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Story RAW novel - chapter 94
“은하야?”
갑자기 굳어 미동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와 아빠가 의아해하며 나를 불렀다.
그래, 적어도 지도에다 이름만 적고 있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다. 나는 굳은 눈으로 부모님을 돌아보았다.
“나 지금부터 잘게.”
“뭐?”
“갑자기 왜?”
“꿈속에서, 꿈속에서 민희를 찾아볼 거야.”
“꿈?”
엄마와 아빠는 내가 때때로 꿈속을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꿈속에서 만나 자각몽이 되게끔 이끌어 준 적도 있다.
“민희의 꿈에 들어가 보려고?”
“응. 나 요즘 꿈속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범위가 많이 넓어졌어. 거기다 잘 아는 사람의 꿈은 멀어도 찾을 수 있는걸.”
“꿈속이라. 그런 방법도 있구나.”
아빠가 처음 알았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은하야, 찾아가는 건 좋지만 조심해야 해. 아직 넌 꿈속을 돌아다니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게 많잖아. 예를 들어 꿈속에서 다치면 네 몸에 해가 오는지, 그런 것도 확실하지 않아.”
그야 당연하다. 왜냐면 꿈속에서 위험에 처한 적이 없으니까. 어떤 악몽이라도 결국 꿈일 뿐, 현실의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추적에는 물리적으로 마법을 추적하는 방식과 정신적으로 연결해서 추적하는 방법이 있어. 그러니까 어쩌면 정신 결계가 쳐져 있을지도 몰라.”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추적을 막는다고 하면 물리적인 것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신적인 방어도 있었나 보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분명 정신 방어 결계를 쳤을 거다. 최면마법에 환각마법까지 가진 마법사 아닌가.
그러나 꿈속을 통해 찾는 것은 아마 엄마가 생각하는 것과는 꽤나 다르다.
“엄마, 걱정하지 마. 정신에 직접 접촉하려는 게 아니야. 민희의 ‘문’을 찾을 거야. 그 안엔 들어가지 않을게. 문과 가까운 현실만 보고 올 거야. 위험한 일은 없어. 꿈속에서 엿보면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는다고.”
“그래. 꿈속이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상대가 뭔가 눈치챈 것 같다 싶으면 바로 돌아와. 알았지?”
엄마가 비로소 안심했다. 꿈속을 통해 찾는다는 것에 대해 긴가민가하고 있던 아빠도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혹시라도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 않기로 부모님과 다짐했다. 안전과 위험을 나누는 경계선은 ‘마법을 쓰는 상황이 오지 않는 것’. 바로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사실 찾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는 않다. 엄마가 말한 대로 정신 방어까지 걸려 있고, 더군다나 멀리에 있다고 하면……. 그러나 나는 애써 불안에서 시선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 찾아야만 한다.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의식 속으로 들어갔다. 나를 둘러싼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눈을 뜨자 검은 세계가 보였다. 정적인 장소, 아무것도 없는 곳. 그러나 그토록 새카만 공간인데도 내 주위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새카만 세계에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발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풍경이 달라졌다. 수십 개가 넘는 통로가 생기고, 통로 주위로 계속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발치에 종이 더미 같은 것이 굴러다닐 때도 있었다.
사실 이 길은 미로다. 길을 잘못 들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건 우연히 이곳에 흘러오게 되었을 경우에 한한다. 이곳이 어딘지 인지하고 있고 자신이 돌아갈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다르다. 설령 초심자라 할지라도 길을 찾는 건 못할지언정 자신의 장소로 돌아와 눈을 뜨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다. 몇 가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한다면.
나는 눈을 깜빡이며 멈추지 않고 발을 옮겼다. 그때마다 풍경이 변했다.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민희를, 민희의 ‘문’을 떠올렸다. 평소라면 마법을 써서 불러왔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하고 머릿속에 그리기만 했다.
꿈속 세계가 움직이며 걷는 자가 그리는 길로 인도해 준다. 평소보다는 헤맸으나 곧 낯익은 힘이 내 앞으로 내려섰다. 민희의 꿈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평소와는 느낌이 달라.’
시야를 개방해 마력을 확인한다. 민희의 녹황색 마력에 그 남자의 보라색 마력이 섞여 있다. 이 문을 열면 들킬까? 그건 남자의 마법 성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 목적은 민희의 문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으로 민희의 위치를 찾았다. 문이 투명해지며 모습을 감췄다.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보이지 않게 된 것뿐이다. 나는 같은 꿈속이지만 보다 현실에 가까운 곳으로 내려섰다.
