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588
또 어떤 파편은 보석으로 변했으며, 주위에 『악몽을 베는 검』이 수십 수백 자루 생겨났다.
『악몽의 파편』
검들은 모두 내가 아는 이들의 꿈을 통해 재현한 것이었다. 모두 트라베리아에게 죽은 자들의 상념이었다.
“꺄하하하하! 멋있다! 아름다워! 너는 어쩜 이런 때마저 신비롭니?”
콰직!
휘둘러진 칼날로 인해 세계에 금이 갔다. 새벽이 좀 더 일그러지고 상처에서 새벽의 이면에 잠들어 있던 증오와 살의로 이루어진 불꽃이 터졌다. 그것이 벨라의 세계를 태워 삼키며 내 몸과 마법을 감쌌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벨라가 낫을 양손으로 잡은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들러붙은 광기가 약간 옅어졌다.
“전력을 다할 수 있겠다.”
콰직!
그러나 벨라의 공격은 낫에서 부터가 아니라 바닥의 늪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늪이 튀어 오르며 송곳 같은 날이 하늘을 꿰뚫었다.
“큭…!”
가까이 있는 늪의 마력을 지배하고 있길 천만 다행이었다. 덕분에 전조를 느끼고 뛰어오를 수 있었고, 시작부터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참사를 피했다. 대신 펼쳐진 꿈에 뻥뻥 구멍이 뚫렸다.
푸확!
꿈에 난 구멍에서 어둠이, 새벽의 이면에 억눌려 있던 살의가 줄줄 흘러내렸다. 폭포 같이 쏟아진 감정이 안개, 별, 혹은 오라로 변해 벨라의 마력을 살라먹었다.
즐거운 기색으로 웃은 벨라가 속삭였다.
“저건 네 피로구나.”
“아니, 눈물이야.”
“굳이 단어를 정정할 필요는 없지 않아? 그래봤자 의미는 비슷하잖아.”
“있고말고.”
“흐음?”
피를 흡수하고 죽음을 흡수해 강해진, 누구보다 많은 금기를 저질렀기에 트라베리아의 그 누구보다 미쳐버린 광기의 마녀.
쏟아진 저것은 나만의 것이다. 내가 삼킨 눈물이며, 절망이며, 가슴속에 쌓고 또 쌓아온 증오다.
결코 벨라가 삼켜내선 안 되는 마음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자서전을 적었다. 그 안에 담긴 모든 기억이 새벽의 이면을 이루고 있으니, 벨라의 힘으로도 이 세계는 단번에 벨 수 없다.
벨라가 이번엔 낫을 움직였다. 빠르……보이…….
‘아니, 볼 수 있어!’
지팡이를 든 순간, 벨라의 낫이 닿았다.
카가각!
마치 날이 향할 장소를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감각이다. 몸에서 흘러나온 꿈의 오라가 벨라의 마력을 좀먹었다. 악몽을 좀먹어 정화하려 들었다.
『칼과 방패─드림 웨폰』
“『나이트메어 제로』.”
묘비를 이룬 것처럼 꽂힌 『악몽을 베는 검』들 사이에 새로운 검이 꽂혔다.
내가 쓴 소설, 에 나오는 무기 『드림 웨폰』.
모든 드림 웨폰 시리즈의 시조인 나이트메어 제로는 투박하고 밋밋한 검이다. 자루부터 검 날 끄트머리까지 새카맣고 장식도 문양도 없다.
그러나 이 검은 처음으로 악몽의 괴물을 벤 전설의 검이다. 악몽을 베는 데 특화되어 있으며, 항시 악몽을 잡아먹는 은색 안개를 뿌린다. 다른 드림 웨폰은 이 은색 안개에서 탄생했다. 그렇기에 모든 드림 웨폰 시리즈는 이 검과 가까이 있으면 강해지고, 이 검을 따른다.
