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535
최인성이 강인하의 그림자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의 음악이 너무 강해서 그림자가 깊게 파고들지 못하고 있어. 미안하지만 잠깐 대현의 가호를 강화해 줘.』
‘알았어.’
강인하는 에펠로나와 함께 대현의 둘러싼 소속마법과 태양의 가호를 강화하며 시선을 움직여 다른 동료들의 기척을 확인했다.
김미영은 세이렌과, 울비스의 시온은 운디네와 싸우고 있고, 무르시엘의 하무라는 최인성이 한국의 그림자에 파고드는 걸 보조하고 있다. 동료인 비앙카와 노아는 사람들을 피난시키다가 악마의 기척을 확인하고 목표를 바꿨다.
저 악마는 키메라를 삼킨 악마다. 그러나 한국 습격 팀이나 사람을 공격하기 위한 키메라가 아니라 습격 팀의 마법을 방해하기 위한 방어 병기였다. 그 탓에 에펠로나의 공격을 맞고도 쉽게 쓰러뜨리지 않는 놈이 수십이었다. 비앙카가 이를 갈며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무기를 잔뜩 가져왔다! 방해하지 말고 꺼져!”
칸나는 키메라를 무시하고 계속 사람들을 피난시키며 이트리와 이플라워를 퍼트렸고, 디나는 빠르게 증식하는 정화의 힘을 따라 생명의 결계를 넓혔다.
“공격만 하고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라.”
손으로 붙잡은 클라렌스의 마법검을 태양의 불꽃으로 녹이며 강인하가 혀를 찼다.
강인하의 몸은 태양이며 언제나 타오른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연결은 전부 태워 버린다. 클라인 남매의 보이지 않는 소리조차 예외가 아니다.
“강인하!”
조금 전 몸에 집어넣은 악보 때문인지, 휘감은 현 때문인지 아피스의 몸은 어쩐지 잘 부서지지 않았다. 강인하가 손에 쥔 검에 힘을 준 순간, 꽤 떨어진 장소에서 한국의 악보를 부수고 있던 이성진이 강인하의 이름을 불렀다. 키메라를 공격하던 에펠로나도 다급히 외쳤다.
「인하야, 물러나! 가호? 공격! 가까워!」
그 순간 강인하의 코앞에서 클라인 남매의 음악이 풀리며, 아피스와 강인하 사이로 클라렌스가 내려섰다.
쿠구구구궁…!
그러나 클라렌스가 사용한 기술은 자신의 검이 아니라 클라인 남매가 전해 준 음악이었다.
강렬한 진동이 태양의 불꽃을 둘러쌌고, 그 사이에 클라렌스와 지스가 아피스의 몸을 물렸다.
“콜록, 콜록!”
“무모한 짓을 하는구나. 강인하의 말대로다, 정면에서 도발하지 마라. 현을 감고 있지 않았다면 죽었다.”
“쯧.”
강인하가 혀를 차며 검에 묻은 선율의 황금색을 태워 버렸다.
아피스는 현 몇 개를 떨구며 제 몸을 헤집고 타오르는 불꽃을 클라인 남매의 선율을 사용한 금색 상어, 제 육체의 일부를 도려내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불만스러운 표정도 잠깐 뿐, 강인하는 살기를 드러내며 섬뜩하게 웃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강인하가 이곳에 온 것은 복수를 위해서다. 비록 가장 증오스러운 대상인 클라인 남매는 그녀보다 더 분노하고 있을 최인성과 이성진에게 넘겼지만, 새벽별무리가 지키던 스틸라를 유린하고 동료를 죽인 클라렌스만은 강인하가 죽일 것이다.
『인하야, 에펠로나.』
그때 그림자를 통해 또 한 번 최인성에게서 전언이 도착했다.
『그림자의 힘을 확장할 틈을 만들기 위해 성진이가 힘을 쓸 거야. 론체르타 전체의 가호를 강화해 줘.』
“……!”
전언이 사라짐과 동시에 섬뜩한 빛이 한곳에 모이는 게 보였다. 강인하는 다급히 대지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검로를 따라 가호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에펠로나 역시 날개를 크게 펼쳐 자신의 깃털을 퍼트렸다. 직후, 클라인 남매의 연주에 의해 생명력의 공명이 좀 더 깊어진 한국의 공기 무시무시한 황혼의 압력이 내려앉았다.
