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50
“문자마법을 목소리로 사용한다고?”
“네.”
나는 여태까지 문자를 대개 손으로만 썼다. 하지만 그건 전투에 활용하기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물론 빛속성 마력을 사용하면 문자를 좀 더 빠르게 쓸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빠르게 문자를 그려 낼 수 있는 대처법 하나둘 정도는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목소리’였다. 내 문자마법은 언령과 형태가 비슷하다. 그리고 언령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목소리다. 그러니까 괜찮겠다 싶었다.
“나쁘지 않구나……. 하지만 연습이 많이 필요할 거다.”
“네!”
나는 O.K. 사인을 받은 후부터 목소리로 문자마법을 쓰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
그동안 가장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인 것은 내 메인마법인 환각마법이었다. 이제 뇌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반 정도 되었다. 게다가 이제 친구들만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타인의 꿈속에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꿈의 길목 같은 곳에도 갈 수 있게 되었는데……이건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의 꿈과 기억이 모이는 길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길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풍경이 그려진다. 수많은 집과 문이 있다. 그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꿈이며 무의식이다. 문은 걸쇠가 걸려 있는 곳도 있고, 걸리지 않은 곳도 있다. 문을 두드리면 들여보내 주는 곳도 있고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곳도 있다. 매우 신기한 장소였다.
다만 그곳은 매우 복잡하고 어지러운 장소라서, 산들바람 하나에도 정신을 차리면 이상한 곳에 와 있곤 하니, 나는 그 길목에 다니게 된 후부터 쉽게 길을 잃었다. 길은 찾지 못할지언정 간단히 내 꿈속 세계로 돌아올 수 있으니 큰 위험은 없다.
또한 정신 계열 환각마법도 성공했다. 친구들의 허락을 얻어 직접 친구들에게 걸어 보며 실험한 결과 이룩한 성장이다. 다만 정신 계열 환각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사용하려면 마력이 꽤 많이 필요하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원하는 광경을 보여 주거나 친구들의 정신세계에 직접 들어가는 정도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크게 성장했다. 인하는 빛을 빛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 마법을 숨길 수도 있게 되었다. 현호도 서브마법 고찰에서 진전을 보였다.
“사실 난 하고 싶은 게 엄청 많거든.”
“그래?”
“응. 나는 마법을 쓸 때 물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잖아. 그래서 장난감마법도 괜찮겠다 싶었어. 어떤 거냐면, 장난감을 소환해서……조종하는 거야. 하지만 난 걔들이 말도 해 줬으면 좋겠거든? 근데 그런 건 장난감마법만으론 부족한 것 같아. 그리고 물을 바람으로 만들어 날리고 싶기도 하고, 팍 터트리고 싶기도 하고……어쨌거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 근데 그렇게 말하니까 선생님이 언령마법은 어떻겠냐고 물었어.”
“언령마법?”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언령마법, 현호와 언령마법이라.
“응.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마법을 많이 만들거나 많이 배울 수밖에 없는데, 마법을 너무 많이 만드는 건, 내 나이 때는 그렇게 좋은 게 아니래. 많이 만들면 그 마법은 대부분 보조마법이 될 테니까. 근데 내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마법은 서브마법이잖아. 응, 그래서, 이것저것 할 수 있고 조종하고 그런 건 언령마법도 가능하다더라고. 그때 나 은하를 떠올렸는데, 그럼 괜찮겠다고 생각했어. 또 그것 땜에 물어볼 것도 있는데!”
“뭔데?”
“문자마법으로 바람을 만들 수 있어?”
“그야 만들 수 있지.”
“터트리는 건?”
“할 수 있지.”
“인형은?”
“음……아까 말한 인형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움직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응.”
“인형은……언령마법만으로는 무리지. 적어도 지금의 나로서는……. 그렇게 한다면 나는 아마 환각으로 인형을 만들고, 거기에 마력석을 핵으로 꽂고, 그리고 문자마법으로 성격을 설정하지 않을까.”
“으음……그런가…….”
