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31
30화. 혼천칠황신검(魂天七皇神劍) (2)
천룡검의 검령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용신기를 익혀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사방신검의 검령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방신기(四坊神氣)를 익혀야만 했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무림 맹주이자 천가의 가주인 천무현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니까 삼사형이 제안했겠지.’
마지막 순간, 천무현은 머뭇거리며 검을 내렸다.
[만약 내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네놈의 목숨은 물론, 그 시신까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임을 명심하라.]삼사형의 언질이 없었다면 순순히 자신의 여식을 내줄리 만무했다. 봉황신검의 선택을 받은 딸에 대한 걱정이 남달랐을 테니까. 묵룡의 주인인 정천이라면 봉황신기를 익힐 방도를 알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
“흐음, 뭐랄까. 변태 할아범이 살고 있는 곳이랄까.”
“뭐? 벼, 변태 할아범?”
“뭐, 괜찮아. ‘여인’만 아니면 관심이 없으니까.”
“…….”
유운은 아무 말 없이 정천을 따랐다. 왠지 모르게 ‘여인’을 강조하고 있었다. 마치 티 내지 말라는 듯이.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좀 전에 본 것만 같은 익숙한 바위가 또 눈에 띄었다. 분명 직진을 하고 있음에도 어째서 같은 위치를 도는 것 같은지. 심지어 미세하게 진기의 흐름이 달라진 것만 같았다.
“그런가? 벌써 경계에 도달한 건가?”
“경계?”
“응. 저쪽 산과 이쪽을 가르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거든.”
“대체 그 변…태 할아범이 누구길래?”
대체 어떤 사람이 저 산 위에 있길래 진법까지 설치하고 경계를 하고 있는 걸까?
“말했잖아. 검령을 다룰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걸 가능하게 해줄 사람이지. 더는 검령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역시, 그것은 꿈이 아니었던 건가? 유운이 물으려는 찰나.
스르릉.
“검은… 왜 꺼내 드는 거야?”
“아아, 별거 아냐. 때로는 멀리 돌아가는 게 지름길이라는 말이 있잖아?”
“그런데?”
“이 ‘때로는’이 단서로 붙는단 말이지? 그건 곧 ‘가끔’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가끔을 제외한 나머지의 시간은 ‘항상’ 혹은 ‘보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
“그리고…?”
왠지 불길한 느낌.
“그럼 ‘항상’ 혹은 ‘보통’의 지름길을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그대로 하면 되는 거지.”
“…….”
설마.
“그 표정 보니 너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닌가 보구나?”
의미심장한 미소.
“혹시, 그 사람 알아?”
“누…구…?”
“옛날 옛적에 사패주라는 네 명의 고수가 있었는데 그중에 백용이라는 사람이 있거든.”
사패주. 자신의 할아버지, 무극검신이라 불리었던 천강휘가 바로 그 사패주의 한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기억이 떠올라버린 무영문의 문주.
‘무명(無名).’
정천의 사부가 바로 사패주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그게 무슨….”
“그 사람이 가르쳐준 검법이 있거든.”
물론 가르쳐줬다기보단 그대로 베낀 것에 가깝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는 뒤로하고.
씨익.
백월강룡(白月强龍) 섬(殲).
정천이 검을 휘두르자 길게 뻗은 백룡의 검기가 수십 개의 가닥으로 나뉘며 강기의 그물을 만들어 허공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았다.
쿠구구구구구구궁-
분명 허공을 격했다. 유운은 똑똑히 보았다. 허공을 격하는 수십 가닥의 검기 다발을. 그런데 대지를 진동하는 파공성이 들렸다. 입을 떡하니 벌리며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는 유운과 뭔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정천.
“흐음. 역시 중단전에 맞는 심공이 필요하겠어.”
부족하긴 했지만 어쨌든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저 멀리서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로 새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인영. 그가 소리쳤다.
“어떤 개새x가 감히!”
* * *
백발의 노인과 짙은 눈썹의 청년. 우뚝 선 백산 정상에 작게 지어진 모옥 앞에 두 사내가 앉아 있었다.
