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53
52화. 자격 충분조건(2)
– 사천당가? 그놈들은 꽤 쓸 만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지. 추혼비접(追魂飛蝶)이라고. 그런데 내가 마지막 장을 뺏어버렸다. 왜냐고? 덩치가 조금 큰 못된 아이가 제 덩치만 믿고 자꾸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다른 아이들이 클 때까지 더는 크지 못하게 하면 해결이 되는 문제니라.
사부다운 해결법이었다. 정의? 자비? 법도? 사부는 정의롭고 자비로우며 법도를 아는 사람이다. 적어도 그의 기준에서는 말이다. 그에게 기어오르려 하면 정의의 심판을, 그에게 순종하면 자비를, 그리고 순종하는 이들을 못살게 구는 이들은 그만의 법으로 다스린다.
“그러니까, 개소리 그만하고 덤빌 거면 덤벼. 자격도 없는 주제에 기어오르면 밟아줄 테니까.”
우웅- 우웅-
묵룡이 세차게 검명을 흘린다. 혈룡기가 무형독을 밀어내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 현경에 이르러 만독불침의 신체를 얻었으면 모를까, 이제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그가 아니었지만.
“청무각주, 저자는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소. 지금이 바로 빌어먹을 마교 놈을 처단할 때요.”
갑자기 왜 화가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새파랗게 어린놈의 꼴을 보니, 당철이 나서서 용독을 했음이 틀림없었다. 말인즉슨, 이제 저자를 처단할 때. 주진원은 바로 움직였다.
“회풍무류나진(廻風舞流羅陣)을 펼쳐라!”
청무각 무인들의 대부분, 특히 이곳에 주진원을 따라온 이들은 거의 모두 점창파 출신이기에 점창파 독문 진법인 회풍무류나진을 펼치기에 충분했다. 극쾌와 극변의 무학을 추구하는 점창파의 무공답게 소용돌이처럼 끊임없이 적의 주위를 돌며 쾌검을 난사한다.
‘흐음, 까다롭겠는데.’
외상이야 그렇다 치고, ‘매개체’도 없이 우안을 무리하게 개방하면서 생긴 내상에, 중독까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일각은 고사하고 촌각이면 운명을 달리했을 터였다.
‘그래도 아직 한 톨의 내공이라도 쥐어짠다면…….’
바람이 불어왔다. 살을 찢어발길 듯 날카로운 칼의 바람이. 수십 명이 한 조를 이뤄 나진(羅陣)을 형성했다.
하지만 정천은 동요하지 않는다. 검을 두 손으로 맞잡은 채 수직으로 명치께에 위치시켰다. 심지어 눈을 감았다. 그건 누가 봐도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검영이 날아드는 가운데 눈을 감다니.
‘허초는 무시하고, 살초는…… 조금의 살을 내준다.’
대신 뼈를 깎겠다. 그리 다짐했다. 청무각 무인들의 검이 날아올 때마다 자잘한 상처가 늘어갔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정천이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휘우우웅- 휘우우우웅-
바람이 불어와 정천의 머릿결을 휘날렸다. 그 바람은 점차 거세지더니 태풍이 되었고 이들이 만든 검영의 바람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으으으으.
고요한 적막. 태풍의 눈 속은 고요한 법. 감겼던 눈이 떠졌다.
환(換) 무영신검(無影神劍) 일식(一式) 풍신(風神).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검을 천천히 한 바퀴 휘둘렀다. 두 바퀴, 세 바퀴…. 적막을 깨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묵룡이 지나갈 때마다 그 무엇이든 베어버릴 듯 예리한 바람의 칼날이 청무각 무인들을 덮쳤다.
“크, 크악!”
“으아아악!”
“으윽!”
풍신에게 인간의 온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베고, 또 베었다.
“…….”
폭풍에 휩쓸린 이들 중 온전히 살아남은 이는 없었다. 종종 사지 하나씩 뜯겨나간 채 살아남은 이들은 있을지언정.
‘어, 엄청나다…….’
진즉에 힘이 다 빠졌다고 생각했다. 심한 내상을 입은 듯 보였고, 무형독에 중독까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왜? 형씨들도…… 덤벼보지 그래…….”
물론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뚝- 뚝-
붉게 물든 왼쪽 눈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겉모습만큼은 그야말로 지옥야차가 따로 없었다.
* * *
“헉…… 헉…….”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 체내의 모든 공력을 태워 만들어낸 결과였지만 자신의 바람에는 썩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두 다리 멀쩡히 버티고 서 있는 이들은 꽤 있는 데다 멀찍이서 풍신을 피한 당철과 주진원에게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육장로와의 대결에서 강제로 우안을 개방하여 쌓인 내상이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마지막 한 줌의 공력도 다 태운 것 같으이.”
이 무림에 잔뼈가 굵다 못해 기둥 하나 세울 지경인 당철이 그의 상태를 모를 리가 만무했다. 이제야 안심하고 정천과의 거리를 좁히는 당철, 그리고 수하들을 잃은 분노에 가득 찬 주진원까지.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댔는데,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네.’
괜히 센 척했다가 목숨이 아작날 지경에 이르렀다. 자존심 다 버리고 간신히 도망쳐서 연명한 목숨을 자존심 하나 때문에 버리게 생겼으니, 이보다 멍청한 짓이 있을까. 물론.
“대인!”
믿는 구석이 하나 있기는 했다.
“그래, 우리 집 개새x한테 물려 죽기 전에 도망치는 게 차라리 낫지, 남의 집 개x끼한테 물려 뒤지느니.”