현호가 별로 와닿지 않는 듯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현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서브마법이 간단히 될 리가 없지. 좀 더 고민해 봐.”
“응……그렇지.”
현호가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건 확실해 보였다. 한수는 생각해 둔 서브마법을 만드는 것에 한창 공을 들이고 있었고, 민희는 마법을 하나 만들었다. 딱히 서브마법으로 정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민희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든 마법이었다.
그건 바로……‘지각마법’이었다.
민희가 만든 지각마법은 내 감지능력을 마법으로 만든 것 같은 마법이다. 사격마법을 메인으로 선택한 민희는 전투 시에 주변 정보를 확실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지각마법이라고 한다. 주변 지형을 인식하고, 주변 정보가 그대로 머리에 흘러 들어오는 마법이다. 이 시점에서 평범한 머리를 가진 사람은 그 정보에 머리가 엉킬 테지만 민희는 그러한 문제점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전부 민희가 가진 기억력 덕분이다.
하지만 민희는 마법을 하나 만들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사격마법……좋은데, 괜찮은데……. 나는 무기를 좋아하니까……그래서 만든 마법인데……. 마법 탄환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근데 왜 쟤들을 보면 그게 좀 부족해 보이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릴 때가 가끔 있었다.
누구에게나 성장하는 순간이 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후 그 벽을 부수고 새로운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이. 고민하고 상처 입고 생각하며 부딪쳐 성장한다. 성장하는 순간은 사람에게 여러 번 찾아온다. 말하자면 이것이 우리가 처음으로 벽을 깨부수는 순간이었다. 마법사로서 진정한 첫 번째 성장의 순간이었다.
스승이 생긴 것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잘된 일이었다. 내 안에서 민아 선생님의 호칭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나는 민아 선생님을 속으로 스승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호칭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녀는 진정한 의미로 나의 첫 스승이었다.
스승과 선생은 내가 생각하기엔 꽤, 달랐다. 아마 만화랑 소설을 많이 봐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스승’이라니, 참 로망이 아니던가.
아이들이 자신의 서브마법을 개발할 때 나는 서브마법을 진화시켰다. 결계나 환각은 계속 진화하는 도중이기 때문에 그 진화에 끝이 없지만, 문자는 ‘문자를 쓴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보다 빨리 한계를 하나 발견한 것이다. 아직 나는 손보다는 말이 빠르다. 손과 말을 함께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지.
고유마법을 진화시키는 것은 생각과 상상, 무엇보다 노력과 연습밖에 없었다. 나는 문자마법을 쓸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입을 열어 소리를 외쳤다. 단어는 쓰고 문장은 외치면 좀 더 사용하기 편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제일 간단한 것부터 시작했다. 펼칠 마법의 형상을 떠올리고 말을 외쳤다.
“어둠!”
“빛!”
“떠올라라!”
“움직여라!”
나는 글로 표현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에는 서툰 편이다. 그래도 ‘말’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말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주박의 사슬, 언령, 또한 사람과 사람의 감정에 부딪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입으로 말해 처음으로 마법을 발동할 수 있을 때까지 한 사흘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상상을 담아 소리친 말이 그대로 문자로 새겨지며 마법이 발동되었다. 그때의 환희는 정말이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문자마법을 목소리로 사용하는 것에 한 번 성공했다고? 그럼 이제 금방 익숙해지겠군. 어느 것이든 처음이 힘드니까. 말로 하는 것과 쓰는 것은 뭔가 다른 것 같더냐?”
“음……말로 하는 건 뭐랄까, 좀 더 강한 ‘의지’를 느껴요.”
그 말에 스승님은 얼핏 웃었다.
“말과 글은 비슷하면서도 다르지. 그 차이겠지.”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우리가 마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반 아이들도 자신의 마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메인마법을 만드는 것’이 그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해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저 아이들이 메인마법을 만들게 되는 것은 초등학교 5, 6학년쯤일까. 하나 만들고 나면 다음은 훨씬 쉽겠지.
