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60
머지않아 체육 시간이 되었다. 요즘 체육 선생님은 무술 연습과 회피 훈련을 시킨다. 가끔은 애들끼리 대련을 시키기도 한다. 참고로 난 이 대련 시간이 제일 껄끄러웠다.
가상 공간에서는 실컷 대련을 하면서 왜 현실에서 하는 대련은 껄끄러워하냐고 묻는다면……그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렇지. 그나마 한수나 인하가 상대라면 적당히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랑 하면 그냥 당해 주는 편이다. 그러니까……지금처럼.
“에잇!”
“…….”
나는 나에게로 날아오는 마력 화살을 보며 마력을 얇게 펴 배리어를 만들어 냈다. 결국 공격할 결심이 안 들어 못 이기는 척 뒤로 넘어졌다.
“윽……!”
“앗싸, 이겼다!”
나는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정말……연기하기도 참 힘들다.
돌아온 나를 향해 한수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너 왜 매일 그렇게 져 주는 거야?”
“매일은 아냐. 가끔은 이긴다고.”
“아니, 그래도……아, 답답하네.
“내버려 둬. 은하 맘이지.”
“그래도 분하잖아.”
“뭐 어때. 은하가 그러고 싶다는데.”
체육 수업 다음 시간은 자습 시간이다. 자율 학습 시간, 즉 자유롭게 마법 실습 혹은 연습을 하는 시간이다. 애초에 자습을 하는 곳이 마법 실습실이니, 이건 그냥 말만 안 할 뿐이지 훈련하라고 종용하는 게 아닐까.
“은하야. 이번 자습 시간에 나랑 같이 연습하자. 응? 그러자?”
“야, 왜 매번 너랑만 해야 하는데? 아니, 이번엔 나랑 하자. 알았지? 나랑 하는 거다.”
“야, 박한수, 너 저리 안 비켜?”
“너야말로 비키지?”
잘 대화하는가 싶더니 또 이렇게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은 양쪽에서 내 팔을 한쪽씩 잡은 채 서로를 으르렁거리며 노려보았다. 매번 있는 일이라 이미 익숙하다.
“그래그래. 다 같이 하면 되겠네.”
“…….”
그러면 인하와 한수는 이번엔 말없이 서로를 노려본다. 이 구도, 마치 엄마를 뺏기기 싫은 아이들 같다. 처음엔 불편했는데 익숙해지니 꽤 재미있다.
“강인하, 넌 눈치도 없냐? 왜 자꾸 내가 뭐라 말하려 할 때마다 끼어드는데?”
“너야말로 나랑 은하 사이 방해하지 말고 은하 팔 좀 놓지?”
“너나 놓으시지.”
““흥!””
귀여운 것들. 그런 생각을 하며 마법 실습실로 향하는데, 조금 멀리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참 끈질기네. 교내로 들어오고 싶으면 미리 약속을 하고 오세요. 아니면 허가증을 받아 오거나. 어때? 제현아.”
“행정실에 연락을 해 봤지만 관계된 사람도 없고 약속한 일도 없다더군요.”
“아니, 잠깐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 정도는……!”
“요즘 테러 사건을 비롯해 학생 유괴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죠? 우리 대현은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신분이 확실하더라도 학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경우엔 출입이 금지됩니다.”
“거 까다롭게……! 자꾸 건방지게 굴면…….”
“싸우겠다고요? 아시겠지만, 대현의 가드는 전원 B랭크 이상의 마법사입니다.”
“윽……!”
우리는 걸어가다 말고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뒤뜰에서 은희 언니, 제현 오빠, 천호 오빠, 우리 학교 가드 세 사람이 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저희 학교는 관계자가 아닌 이상 출입문 이외의 방법으로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문을 통해 들어왔다면 당신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터. 이건 엄연한 불법 침입입니다. 또한 이 학교 내는 치외 법권 구역. 이 학교의 교칙만이 이 학교의 법입니다. 하지만 학교의 관계자라는 증표가 없으면 개구멍으로 들어오는 것도 불가능할 텐데……유천호, 수색해.”
“오케이!”
천호 오빠가 흔쾌히 대답하고는 남자의 몸을 기계로 수색했다. 삑! 소리가 울리며 구슬 같은 것이 옷을 통과하며 떠올랐다. 은희 언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건……학생증이잖아?”
은희 언니는 다급히 학생증을 컴퓨터로 조회하더니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실 신고가 들어와 있네……. 그나마 목숨은 부지했군.”
