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78
나는 더 이상 귀를 막는 소용없는 짓은 그만두고 이마를 부여잡았다.
‘시끄러워…….’
제발 빨리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몇 개나 되는 소리가 동시에 머릿속으로 들어오니 머리가 울려서 미칠 지경이었다. 실습 시간에도 평소보다 마법을 쓰는 게 골치 아파 혼났다. 문자마법을 써서 막아 봤지만 문자마법 역시 임시 조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마법으로 막는 게 아니라 빨리 어떻게든 제어해야 하는데…….’
제어가 됐다면 이렇게 초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죄책감과 부담감이 마음을 잠식해 들어갈 수밖에.
‘제어를 하려면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하지만…….’
도서관처럼 조용한 장소로 도망가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나마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책에 관련된 것이라 좀 나았다.
스트레스로 속이 울렁거렸다. 소음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노래라도 들으면 괜찮아질까 싶어서 이어폰을 귀에 꽂아 봤는데 혼란이 가중될 뿐이었다. 나는 힘껏 소리 지르고 싶은 기분을 애써 꾹꾹 눌러 참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오늘은 5교시까지였다. 6교시까지였으면 아주 초주검이었겠지. 나는 피폐해진 정신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이 교실로 왔다. 민희가 방방 뛰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얘들아! 오늘 놀러 가지 않을래?”
“미안. 난 몸이 안 좋아서……오늘은 집에서 쉴래.”
“그래?”
‘어쩐지 표정이 안 좋더라니.’
“그럼 우리가 바래다줄게.”
‘차라리 조퇴할 것이지. 미련하긴.’
인하와 한수의 속마음이 번갈아 머릿속에 울렸다. 죄책감이 가슴을 울렸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친구들의 마음을, 내가 읽고 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는 모두를 보며 창백하게 웃었다.
“아냐, 괜찮아. 난 바로 집으로 돌아갈게.”
집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텅 빈 집 안을 보며 저도 모르게 안심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노래를 켰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무릎에 이불을 덮은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왜 갑자기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된 거지?’
답은 바로 나왔다.
‘내 감지능력…….’
마력과 감정을 보는 내 감지능력이 또 성장한 것이다. 나는 꾸준히 남의 감정을 민감하게 보고 느끼는 훈련을 했다. 환각마법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때론 남의 기억마저 읽을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마력의 흔들림으로 감정을 추측하는 정도였다. 이어서는 감정의 색을 통해 남의 감정을 민감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환각마법을 위해서, 그 마법을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언젠가 준휘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을 나는 무의식 속에 담아 두고 있었다. 감지하는 재능은 그 무의식을 읽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해 갔다. 나는 이제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방향으로 환각을 실행할 수 있다. 아마 원한다면 기억마저도 읽을 수 있겠지.
‘하지만 제어를 못 한다면 의미가 없어…….’
모든 사람의 기억이나 마음을 읽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법을 성장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능력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나는 내가 원했던 대로 환각마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조 도구로서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럼 시야를 열고 닫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이 생각을 읽는 능력을 제어해야 한다.
“제발, 제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한다면? 그럼 어떻게 될까? 친구들을 믿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두렵다. 나는 섣부른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가 우리의 관계에 금이 가는 게 두려웠다.
고민하던 나는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방 안에서 나는 많이 생각했다. 이 능력은 스승님에게도 말할 수 없다. 그러니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능력을 제어할 방법이 없을까?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
‘일단은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해. 시야를 닫는 것처럼, 마음을 편하게 먹고, 당연하게 될 거라고 상상하면서…….’
‘소곤거리는 작은 소리는 제어할 수 있었어. 그러니 이것도 될 거야.’
마법으로라도 막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울적하게 고개를 숙이며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냥 마음을 읽는 것뿐이지 않느냐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만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너무 심각하게 여기는 거 아니냐고, 그런 생각도 했다.
그때 나는 인하를 떠올렸다.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 나를 보고 속상해했던 과거의 인하를.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 한들 제어할 수 있다면 ‘마법’과 다름없다. 그럼 그냥 새로운 마법을 배웠다는 느낌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마음을 읽는 마법은 제법 있다. 그런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도 있다.
허나 내 능력은 지금 전혀 제어가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겠어.
‘게다가 마음을 읽는 마법은 법으로 제한되는 마법이니까. 배웠다고 해도 쓰지 않을 걸 다들 아니까……. 하지만 특수능력은 다르잖아…….’
또다시 죄책감이 가슴을 때려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정말로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할 수 있었다면…….
‘하지만, 그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야 돼.’
