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2
1화. 의문의 미남자 (1)
풍월객잔.
“할매! 소면 하나에 청주 한 병!”
딱!
찰진 소리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던 정천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아악!”
“에라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청주? 청주우우? 식혜나 처마셔라, 이놈아!”
“에이, 우리 할매 또 왜 이러실까? 나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니까 그러네? 응?”
다시 손을 휙 올려 드는 객주 할매. 뒤통수 다음에는 등짝이다. 최대한 객주 할매의 사랑스러운 손길을 피하려 몸을 앞으로 쭉 뻗는 그의 처지가 딱해 보였는지 객주 할매가 혀를 끌끌 찼다.
“헛소리 작작 해라. 네놈이 어딜 봐서! 대가리에 피 좀 마르걸랑 시켜라잉? 옜다, 소면.”
“씨잉….”
억울해 미치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할매 눈에는 아직 어린애로 보이겠지만 나름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으니 억울할 수밖에.
“어디 내가 먹을 데가 여기밖에 없나!”
“그럼 다른 데로 가지 그러냐? 어? 어여 다른 데로 가, 그냥.”
정천은 피식 웃음 지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자신이 하루라도 나타나지 않으면 걱정되어 잠도 못 잘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엄마보다 더 엄마같이 챙겨주시는 분이다.
“아오, 요즘엔 일거리가 왜 이렇게 없나.”
“일을 구해, 일을! 어디서 겉멋만 들어 가지고 무슨 놈의 무사 행세는 행세야! 그러다 제 명에 못 간다, 이놈아!”
“아니, 내가 일을 안 하나? 괜찮은 현상 수배자 하나만 딱 나타나 봐! 그럼 아주 그냥, 막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다가 할매 호강시켜 줄 테니까 딱 기다려요!”
“입만 살아 가지고서는, 으휴. 현상금 사냥인지 뭐시긴지, 그 목숨 내놓고 하는 게 정상적인 일이여? 까딱하다 죽으면 어쩔라 그려? 제 목숨 귀한 줄 몰라 가지고선, 쯧쯔.”
정천의 시선이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향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아마 이 검이 이 년 전,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눈앞에 나타난 자신을 보살펴준 이유일 것이다.
아마 아들이 수십 년 전에 검술 배운다고 무관에 들어갔다가 세력 싸움에 휘말려 죽었다고 했었던가.
“어휴, 오라는 손님은 안 오고 웬 식충이만 하나 들러붙어 가지고는, 어휴.”
아무리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인파가 몰리는 소호변이라지만 이런 변두리 다 허물어져 가는 객잔에 손님이 올 턱이 없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몇몇 노역 인부들을 제외하고는 파리 새끼들만 날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그때 경첩에 녹이 슬어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 문이 불쾌한 소음을 내며 열렸다.
“누구쇼?”
“아니, 영업장에 사람이 왔는데 누구냐니? 손님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눈에 익은 노역 인부들 몇몇이나 허구한 날 죽치고 앉아서 노닥거리는 정천을 제외하고는 외부 손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끔한 백색 경장 차림의 손님이라니. 죽립을 한껏 내린 채 주위를 경계하는 것 같더니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두 노소를 흘낏 보고는 자리에 가 앉았다.
“뭐 드실라우?”
여태껏 죽립을 벗지 않은 손님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비치더니 손가락을 들어 정천이 먹고 있는 소면을 가리켰다.
“소면요?”
객주 할매의 물음에 손님은 고개만 까딱였다. 손님의 허리춤에 찬 검을 힐끗 본 객주 할매는 ‘그럼 그렇지’라는 듯 음식을 준비하러 주방으로 향했다. 특이하기로 따져서 중원을 살아가는 이들 중 무림인만 한 이들이 없다. 빈번히 보이는 이들이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정천의 반응은 달랐다.
“흐음… 으음…. 흐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손님의 모습을 훑어보는 정천의 눈빛이 방금과는 사뭇 달랐다.
“이거 참 이상한데?”
