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61
60화 – 엇갈림(2)
“아가씨? 네가 왜 아가씨냐?”
“…….”
효룡이 유운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다.
“예쁜 샌님인 줄 알았더니, 계집이었어?”
“언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겠소.”
“옘병.”
주먹을 들어 올리는 효룡.
“그대가 낭왕 효룡이로군. 청무각주에게 이야기는 들었소.”
“그래서? 그놈들 나한테 털렸던 것도 말했을 텐데?”
“물론. 하지만.”
모용학이 조용히 검을 뽑았다.
“본인이 청무각주는 아니니 말이오.”
백대고수라고 모두의 실력이 동등하지 않듯, 오각(五閣)의 수장들이라고 모두 같은 무위를 지닌 건 아니다. 한판 붙고 싶다면 피하지는 않겠다는 말.
“이야, 그 자신감 대단한데? 한따까리 해보고 싶게 말이야.”
“물론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대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구려. 본인은 약자를 핍박했다는 오명을 더하고 싶지는 않소.”
“이 자식이……!”
모용학이 유운을 돌아봤다.
“조용히 모시고 싶습니다. 지금 돌아오지 않으신다면 맹주께서 많이 곤란해하실 겁니다.”
“…… 하지만!”
모용학은 단호했다.
“천가의 무인들이 처참히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
살귀를 쫓느라 미처 수습하지 못한 사체들.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호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인물들이었을 테다.
“맹주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들에 대한 복수를 아직 다 하지 못했어요.”
고개를 젓는 모용학.
“맹주의 분노는 어떨지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만약 아가씨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맹주께서 직접 움직이실 겁니다. 그러길 원하시는 겁니까?”
“…….”
자리의 무게. 아버지는 가내(家內)가 쑥대밭이 되었을 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맹주라는 자리의 무게로 인해 초인적인 힘으로 화를 짓누른 것. 그가 움직였다가는 정마대전이 벌어지고 말았을 테니까. 그런데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그가 움직인다면? 유운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어요. 따를게요.”
유운이 효룡을 향해 돌아섰다.
“대협, 신경 써 주셔서 감사했어요. 아무래도 저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굳은 얼굴로 유운을 바라보는 효룡. 한참을 바라보던 효룡이 돌아섰다.
“뭐, 내가 낄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알아서 하거라.”
그런 그를 향해 유운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무향곡.
“벌써 이 년이 흘렀다 이 말이지…….”
굳은 얼굴로 형우의 말을 듣는 정천. 천명신공의 심득을 온전히 그의 것으로 녹여 내기까지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원영이의 복수심은 여전……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눈을 좁히는 정천. 형우는 정천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냉정히 판단했을 때, 맹주의 여식이 그곳에서 죽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요.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형님.”
역시나. 형우는 모든 것을 알고도 방관했다. 그게 자신을 돕는 거라 판단했을 테니.
“물론, 낭왕이 제때 나타나 천유화를 구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지만요.”
낭왕 효룡. 그가 자신이 동굴에 들어가기 전 내렸던 명령을 잘 이행하여 다행이었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형우의 판단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앞으로도 그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운한 감정이 들긴 했지만 그건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만에 하나, 그곳에서 유운이 죽었다면 그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했지만.
“일이 복잡하게 됐네.”
어렵게 치료하여 봉합해 놓은 상처가 사실 그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현재 원영은 원룡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원룡이 그 아이를 잘 타이를 겁니다. 그 녀석이라면 엇나간 복수심보다는 미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할 테니까요.”
“아이고, 두야.”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미 엎어진 물을 담을 수는 없는 노릇. 그때.
“비영각의 그림자인가보군.”
“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느껴지는 인기척에 형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떻게 알아채신 겁니까? 나름 고도의 암행 훈련을 받은 놈인데…….”
“흐음, 뭐랄까. 자연기 그 자체를 느끼면 충분히 가능해.”
“오랜만에 봤더니 이상한 소리가 한층 발전하셨군요.”
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아무에게나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피식 웃는 정천.
형우의 반응도 이해는 됐기 때문에 정천은 더 이상의 대답을 덧붙이지 않았다.
얼마 뒤, 비영각의 무사가 정천 앞에 부복했다.
“비영각 제 일대주…….”
“아아, 귀찮은 건 그만하고. 난 이만 가봐야겠어.”
“어디를 가신단 말입니까?”
“어디긴?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지.”
원래 있던 곳. 무영문의 일곱 번째 제자로서의 위치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정천. 그가 떠나고 나서야 형우는 보고를 받았다.
“맹주의 여식이 맹주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형우는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끼익-
낡은 경첩의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객잔의 문이 열렸다. 어두운 객잔의 내부.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발을 들이는 인영.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층 객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단리우가 눈을 떴다.
‘유운 형님?’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유운의 보폭이 아니었다. 몸을 일으킨 단리우는 곧장 검을 집어 들고 문 앞에 섰다. 점차 가까워지는 발걸음.
‘셋, 둘, 하나!’
콰앙!
문을 박차고 나선 단리우의 검이 순식간에 뽑혀 나와 괴한을 향해 뻗어졌다.
탁!
“헉!”
