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4
3화. 의문의 미남자 (3)
“다시, 이름?”
“…….”
“나이?”
“…….”
“취미?”
“…….”
“성적 취향?”
그딴 건 왜 물어!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호면마적은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흐음, 분명 모난 게 하나쯤은 있을 텐데. 예를 들면 가학적 변태 성향이라든가….”
그러면서 옆에 고이 모셔둔 호면마적의 검을 들었다.
“이야, 이거 엄청 좋아 보이네?”
“건드리지 마!”
이제야 입을 여는 호면마적.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너, 목소리가…….”
식겁한 호면마적이 눈을 내리깔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원래의 목소리가 튀어나와 버렸다.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되었다. 깊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너 설마….”
정천이 그 앞에 얼굴을 들이밀자 호면마적이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하지만 묶여있는 몸 때문에 턱을 잡아끄는 정천의 손을 피할 방도가 없었다.
“호오…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했어. 그 재수 없이 고운 피부며, 가냘픈 몸매. 게다가 목소리까지.”
‘망했다. 들켜버렸어.’
정천이 손뼉을 ‘탁’ 쳤다.
“너.”
확신에 가득 찬 눈빛에 호면마적이 체념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잘랐구나?”
“자, 잘라?”
잘라? 뭘? 대체 뭘…?
상상할 수 없는 언사에 눈만 껌뻑이던 호면마적의 얼굴이 어느 순간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걸 자르고 동자공을 익히면 피부가 여인처럼 매끄러워지고 몸이 가늘어진다더니, 역시나. 사내새끼가 멀쩡하게 생겨선 그런 거나 익히다니, 쯧쯔…. 아니지, 아니지. 나름의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역시, 인간은 완벽할 수 없지! 암.
처음에는 혐오스럽다는 듯한 표정에서 점점 연민으로, 그리고 은근히 승리감에 도취된 알 수 없는 웃음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정천의 표정을 보면서 호면마적이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미친 자가…!’
드르륵!
창고의 문이 열리며 쏟아지는 석양빛에 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반반한 놈 묶어놓고 뭐 하는 거시여?”
객잔주 할멈이었다.
“뭐 하긴, 나쁜 놈 취조 중이지!”
따악!
등짝에 전해지는 얼얼한 사랑의 충격!
“아악! 왜 때려!”
“으이구, 이눔 시키야! 저 반반한 놈이 어딜 봐서 나쁜 놈이냐? 어딜 봐도 악역은 네놈이구만.”
“할멈! 이러기야? 섭섭해! 이래 봬도 내가 저놈 생명의 은인이라고!”
“섭섭하긴, 이놈아! 얼른 풀어주고 밥 먹을 준비나 혀.”
“우씨!”
머리를 벅벅 긁으며 순순히 밧줄을 풀어주는 정천을 보며 호면마적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나쁜 놈 어쩌고 하더니 경계심이라고는 일절 없이 풀어준다. 순식간에 바뀌는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따라와, 밥 먹게.”
“대체 무슨 꿍꿍이….”
“꿍꿍이는 개뿔. 밥 먹는 데 꿍꿍이가 필요하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와중, 어느새 호면마적은 점심을 해결했던 그 객잔에 앉아 있었다.
“할멈! 또 소면이야? 아까 점심도….”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 이놈아!”
“히잉… 너무해, 할멈.”
객주 할멈의 시선이 정천과 마주 앉은 호면마적을 향했다.
“반반한 놈은 이름이 무엇이당가?”
“유ㅎ… 유…운입니다.”
“얼굴은 반반해서 말은 뭐 이리 더듬는 겨? 어쨌든 맛있게 먹어라잉.”
할멈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정적이 흘렀다. 정확히는 정천의 후루룩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무야, 왜 안 머거? 우적우적!”
너 같으면 이 상황에서 입으로 뭐가 들어가겠냐!
소리치고 싶었지만 유운은 꾹 참았다.
“이제 날 어떻게 할 셈이지?”
“우적우적! 어뜨케 할 세미나그? 그거야 바… 켁켁!”
“입에 처넣은 건 다 삼키고 얘기하라고!”
