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83
“뭐? 정말? 진짜다. 성후 형……이랑 준휘 쌤도 있어!”
때마침 우리를 발견한 친구들이 저마다 두 사람씩 가리키며 놀랐다. 미모로 먹고 들어가는 한수와 인하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들은 이제 졸도할 지경이었다(물론 표현만 그렇다는 거다).
현호가 한자리에 서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우리 모두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질문을 던졌다.
“왜 민 쌤이랑 성후 형이 여기 있어요?”
“민 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이야.”
뭐라고? 인하와 한수네 반 담임? 우리는 깜짝 놀라 한수와 인하를 바라보았다. 현호가 연이어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어? 준휘 쌤은 우리 반 담임인데?”
마지막으로, 민희가 말했다.
“성후 오빠는 우리 반 담임인데…….”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하, 응, 그래, 그런 거구나. 알았어.’
납득한 후 나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나 교실로 돌아갈래…….”
더는 이 시선을 버틸 수 없다. 나는 도망치듯 교실로 텔레포트 한 뒤 재빨리 교실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반에 남아 있던 몇몇 아이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비틀비틀 걸어가 제자리에 앉았다.
“이게 뭔 일이래…….”
나는 피곤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친구들도 나를 따라 우리 반에 들어왔다. 그건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들어온 다음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우리를 따라 들어왔지만, 인하의 차가운 인상과 한수의 까칠한 인상이 아이들의 폭풍 질문 타임을 막았으므로. 한수가 나를 보며 불만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야! 갑자기 혼자 교실에 들어가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우린 널 찾아왔던 건데.”
“미안, 너무 쪽팔려서…….”
친구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친구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민희와 나처럼 각자의 담임 선생님이 준휘 선생님 혹은 민 선생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민희가 꽃받침 자세로 씨익 웃었다.
“아까 그 비명 소리, 그거 인하랑 한수네 반에서 난 소리래. 이유는 우리 반이랑 똑같아. 민 쌤 인기 많나 봐~.”
“그야 잘생겼잖아?”
“맞아 맞아.”
“준휘 선생님도 인기 많아! 여자애들이 멋있고 쿨하대.”
나는 현호의 말에 동의했다. 준휘 선생님이 좀 쿨하긴 하지.
나는 무심코 같은 반이 된 아이들의 모습을 훑어봤다. 여자아이들은 대개 우리 쪽을 흘끔거리면서 새로운 담임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꺄악거리고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반 이상 풀이 죽어 있다.
나는 꺅꺅거리는 여학생들을 조금 짠한 눈으로 응시했다. 다아 임자가 있건만…….
다음 시간은 자유 시간이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성후 선생님은 반 아이들의 애교를 이기지 못했다. 그 시간은 자연히 아이들이 성후 오빠한테 질문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성후 오빠와 아는 사이긴 해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한 건 아니어서, 아이들의 질문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나온 것이다.
“선생님은 은하랑 아는 사이인가요?”
주위가 한순간 조용해졌다. 나는 그만 굳어 버렸다. 아이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높였다.
“궁금해요! 아까 복도에서 은하랑 친하게 이야기했었죠?”
“보니까 옆 반 선생님들과도 아는 사이 같더라.”
“무슨 사이예요?”
이건 마치 바람을 피운 상대를 추궁하는 것 같은 말투로군.
성후 오빠가 고민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눈빛으로 곤란함을 전했다. 과연 제대로 통했을지 모르겠다.
“처음엔 학교 후배로서 알았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은하는 막 초등학교에 들어온 신입생이었거든.”
많은 사람 앞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 입에서 내 과거담이 나오니 참 기분이 묘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부담스러워지기 전에 책상에 팔을 올리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민희가 위로하듯 내 등을 탁탁 두드렸다.
“1학년 때? 그럼 우리도 만났을지도.”
“나 알아. 고등학교 부회장이셨어.”
“진짜?”
“앗! 나도 기억났어!”
“지금 가드인 은희 선배가 회장이었던 시절이잖아.”
“아, 그때 그 부회장님이구나!”
아이들이 하나둘 5년 전 일들을 기억해 냈다.
“그래. 은하가 은희랑 아는 사이여서 나도 친해졌지.”
아이들 중 태반은 내가 은희 언니랑 친하다는 걸 안다.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편입생이다. 분위기가 이래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저 분위기에 적응하면 곤란하고.