검은 바닥에 파문이 일었다. 호수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 같은 파문 아래로 내가 찾던 ‘마력’이 비쳤다. 마력, 그래, 마력이다. 그도 그럴 게 모습이 전혀 달랐다. 환각마법으로 변장한 것 같다.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멀었다. 실제로도 벽 너머다.
「그 녀석들, 범인이 나라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번에야말로 절대 용서하지 않겠지.」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손으로 거울을 닦듯이 장면을 비추는 파문의 표면을 쓸었다. 남자의 옆에 앉아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민희의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환각 마법사이기 때문일까, 환각을 가볍게 꿰뚫고 민희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초조해졌지만 이내 주먹을 꽉 쥐고 입을 다물었다.
「조금 아깝긴 하군. 사실 그 여자애가 제일 쓸모 있을 것 같았는데.」
그 여자애는……나겠지? 나는 오싹한 기분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분 나빠! 그러나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민희를 살폈다. 민희는 괜찮은 건가?
꿈속은 현실과는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형태든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현실의 기척이나 감정이 내게 드문드문 전해져 왔다. 점점 꿈이 현실처럼 다가오며 주변이 현실의 색으로 잠식되어 갔다.
나는 초조해하면서도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는 나를 데려가지 못한 것이 아니다. ‘않은’ 것이다. 그는 도중에 나를 잡는 것을 그만두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지만……능력은 쓸 만하지만 데려갔다가는 금방 망가질 것 같단 말이야. 마음이 너무 여려. 최면도 듣지 않는 것 같고. 억지로 썼다가 망가지면 소용이 없잖아.」
슬슬 두 사람이 어디에 앉아 있는 건지 알겠다. 차 안이다. 창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민희는 조수석에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남자가 손을 들어 민희의 뺨을 쓸었다. 나는 그 행동을 보며 질색했다. 마음대로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
「나도 그곳의 일원이니, 적어도 인정받은 만큼은 쓸모 있는 행동을 해야겠지?」
남자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민희를 응시한 후 다시 앞을 보았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풍경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렀다.
저렇게 나아가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남자의 말로 추측해 보건대 민희가 납치당한 건 필시 재능 있는 인재이기 때문이겠지. 예전 대현을 습격했던 블랙 재규어 같은 조직은 어디에든 있다는 건가! 하여간 그 어딘지 모를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늦는다. 위험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남자와 민희의 주변에서 단서를 찾았다.
또 한 번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입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음의 목소리였다.
‘대현과 정면으로 대결하면 귀찮아져. 잘해 봐야 공멸.’
상황을 똑바로 보는 냉철한 말이었다. 남자의 보라색 눈동자가 선연히 빛났다.
‘하지만 그것도 찾을 방도가 있을 때의 이야기지.’
남자가 키득 웃었다.
“꽤 스릴 있는 추격전이군, 이건.”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신경 줄이 참 대단하시다. 속으로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때 내 눈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
저건!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꿈에서 깬 즉시 옆에 걸려 있던 외투를 붙잡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아빠와 계속 마법으로 추적을 하고 있던 엄마가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은하야, 혹시.”
“꿈에서 민희를 봤어! 어디 있는지도 봤어.”
“그런데 너 지금 어디 가려고?”
“그건…….”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누구한테 이것을 말해야 하지? 그러나 나는 곧 이것을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답을 내릴 수 있었다. 필사적으로 민희를 추적하고 있을 대현에 알려 줘야지, 누구한테 알려 주겠어.
“대현에!”
“가긴 어딜 가니. 여기로 부르면 되지. 은하 너, 네가 아직 환자란 거 잊지 마.”
“하지만, 급해서…….”
나는 초조해하며 주먹에 꽉 힘을 주었다. 그사이 엄마가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엄마는 전에 대현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어 스승님이나 백한 선생님, 민 선생님 등 하여간 대현의 중요 인물 번호는 전부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핸드폰이 꺼져 있는 모양이다.
“긴급회의 때문에 핸드폰을 꺼 놨나?”
“엄마!”
초조해하며 몸을 들썩이자 엄마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빠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야. 눈앞에서 친구가 납치당하는 걸 봤잖아.”
