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80
79화. 격변(3)
세 갈래로 나뉘어 진격 중이던 천마신교의 동진(東進)이 주춤했다. 북군과 중군이 거침없이 진격하던 반면, 남군은 의외의 일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군의 선봉에 선 복마천검대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 그 사실이 중원 전역으로 퍼지면서 연신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심지어 복마천검대를 격파한 세력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무림맹에서도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크흠, 단 한 사람이 확실하오?”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육사회의. 위공의 물음에 외첩단의 수장, 형산파의 위신록이 답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전투의 흔적을 분석한 결과 그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또한 답변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복마천검대의 천 명과 홀로 싸우려 들겠는가? 그리하여 다시 살피고 또 살폈지만, 단 하나의 일정한 보폭으로 새겨진 흔적과 죽어 나간 시체에 정확히 동일하게 새겨진 검흔은 절대로 다수의 인물이 만들어낼 수 없었다.
“혹, 태극검제께서 나서신 것이 아니오?”
무교원주 위공의 물음.
위신록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제운종(梯雲從)의 흔적도, 태극검(太極劍)의 흔적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태극검제께서는 무당산 천주봉에서 출두하신 적 없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크흠.”
새로이 맹주의 자리에 등극한 금강권제, 그리고 전(前) 맹주인 무극검제는 절대 아미산에 나타난 고수일 수가 없다. 게다가 무극검제와 함께 천무오제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되는 태극검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모두의 시선이 오성진인을 향했다.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오성진인.
“매화검제께서는 운대봉에서 두문불출하신 지 어언 이십 년입니다.”
“끄응.”
“그렇다면……?”
물론 한 명이 남았다. 하북팽가의 벽력도제. 하지만 벽력도제의 소재는 너무도 명확했다.
“벽력도제께서는 현재 하북에서 첫째 손주에게 혼천벽력도를 전수하는 데 열중하고 계시지요.”
이미 유명한 일화였다.
“이런 논의가 의미가 있습니까?”
그때 새로이 군사의 자리에 오른 제갈원이 입을 열었다.
“그가 백도의 일원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그리도 중요합니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는 반면, 위공과 같은 인물은 미간을 찌푸렸다.
“중요하지요. 그것도 아주요. 천 명의 복마천검대를 단신으로 상대하여 깨부수었다. 혹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 중에 맹주를 제외하고 그런 대담한 일을 해낼 수 있는 분이 계신지요?”
일동 침묵.
일단 그런 미친 짓을 벌일 생각조차 불가능했다. 물론 맹주인 금강권제도 내심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 본인 또한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아니, 불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지요. 복마천검대입니다, 복마천검대. 과거 정마대전에서 본인의 사부는 복마천검대의 백인과 치열하게 싸우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으셨지요.”
과거 중원을 침공했던 마교의 가장 강력한 무력 단체 중 하나가 복마천검대였다. 능히 일당백의 무력을 보여준 공포의 대명사. 천무오제를 제외하고 백도의 검수 중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천하십대검수의 일인인 그 또한 그들의 위명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당시의 무림오검 중 일인이 바로 자신의 사부인 광진검존(光進劍尊)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단신으로 복마천검대 천 명의 마인들과 싸워 그들을 절멸시켰다는 인물이 백도의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는 말씀이오?”
“무교원주님의 말씀 지당합니다. 어찌 제가 백도의 위상이 심히 깎일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에 별것 아닌 사건으로 치부할 수 있겠습니까? 제 생각이 짧았음을 시인합니다.”
제갈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물론 겉과 달리 속으로는 비웃음을 지었다.
‘네 놈들이 고작 허물에 집착하고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과 남들에게 추켜세워지기를 바라는 허영심이다. 그러니 이런 쓸데없는 논의를 지속하는 것. 그의 입장에서야 이보다 고마울 수가 없긴 하기에 일부러 더 이들을 자극한 것뿐이었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무교원주께서 정확히 짚어주셨으니, 이에 제갈 모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꼭 그에 대한 신상 파악을 해야만 할까’라는 의문을 가진 이들도 이 자리에는 꽤 존재했다.
“만약 조사 끝에 밝혀진 그의 출신이 백도가 아니라면 어떻게 합니까?”
병략단주, 당철의 물음. 사실 그의 머릿속에는 그럴 만한 인물이 하나 떠올랐지만, 감히 입에 올리진 않았다.
“아미타불…….”
맹주 또한 그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수밖에 없었다. 마교의 간자들을 쳐내고 이제 새로이 재편된 무림맹이다. 강한 지도력이 필요한 시점. 그런데 웬걸. 무림맹이 마교의 파죽지세에 연신 고전하는 사이, 누군가가 홀로 그 진격을 막아냈다. 만약 그의 정체가 세상에 밝혀진다면 무림맹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말 것.
그때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가 있었다.
“간단하지요. 그를 백도의 인물로 만들면 될 일입니다.”
제갈원이었다.
“어찌 말입니까? 그가 사도(邪道)의 인물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건 굳이 그가 진정으로 백도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차피 그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명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면 진즉에 자신의 위엄을 드러냈겠지요.”
“그것은 백도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비겁한 술수입니다.”