“낄낄. 그래, 그래. 자네의 사부가 처음 노부를 찾아왔을 때가 떠오르는구만. 그도 자네와 같은 말을 물었었지. 정마대전이 펼쳐졌던 그날. 키야, 지금이야 뭐, 추억을 회상하듯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아주 그냥 똥줄이 타는 줄 알았지 뭐냐. 당시 신흥 세력이었던 흑도맹주 사현이란 애송이도 강했지만 천마신교 교주, 혁련운, 끄아, 진짜. 그놈은 아주 인간이 아니었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까? 천하제일인이라 일컬어지던 천강휘 형님과 천 합을 넘겼음에도 승패가 갈리지 않았으니 말이야.”
“결국 천강휘 대협께서 승리하신 것 아니십니까?”
백발의 수염을 쓸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노인의 눈빛이 아련하게 물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니’라고 할 수 있지. 낄낄. 아, 내가 천강휘 형님을 비하하는 건 아니라네.”
“그렇다면….”
“그자, 그자가 나타났거든.”
듣고 있던 청년도 그자가 누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사부에게 들었던 그 인물이었다.
“묵혼혈룡검의 주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그렇지. 우리는 그자를 ‘무명’이라고 불렀네. 마교천하? 하, 그를 아는 자는 아무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야. 그럼, 그럼. 심지어 그자의 검에는 정사가 없었네. 혁련운이 먼저 그자에게 덤볐으니까 흠씬 두들겨 맞은 거지, 천강휘 형님을 도왔다고 볼 수는 없었어. 어부지리라고 할까. 아주 백도로서는 그야말로 땡잡은 거지, 낄낄. 그래, 그자야말로 진정으로 천하제일인으로서 자격이 있는 인물이야. 아, 아까도 말했지만, 오해하지 말게나. 천 형님이 대단하지 않다는 건 아니니까.”
“그리하여 패주(霸主)들 모두가 혈안이 되어 그자를 찾아다녔던 것이로군요. 특히 화용진가의 진웅 대협은….”
백도의 구심점이 되어 백도를 이끈 무극천가와 달리 당시 정마대전을 함께했던 화용진가는 봉문을 자처했다.
“그렇네. 세간의 사람들은 진가가 왜 봉문을 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사실 이유는 딱 하나였지. 진웅 대협이 그자의 무공을 연구하고 천룡검(天龍劍)을 얻기 위해 그자를 찾아 헤매다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으니 말일세. 에구, 그 인간도 참. 욕심만 그득해서, 쯧쯔.”
화용진가의 전대(前代) 가주이자, 사패주의 한 명을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이라고 혀를 찰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청년은 감히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슬쩍 노인 뒤편의 모옥으로 눈을 돌렸다. 모옥 안에 고이 모셔져 있을 검 하나.
“천룡검이라…. 그렇다면….”
청년이 슬쩍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것을 알아차린 노인은 피식 웃음 지었다. 천룡검에 관심을 갖는 척하는 이유.
“허어, 노부의 현무신검이 그리 궁금하던가?”
속내를 들킨 사내가 뜨끔했지만, 사가(史家)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모두가 탐내는 신병이기의 주인. 그들은 과연 어떤 힘을 얻었을까?
“세 자루의 천룡검과 네 자루의 사방신검. 호사가들은 혼천야장의 역작이자, 검령이 깃든 이 일곱 자루의 검을 합쳐 혼천칠황신검이라 부르지. 하지만 천룡검과 사방신검은 사실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해.”
“어떻게 다른 겁니까?”
눈앞의 노인은 혼천칠황신검 중 하나인 현무신검의 주인이다. 뜬소문과 다른 진실된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자네의 글을 읽을 후세의 인물들을 위해서라면 정확한 이야기를 해주어야겠지. 대신 하나만 약조하게나.”
청년은 현세에 일어나는 각종 사건과 비화를 기록해 역사의 장을 완성할 인물. 그렇기에 노인은 가감 없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뭐, 별거 아닐세. 현무신검주의 위대했던 일생이랄까….”
