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90
89화. 양금신족(量衾伸足) (1)
퐁당!
작은 돌이 연못의 중앙에 빠지며 조그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퐁당!
또다시 던져진 돌이 또 다른 파장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고.”
유운이 뒤를 돌아봤다.
“정천.”
정천이 유운의 옆에 와 앉았다.
“왜? 아버지가 걱정돼?”
“…….”
현재는 모습을 감추긴 했지만, 그는 모든 백도 무림인들의 정점에 서 있는 무인이었다. 그러나 무인이기 이전에 그의 아버지였다.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전혀 몰랐어. 대체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받들어져서 살아왔던 걸까?”
정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자책할 거 없어. 네 아버지는 네가 좋은 것만 보고, 예쁘게만 크길 바라셨을 테니까.”
딸 가진 아비의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을까.
“게다가 그렇게 따지면 우리 사형제도 마찬가지야. 사부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채 서로의 경쟁에만 치중했으니까. 그 일을 알고 있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막상 따지고 보면 유운이나 무영문의 사형제나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어째서 그들은 아버지부터 찾아 죽이려는 거야?”
화용진가를 봉문 시킨 건 전적으로 무영문의 문주, 무명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무극천가가 그들의 첫 번째 표적이 되어야 하는 건가?
“안전한지 보려고 먼저 돌을 던져 보는 거지.”
“뭐라고?”
유운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화용진가 입장에서 무영문은 건드리기 까다로운 상대야. 연못 아래 깊이 잠들어 있는 이무기를 깨우기 전에, 먼저 연못에 돌을 던져 보는 거야. 반응을 보기 위해서.”
“그렇게 던져 본 돌에 죽을 수도 있는 개구리가 우리 무극천가라는 거야?”
정천은 무언으로 답했다.
“하아…….”
조부께서 일궈놓은 가문이었다. 무극천신이라 불리며 전 무림을 통틀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를 이룩한 조부. 그의 뒤를 이은 아버지 또한 백도 무림 최고의 무인이라 불려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내실을 다지기에는 그 역사가 너무도 짧았다. 심지어 백도의 공격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물론 소문과 달리, 모용학의 빠른 대처로 궤멸에 가까운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가문의 자존심이 구겨진 건 사실이었다.
“화용진가는 강해. 과거에 천하제일가라 불렸을 만큼 말이지.”
과거의 천하제일가. 백 년 전의 그 명성이 현재에는 빛을 발하긴 했지만, 지금 그들은 숨죽이며 무림에 나설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제물이 바로 천무현과 무극천가였다.
“많이 벼르고 있을 거야. 네 조부인 무극천신도 그들의 봉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니까 말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는 거였다.
“내가 어떻게든 막아낼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무극천가가, 그리고 유운의 아버지가 무너질 일은 없다. 그가 절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거니까.
“아니.”
유운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할 거야. 우리 가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줄 거라고.”
정천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해. 옆에서 함께 해줄 테니까.”
그와 눈이 마주친 유운이 고개를 홱 돌렸다. 왜인지 모르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보이기 싫었다.
“흠흠, 날씨가 많이 더워졌나 봐.”
“그러게. 그럼 시원하게.”
정천이 유운의 등을 떠밀었다.
“꺄악!”
풍덩!
연못에 빠져 허우적대는 유운. 그런 그를 보며 정천이 박장대소했다.
“너, 죽을래?!”
“큭큭, 죽일 수 있으면 죽여보던가.”
“이 씨……!”
화악!
유운이 정천의 발을 낚아채 그대로 정천을 끌어당겼다.
풍덩!
“어푸!”
똑같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정천. 그런데.
“그 손에 든 건 뭐야?”
어떻게든 물에 젖지 않도록 하겠다는 집념의 의지로 빠지기 직전 품속에서 꺼낸 종이 한 장.
“뭐긴.”
씨익 웃으며 종이를 펼치는 정천.
〈신체포기각서〉
이것만큼은 생명처럼 지켜야 했다.
“이 개새…….”
* * *
호북의 북부, 조양이라는 작은 소도시.
“이야……! 대인, 저기 보십시오! 무극천신 천강휘 대협의 석상이에요!”
오랜만에 소호변을 벗어나 신이 난 단리우가 연신 두리번거리며 감탄을 남발했다.
“쪽팔리니까, 가만히 있어.”
“예…….”
그리고 반대로.
“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해?”
“시끄러.”
입을 꾹 닫은 채 걷고는 있지만, 좌불안석인 유운까지.
“에휴.”
정천이 한숨을 내쉬며 걷고 있을 때.
“어어?”
한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어어?”
눈가를 좁히며 뭔가를 찾아내고자 애쓰는 노인의 행동에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르신, 뭘 찾으시나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어디서 많이 뵙던 분인 것 같은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아서 말이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유운의 얼굴이 있었다.
“…….”
노인과 눈이 마주친 유운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어?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사람 잘못 보셨소, 어르신.”
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걷는 유운.
“혀, 형님? 어디 갑니까?!”
단리우가 아무리 불러도 그는 대답 없이 후다닥 그 자리를 피했다. 멀뚱히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정천과 단리우는 서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를 뒤따라 걸었다.
* * *
“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냥 같이 가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뭐 죄지은 것도 아니고.”
“그런 사정이 있다니까. 먼저 가서 준비해놓을 테니까, 하루만 저기 객잔에서 쉬고 와.”
함께 잘 가고 있던 유운이 본인 먼저 천가로 들어가야 한다고 우기기 시작한 것.
“아니, 대체 왜…….”
딱!
“아악!”