뻗어 낸 검이 꿈쩍을 하지 않았다. 무언가에 끼인 듯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괴한의 검지와 중지에 낀 검신. 그리고 드러나는 괴한의 얼굴.
“이야, 많이 늘었는데?”
“헉! 대인!”
정천이었다.
“어, 어떻게……!”
“웬 귀신 본 표정이야?”
“돌아오신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정천.
“오랜만이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인물이었다. 벅차오른 단리우가 검을 거두고는 그대로 그의 앞에 부복했다.
“대인! 정말 다행입니다! 혹시 동굴 안에서 잘못된 건 아닌가 하고……!”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그래, 잘 지냈어? 할매는?”
“지금쯤이면 당연히 주무실 겁니다.”
“할매 잠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조용히 들어가고 내일 얘기하자.”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 그에게는 두 번째 고향과도 같았다.
단리우의 안내로 객실에 들어온 정천은 기분 좋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탁자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무언가 급해 보이는 단리우.
“그건 밥을 먹는 거냐? 아니면 마시는 거냐……?”
“우적, 우적!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죠!”
시간? 시간이 왜 없지? 그보다.
“그런데 여전히 객실에는 사람이 없어 보이네? 이러다 할매 굶어 죽는 건 아닌가…….”
어젯밤. 이층에는 총 다섯 객실이 있었지만 단리우와 할매의 방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가 없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까! 장사가 너무 잘 돼서 문제입니다! 객실 운영을 할 수가 없어서 놔둔 것뿐이라고요.”
“그럴 리가……?”
그 누가 있어 이런 허름한 객잔을 찾는단 말인가?
“거의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들…… 정확히는 여인들 때문에 아주 바빠 죽겠습니다. 정오만 조금 지나면 재료가 다 소진돼서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어요.”
그때였다.
“야 이놈들아! 빨리, 빨리 처먹어라! 아침 장사 시작해야지!”
“예, 객주 어르신!”
정천을 힐끗 쳐다본 객주 할멈이 돌아섰다.
“으이구, 할매 왜 또 삐져가지고.”
장장 이 년 만에 나타난 그가 야속한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마치 친자식처럼 거둬들였으니 말이다.
끼익-
그리고 시작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풍월객잔입니다!”
갑자기 몰려드는 여인들. 들어오자마자 두리번거리는 게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유운 공자는요?”
“아…… 그게…….”
난처해진 단리우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정천이 친절히 답해줬다.
“오늘은 없어요.”
씨익 웃으며 답하는 그의 모습에 여인들이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나가는 여인들.
“어어……?”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똑같은 일은 계속해서 반복했고 그날의 매출은 없었다.
“…….”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게 그러니까…….”
여인들이 풍월객잔을 찾는 이유, 바로 유운이었다. 그런 그가 없으니 여기서 밥을 먹을 이유가 없던 것. 단리우의 말을 들던 정천이 이마를 짚었다.
“빨리 효룡에게 유운을 데려오라고 해야겠군.”
그때 객잔의 문이 열리며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마침 원하던 인물.
“주군!!”
정천을 발견한 사내, 효룡이 곧바로 정천의 앞으로 다가와 부복했다.
“주군!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오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 그래요.”
오랜만에 보는 아저씨. 적응되지 않는 과한 행동은 여전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보고하자면…….”
묻지도 않은 쓸데없는 보고를 듣다가 결국 손을 들어 제지하는 정천.
“그래서, 유운은 어찌하고 혼자 왔어요?”
“그, 그게…….”
말을 더듬다, 한숨을 내쉬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다 입을 연 효룡.
“…… 무림맹에서 데려갔습니다.”
“그랬군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천.
‘그래, 차라리 그게 더 낫겠어.’
그에게 있어서, 아니 그녀에게 있어서 그게 더 나았다.
“수고했어요. 형우에게 이야기는 들었어요. 밀월효전에서 그를 구해주셨다고.”
“하하, 주군께서 내린 명이니 충신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제발 그 과잉 충성 좀 그만…….
“주군, 저는 지금까지 유운 형님을 이 년간 충실히 보필했습니다!”
“너는 또 왜 그래……?”
빨리 칭찬하고 만져달라는 강아지마냥 꼬리를 흔드는 단리우까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우리 할매는 어쩌냐…….”
달포 뒤.
휑-.
“아이고, 복덩이는 가버리고 식충이 하나만 겨 들어와 가꼬!”
할매의 혼잣말은 혼잣말이 아니었다.
“할매! 너무한 거 아니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할매를 보고 싶어 했는데!”
“시끄럽다, 이 식충이 같은 놈아!”
유운이 떠나고, 바꿔 말하면 정천이 들어오고 객잔은 말 그대로 파리만 날리게 되었다.
끼이익-
그때 객잔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오는 사내. 털이 덥수룩하게 난 사내였다.
“손님, 혼자 오셨습니까?”
“…….”
단리우가 물었지만 사내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저……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손님?”
재차 묻는 말에도 답하지 않는 사내. 듣고도 못 들은 척한 것이 분명했다.
“저기, 손님!”
울화통이 터진 단리우가 소리쳤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말을 해주셔야 상을 차리든 말든…… 무얼 보고 계신 겁니까?”
들어오면서부터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는 사내. 그의 시선이 닿는 곳.
“……사형.”
정천 또한 굳은 얼굴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