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7
그래, 이런 점 때문에라도 싸가지 없는 성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다. 인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매우 예의가 바르다. 엄마가 인하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그런 식으로 예의 차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고 보니 잘 땐 어쩌지? 이불이 부족해서……나이도 같고 은하랑 같이 잘래? 그게, 사실 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선아 요 계집애는 좀 일찍 말해 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네.”
인하는 그 말에 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걱, 정작 그 말에 당황스러워진 것은 나였다.
‘헐, 같이 잔다고? 어떡하지? 난 누가 옆에 딱 붙어 있으면 잘 못 자는데…….’
그래서 엄마 아빠랑도 다른 이불을 써 왔던 것이 아니겠나. 하지만……거절하기도 좀 그렇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엄마는 인하를 데리고 집을 안내해 주겠다며 인하의 손을 끌었다. 굉장히 복잡한 구조도 아니거니와 짧게 머물 곳이지만, 그래도 자주 오고 가게 될 거라며. 인하는 흘끗 나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엄마를 뒤따라갔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일단 당분간은 마법 훈련을 자중해야 하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곧 엄마와 인하의 뒤를 따랐다.
##03. 친구란 이름
여름이다. 나는 골목을 거닐며 뜨거운 태양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유치원도 잠시간 방학이니, 뭐 자유를 맘껏 즐길 수 있겠구나.
나는 더위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산책 겸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다녔다. 몸에서는 땀 한 방울조차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이렇듯 더위를 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 무더위를 탓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냉기마법을 뿌려 놓고는 있지만, 내가 더위를 딱히 느끼지 않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몸 주위에 마력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근 마력 자체에 의지를 불어넣는 것만으로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마치 결계같이 몸을 감싼 마력에 적당한 냉기를 불어넣어 본 것이다. 에어컨을 질색이라 여길 정도로 추위를 싫어하는 나이기에 딱 여름의 열기에 미지근해질 정도의 냉기만을 몸에 돌렸다. 그랬더니 더위 따위는 거의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몸을 도는 마력을 보며 좀 차가워지라고 생각하는 게 전부라서 별달리 마력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제일 좋았다. 요즘은 걸으면서 마력을 돌리는 연습을 자주 하고 다니니 때마침 좋은 발견이었다.
다만 그것은 집 주변에서만의 이야기였다. 이 세계는 주위에 온통 마법사뿐이니 잘못 걸리면 큰일 난다. 게다가 나는 추위는 잘 타도 더위는 잘 안 타는 편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견딜 만했다. 이건 그저 훈련 겸으로 해 보는 것이었다.
집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여름빛이 무성한 정원이 보였다. 나는 정원 가까이에 있는 마루로 걸어가 털퍼덕 주저앉았다. 하지만 확실히 덥긴 덥다. 이런 날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진다.
나는 손을 들며 마법을 썼다. 멜론 맛처럼 보이는 막대 아이스크림이 손에 잡혔지만 그건 내 손으로 만져도 환상이라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이제 겨우 비치지는 않게 되었는데, 하아……역시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환각에서의 내 목표는 일단 환각의 리얼리티가 뇌에 미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형상화 및 실체화하는 것이다만,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할 수 있을지. 휙, 아이스크림의 환상이 사라졌다. 나는 손바닥에 턱을 괴었다.
“……어.”
한숨을 내쉬던 나는 무심코 옆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새하얀 다리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 그 다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인하였다. 나는 말없이 손을 흔들었고 인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는 나와는 좀 떨어져 마루에 앉았다.
말은 오고 가지 않았지만 약속 같은 거였다. 우리 엄마와 인하네 엄마는 아주 친하다. 어느 정도로 친하냐 하면 곧잘 우리를 빼먹고 자기들만의 세계 속에 빠져 버릴 정도였다. 그 사이에 나나 인하는 물론 아빠나 아저씨가 끼어들 틈 따윈 전혀 없었다. 나는 그럴 때면 방에 가서 나머지 마법 공부를 하거나, 겨울을 제외하고는 마루에 앉아 뜰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리고 그건 인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엄마와 아줌마 사이에 끼어들 생각이 없는 인하는 내가 앉아 있는 마루에 자주 찾아와 조용히 앉아 있곤 했다. 나처럼 일부러 책을 챙겨 올 경우도 있었다.
