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95
94화. 대망(大蟒) (1)
“이대로 괜찮은 거야……?”
유운이 물었다.
“으음? 후루룩- 쩝쩝. 뭐가?”
입안 한가득 소면을 우물거리던 정천이 걱정 가득한 유운을 올려다봤다.
“아니, 걱정도 되지 않냐고.”
“그러니까 뭐가 걱정되냐는 거야?”
한숨을 내쉬는 유운.
“저게 지금 정상적인 수련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이 현재 앉아 있는 곳은 종영문의 이층 난간. 그 아래로 연무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단리우와 백여 명의 관도들. 정천이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저 몰골이 안 보여?”
한눈에 봐도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흐느적거리는 단리우의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다. 그의 두 팔목과 두 발목에는 족쇄처럼 철환이 채워져 있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 다시 소면을 흡입하는 정천.
“우적, 우적! 크흡! 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물까지 한잔 싹 비운 정천이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배를 두드렸다.
“왜? 삼장로의 수련 방식을 믿지 못하는 거야? 네가 하면 더 나을 거 같아?”
“그, 그건…….”
정천이 피식 웃음 지었다.
“내가 처음에 삼장로에 대해서 뭐라고 표현했는지 기억나?”
잊고 있던 정천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포악한 사람……?”
“그렇지.”
유운은 얼굴을 굳히며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첫날 그를 봤을 때, 세상에서 가장 포악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지금껏 만났던 그 누구보다 자애롭고 부드러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그의 이중성을 본 유운은 정천의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대가리 박아.”
낮게 깔리는 양곤의 불호령에 모든 관도들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일어서.”
순식간에 일어서는 관도들.
“박아.”
쿵쿵- 쿵-쿵-
빛의 속도로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는 관도들. 몇몇 관도들은 힘 조절에 실패해 바닥을 부술 듯 머리를 박아대는 바람에 피가 흐르기도 했다.
“일어서. 박아. 일어서. 박아. 일어서. 전(全) 자동.”
쿵- 쿵- 쿵- 쿵-
연무장에는 머리를 바닥에 들이박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도열.”
수십 번의 머리 박기가 반복되고 일어선 관도들이 일사불란하게 뒷짐을 선 채 도열했다.
“제군들. 지금 나랑 장난치나?”
“아닙니다!”
“아니야?”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 모양이야?”
“…….”
“대답 안 해? 대가리 박아.”
쿵- 쿵-!
무지막지한 철환을 사지에 두른 채 구르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다.
“뭐 고작 하나당 일관(一貫)밖에 되지 않는 철환인걸?”
“고작? 일관이면 고기로 치면 여섯 근이 넘는 무게라고!”
“그게 뭐? 나 때는 말이야.”
그때를 생각하면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쳤다.
“오우, 생각도 하기 싫다. 저 정도는 별것도 아니라고.”
첫 시작은 삼관부터였다.
견딜만 해질 때쯤 올리는 중량. 그렇게 열 배까지 올렸을 때는 진심으로 뼈가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이런 꼰대 같으니라고.”
유운의 질타에도 정천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이제 곧 시작하겠네. 지옥의 검술 훈련.”
얼차려로 시작된 수련. 심신을 적당히(?) 달아오르게 만든 후 검술 수련이 시작되었다.
“중검(中劍)!”
수련은 단순했다. 두 다리를 벌리고 검을 내지른 상태로 가만히 버티는 것.
“끄응…….”
물론 지켜보는 입장에서야 쉬워 보이지, 실제로 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일 수밖에 없을 수련이었기에 유운이 단리우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반 시진쯤 흘렀을 때.
“어어, 저기 세 번째 열에 두 번째. 팔 떨어진다, 팔 떨어져!”
정천의 지적에 급하게 팔을 올리는 관도.
“어휴, 진짜.”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무영문 제자고 뭐고 확 그냥…….’
관도들의 얼굴에 살기가 비쳤다.
“좋아, 좋아 그 눈빛.”
