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45
44화. 천명신공(天鳴神功) (4)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똑같다. 그 환경이 다를 뿐, 인간의 본질은 다르지 않으니까.
‘이 아이들은…….’
무향곡 내 하나뿐인 무관. 놀랍게도 정천에게 ‘형님’이라 부르는 대머리 아저씨(?)가 말해준 무관 내부로 들어온 유운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십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이.
“원영 소저는 어디로 간 거지?”
“누님은 잠깐 거처에 갔습니다, 형님.”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리우와의 호형호제하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졌다.
“우와……. 혹시, 사람 맞아요?”
한 꼬마의 용감한 질문. 그런데 사람이 맞냐니……?
“뭐, 뭐라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생길 수가 있어요? 원영 누나만큼 예쁜 거 같은데, 사람 맞아요?”
“그, 그럼. 사람이지.”
“오오! 선인이 아니었어!”
“우와…… 인세에도 저렇게 생긴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아이들의 순수한 궁금증에 유운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남자예요?”
아이들의 거침없는 질문 공격!
크게 당황한 유운이 단리우를 쳐다보자, 단리우가 슬픈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형님, 물건이 없어도 남자는 남자예요…….”
저 새끼를 확 그냥……!
“어떤 물건이 없는 거예요?”
아이의 순수한 물음에 한숨만 나왔다.
“지 노사님이 모름지기 사내는 자신처럼 우락부락하고 거칠어야 한다고 했어요.”
“맞아, 맞아.”
“그런데 형아는…… 음…… 그러니까…….”
아직 어휘력이 미숙한 아이들은 유운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아름다워요.”
“맞아요, 아름다워요.”
아이들은 솔직하다. 한 아이의 말에 다들 공감하면서 우르르 다가왔다.
“하, 하하……. 사, 사내에게 아름답다는 표현은 실례란다!”
“아니에요. 아름답다는 건, 좋은 거예요.”
“맞아요. 혹시 얼굴 한 번만 만져 봐도 되나요?”
순수하고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이들. 유운도 내심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끼이익-.
그때 무관의 대문이 열리며 원영이 들어왔다.
“원영 누나!”
“원영 언니!”
다들 원영을 보고는 다가가 그녀에게 안겼다.
“저 형아, 너무 아름다워.”
“맞아. 난 나중에 저 오라비한테 시집갈래!”
중구난방 떠들어 대는 아이들의 말에 원영이 씁쓸히 고개를 저었다.
“얘들아, 그러면 안 된단다. 저 아저씨는 백도의 인물이야. 너희들과는 상종할 수 없어.”
원영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정말이야……?”
“거짓말! 그 나쁜 백도 놈들이 저렇게 생겼을 리가 없어!”
“맞아! 저렇게 예쁜 사람이 나쁜 놈일 리가 없어!”
아이들의 말에 유운은 벙쪘다.
‘나쁜 백도 놈들……?’
어째서 백도가 나쁜 걸까? 그리고 대체 지금 무슨…!
“원영 소저, 순수한 아이들에게 그런 이상한……!”
그때, 단리우가 유운을 제지하고 나섰다.
“저 아이들에게 백도는 곧 악의 세력이에요.”
이미 사정을 알고 있는 단리우가 씁쓸한 웃음과 함께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절강혈사가 발생할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저 아이들이 갓 걸음마를 배우고 있을 때 아이들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눈앞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 아이들이었구나…….’
자신의 아버지가 저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어떤 일을 했었는지. 유운은 원룡으로부터 진실을 들은 적이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실에 어떤 왜곡이 조금은 있더라도, 단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저 아이들은 백도 무림맹의 공격으로부터 부모를 잃었다는 것이다.
“지 노사가 왜 이곳으로 당신을 안내했는지 알겠어요?”
진실을 한번 마주해보라는 의미였다. 원룡과 원영이 어찌하여 자신을 극도로 미워했는지, 죽이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무향곡을 쓸어버리기 위해 도착했어요. 공자께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잘 선택하셔야 할 겁니다.”
남궁세가와 무림맹에 멸문당한 단리우야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편에 서겠지만 엄연히 말해 유운은 아니었다. 만약 자신들의 편에 선다면 그는 백도의 배신자가 될 것이 자명했으니까.
‘어쩌면 아버지의 입지가 불안해질 수도 있어.’
그 역사가 유수한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의 입장에서 천가(天家)는 눈엣가시나 마찬가지였다. 강자존의 무림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가문의 누군가가 맹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면 가차 없이 쳐낼 명분이 될 터였다. 물론 마교의 세작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가를 몰아내는 일에 부채질을 해댈 테고.
“그럼, 지금 제가 저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요?”
자신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백도에서 천가에 대한 이빨을 드러낼 명분이 사라진다. 그러면 모든 일은 평탄하게 끝맺음될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각자의 위치는 원래 정해져 있는 거니까요. 맞지 않는 옷을 입을 필요도 없고요.”
맞지 않는 옷. 원영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건가?
유운이 긴장한 사이.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며 정천과 형우가 들어왔다.
“딱 봐도 아주 공기가 시원한 게, 화기애애해 보이네.”
과장되게 온몸을 으슬으슬 떨며 하는 말에는 뼈가 있었다.
