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22
21화. 그대로 멈춰라 (2)
“대남궁세가? 언제부터 남궁세가 앞에 ‘대’가 붙었냐?”
“대인!”
단리우가 다급하게 손짓했지만 정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큰 소란으로 인해 정천의 목소리가 벽면을 뚫고 객잔을 무단 점거한 남궁세가 무인들의 귀에 들리지는 않았다.
“괜한 시간 끌지 말고 나오라.”
단리우는 유난히 긴장했다. 상황을 지켜보는 두 눈에는 초조함까지 배어있었다. 일단 자신들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적잖게 안심했지만 대체 무슨 일인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소도는 모산파의 광을이라 하오. 듣자 하니 남궁가에서 누군가를 찾으시는 것 같은데, 누구를 찾으시는 거요? 그 누군가가 마도의 인물이라면 내 힘이 닿는 한 도움이 되리라.”
“광을 진인이셨군요. 남궁가 우용이라 합니다. 소란을 피워 송구합니다.”
말은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언짢은 표정의 도사와 말로는 송구하다지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얼굴의 남궁우용.
“하지만 진인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저희 가문의 일입니다.”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이 떠들썩하게 일을 벌이시는데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소?”
한쪽 벽면을 완전 부숴버리면서 화려하게 등장해 놓고 신경 쓰지 말라니?
남궁우용이 코웃음을 쳤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딱 봐도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소년티를 막 벗은 청년과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도사. 무림 연배로 보자면 까마득했다. 하지만 중원 그 어디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가의 후기지수와 안휘의 작은 도가 문파 노도사의 위치는 연륜이나 경험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흠.”
불쾌한 내색이 역력했지만 광을 진인은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럼 진인께서 기꺼이 허락하신 줄 알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력의 힘이었다. 우월한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군중을 슥 둘러보는 남궁우용.
“동도 여러분, 지금 이곳 객잔에 쥐새끼 하나가 숨어들었소. 감히 대남궁세가의…….”
남궁우용은 말을 하려다 멈췄다. 뭔가 밝히기 껄끄러운 얼굴이었다.
“큼큼, 어쨌든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단서는, 그놈의 오른쪽 볼에 커다란 점이 있다는 것. 동도 여러분께서 도와주신다면 금방 찾아내어 더 이상은 그대들의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소.”
남궁우용의 말에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쾅!
어찌나 문을 세게 열었으면 경첩이 다 날아가며 간신히 매달린 문짝이 덜렁거렸다.
“저것들은 남의 기물을 부수는 데 아주 거리낌이 없구나. 변상은 하겠지?”
“그, 그렇겠죠?”
“흐음, 그럼 수리할 돈을 줄까? 아니면 거기에 정신적 피해 보상과 영업 손실 비용까지 계산해서 줄까?”
“대체 지금 상황에 그런 게 왜 궁금한 건데요?”
“당연히 궁금하지, 암.”
눈을 굴리며 정신적 피해 보상과 영업 손실비를 계산해보는 정천을 보며 원영과 단리우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좀 전에 부서진 문으로 한 여인이 들어섰다. 술을 동이째 들이켠 게 아니라면 새빨개진 얼굴은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가 확실했다.
“오오…….”
상황과 알맞지는 않았지만 여인을 보는 사내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마주하기 힘들 만큼 눈에 띄는 미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감히… 감히…! 이 개새끼, 잡히기만 해봐. 아주, 사지를 찢어 젓갈 통에 하나씩 담아 짓이겨 줄 테니까!”
새초롬하게 예쁜 얼굴과는 다르게 걸쭉한 입은 시장통에서 몇 년은 구른 듯 거칠기 그지없었다.
“소소야! 이 오라비가 해결한다고 했잖아. 뭘 여기까지 쫓아오고 그래!”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한 걸 어떻게 해요!”
남궁우용의 낯빛이 부끄러움에 붉게 물들었다. 평소에는 단아하고, 차분한 아이지만 한번 꼭지가 돌면 주위 사정 볼 것 없이 입에 걸레를 물어버린다. 수많은 사람 앞에 내놓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동생이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빨리 범인을 잡아 족치는 것뿐.