물론 정천은 그 눈빛을 즐기고 있었다. 그 또한 겪었던 과거였으니 말이다.
“으어억……!”
결국 한 시진이 흐르고 한 명의 관도가 자리에 쓰러졌다. 그대로 기절하는 관도.
“완령.”
“예, 관주님.”
양곤의 부름에 한 교관이 재빨리 쓰러진 관도를 둘러업고 나왔다.
“쯧쯔…… 저리 약해 빠져서야.”
혀를 차는 정천. 유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또 반 시진이 흐르고.
“사, 살려…….”
풀썩.
또 한 명의 관도가 버티지 못한 채 쓰러지고, 그 뒤를 이어 열 명의 관도가 연달아 쓰러졌다.
뚝-뚝-
연무장 바닥은 관도들이 흘린 땀으로 흥건했다.
그리고 두 시진이 되었을 무렵.
풀썩- 풀썩- 풀썩-
이번엔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교관들과 이전에 버티지 못한 관도들이 나서서 그들을 둘러업고 나왔다.
“이야, 이제 딱 여섯 명 남았네.”
관도대전 출전이 유력한 다섯과 단리우까지. 단 여섯 명만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진이 더 흐르고.
스르륵-
검을 든 상태 그대로 쓰러지는 연진. 그녀와 더불어 세 명의 관도가 더 쓰러졌다.
“이야, 대단한데. 저 친구 이름이 뭐라고요?”
어느새 양곤의 옆으로 다가온 정천이 한 관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강운이라는 녀석입니다. 종영관 최고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부심이 느껴지는 양곤의 대답. 그의 얼굴을 본 정천이 피식 웃음지었다.
“벌써 점찍어 두셨군요.”
점 찍어두었다는 말. 즉, 차대 무영문 장로의 재목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하, 그렇게 보이십니까?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간 큰 고목이 될 인재이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강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정천. 후대 무영문의 한 기둥을 차지할 인재라면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건 그렇고…….”
삼장로의 시선이 정천을 향했다.
“칠공자께서는 광극지관(光極之關)을 돌파하신 겁니까?”
광극지관. 그는 세 번째 관문을 돌파했냐고 묻고 있었다.
“글쎄요.”
정천은 쉬이 답할 수 없었다. 그는 자연검을 터득해냈다. 세 번째 관문의 통과조건은 자신만의 무공을 창안하는 것. 그런데 그저 ‘터득’하고 ‘만들어 낸’ 것으로 괜찮을까?
– 무형검(無形劍). 이것이 무형검이다. 잘 새겨두도록.
둘째 사형의 단 한 수에 무너져 내렸다. 그와 둘째 사형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터득과 완성의 차이였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터득한 것과 완성한 것은 다르다. 그는 자연검을 터득했기에 졌고, 둘째 사형은 무형검을 완성했기에 이겼다. 고로 진정으로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는 말은 곧 ‘완성’이다.
‘난 아직 자연검을 완성하지 못했어.’
정천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사형의 무형검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만 있다면 아직 추상적이기만 한 자연검을 구체적으로 완성할 수 있을 터였다.
“하하, 이 늙은이가 괜한 물음을 하여 칠공자를 심란하게 만들었군요.”
“아니에요. 어차피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니까요.”
초조해하지는 않는다. 둘째 사형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도 않는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다면 굳이 남과 비교할 이유는 없다. 과정에서 잠깐 뒤처져 있을 뿐, 종착지에 먼저 닿는 건 그일 테니까.
“오, 이제야 결과가 슬슬 나오네요.”
검을 내지른 처음의 자세로 끝까지 버티다가 스르륵 옆으로 쓰러지는 두 사내.
“허허, 무승부로군요.”
“무슨 말입니까. 승부는 극명한데.”
정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단리우가 먼저 쓰러졌다.
“아주 나사 하나 빠져가지고, 저거.”
정천은 단리우에 대한 특별훈련을 다짐했다.
“허허, 그런가요.”
너털웃음을 짓는 양곤의 모습에 유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관도들을 쥐 잡듯이 하던 노인네가…….
