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504
“수리!”
이소영이 이번엔 살아 있는 바람을 불러 모았다. 이소영의 공격을 도우려는 듯 이소영의 위에 책이 쏟아졌다. 회복, 강화, 바람과 관련된 괴수들. 이소영은 괴수들에게 자신의 바람을 휘감아 카인에게 쏟아 보냈다.
자신의 마법이 부서지는 느낌에서 무언가를 직감한 셰인이 루인 대신 공격을 막아 냈다. 그 판단은 옳았다. 루인의 힘은 시간을 ‘움직이는 종류’의 힘. 루인과 상극인 셰인이 더 막기 용이했다.
콰과과광!!
회갈색으로 변했던 절망이 단숨에 생기 넘치는 갈은색으로 돌아왔다. 마법사 본인이나 뛰어난 감지마법사밖에 볼 수 없는 풍경으로, 심혼마법을 보는 카인은 그것을 알아보았다.
멸망이 아니기에 셰인의 힘으로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셰인의 허무보다 바람의 생명력이 더 강하다.
루인이 그 사이로 빛을 찔러 넣었다.
카인이 또 한 번 동력을 바꿨다. 이번에 카인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시카의 자주색. 그러나 빌려온 자연의 힘으로는 이소영의 가호를 넘어설 수 없다. 카인은 렌시아의 방패를 세우며 이소영의 영혼과 자연을 살폈다.
그릇이 깨어져 한동안 마법을 쓸 수 없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근원이, 그릇이, 근원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데 마력은 흘러넘친다. 보이지 않는다기보다는 그릇이 너무 커서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이 진화했다.’
“엘렌!”
부름에 답하듯 갑옷의 보석이 반짝인 순간, 겨우 버티고 있던 셰인과 루인의 마법이 휩쓸리며 바람으로 바뀌었다. 끌려가는 바람은 모두 이소영과 같은 영혼으로 변한다. 이 세상의 바람은 전부 이소영의 것이다.
이소영이 다시 한번 손을 휘둘러 바람을 내리쳤다. 날아간 이안이 발톱으로 셰인의 어깨를 내리친다. 인형의 어깨가 떨어졌다.
“그 둘, 처음 보는 인형인데.”
“아끼는 아이들이지.”
“그래? 그 아끼는 아이, 산산조각 낼 건데 괜찮지? 너희도 우리 동료를 가지고 놀았잖아.”
“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로 부서질 것 같아 걱정되는군. 어떻게 할까…….”
말과는 달리 카인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렸다.
우르릉…….
그때 공간이 크게 울었다. 멸망의 힘에 의해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 고풍스러운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이소영은 이 건물을 알고 있다. 리브리의 깊은 곳에 있던 건물이다. 건물 지붕에 긴 금발을 내려 묶은 남자, 하인리히가 내려섰다.
“커븐 로드 카인, 그 측근 라리마 유디프. 그대들은 이만 퇴장해 줘야겠네.”
카인이 바람에 의해 끊어진 실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라리마가 뚱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하인리히가 지키고 있는 장소니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완전히 실패네, 실패야. 어떻게 할래?”
“아직 한계점은 아니야.”
카인이 다정하게 웃으며 에스코트 하듯 라리마의 손을 제 손 위에 올렸다.
“조금 더 놀아 보자.”
“……뭐, 네가 재미있다면야 됐다.”
희미하게 웃는 라리마의 손에 얼핏 은푸른빛이 서린 순간이었다.
쩌정!!!
새블레를 감싼 결계가 모두 얼어붙었다.
아니, 결정이 되어 굳었다.
하늘이 굳으며, 건물 위를 그대로 덮고 있던 보석 형태의 봉인이 신비롭게 반짝인다. 땅과 하늘을 잇는 기둥이 번갈아 나타났다.
“피어라.”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린 순간, 보석으로 이루어진 기둥 사이에서 빛으로 된 꽃이 피어났다.
“루인!”
카인의 주위로 빛의 알갱이가 산처럼 솟아올랐다. 그와 거의 동시에 꽃을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봉인과 빛의 기둥이 폭발했다.
콰과과과광!
