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116
2화. 무영문 일곱 번째 제자(2)
“그러니까 왜 사형한테 개겨서는…….”
정천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거의 복날에 개 잡듯이 맞아 두 눈은 시퍼렇게 멍들고 입술은 다 터졌다.
“끄응…….”
호진이 차가운 물에 적신 천을 정성스레 대줄 때마다 정천이 고통에 신음했다.
‘무공이란 건 엄청나구나.’
정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향곡에서 지낼 당시, 또래 중에서 그 누구보다 싸움을 잘했던 정천이었다. 악바리 정신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체계적인 무공을 배운 순유에게는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어……요?”
정천의 순수한 물음에 호진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글쎄, 일단 근력부터 키워야겠지?”
“그다음엔?”
“내공도 꾸준히 쌓아야 해.”
“그리고요?”
“무공을 배워야겠지.”
정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몰라서 물었을까. 하긴, 자기보다 고작 두 살 많은 사형이라고 답을 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빨리 강해져야겠어요.”
“다섯째 사형을 이기고 싶어서?”
정천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분했다. 다섯째 사형의 털끝 하나 건드려보지 못하고 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작 다섯째 사형만을 이기기 위해 강해지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강함’에 대한 열망이 미친 듯이 샘솟았을 뿐이다.
* * *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후우.”
제시간에 맞춰 물을 길어올 수 있었다.
“막내야, 빨래 해와라.”
“…….”
그렇다고 노동의 시간이 단축된 건 아니었다. 그들의 것은 물론 사형들의 무복과 속옷 빨래까지 정천과 호진의 몫이었다.
“아, 나도 막내 좀 갖고 싶다!!!!”
철썩- 철썩-
호진과 함께 개울가에 자리 잡고 앉은 정천은 강철로 만들어진 무거운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며 신세를 한탄했다.
“흐음.”
그래도, 일 년 동안 중노동에만 시달린 건 아니었다. 정천은 아랫배를 만져보았다. 물론 형체가 없는 내공이 만져지기는 만무하지만, 단전에 쌓여가는 내공이 느껴졌다. 정천은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열심히 방망이질을 해댔다.
“천아, 너도 이제 곧 사냥하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거야.”
“사냥…….”
결국 중노동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래, 얼마나 재밌겠니?”
해맑게 웃으며 옆에서 염장 지르는 여섯째 사형을 어떻게 패버릴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스윽-
개울가 근처의 수풀이 흔들렸다.
“응?”
“천아, 왜 그러니?”
정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저쪽 수풀이 흔들리는 거 못 봤어요?”
“그래? 전혀. 잘못 본 것 아니니?”
“그럴 리가…….”
한참을 지켜보던 정천은 잘못 본 거라 판단하고 다시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
정천이 벌떡 일어섰다. 정천은 말없이 수풀 너머를 지켜봤다. ‘살기’였다. 어린애가 살기를 어떻게 감지할 수 있냐고? 겪어봤기 때문에 그는 알고 있었다.
“왜 그러니?”
덩달아 일어선 호진이 불안한 눈빛으로 정천이 응시하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조심해요.”
정천은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포식자의 눈이었다.
크르릉-
개울가에 울려 퍼지는 포식자의 포효.
“호, 호랑이?”
드디어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난 크기의 몸집을 자랑하는 호랑이가 그 위용을 뽐내며 나타났다.
“사냥하기는커녕, 사냥당하게 생겼네, 젠장!”
“어, 어떻게 하지? 사, 사형들을 불러야…….”
“뒤돌아서는 순간, 끝장이에요.”
떨고 있는 호진과 달리, 정천은 차분하게 호랑이를 노려봤다.
“배운 대로만 해보죠.”
노동시간이 많아서 그렇지, 수련을 게을리한 적은 없었다. 매일 같이 반복된 검술 수련을 상기하며 방망이를 중단으로 세워 들었다.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사형이 저놈의 공격을 막아주면 내가 놈의 머리통을 박살 낼게요.”
이들의 머리통만 한 크기의 앞발을 막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못하면 놈한테 잡아먹히는 거고요.”
“…….”
호진이 침을 꼴깍 삼켰다.
크허어어엉-!
놈이 포효를 하며 사냥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호진은 빨래 방망이를 들어 올려 놈의 앞발을 막아냈다.
“으아악!”
하지만 어마어마한 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하앗!”
그 틈을 탄 정천이 강철 방망이를 내리쳤다.
부웅-!
“……!!”
정천이 한 가지 간과한 것. 어린아이의 눈먼 공격에 당할 정도로 호랑이는 느리지 않았다. 호랑이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순식간에 정천의 공격을 피한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며 정천의 목덜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젠장!”
정천이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따악!
깨갱!
어디선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온 무언가가 놈의 안면을 강타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 정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방망이를 후려쳤다.
회심의 종베기!
빠각!
정천의 방망이가 놈의 머리를 강하게 타격했다.
크허어어엉!
‘약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놈은 더 거칠게 몸부림치며 정천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정천이 뒤로 몸을 날렸다.
촤아아악!
“끄윽!”
정천의 상의 앞섬이 찢겨나가며 피가 튀어 올랐다.
“천아!”
호진이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멈춰!”
누군가의 외침!
호진의 옆으로 바람이 홱 불며 한 인영이 지나쳤다.
스르릉-!
촤아아악!
일격에 호랑이의 목이 절단되며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두, 둘째 사형!”
