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637
“문이, 여기 탐색할 수 있겠어? 이렇게 넓으니까 어딘가에 안내도가 있을 것도 같은데…….”
“실례합니다!”
그때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눈앞에 작은 빛덩어리가 생겨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규 방문자님. 이 차원 도서관의 안내역을 맡고 있는 경계선의 요정, 유유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도서관을 구경하시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작았던 빛덩어리는 점점 커지더니 나와 비슷한 크기가 되었다.
성인 여성치고는 작은 키에 귀가 길쭉하고 등에 반투명한 나비 날개가 달렸으며 안경을 썼다. 몸 주위에 테두리처럼 흐르는 빛은 도서관……이라기보다 도서관 주변을 장식하는 정원의 힘과 무척 닮았다.
사람의, 그 이전에 생물의 기척 같지가 않다. 그래서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방문자님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유은하입니다.”
“네, 유은하 님! 도서관의 지도를 송신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유은하 님의 마법에 접촉해도 괜찮을까요?”
요정 유유가 문이를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여 승낙하자 문이의 안에 차원 도서관의 지도가 전송 되었다.
“이건 이 도서관을 이용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입니다. 꼭 읽고 지켜주세요!”
유유가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두루마리 종이를 펼쳤다.
『-도서관 안에서는 다투지 않는다.
-허락되지 않은 장소에 억지로
입장하려 들지 않는다.
-자료를 훼손하지 않는다.
-도서관 내의 자료는 대출할 수 없 으며 바깥으로 유출해선 안 된다.
-도서관이나 자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원에게 물어본다.』
뭐랄까, 기본적인 규칙이었다. 내가 규칙을 전부 읽었음을 눈치챈 유유가 첨언했다.
“이것만 지켜주시면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데 문제가 없으실 거예요. 애초에 여기에 들어오신 것만도 굉장한 걸요.”
이내 유유는 두루마리의 두 번째 줄을 가리켰다.
“볼 수 있는 정보는 영혼과 지닌 힘의 등급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료실에 출입이 가능해도 그 자료실의 자료를 다 해석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점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다만! 도서관에 회원 등록을 하면 확실하게 더 많은 정보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회원 등록을 하시겠습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하겠어요.”
“그럼 여기에 손을 올려주세요!”
유유가 소환한 보석 위로 작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마법진 위에 손을 올리니 마법진과 보석이 내 손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빠져 나왔다.
“힘과 영혼을 확인하였습니다. …와, 등급이 굉장히 높으신데요?”
“그런가요?”
“네! 대부분의 자료실을 이용 가능하세요. 다만 맨 마지막 층의 몇 군데는 한 세계의 주신 수준이 아닌 한 출입이 불가능하니 기억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마법진을 없애고 다시 가지런히 손을 모은 유유가 내게 물었다.
“찾으시는 자료가 있나요? 아니면 유은하 님이 읽으면 유용할 법한 자료를 추천해드릴까요?”
나는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러나 곧 오기 전에 미리 마음속에 정해두었던, 원하는 자료의 부류를 말했다.
“찾는 자료가 있어요.”
“말씀해주시면 해당하는 자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피의 맹약, 노화를 완화하거나 노화하면서도 건강을 지키는 법, 별의 도시,”
관리자들이 보다 빨리 해방되는 방법, 혹은 세계와의 계약을 대신할 대가에 대해서는 어떤 키워드로 자료를 찾아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별의 도시가 세계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기술되어 있는지부터 알아볼 생각이다.
“첫 번째 세계,”
다음 단어를 읊으면서 나는 조금 긴장했다. 교차된 세계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장소라고 했다. 과연 이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올까?
“창조신 아스라리멜 에쉬리안나. ……이 다섯 가지 정보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주셨으면 해요.”
“…….”
유유는 눈을 크게 뜬 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움직였다.
“와, 헉, 우와! 아, 죄송합니다. 등급이 높으실 만하네요! 그분의 이름을 말한 건 유은하 님이 처음이에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이곳은 에쉬리안나 님의 이름을 인식하고 있는 세계였나 보다. 적어도 이곳의 직원이 알 정도로는.