인하는 최근에도 가끔씩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 선아 아줌마뿐만이 아니라 인하네 아빠도 유능한 인재라서 자주 불려 가기 때문에 인하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때때로 있었다. 그때마다 선아 아줌마는 인하를 우리 집에 부탁하고 간다. 인하는 항상 나와 아빠, 엄마가 있는 방에서 내 옆에서 같이 잤다. 처음엔 불편해서 전혀 잠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좀 익숙해졌다.
이젠 아주 인하 전용 이불까지 구비해 놓은 상태지만,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인하는 여전히 내 이불 속에 들어와 자곤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친하지 않고 데면데면한 사이라는 것이 이젠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1년 동안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얼굴을 마주했고, 게다가 옆에서 같이 자기까지 했는데 우리 사이는 아직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내 내성적이고 사교성 없는 성격은 대체 어디까지 뻗은 거지. 나도 인하도 이 정도면 진짜 신기록을 세울 정도지 않나? 진짜 내 성격은 답이 없다. 나는 몸을 팔로 지탱한 채 하늘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나쁘진 않았다. 일부러 대화를 잇는 사이가 나에겐 더 어색했다. 최근에는 유미랑 반이 갈려 대화를 나누는 일이 줄게 되었지만, 그래도 별로 외롭거나 하는 기분을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엄마나 아빠, 선생님만 걱정하지.
인하랑은 친해지고 싶었다. 여전히 그렇다. 쿨한 성격도 나날이 예뻐지는 외모도 나에게 호감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조용한 성격도 좋았다. 나랑 맞으니까. 뭐, 나는 친하면 친할수록 수다스러워지는 성격이니까, 인하로서는 불편해질지도 모르지.
게다가 이젠 같이 자는 일도 없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나는 방을 옮겼다. 나만의 방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자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방을 먼저 원한 것은 내 쪽이었다.
엄마 아빠는 ‘괜찮겠어?’라며 걱정스러워했지만 결국 허락해 줬다. 내가 어른스럽기 때문이겠지.
부모님은 심지어 나를 위해 침대나 책상 등을 새로 사 줬다. 방도 예쁘게 꾸며 주었다. 큰 책장도 사 주셨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수첩에 뭔가를 자주 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덕분에 이젠 원하는 만큼 밤도 새울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게 좀 목적이었다. 이제 혼자서 원하는 만큼 마법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일찍 안 자면 키가 안 클 위험이 있으니까 12시 전에는 잘 생각이지만, 그래도 9시에 재우려 하는 것은 그만둬 달라는 게 본심이다. 응, 응.
“유치원은?”
“응?”
나는 고개를 돌려 인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말을 걸어서 좀 놀랐다. 한순간 긴장했지만, 곧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제부터, 방학.”
“…….”
참고로 인하는 유치원에 안 다닌다. 인하가 거부했다는 것 같다.
하긴, 따져 보면 유치원에서 하는 조기 교육이라고 해 봐야 사교와 기초적인 공부, 마력을 느끼는 개발을 돕는 거 정도니까. 인하는 엄마 아빠 둘 다 굉장한 마법사니 유치원 같은 데 가지 않아도 알아서 다 잘 배울 터다. 실제로 인하는 이미 마력을 움직일 줄 알지 않나. 어쩌면 이미 마법을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보기에 인하의 체내에는 이미 마법을 쓰기엔 충분한 양의 마력이 쌓여 있었다.
‘정말 유치원생이 마력 느끼는 거 드문 일 맞아? 난 환생자인 데다 아공간 버프가 있어서 그렇다 치고…….’
즉, 인하는 상당한 재능의 소유자란 소리일 것이다. 나는 이내 내 몸 주위의 마력에 정신을 집중했다. 몸 주위로 서늘한 기운을 지닌 마력을 계속 돌렸다. 피부에서 몇 센티미터를 벗어나지 않는 아주 얇은 범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법 집중해야 했다.
옆에 인하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것을 계속했다. 마법은 그렇다 치고, 보통은 웬만큼 민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체내의 마력을 가지고 뭘 한다 해도 눈치채지 못한다. 물론 지금은 내가 마력을 좀 피부 위쪽으로 돌리고 있긴 하지만, 아직 어린 인하가 그것을 눈치챌 정도의 마법 감지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아, 그래도 남의 눈앞에서 이러는 건 정말 가끔뿐이다. 평소에는 밖에서 마력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자제하고 있다. 선아 아줌마나 정민 아저씨도 아직은 내 요주의 범위였다.