“동도 여러분, 실례 좀 하겠소. 장양, 수색해.”
“예, 셋째 공자님.”
장양이라 불린 사내가 눈짓하자 열 명에 달하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사람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응? 넌 왜 그러고 있어?”
고개를 푹 숙인 채 긴장한 단리우.
“그게….”
그때 남궁세가 무인 한 명이 다가왔다.
“죽립 좀 벗어보시오.”
“…….”
정천과 다르게 원영과 단리우는 여전히 죽립을 쓰고 있었다.
“어이, 말 못 들었소?”
무인이 재차 물었지만 단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무인이 호각을 불자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강제로 벗길까? 벗을래?”
장양이 강압적인 태도로 단리우를 위협했다.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단리우.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정천은 놓치지 않았다.
“어머, 소녀의 옷을 벗기겠다고요? 아이참, 대낮에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단리우가 난처해하고 있을 때, 원영이 죽립을 벗고는 입을 열었다. 객잔 내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내공을 실은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오오…….”
남궁소소가 상큼한 과즙과도 같은 매력을 지녔다면, 원영의 그것은 색정(色情)을 유발하는 농밀한 아름다움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적잖이 당황한 장양.
“참, 얘는 나이답지 않게 너무 많이 성숙하단 말이야.”
정천은 쯧쯧 혀를 찼다. 물론 일말의 안타까움도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나날이 생존의 위협이었을 테니까. 세상의 추한 이면을 헤치고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아니, 소저 그게 아니라……. 오, 오해십니다, 오해!”
원영과 눈을 마주한 장양도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우야는 남궁가와 어떠한 원한 관계도 없어요. 식사 좀 끝낼 수 있을까요, 멋진 무사님?”
눈을 찡긋하며 은근히 띄워주는 원영의 말에 장양은 하마터면 그대로 뒤로 돌아갈 뻔했다.
“뭐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많은 시선이 쏠렸고 남궁우용 또한 다가왔다. 원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남궁우용.
“오오….”
“아가리 좀 처닫으세요. 침 흘러요.”
욕망에 물들었던 남궁우용을 깨우는 청아한 목소리. 남궁소소가 쌍심지를 켠 채 다가왔다.
“호호, 아가씨께서 무척이나 뿔이 나신 거 같은데,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저희 일행도 사정상 죽립을 벗기는 어렵거든요.”
“그러게 말이다, 소소야. 이런 여인이 그런 발정 난 도둑놈과 함께할 리가….”
“시끄러워요, 오라버니.”
원영의 위아래로 눈을 흘긴 남궁소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젠장.’
육감적인 몸매의 원영을 보니, 왠지 모를 패배감에 더 열불이 났다.
“어디의 누구신지?”
출신을 묻는 남궁소소. 원영이 씁쓸히 웃었다. 시선은 비스듬히 아래를 향하며 최대한 비련의 모습으로.
“보잘것없이 태어나, 보잘것없이 자란 몸입니다. 아가씨의 격에 한참 떨어지는 천한 출신이니 편히 대해주세요. 원영이라 합니다.”
원영의 말에 주위 사내들의 얼굴이 측은지심으로 물들었다. 자연스레 남궁소소의 한마디 한마디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핍박하는 악역이 되느냐, 아니면 그 옆의 예쁜 친구가 되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세상에 천하게 태어나고 귀하게 태어나는 게 어딨겠어요, 소저. 다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 가문에서는 대도(大盜)를 쫓고 있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도망쳤거든요.”
남궁소소는 그 두 선택지 모두를 잘라버리고 화제를 돌렸다. 남궁세가의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도망쳤다고? 대체 어떤 간 큰 도둑놈이 남궁세가에 침입해 물건을 훔친단 말인가. 심지어 중요한 물건이라니. 죽지 않고 훔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만한 일이고, 그야말로 대도의 자질을 증명하는 사건임이 분명했다.
“그게 어떤 물건인데요?”
“소, 소소야!”