“그랬구나!”
“그럼 민희도 알겠네요? 은하랑 민희, 인하, 한수랑 현호는 가드 트리오랑 다 친하니까.”
성후 오빠는 잠깐 눈을 크게 뜨더니 수긍했다.
“그래.”
다행히 그 후로 내가 민망할 만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자유 시간은 가끔 뜨끔하거나 부끄럽거나 쑥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지나갔다.
다음 시간은 합동 체육 시간이었다. 두 명씩 무작위로 짝을 지어 대련을 해야 한다. 게다가 가상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진짜 대련이다. 명상을 하고,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할지 되짚어 본 후 바로 대련에 들어갔다.
이미 같은 학년 학생 중 3분의 1은 고유마법을 만들었다. 때문에 이젠 고유마법을 사용해서 대련해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은 나처럼 사용하는 걸 꺼리는 아이도 많다.
아는 사람, 그것도 예전 선배와 수준별 선생님이었던 사람 앞에서 수업으로 대련을 하려니 많이 부담스러웠다. 다행이랄 게 있다면 이번에는 민 선생님이 달려들지 않았다는 것 정도?
내 차례는 수업 초반이었다. 대련은 여러 명이 동시에 한다.
“잘 부탁해!”
“나도 잘 부탁해.”
누군가와 대련을 할 때마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긴장하며 눈앞의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남자아이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망설임 없이 나에게 공격을 날렸다.
이제 아이들도 잘 안다. 내가 공격은 몰라도 방어는 흔들림 없이 해낸다는 것을. 나는 시야를 조금만 열었다. 알기 쉽게 날아오는 마법과 마력을 배리어로 가볍게 막았다.
남자아이의 마법은 파도마법이었다. 파도라고는 해도 ‘물’은 아니다. 그의 상성에 맞는 온갖 마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소환할 수 있다면, 그게 물건이라고 해도.
나는 밀려오는 마력 파도를 살펴보며 고민했다. 아이들이랑 대련할 때는 항상 고민하게 된다.
‘공격할까?’
그러다가도 멈칫했다.
‘……말까?’
실력을 들키긴 했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상대는 내가 공격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잘못 공격해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망설이던 나는 결국 평소처럼 막기만 했다. 그래도 이젠 봐주다가 쓰러지는 일은 없다. 감지능력 및 마력 제어력이 전보다 훨씬 더 성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애가 마력을 고갈하고 나서야 대련이 끝났다. 평소와 다름없는 승리 같지 않는 승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으로 인한 식은땀을 닦자마자 뒤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유은하, 너 제대로 안 해?”
윽, 찔려서 뒤를 돌아보자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 선생님은 ‘이런…….’ 하는 얼굴로 뺨을 긁적였고, 성후 오빠는 한숨을 내쉬었으며, 준휘 선생님은……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음,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가 이내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실없이 웃었다.
“음, 그게……. 에헤헤헤…….”
나는 결국 꿀밤을 얻어맞았다. 민 선생님이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이곤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실력도 밝혀진 마당에 왜 그렇게 소심하게 굴어?”
“그래도……무섭잖아요. 실력 차이도 많이 나는 아이를 공격해야 한다니…….”
“어이쿠. 너 충격만 살짝 주고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제어 잘하잖아.”
“하지만 환각마법은 정신마법이니까, 맞는 당사자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의 고통이 찾아올 수도 있어서…….”
“그러니까, 그런 미세한 것도 조절할 수 있게 됐잖아? 그렇게 불안하면 차라리 속성마법을 써.”
민 선생님의 몸이 점점 내 옆에 붙었다. 준휘 선생님이 나와 민 선생님을 떨어트렸다.
“이번엔 제대로 해. 실력도 밝혀진 마당에 뒤로 빼기만 해선 실력 향상에 하등 도움 안 되니까.”
그러면서 다른 상대를 붙여 줬다. 나는 폭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진지하게 상대와 마주했다.
아마 준휘 선생님은 속성마법을 써서 이기는 정도로는 성이 안 찰 거다. 환각마법을 쓸까? 하지만 환각마법은 아직 밝히지 않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는 척하며 환각 펜을 꺼냈다.