단리우가 도착했다. 이제 ‘그것’만 받으면 남의 집 똥개한테 물려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천명신공을 얻을 시간이 더 걸릴뿐더러 그때까지 장로들의 신뢰가 바닥을 기겠지만 말이다.
“‘그것’을…… 던져!”
저 멀리서 뛰어오는 단리우. 당철이 거리를 좁히기 전에 ‘그것’만 받으면…….
“예?”
“뭐야, 그 멍청한 표정은?”
“어…… 그러니까…….”
단리우가 난감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것보다는, 지 노사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전언……? 전언은 무슨 전언? 형우가 뭐라는데?”
눈치를 보며 심호흡을 하던 단리우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야이, 병x같은 새x야. 너 같은 머저리를 형님이라고 모신 내가 병x이지. 고작 장로의 시험도 네 힘으로 통과 못해서 그 힘을 빌리려 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이 왜 필요한데? 그럴 거면 그냥 나가 뒈지는 게 차라리 낫겠다! 네가 정말로 그 자리에 오르고 싶다면, 정면으로 돌파해서 그것을 증명해.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장로도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형님.”
정적이 흘렀다.
“그, 그…… 지 노사께서 절대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전하라 하셔서…….”
“…….”
둔기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형우의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묵혼을 봉인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제어할 수 없는 힘이었다. 묵혼의 봉인을 해제했는데 만약 제어에 실패한다? 그야말로 무림 최대의 재앙이 되고 말 것이다. 고작 장로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정말 머저리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사통과한들, 과연 자신을 대사형의 반열에 올려놓고 인정해줄까?
“형우의 말이 옳아.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건 그렇고.”
병x? 나가 뒈져? 마지막에는 충격을 좀 줄여보겠다고 다시 예를 갖춘다?
‘그래, 형우야 오랜만에 이 형님이 두들겨주는 사랑의 매가 그리웠구나.’
기필코 묵사발을 내주겠다.
“그래, 마지막 유언은 그게 다인가?”
형우의 말은 형우의 말이고, 상황은 좋지 못했다. 당철, 그리고 주진원 정도의 고수라면 현재 그의 상태가 어떤지 확실히 가늠할 수 있었다.
“정천!”
그때, 복면을 쓴 인영이 달려와 정천 앞에 섰다. 그리고 그 뒤를 원영이 따랐다.
“얼씨구?”
여리여리한 체구에 봉황신검까지. 누가 봐도 유운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알아볼 이들이 꽤 있을 테니 복면을 썼겠지.
“여긴 어떻게 알고 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유운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청무각주, 그리고 병략단주까지.’
좋지 못했다. 좋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최악이었다. 구룡팔봉(九龍八鳳). 현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리는 구룡팔봉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백대고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심지어 백대고수의 두 명이 눈앞에 있었으니 앞이 깜깜할 수밖에.
“그대들도 마교도인가?”
“…….”
유운은 침묵했다. 가문의 비극을 만든 마교를 평생 증오했다. 그런 그에게 마교도냐 묻는다. 과거였다면 절대 아니라고, 악의 무리와는 상종도 하지 않는다고 부정했겠지만, 지금은 침묵했다.
– 저 아이들에게 백도는 곧 악의 세력이에요.
전날 무관에서 단리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천마신교 출신의 아이들. 그 아이들을 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그곳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말이다. 반대로 백도에서 태어난 이들은 모두 선할까? 의와 협이 넘치는 이들일까?
“쓸데없는 물음은 삼가고, 검을 드시지요.”
어차피 질 싸움, 그런 건 없다. 상대가 백대고수 중 한 명이라 하더라도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물론 백대고수 둘이 함께 덤빈다면 그땐 말이 조금 다르겠지만, 저들의 강한 자존심을 알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당철은 한 걸음 물러섰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서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싸울 의사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청무각주, 당신의 검을 한번 배워보고 싶습니다만. 마교도와 싸우는 게 두렵지 않다면 말이오.”
병략단주 당철을 배제할 수 있는 기회였다.
“뭐라?”
명백한 도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앳되어 보였다. 감히 마교의 애송이가 도발을 하니, 어이가 없었지만, 수하들을 잃은 그의 분노를 풀기에는 제격이었다.
“배움? 좋군. 그런데 이 가르침의 대가는 그 목이 될 것이다.”
스르릉-
주진원이 검을 뽑아 들었다. 점창파가 자랑하는 사일검. 그 검을 마주해야만 한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어왔다. 검을 마주한 순간부터 강하게 옥죄어오는 압박감에 온몸이 저릿했다. 자신과 동급, 혹은 자신보다 한 수 아래의 이들만을 상대해왔던 유운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신보다 한 수 위, 혹은 두 수 위로 평가되는 고수와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려움보다는 무학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어이, 기억하라고. 검은 더욱 뜨겁게, 마음은 차갑게.”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훈수질은. 물론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의 뒤에 정천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뭔가 든든한 느낌이었다. 언제든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간다.’
주진원은 여유롭게 검을 들고 있을 뿐 먼저 달려들지는 않았다. 애송이인 네가 먼저 와보라는 듯. 유운은 망설이지 않았다. 적염(赤炎)의 불꽃이 봉황신검의 검신 위로 물들었다.
‘점창의 검은 빠르고 그 변화가 극에 달한다. 하지만 그만큼 허초가 난무한다는 의미. 실초를 꿰뚫는 게 관건.’
그리고 상대는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상대를 알고 상대는 나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첫수가 중요하다. 예상치 못한 일격이 승패를 좌우하는 법. 그렇기에 탐색전은 필요 없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한다.
“하앗!”
봉황의 힘이 깃든 열화의 검기가 주진원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저것은 역시나.’
당철의 눈이 빛났다.
‘……봉황신검. 역시 천가의 자제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