악몽의 검은 드림 웨폰 시리즈는 아니더라도 벨라라는 『악몽』을 베는 검이므로 이 무기와 상성이 좋다.
『나이트메어 제로』의 등장을 알리듯 주위에 은색 안개가 깔렸다. 주위에 꽂힌 『악몽을 베는 검』이 제로의 힘에 공명하며 피를 먹은 사신의 낫을 향해 증오심을 드러냈다.
“꺄하하! 이렇게 베이지 않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한 번에 베이지 않아도 보통 두 번, 많아도 10번 안에는 베였는데.”
칼날에 잘려 튕겨나간 꿈 조각이 벨라의 몸에 상처를 남기고, 꿈 조각을 벨 때마다 벨라의 몸에 저주가 내린다. 조각에서 나타난 『별의 물고기 무리』가 대가대상마법을 통해 그 효과를 강화했다.
『아멜다의 기둥─제마의 기둥』
“『프리즈마 헥사그램!』”
죽은 이들의 상념으로 만든 검 중 다섯 자루가 악몽을 잡아 삼키는 기둥으로 변했다. 그런 식으로 잡아 삼켜진 악몽들은 모두 지팡이의 열쇠에 다음 기술을 위해 축적됐다.
『몽현마법(꿈을 현실로)』에 의해 공격이 벨라의 코앞에서 실현됐다. 새벽의 어둠이 순식간에 벨라를 덮쳐들었다.
──서걱!
평소에 비해 가벼운 소리가 주위를 갈랐다.
“……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벨라의 낫이 『프리즈마 헥사그램』을 베었다.
거기까지는 놀라울 것 없었다. 그런데 절단된 것도 아니고 패였을 뿐인 『프리즈마 헥사그램』의 상처가 수복되지 않았으며, 상처에서 질척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반론할 여지없이 ‘피’였다.
모든 베인 단면에서 피를 흘러내리게 만드는 기술.
“표정을 보니 이 기술을 아나 보네? 애들한테 들었구나?”
“당신이 회복할 때 쓰는 기술이라 들었어요. 적에게 상처라는 표식을 남기는 저주의 일종이기도 하다고요.”
벨라의 낫은 피를 흡수한다. 그러므로 피를 흡수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력과 상처를 회복하고 마력을 강화할 수 있다.
낫으로 도저히 벨 수 없는 상대에게 상처라도 새기기 위해, 악을 쓰며 싸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발현된 기술이라고 들었다. 그렇게 새겨진 상처는 벨라의 독기가 고스란히 담긴 만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완벽히 벨 수 없어도 상처가 많아지고, 출혈이 늘다 보면 제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빈틈을 보인다. 쓰러뜨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내가 놀란 것은 시작부터 벨라가 이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술은 구 트라베리아의 마법사가 말할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벨라가 적어도 최근 100여 년 간은 이 기술을 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벨라가 마력을 다 소모할 만한 상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 이것이 벨라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강한 상대에게 상처라도 새기기 위한 마음이 제약으로 변했다. 이 기술은 어디까지나 ‘상처’를 냈을 때만 발현된다. 완전히 베어 버리면, 즉 베고자 한 것을 절단 내어 버리면 소용이 없다.
즉 벨라답지 않게 힘을 제어해야 하는 기술인 것이다.
거기다 이 기술은 그냥 상대의 마법이 단단해 완전히 베이지 않는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적어도 교회의 마법사는 그렇게 착각했을 것이다.
“완전한 정답은 아니지만, 맞아! 나는 선천 마법사가 될 만큼 마력 감응력만은 뛰어났지만 정말 그것뿐이었어. 진짜 마법을 배우는 속도는 더뎠고, 정보를 모을 수 있길 하나, 치료를 할 수 있길 하나. 무언가를 만들 수도 없고, 힘은 잘 제어되지도 않아. 그래도 베고 또 베다 보니까 재주가 적은 나한테도 다른 능력이 생기긴 하더라!”