이번 상대는 옆 반의 불을 사용하는 아이였다. 불마법이라곤 해도 불을 두르며 공격하기보다는 불에 형태를 부여해 공격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살이 나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나는 몸에 두른 결계를 믿고 두려움 없이 불꽃 화살에 손을 뻗었다. 환각 펜이 불꽃에 닿자마자 문자마법이 효과를 발휘했다. 환각으로 만든 문자가 주위로 퍼지며 허공에 새겨졌다. 설령 환각이라 한들 눈에 보이는 이상 진짜 문자와 다름없는 효과를 발휘한다.
『퍼 져 라』
『휘 몰 아 쳐 라』
“윽……!”
불마법의 지배력이 내게로 옮겨 왔다. 나는 펜을 움직여 화살 방향을 휙 반전시킨 후 펜을 쥐지 않은 왼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거기에 숨을 훅 불어 넣었다. 바람속성마법, 바람에 의해 확산한 불화살은 화살이 아니라 파도가 되어 여자아이를 덮쳤다. 마법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소사(燒死)할 만한 크기였다.
“꺄악!”
그러나 나는 상대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그녀가 받는 건 오직 마력에 의한 충격뿐. 나는 한쪽 눈을 감고 불꽃이 보이는 위치를 검지로 확 그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를 덮치던 불꽃 파도가 허공에 생긴 검은 선에 의해 두 동강 나더니 점차 사라졌다.
여자아이는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아무리 마법이라도 불은 불. 상처는 남지 않았을지언정 열기와 힘은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것을 감안해 불꽃의 온도나 마법을 유지하기 위한 마력마저 현저하게 낮췄지만, 과연 괜찮을지 모르겠다. 정신적 충격도 무시할 수 없다. 여자아이는 주저앉은 채 감탄에 가까운 한숨을 내뱉었다.
“와……!”
“굉장하다!”
“손도 못 쓰고 당했어!”
“봐 봐, 저게 은하 님의 진짜 실력이야!”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박수를 쳤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주저앉아 있는 여자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괜찮아? 혹시 다친 덴 없고……?”
“아, 아니, 괜찮아요.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여자아이가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존댓말을 쓰는 걸 보니 얘도 내 팬클럽 회원인가. 나는 허허 웃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아이는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뒤로 물러나며 슬쩍 준휘 선생님을 보았다. 다행히 준휘 선생님은 만족했는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민 선생님도 장난스럽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나는 몰려드는 부끄러움에 재빨리 친구들한테 달려갔다. 인하와 한수는 익숙하게 나를 자기들 뒤에 숨겼다. 민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그 뒤로도 많은 아이들이 대련을 했다. 어리고 마력이 적은 만큼 대련 중 누군가 큰 부상을 입는 일은 거의 없다.
마법사가 마법으로 공격받는 것과 비마법사가 마법으로 공격받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마력이 거의 없는 비마법사가 마법 공격을 받으면 그 마법의 특성을 거의 그대로 느낀다. 하지만 마법사는 다르다. 마법 레벨이나 마력만큼만 느낀다. 그러니 마법사는 불마법에 휩싸여도 쉽사리 불타 죽지 않는다. 당연히 실력 차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아이들의 마법 실력은 서로서로 비슷하다. 우리만 별개다. 우리 외에도 뛰어난 마력을 지닌 아이가 몇 명 더 있긴 하다. 특히 이번 학년에 편입해 온 아이들 실력은 특출 났다. 하지만 그 뛰어난 열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실력이 비슷비슷했다.
나는 마력의 흐름에 정신을 집중하며 시선을 움직였다.
‘이렇게 보면 시하도 상위권인데…….’
윤시하는 팬클럽(윽…….) 때문인지 최근에 강예슬과 자주 어울린다. 강예슬도 우리를 제외한 아이들 사이에서는 톱클래스 실력자다. 그리고 강예슬과 윤시하의 마력은 거의 비슷하다. 시하가 만든 마법은 중력마법, 제법 밸런스가 좋은 마법이다.
그것을 보면 무심코 곱씹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친구가 아니게 되었을 때를 떠올리고 만다. 시하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시하도 상당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금부터는 각자 자유롭게 연습하도록. 다만 대련을 할 때는 우리한테 말하고 해라.”
“네!”
“네에! 선생님!”