“그런가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유은하 님의 등급으로는 뒤의 두 가지 정보와 관련된 자료에는 접근하실 수 없어요.”
유유가 눈썹과 어깨를 늘어뜨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그건 한 세계의 창조신 정도가 아니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요.”
“…….”
예상은 했었다. 예상이 사실로 나타난 게 조금 슬펐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앞의 세 정보를 찾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요정은 도서관과 연결된 컴퓨터를 소환해 자료를 검색했다.
“첫 번째 정보는 등급이 높으며 자료가 적고, 두 번째 정보는 등급이 다양하며 자료의 양이 많고, 세 번째 정보는 등급은 보통에 자료가 적습니다. 유은하 님의 컴퓨터에 관련된 자료 코드와 자료가 비치된 자료실의 정보를 송신해드릴게요!”
나와 문이는 송신된 자료와 자료실 목록을 확인했다. 피의 맹약과 별의 도시는 각기 한 자료실에만 들르면 되는데, 노화에 관련해서는 18개의 자료실에 100권이 넘는 서적이 흩어져 있었다.
“필요하시다면 원하는 자료실 앞으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음…아뇨. 괜찮아요. 온 김에 둘러보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저희를 불러주세요! 구역마다 안내인이, 자료실마다 사서가 있답니다!”
“네.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유유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작은 빛덩어리로 변해 사라졌다.
나는 우선 피의 맹약과 관련된 자료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자료실의 위치를 확인하고 계단으로 향했다.
수십 층을 오르며 가까운 복도를 엿봤다. 그러나 어느 층이든 구조도 분위기도 비슷했다.
지도를 확인하다 층 드문드문 휴게실과 상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7층의 휴게실과 상점에 잠깐 들러봤다.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상점에는 상점을 관리하는 요정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오늘 처음 방문하신 유은하 님이시군요.”
“상점에서는 뭘 파나요?”
“자료를 읽거나 해석하는 데 도움 되는 물건, 세계의 경계선에 떠밀려오는 기운, 구급약, 간이 식품 등을 판매한답니다.”
“그렇군요.”
“유은하 님은 등급이 높으시니 자료용 도구를 구비하실 경우 20층 이후에 있는 상점에서 구매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온 지 꽤 시간이 지났으나 문이의 탐색 기능으로는 도서관의 구조를 두리뭉술하게 밖에 파악하지 못했다. 신들이 발을 옮기는 장소니 이것만 해도 대단한 걸지도.내가 목표로 하는 자료실은 30층의 가장 구석에 있었다. 자료실 앞 푯말에는 『세계의 규율─2등급』이라 적혀 있었다.
금속과 보석이 어우러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실내와 무수히 많은 책꽂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개 중에는 소리나 영상을 담은 것도 많은 것 같았다.
문을 닫고 몇 걸음 움직인 순간 책꽂이 안쪽에서 제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의 등에는 잠자리와 비슷한 날개가 달려 있었다.
“유은하 님이시죠?”
“네.”
“유유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는 사서인 메젤입니다. 찾으러 오신 자료를 가져다 드릴까요?”
“그래 주시면 고맙죠.”
남자의 장갑 낀 손이 빛나더니 책꽂이 너머에서 세 권의 책이 날아왔다.
“, , 입니다. 세 권 모두 유은하 님이 찾으시는 ‘피의 맹약’의 설명과 사례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나는 자료들을 열어 목차만이라도 확인해보았다. 뒤로 갈수록 페이지 수가 적었다. 그런데도 책의 두께는 셋 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다. 흘끔 책꽂이를 살펴본 바, 이 세 권만이 아니라 모든 자료의 두께가 통일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책은 도서관에서 반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도서관 내에서 읽어주셔야 합니다. 안쪽에 열람용 책상과 의자가 있습니다. 도서관 바깥으로 가져가지만 않는다면 어디에서 읽으셔도 문제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인사하고 나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요정이 또 한 번 말을 걸었다.
“현재 여기 30층에는 유은하 님 외에 5명의 회원이 계십니다. 대화는 얼마든지 나누셔도 괜찮습니다만, 힘을 써서 싸우는 건 금지 사항입니다.”
