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89
88화. 세 번째 관문(6)
소호변 작은 모옥.
“흐음, 이게 아닌데.”
정천은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그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휘두르며 당시를 복기했다.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야?”
“어어, 왔어?”
아침부터 시작된 그의 수련. 아랫마을에 약재를 사러 갔던 유운이 오후가 돼서야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다 또 기껏 보충한 기력이 상할라.”
유운이 아무리 말려도 그는 멈출 줄 몰랐다.
“벌써 며칠째인지. 에휴.”
유운 또한 무인이다. 강함에 대한 끝없는 욕구는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 자신이 도저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것에 있어서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네 욕심이 부럽긴 하네.’
정천은 달랐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이란 믿음이라도 있는 듯 계속되는 수련.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정천이 검을 휘두르는 것에 몰두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
지난 대사형과의 대결.
정천은 무영신검을 버리지 않았다. 천명신공의 심득을 통해 이를 계승했고, 그렇게 ‘자연검’을 선보였다.
쏴아아아-!
한점에 집중된 풍신은 파천마검의 암흑 검강을 뚫고 송백림의 복부에 꽂혔다.
“푸헉!”
그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대사형의 두 번째 실수.”
촤아악!
묵룡을 뽑아내자 그의 복부에서 피가 쏟아져 내렸다.
“스스로 극복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
“쿨럭! 잘난 척하지 마라!”
정천은 고개를 저었다.
“좋은 결과만을 바랐기 때문이겠지.”
지난 결전에서 대사형은 압도적인 무위를 보였다. 아무리 당시의 정천이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전력을 다하더라도 그 실력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내가 발전하는 동안, 대사형은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것 같소.”
그가 모든 것에 스스로 부딪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대사형은 최대의 효율만을 따지며 스스로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잘난 척…….”
그의 검에 다시 암흑의 검강이 맺혔다.
“하지 말랬지!”
순식간에 내질러진 검.
터억.
그대로 막혀버린 검. 묵룡의 적빛 검강을 뚫기는 버거웠다.
“내 검을 보이라 그랬소?”
파아아악-
중단전의 자연기가 반응했다.
“이것이 내가 보이는 두 번째 검이요.”
자연검(自然劍) 이식(二式) 지룡(地龍) 승천(昇天).
지면에 꽂히는 묵룡.
쿠구구구-
대지의 정수와 검을 타고 흘러나온 자연기가 충돌하며 지진이 일어났다.
쩌적- 쩌적-
송백림의 두 발 아래 지면이 갈라지며 강대한 기파(氣波)가 그를 덮쳤다.
“치잇!”
그대로 도약하는 송백림. 하지만 승천하는 지룡은 그를 끝까지 따라 올랐다.
콰아앙!
결국 내뻗은 송백림의 암흑 검강과 지룡이 충돌하며 파공성이 터져 나왔다.
“헉헉…….”
찢어진 의복 사이로 붉은 선혈이 내비쳤다. 전신이 피로 물든 송백림. 더 이상 버티고 서 있을 힘도 없어 보였다.
대사형에게는 실망뿐이었지만, 반대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이건, 대사형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는 묵혼혈룡의 정수.”
정천의 왼쪽 눈이 붉게 물든 순간, 적혈의 검강이 송백림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솨아악-
그의 피와 혼은 묵룡의 자양분이 될 터.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그때.
“……!!”
정천은 송백림의 목 앞에서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한 치만 더 갔더라도 싸늘한 시체가 될 이는 그였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여기까지다, 막내야.”
고개를 돌린 정천. 그의 눈앞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둘째 사형…….”
“사현……!”
그의 검을 막은 자는 둘째 사형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사내.
“비(非)…….”
송백림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비. 그는 단박에 깨달았다. 비가 누구의 사람이었는지를.
“방해하지 마시오, 둘째 사형.”
싸늘한 정천의 음성. 사현이 그를 바라봤다.
“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거라.”
“사부의 말씀…….”
모두가 화합하여 오의를 이루라는 그 말씀.
대체 뭘 어떻게 화합을 하라는 말인가?
“둘째 사형도 대사형과 같은 입장이오? 둘째 사형을 중심으로 화합해야 한다는?”
사현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보거라. 네가 앞으로 올라야 할 경지니까.”
사현이 검을 빼 들었다. 그런데 그 검이 일반적인 검은 아니었다.
“목…… 검……?”
마치 어린 제자를 가르치듯, 목검을 꺼내 드는 사현의 행동에 정천이 헛웃음을 지었다.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오?”
사현은 미동도 없이 목검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와라.”
“그 말 후회하지 마시오.”
정천과 사현의 거리는 어림잡아 오장.
정천의 왼쪽 눈이 붉게 빛나는 순간, 그의 신형은 어느새 사현의 앞에 있었다. 묵룡의 붉은 검강이 사현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터억.
들어 올린 목검에 쉽게 막히는 묵룡. 정천은 당황하지 않고 검을 회수하자마자 몸을 비틀어 반대편으로 검을 찔러 들어갔다.
타악!
또다시 목검에 막히는 묵룡.
“치잇!”
사방을 점하고 속도를 올려 공세를 바짝 올렸다. 하지만 도통 뚫리지 않는 사현. 정천의 호승심이 발동했다.
촤악-!
그의 손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붉게 빛나는 우안.
“쉽지 않을 거요.”
솨아아아아아아-
묵혼의 원기(怨氣)가 들끓었다. 그리고 염(念)에 반응해 움직이는 그의 몸. 세상의 모든 것이 느려졌다. 쏘아져 나가는 그를 향해 뻗는 사현의 목검.
‘늦었소.’
사현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두 눈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묵룡이 사현의 목 언저리에 닿는 순간.
