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7
6화. 용의자 을의 헌신 (2)
“그 당시의 칠공자가 아닙니다.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대주.”
“이빨이 빠져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하지만…!”
“지켜보지 않았던가? 아무리 단전이 망가지고, 그 힘이 현저히 줄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림자다. 오히려 우리가 노출됨으로써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아쉽지만 변수를 없애고 전력을 보전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부교주님을 위해서도 최선이다.”
“…….”
수하는 대주의 말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철수한다.”
명령이 내려진 이상, 그 누구도 더 이상 대주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이들. 이들이 자리를 뜨기까지는 눈 몇 번 깜빡할 시간이면 충분했다.
* * *
“헉헉…….”
그렇지 않아도 새벽을 꼬박 새워 경공을 펼쳤던 중년 사내는 쓰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형씨, 괜찮아요?”
너 같으면 괜찮겠냐!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쫓아오는 무리도 따돌린 것 같으니 이곳에서 한숨 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졸졸졸 계곡물이 흐르는 골짜기 인근 바위틈에 몸을 숨긴 뒤에야 세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야, 산 좋고, 물 좋고! 여기가 무릉도원이네, 무릉도원이야.”
여전히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여유로운 정천. 그런 그를 중년인이 노려봤다.
“아까는 경황이 없었네만, 어째서 마적…이라 불리는 것이지?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을 해주어야만 할 것이네.”
말에 서리가 내린 듯 냉랭한 그의 어투에 정천이 어깨를 으쓱하며 유운을 지목했다.
“번지를 잘못 찾으셨어요. 저 아니고 얘요, 얘.”
“뭐, 뭐?”
“저 아니고 얘가 호면마적이라고요. 극악무도한!”
당연하게도 마적과는 천만리 거리가 있어 보이는 훤칠하게 생긴 이가 마적이라니 당황할 수밖에.
“사실인가?”
“크흠, 오해입니다, 대협.”
‘그럼 그렇지, 아무렴.’ 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다가도 중년 사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강호란 원래 그런 곳이다. 생긴 게 아무리 멀쩡하고, 그걸 넘어 빼어나더라도 이를 이용해 추악한 짓을 일삼는 이들은 백사장 모래알만큼이나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중년 사내는 경계를 흩트리지 않았다.
‘그렇게 알고 보니, 뭔가… 이상하군. 목소리도 사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하고. 반반한 얼굴에 작고 여린 체구까지….’
사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이런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여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전설로만 전해지는 극악한 대법을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감히 현생에 존재하기 불가능한 사내의 미모였다.
“아, 걱정하지 말아요. 얘가 마적이긴 하지만 제 노예…가 아니라 의탁자(依託者)이거든요.”
“의탁자?”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의탁자라니.
“네, 제가 보호해주고 있는 중입니다. 아, 물론 신체에 대한 소유권은 저에게 있고요.”
왜 지금 그딴 걸 강조하는데!
유운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적을? 자네가?”
“저는 마적이…!”
“그렇죠. 이제 개과천선했거든요.”
유운의 말을 중간에 끊은 정천이 자신의 넓은 아량을 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네들을 쫓는 이들은 누군가?”
“왕호장의 무사들입니다.”
잘못된 사실을 정정하기 포기한 유운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왕호장… 왕호장이라…. 소호변의 왕호장주 왕방! 맹의 후원자 목록에서 본 것 같군.”
‘맹의 후원자 목록이라.’
유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가 알기로 후원자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부서라면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재경각밖에 없다. 수뇌부는 확실히 아니니….
“그런데 왜 그자와 반목하고 있는 것이지?”
“그건….”
“엇!”
정천이 답을 하려던 찰나 유운이 다급하게 골짜기 아래를 가리켰다.
“방금 저쪽 나무에서 인기척이 있었습니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기라도 했다는 듯 경계의 눈빛으로 수풀을 응시하는 유운과 이에 긴장한 채 그를 따라 조심스레 주시하는 중년 사내까지. 정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오, 진짜? 어디? 어디에서 인기척이 났어? 또 도망쳐야 해?”
이마 위에 손바닥을 올린 채 과장된 몸짓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정천.
“쉿, 조용히 해! 그리고 언제까지 도망칠 수는 없어. 객주 할머님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 이제 맞서 싸워야겠어. 난 잘못한 게 없으니까.”
“오오, 근데 저 사람들은 누구야?”
“누구?”
“네가 말한 나무 뒤쪽으로 봐봐.”
“장난치지 마라.”
무림맹 출신 사내의 질문을 돌리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뿐, 그쪽 수풀에 무언가가 있을 리가… 있었다. 흰색 무복.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봐봐, 저기 흰색 무복 입은 사람들 왼쪽 가슴에… ‘무(武)’?”
눈도 밝다, 이 새끼야!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지만 유운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만 했다.
“어? 왕호장 무사들이랑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어어? 같이 올라오는데? 저 사람들하고도 맞서 싸우자는 거지?”
“뭐? 맹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지원 나왔단 말인가? 어디… 저, 저자는 백무각주?!”
무림맹 무인들을 지켜보던 중년 사내의 두 눈에 희망의 빛이 서렸다. 무림맹의 선두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자신도 잘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두 청년을 유심히 살피는 중년 사내.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조금씩 거리를 벌린다.
