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42
41화. 천명신공(天鳴神功) (1)
“귀여우시네요, 공. 자. 님.”
귀엽다고? 그런데 눈초리는 그게 아니었다. 마치.
‘경계심…?’
여인은 여인을 안다. 원영의 눈빛에는 ‘나 너 경계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호호, 장난이에요. 뭘 그리 경계하고 그러시는지.”
‘내가? 경계를 했다고?’
오히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원영이 대신하자 욱하는 마음에 한마디를 지르려 했지만, 막상 뭐라 해야 할까? 자신에게 ‘공자’라 칭하는, 다시 말해, 자신을 사내로 여기고 있는 여인에게 자신을 경계하지 말라고? 그거야말로 우스꽝스러운 말이다.
“그런데 누님께서는 무향곡에 왜 다녀오신 거예요? 급한 일이 있다면서요?”
단리우의 물음 덕분에 화제가 급격히 전환되었다. 더 골려주지 못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원영이었지만 아쉬움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 노사께서 이 서신을 대인께 전달하라고 하셨어요. 대인께서 굉장히 관심을 두실 거라면서.”
원영에게 건네받은 서신. 정천은 얼굴을 흠뻑 적신 물기를 닦으며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누님, 대인께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시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크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 모습에 원영과 단리우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지만, 유운은 달랐다.
‘진기가 미친 듯이 들끓고 있어!’
겉과는 달리, 적어도 유운은 알고 있었다. 혈룡기에 감응한 봉황기로 인해 피부가 저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푸흡, 재밌네. 아무래도 시원하게 칼부림 한번 나겠는데?”
“칼부림이요?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길래요?”
“네가 직접 봐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단리우가 서신을 펴 봤다. 하지만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
“예? 이게 무슨 소리인데요?”
〈누가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 구름 속을 노닐며, 모든 것을 잊고 살면서 끝나는 곳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긴.
“비급의 첫 구절이지.”
“예? 비급이라니요? 어떤 비급이요?”
“천명신공(天鳴神功).”
“예? 처, 천명신공이요?!”
놀란 토끼 같은 얼굴들이 아주 가관이었다.
“헉! 그, 그 천하삼대신공 중 하나라는 천명신공이요?!”
“응, 그 천명신공.”
“그, 그런데 그 첫 구절이 왜 여기 적혀 있는 건데요?”
그야 당연히.
“그 비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거지.”
확인 사살까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다. 무림 최고의 비급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천명신공의 비급이 나타났으니.
“그런데 말이야.”
세 사람의 한껏 기대를 머금은 시선이 정천의 입으로 향했다. 괜히 머쓱해진 정천이 뒷머리를 긁었다.
“그거, 뻥이야.”
“예?”
“뻥이라고. 뻥 몰라? 다른 말로는 ‘구라’라고도 하고, 점잖게 말하면 ‘거짓말’이고, 고급지게 말하면 ‘기만’이라고도 하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세 사람이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흐음, 그러니까… 낚으려고 꾸며낸 거지.”
낚아? 뭐를?
“아니,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낚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지 노사가요? 누구를?”
지형우가?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서신은 형우가 보낸 것이 맞지만, 비영각의 정보력을 통해 자신에게 전해질 것을 알고 있는 사람, 바로.
“누구긴, 대사형이 나를 낚으려는 거지.”
금세 세 사람의 눈가에 실망감이 서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천상 무림인일 수밖에 없는 세 사람이었다. 정력에 좋다면 개똥이라도 구해 먹을 뭇 사내들의 기세처럼 천하제일의 무공이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무림인이니까.
“부교주가요? 왜요?”
천명신공은 무공 그 자체보다는 무공을 한 단계, 혹은 몇 단계 이상을 올려줄 수 있도록 무공의 심득, 즉 무학의 원론을 서술한 비급이다. 그런데….
“나만… 못 읽어 봤거든.”
뭔가 덜떨어져 보여서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예?”
정확히 말하면 죽은 여섯 째 사형도 못 봤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사부는 사형제들에게 차례로 그 비급을 보여줬어. 그런데 하필 내 차례가 오기 전에 사부가 사라져서 말이야.”
“아…….”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안타까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잠깐!”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유운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째서 천명신공을 그쪽 사문의 사부가 가지고 있었던 거지?”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그 비급이 우리 사문의 직계 제자에게만 전승되는 비급이니까?”
천마사대공, 장백무결경과 함께 천하삼대신공으로 일컬어지는 천명신공.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한 중원 무림의 그 누구도 정확히 천명신공의 유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영문 자체가 무림에서 잘 알려진 문파가 아니었기 때문에 천명신공 또한 소문만 무성할 뿐, 실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것이다.
“어쨌든, 대사형은 나를 도발한 거지. ‘네가 욕심이 나면 한번 스스로의 힘으로 가져가 봐라.’라면서.”
“그래서….”
유운은 이제야 왜 정천의 진기가 들끓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응, 그래서 이제 곧 대대적으로 소문을 내겠지. 수많은 무림인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 비급을 찾으려 들 테고 말이야.”
“설마, 제 발로 함정인 걸 알면서 덤벼들겠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아무리 그래도 머리가 있으면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아무래도 가봐야겠어.”
“뭐라고?!”
“예?”
유운과 단리우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아, 아니. 함정이라며? 뻥이라며? 구라라며?!”
유운과 단리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제 발로 불길로 뛰어든다고?
“대인, 그냥 무시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비급도 거짓이라면서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대사형이 준비한, 위협이 도사릴 확률 구 할 구 푼 구 리의 잔칫집에는 비급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비급의 진본도 대사형이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지.”
