계선을 나누는 벽이 맞는지 확인해 보았다.
벽은 쭉 이어져 끄트머리에서 옆으로 꺾어졌다. 아, 그래, 맞았다. 이 벽은 확실히 방과 방 사이를 나누는 경계가 되는 벽이 맞았다. 방금의 폭주로 인해 중간에 솟아오른 벽이 아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말하자면 이 벽이 이 방의 유일한 ‘약점’ 같은 곳이란 거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시 펜을 수첩에 가져갔다. 문자마법은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유효한 수단이었다.
복도로 통하는 건지 어디로 통하는 건진 모르겠다. 마력도 방금 고작 마법 하나 쓴 것 때문에 확 줄어 버린 상태다. 하지만 가장 얇은 벽이다. 지금 내게는 여기 외에는 탈출할 가능성이 없었다.
분명 내 마력으로는 벽돌조차 제대로 못 깨부순다.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는 마법 중 가장 숙련도가 높은 문자마법을 이용해 내 모든 마력을 한 점으로 모은다면, 혹시.
‘어쩌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을 이어 갔다. 지금은 이 심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수첩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대신 주머니에서 마법 펜을 꺼내 들어 철로 된 커다란 벽에 온 마음을 다해 선을 긋기 시작했다.
분명 이 마법의 이름은 ‘문자마법’이지만 ‘쓴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냥 형상화하는 거라면 꼭 ‘글자’가 아니어도 된다. 그림이어도 상관없다.
나는 마법 펜의 굵기를 조종해 마커 정도의 굵기로 만들었다. 그것으로 내 팔이 뻗는 범위까지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림 실력이 별로 안 좋아 좀 울퉁불퉁하게 그려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 동그라미 안을 검게 칠했다. ‘구멍’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선이 찍찍 그어지며 새카만 원을 만들어 갔다. 어쩐지 그냥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인데도 숨이 가빠진 것 같았다. 나는 새까맣게 칠해진 검은 원을 향해 마법을 발동시켰다.
‘……뚫려라!!’
의지와 함께 마력이 소비되었다. 그러나 철로 된 벽은 기껏해야 1mm 정도 파여 들어갔을 뿐 큰 변화 없이 멀쩡했다. 나는 절망감을 느끼며 풀썩 주저앉았다. 절망감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떡하지. 이제 마력이 부족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다시 머리를 냉정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생각을 하고 또 해도 절망적인 상황밖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 장소는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다. 넓이는 학교 체육관 정도 될까? 강철로 구멍 하나 뚫리지 않은 상태로 꽉꽉 막혀 있다. 공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대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 전에 누가 날 구해 줄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아직 마법을 요만큼밖에 배우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고작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편한 자세를 취했다. 무언가를 하려면 일단 부족한 마력부터 빨리 보충해야 한다. 마력을 빨리 몸 안에 모으기 위해서 나는 명상을 하기로 했다.
“……?”
근데 이상했다. 주변의 마력을 느끼며 그 마력을 호흡에 따라 몸 안으로 끌어들이려는데, 마력의 반응이 이상했다. 딱딱하고 끈질겼다. 마치 딱딱하게 굳은 검은 고무 덩어리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불편한 감각이었다.
나는 퍼뜩 눈을 뜨고 시야를 개방하여 주변의 마력을 제대로 살펴보았다. 이제 보니 주위를 떠다니는 마력의 모습이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원래 마력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바람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무언가에 꽁꽁 묶이거나 실타래가 꼬인 것처럼 서로 엮여 있었다. 비유하자면 얼음이었다. 평소에는 물이었던 마력이 얼음 상태가 되어 꽁꽁 묶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마력을 끌어오려 해도 쇳덩이를 움직이는 것처럼 무척 힘겹게 끌려 들어왔다. 그것을 내 안에서 녹이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뭐야 이게?”
이대로는 마법을 다시 쓰기 전에 체력부터 다 소진할 판이었다. 나는 마력을 끌어당기던 행위를 멈추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 주변 마력은 다 동결된 거야?”
갇힌 공기와 마찬가지다. 마력도 움직이지 않는다. 여긴 마법사를 가둬 두기 위한 철 우리다.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양손을 천천히 입가에 가져갔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제기랄.’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내 작은 보폭으로는 벽까지 다가가는 데 다섯 걸음이나 필요했다. 떨리는 손을 철의 약간 팬 부분으로 가져갔다. 내 마법으로 인해 팬 곳이었다. 여전히 새까맣고 굵은 선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고작 이것이 내 최선이었다.
“으……!”