나는 보통 타인이 체내의 마력을 감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건 안에 들어 있는 마력을 느끼려면 실상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만 일부러 마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물건도 몇 개 존재한다. 저번에 유치원에서 나눠 주었던 마력 감응력을 높이는 수정 구슬이 그런 종류였다.
딴 건 몰라도 내가 마력에 민감한 편인 건 맞는 것 같다. 뭐, 좋아. 색까지 보게 된 이상 이 재능은 톡톡히 갈고닦겠다 이거야!
내가 그렇게 마력을 돌리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엄마와 선아 아줌마가 나와 인하를 불렀다.
“은하야, 인하야.”
나와 인하는 그 목소리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선아 아줌마가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아 아줌마 앞으로 걸어갔다.
선아 아줌마는 나란히 자신 쪽으로 걸어온 우리를 보며 즐거운 듯 웃었다. 이제 보니 한쪽 손에 메모장 같은 것을 쥐고 있었다.
“처음 알았는데, 은하도 마력을 느낄 줄 안다며? 그래서 말인데, 둘 다 마법 상성 테스트 한번 해 보지 않을래?”
“……네?”
“인하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더라고.”
엄마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향해 은근슬쩍 눈짓을 했다. 그 눈에는 미안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뻘쭘히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아니, 뭐, 마력 느끼는 것 정도야 선아 아줌마한테라면 말해도 별로 상관없는데.
“그래서, 쨘.”
선아 아줌마가 약간 과장된 태도로 손에 들고 있던 메모장 같은 종이를 우리 앞으로 내밀었다.
“속성 종이야. 저번에 받았거든! 이 종이를 만지기만 해도 어느 속성의 마법에 어느 정도의 상성이 있는지 알 수 있어.”
“…….”
“둘 다 어때? 해 볼래?”
나는 그 말에 좀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모든 마법 속성에 대한 상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 각각의 상성이 대부분 높다. 엄마 말론……엄청 희귀한 거라던데, 그거.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기, 전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왜? 마력 못 움직여도 할 수 있는데.”
“조, 좀 무서워서…….”
“그래?”
선아 아줌마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안도하며 시선을 돌리던 나는 엄마와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약간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자 엄마는 그저 얼핏 웃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반면, 인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옆에 있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응. 해 볼래요.”
인하가 선아 아줌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선아 아줌마가 인하를 향해 기꺼운 표정으로 종이를 한 장 뜯어 내밀었다. 종이의 색은 회색이었다.
“상성이 있으면 이 종이 색이 진한 색으로 변해. 속성의 상징 색에 맞춰서. 이 종이는 회색이고 어둠속성이니까 상성이 있으면 검정색으로 변하게 되지. 아, 참고로 만진 다음에 상성에 대한 생각을 해야 색이 물드는 거니까. 의지에 반응해서 물들거든.”
속성의 상징 색이란 말 그대로 그 속성과 매치되는 색이었다. 보통 빛은 하양, 어둠은 검정, 물은 파랑, 불은 빨강, 바람은 투명, 대지는 갈색, 번개는 금색, 식물은 녹색, 금속은 은색, 정신은 보라색, 특수는 무지개색으로 표시된다.
인하는 먼저 어둠속성부터 손에 잡았다. 그러나 어둠속성 종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흐음, 어둠속성은 없나 보네? 뭐, 속성이 반드시 유전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선아 아줌마는 어둠속성의 소질이 비교적 높은 8이었다고 들었다. 인하는 그다음으로 빛의 종이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좀 연한 회색 종이였는데, 아까 전과 달리 이번엔 인하가 그 종이를 잡자마자 손가락 끝에서부터 색이 선명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종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빛나는 하얀색으로 변했다.
“헤에.”
선아 아줌마는 인하가 쥐고 있던 종이를 뒤집어 레벨을 확인했다. 종이의 뒤쪽 귀퉁이에 선명하게 ‘10’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빛속성이 높구나, 인하는.”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쩐지.’ 하고 납득했다. 사실 예전부터 그럴 것 같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왜냐면 인하 주변에 모여 있는 마력이 저렇게 밝고 차분한, 마치 별빛 같이 예쁜 레몬색인걸. 밤에 인하를 보았을 때, 나는 인하의 몸이 빛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인하가 빛속성의 마법사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인하는 그다음으로 물속성 종이를 잡았다.