봉인과 파괴의 빛이 카인을 짓누르고, 루인과 셰인, 카인의 실뭉치, 방패, 즉석 인형 무리가 봉인의 힘에 상쇄되면서도 겨우겨우 기둥 무리를 막아 냈다.
“마누엘!”
다시금 나타난 거대한 갑옷 기사 마누엘이 하늘에서 떨어진 루카의 기둥 검을 막아 냈다. 루카가 쥔 검을 따라 봉인이 전염되며 마누엘의 검에 보석이 자라났다. 시커먼 검에서 일어난 불꽃같은 마력이 루카의 보석을 파괴하기 위해 점멸했으나, 결국 루카의 힘에 의해 파훼되었다.
“루카 씨!”
“루카 공.”
카인과 라리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루카가 나타나는 건 예상외였다.
트라베리아의 전력도 무한하지는 않다. 루카는 새벽별무리만큼이나 먹음직스러운 제물. 절대 죽여선 안 되는 대상이고, 지금으로서는 별무리보다 죽이기 어려운 적이다.
루카를 막으러 간 것은 리우 홍링을 위시한 트라베리아의 구속·은신 팀이다. 루카보다 약하다곤 하나 결코 루카에게 쉽게 잡히지도, 쉽게 쓰러지지도 않을 면면들이었다.
라리마가 초조한 얼굴로 혀를 찼다.
“빠르기도 하네. 과연 현 세대 최강의 인간.”
“그 호칭은 제 것이 아닙니다.”
“너보다 강한 사람이라면……앰버 씨를 말하는 건가? 앰버 씨는 우리 입장에선 인간이 아닌데.”
“그렇다면 이미 내주었습니다.”
“이성진인가. 벌써 그렇게 강해졌나?”
루카가 덤덤한 대답에 카인의 눈동자가 흥미를 담고 반짝였다. 루카의 분홍빛이 깔린 은백색 눈동자에 얼핏 고민이 서렸다.
“모르겠습니다. 이성진 씨의 강함과 유은하 씨의 강함은 종류가 너무 달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급성장 중인 상태라 불안한 점이 있습니다만, 정식으로 싸우면 분명 제가 지겠지요. 그런 분들이니까요.”
“다듬어지지 않은 힘들이지.”
“네. 별무리 분들 모두 해당됩니다. 당신도 이번에 그 힘을 겪었을 테지요.”
루카가 잠깐 안 본 사이 급성장해 있는 이소영에게 잠시 시선을 보냈다.
쿵!
그사이 큰 소리와 함께 다가온 대륙과 바다가 리브리가 다스리는 남극에 합쳐졌다. 합쳐진 하늘을 따라 방위부의 마법사와 캐티아의 스테이, 구 트라베리아인 아멜리아와 히스가 날아왔다. 아멜리아와 히스의 곁에 곧 오시언이 합류했다.
카인은 루카를 위시한 마법사들과 그들이 있던 아프리카 일부를 돌아보았다. 전투의 흔적마저 루카의 기둥에 의해 삼켜져 봉인되어 버린 대륙을.
카인의 앞에 서 있는 루카는 소매나 바짓단이 약간 뜯겨져 있기는 했지만 큰 상처 없이 멀쩡했다.
“멀쩡해도 너무 멀쩡하군.”
“…….”
“홍링과 리피트의 방해를 뚫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만일을 위해 리피트, 지스, 시카의 가호를 입힌 실비아, 거기에 장군 시리즈를 둘이나 함께 보냈다.”
홍링은 공격력도 강하지만 실은 광범위 영역마법도 특기이며, 리피트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루카를 위시한 방위부 역시 아직은 비교적 살아 있는 것이 낫기 때문에 묶어 두기로 결정했다. 루카를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마법사는 포츈 이상부터인데, 포츈부터 위의 마법사는 역할이 있거나 상대를 봐줄 수 없는 괴물, 두 종류뿐이었다.
루카와 대등한 실력자인 릴리는 래넌을 대신해 한국에 남았고, 카인은 방어와 수호에 한해선 루카보다 더 성가신 하인리히를 맡았다.
“…….”
아멜리아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얕보이다니 곤란하군요. 당신의 말대로 저는 현 세대 최강의 인간 마법사였습니다. 저는 저보다 약한 마법사에게는 결코 지지 않습니다.”