“알았다, 알았어. 확실히 회의 중인 사람을 불러오는 것보단 우리가 가는 게 빠르겠어.”
“네!”
내 몸 상태를 걱정해 망설이던 엄마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내 바람을 허락했다. 나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마법으로 내 옷을 환자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그사이 아빠는 외출 허가를 받고 왔다.
아빠 말대로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민희가 있던 장소로 날아가고 싶다. 이러는 동안에 민희가 또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면 어떡해? 하지만 나 혼자 민희를 추적하는 것도, 부모님이랑 같이 민희를 추적하는 것도 무모하고 미련한 짓이다. 상대는 B랭크 마법사인 데다 민희가 인질로 잡혀 있다.
“선아 얜 왜 전화를 안 받아? 해림 씨 때문인가……. 끄응. 됐다, 됐어. 위치만 알면 대현의 힘으로 충분하겠지.”
나는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나가 대현으로 텔레포트 했다. 팔목에 걸려 있던 학생증을 이용했다. ……다만 내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것은 오늘이 평일이라는 사실이었다. 텔레포트로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운동장에 있던 애들이 다들 놀라서 나를 돌아보았다.
“어? 은하 님 아냐?”
“진짜다, 은하 선배다!”
“오늘 아파서 안 나온 거 아니었나?”
“옆에 있는 건 혹시 부모님?”
“무슨 일이지?”
“……!”
빠르게 몰리는 시선에 당황하던 나는 이내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곧바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옥상으로 다시 텔레포트 했다. 나는 옥상에서 잠시 당황스러움을 진정시켰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은하 님’이란 호칭을 직접 들은 엄마는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인지 웃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를 쓴웃음만 지었다.
“오긴 왔는데 다들 어디에 있으려나?”
엄마가 당장 마법을 열었다. 모니터를 여기저기 누르는가 싶더니 이내 나와 아빠를 데리고 텔레포트 했다.
풍경이 바뀌었다. 눈앞에 서 있는 커다란 건물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친구들, 스승님과 이사장님, 제현 오빠와 민희의 선생님인 백한 선생님까지, 전부 여기에 있다.
나는 부모님의 만류도 듣지 않고 뛰어 들어갔다. 이윽고 모두가 모여 있는 방문 앞에 다다랐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문을 노크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나와 부모님을 확인한 사람들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은하야? 네가 왜 여기에…….”
“은하가 할 말이 있다고 해서 함께 왔어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전부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도도도 걸어 스승님에게로 다가갔다. 당당하게 말하기는 조금 눈치가 보여 잠시 주춤하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까치발을 들어 스승님의 귓가에 속삭였다.
“꿈을 꿨어요.”
“……!”
스승님은 내가 말하는 ‘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내 꿈에 대해 아는 것은 부모님들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뿐이다.
“민희를 찾았어요. 찾았다고 해도, 있던 위치를 얼핏 본 것뿐이지만요.”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를 느끼며 목소리를 더 죽였다. 워낙 조용해서 모두가 내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나는 부담에 짓눌리면서도 지체 없이 말을 이었다. 빠르게 말을 잇고 있기 때문인지 긴장하고 있기 때문인지 숨이 가빠 왔다.
“부산이에요. 부산, 유란 학교 근처예요. 그 남자가 운전하는 자동차 창밖으로 유란 학교가 스쳐 지나가는 걸 봤어요. 정문이랑 현판도 보였어요. 미, 민희는 차에 잠들어 있고 그 사람은……어딘가의 조직원인 것 같아서, 인재 확보를 목적으로 납치한 것 같아요. 민희와 남자는 환각마법으로 변장하고 있어요. 이게 그 변장한 모습이에요.”
나는 환각마법으로 즉석에서 염사 사진을 만들어 스승님의 손에 넘겼다.
“꿈에서 본 정보는 그게 끝이에요.”
모두가 숨을 삼켰다. 이미 나는 스승님에게만 들리도록 말하고 있지 않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
모두가 침묵했다. 스승님이 변장한 한재일과 민희의 사진을 말없이 응시한다. 그 침묵이 조금 부담스러워져 비교적 가까이에 있던 한수와 인하의 뒤로 달려갔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문가에 서 있던 부모님이 내 곁에 다가왔다. 이사장님이 스승님을 향해 질문했다.
“저 말의 신뢰도는?”