은희 언니가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부딪쳤다. 그러자 손목을 등 뒤로 잡힌 채 제압되어 있던 남자의 손목에서 묘한 빛을 띤 식물 줄기가 자라나더니 남자의 손목을 칭칭 감아 묶었다. 쉽게 끊어질 것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단단한 마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어느새 긴장한 채 그 장면을 주시했다. 한수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불법 침입자인가……?”
“우리 학교는 유명하니까…….”
“……거기 누구야?”
그런데 그 목소리가 들렸나 보다. 내 양옆에 있던 한수와 인하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허리를 곧게 펴는 반면 나는 흠칫 몸을 움츠렸다. 이내 우리의 얼굴을 확인한 세 사람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희 여기서 뭐 해?”
제현 오빠가 묻자 한수가 시큰둥하고 건방지게 대답했다.
“뭐 하긴. 이동 수업 교실 가는 거야. 이쪽 길에 이어진 건물에 마법 실습실로 가는 게이트 로드(지름길: 마법 통로)가 있으니까.”
“오, 용케 눈치챘네?”
인하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공간을 구부려 놓은 곳이 있더라고요.”
“저번에 하마터면 미아가 될 뻔했지 뭐예요.”
“아하하. 그럴 걱정은 없어. 그 통로에 잘못 걸리면 우리한테 연락이 오니까. 애초에 웬만큼 마력이 쌓이지 않으면 발견할 수도 없어.”
그렇다고 한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세 사람과 인사했다. 침입자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우리가 물을 일이 아닌 것 같아 일부러 질문하지 않았다. 그런데……우리와 만나 선배들이 예기치 않게 마음을 놓은 틈을 타 남자가 천호 오빠의 마법을 뿌리치고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게 아닌가.
“우아아아악!”
“……!”
나는 깜짝 놀라 몸을 굳혔다. 그러나 그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전에 언니 오빠들이 움직였다. 제현 오빠가 다시금 그 남자의 몸을 짓누르고, 천호 오빠가 바람의 힘을 강화했다.
그것보다 조금 늦게, 인하와 한수도 마법을 발동했다. 나무로 된 창과 빛으로 된 창이 각각 남자를 겨누었다.
척!
“야, 야…….”
저 세 사람은 그렇다 치고, 너희들은 또 왜 이렇게 살벌해? 나는 당황하며 양쪽에서 애들의 팔을 붙잡았다.
“저게 감히 은하를 공격하려고 해?”
“……용서 못 해.”
“야, 너희들, 아무리 그래도 저 사람은 어른이고……그리고 무조건 마법을 겨누는 건……됐다. 아, 언니, 오빠들, 방해해서 죄송해요.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는 어색하게 친구들을 이끌며 인사하고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함께 물러났다기보다는 물러나게 하기 위해 양팔에 힘을 주어 친구들을 질질 끌었다. 여전히 두 사람은 저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뒤에서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와우! 멋있는데?”
“……많이 컸군.”
“은하 좋겠다~.”
아니, 왜 흐뭇해하는 거냐고! 아이들이 난폭해졌는데 흐뭇해하지 말라고!
‘언니랑 오빠들은 정말 가끔 핀트가 이상하다니까.’
내가 소심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방금 친구들이 한 행동은 멋있는 게 아니라 위험천만한 거다. 마법부터 겨누는 건 대체 어디서 배운 버릇인지…….
──라는 말을, 민희와 현호에게도 한번 해 보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반응이 언니 오빠들이랑 완전히 똑같았다.
“잘한 거야. 감히 은하한테 덤비다니!”
“흥.”
“역시 한수랑 인하는 멋있어.”
칭찬하는 민희나, 뻐기는 인하나, 감탄하는 현호나 오십보백보다. 뭐야, 진짜. 얘들 왜 이래.
하아……나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디서부터 인식을 고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아직 4학년밖에 안 된 녀석들이, 왜 사람을 공격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거냐고!
“하지만 최근 테러 사건이 늘었다는 건 진짜래. 들었어?”
“뭐?”
나는 민희의 말에 약간 놀라 고개를 들었다. 민희가 내 반응을 보고 ‘아…….’ 하고 짧게 신음 소리를 냈다.
“은하는 책은 많이 봐도 신문이나 뉴스는 별로 안 보지?”
“……검색어 순위가 높은 것만 조금?”
나는 민망함을 숨기기 위해 배시시 웃었다. 민희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왠지, 반대로 얘들이 나를 어린애 취급 하게 된 것 같다. 심정이 조금 복잡했다.