남궁우용이 당황하여 입을 열었지만 남궁소소는 여기서 질 수 없었다. 답을 하지 못하면 대남궁세가가 고작 아무 이유 없이 삼류들을 핍박했다는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명성에 흠집을 낼 수는 없는 일.
“……곳.”
“예?”
“……곳.”
“뭐라고요?”
정확하지 않은 발음에 원영이 두 번이나 묻고서야 남궁소소가 한숨을 내쉬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내뱉기 시작했다.
“내. 속. 곳.”
“속곳…?”
적막이 흘렀다.
“그러니까… 아가씨의 속곳을… 누군가 훔쳐 갔다는 말인가요?”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개진 남궁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푸, 푸흡!”
정천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히!”
“지금 감히 웃은 거요?”
아무리 절세미인의 지인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웃음은 남궁세가를 비웃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아, 킥킥킥. 아, 웃을 생각은, 큭큭, 없었는데. 미안하게 됐어. 그래, 저 조그마한 계집애의 속곳을 훔쳐 간 범인을 찾으려고 이렇게 일을 벌인 거야?”
“지, 지금 비웃은 건가요? 그, 그리고 뭐? 조그마한 계집애?”
남궁소소의 전신에 살기가 어렸다.
“아, 비웃은 게 아니고, 상황이 재미있어서 말이야. 그렇잖아? 지금 고작 잡도둑 하나 잡자고 벽이며 문짝이며 다 부숴놓고 생난리를 쳤는데, 그게 안 웃겨? 킥킥.”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채채채채챙!
“대남궁세가 금지옥엽의 귀중한 물건을 훔쳐 간 범인을 찾는 일이 지금 별것 아닌 일이라 하는 것인가?”
남궁우용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그럼,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남의 가게를 다 부숴놓고 지랄이야, 지랄은.”
‘대, 대인, 그만!’
단리우가 속으로 외쳤지만 들릴 리 만무했다. 원영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뭐? 지, 지랄? 지라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로구나.”
“어이, 꼬맹이.”
“예, 예?”
정천의 물음에 단리우가 고개를 들었다.
“뭘 그렇게 쫄아있어? 저런 놈들한테 찍소리도 못할 거면 복수는 어떻게 하려고? 뭐 배운다고 쫓아온 거 아니었어?”
바보 같은 놈.
“꼬맹이, 네가 진짜로 복수를 하고 싶다면 저런 날파리 정도는 가볍게 찍어 누를 수 있어야지. 그거 벗고 당당하게 저 싹퉁머리 없는 놈을 밟아버려.”
“하지만….”
이곳은 남궁세가의 영역권이다. 만약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바로 남궁세가에서 보낸 추격대에 쫓기게 될 터이고, 그렇게 된다면 원룡을 구하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은 뭘 하지만이야. 뒷일은 신경 쓰지 마. 감히, 내 식사를 방해한 놈들이야. 죽여버려.”
“자, 잠깐만. 그게 이유입니까?”
“당연하지. 너는 네 밥그릇을 위협하는 놈들을 가만둘 수 있어?”
“그건 아니지만….”
“그럼 질러버려.”
고개를 갸우뚱하는 단리우. 맞나 싶긴 한데, 뒷일은 신경 쓰지 말라는 정천의 말은 무척이나 든든하게 다가왔다.
죽립을 벗어 던지는 단리우.
“너, 너……!”
남궁우용과 남궁소소가 경악했다. 그러다 이내 진정한 남궁우용이 짙은 살기를 내뿜으며 웃음 지었다.
“호오, 이게 누구신가? 마교에 붙은 배신자 가문의 차남이 아니신가?”
단리우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어릴 적에는 교류도 꽤 있었다. 호형호제하며 지내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 거짓이었다. 조금 더 높이 올라서려 했을 뿐인데 철저하게 짓밟혔다.
“형… 아니, 남궁우용.”
“이 새끼 많이 컸네?”
“응, 많이 컸지. 너보다 한 뼘은 더 큰 거 같은데?”
“뭐?”
단리우의 눈빛이 투지로 물들었다.
“따라 나와,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