“큭…! 이성진인가?”
클라렌스와 지스가 아직도 아피스의 몸에서 완전히 꺼지지 않은 불꽃을 겨우겨우 끄며 마법으로 몸을 지켰다.
무시무시한 압력이 클라인 남매가 만든 현과 그들이 만든 세계를 일그러뜨렸다. 클라인 남매의 음률은 정신마저 조율하는데, 이성진은 염력은 정신을 향한 강제력에도 닿는다.
종말의 압력에 짓눌려 세계를 감싸던 음악이 잠시간 삐걱거리며 연주를 멈췄다.
찬란한 생명인 에펠로나는 본능적으로 이성진의 힘을 두려워한다. ‘황혼’은 해가 저무는 순간, 해를 저물게 하는 힘이니까.
「으, 윽, 인하야…….」
강인하는 클라렌스 일행에게 덤벼들 준비를 하면서도 주위를 세심히 살폈다. 누구보다 이성적인 놈이니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이런 힘을 퍼트렸겠지만, 현에 걸린 것이 한국 사람들의 목숨인 만큼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인하야, 에펠로나, 이번엔 그림자 트라던트에 가호를 내려 줘.』
「인하는 싸우느라 바쁘니까 내가 갈게!」
날개를 펼친 인형 같은 공룡이 빛꼬리를 남기고 빠르게 쏘아졌다. 곧 빛에 드리운 그림자에 수호의 가호가 내려섰다. 그리하여 빛으로 넘쳐 그림자를 찾을 수 없던 세계에 겨우 그림자 세계라 할 만한 게 열렸다.
몸 안에 빛이, 생명 요소인 음악이 빠져나간다 할지라도 그림자가 남아 있으면 인간은 절명하지 않는다.
열린 그림자 세계에 공명하여 대현에도 그림자 영역이 생겼다. 대현에 그림자를 비추고 고정하는 실체 역할을 한 것은 이트리였다. 이트리는 정화의 나무인 동시에 꿈에서 자라나는 마법이다. 디나와 한국의 정신계열 마법사가 그림자 세계 고정에 힘을 보탰다.
강인하는 트라던트 만큼은 아니더라도 커다랗게 현현한 그림자 나무를 한 번 돌아보았다.
‘어떻게 고정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많이 불안해 보이네. 조금만 힘을 놓아도 잡아먹힐 것 같은데…….’
그럴 만도 하다. 최인성은 지금 한국에서 클라인 남매만큼이나 영향력이 강한 트라던트의 가디언과 영역을 겨루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의 트라던트는 꿈의 그물이 조금 걸려 있을 뿐 우주에 퍼져 있는 다른 트라던트들과는 성향이 전혀 다르다.
한국의 트라던트는 유클라프나 에리카가 다스리는 트라던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강대하다. 몰래 심어 이런저런 장치를 해 두었다고 한들, 유은하가 싹을 틔울 양분을 주었다고 한들, 쌍둥이 트라던트에 영향을 줄 정도로 키우려면 힘이 많이 든다.
‘그래도 어떻게 두 번째 나무가 자랐으니 클라인 남매가 직접 나오더라도 이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에펠로나가 가호를 더해 주면서 그림자가 강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림자 영역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강인하의 힘으로 유지하고 키울 수 있다.
강인하는 소속마법을 통해 최인성에게 상황을 물었다.
『옅은 감정들을 조금 삼키긴 했지만 아직 한국의 악의를 발견하지 못했어. 깊디깊은 곳에 숨겨 둔 최초의 죽음, 절망……. 거기까지 뿌리가 뻗으면 그 후엔 클라인 남매가 건드려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텐데. 어쨌거나 최대한 흐름을 비틀어 볼게. 먼저 싸우고 있어.』
‘알았어.’
콰과과과곽!
강인하와는 떨어진 장소에서 한국의 금색과는 거리가 먼 검붉은 마법이 줄기줄기 피어났다. 세계의 톱니바퀴를 억지로 비트는 이성진의 종말의 힘을 막기 위해 뛰쳐나온 것은 슈카였다.
평소와 인상이 다른 것은 옷차림 때문이었다. 새블레나 한국에서 만났을 때와 달리 검은 정장에 긴 망토를 두르고 머리를 올려 묶은 단정한 차림을 한 슈카가 피와 그림자로 이루어진 사슬을 퍼트렸다.