“아저씨, 왜 그래요? 뭔 땀을 그렇게 흘려요.”
“아, 아닐세. 하하.”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천은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죄송합니다, 대협.”
유운이 순식간에 사내의 뒤로 돌아가 마혈을 짚자 사내가 짚단처럼 풀썩 무너져 내렸다.
“호오, 이거 봐. 무림맹에 알리자니까 그렇게 싫어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네?”
스르릉-
“검은 왜 뽑아 드는데?”
유운이 차분한 눈빛으로 정천을 응시했다.
“난 지금 자리를 피할 것이다.”
단호한 유운. 여의치 않으면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이에 정천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깐 맞서 싸울 거라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림맹하고 무슨 껄끄러운 관계가 있을까? 왕호장뿐만 아니라 무림맹에서도 현상금을 내건 건가? 흐음….”
“나를… 팔아넘길 생각인가?”
“뭐, 네 신체에 대한 소유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고.”
정천의 말에 유운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대 관계라고 할 것도 없고, 서운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무림맹에 잡히느니 이자를 뚫고 지나가는 게 나았다.
“뭐, 좋아. 도망치는 거라면 내가 잘하니까.”
“그게 무슨….”
“그런데, 결정은 내가 한다니까?”
품에서 종이를 꺼내 드는 정천.
“우리 조항 잊은 건 아니지?”
정천이 한 구절을 콕 집었다.
“넷, 을은 갑의 행동 범위 반경 오 장 이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 위반 시, 을은 황금 십만 문을 즉시 지급해야 하며 을과 그 가문, 그리고 대대손손 매일을 천신의 저주 아래 간질, 치질, 종기의 괴로움 속에 살아갈 것이다.〉
부들부들 떠는 유운. 치욕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자신을 구속하여 무림맹에 팔아넘기지는 않겠다는 말이었으니까.
지척에 다다른 무림맹 무인들과 왕호장의 무사들.
“그래도 내가 보호잔데, 신체 의탁자가 위험에 빠져 있다면 응당 보호를 해줘야지.”
“하지만…!”
자신을 팔아넘기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자신과 함께 도망친다면 분명 무림맹의 표적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런 위험을 안길 수는 없었다.
“뭘 걱정해. 설마 내가 내 한 몸 못 지킬까. 그보다.”
이제야 추격자들의 눈에 두 청년이 들어왔다.
“찾았습니다! 저 앞에 두 놈이 보입니다, 각주님!”
“백무각 무사들은 방진(方陣)을 펼쳐 포위하라!”
소리치는 이들. 정천이 중년 사내를 어깨 위로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림맹 무인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자, 그럼! 으쌰! 하늘에서 똥 떨어진다!”
짐짝이라도 되듯 정천이 중년 사내를 무림맹 무사들을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한껏 경계하던 무림맹 무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중년 사내를 보고는 황급히 무기를 거두었다.
“재경각주가 날아온다! 검을 멈추어라!”
자, 이제 준비하고.
“튀어!”
정천이 먼저 움직였고, 유운이 그 뒤를 따랐다. 백무각주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황급히 얼굴을 가리는 유운.
‘헛! 저자는…!’
백무각주, 모용학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 * *
“송구하오, 백무각주.”
“아니오, 고생이 많았소, 재경각주. 맹 내 마교의 첩자를 솎아내지 못한 저희 백무각의 실수요. 그래도 무사하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침울한 얼굴의 중년 사내, 재경각주, 제갈영이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쫓던 마교의 암살자들이 갑자기 종적을 감췄는지 이해할 수가 없소이다.”
“우리 백무각이 첩보를 입수해 움직였을 때는 냉정하게 말해 재경각주께서 이미 고인이 되신 이후일 것이라고 계산했었습니다. 마교에서 움직인 인원은 마영단 한 대. 재경각주께서 단독 행동을 할 때를 계획적으로 노려 움직였다면 필시 살아남기는 힘들 터. 그렇기에 사후 계획을 세워두고 움직이던 때였습니다.”
면전에서 자신의 생사 여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듣는 상황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모용학의 말이 맞았다.
“마영단이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을 때가 두 청년을 마주한 직후라고 하셨습니까?”
“백무각주께서는 두 청년과 마교가 연관성이 있다고 믿는 것이오?”
모용학은 답 없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연관성을 찾고자 함이 아니었다. 자신의 눈이 옳게 봤다면 청년 중 한 명은 자신이 잘 아는 이였다. 무림맹의 지침대로라면 제갈영의 안전을 확보한 후 모종의 임무만 해결하고 돌아가야 옳았지만, 그 청년을 본 이상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냉정하게 따지고 들자면 제갈영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왕호장이 쫓고 있던 호면마적이란 자는 어땠습니까?”
“어떻다니… 무엇을 묻는 것이오?”
“뭐랄까, 특이한 행동이라든가, 무공이라든가, 아니면 무구(武具)라든가.”
“흐음… 특이한 행동이라….”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제갈영이 손뼉을 쳤다.
“그자의 특이한 행동은 모르겠고, 둘 사이의 독특한 관계는 확실했소.”
“관계? 무슨 관계를 말함이오?”
호면마적은 정신 나간 놈에게 몸을 의탁했다 했다. 말인즉슨.
“주종(主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