루카의 손에 보석이 피어났다. 루카가 작은 은보라색 목걸이가 갇혀 있는 봉인 수정을 허공에 던졌다. 봉인 속에 갇혀 있는 목걸이의 형태를 확인한 카인과 라리마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예비 목숨은 쓸 수 있어야 의미가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냉정하고 엄중한 목소리로, 루카는 리우 홍링의 죽음을 선언했다.
서장 루카를 비롯한 방위부는 새블레의 수도 사이라가 포함된 아프리카 대륙 반쪽과 함께 우주의 어딘가로 분단되었다. 사이라에는 방위부 외에도 무기 도시 캐티아, 사막의 수호자 부족, PE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구 트라베리아의 히스, 아멜리아도 벨라의 칼날에 잘려나가 대현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밀려났다.
새카맣게 뒤덮였던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오기도 전에 보석처럼 아름다운 불꽃 안개가 아프리카 반쪽을 뒤덮었다. 리우 홍링의 ‘광역마법’이다.
홍링의 광역마법은 단순히 넓은 범위에 마법을 펼치는 기술이 아니다. 넓은 시야로 눈에 보이는 모든 마법을 조정한다. 때로는 마법 내부에 있는 자들의 움직임마저 조정한다.
중국의 소수 마법사 부족, ‘홍염’의 유일한 생존자 리우 홍링은 이 기술로 중국 도시 대부분을 무너뜨렸다.
아멜리아와 셰린은 사람이 전부 피난 가고 없는 텅 빈 도시에 떨어졌다. 홍링의 불꽃 안개 탓에 풍경이 일그러져 보이고, 건물들이 뒤섞인다. 바닥 아래 상흔으로 안개가 흘러드는 것을 발견한 아멜리아는 다급히 마법을 펼쳤다.
“히스, 적을 찾아봐! 백수정의 지도!”
그러나 홍링의 광역마법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은 이곳이 ‘사이라’라는 것뿐이었다.
아멜리아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대현과 떨어졌어……. 빨리 돌아가야 해.”
“이 마법은 홍링. 교감을 막고 있어서 근처에 있는 사람을 특정하기 어려워. 하지만 한 명은 알 것 같아. 지스야.”
“그 칼날……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대현과 멀리 떨어진 것 같아. 벨라가 결계, 대륙, 바다를 가르고, 유클라프가 땅을 이동시켰어.”
“멀리 떨어졌다고?”
아멜리아가 당황하며 백수정의 지도를 붙잡았다.
그때 바닥에서 무시무시한 마력과 함께 빛이 일어났다. 파괴된 상태로 안개에 밀리던 봉인의 보석이 순식간에 빛을 되찾았다. 대륙의 모든 그림자 도시와 중심 마법석을 따라, 루카의 기둥마법이 전개되었다.
화아아악─!
그림자 밑에서 빛이 올라오고, 바닥의 봉인이 더 두껍게 수복된다. 봉인의 보석에 닿은 안개가 봉인에 흡수되어 굳어 버린다.
곳곳에서 올라온 빛의 기둥이 안개를 꿰뚫었다. 봉인을 수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루카는 불꽃 안개를 전부 부숴버릴 속셈이었다.
「사념을 통한 마법 간섭을 발견하였습니다. 마법을 통과하는 특수한……!」
그러나 그때 봉인을 꿰뚫고 괴상한 형태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꿰뚫었다고 표현했으나, 봉인마법을 부수고 나타난 게 아니었다. ‘통과해서’ 꿰뚫었다. 어떤 원리인지 꿰뚫은 기둥은 봉인마법으로는 닿지 않았다. 기둥을 따라 흘러든 불꽃 안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그림자는 닿았으나, 이 맞닿음 역시 완벽하지 않았다. 묘하게 비껴나 있다.
“리피트의 피체 시리즈야!”
피체는 리피트가 만든 지옥의 학자. 닿았던 것을 닿지 못하게 하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홍링, 리피트, 지스…. 잠깐, 몇 명이나 온 거야?”
“안개에 익숙한 기척이 섞였어……. 실비아야.”
“실비까지?”
히스가 아멜리아의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 대답했다.