기척을 드러내지 않으며 걷는 습관? 무림인이라면 당연하다. 보법의 기본이니까. 그럼… 작고 날렵한 체형? 외공의 고수야 우락부락 근육질이겠지만, 상승 무학으로 갈수록 외공보다는 내공 수련에 전념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귀한 집 자제라면 당연지사 내공 수련에 힘을 썼겠지. 굳이 근육을 뽐낼 이유는 없다.
‘그럼 뭘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그 무언가가 무엇일까? 그가 한층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손님을 훑어보고 있을 때.
“어이쿠야, 눈에 보석이 박힌갑네. 얼굴은 백옥이네, 백옥이여. 사내가 뭐 요로코롬 예쁘게 생겼다냐?”
죽립을 벗은 손님을 본 객주 할매가 입을 떡하고 벌렸다.
정천도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잘생겼다.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뭐랄까, 아름답다는 말에 최적화된 외모라고 할까. 사내에게 단아라니, 실례일 수도 있지만, 그것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영웅건 아래로 드러난 반듯한 이마에, 눈 코 입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질끈 묶어 올린 머리카락 아래로 삐져나온 귀밑머리까지 아름다웠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는데, 그게 또 예술이었다.
“할매, 내가 더 잘생기지 않았어?”
“쯧쯔, 깜냥이 되고 말을 해라, 이놈아!”
“치이- 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고요!”
“에라이, 이놈아. 네놈 정도는 저~기 소호변 시가지만 가도 쌔고 쌨다, 아주.”
남자가 봐도 경이로운 외모는 질투가 날 정도이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손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무언가에만 꽂혀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님은 식사에 열중할 뿐이었다. 일각도 되지 않아 소면 하나를 비운 손님은 탁자 위에 동전 한 닢을 올려놓고는 객잔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정천이 품속에서 초상화 하나를 꺼내 들었다.
씨익.
“이자였구나.”
정천이 검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치? 맞지? 그 왕호장주를 작살 내러 갈 거라는?”
“어휴. 이놈아, 나가서 친구라도 사귀어라. 뭔 칼에 대고 혼잣말이여, 혼잣말은.”
혼자 웃음 지으며 허리에 찬 검에 대고 헛소리를 해대는 정천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객주 할매.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에서 일어선 정천이 조금 전의 손님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할매, 나 언능 돈 벌어 올게요!”
“돈을 벌어 오긴, 이놈아! 오긴 어딜 와! 그냥 나가버려!”
정천은 듣는 척 마는 척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한적한 골목. 그런데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흐음. 빠르네.”
어디로 갔을까? 고민도 잠시, 정천은 손님이 갔을 만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뻔했다.
* * *
챙! 챙!
“으아악!”
“살려줘!”
삽시간에 울려 퍼지는 병장기 소리와 고통에 울부짖는 외침. 그는 이미 일을 벌이고 있었다.
“저기로군.”
소리로 행선지를 짐작한 정천은 빠른 속도로 왕호장으로 이동했다.
“멈춰라, 이놈!”
각자의 손에 병장기를 든 채 한 사람을 포위하고 선 사람들과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들까지. 정천이 왕호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물론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는 이들에게는 큰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좀 전에 마주쳤던 호면마적의 얼굴이 보였다.
“호면마적(好面魔敵)! 네 이놈!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설치고 다니느냐!”
왕호장의 장주 왕방이 지방이 잔뜩 낀 목울대를 바짝 세우며 소리치고 있었다.
“맞아, 맞아. 저자가 바로 호면마적이었어, 하하.”
저 잘생긴 얼굴로 악행이란 악행은 다 일삼고 다닌다니. 세간에 도는 소문에 따르면 젊은 여인들을 인신매매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강시를 연성하는 극악무도한 혈천마교에 장기를 제거한 시체를 판매하기도 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고 한다. 그런 그에게 왕호장주가 현상금을 내밀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얼굴이 아깝다, 얼굴이 아까워. 어디 실력도 얼굴만큼 하나 볼까.”
정천은 조용히 호면마적과 왕호장이 고용한 무사들 간의 싸움을 지켜봤다. 그 유려한 얼굴처럼 길고 가느다란 검신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왕호장 무사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이, 이 마적 놈! 저놈을 더욱 옥죄어라!”
