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120
6화. 무영문 일곱 번째 제자(6)
“그런데…… 너무 어린 거 아닙니까?”
혈마의 수하가 데려온 정천을 본 효전 관계자가 눈을 좁히며 말했다.
“주군께서 추천한 인물입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관계자가 어딘가로 향했고, 정천이 비무대 위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둥— 둥— 둥— 둥— 둥—
타고(打鼓)가 울리며 다음 비무의 시작을 알렸다.
“자, 새로운 왕의 등극을 막아낼 자 누구인가! 무림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고수, 정천을 소개합니다!”
진행자의 외침과 함께 정천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웅성- 웅성-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본 이들은 대부분 같은 반응이었다.
“너무 어린애가 아닌가?”
“딱 봐도 비실해 보이는 게…….”
“우우- 제대로 된 상대를 데려와라!”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며 정천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군. 혈마 선배께서 내 상대로 올린 이의 실력이.”
“이제 곧 보게 되겠지.”
정천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 검으로 괜찮겠는가?”
녹이 슬고 군데군데 이가 빠진 검신을 지켜본 혁련종이 물었다. 그의 검을 받기에는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누가 그러던데,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지이이잉-!
“비무를 시작합니다!”
진행자의 외침과 함께 둘의 비무가 시작되었다.
“굉장한데?”
혁련종. 천마신교 교주의 아들답게 그에게서 퍼져 나오는 기운이 전신에 중압감을 선사했다. 지금껏 상대했던 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정천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무림에 나와 처음으로 전력을 다할 수 있다는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시작해볼까?”
하단전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내공이 폭사하는 순간, 정천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디 보여봐라, 그 쾌검을.’
정천이 발을 구르는 순간, 그의 신형은 어느새 혁련종의 앞에 와 있었다.
채애애앵-!
둘의 검이 맞부딪혔다.
‘빠르다!’
정천의 엄청난 검속에 혁련종이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쾌검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있는 그였다.
“……!!”
정천이 급히 몸을 뒤로 뺐다.
스윽-
정천이 손을 들어 왼쪽 뺨에 새어 나온 선혈을 스윽 닦았다.
‘또 보이지 않았어.’
본능적으로 몸을 빼지 않았다면 크게 당할 뻔했다.
“천마비검(天魔秘劍)을 피하다니.”
놀란 건 정천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무림에 나와 단 한 번도 막힌 적 없던 검이었다.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간파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천마비검……. 천마신검의 한 수인가?”
정천은 손을 까딱거리며 그를 도발했다.
“어디 다시 한번 보여주시지?”
“사양하지 않겠다.”
혁련종 또한 그의 도발을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스윽-
그가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
이번에도 정천은 본능적으로 몸을 뺐다.
촤아악-!
의복의 앞섬이 잘려 나가며 가슴께가 휑했다.
“휘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에 정천이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군. 진심으로 놀랐다.”
혁련종의 오른발이 다시 앞으로 나왔다.
후웅-!
이번에는 허공을 갈랐다.
“…….”
혁련종이 미간을 좁히며 다시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채애앵-!
이번에는 마찰음과 함께 정천의 녹슨 검이 그의 검을 막아냈다.
“……!!”
정천이 검을 빙글 돌렸다.
“헤헤. 찾았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정천의 기척이 뒤에서 느껴지자 혁련종은 얼른 뒤로 돌았다.
촤아아악-!
혁련종의 왼쪽 소매가 갈라졌다.
뚝- 뚝-
새빨간 선혈이 손날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떻게…….”
“아, 내가 듣기로는 말이야, 우리 사부가 가르쳐준 이 검술이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검이라고 했거든.”
– 이 세상에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 빛을 따르는 그림자는 빛만큼 빠르다. 고로, 무영신검은 세상 그 어떠한 검보다 빠른 극쾌(極快)의 검학을 추구한다.
사부가 했던 말이었다. 혁련종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영신검…….”
그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무영문의 제자였는가?”
극쾌를 추구하는 천마비검에 비견되는 유일한 검이 바로 무영신검이었다.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한 정천.
“재밌는 거 하나 보여줄까?”
정천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촤아아악-!
“…… 말도 안 돼……!”
혁련종의 앞섬이 좍 갈라지며 한 줄기 붉은 선혈이 흩뿌려졌다. 그가 일평생을 갈고닦은 천마비검이 상대의 손에 의해 펼쳐졌다.
“이야, 엄청난데.”
정천이 한창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혁련종.
“이제는 끝낼 때가 된 것 같은데?”
정천은 그의 검을 간파했다. 완벽하게 파훼할 수는 없었지만, 따라하는 정도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을 감지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이제는 무영신검을 제대로 보여줄 때였다.
“자, 어느 검이 더 빠른지 한번 붙어 보자고.”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그가 구사하는 무영신검이 더 빠른지, 아니면 상대가 구사하는 천마비검이 더 빠른지 알고 싶었다.
“나는 결코 지지 않는다.”
천마비검을 모방한 정천의 이능(異能)에 놀라긴 했지만, 깨달음의 깊이는 분명 다르다. 혁련종이 아래로 검을 늘어뜨렸다.
“피차일반이야.”
정천은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격돌한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대체 뭐야?”