“황혼속성이라 했던가? 좋은 울림이야. 해가 지면 우리 어둠의 종족이 지배하는 시간이 오지!”
‘피’는 생과 사의 경계를 정하는 생명의 원천이며, 어둠은 흡혈귀가 움직이는 시간이다. 슈카는 이성진을 상대하기엔 괜찮은, 좀 더 상세히 따지자면 완전히 밀리지는 않는 상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성진이 슈카의 사슬을 검으로 베어 내며 속삭였다.
“그래. 이 황혼(黃昏)의 세계는 저물 거다.”
클라인 남매의 세계는 금색, 힘은 태양에 가깝다. 하지만 그 안에 속한 수많은 이들의 생명은 저물기 직전이다. 슈카가 눈꼬리를 휘었다.
“그 광경은 분명 아름답겠지. 그 모습을 이 눈으로 지켜보기 위해서라도 순순히 져 줄 수는 없겠는걸?”
슈카는 한국의 키메라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 클라렌스와 자웅을 겨룰 수준이니까.
하지만 강인하는 슈카와 싸우며 이성진이 지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성진과 견줄 수 있는 것은 커븐 로드 중에서도 상위, 포츈 이상의 실력자 정도다.
그보다는 레일리의 말이 더 신경 쓰였다.
‘은하의 장비가 더해지니 규율마법의 기억이 더 자세해졌어. 특히 마법의 흔적이…….’
그에 대한 의논은 끝났다. 이성진이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다.
강인하는 가볍게 발을 구르며 빠르게 쏘아졌다. 지금은 눈앞의 적이 가장 중요했다.
“필러 오브 레이.”
“지스!”
클라렌스가 다급히 검을 그었다.
클라렌스는 ‘감히’ 강인하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허공을 수놓는 현과 한국의 이점을 사용해 궤도를 어떻게든 비틀려고 했다. 하지만 떨어져 내린 기세로 현은 물론 검격과 검마저 전부 조각낸 강인하는 곧바로 다른 마법으로 공격했다.
“파이어 월!”
강인하를 중심으로 불꽃 영역이 퍼졌다. 아피스의 하얀 세계와 지스의 금빛 호수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클라렌스가 다급히 새로운 검을 꺼내 휘둘렀다. 그러나 불꽃이 베어지는 속도보다 퍼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기사의 방패!”
“─심판하라.”
마법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강인하는 몸을 부딪쳐 방패가 되려 했던 빛을 꿰뚫고 클라렌스의 몸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러나 검이 한 번 갑옷에서 튕겨나갔다. 강인하가 공격에서 도망치려는 클라렌스의 멱살을 붙잡아 몸으로 짓눌렀다.
“그 갑옷의 방어력, 상당하네.”
“리피트가 만들고 로드님이 힘을 불어넣은 물건이다. 하지만 그대에겐 하나도 소용이 없구나.”
클라렌스가 손이 타오르든 말든 강인하의 검을 붙잡으며 입술을 끌어 올렸다.
“그대에겐 나의 신념이 전혀 통하질 않는다. 그 강력한 재능이, 신념이, 정말이지 부럽구나. 부럽기 그지없다.”
곳곳에서 음악의 힘이 강해지며 몇 개의 악보가 이성진의 힘을 튕겨 냈다. 그림자 영역에 대응하여 악보에서 자란 금빛 나무와 한국에 뿌리박은 트라던트가 더 크게 빛을 뿜어냈다.
“우리의 몸에 연결된, 혹은 우리가 끌어 모은 현은 로드 클라인이 우리를 지키기 위해 허락해 주신 힘이다. 생명과 생명을 연결하여 급소를 베이더라도 죽지 않게끔. 찔리고 찔려도 치유되게끔. 하지만 네 태양에 닿으면 얽매인 연결이 사라지고 우리를 지키던 생명력이 우리에게서 해방된다.”
“모든 것을 태워 녹이는 게 내 신념이거든. 거기다 지금의 나는 클라인 남매보다 더 강해.”
“후……하하하! 대단히 자신만만하군! 그래, 확실히 힘만 보면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도다!”
클라렌스를 휘감고 있던 선율에서 나타난 작은 악마가 강인하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 위에 또다시 악보가 덧씌워졌지만, 강인하는 태양의 열기를 일으켜 주위의 모든 음악을 간단히 태워 버렸다.