유운이 일격을 놓자 단리우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때론 말보다 주먹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하는 법이었다. 아니, 사실 그게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알기에 유운은 주먹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우씨, 맨날 때리기만…… 아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래요, 그러세요. 먼저 가서 준비를 하든, 목욕재계를 하든…… 어어? 죄송해요, 그 주먹 편히 내려놓으세요.”
정천의 뒤로 숨는 단리우.
“그래, 먼저 가봐.”
의외로 정천은 쉽게 수긍했다. 따뜻한 눈빛과 함께.
“그럼, 내일 오전에 봐.”
그리고 돌아서 천가로 향하는 유운. 그런 그의 뒤를 보며 단리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이 불안해 보이시더니…… 역시 아픔을 극복하기 힘드셨나 봐요.”
천가가 무림맹의 공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유운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절로 자책할 수밖에 없는 상황.
“대인께서도 유운 형님이 어떨지 이해하고 그렇게 넓은 마음으로 보내주신 거죠? 에? 어디를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계신…….”
정천의 시선을 따라간 단리우의 두 눈 또한 휘둥그레졌다. 옷감을 많이 아낀(?) 의복을 걸친 아리따운 여인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꿀꺽.
정천과 단리우를 향해 시선을 돌린 한 여인이 눈을 찡긋거리며 미소지었다.
“큼큼, 여인들이 대낮부터 춥지도 않은지 원…… 대인께서도 저 여인이 고뿔에 걸리지는 않을까, 안위가 걱정되어 눈을 떼지 못하고 계셨던 거죠?”
뭔 헛소리를 하냐는 듯 미간을 좁히는 정천. 물론 그의 시선은 여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
화용루(化龍樓).
씨익.
“가자.”
“예……?”
“오늘 밤엔 술 한잔해야겠어, 으흐흐.”
음흉하게 빛나는 정천의 눈빛을 보며 단리우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너도 이제 성인이니까, 이 형님이 한잔 진하게 쏘도록 하지!”
“예? 대인, 하지만…….”
싸늘한 눈빛으로 단리우를 쏘아보는 정천.
“형님.”
“예?”
“형님이라고.”
“대…… 아니, 예 형님…….”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정천.
“좋았어. 가자.”
그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 * *
“키야아-! 술맛 좋~다!”
“호호, 역시 사내대장부의 기세가 느껴지십니다, 공자. 쭉쭉 들이키셔요!”
“그럼, 그럼! 사내대장부가 이 정도는 마셔줘야지!”
아예 동이째 가져다 놓고 술을 푸고 있는 정천.
“에헤헤…… 기분 조하.”
“호호호, 정말 귀여운 분이시군요.”
“이히히.”
고작 술 한잔에 아예 맛이 가 버린 단리우의 옆에 앉은 기녀가 봉 잡았다는 표정으로 옆에서 계속 술을 먹이고 있었다.
“타지 분들 같으신데, 이 조양까지는 어인 일로 귀한 발걸음을 옮기신 건가요?”
“송이? 히히.”
“에이, 공자님도. 홍이요, 홍이.”
“그래, 홍이! 내가 말이야, 그러니까…… 음, 뒈인이랑 그러니까!”
“대인 아니고 형님.”
“딸꾹! 아이코, 눼가 잘못했네. 형님! 형님께 큰 잘못을 줘질렀숩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하는 단리우.
“음…… 우리는 구러니꽈! 저~~기 천가, 천가가 있어, 있는데! 그, 여자 형님이 있단 말이쥐?”
“예? 호호. 여인이 어찌 공자의 형님이 되나요?”
“에이, 뭐 그렇고 그런 게 있는 거지! 어쨌든!”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고는 있지만 일반 사람들이라면 도통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다.
“호호, 형님 공자께서 자세히 얘기해주세요!”
“하하, 그럴까?”
“소녀, 언제나 무림인들을 동경해왔답니다. 공자님과 같은 무림 영웅들의 숨 막히는 결전을 들을 때면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하하, 영웅, 그렇지! 영웅 좋지!”
마치 대단한 무용담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는 여인.
“그래, 그래. 이름이 뭐라고 했지?”
“우희예요, 공자님.”
“그래, 우희.”
뭐가 그리 좋은지 정천은 낄낄거리며 술을 한잔 비웠다.
“크하-! 맛 좋다!”
“호호,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어떤 이야기이긴.”
몽롱하게 취해있던 정천의 눈빛이 한순간에 돌변했다.
“너희들이 왜 봉문을 깨트렸는지에 대한 이야기지.”
일순 여인들의 눈빛이 교차하고.
타앙!
정천의 손이 움직인 순간, 단리우의 목을 향해 겨눠진 비도가 땅에 떨어졌다.
우당탕탕!
임무가 실패했음을 직감한 여인들이 식탁을 엎으며 재빨리 정천과 거리를 벌리고 섰다.
“어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를 못 한 단리우가 멍하니 눈만 껌뻑였다. 그의 등에 손을 대고 기를 주입하는 정천.
“흐읍!”
체내 술기운을 모두 태워버리자 단리우의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대, 대인!”
“자 실컷 재밌게 놀았으니까, 이제 할 일을 해야겠지?”
콰쾅!
한쪽 벽면이 그대로 뜯겨 나가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먼지가 가라앉자, 벽면 너머로 각자의 검을 든 수십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호호, 역시 무영문의 막내 공자님을 속이기란 쉽지 않군요.”
자신을 우희라 소개한 여인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덕분에 공짜 술 잘 마셨어.”
“호호, 공짜라니요.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천.
“하긴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지.”
공짜를 좋아했다간 형우처럼 대머리가 될지도.
“그래서 지금 그 값을 육체노동으로 대신 하려고 하잖아?”
정천이 손을 까딱거렸다.
“너무 비싼 몸값의 노동에 사양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