“이것도 없네.”
“끄응, 나랑은 전혀 다른가 봐.”
“그다음은 불.”
인하는 그것을 손에 쥐었다. 순식간에 종이가 새빨간 색으로 물들었다. 불은 ‘8’이 나왔다. 다음으로 번개.
“‘10’.”
“두 개나 10……? 우리 인하가 정말 재능이 상당한가 보다…….”
선아 아줌마는 조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인하에게 다음 종이를 넘겼다. 땅속성은 ‘2’가 나왔다. 꽤 낮았다. 이어서 식물속성은 반응이 없었다.
“얜 정말 나랑은 상성이 전혀 다른가 봐.”
“그러게.”
바람속성은 그래도 ‘5’가 나왔다. 금속속성 역시 상성 제로. 정신 계열은 제법 높은 7이었다.
“어쩐지, 정신력이 좋더라니.”
마지막은 ‘특수’였다. 특수는 그 어느 것보다 포괄적인 거니까 웬만한 사람은 상성을 가진다. 인하는 마지막으로 그 종이를 손에 잡았다. 반응은……‘4’.
“흐음.”
그것으로 전부였다. 나는 결과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일단 가장 높은 10이 빛과 번개로 두 개, 그 외에 상성이 높은 건 레벨 8인 불과 레벨 7인 정신 두 개다. 11개의 상성 중에 높게 나온 상성이 4개, 이 정도면 뛰어난 재능치고는 평범한 결과이지 않을까?
“아무래도 인하는 빛과 관련된 속성이랑 상성이 높나 봐.”
“그러게. 은하야, 은하는 어떻게 생각하니? 인하는 어떤 마법을 만들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아?”
“네……?”
왜 그걸 나한테……?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잠시 인하를 바라봤다. 인하도 무표정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하를 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인하의 주변에 별빛처럼 모인 저 금색의 마력이었다. 내가 인하를 볼 때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빛을 다루는 마법이……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 상성대로…….”
“그래? 난 인하라면 얼음마법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반대로 전혀 낮다니.”
선아 아줌마가 묘하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인하는 평소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고 푸른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으니 얼핏 생각하기에는 어둠마법이나 얼음마법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빛나는 색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연하게 빛나는 금색은 의외일 정도로 인하와 매우 잘 어울렸다. 저 색에 둘러싸여 있는 인하가 제일로 예뻤다. 나는 항상 인하의 주변에서 빛나는 것 같은 저 마력을 보아 왔다. 그래서 당연하게 이렇게 생각했다.
인하에겐 빛의 마법이 잘 어울리겠구나.
인하가 평소의 차가운 눈빛에 묘한 감정을 담아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인하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날이 정말로 기대된다.
벌써 마력을 모으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어쩌면 인하의 고유마법을 볼 날도 그리 멀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뭐어, 평범한 게 최고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시 할 수 있는 걸 한껏 해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어릴 때만 잘 숨기면 되는 거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방학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철이 찾아왔다. 유치원이라서 그런지 방학 숙제는 따로 없었다. 나는 그냥 전생의 습관에 따라 아주 가끔씩 쓰는 일기만 한두 장 썼다. 문득 지금까지 썼던 일기를 되돌아보니, 온통 마법에 대한 내용들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징하다 싶었다. 혹은 누구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만이 적혀 있었다. 하긴 나는 그럴 때만 일기를 쓰니까.
기록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누군가와 만나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혹은 누군가가 죽었을 때도.
내가 죽을 거라고 예상했던 날에도 나는 일기를 썼다.
“오늘도 비네. 장마철은 정말 축축 처진다니까.”
“그래?”
가만히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엄마의 말에 창밖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정원의 꽃들이 쑥쑥 자라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익사할 것처럼 많은 비가 온몸을 때리고 있는데도 꿋꿋한 정원의 꽃을 보니 문득 최근에 배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마법’이 생각났다.
하여간 마법에도 별게 다 있다. 그걸 배우면서 설마 물속에서 눈을 뜨는 마법도 따로 있나 생각했는데 이내 결계마법을 만든 나에게는 그런 게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눈에만 결계 치면 만사 오케이인걸.