마음을 편하게 먹자고 굳게 다짐했다. 그게 분명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정신력이 되어 줄 테니까.
……하지만 이것은 그저 마음가짐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 모든 다짐을, 집중력을 이명이 조금씩 갉아먹어 갔던 것이다.
나는 능력의 제어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했다. 여기에서 가장 골치 아픈 점은, 능력을 제어하려면 어쨌거나 사람들과 접촉하며 마음의 목소리를 들어 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능력의 제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도 이 능력을 말하지 않은 나는 불특정 다수를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마치면 인적이 드물지도, 잦지도 않은 장소로 향해 능력 상태를 점검하고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테면 한적한 놀이터 같은 곳이다.
놀이터를 드나드는 건 대개 아이였다. 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혹은 너무 순수해서 잔인한 생각을 피하지 못하고 들어야 했다.
“엄마, 이것 봐!”
‘개미는 배랑 머리를 떼도 움직이는구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졸려…….’
부모의 속마음도 견디기 힘든 소리가 섞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바람을 피우고 있다든가, 어느 학부모를 질투해서 애한테 화풀이를 한다든가. 흔한 일이지만 그 생각을 직접 듣게 되면 괴롭다.
가끔 아이를 노리는 변태도 나와서 나는 낌새가 보일 때마다 경찰에 신고하고 도망쳤다.
갑자기 성장한 감지능력을 제어하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다. 예고 없이 각성한 이 능력은 머릿속을 어지럽게 할 뿐만 아니라 몹시 불안정하기까지 했다. 때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의 생각마저 읽혔다. 고양이와 개, 나무나 꽃, 동물이나 식물의 감정마저 느껴진다고 한다면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혹시 알까? 소리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온갖 감정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견뎠다. 한껏 집중해서 능력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자 아주 조금이긴 해도 소리가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나보다 일정 수준 이상 강한 사람의 마음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안 것은 선아 아줌마가 찾아왔을 때였다.
“어머, 은하야! 너 요즘 시나리오 쓴다고 밖에 잘 안 나온다며? 인하가 섭섭해하니까 가끔은 인하랑 같이 놀러 가고 그러렴.”
“……엄마, 난 괜찮은데.”
“하하…….”
‘……어라?’
뭐라 대답하기 어려워 힘없이 웃어넘기던 나는 문득 눈을 크게 떴다. 선아 아줌마와 정민 아저씨의 생각이 들리지 않는다. 엄마, 아빠, 인하의 생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 읽히고 있음에도. 내가 이 사실을 안 것은 이 능력이 깨어난 날로부터 한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마법사는 모두 기본적으로 마법 반탄력이라 부르는 것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몸 주위로 흘러나오는 마력이다. 마법사의 마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흘러나오는 마력도 강해진다. 아마 그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한다. 강한 마력이 내가 생각을 읽는 것을 막는 게 아닐까?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환희했다. 나는 선아 아줌마를 향해 오랜만에 꾸밈없이 웃어 보였다. 아, 참고로 시나리오는 친구들과 놀러 가는 걸 피하기 위한 변명이었다.
“어머? 은하 너 오늘 안색이 별로 안 좋다? 피곤하니?”
“얘가 요즘 악몽을 자주 꾼다고 하더라고.”
“그래? 걱정이네. 그럼 아줌마가 만든 특제 마법 약을 줄게. 이걸 먹으면 좀 기분이 나아질 거야. 피로를 회복하는 데 좋은 약이란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요즘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쳤다. 능력 제어에 매달리느라 다른 훈련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선아 아줌마와 정민 아저씨를 보며 속으로 깊게 안심했다. C랭크인 엄마의 생각은 읽을 수 있지만 B랭크인 정민 아저씨의 생각은 읽을 수 없다. 그렇다면 B랭크 이상의 마법사부터는 생각을 읽을 수 없다 보면 되겠지.
다행이다. 내 주위에는 강한 마법사가 많다. 스승님, 준휘 선생님과 민 선생님, 제현 오빠와 은희 언니, 천호 오빠.
새삼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운이 좋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나.
지금만큼은 내 마법 실력이 밝혀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다른 아이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실력이 밝혀진 덕분에 뒷담이나 적의로 인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고 있다. 만약 그것까지 더해졌다면 나는 이미 방 안에 틀어박혔을 것이다.
‘정말 왜 이렇게 제어가 안 되는 거지?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나는 다시 표정을 흐렸다. 솔직히 나는 지금껏 ‘제어’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마력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내 뜻에 따라 주었다. 마력이 자의로 내 의지를 거부한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다.