마법의 피는 뚝뚝 흘러내려 벨라의 늪에 흡수되었다. 벨라는 심지어 낫으로 팔을 베어서 주위에 자신의 피를 뿌렸다. 떨어진 피가 벨라의 그림자에 떨어져 섞이니, 혼돈의 힘에서 살기가 짙어졌다.
상처만 낼 수 있는 것으로 칼날의 범위가 제약당한 대신 베는 힘만은 더 강해진다고 했다. 그렇게 난 상처는 평소보다 굵고 사기가 짙어 이공간의 틈새처럼 보였다.
나는 『프리즈마 헥사그램』을 없애지 않고 마법에 그어진 상처를 살폈다. 봉인당한 100년을 제외하더라도 구 트라베리아의 마법사는 이 기술을 본지 오래 됐다고 했다. 벨라가 진화한 만큼 이 기술도 진화했겠지. 벌써부터 벨라가 본인에게 ‘귀찮기 그지없는’ 이 기술을 쓴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이트메어 제로』
고정된 상처의 강도를 시험할 겸 나는 『제로』를 손에 쥐어 『프리즈마 헥사그램』에 난 상처를 찔렀다. 벨라의 마법은 남겨진 상처조차 날카로웠다. 어쩌면 평범한 칼날보다 날카로울지도 모르겠다. 칼날과 상처가 서로를 베며 상쇄되었다.
“이런….”
나는 손 안에서 부서지는 제로의 칼날을 보며 혀를 찼다. 이래봬도 속에서는 제법 전설적인 검인데.
“꺄하하하! 귀찮아서 안 쓰던 기술인데 너한테 쓰니까 재미있네? 그 상처, 보통은 고정되어 안 사라져. 사라지는 건 주위의 힘을 전부 피로 바꾸고 내 그림자에 스며들 때뿐이야. 피를 다 흡수해도 안 사라지도록 고정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들었어요.”
나는 부서진 칼날에 섞인 피의 저주를 확인했다.
직접 겪어보니 ‘피의 상처’는 내가 쓰고 있는 『별의 지배』나『새벽의 저주』와 상당히 비슷한 성질이다.
온갖 것에 상처를 내 피를 쥐어짜낸다. 혹은 상처가 새겨진 기술을 죽음의 저주와 함께 자리에 고정하는 것으로 대상 기술을 상대가 쓰지 못하게 만든다. 피를 통해 주위의 마력을 흡수한다. 곳곳에 상처를 고정시켜 자신의 마법의 영향력을 높인다.
‘……이건 아마 한동안 보통 칼날만큼은 못 피할 거야.’
내가 벨라의 칼날을 비교적 잘 볼 수 있었던 것은 많이 보았고 본 만큼 책에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의 상처는 지금 처음 경험했다.
나는 곳곳을 헤엄치는 『별의 고래』를 움직여 별무리를 보다 짙게 퍼트렸다.
‘벨라가 이 기술을 꺼낸 건 내 영역을 억누르기 위해서……겠지.’
내 마법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살의와 증오를 듬뿍 담고 있다. 기분 더럽게도 살의는 벨라의 그림자가 가장 좋아하는 양식이기에, 내 마법에서 흘러내린 피는 마법의 본래 속성과 관련 없이 벨라에게 쉽게 흡수되고 만다.
그리고 흡수계열 기술이 대부분 그러하듯, 벨라는 내 마법의 피를 흡수할수록 내 마법을 잘 벨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쏟아진 상처 몇 개를 피하며 나는 벨라를 부술 이미지를 상상했다. 나이트메어 제로는 한동안 쓸 수 없지만, 죽은 이들의 상념으로 구현한 『악몽을 베는 검』들은 벨라의 분신이자 나의 분신이지 『드림 웨폰』시리즈가 아니었다.
“『혼돈의 비명!』”
벨라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혼돈은 키메라 루니라의 몸에서 본 빛과 어둠이 섞이지 못하는 혼돈속성이 아니다. 사전적인 의미의 혼돈에 가깝다.