“요즘 블랙 재규어라는 조직이 한국 내에서 테러를 벌인다는 거 말이야. 마법사들의 랭크는 높지 않은데 작전이 대단한지 꼬리가 안 잡힌대. 그러다가 말단이 몇 명 잡혔는데……글쎄 그게 몇 년 전 실종됐던 아이라는 거 있지? 그 조직은 아이를 납치해서 고문하고 훈련시킨다는 거야. 그거 보고 진짜 기분 나쁘더라고.”
“아! 나도 아침에 TV에서 봤어!”
현호가 아는 척을 했다. 그거라면 나도 들었다.
“그래서 요즘 랭크가 높은 마법사들이 블랙 재규어를 잡기 위해 수색하고 있대.”
“……들었어. 우리 엄마도 거기에 참가했거든.”
“인하네 엄마도?”
맞다. 그래서였다.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선아 아줌마한테서 들었다. 옆에서 한수도 막 떠올랐다는 투로 말했다.
“아……우리 엄마도다.”
한수네 엄마까지? 민희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오빠 말로는, 우리 학교도 그렇대. 우리 학교 정식 명칭이 대현 마법사 보호 협회잖아. 어린 마법사를 보호하는 데 신경 쓰고 있잖아. 그래서 나섰다나 봐.”
“한수랑 인하네 엄마는 또 남의 일이 아니잖아. 한수도 인하도 납치하기엔 딱 좋은…….”
“아냐. 그건 아니지.”
현호의 의견은 틀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수랑 인하가 납치당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어떤 조직이 생각도 없이 그런 짓을 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린 마법사한테 싸움을 걸겠어?”
“음……하긴 그러네.”
“그래도 불안하긴 하겠지. 음……우리도 좀 조심해야겠다.”
“응…….”
에휴.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되면 우리는 상당한 실력을 갖춘 마법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이런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겠지…….
새삼스럽지만 이 학교에 입학하길 참 잘했다. 은희 언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랑 은희 언니가 알게 된 계기도 테러 사건이었지…….’
우리는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모처럼 인터넷으로 뉴스를 살폈다. 민희가 말한 블랙 재규어에 대해서.
『갑자기 부상한 어둠의 조직, 블랙 재규어.』
『단원 중에는 채 성년이 되지 못한 아이들도 있어…….』
『고문당한 흔적이 있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납치당해 조직원으로서 키워졌다고 한다. 도망치거나 배신할 수 없도록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거나 아예 기억이 지워진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보호 중이며 세계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 현재 다섯 명의 아이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단원들의 금제를 푼 후 전 단원들의 입을 통해 들은 말로는, 간부의 마법 실력은 C랭크에서 B랭크로 확인. C랭크 위험 조직으로 한국 공식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참 무섭다. 나는 뉴스의 글들을 보며 오싹함을 느꼈다. 그러나 위험이 가슴에 깊숙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보통은 다들 그럴 것이다.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그리고 나의 그 믿음은 바로 학교와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다.
이 세계가 위험한 세계임은 잘 알고 있다. 테러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님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납치라면 모를까, 설마 우리 학교를 테러 할 만한 조직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닥치는 대로 민가를 테러 할 사람도 많지 않을 테고. 그랬다간 마법사 헌법에 따라 무시무시한 철퇴가 가해질 것이다. 나도 친구들도 다 안전 구역에서 살고 있다. 여차하면 도시 결계가 발동한다. 또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전부 텔레포트로 등하교를 하고 있다. 납치당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최근 블랙 재규어의 활동이 뜸해졌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계속 이 상태로는 꼬리를 잡기 힘들 텐데.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였다.
☆
그날도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한 나는 한수와 인하에게 어떤 훈련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친구들에 비해 나는 훈련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다른 친구들은 수업 시간, 체력 훈련, 개인 선생님과의 훈련을 제외하고 개인 훈련은 그다지 많이 하지 않는다. 민희는 도장에 다니고 있고 한수와 인하, 현호도 시간을 내 가상훈련을 하지만 열을 내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누가 봐도 상당하다 싶을 정도로 스케줄을 짜 훈련을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된 마법에 대한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갔고, 그것은 지고 싶지 않다는 호승심으로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나는 마법을 쓰는 게 너무너무 즐거웠다.
