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557
“『─이 하나뿐일 것 같아요?』”
『우주의 별 조각 』
“……!”
시카만이 아니다. 정령도, 포츈도 귀를 기울였다. 그 결과 아직 완전히 현실이 되지 못한 다양한 별의 환상들이 그들의 몸을 어둠 혹은 빛으로 물들이며 선명해졌다.
시카가 주위를 푸른 프로미넌스로 뒤덮었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 파고든 별 조각은 이 광대한 우주가 비추는 환영이기에 완전히 없앨 수 없었다.
“『내가 부른 우주여, 나의 꿈이여』.”
『환몽』
“『─이 안에서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되고, 바라지 않는 것은 현실조차 꿈이 된다.』”
『몽현』 『현몽』
“그게 너의─.”
“『깨져라!!!』”
상대의 마력이 아무리 강해도, 자연의 힘이 얼마나 강대하다 한들….
빠직, 빠직….
“이런…!”
내가 깨진다고 생각하면 깨진다. 그리고 깨뜨리는 것은 고작 정령이 만든 우주 하나가 아니라 처음부터 노렸던 시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 해도 시카의 마력은 무식하게 강했다. 그가 이룩한 경지는 나보다 높고, 그가 소환한 우주 역시 보통이 아니다.
푸른 정령의 불꽃에 닿은 지팡이 끝이 타올랐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든 우주를 믿고 지팡이를 내리쳤다.
쩌저저정!!
찰나의 순간 시카는 포츈을 감쌌다. 지팡이가 내리친 부분을 따라 우주가 깨지고, 세상이 깨진다.
적의 몸을 물들이던 별 조각이 완전히 실체화되며 적의 영역에 무수히 많은 균열이 생겼다. 피가 터지고, 마법이 깨지고, 영혼이 부스러졌다.
시카는 그 공격의 반은 막아 내고, 반은 몸으로 받아 내어 버텼다. 시카의 몸에서 흩어진 푸른 불꽃이 주위의 금을 드문드문 이어 붙였다.
균열은 커졌다 작아지고, 다시 커졌다가 정령의 힘에 잡아먹히고는, 도리어 정령의 힘을 잡아 삼키고 다시 커졌다.
생각보다 타격이 적게 간 이유는 시카의 몸이 정령과 융합된 상태라서……는 아닐 것이다. 시카의 몸 안은, 즉 시카가 지닌 마법의 근원은 나보다 훨씬 넓고 무겁고 광대하여 아직 환상으로 짓눌러 버리기 어려웠다.
태양의 푸른 불꽃과 시카의 자주색 마력이 내리친 지팡이를 타고 올라왔다. 시카의 주위를 곧잘 둘러싸던 안개 같은 힘이 슬금슬금 내 주위를 둘러쌌다. 이제 보니 이것도 정령의 힘…….
“……! 은하야!”
쉽사리 싸움에 끼어들 엄두를 못 내고 잠깐의 서포트를 빼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소영이가 빠르게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촤아악!
소영이의 판단은 옳았다. 간발의 차로 내가 있던 자리를, 지팡이 아래를 새까만 칼날이 긋고 지나갔다. 나를 지키던 우주의 힘이 산산조각 났다.
“……!”
“…벨라.”
시카가 피곤한 얼굴로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칼날에 베여 생긴 우주의 틈새에서 벨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벨라는 흥미로운 눈으로 포츈과 시카를 한 번 훑어본 뒤, 긴 보라색 숄을 두 사람에게 던졌다. ……엘리시아가 만든 방호복이다.
“웬일이야, 시카? 네가 이렇게 엉망으로 당하는 게 대체 얼마만이더라…?”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중에서 누구보다 마법사가 지닌 고유의 힘에 예민한 네가 별무리만은 제대로 가늠을 못한단 말이야? 뭐, 너만 그런 게 아니다만.”
“시끄러워.”
시카가 날카롭게 벨라의 손을 쳐냈다. 나는 지팡이에 들러붙은 시카와 알파의 힘을 환각으로 깨트려 없앴다. 시카의 불꽃이 닿았던 손바닥이 따끔거려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벨라에게서 눈을 떼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네 세상에서 너한테 상처를 입혔다는 건 이제 유은하는 우리랑 대등하다는 건가?”