“100%.”
스승님은 단언했다.
“저 아이가 보는 꿈은 현실 혹은 사람의 정신세계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저 아이는 꿈을 사람들의 의식의 통로라고 말하더군요. 여태까지 저 아이가 ‘현실’이라며 말한 것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직접 본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 내 꿈은 그렇다.
아니, 내 꿈만이 아니다. 꿈은 사실 전부 연결되어 있다. 꿈은 의식의 통로.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꿈속 세계에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연결되어 있다.
나는 방 안을 잠시 둘러보다가 인하의 귓가에 속삭여 물었다.
“상황,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어?”
“추적 계속하고, 우리한텐 그 사람에 대해서 물어보고, 경찰이랑 동맹 조직에 협조 요청하고, 이번엔 단서 찾으러 그 사람이 일했던 카페에 가 볼 생각이었어.”
“그렇구나.”
나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럼 저희는 바로 부산으로 향하겠습니다!”
“유란 학교에도 협력 요청을 하고 오겠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도 제법 있었으나 대개는 오고 가며 한 번씩 본 얼굴들이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분주히 움직이던 제현 오빠와 은희 언니가 이곳을 빠져나가기 직전,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사장님이 이어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유민, 정준휘.”
그가 우리를, 정확히는 내 앞에 있는 친구들을 가리켰다.
“너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한재일이 일했다던 카페로 가 봐라. 혹시 뭔가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정준휘의 ‘바람 읽기’도 도움이 되겠지.”
바람 읽기, 사이코메트리에 가까운 준휘 선생님의 특수능력이다. 민 선생님이 당황하며 이사장님을 마주 봤다.
“하지만!”
“쫓는 것 이상으로, 조사도 중요해. 목적이나 목적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망설이는 민 선생님을 대신해 준휘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준휘 선생님은 이사장님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민 선생님을 이끌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준휘 선생님이 내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은하는 이제 괜찮습니까?”
“낫기는 다 나았어요. 그래도 아직은 쉬어야 해요.”
“그래, 이제 병원으로 돌아가라. 아직 몸이 안 좋을 텐데 일부러 전해 주러 와 줘서 고맙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돌아가라고? 이대로?
“저 이제 하나도 안 아파요. 저도 카페에 같이 가면 안 되나요?”
그럴 순 없다! 어떻게 이대로 돌아갈 수 있나.
“은하야!”
“하지만…….”
엄마가 당황하며 나를 불렀다. 준휘 선생님도 곤란해하는 기색으로 부모님을 흘끔거렸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마주 봤다.
“엄마, 제발. 조사하러 가는 것뿐이잖아. 조사라면 나도 도움이 될 거야. 특수능력도 있고…….”
걱정에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던 엄마는 아빠와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숙여 나와 시선을 맞췄다.
“너 정말 이제 안 아프지?”
“안 아파. 다 나았어.”
“좋아, 알았어.”
엄마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민희가 많이 걱정되지?”
“응.”
“눈앞에서 봤으니 더 무섭겠지. 엄마도 은하 맘 잘 알아.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선생님 곁에 꼭 붙어서 돌아다니는 거다? 절대 무모한 행동 하지 않기. 알았지?”
“약속할게.”
엄마가 이내 허리를 펴며 비교적 침착한 얼굴로, 그러나 곤란한 눈으로 우리를 주시하는 준휘 선생님께 인사했다.
“은하를 잘 부탁드려요. 의사 선생님도, 정민 씨도 부상은 다 치료했다고 했어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저희까지 우르르 따라가는 것도 좀 그러니 저는 이이와 함께 다른 방향으로 수색해 볼게요.”
“걱정 마십시오. 카페에만 갔다가 바로 돌려보낼 겁니다. 선발 조사 부대가 카페에 위험이 없는 걸 이미 확인했습니다. 위험한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을 데려가는 건 아이들이 카페에 가 본 적이 있기 때문이고, 현장에서 한재일이 취했던 행동을 듣고 단서를 찾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조금이라도 안색이 안 좋아 보이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부모님과 헤어져 친구들과 합류했다. 두 선생님을 따라 차로 향하며 현호가 내 손을 꽉 쥐었다.
“은하야, 잘 생각했어! 우리 꼭 민희를 구해 내자.”
“……응.”
“당연하지.”
“반드시.”