속이 들끓어 올랐다. 그야 그렇지! 이런 상황인데 누가 냉정히 있을 수 있겠어. 분명 밖에서 누가 나를 구하러 와 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전에 이 방이 다시 폭주하고 그 폭주에 휘말려 죽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탕!
나는 주먹으로 벽을 치며 벽에 쓰러지듯 기댔다. 그러자 철벽에서 약간 가벼운, 안이 조금 비어 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는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겨우 참아 낼 수 있었다. 그래……이 너머가 바로 출구다. 출구인 것이다.
이 벽이 이 방의 벽 중에서 제일 얇은 벽이다. 내가 탈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여기뿐이다. 이제 남은 마력은 극소량, 남은 마력과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으로 어떻게든 해야 한다.
문자마법은 이제 무리다. 철을 파괴하는 것은 철이 단단한 만큼 힘이 든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철을 부수는 게 아니라……그래, 녹여서 구멍을 뚫는 식의…….
‘하지만 난 불마법과는 상성이 별로 좋지 않아.’
대체 뭐가 있지?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는데, 불현듯 내 머릿속에 뭔가 어이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만약 금속을 녹이지 않고 움직이게 만들어서 치울 수 있다면?
‘의외네. 금속의 상성은 괜히 9나 되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처음에 환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시간이 걸렸고 고민했더라? 문자마법은 비교적 익숙한 거라서 그렇다 치자. 그 이후에 결계마법을 만들기 위해선, 또 얼마나 마력을 퍼부으며 노력했더라?
나는 그 모든 마법을 만들기 전에 충분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마법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해 두었다. 그런데 그렇게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만들었는데도 환각마법과 결계마법이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무던히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제 제법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환각마법과 문자마법은 나와 상성이 무척 잘 맞았다. 그래서 만들 수 있었던 거라고, 지금은 확신하고 있다.
철이 속하는 금속마법에 대한 내 상성은 9……제법 높다. 아니, 매우 높은 편이다. 10의 상성이 모두 합쳐져 생긴 환각마법, 문자마법, 결계마법만큼은 아닐지언정 금속마법과의 상성은 매우 좋다. 마법 하나를 만들어 내기에는 충분한 조건이다.
게다가 마법이 발현되는 방법이나 느낌도 매우 단순하다. 철을 움직인다. 그것뿐이다.
‘할 수 있을까?’
아니,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앉아만 있는 건…….’
그래, 언제 구조가 올지 어떻게 알고! 마력이 눈에 보이는 나조차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일그러질 정도로 강력한 마력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누가 언제 이 벽을 깨고 구하러 올 줄 알고…….
그러니까, ‘상상’하는 거야!
마법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기초마법도 배웠다.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상상력이나 믿음 같은 건, 처음 시작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터!
‘움직여! 열려! 내 마음이 꺾이기 전에……움직이란 말이야……!’
필사적인 상황이었다. 마력도 동결된 상황에 숨은 점점 가빠온다. 어쩌면 이 밀폐된 공간의 산소는 이미 거의 남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가능성 있는 상상.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처음엔 꿈쩍도 안 하던 철이 조금씩 움직였다. 옆으로 밀리며 출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부분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제발……!
“구, 멍이……!”
열렸다! 그 순간 나는 환희의 탄성을 질렀다.
나는 재빨리 그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구멍을 넘자, 대리석으로 된 바닥이 보였다. 나는 대리석 위에 발을 디뎠다. 고개를 들자 커다랗고 투명한 창이 건물의 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뚫고 나온 철벽이 보였다. 이제 보니 그 옆으로 뭔가 뭉툭한 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손잡이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이미 경계선 하나 없이 딱 붙어서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가 뚫은 곳이 이 철의 방의 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뻥 뚫린 벽에서 고개를 돌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가 저 철의 방에 갇혀 있던 것은 분명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눈앞에 보이는 이 평범한 모습이 너무나도 생소해 보였다. 정말로 너무나도 감격스럽게 느껴졌다.
대리석으로 된 차가운 복도를 지나, 나는 기억하는 대로 이 건물의 출입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중간에 진열되어 있는 마법 식물들을 온화하게 웃으며 바라보기도 했다.
이윽고 복도를 꺾어 로비로 나왔을 때, 나는 감격스러운 기분에 웃으며 뛰다시피 하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문 앞쪽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앞에 모여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경비원 같은 사람들이 바리케이드의 양옆을 지키고 있었다.
“……?”
순간 무슨 일인가 싶었다. 걸음이 점점 느려지다가, 멈췄다. 뭔가 싶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은하야!”
누군가가 소리쳤다. 내 이름이었다. 나는 그 방향을 바라보다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세상에, 엄마였다!
“은하야!”
“정말, 은하다!”