‘새삼스럽지만, 난 정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
나는 눈을 깜빡였다. 시야를 열고 닫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의 소리만 유독 제어가 안 된다. 애써 닫아도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처럼 자꾸 소리가 샌다.
마음이 편해지는 일은 결국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지쳐 갔고,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거의 극한에 가까운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스승님을 만났을 때 나는 그만 깨닫고 말았다.
“네 감지능력, 더 예민해졌구나.”
‘반사 신경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어. 회피에 관해서는 이미 성인에 가까운 판단력을 가졌군. 육체가 따라 주지 못한다는 게 아쉽지만…….’
평소보다 소리도 작고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무서운 건 그럼에도 확실히 들리고 있다는 거다. 스승님의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A랭크인 스승님의 목소리가…….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도 내 감지능력은 무섭도록 발전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선아 아줌마의 마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로써 내 주위에 마음이 들리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나는 절망했다.
‘어떻게 하면…….’
힘껏 잡고 오르고 있던 동아줄이 도중에 끊겨 다시 어두운 동굴 속에 처박혔다. 조금만 있으면 성공할 것 같았는데 실패했을 때의 기분은 그냥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도 훨씬 괴롭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그 사이를 허탈감이 밀고 들어오는데 나는 한순간 어쩔 도리를 몰랐다. 잠깐 몸에 힘을 푼 사이에 제어를 하기 위한 정신력은 저 멀리 도망가 버렸다.
한순간, 그 한순간 때문에 나는 처음 능력이 제멋대로 발현되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 놓이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는 상황에 나는 점점 지쳐 갔다.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감정이 마구잡이로 머릿속을 헤집었다. 구역질이 났다.
그런 매일이 계속됐다. 어느새 내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내 방뿐이었다.
‘요즘 은하 님이 조금 변한 것 같지 않아?’
‘짜증 나는 일이라도 있었나?’
‘은하 님 피곤해 보인다.’
‘드디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각을 한 거야! 저런 은하 님도 멋져!’
‘요즘 평소 노는 애들이랑 잘 안 노는 것 같네?’
노력하려고 했지만, 하지만……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은하야, 너 진짜 요즘 무슨 일 있어? 요즘 계속 안색이 안 좋아.”
“그런가…….”
‘설마 뭔가 또 숨기고 있나?’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는 일이 늘어났다. 수업이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안 좋아지자 밥도 잘 안 넘어갔다. 몇 번 토했다.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고 계속 쌓이자 결국 마력을 보거나 움직이는 제어력에도 문제가 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자칫 잘못하면……그래, 마력이 ‘폭주’하게 될 것 같았다.
더 초조해졌다. 다 싫었다. 눈도 귀도 입도 전부 틀어막고 모든 걸 그만둬 버리고 싶었다. 머리는 너무 어지럽고, 기분은 안 좋고, 마력 상태는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로워서…….
‘나가기 싫어. 학교 가기 싫어. 아무도……만나고 싶지 않아…….’
방학이 찾아오기 한 달 전, 결국 나는 방에 틀어박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그 누구도 만나기 싫었다. 마음만 같아선 조용한 숲속에서 요양을 하거나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홀로 틀어박혀 은거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문을 잠그고 방 안에 결계를 쳤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할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드디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불로 몸을 꽁꽁 둘러 싸맨 채 눈을 감았다. 마치 몇 년 만에 찾아온 것 같은 평온함에 기뻐하며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갔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가을 무렵부터 유은하의 친구들은 유은하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유은하는 어느 날부터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니 날이 갈수록 초췌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친구들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몇 번이나 부른 후에야 ‘응?’ 하고 대답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은하 요즘 이상하지 않아?”
주민희가 꺼낸 말에 친구들 모두 동의했다.
“이상해.”
“어디 아픈가?”
“내가 보기엔 고민이 있는 것 같던데.”
그로부터 얼마 후 일이 터졌다. 어느 날,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갑자기 유은하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 중에서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안 것은 강인하였다. 유은하가 평소보다 늦게 나온다 싶어 집에 들어가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무리 불러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은하가요? 왜요?”
“모르겠어. 불러 봐도 대답이 없으니까. 그런 데다 결계까지 쳐 놨지 뭐야? 시험 삼아 마법을 써 봤는데 풀리지 않더라고. 그렇다고 너무 세게 공격하면 은하도 위험할 것 같아서 그러진 못하겠고…….”
강인하는 의아해하며 유은하의 방 문 앞에 다가섰다. 손을 뻗자 치지직 거부 반응이 일었다. 문을 잠그고 방 전체에 결계를 쳐 방을 격리시켜 놨다. 강인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런 짓을 한 걸까요?”