“……실비아……지만, 시카의 가호가 짙어……. 자세히는 읽을 수 없어. 홍링의 안개 때문에…….”
“……그래. 그놈들 성격에 실비아를 방비도 없이 적 앞에 보내진 않겠지.”
아멜리아는 유펠르시아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시카의 얼굴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한때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던 친구이자 동료였던 시카는 지금 트라베리아의 4강.
“설마 시카가 직접 오진 않았겠지?”
다급히 소리치며 아멜리아는 품에서 오래 전 시카에게 받았던 정령석을 꺼냈다. 마법을 통해 공명하자 안개가 파직파직 튄다.
“아마 그건 아닐 거야. 시카 정도의 영혼이 내 교감에 잡히지 않을 리……없다고 생각하지만.”
히스의 표정이 흐려졌다.
히스의 마법은 교감마법. 누나인 셰린은 ‘힘’과 교감하고, 동생인 히스는 ‘생물’과 교감한다.
히스는 생물의 기척을 잘 파악해 낸다. 은신에 의해 그 자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 바로 찾아내진 못하더라도 상대가 누구고 어떤 계통의 힘을 사용하는지 특정할 수 있다. 특히 익숙한 상대가 대상이라면 잘못 볼 가능성이 아주 낮다.
하지만 커븐 로드는, 하물며 시카는 그러한 차원을 벗어난 상대다.
아멜리아는 수긍하며 히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래. 거기다 생각해 보니 시카가 왔다면 링링……홍링이 아니라 시카의 기술을 메인으로 움직였겠지……. 일단, 그림자 도시로 들어가서 모두와 합류하자.”
‘피체의 금속’을 따라 가디언 레미의 별꽃이 자라났다. 닿지 않는 인지범위에 있는 피체의 기둥이 루카의 인지 범위 내로 끌려나왔다.
루카의 기둥마법과 홍링의 광역마법이 부딪쳤다. 안개를 따라 계속해서 리피트의 공상 도구가 나타났다. 그러나 히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그림자 도시에서 튕겨 나와 있어. 확인하러 가자.”
“아! 벨라의 공격 때문이구나! 하지만……그렇다는 건……웬일로…….”
웬일로 벨라는 사람의 목숨을 노리지 않았다. 치밀어 오르는 울분은 참으며 아멜리아는 히스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달렸다.
곳곳에서 둥근 폭발이 일었다. 마법을 태우는 홍링의 홍염, 움직임을 제한하는 실비아의 안개, 리피트의 공상 무기, 마법을 지우는 지스의 물감.
안개 사이사이로 불꽃의 안개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꽃나무며 장식물이 나타난다. 아멜리아와 히스마저 호흡이 힘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 안개를 잠식하려는 봉인을 애써 밀어낸다.
그에 대응하며 루카의 기둥이 수정 크러스터 형태로 자라난다.
루카 에밀라, 세계 수호 연맹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첫 번째 실력자로 꼽혔던 인간 마법사.
그리고 참극 이후부터 지금까지 연맹 초기의 최고 전력 중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마법사이기도 하다.
그녀의 봉인속성은 특수하여 웬만큼 대등한 마법사도 그 영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공식 랭킹은 9위에서 멈췄지만 현재 루카의 실력은 7위인 앰버와 대등. 때문에 이제는 커븐 로드 중에서도 상위권이 아니고서야 그녀를 제압하지 못한다.
그것을 지금 루카는 마법으로 증명하고 있다.
트라베리아 4명의 합동마법을 봉인의 힘으로 밀어내고 있지 않나. 홍링은 커븐 로드중에서는 하위권이지만 중국을 홀로 멸망시킬 정도로 강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고, 리피트는 커븐 로드와 비교하면 중위권, 루카보다 한두 계단 정도 아래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리피트의 공격은 아주 특수하다. 공상의 힘으로 타인의 영역을 마음대로 뛰어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루카는 중간부터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봉인을 수복하고, 견고히 하고, 공격을 방어하고, 안개의 힘을 전체적으로 밀어내는 데 힘을 쓰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그림자 영역을 파고드는 리피트의 공격이 결코 사람들에게 치명상이 되지 않게끔. 더하여 리피트의 마법이 더는 봉인의 영역을 넘어오지 못하게끔.