……으음, 생각해 보니 결계를 치면 되니까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마법도 딱히 배울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뭐, 결계마법보단 그게 더 빠르고 마력이 덜 드니까.
나는 가만히 밖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엄마 나 나갔다 올래.”
“어머, 그럴래? 우산……은 필요 없나.”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으으응, 나 공공연히 마법 쓰고 다닐 생각 없는걸. 밖에선 마법 별로 안 쓴다고.”
“그래? 그렇구나. 그럼 감기 걸리지 않게 우산 꼭 쓰고 다니렴.”
“응!”
전생에서도 비 좀 맞는다고 감기에 걸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지금 내 나이는 6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비를 맞으며 놀아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옷을 듬뿍 적셔 돌아와 봐야 엄마한테 걱정만 살 뿐이다. 그냥 가려고 했던 곳만 갔다 와야지.
나는 우산을 쓴 채로 활기차게 밖으로 달려 나갔다. 빗물이 철퍽거리며 신발에 튕겨 나갔다. 빨간색 우산이라 그런지 살에 불그스름한 빛이 반사되듯 비쳤다. 골목 사이를 지나 뒷산 쪽으로 향했다. 그 근처에 꽤 예쁘게 꾸며진 화단이 있다. 나는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전생에 좋아했던 노래였다.
곧 목적지가 보였다.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색색이 피어나 있는 화단이었다. 이 화단의 꽃들 역시 비에 지지 않고 꿋꿋하게 피어나 있었다.
“있다, 있어.”
나는 꽃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온갖 꽃을 모아 둔 모습이 볼만해서 가끔씩, 아니 꽤 자주 보러 오는 곳이다. 그러니까……마법 훈련을 끝낸 후 심심할 때마다.
사실 원래 내 성질대로라면 심심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마법 세계에 태어났더라도 내 원래 기질은 죽지 않는다. 이 짜리몽땅한 손가락으로 소설을 쓰진 않더라도 최소한 있는 대로 책을 읽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근처는 곤란하게도 책방이 없다. 그게 날 심심하게 하는 이유였다.
‘아─만화책 보고 싶어!’
물론 도서관도 책방처럼 먼 곳에 있긴 하지만, 웬만한 도서관의 책은 전송기로 빌려 볼 수 있다. 덕분에 소설책이 보고 싶을 경우엔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서 전송받으면 되지만, 만화책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만화책은 교육용을 제외하고는 보통 도서관엔 구비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일일이 다 사기에는 어려서 돈이 없는 데다가 엄마와 아빠의 눈이 걸린다고. 하아…….
책방은 ‘구역’이란 게 있어서 곤란하다. 이곳은 어느 구역도 벗어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손을 내밀어 꽃을 매만지려다 말았다.
나는 꽃을 제법 좋아하는 편이라 여러 번 꽃을 키우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무는 그렇다 치고, 왠지 꽃은 내가 키우기만 하면 뿌리가 썩거나 죽거나 시들거나 해서…….
아니, 난 진짜 억울하다! 난 진짜 아무것도 안 했다! 물도 정량대로 줬는데!
어쨌거나 그래서……마력을 주면 살아나긴 하지만 그 대신 특별한 꽃이 된다. 그래서 나는 꽃은 구경하거나 누구한테 선물로 줄 뿐 절대로 키우지 말자는 주의였다. 아 제길, 어쩐지 식물속성 마법과 상성이 제일 좋지 않다 했지.
나는 꽃을 바라보다가 우산을 쓴 채로 무릎을 쪼그려 주저앉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몇 개를 손가락의 마력으로 튕겼다. 비가 어찌나 많이 오는지, 나온 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옷이 많이 축축해졌다. 나는 어중간하게 젖은 옷을 보며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 테니 역시 결계로 몸을 감싼 채 우산을 쓸 걸 그랬나? 에이, 뭐 어때. 전생처럼 산성비도 아니고 다 정화된 비인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역시 비를 맞으면서 놀고 싶었다. 그렇지만 벌써 엄마 말에 ‘응’이라고 해 버렸는걸.
그런 생각을 하며 화단 주위를 걷던 나는 문득 비가 고인 웅덩이를 발견했다.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샌들을 신은 발로 웅덩이를 차 버렸다. 물방울이 촤아악 소리를 내며 앞으로 튀었다.
