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11
10화. 보름달이 뜨는 밤에 (4)
지난 날.
호면마적과 소호오랑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정천에게 연비가 다가왔던 날.
“삼공자께서 현재 어느 단체에 몸을 담고 계신지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정천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연비는 아직 격렬하게 맞붙고 있는 그들, 정확히는 유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분은 삼공자께서 그곳에서 공들여 쌓은 금자탑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실 분입니다.”
“저 재수 없게 생긴 놈이? 뭐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주안술로 위장한 연비가 소녀의 얼굴로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천은 그 기분 나쁜 웃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는 내일 밤 저 왕 뚱보 아저씨를 죽일 겁니다. 그러면 저 아리따운 분께서 주목을 받으시겠죠.”
“그래서 나더러 저 애송이 같은 놈의 보모 역을 하라고?”
“꼭 막내공자님께서 해주셔야 한다는 삼공자의 전언입니다.”
“…중요한 놈이라기엔 너무 비리비리한데.”
“걱정 마셔요. 무대에 오를 여러 배역들을 준비해놓았으니까. 공자님께선 저 분을 최종 목적지까지 잘 유인만 해주시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흐음.”
정천은 생각에 잠긴 눈으로 유운을 바라봤다.
“좋아. 셋째 사형에게 전해. 묵혼혈룡의 봉인을 풀 단서와… 대사형을 마주할 기회. 잊으면 재미없어질 거라고.”
“알겠습니다.”
그러느라 연비가 뒤늦게 덧붙인 말은 뒷전이었다.
“아, 그리고 참고로 ‘놈’은 아닙니다만, 호호.”
* * *
비무대 위로 올라온 청해룡이라는 사내. 얼마 전 만났던 연비라는 삼사형의 수하가 준비한 배역 중의 하나겠지.
유심히 그를 지켜보는 정천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흐음. 복마천겁이라….’
그럴 리가 없다. 그자를 모방한 놈이라면 모를까. 천마신교에서도 악명 높은 인사가 이런 곳에서 사람들의 유희거리로 소비되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아마 그놈을 따라 하거나, 그놈의 무공을 배운 놈이겠지.’
결정적으로.
“너무 약해.”
“하하, 광산검이 그 허명에 비해 약하긴 약하군요.”
아니, 뭐 그쪽을 이야기한 건 아니었는데. 청해룡과 광산검의 대결. 너무도 시시하게 끝났다. 광산검의 검은 단 일격도 청해룡을 스치지 못했고, 청해룡의 일격은 너무도 여유롭게 광산검의 목을 꿰뚫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청해룡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유운을 향하는 정천의 시선.
“자, 그러면 어느 분이 먼저 비무대에 오르시겠습니까?”
이제 차례가 되었다. 당연히 답을 들을 것도 없었다. 유운이 비무대 위로 올랐다.
“어? 저 반반한 상판대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그러고 보니….”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호면마적! 호면마적이다!”
“진짜 호면마적이네!”
흥분하기 시작하는 관중들.
“호면마적! 빼어난 외모로 뭇 여인들의 마음을 빼앗아간 안휘성 제일 미남이 올라왔습니다! 그 또한 안휘일미 홍옥봉의 향기에 이끌린 것인가! 제일 미남과 제일 미녀의 뜨거운 밤이라…. 그 얼마나 설레는 일이란 말인가! 홍옥봉을 놓아주지 않는 청해룡, 그에 맞서 홍옥봉을 차지하려는 호면마적. 자자, 귀인들께서는 누구의 우위를 점치고 있는지 열과 성을 다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둥— 둥— 둥— 둥— 둥—
사회자의 능숙한 진행을 시작으로 관중들의 열띤 논쟁이 이어졌다.
“아무리 호면마적이라도 고작 소호오랑에게도 패해 꼬랑지 말고 도망친 놈이 아닌가!”
“아니야, 아니야. 그 당시 호면마적은 자신의 검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고작 저잣거리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오행검법으로만 상대했었어.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만약 청해룡이 오행검법으로 소호오랑을 상대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다!”
“그런데 왕호장주를 암습한 게 호면마적이 아니었나? 왕호장 무사들한테 쫓겨 다니고 있었을 텐데?”