“하지만 그대여, 400년이다. 400년간 우리는 온갖 방법을 강구해 지켰고, 그럼에도 잃었고, 온갖 방법을 강구해, 죽였고! 되찾기 위해 무슨 수단이든 썼다!”
그러나 곧 강인하는 클라렌스의 빛을 격렬하게 만들며 나타난, 아까보다 훨씬 강대한 힘을 지녔으며 종이 형태를 지닌 악보에 부딪쳐 밀려났다.
예술적 재능과 연결된 마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일수록 강하다!
유은하의 『책 속의 세계』가 그러했고, 저 악보가 그러했다. 강인하의 힘을 누를 만큼 오랜 정성과 시간을 들인 악보다.
강인하는 태양의 검을 들어 악보를 향해 빛을 쏘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악보가 일으킨 힘에 태양이 튕겨났다.
“대단하네. 이 광채……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인 작품인 거지?”
강인하의 밑에서 겨우 벗어난 클라렌스가 콜록콜록 기침하며 검을 들었다.
“후흐, 알아봐 주다니 기쁘군. 또한 영광스럽다.”
클라렌스는 검으로 자신의 앞에 악보를 찔렀다. 그러자 검 위에 음악의 각인이, ‘제목’이 새겨졌다.
“나는 릴리 클라인과 래넌 클라인을 처음 보았을 때, 그들을 우습게 여겼다. 어리고 연약하고 상처 입은 어린아이였다. 많은 것을 잃은 주제에 밝게 웃는 철없는 어린아이였다. 웃으며 그들이 연주하던 음악을, 노래를, 나는 참으로 우습게 보았다. …내 상처를 더 크게 여겼다. 손으로 휘두르는 눈에 띄는 무력만이 강한 힘이라 착각했다.”
악보의 힘이 클라렌스를 향해 흡수되며 클라렌스의 힘이 무시무시하게 증폭되었다.
강인하는 곧 눈치챘다. 저 악보는 웬만한 기술은 다 튕겨 낼 것이다. 또한 강인하가 방어를 부술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을 구축해내기 전에 클라렌스의 몸 안에 전부 흡수되어 제 역할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좋다. 클라인 남매의 힘이 더해져 보다 강해진 클라렌스를 태워 버리면 될 일이다.
“릴리 클라인과 래넌 클라인은 강하지. 강하고 잔혹해.”
어차피 클라인 남매가 뒤에 버티고 있는 이상 이들을 쉽게 죽이지 못하리라는 것은 예상했다. 속삭이며 강인하는 몸 안에서 빛을 끌어 모았다.
강인하의 의지에 반응하여 주위에 태양의 조각이 나타났다. 조각과 조각이 소속마법으로 연결되고, 강인하의 힘이 더 증폭된다. 강인하의 주위가 생명의 열기로 가득 찼다.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알고,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도시 하나를 잠재웠을 때. 그때의 전율을 나는 잊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하며, 그분들이 내게 새겨 준 각오를 잊을 수 없다. 커븐 로드는 한 분 한 분 걸맞은 자격을 가지고 위대한 역할과 함께 그 자리에 앉았다.”
“위대한 역할……이라.”
강인하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무시무시한 위압감에 몸이 꿰뚫릴 것 같은 전율을 느끼면서도 클라렌스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마지막 순간에 너희는 깨닫게 될 거다. ‘강하다’는 말만으로는 모든 것을 잴 수 없다. 내가 그랬듯이, 너희도 깨닫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끝끝내 진정한 승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마법사의 강함을 단순히 힘만으로 재지 못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우리가 그래 왔고, 많은 동료들이 그런 힘을 품고 있지.”
“후흐흐.”
클라렌스가 흥분에 가득 찬 웃음을 흘리며 검을 꽉 쥐었다.
“그건 과연 어떨는지?”
클라렌스의 검이 눈부시게 빛났다. 악보가 클라렌스의 검에 완전히 흡수되었으며, 클라렌스의 검에 곡의 제목과 악보의 첫 줄이 새겨졌다.
위압감을 통해 강인하는 클라렌스의 현재 실력을 쟀다. 예상보다는 더 강해졌다.
‘새겨진 형태만 보면 소리의 각인을 닮았나?’