우리는 한발 빨리 나아가는 대신 개척되지 않은 빡빡한 길로 가고 있는 셈이었다. 단지, 그것이 지름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분이 다를 뿐이다.
마법 실습수업은 속성을 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제 속성마법을 다루기 위한 기초 훈련에 돌입했고, 이론에서는 고유마법에 대한 고찰을 주로 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와 같은 학년 아이들 전부가 고유마법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알았지? 보조마법을 만드는 건 괜찮아. 하지만 보통 맨 처음 만드는 마법이 메인으로 정착하기 마련이야. 가장 강렬한 마음으로 만드니까. 혹은 가장 만들고 싶은 마법을 만드니까. 마법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만들어야 해. 마법을 만들려면 적어도, 첫째, 마법의 이름, 둘째, 마법의 사용 방법 정도는 생각해 두고 만들어야지. 특히 마법의 사용 방법은 공책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 돼. 애초에 마력이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만들 수 없을 테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아이들은 이미 마법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내가 맨 처음 마법을 만들었던 것은 5살 때로, 그 시절 나는 저 아이들보다 훨씬 적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점심시간, 평소처럼 도서실 구석에 있는 비밀의 방에 모인 우리는 잔뜩 산 간식을 내려놓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 어렸을 땐 딱 ‘이거다!’ 해서 마법을 만들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고민하지는 않았어.”
“응. 나도 그랬어. 난 그냥 물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걸 가지고 놀면 좋겠다 싶어서 생각하다 보니까 만들어졌어.”
“난 식물을 좋아하니까 나만의 식물을 키우면 좋겠다……싶어서 만들었던가?”
나는 조용히 웃었다. 이 아이들답다. 특히 한수는, 아닌 것처럼 보여도 참 평화로운 성격이다. 인하가 그 말에 훗 웃었다. 한수가 단번에 인상을 썼다.
“뭐야! 왜 웃어?”
“아니, 그냥.”
두 사람이 습관처럼 투닥거렸다. 아니, 한수야, 인하가 별로 나쁜 의미로 웃은 건 아니야. 그러니까 그만. 나는 손만으로 만류했다. 현호가 인하에게 물었다.
“인하는? 마법 어떻게 만들었어?”
“글쎄……일단 상성이 제일 좋았으니까. 그리고……은하가 나랑 빛이랑 어울린다고 말해 줬거든.”
인하가 약간 쑥스러운지 볼을 붉혔다. 세상에,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대체 몇 년 전 일이었지? 설마 그게 마법을 만든 계기였을 줄이야. 그러자 한수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코웃음 쳤다.
“네가 그럼 그렇지.”
“뭐. 불만이야?”
“아니~? 너무 뻔해서.”
“흥.”
“네, 네.”
나는 두 사람의 사이에 또 파고들었다. 하여간 귀여운 것들 같으니라고.
“그럼 은하는? 은하는 어쩌다가 마법을 만들었어?”
현호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였다. 사실 나는 내가 마법을 만들었을 때의 심정을 제법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검지를 들었다.
“나는, 만화랑 소설을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해.”
“이야기?”
“응. 이야기. 만화랑 소설을 읽기보다는 만들고 싶다 파지. 그림 실력은 별로지만.”
나는 실없이 웃었다. 나는 손으로 직접 하는 창작은 뭐든지 허술한 부분이 있었다.
“만화나 소설, 애니메이션을 보면, 나는 꼭 생각해. 나도, 이런 걸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나는 전생에 소설가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나의 책을 사랑해 준다, 그것이 내 꿈이었다. 나는 그냥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봐 줬으면 했다. 그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그런 마법을 쓰고 싶었어. 그러다가 생각한 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마법이야. 환각은, 애니메이션처럼 쓸 수 있잖아. 문자는, 나 소설 좋아하거든. 글로 이야기를 만드는 거지. 결계는……결계는 그 이야기를 보여 줄 영역, 그러니까 무대를 정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기도 한데, 어, 뭐랄까……결계마법은 그냥 갖고 싶었어. 그럼 안 되나?”