……5명.
호기심이 일어 나는 물어보았다.
“지금 도서관에 있는 사람은 총 몇 명인가요? 아, 직원분들을 제외한 숫자가 궁금해요.”
“17분이 체재 중입니다.”
적은지 많은지 잘 모르겠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것 아닌 일입니다.”
빙긋 웃은 요정이 몸을 돌렸다.
나도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책상이 있을 법한 곳으로 걸어갔다.
“…아.”
표지판과 카펫을 따라 책꽂이를 수십 개 지났을 무렵 책에 담긴 신묘한 기운에 묻혀 잘 느껴지지 않았던 기척 두 개가 선명해졌다. 놀랍게도 둘 다 내가 아는 기척이었다.
마침 상대방도 나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앗!”
녹은색 머리칼의 여자와 노을처럼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였다. 한 명은 갑자기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췄던 의사였고, 한 명은 동료에게 새로운 힘을 더해준 사자(死者)였다.
“조만간 오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네요.”
“오랜만이야. 나 기억해?”
발밑의 그림자가 거세게 일렁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재회에 나는 조금 늦게 그들의 말에 반응했다.
아니, 한 명은 예상 못할 것까진 아니다. 그냥 거기까지 생각이 돌아가지 않았던 거다.
하르펜이 부탁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모습을 감췄으니, 하르펜이 신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을 때 예상했어야 했는데.
“디나 씨, 유펠라 씨…….”
나는 숨을 한 번 고른 후 우선은 디나의 말에 반응했다.
“계속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 계셨군요.”
“제가 너무 갑자기 사라졌죠? 죄송해요. 하지만 이런 장소를 통해 선생님을 돕고 있는 만큼 자세한 이야기를 전할 수가 없었어요.”
“그랬군요.”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이번엔 유펠라를 보았다. 화려하게 퍼진 붉은 머리카락의 끝부분을 가볍게 묶고, 연분홍색 원피스를 입었다.
마녀 사냥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유펠르시아를 허공에 띄운 자. 벨라와 엘리시아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유펠르시아의 초대 왕 라시아의 하나 뿐인 누이.
유펠라 페일린.
소영이에게 자신의 마법 일부와 정령 이안과의 계약을 계승한 후 성불해 사라졌던 그녀가 어째서인지 여기 있었다. 거기다…….
내가 만난 유펠라는 영혼뿐이긴 했지만 아마 인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펠라는 다르다.
나는 유펠라의 몸을 가득 채운 자연의 기운을 통해 확신했다.
유펠라는 정령으로 진화했다. 혹은 환생했다.
“……정령이 되셨군요.”
유펠라는 눈을 크게 뜨더니 맑게 웃었다.
“바로 알아채네?”
유펠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다가왔다.
“역시 대단해!”
내 그림자는 잘게 일렁거리면서도 형태를 바꾸지는 않았다. 자신을 눈치채줬으면 하는 마음과 지금의 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혼재하는 듯하다. 구태여 그림자의 기척을 숨기지 않았기에, 유펠라는 내 그림자의 일렁거림은 물론 그림자의 정체도 눈치챘다.
유펠라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나 유펠라는 조금 전과 비슷한 톤으로 내 그림자에 말을 걸었다.
“안녕, 벨.”
“…….”
“이렇게 재회하게 돼서 안타까워.”
“…….”
“하지만 이게 서로가 원하는 길을 선택한 결과니까……어쩔 수 없지.”
한동안 그림자를 내려다보던 유펠라는 이내 다정히 웃으며 다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유은하, 우리의 세계를 구해줘서 고마워.”
나는 무어라 대답하기 어려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이기고 살아남아서 기뻐.”
“…….”
“너흰 모두의 은인이야. 너희가 패배했다면 나도, 신들도, 세계가 품은 모든 영혼이 위험했을 거야.”
유펠라는 내가 트라베리아에게 품고 있을 감정을 짐작했는지 그들과 관련될 만한 단어는 최대한 배제했다.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유펠라 씨는……어떤 정령인가요?”
“나? 나는 천공의 정령이야.”