정천이 사발째로 국물을 들이켜더니 ‘꺼억’거리며 사발을 내려놓자 마주 앉은 유운의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아~ 좋다.”
정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둑이 부푼 배를 두들겼다.
“내 목숨을 살려준 값은 충분히 치르겠다. 이대로 날 못 본 척해다오.”
“값? 진짜? 어떻게 치를 건데? 호오… 어디 보자.”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음흉한 정천의 눈빛에 유운이 몸을 움츠렸다. 이 미친놈이 헛소리를 하기 전에 선수를 쳐야 했다.
“크, 크흠. 내게 걸린 현상금을 지불하겠다. 아니, 현상금의 두 배를 지불하겠다.”
“오, 현상금의 두 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장난스레 희번덕거리는 정천.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금전보다 더 흥미가 동하는 물건을 상대가 가졌는데 굳이 뭣 하러?
“그거.”
“……?”
정천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으로 유운의 시선이 향했다.
“이거…?”
신난 강아지 마냥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정천. 유운이 자신의 검을 의자 뒤로 숨겼다.
“이건 안 돼.”
“내가 검 하나 새로 사줄게. 저~기 대장간 가면 좋은 물건 많아.”
“내가 돈은 충분히 줄 테니, 네 것이나 사라. 현상금의 세 배. 세 배를 주겠다.”
“아냐, 아냐. 나는 네 거가 좋은데?”
이런 미친 새…….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꾸욱 참은 채 유운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검이 아니다. 이 검은 나를 증명할 하나의 증표이며, 정체성이고, 오랜 동반자이자, 절대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검이다. 이 검은 나에게… 아니, 됐다. 어쨌든 이 검은 절대 안 된다.”
“호오, 뭐가 그리 심오해? 고작 고철 덩어리인데?”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그러지 말고 주라~”
“시끄럽다. 협상의 여지는 없어. 내 검을 건드릴 생각을 한다면 그게 누구든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천의 두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유운의 두 눈과 마주했다.
“좋아,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한다니까 그건 놔둘게. 대신 그럼 다른 걸 줘야겠어.”
“다른 것?”
“아까 네가 그랬지? 내가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라고?”
내가 언제, 이 미친놈아!
“목숨값은 치르겠다고 했다.”
물론 죽을 일은 없었다. 그 ‘힘’만 사용했으면 소호오랑이고 뭐고 다 죽일 수 있으니까. 어쨌든 그 힘을 당장 쓸 수는 없었기에 일단 살려준 것에 대한 값은 치르기로 했으니까 꾹 참았다.
“그게 그 말 아니야? 목숨값은 곧 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답이잖아?”
무슨 꿍꿍이냐. 유운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줘야겠네.”
음흉하게 씩 웃더니 정천이 손을 들어 유운을 가리켰다.
“네 목숨에 대한 값은 네 목숨으로 내놔야지.”
곰곰이 정천의 말을 곱씹던 유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동시에 그의 손이 검을 향했다.
“그럼 결국 나를 죽이겠다는 말이더냐?”
그럴 리가. 정천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내가 너를 죽여서 뭐 하게? 그냥 내가 가지면 되지.”
“뭐, 뭐라고?”
유운의 상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천의 언사에 그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두 팔로 자신도 모르게 몸을 감싸는 건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네 목숨을 가지겠다고. 내가.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말이야. 어때? 고맙지? 넌 죽지 않아도 되고, 나는 네 목숨 하나를 얻었고. 승승 전략이라고 할까나.”
“그게 무슨….”
“아아,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합니다’ 하면 돼.”
아아, 그러면 되는구나….
“이 미친 ㅅ…! 나보고 노예가 되라는 거랑 뭐가 달라!”
“어?”
정천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유운을 응시했다.
“잘 알아들었네? 맞아. 딱 그 말이었어. 너 이해력이 굉장하구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해력이 남달랐…어가 아니라! 지금 감히 나를 노예 취급하겠다고?!”