탁!
“……!!”
정천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검을 손쉽게 막고 있는 사현을 바라봤다.
“거짓말…….”
퍼억!
정천의 가슴팍에 사현의 목검이 꽂혀 들었다.
“쿨럭!”
쓰러진 채 사혈을 토해내는 정천. 붉게 물들었던 두 눈이 원래의 검은 빛으로 돌아왔다.
“대체 어떻게…….”
목검이 가슴팍에 닿는 순간, 흘러들어온 기파에 모든 기혈이 뒤틀려버렸다.
“무형검(無形劍). 이것이 무형검이다. 잘 새겨두도록.”
그대로 돌아서는 사현.
“대체!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사형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면 여기서 우리를 죽이면 쉽지 않소?”
악에 받쳐 쏘아내는 정천의 외침. 사현이 돌아봤다.
“그 반대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돌아서는 사현. 정천은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단 일격이었어.’
심지어 목검이었다. 단 일격을 얻어맞고 허무하게 쓰러져버렸다.
‘무형검이라고? 대체 어떤 조화를 부린 거지?’
당시 둘째 사형의 한 수를 아무리 따라 하려고 해도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기의 운용을 알아차릴 수가 없다고?’
그는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 타인이 펼치는 무공을 보고 그대로 그 기의 운용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가진 천재성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것을 흉내 내려 해도 도저히 잡히질 않았다.
‘다시 한번 복기해보자.’
당시 둘째 사형이 보였던 한 수. 그의 몸을 관통하는 기의 흐름을 다시 떠올렸다. 그의 검에 주입된 무형의 검강,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던 그 무언가.
“이런 젠장!”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것만 알 수 있다면 세 번째 관문을 넘어설 수 있다. 그렇게 골똘히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어이, 손님 왔어.”
그의 상념을 깨는 유운의 목소리.
“손님? 무슨 손님?”
정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그를 찾아올 만한 손님이…….
“오랜만이구나, 막내야.”
“삼사형?”
환욱, 그리고 연비가 그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시오?”
“하하, 환대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사형에게 너무 차가운 것 아니더냐?”
“뭐 언제부터 살가운 사이였다고. 들어오시오.”
모옥으로 안내하는 정천.
“함께 들어가시지요. 아가씨.”
“흠흠, 사내대장부에게 아가씨라니.”
여전히 사내 행세를 하고 있는 유운을 보며 환욱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작은 모옥에 둘러앉은 네 사람.
“누추하니까, 오래 얘기할 생각은 하지 마시고.”
오래 이야기를 해봤자 득 볼 것도 없는 사이였다.
“네 덕분에 중원이 아주 요란법석인데도, 너는 태평하구나.”
“뭘 별거라고.”
“허어, 천마신교의 침공을 홀로 막아 놓고 별거 아니라니. 대체 너에게 별게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구나.”
송백림은 정천과의 일전 이후, 종적을 감췄다. 구심점을 잃은 천마신교는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꾸 말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이나 꺼내 놓으셔.”
“녀석, 급하기도 하지.”
환욱이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놓았다.
“이게 뭐요?”
“둘째 사형이 얼마 전 나를 찾아왔단다.”
또 둘째 사형이다.
“그런데요?”
싸늘한 정천의 반응을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환욱.
“열어 보거라.”
정천은 지체 없이 목함을 열었다.
“……이게 뭐요?”
“네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둘째 사형이 내게 준 것이지.”
투명한 검신이 반짝이는 작은 비도 하나. 그런데 검면에 독특한 표식이 하나 있었다. 반달, 그리고 그 중앙에 박혀 있는 작은 점 하나. 유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봤지?’
그러다 문득 연비의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똑같은 문양.
‘아!’
무영문의 표식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왜 사형 손에 있냐는 거요.”
정확히는 둘째 사형의 손에 있었던 것. 유운이 두 사형제의 심각한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야 네가 짐작하는 대로겠지?”
“나머지는요? 왜 하나밖에 없는 건데요?”
원래 비도는 아홉 자루. 개중 하나만 그의 손에 있었다. 환욱 또한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야 나도 모르지. 그런데 확실한 건.”
둘째 사형이 했던 말.
“화용진가가 봉문을 거두고 세상에 나오려고 한다는 거지.”
그의 말에 정천의 표정이 급속하게 어두워졌다.
‘화용진가?’
당연하겠지만, 유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영문의 표식이 박혀 있는 이 비도와 화용진가가 봉문을 깬 것이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호호, 아가…… 아니, 유운 소협께서 무척 궁금하신가 봐요.”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안다고 했던가. 연비가 유운의 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유운 공자도 알고 있어야 하는 문제라 같이 보자고 했던 겁니다.”
유운이 알아야 하는 문제. 환욱의 말에 유운은 더더욱 의구심이 들었다.
“이 비도는 저희 사부께서 화용진가에 내린 하나의 경고였습니다.”
“경고?”
“총 아홉자루의 비도. 구금비도(九禁飛刀)라고 하지요.”
“아홉 가지를 금한다……?”
환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금기를 깬다면, 멸문시키겠다는 의미로 화용진가의 여덟 당주와 한 명의 가주에게 사부께서 내린 비도이지요.”
화용진가의 봉문.
너무도 먼 과거의 일이기에 현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사였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 그 금기를 깼다 이 말이지.”
말인즉슨.
“후우, 바빠죽겠는데 귀찮은 일이 벌어지겠네.”
그것은 무영문의 제자로서 응당 해야만 하는 의무였다.
“그럼 저는 왜……?”
화용진가의 봉문에 무영문이 관여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도 알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 이에 정천이 즉시 답하였다.
“무극천가도 이 일에 얽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