백발노인의 말에 청년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하신 분을 감히 제가 어찌 다른 표현으로 기술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낄낄. 알면 됐네. 크흠, 어디 보자.”
모옥으로 향한 노인이 검을 하나 들고나왔다. 옥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검집과 검병. 청년이 침을 꼴깍 삼켰다.
스르릉.
순백의 검신이 드러났다.
“요놈이 아직 반질반질하구만.”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딱 현무신검을 바라보는 청년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현무의 검령이 깃들었다더니… 참으로 오묘한 빛입니다.”
“끌끌. 검령, 그래. 검령이 어떻게 검에 깃들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정말 쇠망치로 혼신의 힘을 들여서 철을 두드리면 그 안에 검령이 깃들 거라 보는가? 아니면 그 뜨거운 용광로에 풀무질을 하면 혼이 ‘쑤욱’ 하고 들어온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하긴, 검령의 빙의(憑依)가 그리 단순하게 이루어진다면 그 어떤 대장장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디 보자…. 머나먼 고대의 맥족(脈族)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자연 현상이 의식과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었던 이들이었지. 지금 시대에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들은 실제로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 뭐, 예를 들면, 그 당시 사람들은 언덕 꼭대기의 큰 바위가 욕망과 필요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어. 이 바위는 사람들의 어떤 행위에 화를 낼 수도 있고, 또 다른 행동에 기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야. 그들은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다고 믿기도 했더랬지. 아, 물론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참으로 어렵지만, 난들 알겠나? 그렇게 전해지고 있는걸.”
노인의 말대로였다. 청년은 그것이 신화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은 말이나 노래, 춤이나 의식을 통해 이들 모두와 직접 소통할 수 있었다네. 사냥꾼은 한 무리의 사슴에게 말을 걸어 그중 한 마리에게 스스로 희생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고. 필요하다면 다른 정령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
노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기에 청년은 감히 반발심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런데 말일세. 자연물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었지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각종 도구와 무구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지 않았어. 그래서 당시의 대장장이들은 생각했지. ‘정령’의 힘을 무구에 깃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영(靈)을 무구에 담고자 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네. 그것은 성공했지. 그들에겐 그야말로 혁명 그 자체였어. 그렇게 조금 더 강한 정령을 담고자 했던 거야. 그러다 뇌룡과 화룡, 그리고 혈룡의 혼을 담아내는 데 이르게 된 것이지.”
“그게 어떻게 가능했던 겁니까? 신룡의 혼이라니요?”
“낄낄, 설마 신룡과 싸워서 굴복시켰겠나? 그거야말로 어불성설이지. 그보단 인간과 신룡의 계약이라 할 수 있었지. 자연의 순리가 뭐겠나? 바로 삶과 죽음이지.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 하지만 인간이고, 만물이고 간에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매한가지지. 신룡들도 마찬가지였다네. 영원히 죽고 싶지 않았던 거야. 인간들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강의 힘을 얻고 싶었고 말일세. 그렇게 계약이 성립되었던 게지.”
초반에는 신화, 혹은 전설로만 치부하며 듣던 청년은 어느새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 그렇다면 사방신의 검령은요?”
“낄낄, 생각해보게. 사방신은 신(神)이라네, 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겠나?”
“그럼 어떻게….”
“사방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네.”
“……?”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어찌 검령이 존재한다는 건가.
“대신, 신의 세계에 존재하지. 흐음, 이건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 세계에 현신(現身)한다고 할까? 차용(借用)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
“신계에 존재하는 사방신의 힘을 빌려 쓴다는 얘기입니까?”
“쉽게 말해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네. 사방신은 수호(守護)의 상징. 인간에게 힘을 빌려주어 이 세계의 균형을 맞추려 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만약, 천룡검이 균형을 깨트리려 한다면….”
“옳지, 바로 그거네! 내가 말했던 차이가 바로 그런 것이지. 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대척점에 서게 될 게야.”
청년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이, 이게 무슨…!”
지축이 흔들리며 파공성이 들려왔다.
“어떤 개새x가 감히!”
백발노인의 신형이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