“안 되긴. 그게 당연한 거 아냐?”
민희가 이상하다며 웃었다. 나는 약간 가라앉은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냥 평범하게 갖고 싶다고 생각해서 만든 마법은 가장 서툴고 메인에도 먼 결계마법인 것 같다. 나는 마법에도 이유를 붙여 갖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쩜, 아이들과는 이렇게 다른지. 나는 흐리게 미소 지었다.
우리가 고민하고 생각하며 부딪치는 사이 봄이 훌쩍 지나갔다. 머지않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 생일이 찾아왔다. 인하와 함께 귀를 뚫자고 약속했던 내 생일,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의 약속은 성취되지 못했다.
“응? 왜애~?”
“얘가 정말. 생전 떼 한번 안 쓰는 애가 갑자기 왜 이래. 심지어 인하까지 설득해 가지고는. 어쨌거나 안 돼. 귀를 뚫는 건 너희들한텐 너무 일러.”
“어디가 일러! 그냥 귀 뚫는 건데.”
“너한텐 이르다니까! 넌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반에도 우리 외에도 귀 뚫은 사람 있다고!”
“하지만 몇 명 없지?”
“아, 엄마~.”
“안 된다고 했지! 적어도 중학생이 될 때까진 귀 못 뚫을 줄 알아.”
“3년이나 더 기다리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결국 우리는 올해에 귀를 뚫지 못했다. 대신, 내 조름에 넘어간 엄마가 내년에 귀를 뚫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하고도 한숨을 내쉬더라. 어쨌거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귀를 뚫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기 때문에 나와 인하는 실망하면서도 기뻐했다.
봄이 지나고, 고민을 하고 수업을 받는 동안 여러 행사가 지나고, 인하의 생일마저 지나자, 학기 고사 시기가 다가왔다. 3학년 1학기 학기 고사의 실기시험은 세 개였다.
첫째, E랭크 스펠마법을 1개 이상 사용할 것. 혹은 F랭크의 스펠마법을 10개 사용할 것.
둘째, 기초 진마법을 1개 사용할 것. 진마법에는 종류가 있는데 진을 직접 그려서 마법을 쓰는 것과 마법을 사용해 진을 펼치는 것, 이 두 가지였다. 첫째 방법은 기억력이나 학문적 사고 능력 등 머리에 의존해야 하지만 둘째 방법은 순수하게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쳐야 할 시험은 후자였다.
마지막으로, 마력만으로 형상화에 성공할 것. 이 학교 학생들은 2학년 정도만 되어도 마력만으로도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마력을 단지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의 힘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세 번째 과제였다.
“이번 시험, 어떻게 할 거야?”
이 아이들도 3학년쯤 되니까 철이 들었다. 그렇다기보다 당연하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필기 시험의 경우, 민희는 가끔 실수하는 게 문제지만 머리가 매우 좋으니까 문제없다. 수업하는 도중에 수업 내용을 다 외워 버릴 정도인걸. 그나마 민희가 어려워하는 것이 국어였다. 민희는 책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감성도 옅은 편이다. 그것도 다 외워서 만점을 받고 있지만.
한수나 인하도 걱정 없다. 두 사람 역시 나보다 머리가 훨씬 좋다. 민희만큼은 아니지만 들은 수업 내용을 대부분 기억한다. 그리고 교과서만 한 번 다시 읽으면 시험 준비 끝. 에라이 이 사기캐들아.
그런데 조금 특이한 게, 우리 중에 국어에 강한 사람이, 예전에 소설가였던 나는 당연한 거지만, 또 한 명, 한수가 그랬다. 한수는 사실 우리 중에서 나 다음으로 책을 좋아했고, 감수성도 풍부했다. 슬픈 영화를 볼 때 민희나 인하가 담담하게 보는 편이라면(얘들은 엄청 비극적인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며 ‘왜 저래?’라고 물으며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이다.) 나와 한수와 현호는 마구 우는 타입이었다. 나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현호는 소리 내어 울고, 한수는 아닌 척 운다.