친구들이 저마다 각오 어린 눈으로 한마디씩 하는데 준휘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며 우리를 돌아봤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단서를 찾더라도 너희는 절대 끼어들면 안 된다. 너희를 데려가는 건 현장에 가면 뭔가 더 생각나는 게 있을 수도 있어서일 뿐이야.”
나는 굳은 눈으로 준휘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한수와 인하, 현호였다. 세 사람은 그들다운 태도로 항의했다.
“엑? 어째서요! 우리들도 싸울 수 있다고요!”
“맞아. 무시하지 말라고!”
“그럴 순 없어요.”
“너희…….”
준휘 선생님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나는 한 팔을 벌려 항의하던 친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엄마와 약속한 거 들었죠? 걱정하지 마세요. 무모함과 용기를 착각하지는 않을게요. 민 선생님의 라이벌이었다는 건, 그 사람의 실력은 최소 B랭크. 도움도 되지 않는 싸움에 끼어들어서 짐이 될 생각은 없어요. 다만……민희를 찾았을 때……민희의 상태가 어떤지, 상황을 꼭 알려 주세요.”
이어지는 내 말에 친구들의 입이 불만스럽게 다물렸다. 말을 하면서도 나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을 단단히 굳힌 채 말을 이으면서도 무력감에 몸이 떨려 왔다. 준휘 선생님은 나를 약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안심한 낯으로 웃었다.
“그래. 그건 약속하마.”
내가 이번 싸움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것은 그와의 싸움을 통해 이미 제대로 느꼈다. 실감하고야 말았다. 나는 지금 랭크 시험조차 못 치는 미성년 마법사고, 그 남자는 B랭크의 반열에 들어가 있는 몹시도 강한 마법사다. 그것도 전에 날 노렸던 블랙 재규어의 그 남자와는 다르게 B랭크에서도 상당한 상위의 마법사였다. 덕분에 C랭크와 B랭크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지 이번 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꼭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오히려 내게 잘 맞는다. 지금처럼 꿈속의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민 선생님은 맨 뒤에서 가라앉은 표정으로 우리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곧 민 선생님의 차에 올라탔다.
한재일이 운영했던 카페, ‘에뜨왈’은 학교와 가까운 장소에 위치해 있다. 그 구역은 전투 피해를 입었던지라 한동안 폐쇄되어 있었지만, 며칠 만에 다시 복구됐다. 대현은 잠깐 사이 카페와 한재일 간의 관계를 어느 정도 조사한 상태였다.
카페가 들어서 있는 건물은 한재일의 명의로 되어 있다. 하지만 한재일은 평소 건물 운영을 전문 기관에 맡기고 있었고, 카페 운영 역시 카페 사장이 해 왔다. 한재일이 카페에서 요리를 한 건 기껏해야 한 달 정도라고 한다. 그 전에도 가끔씩 돌아와서 요리를 하곤 했기에 이번에도 평소처럼 요리를 맡겼다던가.
카페로 향하면서 민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짧게 자신의 친구였던 ‘한재일’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녀석은 내가 지금의 너희보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녀석이었어.”
목소리에 공허함과 씁쓸함이 섞였다. 그래, 민 선생님은 한재일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어딘지 서글픈 눈을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은 전쟁터야. 분쟁 지역에 있다가 학교에 보호받은 케이스지. 성격도 더럽고, 도덕성도 너덜너덜해서, 나쁜 짓만 저지르는 문제아들이었어.”
그래서 민 선생님은 그 남자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결국에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후 준휘 선생님과 관련하여 안 좋은 일이 있은 후에도 여전히 그를 끊어 내지 못했다. 그건 민 선생님에게는 떨칠래야 떨칠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사이가 멀어진 지금은 아주 친했던 때처럼 애틋하지는 않다. 하지만 민 선생님이 그 남자를 향해 하는 욕에는 언제나 채 숨기지 못한 걱정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나랑 닮았었어. 지금은 아니지만.”
“…….”
“정신 나간 놈인 건 진작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가 괜찮아졌기 때문에, 그 녀석도 괜찮아졌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던 거겠지.”
우리는 익숙한 번화가에 내려섰다. 이미 카페 건물 주변은 경찰 혹은 대현의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준휘 선생님과 민 선생님이 그들과 대화를 나누더니, 잠시 후 손짓으로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딸랑.