벨라의 세상은 누군가의 피, 마력, 영혼, 죽음, 원한이 마구 뒤섞여 아주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갈기갈기 잘려 흡수된 것들은 분명 한데 섞여 하나가 되어 있는데 힘과 영혼들이 완전히 융합되지 않고 때때로 벨라와 다른 색을 띤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벨라에게 먹혀 버렸기 때문에 순종적으로 벨라에게 지배당한다.
무수히 많은 얼굴이 달려 있지만 널리 보면 하나의 힘이다. 그림자를 마구 흡수했을 때의 인성이와 조금 비슷하다.
나는 벨라의 마력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죽은 이들의 절망과 비탄을 비명이라 이름 붙였다. 하늘에서 유성이 쏟아졌다. 그것의 정체는 비명들의 대표인『악몽을 베는 검』무리였다.
벨라의 칼날 같은 마력을 파고든 유성군이 내가 원하는 형상을 그렸다.
──꿈을 현실로 바꾸었다.
평소의 벨라라면 당연하게 베어 낼 힘이었다.
그러나 나의 상상이 이루어졌기에 검들은 당연한 현실을 왜곡시켰다. 수십 개의 검이 갈려나가면서도 벨라의 낫을 붙들어 막았고, 그것들은 부서지면서 번개와 마법을 파먹는 블랙홀을 소환하는 등 벨라에게 저주를 토해냈다.
「실체화.」
“실체화.”
문이와 나의 상상이 겹쳤다. 그렇게 벨라에게 근접한 검 세 자루는 폭발하여 벨라의 몸과 마력을 헤집었고, 두 자루는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마냥, 벨라의 마력에서부터 다시 솟아나 벨라의 몸을 꿰뚫었다.
“윽!”
그러나 벨라의 몸은 피마저 칼날이었다. 솟아난 검은 벨라의 몸을 깊숙이 꿰뚫지 못하고 피에 상쇄되었다.
직후 검이 순식간에 벨라에게 베여나갔다. 심지어 평소와 달리 두터운 칼날로 패여 완전히 훼손되어 버렸다.
그래도 뿌린 마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뿌려진 검의 파편을 통해 악몽을, 벨라의 힘을 지배하여 새로운 검은 별을 만들었다. 검은 별이 정화되며 순식간에 남색으로 변하고, 벨라의 주위에 악몽을 정화하는 번개가 일어났다.
“네 특기지!”
그러나 별이 완전히 실체화 되어 벨라를 상처 입히기 전에 벨라가 또다시 두꺼운 날을 허공에 박아 넣었다. 그 상대로 평소에 비하면 아주 느린 속도로, 원을 그리며 주위를 베었다.
“영역을 만드는 것! 주위의 힘을 네 것으로 바꾸는 것! 자기보다 훨씬 강한 사람을 압도하기 위해 천재인 네가 고심한 결과이니 어련할까! 다들 알면서도 빼앗길 수밖에 없고, 다양한 방법으로 당했어. 꺄하하하! 시카가 당했을 땐 웃었어! 우리 중에 시카만큼 영역이 넓고 견고한 마법사도 또 없거든!”
트라베리아의 4강은 벨라를 제외하면 모두 광범위 영역을 중시하는 마법사다. 장미 정원으로 생명을 뒤덮어 버리는 엘리시아, 무수히 많은 공간을 만들고 지배하는 유클라프, 자연의 흐름을 이끄는 시카. 그중에서도 시카의 영역이 가장 대단한가보다.
평소 벨라의 칼날자국은 매우 가늘다. 예를 들어 팔이 잘렸을 때는 실선만큼 얇은 절단면을 제외하고는 훼손된 살과 뼈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다만 절단면을 통해 죽음의 저주가 옮겨 붙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평소와 달리 칼날이 지나가는 장소마다 두꺼운 상처 자국이 이어졌다. 그곳에서 떨어진 피가 모든 것을 삼키려 하는, 베어 버리려 하는, 묻어 버리려 하는 탐욕스러운 살의에 잡아 먹혔다.