‘정천…….’
저 사내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증오의 대상이었던 마교의 인물들과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아마, 칼부림이 나도 진즉에 났을 것이며 지금 무향곡에 발을 들였다는 무림맹의 세력과 함께 움직였겠지. 이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왜 백도와 반목하는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터였다. 선과 악이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정천의 하얀 무복 위에 수놓아진 붉은 점들. 선혈이었다.
“설마…….”
유운이 입을 틀어막았다. 혈흔. 그렇다면 혈투를 벌일 상대야 뻔했다.
무림맹.
그렇다는 것은.
“대인, 설마 무림맹의 무인들을…….”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무림맹에 선전 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야말로 천마신교가, 송백림 부교주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그때, 열린 문으로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얼굴을 확인한 단리우가 경악했다.
* * *
‘자, 어떻게 할래?’
정천의 얼굴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남궁훤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사방이 사로(死路)뿐인 진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대체 아버지께서는 왜 묵룡검주에 대한 일을 비밀로 하라고 하신 걸까?’
차라리 세가 전체에 묵룡검주의 존재에 대해 알렸다면 안휘지부장으로 계신 숙부께서 이런 무모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주위를 둘러봤다. 오십여 명의 든든한 맹의 무인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저 묵룡검주의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을까? 세가사기(世家史記)에 기술된 일화에 따르면, 한 사람의 천룡검주가 남궁세가 전체를 박살 냈다. 물론 백광뇌룡검의 주인이긴 했지만, 묵혼혈룡검의 주인이라고 다를까?
남궁훤이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감히 어디 앞이라고 쏙닥거리고 있느냐?”
짐짓 위엄 어린 목소리로 내뱉는 남궁환구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남궁훤. 그에게 제발 싹싹 빌고 싶었다. 더 이상 묵룡검주를 자극하지 말아 달라고. 이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문이 걸려 있는 문제였다. 이로 인해 남궁세가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숙부님,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지부로 돌아가 흉수들에 대해 조금 더 면밀한 조사를 끝내고 다시 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뭐라? 연유는?”
“그게……. 아직 무향곡의 전력이 제대로 파악되지도 않았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함이 좋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그럼 노부가 저런 쓰레기 놈들 전력까지 파악해서 이곳에 왔어야 했다 이 말이더냐?”
“…….”
“말해보게, 현무대주.”
세가의 명과 암, 직계와 방계. 은근한 차별과 괄시 속에서 방계의 삶을 살아온 남궁환구. 그리고 가문의 모든 지원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직계의 핏줄 남궁훤. 방계는 직계에 대한 열등감으로, 그리고 직계는 방계에 대한 은근한 우월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항렬상 조카뻘밖에 되지 않는 남궁훤이 감히 자신을 가르치려 든다고 생각하니, 그 열등감이 고개를 치켜든 것이다.
“…… 죄송합니다, 단장님.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직계도 직계 나름이다. 결국, 적장자이자 구룡의 일인인 자신의 형, 창천일룡 남궁선우는 계속하여 직계의 계보를 잇겠지만 자신이 일가를 이루었을 때, 종국에는 방계로 밀려나게 될 운명이었으니, 그만큼의 힘이 없었다.
‘아버지, 정녕 이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으신 겁니까?’
분명 남궁세가주에게도 안휘지부의 진상 조사단이 무향곡을 향했다는 보고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문에서는 여전히 어떠한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았다.
“노부는 관대하다. 어차피 쓰레기통을 관리할 인물들은 필요한 법. 네놈은 이곳의 쓰레기들이 말썽을 피우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하니, 그 목 위의 물건을 보장해 주겠으나, 만에 하나, 우리 맹의 행차에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네놈 목숨도 온전치 못할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남궁환구가 수색을 지시하는 순간.
“호오, 거참, 말 재미있게 하는 형씨네?”
남궁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이제는 그동안 정성스레 쌓아둔 조상님에 대한 공양으로부터의 은덕만을 바라며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뭐, 뭐라? 말 재미있게 하는? 형씨? 지, 지금 노부를 지칭하는 말인가?”
“지금 여기서 주둥이 놀리는 인간이 그쪽 말고 또 있나? 어디 있지?”
이마에 손을 댄 채 주위를 쭉 둘러보는 정천. 남궁환구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지금 노부를 능멸한 것인가?”
“에이, 뭘 그런 걸로 능멸씩이나. 능욕이면 몰라도. 난 형씨를 멸시한 적이 없어, 욕보이게만 했지.”
“네놈의 주둥이가 사지로 걸어가기를 자초하는구나.”
“왜일까? 지금 상대하는 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자신감이 넘쳐흐를까?”
정천의 순수한 물음이었다. 누군가를 상대한다는 것. 인간을 동일한 인간으로 대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쉬워진 순간, 그것은 상대에 대한 무시가 그 근본에 깔려 있다는 의미였다.
“저놈이다. 저놈이 바로 흉수의 주동자다. 잡아들여라. 반항한다면 사지를 몽땅 잘라 내 앞에 데려오라.”
“뭐, 그럴 수 있다면.”
씁쓸한 웃음과 함께 검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달그락달그락!
“잠깐, 잠깐만 멈추세요!”
힘찬 말발굽 소리와 함께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