흔들리는 유펠라의 머리칼이 조금 어둡게 물들었다.
“천공이란 하늘을 달리 말한 단어지. 범위를 좁히면 행성과 우주 사이에 있는 대기고, 넓히면 행성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우주야.”
“…….”
“그러니 우주와 행성 모두 나의 영역이야. 나는 우주의 어둠과 진공을 다루고, 하늘이라는 공간을 다루고, 대기를 움직여 바람을 다뤄. 그런 정령이야.”
자신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마치고 유펠라는 검지를 세워 흔들었다.
“하지만 네가 아는 정령과는 역할이 달라.”
“그래 보여요.”
보통 정령은 이곳에 올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시카와 계약했던 정령들은 ‘다른 세계’를 넘나들 수 없었다.
“정령은 세계를 꾸미는 어떤 자연의 새로운 형태이며 의지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너라면 알지도 모르겠는데, 정령에게는 계급이 있어.”
기록서에서 얼핏 접했던 정보였다. 다만 계급이 있다는 것만 알지, 어떻게 계급이 나뉘어 있는지는 모른다.
“자연물질의 일부로써 한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정령은 5, 4계급 정령이야. 집합체쯤 되면 4계급이래. 알파와 에펠로나가 그래.”
“아…….”
“뭐, 각 세계마다 세분화된 계급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말이야. 최근에 갔던 어떤 세계는 정령계라는 직속 세계가 따로 붙어 있고, 최하급~정령왕으로 계급이 나뉘어 있었어.”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본 설정이기에 나는 금방 이해했다.
“난 3계급의 정령이야. 사람으로 비교하면 초월자랄까? 아, S랭크 마법사 말고, 도서관에 들어올 수 있는 초월자 말하는 거다?”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긴 했는데요, 사실 그 초월자의 범위를 잘 모르겠어요.”
“으음, 간단히 설명하자면 소속 세계의 규격을 넘어선 존재라고나 할까? 세계마다 초월자의 범위가 달라서 설명하기 어렵네. 이거에 관해선 나중에 자료로 확인해 봐.”
확실히 저 말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아리송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정령에 대해서는 계급마다 품은 그릇이 다르다고 받아들이면 이해하는 데 문제없을 거야. 5계급 정령이 바위라면, 4계급 정령은 지구고, 3계급 정령은 은하인 거지.”
“차이가 엄청나네요.”
“그럼! 괜히 세계에서 계급을 나눈 게 아니야.”
자랑스럽게 주먹을 쥔 유펠라가 설명을 이었다.
“3계급 정령은 세계의 벽을 넘나들 수 있고, 신과 세계의 지시를 받아 세계의 흐름을 관리할 수 있어.”
유펠라가 쑥스러운 기색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뭐, 난 아직 견습이지만.”
들어 보니 유펠라가 정령으로 진화한 건 소영이에게 자신의 마법과 정령을 넘겨준 직후라고 한다.
“나이가 어려서 3계급 정령 치곤 아직 힘이 약하고, 경험이 별로 없어서 공부해야할 게 많아. 그래서 가까운 세계를 오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오늘은 선배가 내 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료를 찾으러 여기 왔어.”
“그랬군요. 저희 세계에 3계급 이상의 정령은 얼마나 있나요?”
궁금해져 물어보니 유펠라는 가볍게 대답해 주었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야. 2계급이 한 명, 나머지는 3계급이야.”
4명이라. 적은……숫자인 것 같지?
마침 유펠라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지, 한숨과 함께 내 마음속 의문에 답을 줬다.
“굉장히 적은 숫자야. 다른 세계의 신한테 들었는데, 이만큼 강한 세계에 이만큼 관리 인선이 부족한 것도 드물다더라. 어쩌면 너무 강한 게 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대.”
“무슨 뜻인가요?”
나보다 먼저 디나가 의문을 질문으로 드러냈다.
“신이 창조한 게 아닌 세계는 외부에서 오든 내부에서 진화하든 세계의 힘에 걸맞은 능력자가 세계를 관리하는 자리에 배치되기 마련인데, 세계가 너무 강하다 보니 그만한 실력자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지.”
“아…….”