그러나 감지마법사가 아닌 강인하는 눈에 보이는 형태 외에는 저것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
이어 강인하에게 주입된 불꽃을 마저 토해 낸 아피스와 그 옆의 지스 역시 손에 클라렌스가 사용한 것과 비슷한 종류의 악보를 꺼냈다.
“”
“”
클라인 남매의 영혼이 담긴 음악이 그들의 마법 안에 흡수되었다. 그들이 몸에 악보의 각인을 새길 동안 이미 각인을 마친 클라렌스가 강인하에게 달려들었다.
“처단하라!”
클라렌스의 그림자에서 하얀 말이 나타났다. 클라렌스는 말 위에 올라타 말과 함께 달렸다. 클라렌스의 빛과 강인하의 열기가 맞닿은 순간, 강인하의 귀로 음악이 흘러 들어왔다.
여태까지 클라인 남매가 연주하는 모든 음악은 강인하의 육체에 닿기 전 태양의 빛에 타올라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파고들어 강인하의 마력에 오선을 연결했다.
“태양의 조각이여.”
강인하는 공전 궤도를 그리며 빛과 빛을 공명시키고 증폭하는 태양의 조각에 좀 더 힘을 불어넣었다.
반짝반짝 빛을 뿌리던 태양의 조각이 태양으로 변했다. 태양의 영역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닿는 모든 것을 태웠다. 그러나 상당한 힘을 들인 공격임에도 아까와 달리 클라렌스의 마법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너한테 처단당할 정도로 죄를 지은 기억은 없는걸.”
“후흐, 그렇겠지. 너희는 착한 아이니. 하지만 기사는 주인을 위해서라면, 스스로가 믿는 것을 위해서라면 옳음과 그름을 무시하고 벨 따름이다.”
강인하가 싸늘한 눈으로 읊조렸다.
“어련하시겠어.”
“자아, 이 정도면 너와 싸울 만하겠나?”
웃고 있으나 클라렌스의 눈매는 굴욕감과 분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강인하는 상대의 감정을 기민하게 눈치채고 그녀에게 비웃음을 보냈다.
“나쁘지 않아.”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며 서로간의 거리를 벌린 태양이 클라렌스를 둘러쌌다. 클라렌스의 현에 강인하의 소속마법이 연결되며 심판의 불꽃이 클라렌스의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한 번에 죽으면 아쉽잖아? 이것만은 릴리와 래넌에게 아주 고마워해야겠어.”
“큭…!”
“너희도 내 마음을 모르지는 않겠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가지고 놀며 죽인 놈들이 말이야, 쉽게 죽으면, 너무 간단히 사라지면……얼마나 허무하겠어? 그런데 찔러도 바로 죽지 않는다잖아. 손대중하지 않고 죽는 고통을 몇 번이고 통감하게 할 수 있다잖아. 얼마나 좋아?”
쿠구구궁!
영역을 이루던 태양이 순식간에 불꽃을 퍼트리며 주위를 압력으로 짓눌렀다. 태양 주위에 다가섰던 오선이 가호의 불꽃에 타올라 잿가루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야. 고작 너 하나의 어깨에 실리기엔 너무 귀중한 인생들이었어. 클라인 남매는 저기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지?”
증오의 말 뒤에 따라온 화제는 약간 뜬금없었다. 아피스가 영역을 이루는 태양을 향해 하얀 물길과 상어를 보냈다. 그러나 아피스의 상어가 ‘태양’을 삼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클라인 남매의 시간과 각인을 뒤집어쓰더라도, 아피스가 만드는 세계는 강인하의 태양을 삼키기엔 너무도 작았다.
그나마 지스는 흑점을 크게 덧칠해 태양의 힘을 약간이나마 가렸다. 클라렌스는 기사단을 소환하는 대신 제 몸 안에 기사들의 영혼과 마력을 더했다. 신념을 두르고 검을 휘둘렀지만, 태양은 그려진 흑점을 허물처럼 털어 내고 검을 튕겨내며 다시 빛났다.
“왜일까. 한국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려면 나와서 싸우는 것보다 청와대에서 마력만 보내는 게 더 효율적이라?”
강인하는 태양 세 개를 터트려 세 사람의 육체 기관 하나씩을 태워 버리며 잠시 하늘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심해를 확인했다. 민간인에게 찾아올 위험을 경계해 현재는 압력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였다. 클라인 남매의 음악을 비트는 한편으로 이성진은 염력과 파도를 움직여 슈카를 짓누르고 있다.