“아무렴 어떤가. 청해룡과 호면마적, 누가 이길지만 생각하면 될 것을, 쯧쯔.”
사람들이 뭐라 떠들든 상관없었다. 유운은 살기를 가득 머금은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봤다.
“십 년 전, 호북천가(湖北天家)에 침입한 사실이 있는가.”
“…….”
청해룡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유운을 응시했다.
“말하라. 그대가 맞는가?”
“천가의 사람인가?”
“먼저 물은 것은 나다.”
무언(無言) 속에 긍정이 숨어 있다.
청해룡의 두 눈이 번뜩였다.
“천가의 일원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노라.”
예의 독특한 기수식을 취하는 청해룡.
“뭐? 감히…!”
자신의 집안을 풍비박산 내놓은 인물이 감히 할 수 있는 언사일까?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느꼈었다면 당신은 조금이라도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동정의 여지도 없다. 죽여버리겠다. 갈가리 찢어 고통스럽게.
스르릉-
청명한 마찰음과 함께 유운의 검이 뽑혀 나왔다. 탐색전은 필요 없었다. 강맹한 기운이 유운의 검신을 중심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거친 파도처럼, 혹은 폭풍처럼. 유형의 검기가 맴돌았다.
‘삼 장 거리.’
청해룡과의 거리를 가늠해본 유운이 발을 굴렀다. 쏜살같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유운의 신형. 범인의 눈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속도였다. 눈 깜빡할 사이 청해룡의 눈앞에 당도한 유운의 검이 그의 목을 꿰뚫기 위해 찔러 들어갔다. 허초 따위는 없었다. 전력을 한 점에 집중해 쏘아낸 그의 검은 강렬했고, 또한 쾌속했다.
튕겨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청해룡은 몸을 뒤로 쭈욱 뺐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예상 범위 내. 그대로 쫓아간 유운이 허리를 양단할 듯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더 이상 몸을 뒤로 뺄 수는 없다는 듯 검을 세워 마주하는 청해룡.
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 청해룡의 자세가 무너져 내렸다. 유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복부를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됐다!’
스윽-
없었다. 청해룡이 있어야 할 위치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유운이 뒤로 홱 돌아봤을 때, 그는 처음 자세 그대로 그곳에 서 있었다.
“다 보여줬는가?”
“…….”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두 눈은 자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살의(殺意).
너무도 강렬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
“어째서지? 우리 가문에 비극을 안겨준 건 그대인데,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거지?”
“세상을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군.”
“뭐라고?”
그런데 드러난 얼굴을 자세히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십 년 전에 활동했다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앳되어 보였다. 기껏해야 자신과 비슷하거나 아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같은 검법에 같은 검을 쓰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다면, 답은 하나였다.
“우리 가문에 비극을 안긴 자와 무슨 관계이지?”
“우물에서 나와, 진정한 하늘을 보라. 그러면 진실이 보일 터. 물론, 그 전에 사지가 찢겨 죽겠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검수(劍手)는 검으로 대화를 할 뿐. 그들만의 치열한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 * *
“쯧쯔. 너무 급해.”
유운의 검은 강하다. 적어도 동년배 중에서는 적수가 드문 실력. 하지만 지금 그에게 적수가 나타났다. 둘의 경지는 동급, 혹은 유운이 살짝 우위. 그런데도 유운의 검은 너무 감정적이고 급했다. 그에 반해 청해룡은 여유가 있었다. 그만큼 실전을 많이 겪어봤고, 그만큼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 고수들의 대결에서 그 차이가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오우야, 위험해!”
청해룡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유운. 하지만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무림인에게 규격이라는 게 있겠냐마는, 보통의 장검보다 일 척은 더 긴 청해룡의 검격(劍隔)에 익숙하지 않은 유운이 여간 애를 먹는 것이 아니었다.
“뭐, 이것도 다 수련의 일환이고 성장의 발판이지, 암암.”
물론 목숨을 건 외줄 타기였지만.
“흐음, 이 아저씨들은 언제쯤 도착하려나?”
수십 합이 이어졌다. 장내에 모인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천하의 천해룡이 누군가와 수십 합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천해룡과 대등하게 대적하는 호면마적이라니. 어쩌면 오늘 승자가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군중들의 눈빛에 갈망이 서려 있었다.
