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122
8화. 무영문 일곱 번째 제자(8)
그렇다. 지금의 그는 낭인이었다. 백도도, 흑도도, 마도도 아닌, 떠돌이 낭인이었다.
“그런데 왜 흑도맹과 무슨 결자해지를 하겠다는 거요? 설마 흑도맹을 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뭐, 내가 찾는 건 단 두 놈이긴 한데…… 다 덤비면 어쩔 수 없죠.”
“흑도맹을 혼자만의 힘으로 말이오? 혹, 흑도맹이 군소방파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오만했다. 흑도맹은 흑도 대부분의 세력을 규합한 엄청난 규모의 연합이었다. 그 흑도맹을 혼자만의 힘으로 물리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허어…….”
거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경고했다.
“이곳은 항주고, 흑도맹의 영역이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비명횡사하기 십상이지.”
거지는 이 젊고 무모한 청년이 그를 만난 게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 패기는 인정하나, 그곳을 찾아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 이곳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거지는 그 말만을 남기고 정천이 다시 들러붙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떠났다. 그의 입장에서는 선한 배려였다.
“흐음, 곤란한데.”
배려는 고마웠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배려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가 처리한다니? 개방이 나서서 흑도맹과 싸운다는 말인가?”
‘거지를 따라갈걸’이라고 후회해봤지만, 그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꼬르륵-
“일단 밥 좀 먹고 찾아봐야겠다.”
정천은 가까운 객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어서오세…….”
점소이의 다채로운 표정 변화가 재미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받으려다 행색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 걸린 검을 보고는 두 눈이 커졌다.
“하하, 식사하러 오셨나요?”
점소이 경력이 꽤 되는 듯 물 흐르듯 자연스레 행동했다. 아무리 행색이 거지 같아도 검을 찬 무림인에게 무례했다가는 큰일 날 수 있으니까. 정천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점소이가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은 정천은 소면 한 그릇과 만두 한 덩이를 시키고는 한 자리를 응시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은 총 다섯 명. 특이할 건 없었다. 겉으로만 보면 말이다.
‘매우 깨끗하고 정갈한 기운에 절도 있는 행동거지. 그리고 고기가 들어간 건 안 먹는다?’
육수가 들어간 소면이나 만두는 없었다. 청경채 볶음과 같은 풀떼기만 식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대놓고 도사들인데?’
물론, 일반인들이 저들의 정체를 알기란 쉽지 않겠지만 관찰력이 좋은 사람들은 충분히 저들의 정체를 알만했다. 문제는 이곳이 항주라는 것이었다.
향락의 도시.
항주를 대표하는 수식어였다. 향락과 풍류가 만연한 이곳에는 전통적으로 도관이 발달하지 못했다. 말인즉슨, 모종의 이유로 항주에 발을 들였다는 말이었다.
“설마 아까 그 거지가 말한 ‘우리’에 저들도 포함되는 건가?”
그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점소이가 소면과 만두를 내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점소이가 꾸벅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가자.”
“예.”
그때 네 명의 도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씨.”
후루룩- 후루룩- 냠냠 쩝쩝-
일단 소면과 만두를 입 안에 미친 듯이 욱여넣었다. 태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컥컥-!”
꿀꺽-
순식간에 입 안에 모든 음식물을 쑤셔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님, 필요하신 거라도…….”
점소이는 말문이 막힌 채 그가 앉은 식탁 위를 쳐다봤다. 정천은 그에게 동전을 하나 던져주고는 객잔을 빠져나갔다.
* * *
밤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시작된 중원 최고 향락가의 화려한 불빛이 하나둘 밝아왔다. 그리고 객잔을 나선 다섯 사내가 붉은빛으로 물든 기루로 들어갔다.
강남제일루(江南第一樓).
소호변의 천일루(天一樓)와 더불어 중원에서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루 중 하나이다. 하늘 높이 솟은 전각은 천일루보다도 규모 면에서는 훨씬 거대해 보였다.
“이야, 도사들이 기루에 들어간다고?”
물론 그의 예측이 틀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허울만 그럴듯한 타락 도사일 수도 있고.
“흐음, 그런 도사들을 사부는 말코도사라고 부르던데.”
그렇게 그들을 따라 기루에 들어가려고 할 때.
“잠깐.”
문지기가 막아섰다. 슬쩍 정천의 허리춤을 흘겨본 문지기가 입을 열었다.
“신분패를 보이시오.”
겉모습만 보면 거지였지만, 허리춤에 검을 패용하고 있다는 건, 무림인을 뜻한다.
“음…….”
신분패 같은 걸 들고 다닌 적이 있어야 보여주지.
“개방의 거지인가?”
주위에서 느껴지는 위협적인 기운들. 정천이 둘러보자 파락호처럼 생긴 껄렁한 이들이 군데군데에 깔려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만약 개방 출신이라면 가차 없이 공격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건 아니고. 낭인인데요?”
정천의 말에 문지기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강남제일루(江南第一樓)에는 입장 요건이 있소이다.”
“어떤 조건인데요?”
대체 기루에 들어가는데 무슨 조건을 따진다는 건지.
“입장 요건을 모르는 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또한 요건 중 하나입니다.”
문지기가 단호하게 말했다. 정천이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그의 얼굴이 굳었다.
스으으으-
돌연 분위기가 바뀌었다.
‘투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투기와 팽팽한 긴장감이 피부로 와닿았다. 그리고.