“그렇다면….”
비급이 밖으로 나돈다는 건 거짓이겠지만, 천명신공은 대사형의 손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본문(本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욕심이 나 버리네, 쩝.”
솔직히, 대사형을 제외한 다른 사형들은 그에게 한 수 아래였다. 물론 이사형은 측정 불가라 예외로 두고 말이다. 결국은 깨달음이고, 천명신공 없이도 자신은 그에 준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졌지.’
이 년 전 대사형에게 패해 버렸다. 그것도 무참히 박살이 난 바람에 하마터면 묵룡까지 뺏길뻔했다. 지금까지 그가 대사형에게 그나마 비빌 수 있었던 이유는 묵룡과 혈룡기 덕분이었을 뿐. 그렇게 따지고 보면, 묵룡이 없었더라면 과연 삼사형을 한 수 아래로 볼 수 있는 실력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고, 진짜가 아니더라도….”
정천의 시선이 원영을 향했다.
“어디 꽃밭에라도 숨겨놨겠지, 뭐.”
* * *
천명신공, 그 자체로도 중요했다. 사조들의 심득이 담긴 사문의 보물이고, 무영문의 제자라면 응당 읽어야만 하는 필독서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묵룡아, 묵룡아, 검령을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과연 묵룡의 봉인은 언제쯤 풀 수 있을까. 천명신공을 얻으면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을 할 뿐이다.
“혼천야장을 찾는 게 더 빠르려나?”
봉황은 아직 그 힘이 너무도 미약한 당대(當代)의 혼천야장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혼천야장으로서 각성을 하여 그 존재감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게 빠를지도.
“야심한 밤에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시나요?”
“어어, 아니야, 아니야. 그냥, 달구경 중이야.”
“달구경이요?”
슬쩍 하늘을 바라보는 원영.
“달이… 안 보이는데요?”
“그래? 저기 안 보여?”
“전혀요.”
원영의 말대로 구름에 가려진 달은 두 눈을 비비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흐음, 원래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거야.”
“그럼, 소녀는 나쁜 사람인가요?”
가벼운 미소와 함께 물어본 말에 정천은 답하지 않았다. 단지 피식 웃을 뿐. 무언은 긍정이 아니던가.
“제가 정말로 나쁜 사람인 건가요?”
정천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오히려 내가 나쁘지.”
원영의 눈빛이 세차게 떨렸다.
“왜…… 당신이 더 나쁘다고 하시는 거죠?”
“그야…….”
품속에서 꺼내 드는 종이 세 장.
“난 악덕 포주니까?”
“나 참.”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원영. 악덕 포주라고 하기에는 신체 포기 각서에 대한 어떠한 제재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빌미로 도와주기만 했을 뿐. 그렇기에 원영은 더더욱 가슴이 먹먹했다.
“왜 이래? 뭐야? 그 우수에 젖은 눈빛은? 유난쟁이 단리우한테 배운 건가?”
매사에 진지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내. 몰랐을 때는 자신의 우상이었지만, 알고 나면 그 누구보다 오라비처럼 편안함을 주는 사내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 사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도 좋았다. 물론, 현재 밤말을 엿듣고 있는 쥐새끼가 하나 있어서 문제이긴 했지만.
‘어디 한번 골려볼까?’
원영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 종이에 적혀 있듯이, 제 몸은 당신 건데 왜 직접 가지려 하지는 않나요?”
정천에게 몸을 밀착한 원영의 은근한 손길이 정천의 허벅지를 쓸어내려 갔다.
“저는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아…. 당신이 제 몸을…….”
간드러진 목소리. 천천히, 그리고 관능적이고 우아한 손짓으로 정천의 도포 끈을 잡아당기려는 순간.
타악!
뒤편 수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원영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서렸다. 그리고 잠시 후, 옷매무새를 여민 정천이 일어섰다.
“아이고, 고마워 죽겠네.”
“별말씀을, 훗.”
* * *
밤중에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정천의 기척을 느끼며 뭐에 홀린 듯 따라나선 유운은 큰 나무 뒤에 숨어서 정천을 지켜봤다. 대체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러고 있었다. 그때, 원영이 정천에게 다가왔다.
“제 몸은 당신 건데, 왜 직접 가지려 하지 않나요?”
‘뭐, 뭐라고?!’
유운은 입을 틀어막았다.
‘서, 설마? 아닐 거야.’
이런 미친! 아니긴 개뿔!
원영이 뻗치는 유혹의 손짓. 유운의 시선이 정천의 얼굴을 향했다. 살짝 고조된 듯한 얼굴.
‘이 자식이!’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께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저는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아….”
유운은 자신도 모르게 돌을 집어 나무를 향해 던졌다.
타악!
나무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원영의 동작이 멈췄다.
‘헉,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대체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급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유운.
“아니야, 아니야. 왜? 그럴 수도 있지. 둘이 무슨 짓을 하든 내가 무슨 상관인데? 어? 까놓고 말해서 원영, 그 여인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잖아. 신체 포기 각서까지 썼는데 그럼 그건 정천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다 문득.
“그, 그럼 내 몸은…….”
좀 전과는 다른 뜨거움이 얼굴을 달궈버렸다.
“흠흠. 아니야, 상상하지 말자. 내 머리야, 상상하지 마, 제발!”
원래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더욱 선명해지는 법. 심지어 지난밤 술에 취해 했던 말이 생각나 버렸다.
‘천유화, 그게 내 이름이야! 난 천유운이 아니라 천유화라고! 그리고 내 몸은 네…….’
“으아아아악!”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의 기억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가루로 만들어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형님!”
단리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