대련 훈련이 끝나고 짧게나마 자유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자유 시간이 되자마자 벽 근처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앉을 땐 등을 기댈 수 있는 곳에 앉는 게 편하니까. 벽에 기대앉아 명상이나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민희와 현호가 내 양팔을 붙잡더니 나를 끌고 갔다.
“어? 뭐야? 어디 가?”
“어딜 가긴. 선생님들한테 가지.”
으음……솔직히 선생님들 곁은 부담스러운데. 세 사람 주위는 이미 다른 아이들로 만원이다. 그러나 나는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뭐, 괜찮겠지. 나 홀로 저~기쯤에 앉아 있으면 그게 오히려 더 눈에 띌 테니까.
사람이 많으니 가장자리에 앉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민희와 현호는 아이들을 헤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쯤에서 나는 현호와 민희에게 잡힌 팔을 비틀어 빼고 근처 벽에 풀썩 기대어 앉았다.
“은하 치사해!”
“난 치사해.”
귀를 막고 뻔뻔하게 말하자 인하와 한수가 피식피식 웃는다. 두 사람이 내 곁에 앉자 민희와 현호는 물론 서 있던 다른 아이들도 근처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휴, 이제 보니 우리 은하도 제법 마이 페이스다?”
“저 원래 그래요.”
“그러세요~.”
내가 시큰둥한 척 대답하자 민 선생님이 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함께한 지도 어언 5년, 이제 장난스러운 말이 쉽게 툭툭 튀어나온다. 아이들이 우리 곁에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들 근처에선 마법 연습을 하기 좀 그렇다.
“준휘 선생님! 혹시 준휘 선생님도 원래부터 은하랑 아는 사이였어요?”
“그냥 아는 게 아니라 실력도 잘 아는 것 같던데요?”
“알지.”
“나랑 준휘는 예전에 은하의 수준별 반 선생님이었거든!”
민 선생님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준휘 선생님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손가락으로 V를 만들었다. 와! 정말요? 아이들 중 태반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감탄했다. 저런 거 말해도 되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수긍했다. 하긴, 지난 일이니까.
나는 소란 속에서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이내 무릎을 감싸고 거기에 고개를 묻었다. 풀이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평소 편하게 앉으려 할 때 취하는 자세였다. 그 상태로 호흡을 고르게 골랐다. 몸 안을 도는 내(內)법 명상 정도라면 이런 자세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 안으로 들어간 마력이 천천히 돌아다닌다. 코를 통해 식도로, 심장, 폐, 단전, 이윽고 손끝과 발끝으로 퍼진다. 호흡을 통해 들어와, 피를 타고 돈다.
그 편안한 기분에 잠에 들기 전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들었다. 고개를 들자 준휘 선생님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쉬는 시간이다. 쉬어.”
“……아, 네.”
명상하는 걸 눈치챘구나.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들고 벽에 등을 툭 기대자 이때다 싶었던지 아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은하야, 아까 멋있었어. 평소에도 그렇게 하면 좋을 텐데…….”
“맞아. 그럼 매일 눈 호강 할 텐데.”
“에구. 은하 얘는 부끄럼쟁이라 매일 그러진 못해.”
“하긴.”
“맞아요!”
“그래야 은하 님이지.”
“하지만 그래서 더 귀엽지 않아?”
“선생님, 잘 아시네요.”
으악. 이 선생님이 또 뭐 하는 짓이야. 민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저마다 웃으며 맞장구쳤다. 나는 부끄러움을 못 이기고 옆에 있던 인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번엔 인하가 내 등을 툭툭 두드려 줬다.
합동 수업이 끝난 후 우리는 각자의 교실로 흩어졌다. 수업을 들으며 깨달은 것은 성후 오빠가 제법 잘 가르친다는 거다. 교사가 된 지 이제 2년째라고 하는데 별로 당황하는 일 없이 능숙하다. 나는 감탄했다.
그래, 알고 보니 2년째였다. 작년에 교사 자격증을 따고 다른 학교에 강의나 교원 실습을 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가드 트리오의 말에 의하면 정식으로 대현에 채용된 다음 가르쳐 줄 생각이었는데, 마침 우리 학년 담임을 한다기에 깜짝 놀라게 하려고 입을 다물었다고.
“그래도 좀 말을 해 주시지.”