리피트라 해도 루카의 봉인 영역을 자유자재로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가능했던 것은 벨라로 인해 봉인이 많이 부서진 탓이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고 아멜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안개 같은 채색감을 가진 덩굴이 사람들의 몸을 뒤덮어 사람들을 봉인의 영역에서 떨어뜨리고 있다. 반대로 바닥에서 솟아난 봉인석이 안개의 힘을 흡수 및 봉인해 안개의 힘을 지속적으로 옅게 만들고 있다.
그림자 도시 바깥으로 튕겨난 사람들은 베이지는 않았을지언정 벨라의 마법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미리 몸에 차고 있던 호신구를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그림자 도시가 사람들의 정신을 지켜 주지 않았더라면 상당 수가 쇼크사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신구는 ‘마법’이기에, 벨라의 칼날에 잘려 나간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래선 튕겨 나간 사람들을 감지하는 게 상당히 어려울 것 같네.”
“응.”
히스는 생물과 교감하는 게 특기지만, 마법과도 일정 이상 교감할 수 있다. 히스는 조심스럽게 루카의 봉인마법과 교감하여 레미를 불러 냈다.
“여기에 사람, 약 300명.”
“저희 힘으로는 안개를 잘라낼 수 없어요.”
잠시 후 엘디나에서 온 통신이 히스와 아멜리아에게 연결되었다.
[스틸라에 있었을 두 분이 어째서 이곳에 있습니까?]루카의 목소리였다.
“벨라의 칼날에 공간이 갈라지면서 튕겨 나온 것 같아요.”
방위부의 2인자 레이시가 혀를 찼다.
[지금 안개 때문에 사람의 기척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벨라의 공격은 직선형인지라, 다행히 무사한 호신구를 통해 300명 정도를 찾아냈습니다만, 현재 호신구의 신호가 무척 약해 전부 잡아내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마음만 같아선 아프리카 대륙 통째로 봉인해 버리고 싶지만, 이 안개 때문에 넓은 범위를 완벽하게 봉인하지는 못하겠더군요. 그랬다간 홍링의 반경에 가까이에 있는 국민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겠지요. 두 분이 발견하신 분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마력과 생명을 태우는 안개 불꽃 영역. 지스가 그림으로 곳곳의 기척을 지우고 있어. ……호신구는 벨라의 마법 때문에 효력이 사라졌거나, 홍링 일행의 마법 때문에 효력이 사라졌거나.”
[그렇습니까.]“여기에 갇힌 사람들은 조금씩 생명을 갉아 먹혀. 제한 시간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아마 2시간에서 4시간.”
[……3시간.]루카의 목소리가 훅 가라앉았다.
“호신구가 있는 사람은 좀 더 버틸 테지만, 있더라도 안개랑 함정에 효력이 다할 가능성이 커. 당신이 봉인의 힘으로 안개를 계속 옅게 만든다면……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긴 하겠지만.”
[즉살이 아니라니. 트라베리아 답지 않군요.]“…….”
[하지만 다행인 일입니다. 하지만 적의 위치를 찾지 못한 지금 섣부른 공격으론 튕겨 나간 사람들이 위험해질 뿐이니, 우선 봉인을 서서히 강화하면서 사람들을 피난시켜야겠습니다. 그리고 히스 씨, 사람을 찾는 눈이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곳에 온 마법사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습니까?]“홍링, 실비아, 지스, 리피트. 이 네 명은 확실해. 그리고 실비아는 시카의 가호를 가지고 있어. 그래서 시카의 마력이 느껴지는데…….”
[괜찮습니다. 시카 리디언이 왔을 가능성은 없습니다.]루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자가 왔다면 제 봉인에 이렇게 미온적으로 대응할 리 없습니다. 즉살이 아니라 안개에 붙잡아 두고 2시간. 제가 보기엔 ‘최소 2시간 이상 가만히 사람이나 구출해라’ 하는 시간 끌기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서장님. 무엇보다 리우 홍링과 실비아 메리안을 보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리피트가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시카의 가호를 함께 보냈다고는 하지만……우리 서장님과 대등한 전력을 보냈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시간 끌기……?”