“모르겠어. 안 그래도 요즘 왠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병원에 가 봐도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하고. 지금 선아를 부를까 고민 중이야.”
“엄마랑 아빠는 오늘 일이 있어서 나갔어요. 며칠간 안 돌아오실 거예요.”
“그래? 어떡하지?”
강인하는 방문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그녀는 침착하게 상황을 점검했다.
‘은하가 과연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방 안에 틀어박힐까?’
강인하가 한미래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오늘 아침, 갑자기 결계가 쳐져 있었던 건가요?”
“응.”
“아무런 예고도 없이요?”
“그래, 그렇단다.”
“혹시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유야 있겠지. 쟤가 무슨 일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애니.”
“창문은 어때요?”
“커튼을 쳐 놨어. 게다가 방을 빙 둘러 친 결계라 창문도 열리지 않아.”
“…….”
유은하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학교를 빠지지 않고, 시간 약속에도 정확하다. 그런 아이가 이렇게 틀어박힐 정도의 일이라면…….
“마법 관련?”
“아줌마도 그렇게 생각해.”
틀어박힌 첫날이기도 했고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으며, 유은하가 평소 매우 성실했었기 때문에 그들은 별달리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두 사람은 유은하를 믿었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원인을 찾았다.
“마법 훈련에 푹 빠진 걸까요?”
“아니면 훈련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있다든가…….”
목소리가 닿지 않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강인하와 한미래는 유은하가 스스로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무엇보다 어중간하게 마법을 깼다가는 마법 시전자에게 부담이 간다. 그걸 무시할 만한 고위 마법사인 김선아와 강정민도 며칠간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강인하는 혹시 몰라 등교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까지 유은하를 기다리다가 결국 나오지 않은 유은하를 두고 학교에 갔다. 큰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은하라면 분명 괜찮을 거다. 근거는 없지만 강인하는 흔들림 없이 자신했다.
테러 사건 때 그들을 지켜 주었던 것처럼, 혹은 유은하를 쫓아다닌 이상한 성인 마법사를 스스로 물리쳐 버렸을 때처럼, 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유은하라면 분명 전부 이겨 낼 거다.
강인하가 평소와 다르게 혼자서, 그것도 종 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등교하자 박한수가 의문을 표했다.
“너 왜 이렇게 늦었냐? 은하는?”
“은하는 오늘 학교에 늦게 오거나, 아예 안 올 거야.”
“뭐? 왜?”
“몰라. 방 안에 결계까지 치고 안 나오더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걸 보니까, 집중해서 훈련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
박한수는 잠시 이상하게 생각하다가도 납득했다. 곧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며 유은하의 병결을 알렸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반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요즘 피곤해 보이더니…….”
“그러게.”
그제야 강인하는 처음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그 예감은 강인하만 느낀 게 아니었다. 강인하의 옆에 있던 박한수도, 건너 건너 이야기를 들은 주민희와 김현호도 느꼈다.
세 사람은 수업을 마치고 유은하의 집으로 찾아갔다. 한미래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2층에 올라가 보니 유은하의 방에는 여전히 결계가 쳐져 있었다.
“대체 뭘 하고 있기에 이렇게 안 나오는 거지?”
“글쎄.”
“그러게. 궁금하다. 설마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을 줄이야.”
“걱정도 되고…….”
김현호가 문을 흘끔 보며 중얼거린 말에 모두의 표정이 잠시 흐려졌다. 곧 강인하가 주민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민희야, 네 지각마법으로 알아볼 수 없어?”
모두의 시선이 주민희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주민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리야. 은하의 결계는 특별한걸. 은하의 결계는 은하의 영역이니까, 내 실력으론 엿보지 못해.”
머리를 모으고 고민했지만 결국 기다리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 회사에서 돌아온 유진한도 이야기를 전해 듣고 걱정되어 문을 두드려 봤지만 유은하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다음 날에도 문은 굳건히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슬슬 불안해졌다.
훈련을 하더라도 음식과 물을 섭취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 하지만 마법이 풀렸거나 풀리려는 기색은 없었다. 하루 이상 시간이 지났으니 마력이 떨어져 마법이 저절로 풀릴 만도 한데 결계는 약해지지도 않았다.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어쩌면 한미래와 유진한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운 사이 나와 물을 마시거나 식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마법이 풀린 흔적은 없으나 유은하의 마법 특성 때문에 흔적이 안 남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반찬이나 식재료를 체크해 보았으나 줄어든 낌새가 없었다.
이틀째 오후 한미래는 유은하의 방 앞에 마법을 감지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문과 냉장고에 쪽지를 붙였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다. 장치에도 마법이 풀린 기록이 없었다.