호진이 외쳤다. 둘째 제자, 사현이었다.
“끄으윽…….”
사현은 검을 집어넣으며 품에 가지고 다니던 빻은 약초 가루를 꺼내 정천의 가슴팍에 뿌렸다.
“지혈은 됐을 테니, 얼른 막내를 숙소로 옮기거라.”
“예, 사형!”
호진은 정천을 업고 숙소를 향해 뛰어갔다.
‘그 순간에 그걸 피한다고? 고작 열 한 살짜리가?’
정천은 끝까지 호랑이의 공격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며 뒤로 몸을 날렸다. 그 대담함, 그리고 침착함이 범상치 않았다.
‘사부님이 데려올 만한 이유가 있었어.’
더 이상의 제자는 받지 않겠다는 의지까지 번복하며 데려온 녀석이었으니. 사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또다시 일 년이 지났다.
쉬익-!
쉬익-!
연무장에는 바람 가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후우- 후우-!”
마지막 천 번째 검을 휘두른 정천은 숨을 고른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시작된 일주천. 오행의 기운을 느끼며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갔다.
탁-탁-탁-탁-
내력의 운행을 끝낸 정천이 눈을 뜰 때쯤, 누군가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할 수 있는 발소리.
“천아.”
호진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사부님께서 찾으신다.”
사부의 호출. 얼른 자리에서 일어선 정천은 호진을 따라 사부의 집무실로 향했다.
* * *
“사부님을 뵙습니다.”
사부의 집무실에 들어선 정천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왔느냐?”
사부는 하얀 수염을 매만지며 정천을 환대했다.
“무슨 일로…….”
“아아, 별건 아니고 이번에 아랫마을에 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어 너를 불렀단다.”
“……!!”
정천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네가 말이다.”
정천은 어떻게든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하하, 그게 그렇게 좋더냐?”
“아, 그게 아니라…….”
“괜찮다. 두 해만의 외출이 설레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헤헤…….”
애는 애였다. 장장 이 년 동안 산속에 틀어박혀 수련과 가사노동에만 매진하던 녀석이 외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쁠까.
“어떤 심부름을 하면 됩니까?”
“여기.”
사부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아랫마을 대장장이 장 씨에게 이 서신을 전달하고 물건을 받아오면 된단다.”
간단한 일이었다. 다른 제자들에게 시켜도 됐지만, 정천을 배려한 것.
“이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오거라.”
심지어 동전까지 쥐여 준다.
“저,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이지.”
정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도 좋더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천.
“그래, 나가보거라.”
정천은 사부가 말을 바꿀세라 얼른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 * *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공기부터가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만 같았다. 물론금기가 몇 개 있었다.
첫째, 절대 무영문의 존재에 대해서는 들키지 말아야 한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부는 외부에 ‘무영문’의 존재가 알려지는 걸 원치 않으셨다. 그저 중원에 흔하고 별볼일 없는 산문무파(山門武派)로 여겨지길 바라셨다.
둘째, 절대 실력을 드러내지 않을 것. 첫 번째 금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괜히 실력을 드러냈다가 의심을 사, 중원무림에 알려지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비교군이 사형들뿐인지라, 스스로 느끼는 실력은 매우 매우 미천했다. 특히 벌써 검기는 물론 검강까지 다루는 대사형과 자신을 견줘보면 하늘과 땅의 차이였으니 지금의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금기. 여자였다. 절대 아랫마을 여자를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물론 정천과는 아무 상관 없는 금기였다. 고작 여자를 품기에는 열두 살의 나이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어쨌든 사부가 일러 준 금기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마을 내부로 들어섰다.
“우와!”
아랫마을이라길래 사실 아주 작은 고을 정도로 생각한 정천이었지만, 의외로 규모가 꽤 컸고 사람도 꽤 많았다.
“뭔데 이리 사람이 많아?”
북적북적하게 모인 사람들. 길의 양옆으로 좌판이 주욱 깔려 있었다. 정천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 장터였다.
“오오! 당과!”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당연지사, 당과였다. 가끔 아랫마을에 다녀온 사형들이 사 온 적이 있기에 그 맛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저거를 안 사가면 다섯째 사형이 죽이려 들겠지?”
이미 성인인 대사형과 둘째 사형이야 좋아할 리 없었지만, 나머지 사형들은 당과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정천은 얼른 당과점 앞으로 갔다.
“꼬마야, 뭐 줄까?”
“당과요.”
“얼마나 줄까?”
“흐음…….”
정천은 다섯 개의 손가락을 폈다.
“잠깐 기다리거라.”
정천은 흘러나오는 침을 닦으며 당과점 주인 아저씨가 당과를 담아주기만을 기다렸다.
“여기 있다.”
돈을 지불하고 당과를 받아 든 정천은 얼른 하나를 베어 물었다.
“우움!! 맛있어!”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행복감에 정천은 소리를 질렀다.
“맛있냐?”
길을 걷고 있을 때 한 사내가 나타나 그의 어깨 위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얼마 뒤, 또 다른 사내가 반대편에서 나타나 똑같이 팔을 둘렀다. 정천보다 적어도 머리 하나 이상은 큰 이들이었다.
“누구세요?”
여전히 당과를 우물거리며 정천이 물었다.
“형들이랑 조용히 저기로 좀 가자.”
정천은 영문도 모른 채 두 사내의 손에 이끌려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