내 마법의 형태가 문자나 환각, 결계라는 특이한 형태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전투용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섞일 수 있는,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라 그 마법에서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하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그리고 전투 훈련이나 대련 훈련은 그 쓰임새를 발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요즘엔 일어나면 마력을 늘리기 위한 내(內)법 명상부터 한다. 또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마력을 항상 몸 주위에 돌리면서 유지하기도 하고, 학교를 마친 후엔 스승님과 만나서 훈련하거나, 아니면 인하와 함께 자율 훈련을 하기도 하고, 혹은 나 혼자 훈련한다. 예전에 수첩에 적어 두었던 마법을 실행하고, 또 더 없나 생각해 보기도 하고, 마법을 마구잡이로 써 보기도 한다.
또 가상훈련을 즐겨 하고 있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많이 하지만, 자는 동안에 수면 모드로 전투 훈련을 하거나, 아니면 꿈속 세계를 돌아다닌다. 참고로, 자기 전에도 한 번 명상을 한다. 이번에는 육체를 강화하기 위한 외(外)법 명상이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면 모드 가상훈련 재미있더라. 뭣보다 자면서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 하긴, 내 메인마법은 원래 꿈과 관련 있는 마법이지만.”
“넌 마법 훈련 말고 딴 건 안 하냐?”
“당연히 하지. 책도 읽고, 액세서리도 만들고, 인하랑 놀기도 하고. 너희들이랑도 놀잖아?”
“하여간 엄청 성실하다니까.”
한수가 픽 웃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투면서 눈빛은 무척 다정하다. 내가 웃자, 인하가 약간 코웃음을 쳤다.
“은하는 언제나 성실해.”
평화로웠다. 반 안에 아이들이 들어차고, 곧 수업 종이 울렸다. 나는 나른한 표정으로 수업을 들었다. 국어 시간의 즐거움은 시와 단편 소설을 읽는 것이다. 이 나라의 소설은 내가 알던 21세기의 소설과는 사뭇 달랐다. 애초에 마법이 섞인 세계니 다를 수밖에 없다. 평범한 성장 소설조차 판타지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이 세계의 소설은 정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소설 천지였다.
그때 나는 갑자기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무심코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왠지 하늘이 일그러지는 것 같았는데……?’
그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 직후였다. 평범한 하늘처럼 보였으나, 위화감을 느낀 눈이 반사적으로 시야를 개방했다. 그러자 위에서부터 서서히 녹아 사라지고 있는 ‘결계’가 보였다.
“……!”
나는 숨을 들이켰다.
‘학교를 보호하고 있던 결계가 무너지고 있어? 왜 갑자기……?’
나는 긴장을 무표정 속에 숨겼다. 선생님도, 반 아이들도 누구 하나 이 이변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눈을 감고 감각을 극대화했다. 주변에 퍼진 모든 마력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내 감각에 무언가가 와닿았다.
‘뭐야, 이건?!’
멀리에서 다가오는……거대한 불덩어리 같은…….
공격이다! 찰나, 나는 그것을 느끼고 숨을 삼켰다. 매우 커다랗고 위협적이었다. 속도는 느려도 크기와 모습만큼은 운석과 닮아 있었다.
무섭게도, 그 운석은 똑바로 우리 교실로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다른 방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마법을 펼쳤다.
다행히 주위에는 우리가 있는 건물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많은 건물이 없다. 심지어 창가 아래는 운동장이다. 나는 마력의 궤도를 필사적으로 읽고서, 그 궤도가 향하는……내 바로 옆, 창가, 운동장 가운데쯤에 결계를 세웠다.
그건 우뚝 솟아오른 공기의 벽이었다. 건물만큼 길고 크고 두꺼운 정육면체의 투명한 벽. 나는 집중했다.
“어? 밖에 뭔가…….”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이변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피할 시기가 지난 상태였다. 찰나였다. 내가 그것을 생각한 것도, 결계를 세운 것도, 전부.
그 감각이었다. 위험한 순간을 맞았을 때 나를 제외하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모두 피해!”
“이미 늦었어!”
“꺄아아아악!”
쾅! 담임 선생님이 방어막을 치기도 전에 운석이 내 결계와 부딪쳤다. 그것은 빠른 스피드로 날아와 금방이라도 내 결계를 깨부수고 우리를 들이박을 것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힘을 쥐어짜 냈다.
‘집중해……. 감싸듯이, 받아들여……튕겨 내는 거야.’
내가 눈을 번쩍 뜬 순간 불덩어리가 결계에 부딪쳐 튕겨 나갔다. 나는 삼키고 있던 숨을 겨우 내뱉었다. 속에서부터 밀려드는 벅찬 감각에 입을 틀어막았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아팠다. 갑작스런 마력 소모 때문이다.
“헉……헉…….”