아, 갑자기 물놀이가 가고 싶어졌다. 나는 본디 계곡보단 바다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어쩐지 계곡이 고팠다. 그러고 보니 비 오는 날의 물가는 재미있으려나? 물론 위험한 건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생각일 뿐이니까 상관없겠지.
장마인 데다 더우니까 그런 생각이 절로 난다. 더위를 잘 안 타는 편이라 해서 더위를 안 탄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온종일 몸 주위에 마력을 치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랬다간 지친다. 마력의 조종을 유지하는 건 제법 정신력과 체력을 깎는다.
“뭐 해?”
나는 그 목소리에 화들짝 뒤돌았다. 인하가 우산을 쓴 채 내 뒤에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어색하게 인사말을 꺼냈다.
“안녕…….”
“…….”
인하는 평소처럼 침묵한 채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 역시 의아해하며 인하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두 인영이 보였다. 선아 아줌마랑 정민 아저씨였다.
“어머, 은하야. 여기서 뭐 하니?”
나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비 놀이……? 산책?”
“은하는 비가 좋니?”
“보통……일걸요……?”
“후후.”
선아 아줌마가 그런 나를 보며 귀엽다고 말하는 표정으로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인하를 한 번 돌아보았다가, 이내 내 쪽으로 허리를 굽히며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인하가 갑자기 앞서가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 은하 때문이었구나. 마침 잘됐다. 집에 인하랑 같이 돌아갈래?”
“어…….”
“실은 아줌마랑 아저씨가 또 출장을 가거든. 그러니까 인하는 3일 정도 은하네 집에서 지내게 될 거야. 아, 물론 미래랑 진한 씨한텐 이미 말해 뒀어.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또……. 힐끗 인하를 바라보았다. 인하는 아무 말 없이 대화를 나누는 나와 선아 아줌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선아 아줌마가 갑자기 나한테 이런 물음을 던졌다.
“은하는 인하를 어떻게 생각하니?”
네?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도…….
나는 당황하며 잠시 인하와 아줌마의 눈치를 보다가 대답했다.
“예, 예쁘다고 생각해요.”
“어머나. 은하도 귀여운데.”
선아 아줌마가 웃으며 내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그러곤 굽혔던 허리를 펴며 말했다.
“그럼 인하를 부탁할게. 인하야, 미안. 엄마가 선물 사서 돌아올게.”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나는 눈을 깜빡였다.
항상 무표정한 인하지만 가족에게만은 예외였다. 딱딱한 표정을 짓다가도 부모님을 향해서라면 때때로 선명한 표정을 드러내곤 했다.
아마 인하도 집에서는 평범하게 표정을 드러내며 웃을 것이다. 그래, 마치 나처럼. 나도 모르는 사람 앞에선 긴장되어서 말없이 있곤 하니까. 그처럼 인하 역시 우리의 앞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가족들을 향해서도 크게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 거겠지. 설령 우리가 불편한 것이 아니더라도 크게 친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나, 어색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인하의 선 안에 들어간 그런 친근한 존재는 아니란 뜻이다. 남 앞에서 굳는 점은 나와 좀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 난 밑도 끝도 없이 소심한 것뿐이지만.
방금 전의 인하는 정말로 어린애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조금 놀랐다.
선아 아줌마와 정민 아저씨가 나와 인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와 인하는 두 사람을 배웅한 뒤 나란히 걸어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갈 때까지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매우 어색한 시간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내가 인하와 같이 들어온 것을 보곤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나와 인하를 향해 웃었다. 나는 우산을 신발장 옆에 세웠다. 그런 나를 가만히 보던 인하도 거기에 우산을 세우고는 내 뒤를 따라 거실로 들어섰다.
“오늘 토요일이고, 좀 젖었는데 기왕 젖은 김에 오늘 목욕할래? 어쩔래, 혹시 둘이 같이 할래?”
그 말에 나를 잠시 바라보던 인하가 대답했다.
“……전 어제 했어요.”
“그래? 그럼 은하야, 엄마랑 같이 들어가자.”
“응.”
“인하는 그동안에 놀고 있을래?”
“……네.”
“그래.”
엄마는 인하를 향해 활짝 웃고는 나를 이끌었다.
나는 이제 겨우 6살이어서 말이다, 아직 팔다리가 짧은지라 혼자서는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몸을 씻는 것도 머리를 감는 것도 대부분 엄마가 대신 해 준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어리광이었다. 나는 물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하며 엄마와 목욕을 즐겼다.
