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43
42화. 천명신공(天鳴神功) (2)
금룡상단. 중원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그리고 안휘성 내 상계에서는 그 어떠한 상단도 감히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상단이 바로 금룡상단이다. 그만큼 무림 내의 수많은 문파, 그리고 세가에 연줄을 대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개중에서 남궁세가와의 관계가 무척이나 두텁다. 그렇기에 감히 여느 도적 떼가 상행을 막아서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상행을 나선 금룡상단이 동죽로(東竹路)를 지나고 있을 때, 그들이 나타났다. 암흑과 동화된 흑색 일색의 무복을 입은 흉수들은 그 어떠한 대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단지.
“멸(滅).”
선두의 사내가 검 끝을 상단을 향해 겨누자 일방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커헉!”
“으악!”
“살려줘!”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대,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연유라도! 커헉!”
상행을 이끌고 있던, 대행수 덕유의 목이 날아갔다. 상단의 호위무사, 쟁자수는 물론, 마차를 이끄는 짐마까지. 상단의 모든 생명체는 그 숨을 멈추었다.
* * *
무림맹 안휘지부.
쾅!
고작 주먹 한 방에 원목 탁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강 총관은 손괴 비품 내역서를 본단에 제출할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휘지부장이자 남궁세가의 이인자인 남궁환우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끽소리라도 했다가는 그 화를 자신이 온전히 견뎌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우리 지부로 향하던 금룡상단이 전멸을 당해? 대체 어떤 놈들이 감히!”
남궁환우의 쏘아보는 눈빛에 마치 죄인이라도 된 양, 강 총관은 고개를 숙였다.
“흉수는 어떤 놈들이라더냐!”
“그게…….”
‘낸들 아나? 조사를 해봐야 뭐라도 나오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강 총관은 또 한 번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그래서 공납품은? 공납품은 어떻게 됐다던가?”
강 총관은 그나마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금룡상단의 단원들이 몰살당한 건 안타깝지만, 공납품만큼은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답니다.”
“그래?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흉수들은 그 어떠한 물품도 건드리지 않았답니다. 그리하여, 조금 전 남겨진 공납품의 인계를 마쳤습니다.”
“호오……. 큼큼, 그럼 그… 뭐시냐, 그 지원 물품들은…….”
“모두 무사합니다. 그 외에도 금와(金蛙)가 실린 목함 몇 점이 추가로 발견되었는데, 지부장님께서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갑자기 화색이 도는 남궁환우. 그에게 있어 금룡상단의 인명 피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그들이 뇌물로 바칠 금덩이에나 관심이 있을 뿐.
“크흠, 어디 한번 가져와 보시게나.”
“예, 지부장님. 지시해 놓겠습니다.”
금덩이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으면 원목 탁상이 부서질 일도 없었을 텐데…. 강 총관은 자신의 안일함에 막심한 후회를 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숙부님, 훤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궁훤. 강 총관을 확인한 남궁훤이 남궁환우를 향해 고개 숙였다.
“현무대주, 남궁훤. 지부장님을 뵙습니다.”
“그래, 잘 왔네. 강 총관은 이제 나가 일 보시게나.”
“예, 지부장님.”
강 총관이 나가고 남궁훤의 입이 열렸다.
“숙부께서도 벌써 소식을 들으신 모양입니다.”
평소 숙부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기에 원목 탁상이 부서진 것을 보자마자 남궁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방금 강 총관에게 들었지. 금룡상단이 화를 입었다고.”
“그렇습니다. 현무대원들과 함께 동죽로에서 진상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렇구만. 그래, 소득은 좀 있었는가? 어떤 놈들이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것 같던가?”
묻기는 하지만, 남궁환우의 귀찮아하는 눈빛이 그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었다. 금룡상단의 인명 피해 따위는 관심 없다고.
“빗물로 인해 흔적이 많이 지워져 쉬이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산적들의 소행은 아닙니다. 동죽로 근방에서 활동하는 산채 중 그런 대담한 짓을 벌일 만한 곳도 없을뿐더러 그럴 능력조차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물품 탈취의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네라면 분명 무언가 증거를 발견했을 텐데?”
남궁훤의 수사 실력은 안휘지부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얼마 뒤 본단의 집행단으로 발령 날 것이라는 소문이 괜히 나돌고 있는 게 아니다. 고민 끝에 입술을 잘근 씹은 남궁훤이 입을 열었다.
“한 구절의 글귀가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글귀?”
의문의 글귀가 적힌 종이를 건네받은 남궁환우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누가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 구름 속을 노닐며, 모든 것을 잊고 살면서 끝나는 곳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대체 이 글귀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뭔가?”
“다수의 시신에서 마영검(魔影劍)의 검흔이 발견되었습니다.”
“뭐라? 그럼 마교의 소행이란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천마신교의 대표 검법, 마영검법. 백도에선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검법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골치 아파지겠군. 흉수들이 흔적을 지우려 했으면 분명히 지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글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진 지 오래. 시신에 남은 흔적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시신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 즉, 자신들의 소행임을 숨길 이유가 없다는 의미였다. 오히려 드러내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확률이 더욱 높았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본단에 알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본단에서 마교 놈들을 족치겠다고 혈안인데 말이야….”