“호오.”
이에 부응하듯 다급해 보이던 유운의 검이 한결 여유로움을 찾았다. 상대의 검격을 정확히 인지하고 대응하기 시작하자 점차 수월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무학에 대한 이해는 괜찮단 말이지.”
실전 그 순간, 순간이 그에게는 학습이고, 성취였다. 쭉쭉 빨아들이는 힘. 적어도 무(武)에 있어서는 천재라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오오오오오오!”
드디어 청해룡의 어깻죽지에 꽂힌 유운의 검. 새로운 최강자의 탄생이 임박해 보이자 군중들이 열광했다.
“우와와아아아아아!”
이번에는 허벅지였다. 청해룡의 운신이 대폭 느려졌다. 결국 수세에 몰리는 청해룡.
“죽여! 죽여! 죽여! 죽여!”
군중들의 광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누군가에게는 악몽으로, 이곳, 효전에서 절대자처럼 군림하던 청해룡이었지만 어차피 투견판 위의 미친개 한 마리일 뿐이었다. 결국, 청해룡은 무릎을 꿇었고 유운이 검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복마천겁, 그와 무슨 관계이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
청해룡은 아무 말 없이 유운을 응시했다.
“한 집안에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고 죄책감도 들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게 말이다. 내가 죽거든 네 가문의 가주이자 백도 무림의 정점에 있는 그에게 똑같이 묻거라.”
“뭐라고?”
“웃기는군. 씻을 수 없는 상처? 너희 가문이 잃은 것이 무엇이지? 우리가 잃은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할 뿐인 상처를 부풀리는 모습이 같잖군.”
“그게 무슨… 아버지께서 대체 무슨….”
“아버지? 내가 알기로 무림맹주에게는 아들이 없을 텐데?”
“…….”
‘아차.’
실수를 깨달은 유운이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군중들은 이미 광기에 휩싸여 이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체 무림맹주가 네게 무엇을 했단 말이냐?”
“후훗. 아까 말하지 않았나? 가서 직접 물어보라고.”
유운의 검 끝이 흔들렸다. 주저하고 있다. 이자를 지금 죽여버리는 게 맞는지 아닌지. 더 깊숙이는,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지. 좀 전까지만 해도 들끓던 살의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무엇보다 의구심이 들었다. 대체 피해자는 자신의 가문인데 어째서 가해자가 복수심을 느낀단 말인가. 대체 아버지가 무슨 짓을….
“흡!”
어디선가 살기가 느껴졌다. 정천이 뒤를 돌아본 순간, 장옷으로 전신을 덮은 누군가가 작은 침통을 입으로 가져다 대더니, 훅하고 불었다.
“크윽!”
동시에 유운이 무너져 내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청해룡이 악을 쓰며 검을 들어 올렸다.
채앵!
청해룡의 검을 막아서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운은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우우우우우우-”
누군가의 개입이 명백한 상황. 갑작스레 펼쳐진 상황에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나는… 천가의 핏줄이라면 그 누가 되었든 단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저승의 문턱을 넘겠다. 무인의 자존심 따위, 그 더러운 가문 앞에서는 지킬 이유가 없지.”
청해룡의 눈이 살의로 불타올랐다.
“대, 대체 아버지가 네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건, 저승에 가서 묻도록 하라.”
“대, 대체 아버지가 네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건, 저승에 가서 묻도록 하라.”
청해룡이 쓰러진 유운 앞으로 다가갔다. 정천이 그 광경을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우웅- 우웅-
“아직. 아직이야 묵룡.”
정천은 진동하는 검집을 단단한 손으로 붙잡았다.
“아직은 끼어들 때가 아니야. 저기 보여? 곧 봉황의 검령이 깨어날 거야.”
검명(劒鳴)으로 화답하는 묵룡.
그때였다.
“멈추어라! 무림맹이다!”
채채채채챙-!
입구가 소란해지더니, 순식간에 칼부림이 일어났다. 그 선두에서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는 모용학이 비무대 위에 검을 든 청해룡과 그 앞에 쓰러져 신음하는 유운을 발견했다.
“당장 그 검을 멈추어라!”
모용학이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 거리는 십여 장.
“그럼, 이만.”
청해룡의 검이 공기를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