벨라의 힘은 조정을 제외하더라도 정화할 수 있는 종류의 사악하고 이질적인 힘이다. 그러나 오히려 혼돈의 힘이 정화의 힘을 잡아먹고 있다. 상성마저 베어 갈기는 강함이라니…….
내 환각마법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더라면 벨라에게 상처를 입힐 수나 있었을까. 그렇게 실체화한 마법조차 칼날 같은 마력에 상쇄되어 금방 힘이 약해진다.
「벨라가 상극의 힘을 묻을 수 있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벨라의 적은 교회였으니까요.」
‘…그러네.’
마녀사냥이 심화되던 시절, 교회에 속한 선천마법사는 모두 겉보기에 신성하다 일컬어지는 힘을 썼다. 적을 벨 수 있는 공격마법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빛, 불꽃, 정화, 치유, 창조, 자연을 반영한 마법…….
교회에서 내세울 만한 힘 중에는 벨라와 상극인 마법이 제법 있다. 그러나 상극 속성이 상대라 해서 벨라가 물러났을 리 없다. 필사적으로 싸워나갔겠지.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앞으로 발을 내디뎌 결국엔 베어 버렸을 것이다.
‘설령 상극 속성이라도, 나에게 불리한 힘을 지니고 있더라도…….’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순간이 되어서야 묻어두고 있던 사실을 실감하고야 만다. 아니, 이런 순간이기 때문이겠지.
트라베리아와 우리는, 벨라와 나는 닮았다.
거울에 비친 그림자처럼 무섭도록 닮았다.
「마스터, 악몽의 첫 번째 조각을 완성하였습니다.」
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벨라는 새벽하늘에 저주받으면서도 별을 베었고, 그러면서도 절단 내지는 않는 것으로 내 저주를 억누르며 혼돈의 영역을 늘렸고, 자신의 마력을 고조시켰다.
거기다 벨라는 지금 ‘피의 상처’를 만드는 게 아주 편할 것이다. 적당히 휘둘러도 웬만한 마법은 한 번에 절단나지 않으니까.
그 결과 서로의 영역이 진탕으로 섞였고, 강화되지 않은 새벽의 이면이 예상보다 빨리 밀리고 있다.
이곳은 벨라의 세계고, 지배자의 언령을 이용하더라도 벨라의 베는 힘을 잡아 삼키는 건 쉽지 않다. 공격은 내가, 벨라의 마력이 지닌 베는 힘을 누르고 악몽의 힘을 잡아 삼키는 뒤편의 조정은 문이가 하고 있다.
“『별의 왕관』, 『별들의 잔치』, 『별의 지팡이』.”
내가 가리킨 것은 지배자의 상징이자 주위의 힘을 지배하는 매개체. 근원에 집어넣은 에서 관련된 페이지가 수십 장 빠져나왔다.
“『문자마법 버전 업데이트』.”
「『새벽의 관리자』.」
나와 문이의 명령이 겹쳤다.
몸에서 빠져나온 페이지가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변해 나를 둘러쌌다. 내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몸 주위에 둘러진 수십 개의 페이지는 멀리서 보면 옷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어 내 온 피부를 따라 사람 형상의 홀로그램이 덧씌워졌다.
문이는 문자마법의 관리자이며, 컴퓨터이며, 나의 분신이다. 그러므로 문이의 형상은 다양하다. 평소에는 사각 스크린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본체는 문자이며 컴퓨터이고, 책으로 변하기도 하고, 사람 모습도 가지고 있다.
처음 문이가 인간형으로 변했을 때는 검은색 머리에 은색 눈동자였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취향을 반영한 모습이었다. 인간형을 선호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분신이라는 사실을 의미 깊게 여기고 있는 문이는 몇 번이고 모습을 바꾸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인간 형태를 고정했다.