“조금 부족하지만 일단 그래. 거기다 나랑 안 맞아.”
“시카 너한테 안 맞는 상대는 나 이후로 처음 아냐~?”
“옆에서 기분 나쁘게 웃고 있지만 말고, 움직여. 저기.”
가는 말이 시카 치곤 날카롭긴 하지만 친근해 보였다. 오가는 말이 많아질수록 시카와 포츈의 감정이 냉정을 되찾았다.
“키히히, 그래. ─전부 죽었더라?”
웃고 있지만 벨라는 평소와 달리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나도, 둘도 아니고, 전부……. 킥킥,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구나.”
“엘렌(속성)!”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한국의 지팡이는 벨라에게 잘려 나가 윗부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책에, 신호가 없다. 한국에서 복수를 끝낸 동료 중 아무도 한국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폭풍의 구름!”
하지만 소영이가 마법을 완성하는 것보다 벨라의 칼날이 날아가는 게 더 빨랐다. 적의에 반응하여 한국의『책 커버』가 또 한 번 벨라의 칼날 앞에 구현되었다.
“윽!”
『세계관의 법칙』이 제대로 작용했다. 칼날이 한순간 책 커버에 부딪쳐 막혔다.
허나 새블레에서 부딪쳤을 때처럼 벨라의 칼날은 그때보다 훨씬 강화한 법칙을 조금씩 파고들었다. 다행인 점은 뚫리는 속도가 그때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이다. 역시 아예 베지 못하게 하는 건 무리구나. 소영이가 이를 악물며 바람을 날렸다.
“풍화시켜라!”
가스 구름과 날카로운 깃털, 폭풍이 벨라의 칼날 옆에 쏟아졌다.
벨라의 칼날은 등이든 옆이든 상관없이 닿는 것은 전부 베지만, 날이 아닌 부분은 날카로움이 약간 덜하긴 하다. 벨라가 낫을 쥔 채 웃었다. 그러고 보니 벨라는 평소와 달리 칼날을 날린 자세 그대로 힘을 무너뜨리지 않고 있었다.
소영이가 폭풍을 ‘멸망’으로 뒤바꾸는 것과 동시에 책 커버에 박혀 나아가고 있던 칼날과 벨라가 쥐고 있던 낫이 연결되었다. 세계를 베어 가르는 거대한 낫이 소영이의 멸망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아, 진짜! 미친 거 아냐?”
시카가 자신의 가슴에 박힌 내 지팡이 하단부를 뽑아 별의 불꽃으로 소멸시켰다. 『책』의 힘이 더 약해졌다.
“시카, 괜찮니?”
“문제없어요. 벨라, 벨 거면 빨리 베!”
“나 참, 저거 꽤 빡빡하거든? 전에도 엘리가 아니었다면 시간 좀 걸렸을 걸? 저거, 커버 한 장으로 보여도 안에 이것저것 많아!”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에이, 씨!”
“너희 맘대로 둘 것 같아?”
소영이가 겁도 없이 벨라의 낫 기둥에 손을 박아 넣었다. 바람으로 해체된 소영이의 손이 낫 기둥을 타고 올라가 벨라의 몸과 낫 머리까지 휘감았다.
소영이의 바람은 언제나 움직인다. 칼날에 베이더라도 뚜렷한 형체가 없는 바람은 단면끼리 다시 합쳐지고, 잘리고, 다시 합쳐지고, 결국에는 파고들어 마법에 스며들어 있는 ‘바람’을 빼앗고야 만다.
나는 순환하는 바람에 ‘꿈’이라는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바람의 꿈』.”
“아스트랄!”
이름은 똑같은 ‘아스트랄’인데 나타난 정령의 모습은 아까와 달랐다.
나무와 꽃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와 중력을 지닌 보석을 중심으로 흙, 바다, 커다란 나무, 구름 등이 주위를 둘러싼다. 바다와 대륙과 숲이 분해되어 있는 탓에 바로 알아보기 어렵지만, 저것은 틀림없는…….