“뭐, 뭐야? 불덩어리가 튕겨 나갔어?!”
“뭐야! 지금 거, 혹시 공격이야……?”
교실 안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우리 교실만이 아니다. 옆 반에서도, 아래층에서도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고함 소리, 비명 소리, 당황하는 소리, 온갖 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가슴을 움켜쥔 채 숨을 헐떡였다.
“이게 무슨……. 야! 은하, 야, 너 왜 그래?”
“은하 너……설마……!”
인하가 숨을 삼키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한수 역시 무언가를 눈치채곤 다급하게 나를 부축하며 속삭였다.
“네가 한 거야? 방금……공격을 튕겨 낸 거……?”
그 순간이었다. 나는 오싹한 기분에 고개를 들었다. 안 그래도 가장 마력이 많이 드는 결계마법을 쓴 덕분에 지쳐 있었건만, 나는 다급하게 창가에 다가가 창틀을 붙잡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일그러졌다. 구름 같은 보라색 마력이 하늘을 덮어 가고 있었다. 저건……‘결계’다! 방금 우리에게 공격을 날린 누군가가 우리가 여기에서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방해 결계를 친 거다! 나는 당황해서 마력을 일으켜 보았다. 그러자 몸 밖에서 저항하는 마력이 느껴졌다. 나야 마법 제어가 특기니까 괜찮다고 쳐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소리쳤다.
“얘들아! 지금은 긴급 상황이야! 학년별로 모여서 지금 당장 강당으로 간다! 강당 체육관에 A랭크 결계가 설치되어 있어! 옆 반이랑 합류한다! 따라와!”
“……은하야.”
인하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아 왔다. 몸을 벌벌 떨던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으며 겨우 진정했다. 힘겹게 한 걸음, 걸음을 옮겼다. 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테러? 습격?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도망가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내가 친구들을 지켜야 돼.’
“……이제 괜찮아. 가자.”
두 사람은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아이들은 불안해하며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선생님의 지시를 따랐다. 지금으로선 선생님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저기 있다!”
“제길! 쓸데없이 넓기는! 드디어 교실을 찾았어!”
“이런……!”
낯선 목소리와 먼저 교실을 나섰던 선생님의 당황한 음성이 들렸다. 그 직후, 비명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사라졌다. 나는 당황하며 흘끔 밖을 보았다. 다행히 테러범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선생님들 앞에 기절해 있었다.
나가 보니 다른 반 아이들도 전부 복도로 나와 있었다. 합류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우리 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 다급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민희와 현호가 우리에게 달려왔다.
“은하야, 인하야, 한수야! 너희들 다 괜찮아?”
“응. 너희들은?”
“괜찮아! 하지만 갑자기 이게 웬……. 나 아까 불덩이가 날아왔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 다행히 학교 사람들이 막아 준 것 같지만…….”
민희가 울상을 지으며 하는 말에 한수가 잠시 주위 눈치를 보더니 민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거 말인데……사실 은하가 한 거다.”
“뭐?!”
민희와 현호가 화들짝 놀라 나를 보았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경악했다.
어쨌거나……우리는 안심했다. 이제 선생님들이 어떻게 해 주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 모였죠?”
“그럼 이제부터 강당으로 텔레포트를…….”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복도 양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무장한 테러범들이 각기 우리에게 총을 겨누었다. 헉!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포위당했어……!”
“멍청하긴. 설마 우리들이 여기 구조도 확인 안 하고 왔을 거라고 생각했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 그 말, 우릴 겨우 발견했다는 말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페이크였다는 건가. 그사이 저들은 우리 교실을 포위했다.
“자, 얌전히 죽어 주시지. 아니면 아이들이 다쳐도 좋은가?”
“선생님! 텔레포트를!”
“흥!”
담임 선생님이 당황하며 옆 반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옆 반 선생님이 눈을 크게 떴다.
“텔레포트가……안 돼……?!”
“네?!”
뭐라고? 담임 선생님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하늘을 뒤덮었던 보라색 결계였다. 붉은색 마력을 띤, 옅은 보라색 결계. 그……마력의 흐름을 방해하던……설마!
그때 무엇이 떠올랐는지 민희가 급하게 주머니에서 텔레포트 배지를 꺼내 들었다. 배지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던 민희가 곧 다급하게 소리쳤다.
“정말이야! 텔레포트가 안 돼!”
“뭐?!”
우리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 사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아까부터 가드나 다른 조직원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연결이 안 돼요! 마치 이 학교 전체가 뭔가의……방해를 받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