레이시가 이어 대답했다.
[거기다 메리안은 우리한테 보내기엔 너무 약하잖아. 이런 안개까지 내보내고, 홍링 일행은 처음부터 우리와 정면에서 맞부딪칠 할 생각이 없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레이시가 음울한 목소리로 이를 갈았다.
[홍링과 리피트는 최선의 인선이 아닐 텐데, 그럼 그동안 다른 전력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새블레를 직접 공격한 벨라, 엘리시아, 포츈은 대체 뭘 하고 있을까……?]아멜리아는 꽉 주먹을 쥐었다. 그거야……지금쯤…….
[……어차피 사람들이 바깥에 있는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선 실종자 수색과 방어 수복 및 강화에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두 분, 바깥보다는 그림자 도시 안에서 마법과 특수능력이 더 잘 들 테니, 그분들을 데리고 돌아와 주십시오.] [300명이라 그랬지? 지금 도시에서 튕겨 나간 실종자는 2만 명 정도야.]“멀지 않은 곳에 400명이 더 있어.”
[그래? 그럼 그쪽은 내가 마중하러 갈게. 두 사람은 다른 400명의 위치를 확인하고 봉인을 두드려 알려 줘. 시간 벌기든 뭐든 방해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으니까 조심해.]바닥에서 나온 레미가 두 사람에게 별꽃을 전달했다. 안개 안에서도 루카의 기둥마법을 보다 확실하게 발아시키기 위한 매개체다.
이곳은 위치가 알려졌으니 방위부의 힘으로 알아서 끌어올 수 있다. 히스는 아멜리아를 이끌고 다른 생물의 기척을 향해 움직였다. 도착하고 나서 두 사람은 흠칫했다.
그림으로 그려진 토끼, 사슴, 곰, 새, 멧돼지 등의 산짐승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면 히스는 생물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채색된 그림들은 수십 명의 사람을 삼키고 있었다.
그러나 사정을 전달하니 루카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럼 일대의 사람들을 봉인하겠습니다. 레이시 쪽도 덩굴이 문제가 되기에 이미 봉인했습니다.]“그렇게 막 봉인해도 괜찮나요?”
[좁은 범위라면 트라베리아의 방해를 무시하고 완벽하게 봉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안개를 전부 소멸시키거나 자신들을 직접 찾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그런지 원래부터 설치해 두었던 방해 외에는 특별한 공격이 없었습니다.]루카에게 봉인한다는 것은 ‘가둔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둔 것을 루카는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마법만 죽일 수도 있고, 통째로 부숴 삼켜 버릴 수도 있다.
머지않아 히스와 아멜리아는 발견해 낸 400명과 함께 그림자 도시로 들어왔다. 그때쯤엔 본래 대륙 위에서 공격을 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도 그림자 도시에 들어와 있었다. 사막의 수호자 시몬과 방위부의 아르피나, 캐티아의 스테이 등.
그들도 근처에 있던 사람 수 백 명을 함께 데려왔다. 두 사람이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안개에 정신을 잃었을 뿐이었기에 루카가 기둥마법을 발동할 필요가 없었다.
“여러분께서 인명 구조를 하는 동안 호신구나 기둥마법을 통해 레미가 민간인의 위치를 대부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1000명이 모자랍니다.”
“1000명이나?”
“네. 그래서 지금 A랭크 이상의 마법사들이 그림자 도시를 돌아다니며 마법이나 무기를 이용해 직접 탐색을 하고 계십니다만, 아직까지 새롭게 발견한 사람은 없습니다.”
루카가 엘디나에 가까운 다섯 개의 장소를 가리켰다. 전부 사람이 다수 발견된 장소였다.
루카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 장소는 사람이 가지 않아도 완벽하게 봉인할 수 있습니다. 인지 영역을 초월하는 리피트의 마법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가까운 장소이니 만큼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겁니다. 레미의 보조도 있고요. 그러니 여러분께선 엘디나와 거리가 떨어진 장소에 구출을 가 주셨으면 합니다.”
레이시가 손목시계에 걸린 붉은 리본을 매만지며 루카 옆에 섰다. 하얀 방위부 제복을 입은 루카와 검은 개량 방위부 제복을 입은 레이시는 머리색부터 옷까지 전부 대조적이었다.