“지구…? 미친! 리디언 가와 계약한 고대의 정령이 ‘지구’였다고?”
“아스트랄, 지구의 바람이다. 잡아 삼켜.”
행성이 중력으로 소영이의 바람을 통제해 흡수하려 들었다. 소영이가 다급히 내 손을 붙잡았다.
“허! 우린 너희 탓에 지구산(産)이 아니게 됐거든?”
소영이가 내 손을 잡은 것은 내가 지닌 꿈의 힘이 그녀가 바람에 담은 의지를 지구의 강제력으로부터 지켜 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소환한 우주의 영역은 아직 주위에 머물고 있고, 우주는 여전히 나와 시카 두 사람에게 동시에 교감하고 있으며, 내 의지는 내가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든다.
소영이의 바람은 무엇이든 파고들고, 파고들어, 결국에는 부순다. 마법도 마력도 전부 풍화시킨다.
파괴를 위한 바람이다.
순수한 자연의 힘을 지닌 소영이의 바람이라면 벨라의 칼날을──부술 수 있다!
반쪽짜리 지팡이에서 별 조각이 흘러나와 바람에 섞였다.
“벨라, 저쪽.”
벨라가 쥐고 있던 낫에 금이 갔다. 그때 시카가 포츈에게서 넘겨받은 카드로 한국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시카의 손목에서 끈 같은 것이 일렁거리는가 싶더니 카드에서 정령의 힘이 날아가 벨라의 낫을 강화시켰다.
섬뜩한 느낌이 났다. 그 기운을 말로 표현하자면 ‘우주의 멸망’ 이었다.
“전력을 다 해서 똑바로 베.”
“하핫!”
알파가 지느러미를 움직여 꼬리 짓하자 우주에 새로운 성운이 나타났다. 시카의 숄을 건네받아 엘리시아의 숄을 2장 몸에 두른 포츈의 손에서 수십 개의 카드와 보석이 합쳐졌다.
“착하지? 부수고 오거라.”
순식간에 틈새를 벌린 ‘지구’의 지표(地表)가 우리 주위를 둘러쌌다. 생명을 이끄는 중력에 바람은 물론 모든 마법과 마력이 휩쓸렸다. 포츈의 카드가 번개, 회오리, 불꽃, 어둠을 발생시키며 우리의 마법을 왜곡시켰다.
시카와 포츈의 모습이 그 마법들에 한순간 가려졌다. 그러나 나는 시카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똑똑히 보고 말았고, 산산이 흩어지는 우주의 영역 속에서 애써 꿈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벨라는 첫 번째 낫으로 한국을 계속 짓누르며 두 번째 낫을 꺼냈다. 커다란 두 번째 낫이 시카가 가리킨 방향을 정확히 그었다.
스…콱!
파창!
첫 번째 낫 손잡이는 바람의 풍화를 이기지 못하고 깨어졌으나, 낫 끄트머리가 『책 커버』와 한국의 평행 세계 끄트머리를 절단했다.
두 번째 낫은 나의 꿈길과 함께 숨어 있던 ‘책 두 권과 화성의 지팡이’에 정확히 부딪쳤다.
“윽…!”
한국의 지팡이가 동강나고, 내가 지구의 지표에 갇혀 있는 지금, 책과 지팡이를 지키고 있는 건 문이 뿐이었다. 하물며 문이는 지금 나 대신 한국과 화성을 관리하느라 여력이 없다. 사람이 아닌 마법이라 자연과 교감할 힘이 부족한 만큼 아까보다 더 해석능력 위주로 평행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책이 지닌 세계선의 힘이 벨라의 힘을 막아 냈으나, 벨라의 낫 위에 둘러진 죽음의 어둠과 우주의 암흑이 슬금슬금 세계선을 침범했다. 두 번째 낫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벨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아하! 전력을 다하라고 할 만하네!”
“이런, 책이…! 어떻게 발견한 거야?”
점술……일까?
구 트라베리아의 아멜리아와 오시언이 말하길, 점술가의 길을 걷지 않았을 뿐 시카는 포츈이나 오시언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운명을 잘 본다고 했다. 게다가 포츈은 꿈마법에도 일가견이 있다. 운명을 감지하는 두 사람의 힘이 합쳐지면 내가 만든 꿈길을 꿰뚫어 마법의 매개체를 추적할 수 있다는 건가…….