문이의 인간형은 나와 쌍둥이처럼 닮았으나 지금보다 약간 어린 모습이었다. 고등학생 정도의 앳된 외면에, 내 배색을 반전시킨 마냥 은색 머리칼과 남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내 몸에 반투명하게 덧씌워진 것은 그 모습이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스크린 위에 관리자와 지배자의 명령이 동시에 새겨졌다.
“『악몽의 첫 번째 조각』.”
명령이 발동하자 스크린의 반이 검게 물들었다. 이어 주위에 퍼진 별 조각 수십 개가 검은 스크린으로 변했다.
스크린의 마력이 내 손 위에 모이며 각이 진 별사탕 같은 검은 별 조형이 나타났다. 『악몽의 지배자』는 책 이외의 사전 작업 없이 벨라의 마력에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영역 기술이지만, 별들을 널리 퍼트리지 않은 상태로 권능을 펼치는 만큼 단계를 거쳐 진화한 지배자의 힘에 비하면 지배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 조각은 흡수한 벨라의 마력에 꿈의 지배력을 섞어 만들어 낸 매개체다. 악몽을 일정 이상 흡수해 새벽으로 바꾸었다는 증거이며, 정화된 악몽인 『악몽의 파편』이 벨라의 마력을 보다 쉽게 파헤치고, 흡수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맛있으면 좋을 텐데.’
마법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마법을 먹어왔다. 내 먹는 힘이 진정으로 큰 효과를 발휘할 때는 언제고 직접 입 안에 넣고 삼켰을 때였다.
반복되는 행동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것은 이미 나에게 의식이나 다름없었다.
『악몽의 첫 번째 조각』을 입에 가져가려한 순간 벨라가 ‘칼날’을 사용했다. 문이가 내 몸을 둘러싼 검은 스크린을 방패삼아 움직였다.
벨라의 칼날이 스크린에 닿은 것은 내가 악몽의 첫 번째 조각을 입 안에 넣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칼날이 관리자의 방패를 베고, 스크린에서 흘러나온 책의 문장이 저주로 변해 벨라를 집어 삼킨다…….
저주는 언제나처럼 발동했다. 그러나 나와 문이는 벨라의 칼날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칼날에 담긴 사념이, 칼날의 베는 힘이……평소보다 훨씬, 아주 많이 날카로워졌다. 저주의 반이 칼날에 닿은 순간 베여 상쇄될 정도로.
나는 책과 관리자의 힘을 통해 벨라의 마력 변화를 해석하며 입에 넣은 악몽의 조각을 씹어 삼켰다.
‘…기분 나쁜 맛.’
벨라의 마력은 굳이 따지자면 맛있는 편이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의 목숨을 집어삼킨 만큼 기분 나빴다.
그러나 마력의 겉 표면이 녹은 순간 악몽은 환희하듯 빛나며 내 안으로 녹아들었다.
쓰고 질척하고 중독될 것처럼 지독한 단맛이 순식간에 톡톡 쏘는 단맛으로 변했다. 악몽이 새벽으로 변하는 순간이 절묘하게 표현된 맛이다.
악몽의 조각이 내 안에 녹아든 순간 나를 둘러싼 마법들에 변화가 생겼다. 오른 손등에, 왕관에, 지팡이 안에 검은색과 은색이 그러데이션 된 팔각 별 문양이 새겨졌다.
쿵!
가슴이 크게 뛰었다. 나는 지팡이를 손에 들며 벨라를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낫이 나를 향해 그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콰과과과광!!!
격렬한 파열음과 함께 내 앞을 가로막던 스크린 수십 장이 산산조각 나고, 내 머리 위를 칼날이 지나갔다.