정마비무대전 이후로, 무림맹은 본격적으로 마교도 색출에 나선 상태이다. 심지어, 얼마 전 집행단의 암룡대와 매화대가 몰살을 당했다. 단 한 명의 생존자인 매화검룡 청풍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무림맹 내에 마교의 세작들이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더더욱 마교도들의 활동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동죽로라…… 동죽로…… 옳지. 오랜만에 쓰레기통을 활용할 때가 됐구나. 그 길을 쭉 따라가면…….”
“무향곡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그곳에서 남경충처럼 기생하고 있는 마교도 놈들의 소행인 것이지.”
“…….”
그에 대한 건은 조사가 필요한 사항이다. 심지어 그들은 마교 내에서도 밀려나 부랑자 생활이나 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들이 간도 크게 그런 짓을 벌였을 리가 없다. 만약 벌이더라도, 상단의 값비싼 물건들을 노렸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일을 벌일 만한 동기나, 증거가 부족한…….”
“어허, 그 쓰레기들의 동기랄 거야 차고도 넘치지 않나? 세상에 대한 복수라든지, 악귀에게 영혼을 팔았다든지 말일세. 증거야 찾으면 부족할 것도 없고 말이야. 암, 그렇고말고. 그놈들이야. 흉수는 그놈들이 틀림없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렇게 무리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
‘비리가 들키지 않기 위함이겠지.’
본단의 집행단에서 털기 시작하면 지부의 티끌 하나까지 싹 다 털릴 테고, 지부장의 비리가 낱낱이 드러날 게 뻔했다. 단순한 징계에서 끝날 일이 아닐 터였다. 아무리 아버지의 형제이고, 자신에게는 숙부이지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으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더욱 큰 문제는.
‘그가 돌아왔을 수도 있어.’
묵혼혈룡검의 주인. 정마비무대전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이후로 행방이 묘연했다. 만약 그가 무향곡에 돌아온 상태라면, 걷잡을 수 없는 환란이 시작될 터였다.
‘아버지…….’
그 사실만 알린다면 숙부는 결코 모험을 감행하려 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그의 아버지인 남궁환일은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왜인지는 여쭐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찌해야 합니까.’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형님! 큰일 났습니다! 대인께서는 어디 계시죠?!”
단리우가 다급히 다가와 정천을 찾았다.
“무슨 일인데?”
“지, 지금 벽보가 붙었다고요!”
“무슨 벽보?”
“저번에 그 글귀!”
〈누가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 구름 속을 노닐며, 모든 것을 잊고 살면서 끝나는 곳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생각났다. 천명신공의 첫 구절이라는 그 글귀.
“흐음, 이제 시작하려는 건가?”
그때 뒤편에서 정천과 원영이 나타났다.
“대인!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원영 누님도 같이 계셨네요. 응? 그러고 보니 왜 이 야심한 시간에 세 분 모두 인적이 드문 곳에…….”
세 사람을 번갈아 가며 순진하게 눈알을 굴리는 단리우.
“꼬맹이는 몰라도 돼.”
“어른들만의 진득한 대화랄까? 호호.”
정천과 원영의 말에 유운은 왠지 모를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속으로 꾹 참았다.
“일단 객잔으로 돌아갈까? 아마 지금쯤이면 똥줄이 탄 손님이 와 있을 거 같은데.”
* * *
“마영검법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형님.”
밤중 손님. 형우였다.
“그렇다는 건 천마신교 쪽에서 일을 벌였다는 건데……. 그러니까, 이 글귀가 벽보에 붙은 그때에, 무향곡 인근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말이고.”
“무림맹 안휘지부에서는 이미 조사를 끝낸 상태입니다. 지부장의 성격상 귀찮은 건 다 덮고 모든 누명을 무향곡에 씌울 공산이 큽니다.”
금룡상단을 천마신교가 기습했다.
“금룡상단이라, 금룡상단……. 재밌네.”
우연의 일치일까? 그럴 리가 없다. 공중에서 눈이 마주친 형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금만형이란 사람 기억하십니까?”
“기억 못 할 리가 없지. 그래서 재밌다는 거야.”
금룡상단. 정천에게는 이를 갈게 하는 상단이었다. 이 년 전, 자신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상단주는 알고 보니 대사형의 사람이었고, 대사형이 쳐놓은 덫에 걸려 죽다 살아남은 기억이 생생했다. 벌써 죽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분했는데. 어쨌든 그런 금룡상단이 피습을 당했다?
“아주 그냥, 놀고 자빠졌네.”
천마신교도, 금룡상단도 모두 대사형이 휘하에 두고 있는 집단이다. 그런데 천마신교에서 금룡상단을 공격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어떻게 하긴. 답은 하나지.
“그래, 어디 한번 족쳐 보면 알겠지.”
대사형이 말하고 있었다. 어디 한번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와 보라고. 와서 진실을 파헤치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