“아니면 비장의 기술을 준비하고 있어서? 혹은 청와대에 부서지면 안 되는 거라도 있나? 아주 소중한 것이라든가…….”
이성진도 김준영도 아직 클라인 남매의 가호를 넘어 문을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청와대 주위를 둘러싼 음악만은 옅어지긴커녕 짙어지고 있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동요 한 점 비치지 않았다. 수백 년간 살기 위해서, 복수하기 위해서 살아온 인간들이다. 고작 말 한마디에 동요를 보일 리 없다.
“한국의 또 다른 핵심적인 마법이라든가?”
어차피 떠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 했다. 강인하는 곧 클라인 남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진짜 이유를 말했다.
“클라인 남매를 직접 쓰러뜨리는 것을 고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들을 쓰러뜨리기에 더 마땅한 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러니 나는 여기서 너희를 불태우겠어. 너희는 여기에서 죽고 또 죽는 거야. 너희에게 죽은 자들 모두 아주 귀중한 목숨들이라 고작 너희 목숨으로는 갚을 수 없지만,”
강인하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굳이 따지자면, 이들을 죽일 경우 이것이 강인하의 첫 번째 살인이었다. 유은하처럼 일부러 불살을 지켜 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도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일부러 목숨을 빼앗진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공격에서 살아남았을 경우 목숨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고 유은하를 통해 마법만 빼앗았다. 이소영도 강인하와 비슷한 방식을 택했다.
강인하에게는 필연적으로 살인해야 할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고, 반드시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들은 다들 너무 강해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죽일 수 있으며 죽여야 하는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인간’에 한해서이기는 하다.
“갚을 수 없다면 감정의 목마름이라도 채워야지.”
클라렌스가 베로니카와 함께 더럽힌 땅은 새벽별무리의 영역이었으며, 새벽별무리의 소중한 사람이 아주 많이 있었다.
‘이제 한동안 날지 못하겠군.’
싸우기 위해 별무리의 아래에 들어올 것을 선택했던 캘리번의 동료들.
‘대장…….’
오랜 기간 연맹의 한 축을 맡았으며 마지막까지 사람을 지키면서 죽은 위대한 마법사, 새벽별무리가 맡았던 많은 목숨들.
“너희는 여기에서 감정 한 조각 남기지 못할 줄 알아.”
강인하가 복수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하무라, 시온, 비앙카, 노아는 그들과 함께 왔다.
수많은 무기가 최인성과 하무라를 둘러쌌다. 어떤 것은 현으로부터 그들을 지키고, 어떤 것은 그들의 마법을 강화하고, 어떤 것은 한국의 마법을 해석했다.
쌍둥이 트라던트의 이면에 들러붙은 그림자 트라던트는 두 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실체와 중심을 가지게 됐지만, 아직 주인과 멀어져 자리를 지키기엔 불완전하다. 최인성이 클라인 남매와 싸우러 가도 대현의 그림자와 최인성의 그림자에 굳게 연결되어 계속 트라던트의 세계를 침범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
“나도 무기를 쓰면서 무기 제작 영역을 지키기 위해 이것저것 고안해 본 게 많은데 말이야.”
하무라가 영역을 펼쳐 자신들이 트라던트의 음률과 음률을 따라 나타나는 환상에 휘말리지 않게끔 1차적으로 걸러주고 있는 무기마법의 관리자, 작은 요정 티타를 가리켰다.
“클라인 남매의 세계는 정말이지 완전무결하네. 흠집이 보이지 않아.”
“확실히 눈에 띄는 흠집은 없어요. 있는 흠집에 새로운 힘을 덧대고 갈고 닦아 결국에는 없었던 것으로 바꾸는 게 바로 클라인 남매니까요. 그걸 반복해서 고작 몇 년 만에 한국을 완전한 자신들의 세계로 바꾸었습니다.”
쌍둥이 트라던트의 가디언들은 그들을 육체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클라인 남매처럼 그들을 한국에 동화시키려 한다. 그게 결국에는 극심한 공격이 되고 있지만.
한국의 힘은 마법사의 무의식부터 물들인다. 물든 힘은 한국의 편을 든다. 그러니 조금만 방심해도 만들어 낸 그림자를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빼앗기고 만다. 그 상태가 심화되면 하나의 영역을 못 쓰게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더라도 오래 존재할 수 없어요. 티 하나만 생겨도 금방 불완전한 세계로 격하되고 마니까요.”