“몰라. 어떻게 된 건데?”
“제대로 본 사람 없어?”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두 사내의 격돌이 있었다. 하지만 극쾌의 검술을 구사하는 두 고수의 격돌을 제대로 지켜본 이는 거의 없었다.
“제법이군.”
혈마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둘의 마지막 순간, 하마터면 혈마 또한 놓칠뻔했을 정도로 두 고수는 빠른 속도의 검을 주고받았다. 물론 결과는 명확했다.
스스스스스스-
정천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은 더 이상 검이라고 불릴 수 없었다. 검신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자루만 덩그러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혁련종의 검은 멀쩡했다.
쿨럭!
그때, 혁련종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입가에는 선혈이 그득했다.
“쩝, 이걸 어쩌지.”
정천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참미검이라 불리는 녹슨 검은 사문의 귀보 중 하나였다. 그걸 산산조각 냈으니, 사부와 사형들의 불호령은 불 보듯 뻔했다.
“마, 마지막 승자는…… 정천입니다!”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우와아아아아-!
이제야 정신을 차린 관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참(斬)!”
“참(斬)!”
“참(斬)!”
모두가 목놓아 외치고 있었다. 상대의 생명을 끊어놓으라는 의미였다. 승자에게는 환호를, 패자에게는 저주를 퍼붓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피식 웃음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던 정천은 그대로 발을 돌려 비무대를 내려갔다. 그가 비무대 위에 오른 이유는 혈마와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였지, 아무런 원한도 없는 상대의 목을 자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여기저기서 그를 향한 야유가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
살기 어린 그의 눈빛을 마주한 이들은 야유를 퍼부을 수 없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까불고 있어.”
그대로 발을 옮긴 정천이 혈마 앞에 섰다.
척-
정천이 손을 내밀었다. 씩 웃음 지은 혈마가 그에게 작은 목함을 건네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주도록 하지.”
“감사하군요. 여기에 무원의 열쇠가 들어 있다는 거죠?”
정천이 목함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 물건의 이명(異名)이 무엇인지 아는가?”
“흠, 글쎄요?”
피식 웃음 지었던 혈마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지옥문의 열쇠.”
“호오?”
“누군가는 그곳을 무원(武園)이라고도 부르지만, 누군가는 그곳을 지옥의 무원(無園)이라 칭한다.”
“선배께서는 어떠셨나요?”
혈마는 무원을 경험한 인물이었다. 그는 어떤 경험을 했을까?
“풋, 그건 직접 경험해보면 알겠지.”
“에이, 어차피 제가 그곳에 갈 일은 없을 듯한데 이야기 좀 해주시죠?”
혈마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과연 그럴까?”
무슨 의미일까? 정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인 것 같군.”
바쁘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정천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는 다시 영산으로 돌아갈 때였다.
* * *
가부좌를 튼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던 정천은 순간, 눈을 번쩍 떴다. 깨달음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
“쿨럭-!”
입가로 한 줄기 선혈이 주룩 흘러내렸다. 자리에서 일어선 정천이 목검을 들어 올렸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에 착착 감겼다.
“됐다.”
씨익 웃으며 자찬하고 있을 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정천이 돌아봤다.
“둘째 사형.”
차분한 눈빛으로 정천을 바라보는 사현.
“입적(入適)을 축하한다.”
“헤헤. 별걸요.”
지난 십 년 수련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입적. 무영문의 제자가 실력으로 첫 인정을 받는 경지였다.
‘다섯째보다 빠르다니…….’
사현은 내심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안면 근육을 관리해야만 했다. 아직 다섯째, 순유조차 이룩하지 못한 경지였다.
“무림에 나간다면 백도의 백대고수와 겨루어도 어렵지 않게 승리를 취할 수 있을 경지이다.”
“에이, 그래봤자 사형들한테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걸요.”
눈앞의 둘째 사형. 벌써 통관(洞觀)의 경지에 올라섰다. 말인즉슨, 천하십대검수와 겨루어도 결코 밀리지 않을 고수라는 의미였다. 심지어, 대사형은 화경(化境)의 경지를 이룩했다. 지금의 그에게 있어서는 까마득히 높아, 보이지도 않는 경지였다.
“끝없이 정진하거라. 너라면…….”
사현은 하던 말을 멈추었다.
“사형! 사제!”
그때, 저 멀리서 여섯째, 호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더냐?”
숨을 헐떡이며 다가온 호진은 정천을 보자마자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왜 피를 흘리고 있어?”
그의 입가로 흐르는 피를 본 호진의 두 눈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러다 혼자 화들짝 놀랐다.
“너, 너, 너 설마…….”
정천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적했구나! 축하한다, 천아!”
정말로 순수하게 그의 성취를 축하하는 호진.
‘참 착한 인간이야, 여섯째 사형은.’
사형제지간이지만 사실 경쟁자나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그보다 먼저 경지에 들어선 사제였다. 하지만 시기나 질투의 기운은 없었다.
“무슨 일이더냐?”
그런 그를 사현은 못마땅해했다. 차가운 말투에 깜짝 놀란 호진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 찾으십니다!”
“누구를? 나를? 아니면 막내를?”
“모든 사형제입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