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역시 벨라의 힘은 처음보다 훨씬 고조되었다. 악몽(벨라)을 향한 내 영향력이 강해진 걸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날아간 칼날이 내 꿈들의 외벽을 잘라냈다. 지금 칼날로는 새벽의 풍경을 완전히 베어내지 못할 것을 느꼈는지 중간에 피의 상처로 바뀌었다. 새벽의 균열에서 흘러내리는 내 원한이 벨라의 마력에 녹아 질척질척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문이가 싸움의 기록을 통해 벨라의 마법과 마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내게 알려 주었다.
벨라는 피를 먹고 회복하며 강해진다. 그러나 예상보다 증강 속도가 크고 빠르다. 거기다 마력이 평소보다 더 진득한 기세를 뿌리고 있다.
두근….
악몽을 향한 감각이 보다 날카로워진 것을 느끼며 지팡이를 꽉 잡았다.
나는 악몽을 삼켰고, 악몽을 해석했고, ……악몽과 공명하고 있다.
벨라의 마력은 언제나 날을 세우고 모든 감지를 잘라 낸다. 여전히 자세히 보려고 하면 눈이나 정신이 아프지만, 악몽의 마음이 일부 흐르듯이 내게 와 닿았다.
피의 상처에 연결된 사슬이 보였다. 그것들이 벨라의 마력과 마법을 구속하고 있다.
……그래, 피의 상처는 제약이다.
완전히 절단 내지 않는 대신 상처를 내는 날카로움이 강화된다고는 하지만, 벨라의 마법이 지닌 이념은 언제나 ‘베는 것’이다.
벤다.
그 어떤 단단한 것이라도, 그 어떤 강대한 마력이 상대라 할지라도 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칼날을 박아 넣을 것이다. 벨라는 무시무시하게 강대한 마법을 앞에 두고 얇디얇은 궤도에 모든 힘을 집중했다.
그렇게 수 백 년 간 갈아온 칼날이다. ‘벤다’는 것은 벨라의 마법이 지닌 전부고, 적을 앞에 두고 칼날을 멈추는 것은 벨라의 사상을 뒤엎는 짓이다.
마법사에게 제약이란 만일의 경우에 몸을 지키거나, 리스크를 지더라도 원하는 어떤 힘을 손에 넣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피의 상처가 지닌 제약은 필요 이상으로 크다. 상대의 마법을 피로 바꾸고, 좀 더 상대에게 쉽게 상처를 입히고, 흡수하고, 회복하는 것 따위는 베는 것을 제한하는 제약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치고는 너무 작다.
상대할 수 없는 강대한 적이 많았던 과거에는 큰 가치였을지도 모르나 지금의 벨라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벨 수 있다.
거기다 피의 상처는 보다 많은 피를 흡수하기 위한 기술일 뿐, 평소의 절단면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제약의 가치를 이루고 남아도는 마법과 마음은 어디로 향하는가. 어디로 고이는가…….
나는 지팡이를 위로 들었다. 지팡이 주위로 『악몽의 파편』이 별로 변해 반짝였다. 별의 반짝임이 만들어 낸 원이 지팡이 주위로 죽은 이들의 피와 사념을 끌어들였다.
“아~. 직접 먹는 게 제일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제 진짜 쉽지 않단 말이야~.”
무심코 표정이 더 굳어졌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웃고 싶은 것 같기도, 울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벨라는 지금 전에 없이 신중했다. 놀이 같이 낫을 그었던 예전과는 다르다. 내 전투 방법을 나름대로 파악해선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벨라는 초반부터 피의 상처를 사용했다. 내가 한 장소에 오래 있을수록 강해진다는 걸 알고, 내가 가장 강해졌을 때도 문제없이 나를 죽이기 위해서, 그녀도 자신의 마법을 증폭시키며 힘을 모아두는 방법을 택했다.
피의 상처로 베는 것을 제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벨라의 ‘베는 힘’은 날카로워진다.
벨라는 지금 참극이 일어나고 처음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다해 적을, 나를 상대하고 있다.
“『악몽의 꿈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