“다만, 역시 가장 빠른 방법은 마법의 주인을 직접 치는 것입니다만. 혹시 리우 일행이 있는 장소를 특정할 수 있으신 분이 있습니까?”
대부분 고개를 젓거나 침묵했다. 루카가 자신의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빈센트, 레이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까부터 계속 마법으로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으음……죄송합니다.”
“저도 이번엔 잘 안 되더라고요.”
레이시가 손을 내저으며 허공에서 ‘지도’를 꺼냈다. 레이시의 고유마법으로 만든 지도로, 평소라면 주위의 상황을 정확하게 표시해 줄 터이나 안개 때문에 자신에서 멀어질수록 보이는 게 없었다.
“이 안개 때문에 마법이 제대로 안 들어.”
고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히스를 가리켰다.
“역시 히스랑 레미가 가장 찾아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히스, 새로 느껴진 건 없어?”
“아직 짐작이 가지 않지만 저쪽에서 마법을 반복해서 강하게 사용한다면……범위를 좁힐 수 있을지도. 하지만 홍링, 리피트, 실비아, 지스, 모두 은신에 특출 나. …아.”
“왜 그러십니까?”
“지금……뭔가 다른 기척이 섞였어. 방향은 북서쪽이랑 남쪽……. 하지만 트라베리아는 아니야.”
히스가 지도에 원을 그렸다.
“아마 장군 시리즈. 2명.”
“장군 시리즈까지…….”
루카의 시선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당장 트라베리아가 있는 장소를 찾아낼 가능성이 높은 것은 히스 씨와 레미 씨 같군요. 레미가 찾지 못한 1000명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 주변엔 없어. 좀 더 돌아다녀야 알 것 같아.”
“그렇군요. 그럼 발견되지 않은 사람들의 수색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로렌 씨, S랭크 이상의 실력을 지닌 로봇은 얼마나 됩니까?”
“1000개체가량 됩니다만 S랭크 상위 로봇은 둘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양산형입니다. 이 안개 속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템을 쓰면 좀 더 버틸 것 같습니다만…….”
캐티아의 총수 로렌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충분합니다. 히스 씨와 아멜리아 씨, 레미는 계속 사람의 수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중간중간 마법 공격을 해체해 주십시오. 나머지 분들은 레미 씨가 발견한 민간인의 구조 협조 및 그림자 도시의 강화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저 안개가 더 이상 강해지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루카가 레미가 표시한 지도를 살피며 양손을 꽉 깍지 껴 마주 잡았다.
“저들의 시간 벌기가 2시간짜리라면,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저희가 지키는 장소와 달리 다른 대륙은……상당히 위험한 상태일겁니다.”
“네!”
우선 그들은 튕겨 나간 이들의 피난 및 보호를 우선하기로 했다. 루카의 봉인은 안개와 리피트의 공격 탓에, 군데군데 복구가 덜 되었고, 그를 따라 그림자 도시 몇 군데에 안개가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흘러 들어온 안개와 안개 안에 섞인 다른 보조마법 때문에 부서진 부분의 인식이 잘 되지 않는다. 루카는 레미와 함께 그림자 도시를 돌아다니며 봉인의 보수와 방어를 우선시 했다.
리피트의 마법은 때때로 사람의 인지범위를 뛰어넘지만, 루카의 봉인이 완벽해지면 제 아무리 리피트라도 뛰어넘을 수 없다.
A랭크 상위 이상의 대원들 및 로봇들은 도시 바깥으로 튕겨 나간 사람들을 수색 및 보호했다. 트라베리아에 의해 방해가 들어오긴 했지만 S랭크 상위 마법사의 활약하에 큰 위험이 찾아오진 않았다.
아니……트라베리아 답지도 않게 죽을 정도의 공격이나 방해는 가해 오지 않았다.
새로이 방해를 할 때도 한 번 마법을 사용하고 연결을 끊었다. 그러니까, 독립적인 마법을 사용할 뿐 함정에 지속적으로 마력을 불어넣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은 홍링의 광역마법뿐이었다. 다른 마법도 전부 그 광역마법을 통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