“어찌 됐든,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흐음, 그 무관대전에 출전한다는 진가 놈은 실력이 어떻다던가요?”
무공의 성취란 객관적인, 혹은 정량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게, 무공이란 단순히 외공, 내공으로만 나뉠 수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예 평가 자체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육십 년을 쌓은 내공을 일갑자라고 칭하기도 하며, 검기상인의 경지에 이른 고수를 절정의 경지라고 일컫고, 강기(强氣)를 구사하는 이들은 초절정으로 분류한다. 물론 천무오제에 이른 최강자들은 화경의 경지로 분류한다.
“칠공자께서도 아시겠지만, 화용진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 방면으로 수집된 정보를 종합해본다면, 상검(上劍)에 이르지 않았나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무림의 성취 기준으로 따진다면 진가에서 처음 검을 잡은 이들은 하검(下劍)의 경지로, 검기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즉 검기상인의 경지에 이른 이들은 상검으로 평가하며 초절정에 이른 이들은 진검(眞劍), 그리고 화경의 경지를 뛰어넘은 이들을 용검(龍劍)이라고 부른다. 용검에 이르러야 가주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사패주의 일인이었던 진웅의 경우, 그 독보적인 무위를 황검(皇劒)이라 칭했다.
“재미있겠네요.”
“하하, 저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요.”
물론 매우 어려울 것이다. 아직 단리우가 검기상인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볼 때, 무척이나 불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림의 고수를 객관적 수치나 평가로 우위를 가리는 건 우둔한 생각이다.
“붙어보면 알겠죠.”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 하지만 정천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기면 되니까.
* * *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웅성- 웅성-
“우와, 인파가 어마어마 하네요.”
정천이 혀를 내둘렀다.
총 여덟 칸의 비무대를 중심으로 빼곡하게 모인 인파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허허, 이 무관대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무림맹에 입단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구파와 팔대세가의 고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들이 모이는 집단이 무림맹이었다. 하물며 출신 성분이 미약한 무관의 이들이라면 무림맹에 입단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명예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미래의 백도무림에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는 토대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오늘부터 사흘간 예선전이 치러질 예정입니다.”
“몇 명이나 참가한 건가요?”
유운의 물음에 양곤이 미소 지었다.
“약 천 명을 넘겼을 겁니다.”
“오우…….”
무관대전에 참여한 무관이 최소 이백여 곳 이상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본선에 오를 인원은 총 서른 둘이지요.”
그리고 본선에 이른 대부분의 인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무림맹에 차출되었다.
“자자, 갑조(甲組)는 이쪽으로, 을조(乙組)는 저쪽 그리고 병조는 저~짝에…….”
진행요원들이 각자의 무관패를 확인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리우.”
“예, 대인.”
그의 눈빛에는 이전과 다른 독기가 서려 있었다. 애를 얼마나 굴렸던지…….
“내가 당부했던 말 잊지 말고.”
그가 했던 당부. 단리우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 빼고 임마.”
“예, 대인!”
최선을 다해 임하는 거야 나무랄 게 없었지만, 너무 힘이 들어가 경직되는 건 용인할 수 없었다.
“그래, 잘 다녀와.”
그와 삼장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멀어지는 단리우. 이번 대전에서 화용진가를 눌러야만 그들의 야욕을 멈출 수 있다.
“삼장로께서 보시기에 그 진가 놈과 붙었을 때 승리할 확률이 얼마나 될 거 같나요?”
“글쎄요.”
그때 그들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일단의 무리. 정천의 눈이 빛났다. 그의 시선을 느낀 삼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저들이라는 것. 개중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한 청년을 정천이 유심히 지켜봤다.
피식 웃는 정천.
“일 할쯤 될 거 같네요.”
그리고는 돌아서는 정천. 그는 무영문의 대표로 단리우 라는 패를 내밀었다. 이제 자신의 결정에 대한 결과를 지켜볼 시간이었다.
“그런데 유운은 어디를 간 거지?”