이를 악물며 한국의 지팡이를 통해 책에 마법을 연결했으나 늦었다.
콰……과과곽!
시카의 지원이 합쳐진 낫의 마력이 무식하게 증폭되고, 칼날이 보다 스산하고 섬뜩한 예기를 띠었다. 결국 책과 지팡이가 모두 잘려 나갔다.
“쿨럭!”
우주의 균형을 유지시킬 정도로 강대하던 세계가 동시에 두 개나 부서졌다. 소영이가 눈치 빠르게 내 몸을 부축했다.
‘문이, 괜찮아?’
충격으로 후들거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주어 바로 섰다.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제 본체는 마스터입니다. 마스터가 무사한 한 무사합니다. …무기를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상대가 상대니 어쩔 수 없어……. 책이랑 지팡이의 상태는 어때…?’
「깔끔하게 잘렸습니다. 마스터가 원한다면 복원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번 부서진 이상 전만큼의 힘은 내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겠지.’
소영이는 나를 한 팔로 부축한 채 이안과 요정의 힘을 적절히 조합하여 어떻게든 포츈의 마법부터 전부 부수었다.
충격 탓에 몸 안의 마력이 잠시간 뒤집혔다. 나는 내부의 마력을 어떻게든 정리하여 마력을 뽑아내려 애쓰며 벨라와 시카를 노려보았다.
꿈길이 잘리고, 이차원 사이에서 절단된 책과 지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왜…책이 두 권이나 있지?”
포츈과 시카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레일리와 윌리엄은……성공했을까?
“아까 유은하의 손에서 부서진 것까지 합치면 세권이에요. 그 책은 이 우주를 가리던 것이었고…….”
“유은하에게 책은 하나의 세계지. 한국, 우주의 영역……두 권이면 충분할 텐데, 왜 세 권이지? 저 두 권은 왜 함께…….”
책에서 새어 나온 힘이 어디를 닮았는지를 깨달은 포츈과 시카가 다급히 어느 방향을 돌아보았다.
‘문이.’
그 사이 나는 생각보다 잘 움직이지 않는 마력을 짜내며 문이를 불렀다. 독립적으로 책과 지팡이를 지키고 있던 문이는 지금의 내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나와 달리 평소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돌아와.’
문이는 천천히 갈라진 책 위에 환상을 쌓았다. 아슬아슬했다. 직후 벨라가 다시 한 번 책을 향해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한 번 벤 정도로는 형태를 유지하네? 키킥!”
그러나 벨라가 벤 것은 환상, 진짜 책은 우리에게 돌아왔다.
나는 숨을 고르며 동강 난 화성의 지팡이를 확인했다. 벨라의 칼날을 직접 정화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속도와 ‘벤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일념 때문이다. 직접 마력을 쓰기 힘드니, 나는 영혼에 단면을 찔러 넣는 것으로 벨라의 힘을 정화하고 지팡이를 붙였다. 그리고 화성의 지팡이에 머리만 남은 한국의 지팡이를 융합했다.
그뿐이건만 마력이 다시 평소처럼 운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긴, 이 지팡이가 보통 지팡이인가. 한국과 화성을 감추고 우주를 유지시킨 열쇠 아닌가.
뿐만 아니라 몸에 가볍다. 적의 손에 파괴당한 것이라고는 하나, 어찌되었건 내 팔다리를 얽매던 사슬은 지금 모두 뜯겨 나갔다.
찢어진 책은…….
“복원할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실이 전부 드러난 상황에서 평행 세계를 복원해 봤자 소용이 없다. 트라베리아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면에 들러붙은 벨라의 힘만 정화하고 책을 찢었다. 손으로 찢고, 찢고, 또 찢었다.
적이 책을 절단하는 건 세계를 부수는 행위지만, 주인인 내가 찢는 건 세계를 작게 나눠 분산시키는 행위가 된다.
“『세계의 편린』.”