“하하, 장난이야, 장난. 노예라니, 그건 너무 직설적이잖아. 단지 ‘목숨을 맡겨놨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문제야. 별거 없어. 그리고 이건 너한테는 나쁜 제안이 아니야. 네 목숨은 내 건데 누가 취하려고 해봐. 내가 어떻게든 못 가져가게 하려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하겠어. 난 원래 내 거를 뺏기고는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야!”
듣고 보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가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순식간에 나타나 자신을 낚아채던 그 경공은 경지에 이른 무학이었다. 얼마나 강한지는 검을 맞대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발은 빨랐다.
“자, 여기.”
“이건… 뭐지?”
“아이, 원래 말로는 천 냥 빚도 갚는다고, 입만 잘 털어봐야 구라밖에 더 잘 치겠어? 확실한 건 문서로 남겨야지, 문서로.”
그게 그런 식으로 쓰이는 속담이 아닐 텐데…? 그건 그렇고.
문서를 읽는 유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체 포기 각서.〉
편의상 이 각서의 수취자(受取者) 정천을 갑(甲)으로 의탁자(依託者) 유운을 을(乙)로 칭한다. 을은 갑에게…….
대체 이딴 건 언제 준비했는데?
“뭐, 세세한 것 따져서 뭐 하겠어? 피차 피곤하게끔. 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거기 밑에 지장 하나만 찍어주면 돼.”
언제 다 준비했는지 인주까지 탁자 위에 올려놓는 정천.
역시나 미친놈이 확실했다. 잠시라도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했던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었다. 유운의 온몸에서 살의의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뭘 또 그렇게 감격하고 있어? 아무리 고마워도 그렇지. 어어?! 젓가락은 그런 용도로 쓰는 물건이 아니야. 내려놔. 내려놔야 착한 아이지. 그렇지, 그렇지. 착하지.”
하마터면 젓가락 살인마가 될 뻔한 유운이 심호흡을 세 번 했다.
그래,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
“장난은 그만하고, 이제….”
“장난? 장난한 적 없는데?”
‘그래, 장난이 아니겠지. 이미 정상이 아닌 인간이니까….’
그러다 유운은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위화감이랄까.
해맑게 웃는 정천의 얼굴은 어딜 봐도 장난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단 한 군데, 그 눈만 빼고. 눈꼬리는 웃고 있지만, 그 눈빛만은 시리도록 냉철하게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유운의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정 신체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원래 내 조건대로 값을 치르면 돼. 간단하잖아?”
“아까 분명 말했을 텐데, 이 검은 내 사부께서….”
“봉황신검.”
“뭐…라고?”
“이렇게 말하면 모르나? 그럼… 그래, 사방신검이라고 하면 알아들으려나?”
씨익.
“네가 갖고 있기엔 너무 위험해서 말이야.”
스르릉!
순식간에 검집에서 뽑혀 나온 유운의 검이 정천의 목을 겨눴다.
“네놈, 누구냐.”
유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는 단순한 장난이나 정신 이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 자신의 검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 무림에서도 그 정체를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것은 이런 시골 동네의 한량으로 살아가는 이가 알 수 있는 그런 사소한 정보가 결코 아니었다.
“에이, 그거 좀 알아본 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사람을 죽일 듯이 그러냐?”
“닥치고 물은 것에나 답해라.”
점점 더 살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정천.”
“뭐라고?”
“나, 누구냐며? 정천이라고.”
“이자가!”
유운이 검을 들어올리는 순간.
“나랑, 내기 하나 할래?”
“…내기?”
그러나 대답을 끝마칠 새도 없이 빠르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성큼 성큼.
묵광(墨光)의 검을 꺼내든 정천이 망설임 없이 그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뭐지? 도대체 뭐야, 이자의 정체는?’
“묵룡, 어때? 즐거워?”
“미친놈. 검에 대고 말을…!”
‘……!!!’
순간 정천이 검을 휘둘렀으나, 베인 것은 정천 자신의 손목이었다.
새빨간 선혈이 바닥을 적셨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운을 향해 물었다.
“내기, 하는 거다?”
“너…!”
“일단, 일적(一滴)이면 되려나.”
정천이 다시금 검을 크게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