카페 내부는 우리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창가에는 화분이 놓여 있고 식탁 위는 분위기 있는 테이블보가 감싸고 있다.
천천히 걸어가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앉았던 자리에 멈춰 섰다. 그날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가 되살아났다. 그와 처음 눈이 마주쳤던 때를 떠올리며 시선을 움직였다. 그날 그는 저쪽 카운터 쪽에서 웃는 얼굴로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다.
“기억을 봤다. 여기에서 그 녀석을 처음 봤지?”
가만히 한 방향을 주시하고 있자 준휘 선생님이 내 곁으로 다가섰다.
“네.”
“그때는 별로 수상한 기색은 없었고?”
“그렇죠. 다만, 저랑 상성이 안 맞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랑 눈이 마주치더니 웃어서 깜짝 놀랐어요.”
“너희는? 너희는 뭐 걸리는 거 없었고?”
민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준휘 선생님이 내게 질문했던 것과 비슷한 것을 물었다. 여기에서 한재일을 신경 썼던 것은 유감스럽게도 나밖에 없었다.
나는 준휘 선생님과 함께 카페 곳곳을 둘러보며 수상한 마력을 찾았다. 하지만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1층을 잠시 둘러보다가 바깥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민간 구역 습격 사건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놀랍게도 완벽히 부서졌다 복구된 도로에는 아직도 한재일의 마력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의 마법 특성 때문이다. 한재일의 ‘독’은 무척 독하다.
그 후에는 나와 민희가 습격당했던 장소로 향했다. 준휘 선생님은 가기 전 힘들거나 괴롭지 않겠냐고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꿋꿋이 가겠다고 했다.
그 현장에는 은희 언니와 은희 언니의 절친인 주연 선배가 와 있었다.
“어? 왜 얘들이랑 같이 와요?”
“당사자니까 뭔가 더 아는 게 있을까 해서 같이 왔어.”
“은하야, 괜찮겠어? 괴롭지 않아?”
은희 언니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보았지만, 나는 괜찮다고만 했다. 실제로 괜찮았다. 바로 어제, 여기에서 한재일에게 습격당했다. 바로 여기에서 민희가 납치당했다. 그때의 분함과 고통이 되살아났지만 나는 생각보다 냉정하게 버틸 수 있었다. 내 표정을 보고 친구들과 선배들, 선생님들이 안심했다.
“마침 잘됐다. 나 은하 기억 중에서 잘 모르겠는 게 있는데, 설명해 줄래? 혹시 힘들거나 괴로우면 꼭 말해야 한다?”
“네.”
은희 언니가 어려워하던 것은 바로 내가 관찰한 ‘마력 색’이었다. 나야 마력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이게 뭔가 싶을 거다. 나는 마력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열심히 설명했다.
놀랍게도 그것으로 조사가 끝났다. 끝, 준휘 선생님 말로는 끝이었다.
“이게 끝이라고요? 이것뿐이에요?”
“그럼 뭘 할 거라고 생각한 거냐. 아까 은하네 부모님께도 말했지만 정말 중요한 곳의 조사라면 너희에게 도와 달라고 할 리가 없잖아.”
말 그대로 우리가 한재일을 봤을 때의 상황을 재현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인하는 예리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쏘아봤다.
“거짓말.”
“뭐가 거짓말이라는…….”
“그럼 아까 그 대화는 뭐였는데요? 카페 2층에 강한 잠금마법이 걸려서 열 수 없다고 하니까, 선생님들이 조사하고 싶다고, 확인하고 싶다고,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했었잖아요.”
“그건…….”
“전 왜 카페 2층에는, 그 사람 방에는 안 들어가나 했는데, 우릴 떼 놓고 둘이서만 가려고 그랬군요?”
그랬단 말이야? 이번에는 나도 불만스러운 눈으로 선생님들을 올려다보았다. 준휘 선생님과 민 선생님은 쏟아지는 항의 속에서 곤란해했다.
“그건 말이다…….”
“그렇게 위험해요? 그 방이.”
“그건 지금부터 가 봐야 안다만.”
“선생님! 아까 무모하고 위험한 짓은 안 한다고 했지만.”
나는 간절한 눈으로 두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적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만이라도, 하나라도 더 단서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
“조사 정도는 저희도 도울 수 있잖아요. 정말로 위험하면 안 들어갈게요. 눈으로 꼭꼭 확인하고 살펴볼게요.”
“맞아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