어쨌거나 필기 시험은 원래 성인이었던 나는 물론이고, 인하도 한수도 민희도 문제없지만, 딱 한 명, 현호는 조금 위험했다. 현호는 우리 중에서 나와 시하를 제외하고는 가장 보통이다. 마법 재능을 빼면 성격도 보통, 머리도 보통이다. 그래 봤자 얘도 사기캐지만.
게다가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걸 좋아한다. 우리를 따라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그때마다 고생한다. 가르쳐 달라고 친구들의 도움을 구하려 해 봐도, 민희와 인하는 너무 머리가 좋아 그냥 풀리는 거라서 설명을 못 한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 같으니…….
각설하고, 그 탓에 시험 기간마다 징징대는 현호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은 나와 한수의 역할이다. 그나마 나와 한수가 스스로 풀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가능했다. 사실 내 머리도 평범하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니 충분히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암기 과목 제외. 어째 초등학교 공부는 암기 이외 과목이 더 쉽더란 말이지. 그게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역전되지만.
“시험이라니, 무슨 시험? 당연히 공부해야지.”
나는 의아한 얼굴로 민희를 돌아보았다. 내 대답에 민희는 그게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스펠마법 시험 말이야. F랭크 마법 10개를 쓰든가 E랭크 마법 1개를 쓰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잖아? 어느 걸로 할 건데?”
그래도 민희에게 마법 실력을 숨기려는 생각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자 현호가 단숨에 말했다.
“F랭크 마법 10개~? 귀찮아. E랭크 마법 하나 쓰는 게 편하지.”
“역시 그렇지?”
다른 모두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도 인하도 귀찮다는 의견이 높았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F랭크 마법 10개라……고르는 마법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지도 모르고, 실력을 숨기고 싶긴 하지만 역시 E랭크 마법 하나를 쓰고 끝내는 게 간단하지?”
“그렇지.”
“그리고 이제 우리 말고도 주변에 E랭크 마법을 쓸 수 있는 아이들도 몇 명 보이고…….”
E랭크 마법은 10살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사용하기엔 매우 이르다. 그러나 재능 많은 학생이 모인 이 학교에는 이미 E랭크 마법을 쓰는 게 가능한 또래들이 있더라. 대놓고 보여 준 건 한 반에 한두 명 정도지만 충분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안심하고 E랭크 마법을 사용할 이유가 된다.
“그러고 보니 시하는? 시하가 안 보이네?”
현호가 문득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의아함을 느꼈다. 모처럼 다 같이 시험공부를 하기로 한 건데. 뭐……시험공부 따윈 전혀 필요 없어 보이는 사람이 약 두세 사람 정도 있어 보이지만…….
“걔? 오늘 친구랑 약속 있대. 시험공부는 내일부터 한다는데?”
“그렇구나……좋아, 그럼, 공부하자!”
우리들 중에서 가장 공부를 못하는 현호가 모처럼 의욕 있게 교과서를 펼쳐 들었다. 나도 가장 약한 과목부터 펼쳐 들었다. 국어는 제일 잘하는 과목이고, 과학도 어느 정도 하는 편이다. 또 중고등학교 수학이라면 몰라도 초등학교 수학은 하루 종일 공부해야 할 정도로 어렵지 않다.
소거법으로 나는 사회 교과서를 꺼내 들었다. 여기의 사회는 내가 알던 사회랑 좀 많이 달랐다. 특히 근대사가 달랐다. 비슷해 보여도 역시 이 세계는 전생과 다른 마법 세계다.
우리는 한동안 공부만 했다. 나와 한수가 번갈아 가며 현호에게 모르는 부분을 일러 줬다. 나는 공부를 할 때 보통 교과서를 한 번 정독한 후 나머지는 문제를 풀며 외운다. 문제를 풀면 풀수록 잘 외워진다. 특히 암기 과목은 그렇게 외운다. 틀린 문제는 잘 잊어버리지 않으니까.