“그나마 나지스 님이 신으로 진화한 덕에 다른 세계와 미약하게나마 교류할 수 있게 됐고, 이 세계가 무너지면 불안정해질 세계가 많거든. 다른 세계의 신들이 많이 도와줬어. 그래서 겨우 가장 큰 운명이 시작될 날까지 버틴 거지.”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저 말이 우리가 치른 전쟁 혹은 우리가 타고난 운명을 뜻하는 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도 다른 세계에 가보면 실감할 거야. 루키아 님은 정말로 강한 신이셔. 이 도서관과 교류가 있는 모든 세계의 주신이 한꺼번에 힘을 써도 루키아 님 한 분을 봉인할 수 없을 정도야. 하물며 그 분은 첫 번째 세계에서 신위를 받은 분이신걸.”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첫 번째 세계의 신위가 어떻게 인정되는지는 몰라도, 그 이야기가 최초의 창조신인 에쉬리안나 님과 연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여기에는 에쉬리안나 님의 이름이 알려진 걸까.
말을 마치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유펠라가 생긋 웃었다.
“다 알아들은 거 맞지?”
고개를 끄덕이니 유펠라가 내게 바싹 다가오며 손뼉을 쳤다.
“역시 대단해!”
나는 쑥스러워하다 곧 디나의 옆에 앉았다.
이번엔 내가 대화를 주도했다. 갑자기 사라졌던 디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러고 보니, 하리 씨는요?”
일단은 그녀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낀 위화감부터 입에 담았다. 항상 그녀의 곁을 맴돌았던 가디언이 지금은 없었다.
“찾아야 하는 정보가 많아서 분단해서 찾아 읽어보고 있어요. 요즘엔 하리와 떨어져 행동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군요. 무엇을 돕고 있는지……최근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하르펜 선생님이랑 나지스 님을 도와 인간은 감지할 수 없는 세계의 균열을 치료하고 있어요. 이걸 빨리 안정시키지 못하면 관리자 분들의 계약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다지 뭐예요.”
“세상에…….”
“제가 없으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있으면 일이 더 빨리 끝나요. 앞으로 한 5년 정도는 두문불출할 것 같으니, 친구들과 다른 키메라 분들을 잘 부탁드려요.”
문득 디나의 눈이 신뢰를 듬뿍 담고 휘어졌다.
“하긴, 은하 님은 항상 최선을 다해주고 계시지만요.”
“그렇게까지는……. 하지만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네요. 책임지기로 약속했는걸요.”
가슴을 간질거리는 쑥스러움을 삼켰다.
그보다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어쩌면 관리자들의 계약을 대신할만한 대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물어보니 디나도 유펠라도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솔직히 지금 상황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신 분들도 수습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걸.”
“인간에게 짐을 지게 한 걸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셔요. 하지만 신계와 세계의 교류가 아직 미약한 지금, 한 번 형태가 바뀌기까지 했던 세계를 되살리려면 세계 안에서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그랬어요. 다만…….”
디나가 확신 없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하르펜 선생님이, 은하 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게 어떤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으음…….”
예상가는 게 아예 없지는……않나?
우리 세계는 교류가 약하다 할지라도 어찌되었건 신과 교감하고 있고, 질문을 했을 때 세계는 내 힘을 필요로 했다. 나는 환각마법으로 세계의 균열을 지워 없었던 것으로 만들었다.
‘으음, 환각마법을 이용해서 본격적으로 뭔가 만들어 볼까?’
한동안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곧 자료 탐색 혹은 습득을 위해 책을 펼쳐 읽었다.
나는 부터 펼쳤다.
글자는 마법을 사용해 빠른 속독이 가능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문이의 힘으로 복사하거나 머릿속에 옮기는 건 할 수 없었다.
목차를 확인해 보니 이 자료의 내용은 크게 피의 맹약 개요, 종족별 피의 맹약 효과, 다양한 피의 맹약 사례, 피의 맹약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 이렇게 4개로 나뉘는 것 같았다.
맹약의 개요는 맹약을 맺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작했다. 읽으면서 확신했다. 이건 나와 성진이가 맺은 피의 맹약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