제갈원은 당철의 말에 이번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나중에라도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위업을 자랑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백도의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지요. 그러면 그가 백도인이 아니라고 발표를 할까요?”
“…….”
장내의 인물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마교의 진격을 단신으로 막은 인물이 사도, 혹은 제 삼의 세력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육사회의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제갈원은 더 짙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 * *
호북 의창 인근 죽백림(竹柏林).
“여기에서 끊겼다는 말이지?”
정천은 천유화의 흔적을 쫓아왔다. 그리고 딱 이곳에서 끊겼다.
“그렇습니다. 천유화 소저의 흔적은 여기까지입니다.”
정혁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여기 패인 흔적들은 사천당가의 탈수표(脫手標)가 박혔던 흔적입니다.”
나무와 지면 위에 어지러이 패인 흔적들.
“이 보폭 그리고 패인 정도를 봤을 때, 무극천가의 광영보(光影步)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그 발의 크기로 보았을 때, 천 소저의 것으로 보입니다.”
어지러이 찍혀있는 발자국들. 그 사이 사이로 다른 발자국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보폭으로 봐서는…….”
“창응보(蒼鷹步)로군.”
지난 무향곡에서의 결전에서 겪어봤기에 알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점창파와 사천당가가 나섰다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 무향곡에서의 치욕을 갚고자 했겠지. 치졸한 것들.’
특히, 청무각주 주진원이 나섰을 게 분명했다.
“이 이후로는 천 소저가 의도적으로 그 흔적을 지웠거나 아니면…….”
정혁의 굳은 표정.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그는 보이는 사실만을 믿는 이였다.
“사천당가의 암기들은 회수되었습니다.”
말인즉슨, 사천당가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의미. 만약 그녀에게 당해 도망치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암기를 회수할 여력이 없었을 터였다. 심지어 시체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그녀가 스스로 흔적을 지울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정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쫓기고 있는 상황. 그 상황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는 이상 이렇게 완벽하게 지워졌다는 건 그녀가 아닌 그녀의 상대들, 혹은 제삼자가 개입하여 그녀를 죽였든 납치를 했든 했다는 의미였다.
“혹시, 점창파로 가보시겠습니까?”
정혁의 물음.
“주진원이 무림맹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있나 보군.”
“그렇습니다.”
혹시 그녀가 잡혀갔다면 점창파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사천에서 천마신교와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당가의 경우 그럴 여력이 없을 테니까.
“일단 가보자.”
어떠한 단서라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점창파로 향해야 했다.
‘천유화는 살아 있을 거야.’
단순한 바람만은 아니었다.
‘묵룡, 그렇지?’
우웅- 우웅-
검병에 맞닿은 손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묵룡은 알고 있다. 사방신검의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 * *
운남성의 성도, 곤명.
“아이고, 무사님 어디로 가는 길이십니까?”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정천을 잡아 세우는 한 사내. 까무잡잡한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코입과 그 복장으로 보아하니, 회족(回族)의 사내였다.
“중원 말을 잘하시네?”
“아이, 그럼요. 이곳에 중원인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데 말입죠.”
서역과의 무역이 활발한 곳이다 보니, 다양한 민족의 언어가 혼용되는 곳이 운남성이었다.
“그것 아십니까? 이곳 운남은 조금만 밖으로 나가도 독충과 독사가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그런데요?”
“중원에서 오시는 여행객들이 객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의미이죠. 글쎄 얼마 전에는 귀주 출신의 무사님들이 단체로 성도 밖으로 나갔다가 모두 독충에 물려 피똥을 주르륵! 시름시름 앓다가 다 죽어버렸지 뭡니까!”
얼굴을 굳히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내.
“아이구야.”
정천의 표정을 본 사내가 내심 웃음 지었다.
‘좋아, 이 어리숙한 놈, 넘어갔어!’
사내가 엄지를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하지만 저, 둘라가 안내해드리는 길만 따라가시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정천.
“그래요? 점창산까지는 얼만데요?”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사내가 검지를 들어 올렸다.
“단돈 은자 한 냥!”
이곳에서 은자 한 냥이면 네 식구가 한 달은 너끈히 먹고 살 만큼 큰돈이다. 물론 중원에서의 물가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래요, 그럼 왕복인 거죠?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은데.”
난처한 표정을 짓는 둘라.
“아이고, 무사님. 세상에나! 편도만 해도 제가 얼마나 싸게 해드리는 건데…….”
호구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둘라는 뻔뻔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요. 그러면 그럽시다.”
의심해볼 만도 했으나, 정천은 오히려 흔쾌히 승낙했다.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둘라.
“그럼 바로 떠나시죠.”
즉시 은자 두 냥을 건네는 정천.
“그럼요, 그럼요!”
[공자, 꼭 저 자에게 길 안내를 맡기실 필요는…….]어디선가 들려오는 정혁의 전음에 정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증인 한 명쯤은 있어야지.”
“예?”
작게 읊조린 말. 둘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서두르시죠.”
“그러시죠. 헤헤.”
신이 난 둘라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반면.
‘내 사람을 건드린 대가는 치러야 할 거야.’
정천의 발걸음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