민희는 교과서를 술술 훑더니 문제집 역시 술술 풀었다. 얇고 길쭉한 종합 문제집이 순식간에 바닥났다. 한수나 인하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서 평범한 머리를 가진 건 정말로 나와 현호뿐이구나. 나는 약간 절망했다. 현호는 졸음이 오는지 흐린 눈으로 눈을 깜빡였다.
“으……지겨워……공부하기 싫어…….”
“그래, 그래.”
나는 징징거리는 현호의 등을 한숨과 함께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민희가 잠깐 휴식하자고 이야기를 꺼내 왔다.
“나도 책상에 앉아 있는 거 지겨워~! 우리 좀 쉬자, 응?”
“그럴까?”
“나도 좀 쉬고 싶어.”
우리는 가볍게 동의했다. 애초에 민희는 벌써 공부를 다 끝내고 몰래 간식을 뜯어 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하여 잠시 TV를 보면서 머리를 식히고 있던 우리들은 어쩌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맞다! 우리 혹시 대련 안 해 볼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민희였다. 그러자 친구들이 좋다구나 하고 동의했다.
“재밌겠다! 나 진짜 사람이랑은 대련해 본 적 없어!”
“나도!”
“하긴.”
“선생님도 별로 ‘대련하지 마라’는 말은 안 했으니까…….”
나는 약간 고민하긴 했지만 곧 동의했다. 다행히 민희의 집에는 가상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럼 가상 훈련 시스템을 틀고 하자. 그렇게 하면 상처 입어도 사라지니까.”
“좋아. 그러자.”
이야기가 착착 진행되었다. 우리는 다 같이 가상 시스템이 있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실 나는 실제 대련은 별로 내키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관심이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전투에 딱히 소질이 없다. 그에 비해 이 아이들은 매우 소질이 있다. 가끔 스승님 집에 찾아오는 준휘 선생님과 민 선생님이 틀림없다며 몇 번이고 즐거운 얼굴로 감탄했으니까.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이 대련하는 모습을 실제로 한번 보고 싶었다. 재능의 차이는 그렇다 치고, 나와 친구들은 비슷한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다. 전투를 배운 시기도 서로 비슷하다. 아직 나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앞서 있을 친구들의 대련을 경험해 보는 것으로 뭔가 성장하는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요령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누구부터 할래?”
대련 순서는 사다리 타기로 정했다. 첫 타자는 인하와 한수였다. 인하랑 한수라……나는 시작하기 전부터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약간 식은땀을 흘렸다. 너희들……너무 진지하게 하진 마라?
인하와 한수를 중심으로 가상 시스템이 펼쳐졌다. 우리는 유리 벽 너머에서 시작종을 울렸다.
“3! 2! 1! 시작!”
민희가 소리치자마자 인하가 곧바로 공격을 감행했다. 암만 생각해도 인하는 전투형 마법사였다. 그것도 전형적인 공격형 마법사였다.
“우와! 시작하자마자!”
“비호의 나무!”
그러나 그 빛은 한수의 앞에 자라난 나무 덩굴에 의해 삼켜졌다. 나무가 빛을 흡수하면서 더 크게 자라났다. 하긴……빛은 식물의 주 양분이다. 성질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지만. 자라나 한수의 앞을 뒤덮었던 나뭇가지 몇 개가 채찍처럼 휘며 인하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인하는 빛을 이용하여 빠른 스피드로 그 자리에서 이동했다. 나무의 덩굴을 피하고, 채 피하지 못한 것은 빛의 열기로 태워 버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무의 형상이 바뀌었다. 이파리가 검게 물들며 주변에 검은 빛을 뿌렸다. 인하의 표정이 굳었다. 인하가 주변에 흩뿌렸던 빛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내 눈에는 그 이유가 보였다. 어둠이 빛의 영역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는 그만 감탄했다. 한수는 원래 빛속성의 마법사다. 빛속성 마법사가 어둠속성으로 영역을 장악하다니……. 하긴, 빛으로는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빛이라면 그 속성마법을 가진 인하가 훨씬 유리하니까.