찢어진 종이가 내 주위를 맴돌며 별을 품은 조각으로 변했다. 지팡이 안에서 열쇠가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어떤 편린은 적의 마법과 정령의 힘을 잡아먹고, 또 어떤 편린은 열쇠를 통해 아스트랄이 지배하는 중력 바깥으로 나가 우주의 힘을 끌어모았다.
우리는 그렇게 바깥으로 나간 『세계의 편린』을 통해 힘을 사용했다.
“『별의 그물!!!』”
“우주의 폭풍!!”
거칠고 빠르게 자연에 변화를 일으키는 폭풍. 편린이 사방으로 뻗어지며 세계에 선을 긋고, 바람은 자연에 파고들어 공간과 우주를 움직인다.
별의 그물은 폭풍에 섞여 번개로 변했다. 폭풍에 휘감기는 성운, 울렁이며 흔들리는 우주, 구름과 바람 사이로 내리치는 번개, 떨어지는 유성 비.
곳곳에 거칠고 두터운 대기 벽이 생겨났다.
소영이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후……. 역시 평소보다 위력이 안 나와.”
“괜찮아.”
나는 숨을 고르며 우리를 둘러 싼 아스트랄의 힘을, 행성의 힘을 의식했다. 손끝에 닿는 자연의 감촉이 매우 낯익었다.
화성도 한국도 형태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결국엔 지구의 단편이다. 화성과 한국의 힘을 기록하고 가늠하는 과정은 결국 지금의 지구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하물며 그 기록을 담은 책은 지금 흩어져 행성 안팎을 뒤흔들고 있다.
“『괜찮아.』”
소영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힘으로는 아직 알파를 상대하는 건 힘들어. 그러니 먼저 아스트랄한테 익숙해져 볼게.”
떨어지는 별의 번개 과반수는 『세계의 편린』이 움직이며 생긴 것이다. 그들은 흩어졌음에도 본래의 역할을 기억하고 있다.
세계를 숨기고, 마법을 기록하고, 조정한다. 적을 완벽하게 속인다. 문이와 편린의 인도를 따라 꿈속에서 별빛이 길을 이루었다.
“『유성우!!!』”
기척도 없이 나타난 별과 번개가 적의 마법과 육체에 상처를 남겼다.
벨라의 마력은 평상시에도 날카롭다. 질척이는 피 웅덩이 같은 모습으로 날카로운 살의를 상시 내보낸다.
유성우는 그런 벨라의 마력 특성도 순조롭게 무시해 온갖 것에 상흔을 새겼다. …그렇다 해도 직접 칼날에 베이면 부서질 수밖에 없지만. 벨라가 허공에 낫을 그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좋아, 좋아! 전보다 더 예리해졌어!”
이상하게도 편린은 시카도 벨라도 아닌 포츈을 제일 파고들지 못했다. 성진과 비슷한 느낌……. 표츈이 몸에 두르고 있는 보라색 숄 두 장 때문이다.
“아스트랄, 좀 더 닫아.”
폭풍과 꿈이 바깥을 공격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우리는 아직 아스트랄 안에 갇혀 있다. 아스트랄이 공간을 닫으려 할수록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지팡이 안의 열쇠가 파직파직 점멸했다.
“벨라, 아스트랄을 두고 갈 테니 네가 여기를 맡아. 나랑 포츈 선생님은 화성에 가 봐야겠어.”
“못 가요.”
지금 지팡이에는 별하늘의 열쇠가 두 개 있다. 한국의 열쇠와 화성의 열쇠. 나는 찢어진 책 조각을 매개로 세계를, 우주를 최대한 닫았다. 평행 세계를 이루던 조각을 매개로 했기 때문에 세계가 닫힌 걸 바깥의 적이 바로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다.
“끝날 때까지 여기서는 못 나가요.”
시카가 나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후……. 벨라.”
시카의 의지로 인해 우리를 가둔 채 닫히던 행성이 다시 조금 열렸다.
“『별의 왕관』, 『은하의 지팡이』, 『별의 열쇠』.”
나는 지팡이로 벨라를 가리켰다.
“…『벨라 트리저』.”
“저 지팡이의 맨 위에 달린 보석을 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