사흘째 저녁, 한미래와 유진한은 결국 김선아를 불렀다.
김선아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선 아연실색해서 ‘그런 이야기를 이제 하면 어떻게 해!’라고 소리치며 남편에게 일을 맡기고 당장 유은하의 집으로 달려왔다.
김선아는 유은하가 방에 친 결계를 가볍게 두드려 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강력한 결계네. 이 정도면 C랭크 마법에 맞먹을지도.”
“C랭크?!”
“은하가 언제 그렇게…….”
한미래와 유진한이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김선아는 태연했다.
“은하가 처음 D랭크 마법을 쓴 게 작년이잖아. 마력 고갈도 겪었고, 여러 일이 있으니, 마법 레벨이 아슬아슬하게 C랭크에 진입했다고 해도 완전히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지. 게다가 저번에 은하가 쓰러트렸던 마법사도 C랭크 상위의 마법사였잖아?”
“하지만, 저 나이에 C랭크 마법이라니……! 선아 너도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그러게. 은하의 성장은 아무래도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이야.”
김선아는 쓰게 웃었다. 그러나 곧 진지한 눈으로 결계를 응시했다.
“아마 은하도 마력을 탈탈 털어서 결계를 쳤을 거야. 이런 결계를 치고 사흘간 나오지 않다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닌걸. 네가 날 부른 이유도 알겠고. 이런 결계를 함부로 깼다간 은하한테 무슨 영향이 갈지 모르니까.”
한미래와 유진한이 불안한 눈으로 몸을 떨었다.
“왜 은하가, 갑자기……! 대체 은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선아 씨, 은하는 괜찮을까요?”
“그건……지금부터 확인해 봐야죠. 물러서.”
김선아가 앞으로 나서며 한 팔로 한미래와 유진한을 물러나게 했다. 마법을 쓰려는 기색을 느낀 한미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쩌려고?”
“결계를 얼려서 문 모양대로 자를 거야. 그럼 손상은 가더라도 결계가 완전히 깨지지는 않으니까 은하한테 피해가 가진 않을 거야.”
“정말?”
불안으로 떠는 한미래 대신 유진한은 굳은 눈으로 김선아와 눈을 맞췄다.
“잘 부탁합니다.”
“…….”
김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아이들은 초조해했다. 한미래도 창백한 얼굴로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밥이랑 물은 알아서 챙겨 먹었겠지. 타이밍이 나빠 나오는 걸 못 본 걸 수도 있어. 하지만 아니라면? 사흘간 아무것도 못 먹었다면? 이럴 줄 알았다면 첫날 바로 김선아를 부르는 거였다.
“은하야…….”
강인하가 두 손을 모으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박한수가 위로하듯이 강인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주 약간, 마음이 진정된 것 같았다. 강인하는 한순간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박한수의 옆얼굴을 보았다.
김선아의 마법이 발동했다. 그녀는 정확히 문 모양대로 결계를 얼렸다. 얼어붙은 부분이 얼음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김선아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마법으로 문의 잠금을 푼 뒤 한 번에 문을 열어젖혔다.
화아악!
“……?!”
김선아는 눈을 크게 떴다. 열린 문 너머에서 마력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물건들이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눈부신 은빛 마력과 신비로운 남빛 마력이 방 안을 채운다. 적의는 없었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김선아가 다급히 한미래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유진한을 방벽으로 보호했다. 비마법사인 유진한은 농밀한 마력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은하야!”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문 가까이로 다가갔다. 놀랍게도 폭풍을 이루고 있는 강대한 마력은 유은하의 마력이었다.
끼이익, 그 순간 문이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닫혀 갔다. 결계가 수복되고 있는 것이다. 김선아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고민하는 기색으로 손을 내렸다.
쾅! 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달칵하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결계가 수복되자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다. 박한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야……?”
“설마 이런 상황일 줄이야…….”
김선아가 골치 아픈 기색으로 속삭였다. 모두가 멍하니 목소리를 따라 김선아를 올려다보았다.
“폭주야. 마력이 폭주하기 직전이라고.”
“뭐?”
“폭주라고요?”
한미래가 창백한 얼굴로 숨을 삼켰으며, 유진한은 조급한 어조로 되물었다. 아이들도 눈을 크게 떴다.
‘마력의 폭주?!’
마력의 폭주란 소유자가 자신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해 마력이 폭주하는 현상을 뜻한다. 마력이 폭주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 마법사의 재간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마력을 갑자기 얻게 되는 경우. 둘째, 강한 마법사가 이성을 잃는 경우. 크게는 이 두 가지다.
유은하는 전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김선아가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