한수가 나무줄기를 하나 붙잡더니 잡아 뺐다. 잡아 뺀 나무줄기가 나무칼로 변했다. 나무칼이라서 그런지 날이 무뎌 보였다. 한수가 검에 마력을 둘러 휘둘렀다.
“핫!”
나는 두 사람의 대련을 홀릴 것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게 고작 10살짜리 아이들이 하는 대련이라니…….
한편, 인하는 한수에 의해 빛속성 마력을 어느 정도 차감당했다. 그러나 몸에는 아무런 구속도 없어 자유롭다. 인하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검날을 향해 똑바로 손을 뻗었다. 눈부신 섬광과 함께 번개가 뻗어져 나왔다.
파지지지지직!
“윽……!”
한수가 칼 앞에 마력을 덧씌우며 번개 공격을 막았다. 그때 나무 주변을 맴돌던 마력 속성이 또 한 번 변화를 보였다. 한수가 가장 상성이 높은 속성은 식물, 빛, 불이다. 한수의 검 주위로 불꽃이 휘몰아쳤다. 인하의 손에서 뻗어져 나간 번개가 움직이더니 검 같은 모습을 갖췄다. 인하는 번개 검에 빛속성 마력을 덧씌웠다. 두 사람의 힘이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쾅!
정면에서 충돌한 두 사람은 그 직후 서로에게서 반발하듯 떨어져 나가 추락했다. 윽, 아프잖아! 한수가 소리쳤다. 나는 당황하며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둘 다 괜찮아?!”
“엄청 화려하네…….”
“너희들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냐?”
내 걱정과 민희의 질타를 들으며 인하가 묵묵히 몸을 털고 일어섰다. 한수도 인상을 쓰며 일어섰다. 두 사람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탓이다. 마법은 마법사의 마음대로다. 상처를 입힐 생각으로 마법을 사용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그럴 마음이 없다면 마법적 충격만 가해진다. 그게 마법사의 ‘전투’다.
“괜찮아.”
“그을렸는데, 정말로 괜찮아?”
“응. 문제없어.”
두 사람은 그토록 격렬하게 싸운 것치고는 서로를 향한 아무런 적의도 분노도 없이 대련을 마치고 유리 벽 안에서 나왔다. 다만 호승심이 깃든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선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음……그다음은 나랑 은하네?”
“응. 잘 부탁해.”
“한수 너 이다음에 나랑 싸울 수 있겠어?”
“이 정도는 문제없거든? 그리고 가상 시스템 안에서 했잖아. 멀쩡하다고.”
“아, 맞다.”
한수와 현호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나와 민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적당히 떨어져 선 채 나는 긴장에 가득 찬 눈빛으로 민희를 바라보았다. 반면, 민희는 신난 얼굴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슬쩍 손목을 돌렸다.
‘대련, 대련이라.’
대련을 하면, 아는 사람과 대련을 하면,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심호흡을 했다. 공격, 할 수 있을까, 내가. 잘못……공격하는 꼴은 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가상 공간, 안이니까. 나는 심호흡을 반복했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싸움에 맞지 않는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겁부터 먹는 평범한 계집아이. 나는 싸움이 무섭다. 내가 다치는 것도, 남을 다치게 하는 것도 무섭다. 하지만 훈련은 필요하다. 훈련을 위해서 대련도 필요하다. 그 사실은 납득하고 있었다.
“그럼 은하야, 잘 부탁해.”
“……응.”
나와 달리 민희는 전투 마법사로서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비단 민희만이 아니다. 인하도, 한수도, 현호도, 나를 제외한 모두는 이 세계에서 싸워 가기 위한 특출 난 재능을 전부 갖추고 있다.
나는, 머리도 평범하고, 전투나 육체적 재능 따윈 없다. 나에게 뛰어난 것이 있다면 어른이었던 경험에서 나오는 사고방식과, 또 하나, 마력에 민감한 점이다. 그것이 나를 지금 서 있는 자리까지 이끌어 왔다.