곧 나는 비누 거품을 헹구고 몸을 수건으로 닦고 머리를 대충 말린 후 엄마보다 먼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달려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엄마는 욕실을 정리하고 나온다. 에헴, 이것도 어린아이의 특권……이라기보다는 내가 좀 정리를 못하는 편이라서.
나는 방에서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머리를 마저 수건으로 닦았다. 드라이기는 딱히 안 쓴다. 지금 이 몸으로는 무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원래부터 드라이기 같은 걸 잘 안 쓰는 편이었다. 귀찮아서……. 덕분에 안 그래도 곱슬기가 있는 머리카락이 머리를 감은 직후엔 좀 더 뻗치거나 한다. 괘, 괜찮아. 요즘엔 마력으로도 정리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마력이란 건 정말이지 쓰면 쓸수록 대단한 것 같다. 마력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마력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바람 정도만이라면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다고! 마력만으로 멀리 떨어진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침대 위에 훌쩍 올라가서는 뒹굴뒹굴거렸다. 왠지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럼~, 잠깐의 틈을 활용해 마법을 조금 연습해 볼까.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공중에 글자를 썼다.
최근엔 펜을 쓰지 않고 손가락만으로도 공중에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성장했다는 증거지만, 나는 그보다는 문자마법의 약점 보완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문자마법은 어쨌거나 ‘글자’를 사용해서 힘을 발휘하는 마법, 문장을 쓰게 되면 쓰는 동안 걸리는 시간이 약점이 된다.
그래서 지금은 문자 자체를 마력의 움직임만으로 쓰는 것도 연습하는 중이었다. 이게 손으로 쓰는 것보다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라면……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면 되지.
나는 마력을 일으켜 내 마음의 형상을 공중으로 띄웠다. 마법이 발동되며 공중에 물음표 표시가 나타났다. 그걸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웃었는데, 그러자 공중에 뜬 안개가 물음표에서 하트로 변했다.
“은하야, 옷 갈아입었으면 나와야지. 인하도 있잖아.”
“아, 응!”
나는 마법을 재빨리 지우며 방문을 열었다. 엄마가 나를 바라보다가 염화마법으로 내 머릿속에 목소리를 전했다.
「인하가 있을 때는 좀 조심해. 마법, 들키기 싫잖아?」
「……응, 알아.」
내 이 마법을 누군가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고 평범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한 것은 나였다. 엄마의 바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의 바람이었다. 그러니 스스로 행동을 자제해야 하는 것도 다름 아닌 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 거실로 향했다.
“인하는 지금 뭐 하고 싶은 거 있니?”
엄마는 나를 뒤에 두고서 인하한테 물었다. 문득 인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법을, 연습해도 될까요?”
“응? 아, 인하는 이미 마력을 모은 데다가 며칠 전부터 기초마법 연습을 시작했댔지? 그리고 벌써 메인마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그랬단 말이야? 나는 눈을 깜빡였다. 정말 엄마랑 선아 아줌마는 서로 별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구나. 엄마는 내 부탁도 있고 해서 내 이야기를 선아 아줌마한테 말하지 않았지만, 선아 아줌마는 자연스럽게 엄마한테 인하의 재능을 이야기한 것 같았다.
근데 인하도 참 대단하다. 남의 말을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이 나이에 저 정도의 진전이라니……대단한 재능이었다. 나는 새삼 감탄했다.
“무슨 마법을 연습하고 있는데?”
“‘라이트’…….”
“그래? 역시 상성이 맞는 빛속성 마법부터 배우려는 거구나. 좋아, 아줌마가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인하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엄마는 빛 계열 마법과 상성이 좋은 편이어서 그럭저럭 사용하는 편이었다. 나는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라이트는 이미 내가 작년에 성공했던 마법이니까.
나는 약간 복잡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유리문 쪽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두 사람이 마법 연습을 하는 것을 가만히 구경할 셈이었다. 그런데 문득, 인하가 시선을 돌려 나를 보았다. 인하는 나를 보며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엄마를 향해 말했다.
“저기 은하는…….”
“응?”
“은하는 작년에 마력을 느꼈다고 들었는데, 그럼 지금은…….”
나는 깜짝 놀랐다. 응? 나? 나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