왕호장주의 다급한 외침이 울렸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점차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 이들은 왕호장의 무사들이었다. 마치 한 마리 성난 호랑이처럼 날뛰는 호면마적을 상대하기에는 수십에 달하는 왕호장 무사들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야, 이제야 나서는 건가?”
그때,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다섯 사내가 주섬주섬 자신들의 병장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소호오랑. 소호변에서 활동하는 낭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이들이었다.
“얘들아, 드가자.”
“예, 형님!”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나서는 이들을 보는 왕호장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호, 호면마적 이놈! 이제 네놈의 그 하찮은 인생, 오늘로 마지막이다!”
입만 살아 있는 왕호장주를 힐끗 일별한 소호오랑의 맏형, 일랑의 입가에 조소가 맺혔다.
“네놈이 호면마적인가?”
죽립을 깊이 눌러 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크지 않은 체구에 날렵한 몸매까지. 일반적으로 마적이라 하면 상상하게 되는 우락부락한 외형은 아니었다. 심지어 슬쩍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하는 그 눈빛이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처럼 날카로웠다.
“네놈이 악행을 일삼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왕 대인께서 내건 현상금이 참 마음에 든단 말이지. 그 목숨 잃더라도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거라, 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니.”
그렇게 다섯의 늑대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쥔 채 호면마적의 주위를 에워쌌다. 특이한 건, 모두의 병장기가 전부 달랐다.
“호오. 소호오랑 놈들이네….”
일랑의 손에는 대도가, 이랑의 두 손에는 쌍검이, 삼랑은 긴 채찍, 사랑과 오랑은 각각 비도와 활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각 명문정파의 제자처럼 자신들을 무인으로서, 상대와의 대결에서의 승리를 명예로 생각하는 이들이 아니다. 낭인. 말 그대로 떠돌아다니는 현상금 사냥꾼일 뿐이다.
“소호오랑,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하려나? 이제 진짜 패를 꺼내 들려나?”
호면마적이 왕호장 무사들을 향해 펼치고 있는 검법.
“오행검법 말고, 이제는 마공을 보여달라고, 마공을!”
화려한 변초를 섞어 마치 오행검법이 아닌 듯 보이게 만들었지만 삼재검법만큼 흔하디흔한, 그야말로 칼밥 좀 먹은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검법이다.
“드디어 붙는군! 재밌겠어, 그치? 누가 이길 것 같아?”
“나, 나에게 묻는 겐가?”
아까부터 자꾸 혼잣말로 주절거리는 정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구경꾼 중 한 사내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흐음…. 소호오랑의 합격진이 현상금 사냥꾼 중 발군이라던데, 호면마적의 실력은 어느 정도이려나? 어떻게 생각해?”
흥미진진했다. 과연 어떤 무공을 보여줄까?
“미, 미친놈인가?”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천 주위의 사람들이 그와 거리를 벌렸다.
“역시 일랑과 이랑의 연계기에 속수무책이구만!”
“오, 삼랑의 채찍에 왼쪽 다리가 부서질 뻔했어!”
“비도! 비도를 조심해야 해요!”
“저 유려한 움직임으로 비도를 슥 피하는 것 봐! 꺄, 반할 것 같아!”
“꺅-! 저를 데려가 주세요, 공자님!”
저 잘생긴 사내가 젊은 여인들을 매매한다는 사실은 알려나.
“때려죽여라, 때려잡아! 잘생기면 다냐!”
“우우- 죽여버려! 아주 얼굴을 작살 내버려라!”
역시 사내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오 대 일의 싸움.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개개인의 능력으로 따지고 보자면 소호오랑이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들 정도의 간격이 있겠다만, 이들의 합격진은 예상보다 뛰어났다. 하나씩 더해 다섯의 힘을 내는 게 아니라 족히 열의 힘은 내고 있었다.
“그보다.”
의아했다.
“저 검법, 어디서 봤더라?”
오행검법을 펼치는 듯 하면서도 불쑥 불쑥 오묘하게 어우러지는 결이 다른 검법. 왠지 낯이 익었다.
우웅- 우웅-
“그치? 너도 본 적 있지?”
검 자루를 쥔 손을 타고 검진(劒振)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