3! 밖에서 누군가가 카운트를 시작했다. 나는 몸 주위에 얇은 결계를 덧씌웠다. 겉보기로는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2! 마력을 주변에 모았다. 전투태세를 취했다. 시야를 펼쳤다. 주변에 존재하는 마력의 색이 선명하게 시야에 비쳤다.
“──1!”
스타트! 대련 개시!
카운트가 끝남과 동시에 민희가 나에게로 달려왔다. 나는 뒤로 한 번 뛰었다. 민희가 주먹을 뻗었다. 거기에서부터 붉은 탄환이 날아왔다.
붉은 탄환은 내 눈앞에서 터지며 불꽃 회오리가 되었다. 나는 속성마법을 썼다. 차가운 물이 불꽃을 순식간에 없앴다. 그러나 내가 생성한 물은 결과적으로 내 시계(視界)를 한순간 차단했다.
민희가 그 한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나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공격에 마력이 섞여 있다. 나는 당황하며 텔레포트 했다. 민희가 다시 내 위치를 확인하고 달려오기 전에, 나는 환각마법을 펼쳤다. 주변으로 얼음 조각 같은 안개가 흩날린다. 그 위로 새까만 어둠이 덧칠된다. 민희는 그 희귀하다는 무속성 마법사였다. 모든 속성을 동등하게 가지고 있었고, 모든 속성을 동등하게 쓸 수 있었다. 단, 그것은 특출 난 속성도 없다는 말이 된다. 민희는 어둠속성에서 나를 이길 수 없다. 나는 어둠을 점점 압축해 들어갔다. 하지만 민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통과했다.
“……!”
그때서야 나는 민희의 눈이 기이하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다, 보여.”
민희의 마법은 지각마법. 내 마법은 환각마법. 내 환각은 이미 뇌에 50% 확률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민희의 지각마법은 주변 정보를 전부 파악한다. 내 환각마법은 민희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래……실제로 ‘실체화’를 하기 전에는.
사실 나는 방금 전 공격했을 때 실제로 어둠마법을 썼어야 했다. 그게 옳았다. 하지만 왜 그러지 못했냐면, 어둠마법이 속성마법 중에서 굉장한 공격성을 띤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나’가 두려워 나에게 유리한 판단을 유보해 버렸다.
민희는 빠르게 내 앞으로 당도했다. 주먹이 뻗어지는 장면이 어쩐지 느리게 보였다. 민희의 주변으로 탄환이 흩어졌다. 나는 몸 주변에 결계를 친 상태로 민희를 보았다. 퍼뜩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판사판, 그렇게 생각한 나는 민희와 눈을 맞췄다.
우리의 시선이 맞았다.
시야가 감기는 기분이 들었다. 내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정신, 민희의 눈이 한순간 멍해지며 초점을 잃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결계가 둥글게 휘며 민희의 몸을 구속했다. 나는 손을 뻗어 속성을 넣지 않은 마력을 토해 냈다.
“왁!”
민희의 몸이 날아갔다. 나는 다급하게 결계마법을 썼다. 푹신한 결계가 민희의 몸을 받아 냈다.
“아, 뭐야~.”
민희가 투덜댔다. 나는 두근두근 울리는 심장에 손을 올리며 다급하게 숨을 골랐다.
──한순간이었다.
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와 투덜대는 민희를 바라보았다.
경이로웠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실력이라고 어찌 믿을 수 있으랴. 민희는 한순간에 내 빈틈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왔다. 나는 지금 압도적인 전투 센스를, 그 재능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역시 져 버렸어. 헤헤.”
나는 대련실 밖으로 나가는 민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뒤를 따랐다.
아까 정신 계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내가 패배했겠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들었다. 아이들과 대련을 해 보았다지?”
훈련을 마친 후 헉헉 숨을 몰아쉬는 나에게 스승님이 물었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 나는 약간 표정을 흐렸다. 하지만 동시에 뿌듯했다. 어리디어려서 아직은 나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느새 그렇게 커 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