무엇이든지 만드는 것보다 무너뜨리는 게 쉽고, 지키는 것보다 상처 입히는 게 더 쉽다.
“그래도 티가 생긴 상태에서 이토록 완전한 모습이라니, 확실히 대단합니다. 클라인 남매가 아니고서야 이런 세계를 만들어 내진 못하겠죠. 소니아라 해도 무리가 아닐까요. 유클라프나 엘리시아의 힘으로는 이렇게 빛나는 특이점을 만들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하무라는 영역을 유지하며 긴장을 삼켰다. 하무라와 최인성의 주위는 현재 떨어지는 꽃잎과 나뭇잎으로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금색 가디언은 음악을 연주하며 빛을 일으키고 현에 생기를 더한다. 녹색 가디언은 음악을 따라 노래를 부르며 나뭇잎과 꽃잎을 흐트러뜨린다. 금색은 클라인 남매의 마법에 보다 짙게 연결되어 있고, 녹색은 트라던트와 좀 더 깊게 연결되어 있다.
최인성은 그렇게 말했지만, 하무라가 보기에 클라인 남매의 세계는 정말 완전무결 자체였다. 하물며 이 상태조차 이성진의 마법에 의해 비틀어진 모습인 것이니까.
최인성의 그림자는 유클라프의 마법을 흡수한 만큼 깊고 광대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공간이 클라인 남매가 느낄 수 있는 범위로 조절되어 있어 그보다 더 깊숙한 공간을 만들기 어렵다.
이질적이어도 결국 한국의 꿈을 먹고 자라난 그림자 트라던트의 존재성을 한국은 거의 완벽하게 배제하고 있다. 과연 아직까진 최인성의 분신으로서 실체를 유지하는 그림자가 제대로 뿌리박아 한국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하무라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최인성이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이면 없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아요. 이질적이어도 트라던트는 결국 누군가의 죽음을 끌어 모아 생겨난 무기. 이 안에는 반드시 악의가 잠들어 있을 터……. 그림자의 영향력은 아직 작지만, 제가 설계한 세계 안팎을 장식할 이시리즈는 디나 씨 덕분에 잘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경할 거라면 저쪽을 보세요.”
최인성이 그림자를 움직여 하늘 한편을 가리켰다.
“저걸 보러 여기에 왔지 않습니까.”
꽃과 나뭇가지, 현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강인하가 싸우는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했다. 그들이 소속마법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강인하와 에펠로나의 가호가 트라던트와 현에 계속 파고들고 있기 덕분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자면 이성진의 압력과 강인하의 가호에도 이 세계는 본래의 성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진의 가호에 눌려 음악을 빠르게 전달하기 힘들어지자 느리고 웅장한 노래로 세상에 묵중한 빛을 순환시키고 있다.
쿠구구구궁─!
최인성이 가리킨 방향에서 마법이 폭발했다. 그 영향으로 트라던트 가지가 하나 타닥 타올랐다.
가호의 금색 태양을 썼다 한들 트라던트를 직접 태우면 연결된 생명에 영향이 간다. 그럼에도 강인하가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불태운 것은 최인성과 에펠로나에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특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무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 가는 빛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강인하 한 명에게 트라베리아의 마법사 세 명이 달려들었다. 클라렌스는 커븐 로드와 대등하다 불리는 실력자이며, 지스도 랭킹 30위는 여유롭다. 아피스의 실력은 하멜과 엇비슷하다.
그런데 강인하는 클라인 남매의 각인까지 두른 상대를 ‘한국’에서 압도하고 있다. 베로니카와 함께 스틸라의 마법사를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클라렌스를 태우고, 베고, 죽이고, 또 죽이고…….
‘스틸라에 별무리가 한 명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결코 그런 참혹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새벽별무리도 누구보다 스스로의 영지를 지키기를 바랐다. 하무라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대현을, 스스로의 동료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억지로 이전된 전쟁터에서도 별무리는 모두 목숨을 걸었다.
‘결국 우린 울비스의 형제들한테, 전 동료들한테 아무것도 갚지 못했어. 목숨 빚도 돌려주지 못하다니.’
최인성의 그림자 영역은 느리게, 조금씩 형태를 갖췄다. 이윽고 최인성이 하무라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