“맞아요! 준휘 쌤이랑 민 쌤도 마찬가지예요!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라고 해서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재밌을 것 같더라고!”
“민 쌤이 그럼 그렇지…….”
“민희 너 차갑다?”
민 선생님이 웃으며 민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날 우리는 세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하교했다.
일상에 새로운 즐거움이 추가된 날이었다.
세 사람이 선생님이 된 사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우리의 일상으로 녹아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성후 오빠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때마다 성후 오빠는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성후 오빠가 선생님이 된 이후로 은희 언니와 좀 더 자주 마주치게 됐다. 성후 오빠와 은희 언니는 정말로 어울리는 한 쌍인지라 옆에서 보고 있다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그러다가도 근처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는 제현 오빠를 보면 안타까워진다.
평화로운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우리에게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5학년, 6학년은 돌아가면서 저학년 후배들에게 마법 시범을 보여야 한다.”
나는 교탁 앞에 서 있는 성후 오빠를 보며 곤란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저학년 때, 구경할 땐 즐거웠지만 막상 시범을 보여야 하는 입장이 되니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이건 보는 사람도 즐겁지만 시범을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훈련이 된다. 선보일 마법을 신경 써서 연습하게 될 테니까. 많은 사람 앞에서 마법을 쓰는 건 실전 연습도 되지.”
그야 그렇다. 남 앞에 보여야 하니 누구든 어떤 마법을 쓸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할 거다. 실수하지 않을까 싶어 연습도 열심히 하겠지. 게다가 시범이 끝난 후에는 모자란 점을 되돌아보지 않겠나.
“다음 주 수요일이 바로 그 마법 시범 날이다. 시범은 행사가 없는 달에 한 번씩, 7명씩 모여서 한다. 그럼 지원자를 뽑겠다. 혹시 먼저 하고 싶은 사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고민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움츠러들게 된다. 하지만……하지만 말이다, 하기 꺼려지는 일이라도 만약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빨리 끝내고 마음을 푹 놓고 싶어 하는 타입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7명이서 같이 하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손을 든 건 부담스럽게도 나와 올해 학교에 편입해 온 금발 여자아이까지 둘뿐이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술렁댔다. 성후 오빠도 놀란 기색이었다. 민희가 당황하더니 재빨리 나를 따라 손을 들었다. 그러며 의아한 기색으로 속삭였다.
“웬일이야? 은하가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들고…….”
“이런 건 먼저 끝내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더라고.”
“그런가? 그럴지도.”
우리는 다시 앞을 봤다. 성후 오빠의 표정이 다시 평소대로 냉정해졌다.
“……그럼 지원자는 3명이구나.”
“잠깐만요, 선생님! 저도 할게요!”
“저도요!”
의외랄지 예상대로랄지, 한두 사람이 손을 들자 다른 아이들도 뒤따라서 손을 들었다. 예상외였던 것은 그 수가 좀 많았다는 것 정도다. 그렇게 되자 선착순대로 먼저 시범을 보일 7명이 정해졌다.
“시범은 다음 주 수요일 1교시에 1학년 1반에서 한다.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는 너희들의 자유. 고유마법을 써도 되고 기존마법을 써도 상관없어. 열심히 고민하고 연습해 와라.”
나는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든 것은 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시범을 보인다고 생각하니 긴장도 되고 고민도 된다. 게다가 내 마법은 상황에 맞춰 쓰는 마법이라 선택지가 너무 많다. 집에 가면 우선 아이디어 수첩을 훑어보도록 하자.
그렇다고 집에 돌아간 다음부터 고민하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노트 위에 습관적으로 생각을 썼다.
첫 번째 문제는 이거다. 고유마법을 쓸까, 기존마법을 쓸까?
‘음…….’
나는 기왕 하는 김에 고유마법을 쓰기로 했다. 복사한 마법도 몇 개 떠올렸지만 양심상 제외하자. 게다가 내가 마법을 복사한다는 건 친한 선배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그럼 고유마법 중에서 어느 마법을 쓰는 게 좋을까? ‘보여’ 준다면 단연 환각마법이다. 하지만 아직 환각마법은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 그럼 문자마법과 결계마법 중에 선택해야 하는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확실히 고민됐다.
고민은 수업 시간에도 계속됐다. 쉬는 시간, 골똘히 생각하다가 무의식중에 복도로 나갔던 것 같다.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기에 뒤돌아보니 성후 오빠가 서 있었다.