콰콰콰콰콰쾅-!
기루 내부에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이 기점이었다.
“으아아악!”
“백도 놈들이다!”
“잡아라!”
채앵-!
채앵-!
그리고.
“쳐라!”
우와아아아아아아-!
홍등가를 거닐던 인물들이 돌연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 들고 강남제일루의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정천을 지나친 괴한들이 강남제일루 내부로 쏟아져 들어갔다.
삐이이익-!
다급한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놈들!”
촤아아악-!
일검에 쓰러진 문지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사태를 직감한 몇몇 사람들이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스윽-
그때 누군가 정천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그는 간단히 어깨를 내려 피하고는 뒤돌아 손날을 뻗었다.
꿀꺽.
정천의 손은 한 사내의 목젖 앞에서 멈췄다.
“어?”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니, 얼굴보다는 차림이 익숙했다. 오후에 만났던 거지였다.
“여기서 뭐 하세요?”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요?!”
“그야.”
정천이 강남제일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설마, 진짜 홀로 흑도맹을 치려고 했던 거요?!”
씨익.
거지 아저씨의 한마디가 증명해주었다. 이곳이 바로 흑도맹의 본거지라는 사실을.
“역시 도사들을 따라오길 잘했네.”
“도사들?”
그의 혼잣말에 거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물었다.
“혹여, 무당오검을 쫓아온 거요?”
“무당오검?”
무영문의 장로들은 곧 제자들의 스승이었다. 삼장로에게는 무공의 기본을, 사장로와 오장로에게는 고급 무학에 대해서, 그리고 육장로부터 십장로에게는 실전 훈련을 받았다.
‘이장로 수업은…… 음.’
이장로의 역할은 무림 전반에 대한 지식이었다. 무당파에 대해서야 꽤 많은 부분을 들었고, 무당오검에 대해서도 꽤 들어봤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너무 지루해서 여러 번 몰래 졸았다.
“혹, 무당오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거요?”
“크흠,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어이가 없었는지 거지 아저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진형에 속해 있든 무림인으로서 무당오검을 모르기는 쉽지 않았다.
콰과과과광-!
파공성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나는 들어가 보겠소. 여기는 백도 무림맹과 흑도맹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목숨이 아깝다면 이 싸움에는 끼어들지 말고 갈 길 가시오.”
그 말만을 끝으로 그는 기루의 내부로 진입했다.
“백도 무림맹이라.”
개방 역시 백도 무림맹에 속해 있다. 즉, 지금 이 괴한들은 백도 무림맹 소속의 무인들이라는 의미였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더 하고 싶은 법인데…….”
정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백도 무인들을 따라 기루 내부로 진입했다.
* * *
“저기 있다! 저자가 바로 흑영대주 송월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한 사내가 빠르게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오오, 태을신검이 나섰다!”
객잔에서부터 쫓아왔던 무당오검 중 일인이었다.
“저 사람이 태을신검이에요?”
정천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옆에 있던 사내에게 물었다.
“그, 그렇소만? 누구시오?”
“아아 그렇구나.”
그러면서 정천이 다른 한 사내를 가리켰다.
“그럼, 저 사람은요?”
“누구…….”
정천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던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태극검제를 말하는 거요?”
“아아, 태극검제.”
무당오검 중 가장 강력한 기파를 내뿜던 인물이었다.
스르릉-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천 앞에 차가운 예기를 내뿜는 검이 드리워졌다.
“정체를 밝히시오.”
백도 무림맹의 일원이라면 그를 모를 리가 없었기에 무인은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정천을 응시했다.
“아하하, 난 흑도맹 출신이 아닌데…….”
“그렇다면 정체를 밝히시오. 무림맹의 일원은 아닌 것 같은데.”
난감했다. 이대로 그가 ‘낭인’이라고 한다면 바로 쫓겨날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다 자신의 행색을 떠올렸다.
“아, 저는 개방의 거지입니다, 하하.”
그의 모습을 슥 둘러본 무인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시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개방의 제자가 무당오검 선배님들을 모른다고?”
“…… 하하, 신입이라서.”
“갈! 이곳에 어찌 개방의 신입 제자가 들어올 수 있단 말이오?”
그렇게 사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콰과과과광!
벽면이 부서지며 흑의 무복의 괴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백도의 개들이 침범했는가!”
전신에 살기를 내뿜는 무인들이 우수수 쏟아져 들어왔다. 어림잡아도 수백은 되어 보였다. 백 명이 채 되지 않는 무림맹의 인원에 비하면 쪽수에서 완전 압도하고 있었다.
“흑영대!”
누군가의 외침.
“대주께서 위험하다! 흑영마진을 펼쳐라!”
사내의 외침에 흑영대원들이 각기 이인 일조를 이룬 채 백도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들!”
조금 전까지 그에게 검을 겨누던 무인의 검 끝이 흑영대원들을 향했다.
“죽어라!”
촤아아아악-!
흑영대와 무림맹 정예 무인들의 싸움. 그 중심에선 정천은 어쩔 수 없이 검을 뽑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흥, 백도의 놈들이 간땡이가 부어도 한참이나 부어올랐구나?”
누군가의 외침. 큰 소리는 아니었다. 단지,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선명하게 박혔을 뿐이었다.
“백의쌍마!”
누군가 그들을 발견하고 외쳤다. 그 소리는 정천 또한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씨익.
“찾았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