선생님과 유미도 그쪽에 서 있었다. 엄마가 곧바로 바리케이드를 넘어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내가 주춤하는 사이 엄마는 나를 들어 올려 끌어안았다.
“세상에!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엄마는 몇 번이고 나를 향해 ‘무사했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얼떨떨해하다가 이내 울상을 지으며 엄마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응……!”
그런 거였다.
엄마는 내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와 준 것이다.
그게 너무 기뻐서, 나는 엄마를 끌어안은 채 울음을 삼켰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혼자서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마법을 써서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혼자 길을 잃어 헤맸던 것뿐이었노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당연했다. 그 누구도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 밀폐된 방 안에서 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 한 사람, 우리 엄마를 빼고는.
“…….”
나는 유치원 버스를 타고 돌아간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게이트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약간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나를 앞에 앉히고서 물었다. 정말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철의 방에서 있었던 일도, 그때 썼던 마법도, 내가 마법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다 털어놓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말하게 되었을 진실이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엄마는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철을……‘조종’……?”
“말하자면, 그런 느낌…….”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말을 흐렸다.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문자마법……? 세상에, 너 언제부터!”
“서브마법으로……쓸 생각으로…….”
“어쩐지 다섯 살치고 마력량이 많더라니……벌써부터 마법을 만들어……? 왜 말을 안 했어?!”
“나 눈에 띄는 건 질색이고……그리고 엄마가 너무 걱정해서…….”
“세상에, 은하야! 너 정말─!”
엄마가 이마를 짚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소심하게 중얼거리다가 몸을 움츠렸다. 올 게 왔다는 느낌이다. 이럴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엄마는 다 좋은데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그런 건 엄마한테 당연히 말해야지! 그 외에, 문자마법이 서브라고 했으니까 혹시 메인마법도……?”
“메인이 좀 더 덜 익숙하지만……응. ‘환각’마법인데, 손바닥만 한 환상 정돈 이제 만들 수 있어…….”
“세상에, 그런……!”
엄마는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팔로 몸을 지탱하며 무릎부터 털썩 주저앉았다.
“너……정말…….”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이내 울먹임으로 변했다. 아아……나는 표정을 흐렸다. 이럴 줄 알아서, 이렇게 걱정할 걸 알아서……말하지 못했던 거였는데.
엄마는 몇 번이고 숨을 몰아쉬더니 겨우 진정한 표정으로, 하지만 고개를 숙인 채로 내게 물었다.
“……그 외엔 있니? 문자마법, 환각마법, 금속조형마법. 둘 다 네 상성엔 딱 맞는 마법인지도 모르겠다. 그 외엔?”
“결계마법을……그렇다기보단 ‘공간’을 이용하는 마법을 만들 생각이야.”
“그건……엄청 어려울 텐데.”
엄마는 입가에 손을 대며 고민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진지한 눈동자로 내게 말했다.
“네 상성에는 분명히 잘 맞는 마법인지도 몰라. 공간이란 건 어둠 상성이 높아야 쓸 수 있는 마법이니까. 물론 특수속성마법인 만큼 어렵지만……. 하지만 아직 쓰진 못하는 거지?”
나는 그 말에 다시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게……몸을 감싸는 결계라면……조금은.”
“……뭐?”
“팔 정도는……감쌀 수 있어.”
“세상에…….”
엄마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 갔다. 나는 죄인의 기분이 되어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떡하니……선아한테서도 들은 적 없어, 이런 재능…….”
엄마는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천장을 바라보더니 이내 입술을 꾹 깨물곤 내 어깨를 붙잡았다.
“알았지? 은하야. 이 사실은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정말,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 외엔……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 선아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알았지?”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엄마……당분간은, 아빠는 괜찮지만, 선아 아줌마한테는 말 안 하면 안 될까……?”
“……부담스럽니?”
“응…….”
“그래, 그렇게 할게. 하지만…….”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를 껴안은 엄마의 몸이 연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걱정이다, 정말 걱정…….”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
콰당!
남자들의 신형이 연달아 쓰러졌다. 그들은 가는 식물 줄기 같은 것에 몸을 꽁꽁 묶인 기이한 상태가 되었다.
“큭……! 너흰 대체……!”
“그건 알 거 없고!”
그들을 쓰러트린 것은 두 명의 남자와 여자였다. 여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범인들’을 향해 일갈하며 마법을 썼다.
“풍령(風鈴)! 수정(水晶)!”
여자의 부름과 동시에 허공에서 은색 머리칼과 푸른 머리칼을 가진 작고 요정 같은 소년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풍령! 폭주한 방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 전부 감지해! 수정! 너는 그 모습을 전부 비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