“아, 선생님.”
“…….”
아직도 그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지 성후 오빠는 한순간 눈가를 움찔 떨었다.
“……설마 네가 가장 먼저 지원할 줄은 몰랐어. 은희한테 듣기로는…….”
“아, 네. 제가 조금 소심하긴 해요.”
나는 어색한 기분에 머리를 손으로 몇 번 쓸었다. 성후 오빠가 잠자코 나를 응시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빛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먼저 하고 끝내는 편이 맘이 편하더라고요. 그래도 제일 처음이라니 역시 많이 긴장되네요.”
“어떤 기술을 쓸진 정했어?”
“아뇨. 아직 생각 중이에요. 제 마법은 뚜렷이 형태가 정해진 마법이 아니라서……많이 고민돼요.”
내 마법은 뭐든지 될 수 있으니까. 일단 하나의 마법만 쓸 생각이긴 한데. 에휴,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네 마법은 분명 문자마법과 결계마법이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마법은 문자와 결계로 알려져 있구나. 환각마법을 제하는 건 확정이네. 그래 봤자 선택지는 여전히 하늘의 별만큼 많지만.
아차, 그러고 보니 무궁무진한 기술 사이에서 선택지를 좁힐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시범’이라는 상황이다. 그럼 문자마법이 더 나을지도. 내 결계는 경계선이 투명해서 마법이 발동되었는지 바로 눈치채기 힘들다. 아니, 하지만 그건 내가 결계를 불투명하게 만들면 끝나는 이야기다.
……역시 쉽게 정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민희랑 같이 고민해 봐. 열심히 고민하는 것도 공부에 도움이 많이 되니까.”
내가 다시 고민에 빠진 걸 눈치챘는지 성후 오빠가 상냥히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문득 생각한 건데, 요즘 내가 아는 남자 어른들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걸 취미로 삼은 것 같다. 사실 나는 쓰다듬어 주는 걸 더 좋아하는데 말이다.
“네. 그럴게요.”
끈질기게 고민하다가 마법 실습수업 때 민희와 시범 때 사용할 마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랬더니 이미 정했다는 대답이 나와서 그만 깜짝 놀랐다.
“어떤 걸 할 건데?”
민희가 씩 웃더니 허공에 손을 뻗었다.
“봐 봐. 자동 연사식 권총, E랭크, 속성 부여.”
민희의 손안에 권총이 구현됐다. 민희의 무기구현화마법은 무척 편리한 마법이다. 한번 구현한 무기는 무조건 마법 안에 저장돼서 꺼내거나 없애는 게 자유자재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아직 제한이 많다고 한다. 또한 민희가 ‘무기’라고 인식만 하면 어떤 물건이든 구현 가능하다. 예를 들어 그냥 토끼 인형이라도 민희가 그걸 무기라고만 인식하면 구현이 자유자재란 거다.
“샷!”
타다다다당!
민희가 갑자기 천장을 향해 총을 연사하는 통에 나는 깜짝 놀랐다. 분명 자유 시간이긴 한데, 그래도 너무 눈에 띄는 짓 아냐? 내 예상대로 다들 깜짝 놀라 민희를 돌아보고 있다.
게다가 마법으로 구현한 물건이라 해도 총기류는 만 12세까지 제한된다. 생일이 안 지났으니 민희는 아직 만 10세였다.
천장으로 쏘아진 탄환이 순식간에 여러 개로 늘어나며 나선을 그렸다. 나는 탄환의 궤도를 눈으로 정확히 좇았다. 제법 빨랐으나 여러 개를 동시에 조종하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단 속도가 조금 느렸다.
탄환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민희는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반동이 강해 보였지만 민희의 자세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두 번째로 쏘아져 나간 탄환이 처음에 쐈던 탄환을 모조리 맞혀 떨어트렸다. 서로 부딪힌 탄환이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폭발 사이에서 불꽃이 원을 그리며 피었다. 일단 보여 주기 위한 마법이라는 자각은 있었던 모양이군.
“어때?”
“…….”
어이가 없었다. 저기 깜짝 놀란 아이들 표정이 안 보여? 나는 한마디로 감상을 표현했다.
“시끄러워.”
그러자 민희가 울상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